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를 위한 아버지들의 기도

세탁소 – 1

돌이켜볼수록, 내 삶은 우연 위에 서 있었다.

아내가 차 씨 아저씨라고 부르는 차 선생은 장인어른의 오랜 후배이자 벗이었다. 장인은 열여덟 나이에 카투사(KATUSA)라고 부르는 미군 배속 한국군 제1기로 인천상륙작전 전투를 치른 참전용사다. 전쟁 후 평생 미군부대와 특히 공항 소방대에서 일을 하셨다. 차 씨 아저씨는 미군부대 하우스보이였다. 그렇게 만나 전쟁 후부터 1960대 월남 공항 소방대에 이르기까지 함께 일을 했다. 그 후 차 씨 아저씨는 미국으로 건너와 중국계 미국인과 결혼해 볼티모어에서 세탁소를 하며 두 남매를 키우고 있었다. 장인은 그즈음 사우디 아라비아 공항 소방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장인이 휴가차 장모와 함께 우리 사는 데를 방문하여 차 씨 아저씨 내외와 저녁을 함께 한 자리에서였다.

“미스터 김, 뭘 고민해! 그냥 세탁소 해. 애들 둘 잘 키울 수 있어요. 그냥 먹고사는데 아무 지장 없으니 세탁소 하나 차리라고…”

암만 생각해 보아도 터무니없이 무모했던 일이었다. 깊은 생각 없이 그냥 세탁소를 하나 차렸다. 그때까지 나는 미국에서 세탁소를 들어가 본 일이 없었다. 내 삶이 매사 그랬던 것은 아닌 듯한데, 그땐 왜 그리 서둘렀는지 모르겠다. 정말 막무가내로 벌린 일이었다. 대학 근처에 있는 가장 큰 쇼핑센터 빈자리를 얻어, 잠시 막일했던 경험을 살려 뚜닥뚜닥 카운터 구색을 갖추고, 철물점에서 파이프 뚝뚝 끊어다가 옷걸이를 이어 만들고 세탁소 간판을 걸었다.

드롭 스토어라고 손님들의 옷을 받아다가 세탁 공장으로 보내 세탁과 다림질 공정을 다 마친 후 손님에게 내어주는 이를테면 중간상이었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문제가 생겼다. 작은 동네 빤히 아는 한인들끼리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있었다. 오픈한 내 가게 주변에 있는 이가 내 세탁을 처리해 주겠다고 했던 세탁공장을 하는 이에게 만류를 했었던가 보았다. 잠시 참 난감했었다.

그때 나타났던 이가 내 친구 ‘뵤’다. 수대에 걸쳐 델라웨어주 뉴왁(Newark) 토박이인 뵤는 나와 동갑으로 미군으로 한국에 근무했던 이다. 그의 아내 미시즈 민은 한국에서 근무할 때 그를 만났다. 미시즈 민은 그를 ‘뵤’라고 불렀는데 그의 이름은 Bill이였다. ‘뵤’ 내외는 정말 작은 규모의 세탁소를 하고 있었는데 내외는 내 부탁을 정말 흔쾌히 들어주어 정해진 날짜에 ‘K&L Cleaners’ 영업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K&L’이냐고? 그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이다. 세상사 우연처럼 큰 뜻 없다고. 그냥 내 성씨 김과 아내 성씨 이의 조합일 뿐이라고. 미시즈 민은 세상 뜬 지 오래되었고, ‘뵤’는 가을이면 미시즈 민과 함께 심은 감나무에서 딴 감 한 바구니를 들고와 늘 같은 소리를 한다. ‘어쩜 우리 손녀가 민을 닮았는지…’

그렇게 세탁소 문을 열던 날, 아버지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던 말이다.

“얘야! 동네 이름이 Newark이구나. 이제부터 여기가 너의 새 방주(方舟 New Ark)다. 평안한 마음으로 네 일을 즐기며 살아라.”

재봉틀에 앉아 첫 바느질 일감을 받아 바느질을 하는 아내에게 걱정스러운 말투로 건넸던 말이었다. ‘혹시 이거 손님이 찾아가자마자 뜯어져서 다시 가지고 오는 거 아닐까?’ 아내의 대답이었다.

‘나 학교 때 가사 시간에 칭찬받은 사람이야! 나 한국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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