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이후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다. 교회 토요 모임이 끝난 후 몇몇이 모여 제법 진지하게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었다. 이야기의 수준이 뭐 대단했을리 없었겠지만 사뭇 진지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K가 있었다. 그는 부활신앙에 깊이 빠져 있었고, 당시 또래들과는 다르게 이 세상과 저 세상에 대한 이야기에 열을 올렸었다.

그리고 이튿날인 일요일 늦은 밤에 그의 형이 나와 친구들 집을 찾아 다니면서 그의 행방을 물었었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간 K가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하루가 지난 후, K는 한강 샛강에서 주검으로 떠올랐었다.

오십 수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 때 토요 모임과 K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생각할수록 순수하고 순진했던 시절이기도 했고, 아프고 아리고 쓰린 기억이기도 하다.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의 몸에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 해가 뜨자 그들은 무덤으로 가면서  “그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굴려 내 줄 사람이 있을까요?” 하고 말을 주고 받았다. 가서 보니 그렇게도 커다란 돌이 이미 굴러져 있었다.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 갔더니 웬 젊은이가 흰 옷을 입고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보고 질겁을 하자  젊은이는 그들에게 “겁내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 나셨고 여기에는 계시지 않다. 보라. 여기가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곳이다. 자,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전에 말씀하신 대로 그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 하였다.

여자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무덤 밖으로 나와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너무도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였다. – 마가복음 16장 1-8>

예수 부활에 대한 마가의 기록이다.

마가의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한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들(마가복음 16장 9- 22절) 곧 부활하신 예수의 나타남과 하늘로 올라가는 이야기들은 후대에 사람들이 만들어 첨가한 것이라는 의견에 대체로 공감한다고 한다.

아직 얼굴 모습이 선한 어린 K와 헤어진 지도  반 백년이 넘었고,  그새 나는 고집스런 노인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젠 누구의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어 버린 내 부활신앙이다.

다시 일어나 자신이 일하며 살았던 갈릴리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함께 일어나자고 외쳤던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남긴 마가에게 공감하며.

오늘 여기에서 다시 일어나는 삶, 그것이 부활이후라는 믿음.

공연히 죽음 넘어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일일랑은 접고.

부활주일이었던 어제, 내 뜰은 온통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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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異端)

며칠 전 아들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이 눔이 갑자기 웬 일?’하는 맘으로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웬 일이셔? 엊그제 봤는데…”하는 내 인사에 녀석은 평소와 달리 가래 잔뜩 낀 목소리로 응답했다. “몸이 좀 이상해서… 테스트했더니 파지티브라고…” 그렇게 아들놈은 바이러스 확진 소식을 전했다.

며칠 동안 가보지도 못하고 아침 저녁으로 아들과 며느리 안부를 묻는 전화만 하며 보냈다. 행여? 하는 마음으로 돌아본 우리 내외는 무사하다.

나흘 째. 녀석이 입 맛이 돌아왔단다. 그래 안심이다. 먹는 즐거움을 찾았다니!

며칠 동안 이래저래 복잡한 머리 속 달래려고 꺼내 들었던 책 <성서 밖의 예수>이다.

벌써 이십 수년 전 일이 되었다만, 한 때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펴낸 글들에 푹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 참고 서적 중 하나로 대충 읽어 보았던 <성서 밖의 예수>였다.

종교사회학자인 일레인 페이젤(Elaine Pagels)이 쓴 이 책의 원제는 ‘영지주의 복음서(Gnostic Gospels)’이다.

예수가 죽은 이후 기독교가 형성된 이래 최초의 이단(異端)이 되어 역사의 패배자가 된 영지주의에 대해 개설해 놓은 책이다.

저자 일레인 페이젤(Elaine Pagels)은 만일 영지주의자들의 복음서가 기독교의 경전(이른바 성서)에 정경의 일부가되었다면(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처럼) 오늘날의 기독교보다는 훨씬 나은 종교가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테면 영지주의자들의 찬양했던 하나님이 어머니이자 아버지였던 점, 인간적인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와의 관계, 부활에 대한 상징적인 이해, 무조건적임 믿음에 앞선 하나님과 나와의 지식적 만남 등등… 나름 충분히 이해할 수 그들의 신앙과 주장이 이단으로 치부되어 역사 속에 묻혀버린 것을 아쉬어 하는 지은이가 남긴 말이다.

<내가 영지주의에 열중했던 것은 정통파 기독교에 대항하고 영지주의를 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역사학자의 임무는 어느 편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그렇게 닿은 이단에 대한 내 생각 하나.

무릇 모든 종교의 교단(敎團)이란 그들이 내세운 최초 선각자들의 눈으로 본다면 모두가 이단 아닐런지?

예수, 석가, 무함마드 어쩌면 공자까지도.

아들 녀석 덕에 우연히 꺼내들어 잠시 빠져 들었던 <성서 밖의 예수>. 이십 수 년에 밑줄 그었던 곳엔 별 감흥 없이 새롭게 밑줄을 다시 그으며 읽었다.

내 뜰엔 봄 꽃이 다시 피고 두어 주 전에 파종한 텃밭엔 새 싹이 오르고…

무엇보다 내 아들 녀석 입 맛이 돌아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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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일요일 하루 쉼이 큰 축복으로 여겨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땐 참 좋다. 주중 일터에서 마주하는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속마음에서 감사가 일곤 할 때는 부끄럼이 따라오기도 한다. 내가 살아온 흔적에 비해 누리는 기쁨이 너무 큰 까닭이다.

어제 오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만났던 무지개 뜬 하늘은 그야말로 경외(敬畏)였다.

무지개 – 성서 속 옛사람들의 고백이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나는 너 뿐 아니라 숨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동물을 쓸어 버리지 못하게 하리라. When I send clouds over the earth, and a rainbow appears in the sky, I will remember my promise to you and to all other living creatures. Never again will I let floodwaters destroy all life. – 창세 9:14-15>

노아의 홍수 이후 성서 속 옛사람들이 고백한 신의 음성이다. 기억은 사람이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잊지 않고 간직해 가는 것이라는 신앙고백, 바로 믿음이다. “내 계약을 기억하고…I will remember my promise…”의 주체는 내가 아니고 신이라는 바로 그 믿음.

모든 축복, 감사, 기쁨은 신의 기억을 전제로 한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저 경외다.

무릇 믿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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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딸아이 혼인 덕에 이박 삼일 도시 여행을 즐겼다.

도시의 해는 건물 사이를 비집으며 떠오르고, 달도 건물  뒤로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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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뉴욕은 아름답다. 하늘이 도시를 감싸고 있고 물이 도시를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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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서른 여덟 해 전 일이 되었다. 아내와 내가 부부의 연을 맺을 즈음, 내 선배이자 우리 부부의 선생 그리고 이젠 삶의 동행자이며 길동무 더하여 신앙의 스승인 홍목사님이 던져 주셨던 말씀. “누군가의 말이라네. 결혼이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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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 년 전 아들과 며늘 아이에게 그 말을 전했고,  어제 밤엔 딸아이과 사위에게 우리 부부가 서른 여덟 해 전에 들은 이야기라는 말을 덧붙여 전했다.

모처럼 일상을 벗어났던 이박 삼일. 아들과 며느리와는 가족 사랑을 깊이 새기는 참 뜻깊은 경험을 함께 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딸과 사위, 그들을 위한 내 기도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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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겁으로 쌓인 인연으로 하여 서로 간 노년의 초입에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만난 캘리포니아 사돈 내외와 함께 바라본 허드슨 강의 아름다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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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감사,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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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Thanks to my daughter’s wedding, I enjoyed a city trip of two nights and three days.

The sun in the city rises pushing aside buildings, and the moon hides behind them. Nevertheless, New York City is still beautiful. That’s because the sky enwraps the city and the water curves around it.

Before I knew it, it was something that happened thirty-eight years ago. Around the time when my wife and I were about to tie the knot, Rev. Hong, who was my senior and a teacher of my wife and me at that time, and now a fellow traveler of my life journey and my teacher of faith, spoke the words: “Someone said this. People should marry not just because they love each other, but because they want to love each other.”

Four years ago, I passed it to my son and daughter-in-law. And again, I did so to my daughter and son-in-law last night, adding that it was what my wife and I were told thirty-eight years ago.

Two nights and three days out of my daily repetitive life after a long time! It was very meaningful, as I could think over about family love with my son and daughter-in-law. At the same time, it was a precious time of my prayers for my daughter and son-in-law.

The Hudson River was so beautiful, when I looked at it with my son-in-law’s parents with whom I made a relationship at the beginning of old age through mysterious fate.

Just gratitude, gratitude, gratitude.

 

기도

내 속 좁은 탓이겠지만 세상일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폭이 그리 넓진 않다. 판단의 경우는 더더구나 그러하여 내 경험의 한계 안에 머무르곤 하는 편이다. 내 믿음에 이르면 그 한계의 지경이 더욱 쪼그라든다.

어쩌면 내 믿음 안에서 바라본 오늘의 뉴스 한 조각에 대한 내 판단일 수 있겠다.

지금이야 할 수 있는 한 새롭게 사람들과 연을 맺는 일을 극도로 자제하는 편이다만, 한때는 참 여러 사람들 만나는 일을 즐기던 때도 있었다. 아마 한국에 이명박이 대통령이었던 시절까지는 그러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짧게는 일년에서 길게는 수년 동안 머무르다 돌아간 이런저런 사람들을 많이 알고 지냈던 시절이었다. 연수차 또는 안식년으로 아니면 교환교수라는 이름으로 이 동네에서 머물다간 공무원, 정치인, 언론인, 교수들이 많았다. 이즈음도 뉴스에 오르내리곤 하는 선배나 내 또래부터 한참 어린 후배들 까지 그 무렵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제법 된다.

그 중 여럿의 자녀들이 어떻게 이른바 sky라는 대학에 입학하게 된 사연들도 제법 들어 알고 있다. 특히나 이명박 시대에 교육부장관을 하던 이는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의 교육관, 입시에 대한 생각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편이고, 그와 그의 자제들에 대해서도 익히 그리고 깊이 알고 있는 편이다.

그런 얼굴들을 떠올리며 오늘 본 조국교수 따님에 대한 뉴스를 보며 든 생각이다. 딱히 내가 연을 이었던 이들은 아닐지언정,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이른바 기득권들에 대한 생각인데, 우선 떠오르는 말은 비겁함이다. 정말이지 참 비겁하다.

아니, 비겁함에 더해 잔인하다.

더욱 더 안타까운 일은 한 땐 올곧게 산다던 이들이 변심해 부리는 비겁함과 잔인함이다.

역사 이래 늘 있어 온 사람 군상들 속에서 꿋꿋이 심지 깊게 제 갈 길 걸어 간 사람들도 많았으니…

조국선생과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600801

신생왕(新生王) 장광선선생

어제 장광선 선생님 떠나신 지 두 해를 맞아 그를 기리는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아직도 그의 숨결과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뉴저지 최남단 펜스빌(Pennsville) 선생님 댁에서였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동지들인 선생의 가족들과 그를 따르던 선배, 동료 그리고 그의 뜻을 따르고자 애쓰는 후배 몇몇이 함께 한 자리였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장선생님을 미주 한인들이 이어온 한반도 통일 민주 민중 운동의 커다란 한 축이었던 사람, 또는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한 미국 동북부 한민족 자주 통일 민주 민중 운동의 선구자라고들 한다.

나 역시 그런 그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만, 그를 그렇게만 기억하진 않는다. 나는 그를 참 예수쟁이였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생전에 많은 글들을 썼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까닭도 그의 글 때문이었다. 한 동안 그는 지금은 없어진 한겨레신문 블로그였던 한토마에 그의 생각들을 거침없이 쓰곤 했다. 한토마를 비롯해 여러 지면에 글을 쓰면서 몇 개의 필명을 사용했던 그가 가장 많이 사용했던 필명은 신생왕이었다.

신생왕 바로 새로 태어난 왕이 바로 장광선선생이었다. 내가 그를 참 예수쟁이로 기억하는 까닭은 그가 말한 신생왕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사람, 사람들 바로 너와 나 그리고 그들 모두가 신과 사람 앞에서 왕이 되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이었기 때문이다.

생전에 그는 오늘날 교회 모습에 대해 그야말로 신랄한 언사들을 마구 쏟아 내었다만, 나는 그의 말 속에서 그가 얼마나 예수쟁이로 살려고 애쓰는 지를 느끼곤 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예수를 따른다는 뜻이고, 따른다는 것은 예수와 자신이 동일하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일게다.  예수 시대에 예수가 살았던 것 처럼 장선생은 그가 살았던 시절에 예수처럼 살려고 애썼던 사람이었다.

바로 사람답게 사는 삶을 생전 끝까지 쫓으려 했던 사람이 장광선선생이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해서’ 온 몸으로 그 삶을 추구하며, 이웃을 똑같이 그런 사람들로 바라보려 애썼던 사람이었다.

그의 민중, 민주, 통일 그리고 자주라는 뜻도 사람, 사람 하나 하나가 모두 신생왕이라는 그의 마음가짐과 눈높이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남도 장흥 사람 장광선선생, 그가 품었던 남도에서 백두까지 나아가 미주에서 전 세계까지 사람살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모두가 신생왕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씨앗 뿌리고 떠난 사람.

그를 기리며.

  1. 15. 2021

*** 지난 주에 텃밭에 뿌린 아욱과 근대들이 파랗게 싹을 틔우다. 한국 뉴스 속엔 광복회장 김원웅이 던진 말 돌멩이 맞은 이들이 난리 맞은 모양새다. 김원웅이 큰 물꼬 하나 텃다. 누군가들은 또 그 터진 물꼬 막으려 애쓸 것이고, 때론 예전보다 더 큰 뚝이 생길 수도 있겠다만 한번 터진 물꼬인데….언젠간 큰 물길 생기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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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

장인 때 한 번, 어머니 때 두 번, 아버지 덕에 또 한 번. 네 군데 서로 다른 노인 재활원을 경험한다. 아버지는 운도 참 좋으시다. 네 군데 중 시설이나 분위기나 환자의 느낌과 반응 모두 가장 좋다. 엿새 만에 병원에서 재활원으로 옮기신 아버지의 회복 속도는 놀랄만치 빠르다.

삶에 대한 강한 의욕, 철저한 자신의 몸 관리,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그 속도를 더하는 듯하다.

허나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속은 그저 애틋하다.

늦은 밤, 이즈음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책장을 넘기고 있는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의 ‘역사적 예수 The Historical Jesus’ 속 글귀 하나를 넘기지 못하고 오랜 동안 곱씹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미래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통찰력이 아니라 현존하는 그 나라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예수에게 있어 오늘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는 이들의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나라라는 크로산(Crossan)의 사족(蛇足)은 오늘 밤 내게 절대적으로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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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늘 델라웨어 주지사는 질병관리통제센터(The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의 새로운 지침에 따라 다음 주 금요일인 5월 21일부터 야외는 물론 대부분의 실내 모임에 이르기까지 백신 접종을 완전히 끝낸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고 생활할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거리두기 역시 제한을 두지 않고, 식당, 상점 교회 등 실내모임의 제한 인원 규제 등도  해제한다고 덧붙였다.

만 일년 이 개월 동안 이어져 온 주민들의 생활양태가 완전히 바뀌어 옛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신문이 전하는 주민들의 반응은 여러 갈래다. 환호하는 축이 있는가 하면, 아직은 이른 처사이어서 당분간 마스크를 계속 쓰고 다니겠다는 이들도 많단다.

이대로 팬데믹 이전의 생활을 누리게 될런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하지는 못할게다.  다만 늘 그래왔듯 사람들은 바뀐 생활양식에 쉽게 적응해 나가리라.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이 쓴  ‘예수 – 사회적 혁명가의 전기(Jesus: A Revolutionary Biography)’를 읽다가 생활양식이라는 말에 꽂혀 몇 번이나 곱씹어 본 문장 하나.

<그것(하나님의 나라)은 미래를 향한 삶의 희망이라기 보다는 현재를 위한 생활양식이다. It(Kingdom of God) is a style of life for now rather than a hope of life for the future.>

온전히 제 뜻으로 만들어 나가는 생활양식을 통해 오늘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다는 말.

저녁나절 새소리 들으며 마음 다스리는 짧은 시간을 누리는 이즈음의 축복이 그저 감사하고 때론 미안하다.

오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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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信心)

나는 예수쟁이라는 자부(自負)가 누구 못지 않게 강하다만 성실한 교인은 아니다. 아니 성실은 커녕 신실한 교인들 잣대로 말하자면 교인이 아닌 편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수를 고백하고, 내 일상적 삶의 물음들을 성서에게 묻기를 즐기는 편이고, 그런 흉내를 내며 이 나이까지 삶을 이어온 것에 늘 감사하는 편이다.

내가 고백하는 하나님과 예수는 ‘들어 주시는 신(神)’이다. 사람의 소리 보다는 사람들의 소리를 즐겨 들어 주시는 신이다. 특별히 한(恨)을 이고 안고 오늘을 견디고 이겨내며 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 주는 신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서 속 예수의 모습은, 지금 여기를 아프거나 소외 되거나 궁핍하거나  나아가 죽음 앞에선 이들에게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는 예수이다.

예수는 그의 명령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아프고 소외되고 궁핍하고 죽음 앞에 놓인 상황들을 해결해 주진 않았다. 다만 그의 명령은 그 한을 품고 살아야만 하는 그 상황 속의 일상 속으로 돌아가 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예수의 모습에 매료되어 살아 왔고, 이젠 내 버릴 수 없는 그에 대한 믿음이 되었다.

거기 누구나의 삶이라도 뜻이 새겨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세월호 가족들의 오늘의 삶에 관심을 놓지 못하는 까닭이다.

성서 신명기 이야기 속에 나오는 7년이라는 큰 뜻은 탕감과 면제에 있다. 비단 경제적 빚의 탕감과 면제만을 뜻하지 않는다.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이들 속에 경제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 짐들과 맺힌 한들이 있다면 모두 다 털어버리는 공동체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나는 새긴다. 이즈음은 이 7년 이라는 뜻이 버젓한 직장과 먹고 살 만한, 종교적 사회적으로 누리고 사는 사람들의 사치로 전락해 버린 안식년이 되었다만.

그렇게 세월호의 아픔을 안고 산지 일곱 해를 맞는다.

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듣는 일, 아주 작은 몸짓으로 부끄러운 손길 내밀다 마는 일에 불과하다만, 올해도 그저 듣고 손길 내미는 흉내라도 이어가려 한다.

내 신심(信心)으로.


필라세사모 2021년 신년 모임 안내

일시 : 2월 6일 토요일 오후 7시 ~10시 (미동부시)

장소 : 온라인 ZOOM  미팅

참가대상 : 필라 세사모 활동에 관심있는 모든 분들

<진행 순서>

1부 : 2021년 세월호 진상규명 현재 상황

1) 개회 및 모임 안내
2) 유경근 집행위원장님과의 줌미팅
2부: 필라 세사모 현황 및 활동 계획 (내부 토론 시간)

1) 2020년 세사모 활동 정리
2) 2021년 세월호 7주기를 앞둔 현황과 과제
3) 세월호 활동의 외연 및 참여 확대방안

– 필라 세사모

Zoom Meeting 접속방법 (Link or D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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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내가 우리 동네신문이라고 일컫는 The News Journal지의 시초는 1866년이니 그 역사가 제법 오래 되었다. 긴 세월 신문의 이름과 소유주는 여러 번 바뀌며 오늘에 이르렀다. 가장 오래 이 신문을 소유했던 것은 델라웨어주의 거부였던 듀퐁(Du Pont)가문이었다. 1919년 부터 현재의 이름인 The News Journal을 쓰기 시작했으며, 듀퐁 가문이 이 신문에서 손을 뗀 것은 1978년이었다. 그 후 1989년에 델라웨어 주내 경쟁사 두 곳을 병합시켜 오늘에 이른 The News Journal 은 명실공히 델라웨어 주를 커버하는 유일한 신문이다.

이 우리 동네 신문에 지난 몇 달 동안 헤드라인 기사로 가장 많이 다룬 기사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죠 바이든 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죠 바이든, 그리고 사건사고 기사는 아침 눈뜨면 만나게 되는 뉴스거리들이었다.

며칠 전 재미있게 읽은 기사로, 엊그제 워싱톤으로 떠난 바이든과 그의 일행들이 몇 달 동안 이 곳에 머무르면서 그들이 지역 상점들을 이용한 내역들을 공개한 것이 있었다. 듀퐁 호텔을 비롯해 아침 전문 식당, 카페, 주점 등등 어느 가게에서 얼마의 돈을 사용했는지 이른바 바이든 호황을 누린 가게들을 다룬 기사였다.

이 시간 현재 이 신문의 헤드를 장식하고 있는 기사 역시 바이든의 가족 이야기다.

어제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도를 했던 이 곳의 목사 이야기와 백악관으로 향하는 대열의 선두에 섰던 바이든의 모교 델라웨어 대학 밴드부 소식도 뉴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델라웨어 대학 밴드부 제복을 비롯해 이 대학 세탁물들은 내 주 수입원 가운데 하나인데, 지난 일년 여 학생들 활동이 없다 보니 세탁할 일이 없어졌다. 밴드부 소식에 하루 입었으니 세탁해야겠다는 연락이 오지 않을까?하는 헛 꿈도 꾸어 본다.

우리 동네 신문은 바이든에게 특별 주문까지 하여 ‘델라웨어 주민들에게 전하는 대통령의 편지’를 게제하기도 했다. 이 편지에서 바이든은  ‘델라웨어야말로 미국인들이 이루어 내야 할 모범’이라고 추켜 세우며, “내가 죽을 때, 더블린은 내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라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명언을 인용하며 델라웨어에 대한 감사와 고향을 잊지 않겠노라는 말을 보탰다.

어제 대통령 취임식을 보면서 내 눈을 끈 것은 바이든이 선서할 때 사용한 두꺼운 성경과 아만다 고든(Amanda Gorman)의 시 낭송이었다. 그녀의 시 ‘우리가 오르는 언덕(The Hill We Climb)’과 그녀의 몸짓은 어제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오늘 우리 동네 신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어제 취임식에서 사용된  5인치 두께의 성서는 1893년 이래 오늘까지 바이든 집안이 간직해온 가보란다. 1973년 그가 첫 번 째 상원의원이 되어 선서할 때와 부통령이 되었을 때, 그리고 죽은 그의 장남(Beau Biden)이 2013년 주 법무장관에 취임할 때 이 성서를 사용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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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 이즈음 내가 성서를 통해 새롭게 곱씹어 보는 말이 하나 있다.  ‘성서란 오늘을 견디어 내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견디어 내며 살’되 ‘내일을 위한 싸움’에 한 치도 물러섬 없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게 바로 성서라는 생각 말이다.

바라기는 가보(家寶)나 선서(宣誓)용 성서가 아닌 ‘오늘을 견디어 내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서의 성서가 바이든의 임기에 함께 하기를 빌며.

*** 이즈음 한국 뉴스 속 세월호 가족들 소식을 들을 때면 ‘오늘을 견디어 내는’ 성서 속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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