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 4

내가 황구(黃狗)라는 별칭을 건네어준 벗이 있었다. 우리 어렸을 때 흔했던 강아지 이름 누렁이다. 그는 사내 중에 사내였다. 투박하게 간단한 말 툭 던지고 한 걸음에 직진하는 그런 사내로 알았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두 살 위였던 그와 나는 스물 초중반의 나이였고, 신문로 새문안 다방에서였다. 나는 휴가를 나온 졸병이었고, 그는 내일모레면 곧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청년이었다. 이민을 간 내 누나와 함께 일하는 후배하고 결혼한 그가 이제 아내를 만나 이민생활을 시작하려는 길이었다. 어머니의 부탁이었는지 누나의 부탁이었는지 아님 누나의 후배 부탁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무언가를 전하고 받으려고 그를 만났었다. 황 씨였던 그에 대한 내 첫인상은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사람이었다. 같은 시대를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세상 모두가 그의 손아귀에 놓인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십 수년이 지나 다시 만난 곳은 델라웨어였다. 그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진짜 그는 이미 다 가진 듯했다. 그 씩씩함이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민 후에 비록 한 교회를 다녔지만 그저 멀찍이 그런 느낌으로만 인사를 하며 지냈다. 나는 세탁소를 시작한 지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민 초기라고 생각할 때였고, 그는 이른 결혼으로 아이들도 컸고 삶도 안정적인 기반에 놓인, 우리들의 첫 만남이 있었을 때의 그의 꿈을 이룬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마 2000년이 다다른 그 어간이었을 것이다. 세탁소 문을 막 연 이른 아침이었다. 그가 내 세탁소에 들어서며 편지 한 통을 건네며 하던 말이었다. “김형, 내가 오늘 어디 좀 갔다가 오려는데… 김형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알잖수… 나 말 짧은 거… 그냥 내 이야기 몇 자 적어봤수.”
나이 오십을 코 앞에 두고 앞 머리가 휑해진 그의 편지를 뜯어본 것은 그가 떠난 직후였다. 제법 긴 편지글이었다. 그의 이민 이후에 대한 삶의 기록이었는데 그 시간에 비해서는 글은 정말 짧았지만 그의 생각은 다 담긴 글이었다. 그 편지 글의 시작이었다. “김형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 어쩌면 나는 워싱톤 거리를 달리고 있을 겁니다…”
그랬다, 그는 마라톤 첫 완주에 도전하러 가는 길이었다. 편지는 왜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왜 꼭 완주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자신의 지난날들과 현실 그리고 꿈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날 그는 완주를 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보스턴 등 네 번의 마라톤 대회 완주를 이어갔다. 나는 답장을 썼었다. 내 편지의 제목이었다 “달려라 황구!”
그가 내게 건넸던 편지에 담긴 이야기의 깊은 속 이야기는 외로움이었다. 이민생활의 외로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차사고로 아들을 잃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하늘나라로 향해 달려간 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다.
내 속에 헛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도 그가 달리기를 시작했던 그 무렵의 일이었다. 내 안에서는 무엇인가가 막 달리기 시작했을 무렵에 그의 달리기는 멈추었었다.
새로운 천년이 곧 시작된다고 세상이 시끄러울 때였다. 세탁소에 대한 정부 규제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세탁할 때 쓰던 솔벤트용제가 환경과 인체를 해하는 오염제라는 판단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각종 규제 법안들이 새로 생기고 그 법규를 준수해야 할 여러 규칙들이 생겨났다. 그 무렵 동네에는 약 60여 명의 한인 세탁인들이 있었다. 이런 규제들이 마구 밀려올 때 처음으로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그렇게 모인 의견들이 자구책으로 세탁협회를 만들자는 것이었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첫 깃발을 들게 된 것이 나였다. 그 역시 우연이었다. 이민 후 내 헛바람의 시작이었고, 알지 못했던 숱한 외로움들을 만나게 된 첫걸음이었다. 모두 아내와 어머니의 핀잔을 부른 시작이었지만, 훗날 여행의 동무가 된 벗을 만나게 된 내게는 축복의 시간이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그때도 혀를 차셨었다. ‘이 눔이 또 도졌구나… 그예 못 버리는구나… 그 눔에 먼 산 바라보기를… 쯔쯔쯔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