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자 – 잊지 않기 위해

‘록키의 길’ 걸으며 ‘세월호를 기억합니다’

-필라 세사모 주최 ‘세월호 추모 걷기 대회’ -11월 9일 필라 페어마운트 공원

143-uC138uC6D4uD638uCD94uBAA8 uAC77uAE30uB300uD68C (1)

잊혀지기를 바라며 갖은 노력을 하는 박근혜 정부의 노력과는 달리 해외 동포들의 세월호 기억하기는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매주 세월호를 기억하고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일인시위가 벌어지는가하면 런던, 뉴욕 맨해튼, 조지아 아틀란타 등지에서 세월호 참사를 알리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자유와 독립의 도시 필라델피아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걷기대회가 개최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 사람들의 모임’(이하 필라세사모)은 오는 11월 9일(일) 오후 2시 필라델피아 페어마운트 공원에 위치한 켈리드라이브에서 ‘세월호 침몰 참사 희생자 추모 걷기대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필라세사모는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한지 6개월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주변은 세월호 진상규명의 외침조차 식상해하며 잊고 싶은 과거사가 되어가고 있다”며 “침몰 당시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어선 안 되며 ‘잊지말자’는 전 국민적 결의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경기불황의 원인조차 세월호로 돌리는 몰지각하고 비이성적인 상황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현 상황을 통렬하게 비판한 뒤 “이런 몰상식의 흐름을 차단하고 무모하게 희생된 넋들을 추모하는 추모걷기대회를 준비한다”고 추모행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세사모 관계자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는 분, 함께 용기를 내고 싶은 분들의 동참을 호소한다”며 “무고히 희생된 어린학생들의 진혼과 아직도 구조되지 못한 분들의 귀환과 진상규명을 위해 아직도 거리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드리며 우리 조국이 더 안전하고 사람을 중심에 두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는 많은 동포들의 참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해외에서의 추모행사를 주도해온 미시 유에스에이 및 세사모를 종북으로 몰아가려는 시도가 가속화되고 한국의 극우단체들이 미시 유에스에이 관계자들을 고발하는 등 미주 동포들에 대한 탄압이 더해지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행사여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해외동포들의 세월호 진상규명과 추모 의지가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결연해지고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큰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걷기대회가 열리는 장소는 페어마운트 파크 Lloyd Hall 1 Boathouse Row이며 소요시간은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가 걸릴 예정이다.

특히 걷기대회가 열리는 페어마운트 공원 내 켈리드라이브는 강을 끼고 열린 길로 미국 내 10대 아름다운 조깅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며 영화 록키에서 록키가 아침에 로드워크를 하던 장면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또한 주변에 미국 4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필라델피아 아트뮤지엄과 로뎅의 진품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는 로뎅 박물관 등이 위치해 있어 매주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으로 이번 추모 걷기대회가 많은 홍보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모걷기대회 관계자는 “가족들끼리 모처럼 나들이를 나오기에도 좋은 곳”이라며 “ 추모걷기대회에도 참석하고 가족들끼리 박물관 구경이나 나들이를 하는 것도 좋은 기회”라며 많은 참석을 당부하기도 했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전화 484-557-0531, 215-430-3128으로 연락하거나 또는 이메일 philasewol@gmail.com으로 문의하면 된다.

–       이상 <뉴스프로> 기사에서

*** 잊지 않는다는 몸짓으로 걷기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가을과 부끄러움

화창한 시월 일요일 오후입니다. 동네 한바퀴를 돌았습니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입니다.

DSC01788

 

맑은 하늘을 담은 동네 어귀 개울물도 참 맑습니다.

DSC01790

한 시간 남짓, 이른 가을 오후를 만끽하며 그렇게 걸었습니다.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흐를즈음 다시 들어서는 집뜰에는 가을 햇살이 가득했습니다.

DSC01792

그렇게 걸으며 제 머리속에 오간 몇 가지 생각들입니다.

오늘 오전에는 모처럼 교회 예배에 참석했었답니다. 오늘 주일 설교 본문이었던 성경 말씀이 머리 속을 오락가락했답니다.

“예수께서 뭍에 내리시니, 그 동네에 사는 귀신 들린 어떤 사람 하나가 예수를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았으며, 집에 머물러 있지 않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누가복음 8: 27)

“그래서 사람들이 일어난 그 일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께로 와서, 귀신들이 나가 버린 그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 두려워하였다.”(누가복음 8: 35)

마태와 마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 군대귀신 들린 자를 예수가 치유하는 기적 이야기입니다.

이 성서 본문을 들어 “옷을 입지 않았”던 귀신 들린 상태에서 “옷을 입”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온 모습을 대비하며 “성령의 새 옷을 입은” 신앙인의 모습을 일깨우는 설교 말씀이 이어졌었습니다.

걷는 동안 구름 한점없는 맑은 하늘아래 가려야하는 모습들을 생각해 보았답니다.

옷은 패션의 상징이기 이전에 부끄러움을 가리는 상징입니다. 가린다는 말은 숨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릴 줄 안다는 것은 깨달음의 시작입니다.

걸음과 함께 제 머리속에는 부끄러움이 드러날수록 오히려 목청이 커지고, 부리는 권세의 칼날을 더욱 번득이는 이즈음 세태들이 이어졌습니다.

모세와 예수와 모하메드. 그 모두의 시작은 “신앞에서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사람”의 모습에서였습니다.

오늘 이 순간 저 푸른 하늘 아래서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이름으로 “남의 부끄러움”만을 탓하는 세상은 모두 가짜입니다.

무릇 모든 참된 신앙의 바탕은 부끄러움을 아는 일이고, 가릴 줄 아는 일입니다.

잊지 않는 법

sewol-philly

봄철에 일어났던 세월호 집단 생수장사건으로 죽은 이들의 유가족들이 아직도 길거리에서 하루해를 맞고있다고 합니다. 낙엽지는 이 가을에 말입니다.

이제는 세월호의 ‘세’자만 나와도 지겹다는 사람들이 있다기도 하고, ‘가만히 있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는 유가족들 때문에 나라살림이 절단날 것 같다고 목청 높이는 이들도 있답니다.

시체장사라는 말에서부터 매국노, 종북 좌빨까지 유가족들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언사들도 날로 거칠어지기만 합니다.

유가족들과 유가족들을 대하는 권력과의 힘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만큼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유가족들을 포함하여 그들과 뜻을 같이하려는 사람들의 총체적인 힘의 합보다 수천, 수만 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쪽은 이른바 국가의 공권력과 언론 권력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른바 여론 쪽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마치 힘의 균형이 팽팽한 것처럼 거짓 정황들을 만들어 놓고는 차마 사람의 탈을 쓰고는 뱉어내서 안될 언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마치 세월호에 대한 기억의 싹수를 도려내고야 말듯한 기세입니다.

이럴 때, 약한 자들이 힘을 잃지 않고 뜻을 지켜내는 방안은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는” 일입니다. 바로 잊지 않는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연대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서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말입니다.

주일아침, 두편의 시(詩)

뜰에 가을이 밀려든 주일아침입니다.

이 아침도 제 삶이나 세상 소식들은 그저 일상의 연속입니다. 딱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아침에 느끼는 허전함 말입니다.

그렇게 손에 든 옛 시집을 넘기다가 눈에 꽂힌 시 두편입니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제 믿음을 확인하며, 일상에 대한 감사를 되찾습니다.

팽목항

풀잎이 하나님에게

–       허형만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우리의 이파리를 꺾이지 않게 하시며

당신의 이름을 위해 우리를 지키소서

야훼, 우리 하나님

태풍이 몰아쳐도 뿌리 뽑히지 않게 하시고

들불이 번져 와도 타지 않게 하소서

비록 어둠 속에서도 두 눈 크게 뜨게 하시며

나팔을 높이 불어 쓰러진 동족을 일으키소서

우리의 햇살을 전과 같이 함께하게 하시고

우리의 새들도 처음처럼 돌려보내주소서

짓밟는 자에게 생명의 귀함을 일깨워주시고

낫질하는 자의 낫은 녹슬게 하소서

야훼, 우리 하나님

우리의 땅은 더욱 기름지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은 버러지로부터 보호해주시고

우리의 뿌리는 더욱 깊이 뻗게 하시며

우리의 하늘은 더욱 푸르르게 하소서.

 

 

–       이탄

돌멩이처럼 굴러 있는 그런 것들의

틈에서 사는 평범한 하루

아침이 왔다 가고 저녁이 왔다 가고

더러는 왔다 갔는지 모르게 가고

아직 한번도

내가 부른 아침, 내가 부른 저녁은 없었지만, 이제 아침이나 저녁은 가족 같은 걸.

 

연기가 새어나오는 틈으로 새어나가듯

틈에서 사는 하루

그래도 보이는 하늘은 넓다.

늘 푸르다.

 

돌멩이처럼 사라져 간들

깨끗한 귀 깨끗한 눈으로

틈을 메우며 살려는 재미.

세월호 유가족들, 목사 김홍도 그리고 구원

제가 사는 곳은 한국인들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라 마음만 먹으면 일년 내내 가족이외의 한국인들과는 말섞지 않고도 살 수 있답니다. 그런데  어디 사는게 두부모 자르듯 할 수 있나요. 그래 주일이면 교회도 다니게 되고, 이런 저런 한인들 모임에도 참석하게 되면서 한국인들과 섞여 사는 것이지요.

그렇다하더라도  많아야 한달에 한 두번 정도이지 그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답니다.

어쩌다 이웃한 대도시인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국마켓에 나가게 되는 일이 있답니다. 이즈음은 동네 마켓(미국인들을 위한)에만 가도 제 입맛에 맛는 찬거리들이 널려 있는지라 굳이 한국마켓을 찾을 일도 그리 많지 않답니다.

아무튼 한국마켓 앞에 가면 만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일요일 오후에 장을 보러 나선 길이면 거의 만나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른바 “거리 선교(전도)단”입니다. 그들이 호객행위하듯 묻는 물음이지요. “예수 믿으세요?”, “교회 나가세요?”, “구원 받으셨나요?” 등등 말입니다.

자! 이쯤에서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합니다.

기독교(개신교이든 천주교이든)에서 ‘구원’은 신앙 곧 믿음에 있어서 가장 핵심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곧 사람을 ‘죄인’으로  간주하고(여기고, 판단하고, 또는 믿고) 시작하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창조 이래 오늘날까지 이 땅에서 살아 숨쉬는 경험을 한 모든 이들은 죄인이라는 전제아래 믿음이 시작되는 종교라는 말씀입니다. 단  한사람만을 빼고 말입니다. 바로 예수지요.

죄인이므로 그에 대응하는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믿으면 ‘구원’을 받고 형벌을 면할 수 있다는  전제로 믿음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구원’을 받는 대상은 지구상에 모든 인간들입니다. 예로부터 세상 끝날까지 잠시 숨쉬고 살다가는 모든 인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형벌을 면하게 해주고 ‘구원’을 주는 “구원자”는 오직 한 분 야훼(여호와)라고 부르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해가 생긴 이래 해가 없어지는 순간까지 숨 붙어 있던 모든 목숨 가운데 단 한 사람 예수는 야훼와 동급인 구원자입니다.

자!  이제 “단 하나”로 묶인 “둘”입니다. ‘야훼’와 ‘예수’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세상 모든 사람 그 누구도 이 야훼와 예수를 실제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서 ‘성령’이 등장합니다.

‘성령’으로 인해 ‘야훼’와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른바 “삼위일체”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령’은 만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입니다. 바로 믿음의 시작이자 종교의 시작입니다.

저는 이 교리를 믿는 신앙인이자 예수쟁이라고 스스로 고백하며 살아왔고, 그 믿음으로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이쯤, 아주 중요한 고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단 하나의 신 ‘야훼’, 단 사람 예외인 ‘예수’, 그들과 나를 연결해 주는 단 하나의 고리 ‘성령’ – 사람이 끼어 들데가 없는 이름들입니다. 여기 그 누구라도 사람 이름이 끼여든다면 그것은 이미 사기이고, 삼위일체인 신과 예수와 성령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자! 이쯤 정리를 하고 넘어 가야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리고 싶습니다. 믿으면 됩니다. 신을 믿으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때, 구원의 주체는 신입니다. 인간은 그저 그에게 맡기면 됩니다. 죽음 이후의 문제입니다. 그럼 이제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어디 여기서 끝나나요?

오래 살고 싶다.  더 갖고 살고 싶다. 남보다는 더 멋지고 낫게 살고 싶다. 걱정없이 살고 싶다. 남들 위에서 살고 싶다. – 등등의 욕망들이 살아있기에 꿈틀거리기 마련이지요.

이 지점에서 ‘구원’과 ‘믿음’은 엉뚱한 곳으로 빠져들어 사기꾼들을 양산하게 되고, 제 스스로 그 사기에 빠져 삶과 죽음의 모습까지 망치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의 영역, 곧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는 곳에 대해 사람이 말하고 한정짓는 모든 일은 모두 “사기(詐欺)”입니다. 그것은 다만 신의 영역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 신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모든 파괴, 살인, 살상, 전쟁을 비롯하여 개인적 부귀영화와 죽음 이후의 천당을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사기입니다.

다만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이 사는 이 현실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들, 곧 손에 잡을 수도 있고, 실현시킬 수도 있는 길이 있습니다.

저는 이게 바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구원’은 ‘말’이 아니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구원은 ‘사람의 말’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한국 마켓 앞에서 전단지를 나누어 주며 “믿으면 구원 받아요!”하는 그런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일요일 아침이면 숱한 목사들이 뱉어내는 그런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바로 오늘 나와 당신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고서야 믿음입니다. 사람들의 영역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이것을 깔아 뭉개는 그 어떤 신앙과 종교행위는 모두 사기입니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케 하셨다.”  – 누가복음 4 : 18

오늘 뉴스를 훑어 보가다 머리 속을 스처지나간 생각들입니다.

자신이 전혀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상황이 닥쳐오고, 분명 그 상황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외치려는 목소리를 누르고 억압하고, 끝내 한을 안고 주저않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이 때 그들에게 “구원”이라는 소리는 어떻게 다가갈까?

그 ‘구원’의 소리가 오늘 여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고발, 항거, 개혁, 투쟁으로 나아간다면 믿음이요, 그 누군가인 사람에게 의지하여 자기만족에 족한다하면 사기당하는 일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땅에 널린 김홍도목사 아류들과 세월호 유가족들 그리고 구원을 생각하며.

blog

나라가 아닌 그들

자신들은  나라라고 하지만  나라 대접 못받는 두 곳. 그나마 Isis 보다는 DPRK가 낫다할까?

영국 수상  Cameron의 정치적  언사에 다 동의하지는 못하더라도 “They are not Muslims, they are monsters.”라는 소리는 옳을 듯.

무릇 모든 근본주의, 교조주의는 이미 종교가 아니므로.

그걸 닮지 못해 안달난 내가 속해 있는 그들 역시.

40 그리고 믿음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40일 동안 낮과 밤을 연속해 비를 내렸다. – 노아의 홍수

하나님은 히브리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신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랑케 했다. – 출애굽 이야기

모세는 야훼 하나님에게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 동안 시내산에서 지냈다.  – 십계명 이야기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 위해 천사가 주는 음식(아마도 물과 소금이었을 듯)만 먹고 40일을 보냈다. – 엘리야 이야기

에스겔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받을 벌을 상징하는 뜻으로 40일 동안 옆으로 누워 지냈다. – 에스겔 이야기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 하였다. – 예수 이야기

예수는 부활 후 40일 만에 하늘로 올라가셨다. – 예수 승천 이야기

그리고 오늘날 개신교와 천주교를 막론하고  일년 교회력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순절(四旬節) – 바로 40일입니다.

유대교, 유대인들의 전통과 오늘날 천주교와 개신교에 이르기까지 40이라는 숫자는 매우 그 뜻이 깊습니다.

성서를 중심으로한 사고 체게에 있어 상징적인 숫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를테면 유일신의 1이라는 숫자, 삼위 일체의 3이라는 숫자, 십계명의 10, 이스라엘 부족과 신약의 예수 제자들의 숫자인 12,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숫자 40, 하나 더 첨부하자면 예수의 나이 33  등등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숫자들의 개념을 오늘날 우리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개념과 똑같이 이해하는 것은 바로 “믿음”의 영역입니다.

일테면 40일 동안 누가 무엇을 했고, 40년 동안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하는 이야기들에서 실제로 오늘날 우리들이  지내는 시간과 동일한 기간을 뜻한다고 믿는 것, 바로 믿음입니다.

뭐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믿음이기에 말입니다. 그래 “믿음”이란 소중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상징입니다. 숫자가 어떤 상징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징을 엉뚱하게 해석하다 보면 이른바 삼천포로 빠져 사교(邪敎)에 귀의(歸依)하기 십상이지만>

그런데 성서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나 민족 고유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숫자들이란 대부분 어떤 상징을 내포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고대의 시간관념이라는 것이 오늘날 처럼 정교한 것이 아니어서 실제 흐르는 시간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느낌이라는 관념의 숫자일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이야기한다고 하여도 믿음에 크게 방해가 되는 일은  아닙니다.

일테면 성서에서 말하는 숫자와 시간의 개념들 가운데  40이라는 숫자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개념 안에서 아주 긴 시간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참고 기다리기 힘든 정도로 오랜 시간의 개념으로 40이라는 숫자가 쓰여졌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숫자가 상징하는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는 뜻으로  쓰여진 숫자가 바로 40이라는 숫자입니다. 옛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온다, 아니 왔다라는 뜻을 지닌 숫자가 40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세월호 집단 생수장사건의 한 피해자인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40일을 견디어 내다 끝내 쓰러졌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원컨데 무엇보다 김영오라는 한 생명이 꺼져가서는 안된다는 소망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믿음은 곧 “고백”입니다.

일천번 아니 일만번의 기적을 보여 준다한들 고백이 이어지지 않으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단 한순간 찰라적인 현상을 단 한 사람이 느꼇다 하더라도 그 고백을 세월따라 자자손손 이어지는 것을 통해 참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의 전통, 유대교의 전통 그리고 기독교의 경전에 나오는 40의 의미도 그렇게 형성된 것입니다.

40이제 김영오의 40일은 믿음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김영오의 40일이 한국인들의 역사를 가름하는 일대 상징이 되느냐 마느냐는 오늘을 사는 한인들의 선택입니다.

그의 안녕을 빌며.

잔치 그리고 숙제 – 평화

마치 잔치가 끝난 듯한 분위기입니다. 약  100시간에 달했다는 프란치스코  천주교황  방한 이후의 한국언론들 모습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교황이 남긴 말씀들의 의미를 꼽는 기사들도 차고 넘치거니와 말씀들이 누구를 향한 것이라는  나름의 해석들도 넘쳐납니다.

짧은 한국방문 기간동안 보여주었던 교황의 언행을 보고 들으며 저마다 자기 생각 한자락쯤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전혀 관심 밖이었던 사람들도 많았을 터이고, 애써 무시하려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교황의 방한과 그의 언행들이 행여 자기 밥그릇에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를 저울질하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며, 자신들의 맺힌 한과 숨통을 풀어줄 수 있는 능력자로 기대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터입니다.

날라리 기독교인(개신교)인 저는 어제 주일을 맞아 모처럼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두어 달만의 일인 듯 싶습니다.

예배순서가 거의 마칠무렵에 찬송을 부르다가 문득 프란치스코교황이 방한 중에 하셨다는 말씀 하나가 머리 속에 뱅뱅 돌았답니다. 그 연유로 잔치가 끝난 마당을 돌아보며 제 생각 한 자락 풀어 놓습니다.

먼저 어제 제가 교회에서 불렀던 찬송가의 내용이랍니다. 교회생활 조금 하신 분들이면 익히 잘 아는 찬송입니다.

<내 마음속에 참된 평화있어 주 예수가 주신평화/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 과연 귀하다 나의 평화/ 주 항상 계시네 내 맘속에 주 가 항상 계셔 아 기뻐라/ 주 내 맘속에 계셔 위로 하신다 /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이런 내용의 찬송입니다.

사람 일반이 종교에 귀의하여 의지하고자하는 일차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가사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당연히 귀의한 사람들에게 평안과 안식과 평화를 보장합니다. 적어도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종교들 일반의 모습입니다. 원시종교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비록 날라리일지언정 기독교인인 저는 예수가 유일한 구세주로서 제게 평안과 평화를 주시는 분임을 정말 자랑스럽게 어느 자리, 누구에게라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다른 사람들이 저와 같아야 한다고 말하거나 주장하지도 않거니와 그런 일에 시간과 정열을 허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답니다.

아무튼 “주 예수가 내 마음에 평화를 주신다”는 찬송을 부르는 일은 신자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 믿음에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어제 저는 그 찬송을 읊조리며 영 편편치 못한 제 마음 한구석을 다스릴 수가 없었답니다. 바로 교황이 던진 평화에 대한 뜻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  <평화란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

교황이 남긴 말씀들입니다.

교황과 김용오그가 말한 평화는 신과 나와의 관계가 아닌 나와 이웃간의 관계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신과 나와의 관계란  믿음의단계에 있어 아주 깊은 곳에 이를 수도 있는 관계설정일 수가 있는 동시에 가장 저급하고 천박한 신앙의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신을 쫓아가면 신앙의 깊이는 깊어질수 있지만 신이 나를 쫓게 만들면 천박하기 그지없는 장사속  종교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나와 이웃간의 관계 설정에서 신의 존재를 묻는 물음은 자못 경건해 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싸움과 다툼의 시작이고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바로 그 지점에서의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바로 정의가 세워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너와 나 사이,  우리와 너희 사이에 정의가 이루어 진 결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를 세우는 일을 민주적으로 풀어나가라는 조언을 덧붙인 것입니다.

대다수의 언론들이나 글쟁이들이 이런 언행을 풀고 간 프란치스코교황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들을 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잔치가 끝났습니다.

이제 교황이 말씀하신 평화에 대한 참된 뜻을 제대로 알려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서 있는 자리를 바로 보아야만 합니다. 그가 어느 순간 하늘에서 툭 떨어져 2014년 8월 한반도 남쪽에 현현했던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프란치스코교황이 2014년 8월 세월호 집단 생수장 이라는 사건을 통해 그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반도를 향해 평화라는 화두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천주교 반세기사(50여년)의 고뇌와 교황 개인이 걸어 온  77년사라는  고뇌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여년 전(1962년 10월 –  1965년 9월)에 있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있었던  천주교의 일대 회개운동이 없었다면,  그의 신앙을 키워낸 아르헨티나라는 척박한 환경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은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정의의 결과물로 얻을 수 있는 평화”란 잔치 끝마당에 저절로 떨어지는 열매가 아니라 앞으로 50년이 더 걸릴지라도 한국민들이 노력해 얻어야만하는 숙제라는 것입니다.

조선민국9 – 민란2

프랑스혁명은 인류사에 있어 분명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습니다.  혁명이 일어나게 된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거니와 그 과정을 통해 사회 질서의 커다란 변화도 겪었고, 혁명의 결과에 따라 세계사의 물결이 커다랗게 출렁이었습니다.

프랑스대혁명(1789.7.14 – 1794.7.27)을 전후로 한 한 세기 동안의 유럽과 프랑스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전에 혁명의 주요 원인과 결과 가운데 한가지를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고 넘어 가려고 합니다.

혁명의 큰 원동력 가운데 한 축은 “배고파 이대로는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문맹자들이었고, 좋게 말해서 평민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프랑스를 떠바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숫자로는 당시 전체 인구의약  90%를 넘어서는 그야말로 주류였습니다. 그들의 노동과 세금으로 국가가 지탱해 나가고 있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프랑스혁명

이들은 프랑스 혁명의 시발과 과정에서 아주 주요한 한 축이였거니와 민란의 주인공이었지만, 프랑스 혁명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그늘에 가려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왕실, 제1 계급(카톨릭 고위성직자), 제2계급(귀족), 제3계급(평민 귀족, 브르조아 신흥 귀족) 등이 주인공인 듯 그려집니다. 그들의 숫자라야 다 합해도 인구의 10분의 일을 넘지 않았으며, 특히 왕실 및 제 1, 2급 귀족들의 숫자는 2% 미만이었습니다.( 이숫자는 후에 이야기할 한반도 조선 말기 양반 숫자와 비교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혁명 과정을 통해 약 17만명이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대부분이 “배고파 못살겠다고” 외치던 좋게 말해 평민이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혁명이 끝난 후 채택된 이른바 프랑스 인권선언문에 나오는 “자유와 소유권, 안전과 억압에 대한 저항권” 곧 자유, 평등, 박애(권리)라는 위대한 선언에는 사실 90%에 이르는 평민들을 제외된 선언이었습니다. 왕실과 제1, 2, 3 계급의 귀족들 곧 10% 미만의 사람들만의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인간 곧 사람에 대한 존엄과 생명의 고귀함을 부르짖는 천부인권사상이 전제 되어 있다고들 평가하지만 분명 거기에는 차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영향으로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론들과 신봉자들이 기세를 드는 형국으로 변화는 이어집니다.

오늘 뉴스에  세월호 집단 생수장 학살사건에 대한 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프랑스 대혁명 시절 이야기가 연상되어 몇 자 적어 봅니다.

조선민국 8 – 민란1

19세기는 농민항쟁의 시기였다. 농민항쟁은 19세기 이전부터 봉건적 사회모순이 첨예화되는 과정에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항쟁과정이 잘 들어나지 않은 소극적 경제투쟁에서부터 폭력적 봉기에 이르기까지 농민들은 끊임없이 봉건지배체제에 반대하여 투쟁하였다. – 한국역사연구회 편 <한국사강의> 208쪽 

천명(天明, 1781-1788)의 대기근에 이은 대판과 강호의 식량폭동(1787), 천보(天保, 1830-1843)의 대기근에 이어 1837년 대판에서 일어난 오오시오의 반란은 식량의 절대적 부족에서 나온 산물이었다. 백성의  반란이든 기근이든 도시의 파괴소동이든 결국은 막번체제(幕藩體制)가 사회경제상황의 발전에 뒤져 낡은 전례나 자연경제에 매달리는 이외에 아무런 방책도 가지지 못한 탓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 한길사편 <일본 현대사의 구조> 162 쪽 

중국의 토양개조, 사회구조의 변혁을 말하면 누구나 농민전쟁을 연상할 것이다. 특히 소작료 인하를 목표로 한 항조운동(抗租運動: 조세 거부 운동)이 농민의 밑바닥으로부터 일어났던 세상을 바로잡자는 행동임은 분명하다. 물론 농민들에게 변혁의 이상(理想)이 있었을 리는 없고 그 운동은 지주나 관료들에 의해 곧 진압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이것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것은 남송(南宋), 명대(明代) 중기 이후, 청대의 건륭(乾隆, 1736 – 1795) 말년 이후였다. – 한길사편 <중국현대사> 10쪽 

세계사의 흐름을 보면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오는 시점은 이른바 민란(民亂) 전성시대였습니다. 유럽에서 아시아를 관통하는 일대 유행이었습니다.

이즈음 유행은 서울, 동경, 북경, 파리, 뉴욕을 비롯한 내노라하는 도시는 거의 동시에 퍼지고 누리는 세상입니다.

지리적으로 멀고 가까움이 유행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뉴욕에서 150마일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제가 사는 촌동네는 유행에서 벗겨나 있는 곳입니다. 서울과 뉴욕이 동시패션을 구가하지만 제가 사는 촌동네는 90년대 쯤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느 쪽이 좋은지(유행에 민감한 대도시 쪽 또는 유행에는 별반 관심없이 사는 촌동네 쪽)는 개개인들의 선호에 달린 일이기도 하겠거니와 때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뉴욕이나 서울에 가면 빨리 이 촌동네로 돌아오고 싶답니다.

아무튼 그건 이즈음 세상이야기이지만, 어찌보면 약 이백 여년 전 민란전성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역시 선택의 여지없이 자신들이 살았던 땅에서 역사의 일원이 되어 살았을 것입니다.

이즈음이야 중동 가자지구에서 밤에 일어난 일들도 실시간으로 전세계로 퍼져나가거니와, 부산 해운대 앞바다 실시간 영상을 보고자한다면 이곳 미국 촌동네에서도 손바닥 들여다 보듯 볼 수 있는 세상이어서 동시간에 유행을 탄다는 게 전혀 신기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신기한 점은 지금으로 200-300여년 전 아직 동양과 서양이 서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던 시절인데 이 민란만큼은 거의 동시대에 일대 유행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민란이 유행하게 된 원인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았다는 사실인데요, 바로 먹고 살겠다고 일어난 반란이었다는 것입니다.

Les_Miserables7

그렇다면 먹고 살겠다고 난리를 일으킨 사람들이 있겠고, 그 난리를 유발한 난리 이전에 “자기들 끼리 배불렸던”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그 무렵 프랑스 혁명을 통해 잘 알려진 말인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인 바로 “배불렸던” 한 쪽 축입니다. 구체제(舊體制)입니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오는 싯점은 바로 이런 구체제와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무리들의 일대 충돌이 일어났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느냐 하는 역사적 경험들이 20세기 이후에 보는 각나라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외면한 채 한반도 내에서 일어난 일들만 들여다보면 그 시절 양반의 뒤를 잇는 소수의 앙시앙 레짐들이 오늘날에도 사회 엘리트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민족성이 게으르고…”운운하는 사기꾼들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게되는 것입니다.

자! 프랑스 혁명부터 이야기하지요. 뭐 거창하게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가 처음부터 등장한 것이 아니랍니다. 그저 배고파서 일어난 난리였답니다. 언놈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언놈들은 세금 한푼 안내고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이 더러워서 일어난 난리였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배고파 손가락 하나 까닥거리기조차 힘든 지경에 빠져있는 사람들 뿐이었다면 난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배부르고 가진 게 있지만 구체제는 싫고,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배고픈 이들과 손을 잡고 난리를 일을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 소식과 쓰러질 듯한 사내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