나무(木)의 노래

이른바 불알친구들은 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수 십 년 만에 어쩌다 목소리를 들어도 서로간 이내 옛날 날(生) 모습으로 돌아간다.  내 경우에는 신촌 고향 친구들과 고등학교 이전 친구들이 대개 그러하다. ‘쨔샤’, ‘새꺄’ 등의 호칭이 절로 나온다.

청년 시절 이후에 만난 친구들은 아무래도 어디서 어떻게 만났느냐에 따라 각기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기 마련이다. 물론 내 경우에 한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내 스물 무렵, 1970년대 초반에서 1980년 대 초반에 연을 쌓았던 친구들이 있다. 친구 뿐만 아니라 선후배 나아가 많은 선생님들까지 대개의 경우 내 삶에 큰 스승들이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과의 교류는 내 삶에 누렸던 큰 축복이었다.

그 시절 우린 모두 동지(同志)였다. 유신 철페, 독재 타도, 민주화, 통일의 담론들로 뜻이 엇비슷했던 만남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 시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세상을 뜨셨고, 친구와 선후배들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제  저녁 노을 길들을 걷고 있다.

그 시절 벗들을 생각하면 일찌감치 떠나와 살고 있는 나는 늘 부끄럽다.

그 숱한 얼굴들 가운데 내가 아는 한. 그 스물 무렵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 온 친구가 하나 있다.

내가 이민을 오던 그 무렵 그는 빈들로 나아갔다. 그리고 오늘까지 그는 빈들에서 머물고 있다.  그 곳에서  <누군가 만져주>고 <누군가의 손을/ 무작정 기다리는> 사람들 곁에서 <나무>처럼 살아 왔다. 노동자, 이주 노동자,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그 나무 아래 함께 하는 빈들에서 오늘도 머문다.

그 긴 세월 나는 그를 본 적은 없다. 종종 전해 듣는 소식은 언제나 그대로다.

그는 조금 이른 은퇴를 했다. 듣기로는 젊은 시절 겪어낸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안 좋다고 했다. 그가 은퇴 후 시집 한 권을 펴냈다. 그의 자전 시집이란다. 시집 제목이 <바닥이 하늘이다>이다. 그 답다.

그의 시집을 넘기며 그가 부른 삶의 노래들을 듣는다. 그 중 하나이다.

<나무>

한 곳에서/ 얼마나 오랜 세월 서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지나 보낼지/ 바람을 맞을지

당신의 사랑은 그런 것인가요/ 한 곳에 서서 한 곳만을 향하여/ 항상 손을 벌리는 것….

– 중략 –

하늘이 좁아/ 가리고 싶은 마음으로/ 넓게 안테나를 세우고/ 모든 것을 끌어 안으려는 마음/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작은 소리에도 상처 받으며/ 견디고 또 견디며/ 뿌리 내리는 것

-중략 –

누군가 만져주지 않으면/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는 / 외롭고 쓸쓸한 사랑

그래도 모든 것을 주기 위하여/ 긴 세월을 참으며/ 무심하게/ 누군가의 손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 노래하며 춤추며/ 기도하며 바라며

긴 세월 올곧게 빈들에서 머문 그는 이미 신이 믿고 쓸만 한 거목이 되었다. 신은 그를 잘라 참 좋은 교회당 하나 지으실만 하실게다.

마루 깔고 남은 잡목으로 나 혼자 즐길 의자 하나 만들어 놓고 낄낄대는 내게 이렇게 거목이 된 벗 하나 있다는 건 오로지 내가 누리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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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복목사. 그의 건강과 아직 해야 할 많은 일들을 위해 기도하며.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 <바닥이 하늘>인 세상을 위해 나름 꿈꾸며 사는 후배들과 함께 그의 자전적 시집을 나누려 한다.

철부지

우리 부부는 여전히 철부지다.

이른 아침 뉴저지 Englewood로 향하는 차안에서 울린 아내의 카톡에 담긴 지인의 인사. ‘지난 밤 뉴욕에 있는 딸내미는 아무 일 없지요?’

아뿔사! 이게 뭔소리? 내 채근보다 먼저 보낸 아내의 문자에 오늘따라 유달리 빠르게 응답한 딸아이의 문자. ‘간밤에 불이 나갔을 뿐, 난 아무 일 없는데…’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뉴스 검색을 해보니 지난 밤 맨하턴에  10시간 정도 정전사고가 났었다고… 에고 남만도 못한 부모라니…

낼모레 어깨 수술 날짜가 잡힌 아내가 춤을 배우러 가는 길, 나는 또 좋다고 운전기사로 나선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아내가 춤 연습을 하는 동안 나는 그 동네 한바퀴를 걸어 보겠다고 나섰다. 일요일 아침 조용한 동네 모습을 눈에 담았다. 나무 위 새 없는 새집, 집 앞뜰에서 유유자적하는 두더지, 더위에 익어가는 과실 등등 부촌 분위기에 빠져 걷는데 현관문 거칠게 여는 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날아오는 목청 높은 소리 하나. ‘왜 남의 집 사진을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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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또래 할망구의 거친 목소리였다. 설마 도회지 부촌 할망구여서는 아닐게다. 그저 할망구 인성 탓인 게지!

어릴 적 남의 집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던 때가 떠올라 웃으며 동네를 벗어나 큰 길로 나서다. 갈라진 아스팔트를 가냘픈 몸으로 가려주는 꽃들이 부촌 할망구보다 엄청 더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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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산책길이라니! 왈 오늘의 득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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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 못된 부촌 할망구는 어쩜 오늘의 천사였는지도 모를 일. 산책길을 벗어나 춤 연습 하는 아내에게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작은 것들도 모두 다 아름다웠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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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배움에 진지했지만 선생님과 동작이 같은 때는 거의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두어 차례 오늘은 반복되어야 할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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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노라고, 아내는 춤연습으로 땀을 흘리고 맞은 정갈한 밥상은 오늘 누린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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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들린 필라델피아 한국식품점에서 만난 정말 반가운 얼굴 하나. 지지난 달 다녀왔다는 우리들의 고향, 서울 신촌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 강장로님. 그와 내가 신촌에서 가까이 지내던 때는 그의 나이 사십 대, 나는 이십 대. 오늘 그 이는 구십을 꼽고 나는 칠십을 꼽았다. 사관학교 출신 아직도 꼿꼿한 그가 말했다. ‘감사한 맘으로 잠들고 못 일어나 그냥 갈 수 있다면…’ 사진 찍기 몹시 싫어하는 내가 아내의 명령에 아무 저항없이 순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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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과 국거리 몇 가지 부모님께 전해 드리고, 과일 몇 점 양로원에 누워 계신 장인 입에 넣어 드리고  집에 이르니 오늘 운전거리 300마일.

DSC06617올 추석 한인잔치에서 춤을 추겠다는 아내는 오늘 아침까지 물었었다. 강선생님은 흥춤을 권하시는데 혹시라도 그 무렵에… 그래서 살풀이 아니면 한풀이 춤이 어떨까?

웃으며 내가 한 응답.

‘이 사람아! 그 때까지 돌아가실 이 없네!’

그리고 내 맘속으로 한 말. ‘한풀이건 살풀이건 다 흥에 닿아야 하는 것을…’

삶과 죽음이 다 흥에 닿아 있다면… 우리가 아직 철부지 소리 들어도…

연식年食

이젠 조금 과한 노동은 버겁다. 예전에 비할 바는 아니나 그래도 메뚜기 한철이라고 가게 빨래감이 밀린다. 바쁘게 움직이다가 문득 가게 밖에 머문 가을에 끌려 일손을 멈추고 하늘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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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어느 천재는 신은 없다고 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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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쟁이인 내가 천재의 고뇌와 고백에 고개 끄덕일 수 있음은 그만큼 연식年食이 쌓였다는 증표다. 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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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신의 자리에 올려 놓은 ‘자연발생적 우연’에서 나는 신을 고백한다. 그런 내 모습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또한 살아온 연식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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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테면 사람과 신 사이에서 제 배 채우는 이들이 말하는 신은 없음에 분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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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 도움을 청하며 부르는 이름의 신은 분명 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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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담는 내게 오늘에 대한 감사를 토해 내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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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내겐 신이 함께 했다. 내 일터에서.

배움에

올 초에 프랑스 혁명에 대한 책 몇 권을 읽었다. 알베르 소불의 ‘프랑스 혁명사’, 마르크스의  ‘프랑스 혁명사 3부작’, 노명식이 쓴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육영수가 쓴 ‘혁명의 배반 – 프랑스 혁명의 문화사’와 앙드레 모로아의 ‘프랑스사’ 들이었다.

딱히 이 나이에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 지적 허영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주일 여 짧은 일정으로 돌아 보았던 파리 여행에 들였던 내 시간과 발품에 대한 예의랄까? 아무튼 여행 시간보다 몇 배 많은 시간을 들여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까지 약 백 여년의 프랑스 혁명사를 읽었던 적이 있다.

책을 덮고 여행을 돌아보며 서너 가지 정리했던 생각들이 있었다.

우선은 나이 들면 고집 뿐이라는 말이 정말 옳다는 생각이었는데, 내가 살아 오면서 쌓인 내  생각에 대한 신뢰였다. 이른바 신앙이다. 내가 믿고 고백하곤 하는 성서적 역사관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뜻인데, 역사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곧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라는 내 믿음에 확신을 주었다는 말이다.

백 여년에 걸친 혁명과 반혁명 또는 역사의 진보와 반동은 나선형을 그리며 나아가는 역사 발전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여성, 인권, 노동, 복지, 동성애, 난민 등등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갈등과 고민들 역시 당연한 논쟁과 투쟁의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 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프랑스 혁명이나 파리 코뮌은 이 백 여년 전에 끝난 일들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내가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사람 사는 모습에 대한 근래의 역사들을 돌아 봄에 있어 십년 단위로 끊어서 역사를 정리해 읽고 그 시간들을 다시 연결해 보는 생각을 익혀 보는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오늘, 사람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이 새로운 깨달음이 파리 여행과 프랑스 혁명사를 읽으며 내가 얻었던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

이즈음 나는 몇 권의 책들을 틈틈히 시간을 내어 읽고 있는 중이다. 19세기 말 부터  20세기 중반 까지 한반도에 대한 생각들을 기록한 책들이다. 내가 겪어 보지 못했지만 오늘의 내 생각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간들에 대한 기록들이다.

나는 십 년 단위로 이 시대의 이야기를 끊어 읽고 다시 연결해 보기도 할 것이다.

살며 때때로 ‘내가 이런 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믿는 신께 감사를 드리곤 한다. 이즈음이 그렇다.

이 나이에 가르쳐주는 선생을 만나고 함께 배우는 뜻 맞는 좋은 벗들이 있기 때문이다.

후배를 위하여

볼수록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후배가 있다. 얼굴 본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만, 참 좋은 세월을 살고 있다 보니 페북을 통해 그의 근황을 가까이 마주한다. 그가 이즈음 동유럽 국가들 여행을 하고 있단다. 그 곳 사람 사는 거리들을 흑백 사진으로 전하고 있는데 참 ‘그답다’는 생각이다.

나는 지금 그가 전하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사진들을 보고있다. 사진에 그가 달아 놓은 댓글이다. “우리나라에도 있어야할 현장!!! 우리는 없어~~~ 분통이 터져.” 그 소리에 난 그저 중얼거린다. “친구야! 분통 터트릴 나이는 이미 지났어, 건강하자구. 그런 날 오겠지. 아무렴 와야지!”

어제 저녁 스물 남짓한 벗들과 함께 했었다. 필라델피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모임이었다. 이명박 구속 등 점진적이나마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국을 자랑스러 하자며 모인 자리였다.

photo_2018-03-25_08-27-59그 중 몇몇은 어제 낮에 미국내 총기 규제를 외치며 전국적으로 일었던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 필라델피아 시위에 참석하고 온 터였다. 그들로부터 행사 현장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안전과 시민 그리고 국가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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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하나가 ‘연방 교통 안전 위원회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NTSB)’에 대해 말했다. 항공사고를 다룬 영화 Flight를 예로 들면서 미국내외의 각종 해상, 철도, 항공과 관련된 사고를 수사하여 그 원인을 파악하고 끝내 책임 소재를 철저히 규명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에 대한 설명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직업이 그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땅에 어디 지고지선의 국가 공동체가 있겠느냐만, 더불어 사는 사람살이를 위한 꿈으로 역사와 공동체는 바뀌어 왔다는 믿음은 참이다.

한국 출장길에서 막 돌아와 시차 적응이 안되어 피곤하다던 친구는 따끈한 한국소식을 전하며 다시 필라 사람이 되었다. 그가 한 상자 가득 채워 한국에서 들고 온 물건은 오는 4월 16일, 세월호 사주기를 맞아 네번 째 기억식으로 행진을 할 때 우리들이 깔맞춤으로 입을 셔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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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행사 준비와 오는 5월에 필라델피아를 방문하는 세월호 유가족 희망목공소 팀을 맞을 준비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며, 4월에 입을 셔츠들을 미리 입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아직 메아리조차 듣지 못하는 소리들을 외치고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자는 뜻이었다.

우리들 모두 너나없이 하루살이에 바쁜 삶이어서 아픈 이웃들을 기억하는 마음의 곳간은 정말 작디작다. 비록 그렇다 하여도 ‘공감’과 ‘연대’의 작은 몸짓이라도 쉬진 말아야 할 터.

이 아침, 후배의 분통을 조금만이라도 삭혀 줄 수 있다면….

 

감사에

추수감사주일에 한 해를 돌아본다. 어느새 노년의 초입에 선 내게 한 해는 참 짧다. 그저 모든 일들이 어제 같다.

오늘은 우리 부부가 적을 둔 교회가 아닌 델라웨어 한인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장인 장모가 적을 둔 교회이다. 지난 해 장모께서 떠나신 후, 나는 그 교회 목사님께 약속을 드렸다. 일년에 네 번 쯤은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겠노라고.

우리 내외는 침례교회 목사님 내외분을 비롯하여 교우들에게 큰 사랑의 빚을 지고 산다. 참으로 작은 신앙공동체이지만 공동체의 제 멋과 맛이 도두라져 내놓을만한 교회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돌아가신 장모에게나 홀로이신 장인에게 딸, 사위보다 사뭇 가깝고 정겨운 교회 식구들이다. 감사 주일에 느끼는 감사의 크기가 남다른 까닭이다.

구순(九旬)을 코 앞에 둔 장인은 오늘 하모니카를 부셨다.

노인의 하모니카 소리에 함께 화답해 준 공동체 식구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 부부는 늪이 있는 공원에서 머물고 있는 가을의 마지막 풍경들과 함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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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어찌 성장하는 젊음만이 감사이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모두 감사인 것을.

사랑에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매서운 소리를 낸다. 부는 바람에 나무가 내어줄 잎새가 더는 없다. 창밖 풍경에 빠져있다가 메신저 울림 소리를 듣는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함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07편 한 구절이 담겨있는 추수감사절 카드를 보낸 이는 허춘중 목사님이다. 태국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인도차이나 선교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목사님인데, 젊어 한 때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분이다. 얼굴 본지는 얼추 40여년 저쪽 일이다.

추수감사주일 아침, 허목사의 전자카드가 내 정신을 깨운다.

맑은 정신으로 바울 선생의 소리에 귀를 연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로마서 13 : 8, 개역개정)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읍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읍니다.(공동번역)

Let love be your only debt! If you love others, you have done all that the Law demands.( The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바울 선생은 매섭고 사나운 바람 뿐만 아니라 한점 미풍에도 내어줄 수 있는 잎새를 달고 살았던 나무였던 듯.

사랑의 빚을 세어보는 추수감사 주간을 보내야 할 터.

허목사에게 감사를.

구해 줘

한국 TV 연속 드라마를 첫 해부터 마지막회까지 빠짐없이 본 것은 참 오랜만 일이다. 드라마 ‘송곳’을 본 게 가장 최근의 일인데 그 역시 전편을 다 보지는 못했다. 이즈음 서울 처남이 이런 저런 영상 자료들을 보내 주어서 아내가 제법 즐긴다. 나 역시 이따금 기웃거리곤 하지만 크게 흥미를 일으켜 브라운관 앞에 앉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내가 빠져들어 전편을 다 본 드라마 바로 ‘구해 줘’이다.

오늘 모처럼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돌아온 오후, 드라마 ‘구해 줘’의 마지막 편을 보았다.

비단 사교(邪敎)만이 아니다. 모든 종교가 다 그렇다. 또한 종교 뿐 만이 아니다. 세상사를 지배하고 있는 모든 권력 또한 마찬가지다.

신이든 권력이든 브로커가 문제이다. 하나님, 하느님, 하늘님, 새 하늘님 그 무어라 부르든 신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 정의, 복지, 자유, 자주 등등 그 무어라 부르든 권력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신과 사람 사이, 권력과 사람 사이를 잇는 브로커가 바로 문제이다.

드라마 ‘구해 줘’를 본 후 모처럼 꺼내든 책,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의 ‘역사적 예수(The Historical Jesus)’이다.

<예수가, 아마도 처음이자 유일하게, 성전의 화려함에 맞서서 그 합법적 브로커 기능을 브로커 없는 하나님 나라(unbrokered kingdom of God)의 이름으로 상징적으로 파괴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복 그리고 꿈

이 나이에 누리는 복이 하나 있다. 생각이 엇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는 복이다. 몇 사람 되지도 않거니와 온라인 화상으로 만나는 일이니,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그걸 복이라고… 쯧쯧…” 혀차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일이겠다만 내겐 참 소중한 복이다.

이름하여 ‘필라세사모 온라인 모임’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와 아픈 사람들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모인 필라델피아 인근에 사는 이들의 모임이다.

만나서 뭐 그리 큰 일 하지도 못하거니와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 새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며 그들과 함께 원을 풀어 나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로 나누어 왔고, 최근 정권이 바뀐 이후엔 새 정권이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내고, 한국 및 한인 사회가 보다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들 대부분은 우리들의 이야기로만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가는 고사하고 작은 지역 사회 아니 우리들 각자가 속한 아주 작은 공동체 하나 바꿀만한 특별한 여력들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겐 분명하고 소중한 복이다. 때론 한주간 겪는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이야기일지라도 우리들의 이야기 바탕에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일 테면 이번 주 모임에서 한 젊은 학자가 던진 이야기로 인해 나는 사람살이에 대해 다시 생각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여 복이다.

대학에서 언론학을 연구하는 친구인데, 그가 최근 연구했던 주제에 대해 말한 아주 짧은 요약이다.

<사람들에게 하나의 사실을 얻는 정보 매체가 어떤 것인가? 를 묻고, 사람마다 사실을 인식하는 차이와 정보 매체와의 연관관계를 따져 보았다. 이즈음 판을 친다는 가짜 뉴스를 인식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연구도 해보았다.>는 것이다.

여러 이야기들 중에 짧게 언급했던 그의 말이기에 깊은 그의 연구 내용은 모르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런데 그날 그의 짧은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가 자꾸 생각이 났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에서야 그 이가 생각났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청암(靑巖) 송건호 선생님이다.

송선생님께서 남기신 말씀이다.

“일선 기자로서 오랜 체험을 가진 언론인이라면 결코 없는 사실을 허위 보도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입장을 달리하고 시각을 달리하는 취재와 보도를 통해서 독자들에게는 중대한 정치, 경제 사실들을 얼마든지 사실과 사건의 이미지를 참된 진실과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독자들의 머리 속에 심어 넣을 수가 있다.>

내가 청암 선생님을 따랐던 때가 1970년대 말이니 거의 40여년이 지난 일이다. 이제 젊은 학자를 만나 진일보한 청암 선생님의 소리를 듣는 듯 하여 누리는 내 복이 크다.

필라세사모 이름으로 내가 누리는 복을 이야기하듯, 세월호 아이들과 유가족으로 인하여 살아가는 이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누리는 복을 이야기하는 세상이 어서 오기를 꿈꾸며….

주일아침, 희년(禧年)을 꿈꾸며

주일아침에 성서 레위기 한 장을 읽는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 레위기 25장 1-12절, (개역개정본 성서에서)

이즈음 사회보장이나 복지정책에 대한 뉴스나 의견, 주장들을 많이 볼 수 있다만, 솔직히 나는 이 분야에 대해 밝지 않다. 내가 살았던 시대의 한국사회에선 ‘사회보장이나 복지’라는 말은 불온하였다. Social security라는 말에 내가 친숙하게 된 것은 이민 후 세금을 납부하면서 내기 시작한 social security tax 때문이다. 그러나 그 뿐, 사회보장이니 복지라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다. 근래에 내 집에 많이 배달되는 광고물로는 은퇴연금이나 은퇴 후 자산관리에 대한 것이 으뜸이다. 아마 내 나이 탓일게다. 그러나 그도 그 뿐, 내 개인적인 일로 받아드릴 뿐이지, 사회적 문제로 생각이 나아간 적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사회보장이나 복지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

이렇게 무지, 무식한 내 식견으로도 성서에서 말하는 안식년과 희년의 선포는 가히 혁명적이다. 혁명이란 이루어 질 수도 있는 일이므로, 혁명이라기보다는 부질없는 망상에 가깝다고 하는 게 나을 듯 하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으니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는 예수의 말을 실천한 사내가 없듯이, 희년법이란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헛된 꿈일 수도 있겠다.

레위기를 기록했던 시대에 이미 희년법은 기억과 신앙속에 남아있었을 뿐, 이스라엘 역사나 그 이후 인류사에서 실천되었던 적도 없다. 물론 이즈음 교회 또는 대학, 공무원 사회에서 안식년이니 안식 휴가니 하는 말과 휴가제도를 시행하고는 하지만, 엄밀한 뜻에서 성서에서 선포하는 안식법과는 거리가 멀다. 희년에 이르면 여전히 성서속에만 남아있는 사어(死語)에 불과하다.

이쯤 머리 속에 남아있던 신문기사 한 토막을 떠올린다. 한국 문재인 정부가 소액, 장기연체 채무 를 탕감하겠다는 기사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탕감 대상 채권은 1000만원 미만의 10년 이상 연체된 채권이다. 사실상 소멸시효가 완성된 회수 불능 채권으로 볼 수 있다. 그 규모는 약 11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내각이 구성된 이후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회수 불능 채권 1조9000억원을 소각하기로 했다. 대상자는 43만7000여명이며 1인당 435만원 정도의 부채가 사라지게 된다.>

지난 달 조선일보 기사 일부이다. 이 기사에는 <선진국 사례에서도 정부가 나서서 일반 서민들의 부채를 일괄적으로 탕감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전문가 의견도 달려 있다.  ‘국가가 나서서 빚을 없애주면 혜택받는 이들은 좋겠지만, 그럼 그 동안 열심히 빚을 갚아 온 사람들은 바보냐?’,  ‘그럼 이제 누가 빚을 갚으려 하겠느냐?’며 사회 전반에 퍼질 도덕적 해이를 염려하는 이들의 의견들도 있다.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철저한 쉼, 모든 빚의 원상회복, 이자없는 대부, 되무를 수 있는 법” 등등을 선언하고 있는 성서의 희년법은 아주 깊은 전제를 달고 있다. 바로 참회와 자유 정신이다.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희년을 선포하는 첫날에 해야 할 일은 바로 희년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참회하며 뿔나팔을 부는 것이다. 희년(禧年) 곧 기쁨의 해는 히브리말로는 ‘쥬빌리(Jubilee)의 해’이다. 쥬빌리란 ‘수양의 뿔’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희년을 선포할 때 수양의 뿔로 된 나팔을 분데서 유래한다.

개인이나 사회 공동체가 옛 빚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출발을 할 때 전제되어야 하는 것들이 바로 참회와 속죄,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는 기쁨과 자유의 나팔이다.

하여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발상이라 할 수도 있겠다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 성서의 선포이며, 이를 믿는 이들에게는 역사속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나아가 현실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는 일이 된다.

현실에서 희년이 선포되지 못하는 까닭은 그 뜻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비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천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못가진 자, 빚을 탕감 받은 자들의 참회와 가진 자, 빚의 탕감을 실천할 수 있는 권력자들의 의지가 함께 힘을 모아 희년 곧 쥬빌리의 뿔나팔을 불어 제낄 때 희년은 유토피아가 아닌 오늘의 일로 다가설 수도 있다고 믿는다.

사회보장과 복지 정책의 문외한인 내가 살았고 살고 있는 한국과 미국은 이 분야에선 후진국이라 하겠다. 아마 나 같은 문외한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나마 퇴임 이후에도 많은 신뢰를 얻고 있는 오바마나 이제 막 시험대 위에 오른 문재인처럼 ‘사회 정의’에 대한 고뇌 깊은 권력자들과 참회와 속죄를 전제로 서로를 용납하는 시민들이 함께 불어 제끼는 뿔나팔 소리로 세상은 조금씩 희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