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이르면 후회는 없다

헛바람 – 4

어머니는 적확했다.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내게 던지곤 하셨던 말. ‘이눔아~ 아눔아~’는 과유불급(過猶不及)함을 타이르시는 말씀이었다. 그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작은 그럴듯했었다. 델라웨어 한인들이 자주 찾는 필라델피아 전문인들의 델라웨어 지점 사무실도 한 곳으로 모은 후에 열린 개업식은 제법 많은 이들이 찾아와 성황을 이루었다. <유민이 아닌 이민이 되자>는 슬로건으로 워싱톤, 볼티모어. 델라웨어, 필라델피아, 뉴욕에 뿌려댄 <이스트저널>도 제법 좋은 반향을 일으켰다. 델라웨어주 유일 일간지인 <The News Journal>은 그 몇 년간에 걸쳐 다섯 차례나 한국, 한인이민사회 그리고 우리 가족사와 <이스트저널>에 대한 기사들을 1-2면에 걸쳐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내 생각과 거꾸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똑같은 서비스임에도 멀리 대도시를 찾아가는 연유를 미처 생각 못했음은 물론이고, 주내 한인수는 늘어나기는커녕 한인들에 대한 무비자 시대를 앞두고 급기야 줄기 시작했으며, 급격한 변화를 가져다준 온라인 시장으로 인해 종이신문의 사양은 빠르게 다가왔다.

구호는 사람 뜻대로 오래가지 않았다. 그보다 더 빠르게 다가온 것은 내 헛꿈이 깨진 일이고, 워싱톤부터 뉴욕까지 좁다고 돌아다니던 내 헛바람이 부끄러움이 되어 내게 돌아온 일이었다. 그 부끄러움의 나락은 처참하였다. 세탁소를 벗어나고파 일었던 헛바람에 춤추고 산 지 약 8년 만에 내 삶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후회는 없다’라면 그건 새빨간 거짓이다. 다만 ‘후회를 품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그건 얼추 사실이다. 내 모자람을 되씹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여기까지 걸어올 힘을 주신 신(神)께 감사를 드리는 일은 끊이지 않으려 노력을 하며, 후회를 품고 살지는 않는다. 이건 나 스스로에게 이르는 참말이다.

헛바람에 떠돌던 그 시절에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말마따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정말 큰 부자와 거리의 부랑자, 제법 유명한 사람과 죽지 못해 사는 사람, 신부, 목사, 스님, 무당 등등 지나고 보니 다들 내 선생이었던 사람들이다.

그 시절에 내가 했던 일을 생각하면 후회가 쌓이는 일이고, 만났던 사람들로 하여 내가 깨친 일로 그 시간들을 곱씹다 보면 감사가 춤춘다. 특별히 그냥 얼굴과 이름만 떠올려도 감사가 절로 이는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는 이들에 이르면 아내와 가족들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후회는 없다’.

사람들 이야기를 하기 전에 무엇보다 앞세워야만 하는 일은 미안함을 전하는 일이다.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은 일단 덮고 지나가려 한다만, 아들에 대한 미안함은 한 줄 전해야만 한다. 내가 떠돌던 그 기간에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군에 입대하여 4년을 보냈다. 그 원인과 결과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아이에게 아리게 미안하다. 그 떠돌던 시간을 나와 함께 했던 제법 많은 이들에게 보내야 하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늘 안고 산다. 더러는 단지 뜻이 맞아 함께 했던 이들과, 직장으로써 내 일을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 품고 사는 큰 미안함이다. 그렇게 허망하게 접은 내 꿈으로 하여, 누구에게나 귀한 그 삶의 시간들을 결실 없이 흘려보낸 것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산다.

이즈음에도 종종 지나가다 내 세탁소에 들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대여섯 살 위이신 오랜 지인이 한 분 계시다. 그분이 오실 때마다 지금도 잊지 않고 주시는 덕담 한마디다. “뭐니 뭐니 해도 그래도 당신이 우리 동네 일할 때가 제일 살기 재밌던 때였어!”

이 덕담을 미안함 마음 품고 사는 이들에게 드리며. 그 시절 만났던 사람 이야기 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