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그리고 말씀에

필라델피아 아트 박물관을 찾은 건 거의 스무 해 만이다.  ‘언제 왔었더라….?’ 그 기억을 되찾는데 한참 걸렸다. 그 때는 박물관 구경이었고, 오늘은 박물관 앞 계단에서 <윤석열 탄핵 촉구>를 외치기 위함이었다.

늘 그렇듯 이민사회에서 이런 모임 머리 수는 늘 소수다. 우리 내외가 아직도 그런 소수들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어 참 좋다.

간만에 만난 후배가 모처럼 제 자리 찾아가는 듯 했던 <민주평통자문회의>가 다시 보수화 되어가는 상황을 말하며 안타까워 했다.

그 기관에 대한 관심이 애초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후배들이나 다음 세대들이 보이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과 행동에 대해 늘 박수를 아끼지 않는 내게 그의 안타까움이 크게 다가왔다.

그러다 떠올려 본 돌아가신 홍근수 목사님 그리고 그의 말씀 하나.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다.(마태 10: 34)” 다른 곳에서는 칼이라는 말 대신에 ‘불’ 또는 ‘분열’을 일으키려 왔다고(누가 13: 49-51)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칼이나 불이나 분열은 모두 같은 뜻으로 폭력적 분쟁이나 갈등, 또는 전쟁을 의미하는 말들입니다. 예수의 이 선언은 확실히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거리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의 말입니다.

예수가 도대체 무슨 의도에서,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했는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정의에 근거하지 않는 평화란 정글의 상태일 뿐으로 그러한 상태는 평화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태여 평화라면 가짜 평화일 뿐입니다. 그런 가짜 평화가 지배하는 곳에 예수의 진정한 평화의 복음이 선포될 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분열과 싸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의가 없는 곳에 평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유가 없는 곳에 평화가 없습니다. ………중략…….

법, 질서, 안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불평불만과 저항을 강압적 수단으로 억압하여 사회를 조용하게 만드는 것, 그것을 평화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실상 그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의 해방과 정의 복음은 곧 이러한 가짜 평화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해방과 정의의 복음, 사랑과 평화의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는 곳마다 칼, 분열, 싸움이 일어났고 혁명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홍근수 목사- 예수의 복음 위에 굳게 두 발 딛고 서서 통일과 평화 운동 맨 앞 열에 서 계셨던 분. 아마 살아 계셨다면 윤석열 일당을 향해 예수의 검을 내리치셨을 터.

서울 법대 출신인 그를 생각하니 그 학교가 매양 무식, 무지, 무능 위에 비겁, 야비, 파렴치를 겸비한 윤석열 양아치 패거리들만 배출한 것은 아닌 듯.

언제나 굳건히 변함없는 후배를 위하여!

투쟁에

종종 한국뉴스들은 아주 먼 낯선 나라 이야기처럼 다가오곤 한다. 허긴 떠나온 세월이 있으니 어쩌면 그것이 아주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 먼 거리의 간격을 좀 좁혀보려는 생각으로 몇 권의 책들을 구해 읽고 있다. 그 중 하나, 시민운동가 안성용이 쓴 <한국에서의 정치 투쟁>이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시작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제 6공화국 시기에 있었던 대선, 총선, 지선 등 모든 선거들의 결과와 선거를 전후한 상황과 민심, 정당과 시민사회 등의 당시 모습들을 잘 정리해 준 책이다. 그가 말하는 정치투쟁이란 곧 선거투쟁이다.

내가 온전히 겪지 않았던  시절들의 이야기라 비록 알고 있던 것이라도 이해의 깊이를 더해 주었고,  특히 교육과 입시제도의 변화에 대한 정리와 소개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뜨문뜨문 접하는 이즈음 한국뉴스들은 87년 체제 곧 제6공화국를 끝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굳게 하였었는데 저자 안성용은 이를 강하게 주창하고 있다.

<제7공화국 수립의 때가 왔다. 평등, 평화, 생태가 시대정신이다. 절대다수 대중을 위한 제 7공화국을 세울 때가 됐다. 위기는 새로운 대응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는 몇 가지 실천과제들을 제시한다.

그의 꿈들이 이뤄지길 빈다.

다만 체제의 변화, 그것을 혁명이라 부르든 개혁이라 부르든 그 변화의 시작은 정당이나 정치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 그의 말마따나 “자각한 대중의 투쟁이, 거리에서, 새로운 미래를 여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언제나 큰 변혁의 시작은 거리에서 시장에서 광장에서 자각한 대중이 만들어 내는 법이다.

지금이 바로 그럴 때다. 올바른 선거투쟁을 하기 위한 진정한 투쟁의 때이다.

책장을 덮은 오늘이 마침 6월 10일이다.

낯섦에

사흘 째 낯설게 붉은 빛으로 다가오는 아침 해를 마주한다. 그리고 온종일 잿빛 하늘과 때론 타는 냄새와 함께 다가오는 탁한 공기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사흘 째다.

이런 날씨가 하루나 이틀 정도 더 이어질 것이라는 일기 예보다.

캐나다에서 일어난 산불 탓 이라는데, 그 산불의 규모가 가히 한반도 크기를 태우는 정도란다.

뉴스는 대기 오염 지수가 상당한 오염 단계에 이른다며 특히 노인들,  심장이나 폐질환 환자들은 조심하고 집 안에 머물라고 권고 한다.

제기랄!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노인 나이에 심장과 폐에 이상이 있다는 가정의의 소견에 따라 전문의의 처방을 앞두고 있는 내가 무시할 수 없는 권고였다.

흐흐흐… 하며 혼자 작은 웃음을 웃다. 노인, 심장, 폐… 어느날 문득 나와 가깝다며 찾아 온 말들이다.

곰곰 따져보니 살아 온 모든 걸음걸음 마다 만난 것은 낯섦이었다.

그 낯설음을 벗 삼아 여기까지 이른 세월 돌아보면 그저 감사 뿐.

*** 사흘 전 아침 내 뜰에서 노니는 여우와 사슴들을 보며 순간 든 생각이었다. “참 좋다.” 놈들이 망쳐 놓는 내 작은 텃밭의 작물과 화단의 꽃들은 잠시 잊고.

무릇 모든 아침은 낯설어야 좋다.

새 시작

살며 ‘사’짜로 끝나는 직업군들은 만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물론 직업적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내 바람일 뿐, 사람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테면 판, 검사, 변호사, 의사, 박사, 목사 따위들을 말하는데, 다시 되뇌이지만, 그 직업으로 다가오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그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판, 검사나 변호사를 일로써 내가 만나게 되는 경우란 없어야만 백 번 좋은 일이다.  물론 소시민적 삶을 사는 내게 해당하는 말이겠다만. 의사도 마찬가지다. 아프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 박사 역시 다를 바 없다. 내가 학문하는 사람이 아닌데 무슨 전문 분야의 박사를 만나 시간을 보낼 특별한 까닭도 없다. 목사 역시 마찬가지다. 머리 굵어 제 생각 가질 나이를 먹은 후 신과 내 사이의 연결 고리로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버린 지 오래 되었다.

살다보니 내 가까운 가족들 가운데도 그 ‘사’짜 직업군들이 여럿 있게 되었다만 그들 업의 특성 때문에 그들과 이야기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은 여전하다.

그 바램은 여전하건만, 제 바램 대로 사는 삶이 어디 있겠나?

한 동안 꽤나 피곤 했다. 난 그게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봄철 이후, 생업의 강도가 생각보다 조금 심했기도 했고, 인력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이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여 그 피로는 아주 당연한 일로 생각했었다.

그러다 달 포 전,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간 가정의(醫)로 부터 들은 말이었다. “심장에 좀 문제가 있어요. 정밀진단을 받아야겠어요.”

며칠 전 정밀진단 결과를 알려 주는 가정의의 말이었다. “심장판막에 문제가 생겼어요. 이젠 심장 전문의를 만나셔야겠어요.”

그렇게 심장 전문의와 약속을 잡아 놓고 이틀 여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오늘, 여느 일요일과 다름 없이 잔디를 깍고 물을 주고, 한 주 만에 꽃이 핀 열무를 ‘아뿔사’하며 거두어 김치도 담으며 환한 웃음을 짓다.

“에고, 이 눔아! 나이 따라 가는 게야~ 싫어도 의사 자주 만날 나이가 된게지!” 그 한마디 머리 속에 떠올리며.

곰곰 따져보니, 그저 감사한 일이다. 이 나이 먹도록 상용하는 약 하나 없거니와 그 흔한 바이타민 제대로  먹어 본 일도 없었으니 이젠 의사와 친해져도 불평할 일은 전혀 없어야 마땅할 일.

늦은 밤, 읊조려 보는 말, “그래 이젠 진짜 노년이다. 새로운 시작이다.”

나만에.

운동에

1.어느 공동체에 속한 이들의 삶을 뿌리 채 흔들어 바꾸는 현상을 무어라 일컫든 그 변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그 공동체를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컬어 민이라 부르던 민중이라 부르던 시민이라 부르던 사람살이 큰 변화의 중심 축은 언제나 그들이었다.

문제는 언제나 그들이 옳는 것 만도 아니고, 그들이 주인공이라는 역할도 깨닫지 못할 때가 더욱 많지만, 그렇다 하여도 사람살이 진일보의 큰 걸음 뻗쳐 내디딜 때면 그 공동체의 밑바탕을 이루는 이들이 중심이었다.

사람살이를 바라보는 내 믿음의 잣대다.

2. 하루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지친 내 피로를 풀어준 것들 – 쉴 곳 찾는 작은 새들의 소리와 내 눈길을 사로잡은 새 생명들이다. 따지고보면 다 내 게으름과 아둔한 탓일 뿐 사계절 어느 순간에도 새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움직임은 끊이질 않는다.

3.그리고 운동에 – 거창할 것 하나 없다. 지금은 이런 노래 따라 읊조려 보는 게 바로 운동이다.

이틀 연휴 잘 쉬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랬다. 일주일에 72시간은 그저 평범했거니와,  84시간 아니 아흔 시간 까지도 일하며 그러려니 하며 살았던 이민 세대다.

딸아이는 어릴 적에 내 가게를 ‘아빠 집’이라고 했었다. 그나마 내 업은 일요일 하루는 쉬었다만, 일년에 쉬는 날이 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일에 매어 사는 이들이 넘쳐났던 이른바 이민 일 세대 친근했던 얼굴들은 이젠 떠나고 없거나, 은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업으로 한정 짓자면 동네에서 내가 가장 오래된 현업 일꾼인 듯하다.

딱히 특별한 재능도 없거니와, 이렇다할 취미나 즐기는 놀이조차 없는 나는 그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다만 일하는 시간은 할 수 있는 한 줄일려고 하고, 내 몸과 맘에 맞게 쉬며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고는 있다.

에미 애비 된 마음이 다 엇비슷하듯 나 역시 우리 애들만은 우리 세대처럼 일에 매달리지 않고도 삶을 즐기며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암튼 오늘 내게 주어진 이틀 연휴 하고픈 일 다하며 잘 쉬었다.

그 중 하나, 검사 진혜원이 쓴 <검사의 검찰일기, 진실과 정의에 대한 성찰>을 차분히 완독한 일이다. 대충 한번 훑었다가 틈나면 완독해야지 미루어 두었다 마친 일이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언제나 그렇듯 내가 놓치지 않는 희망을 보았다.

글쓴이 진혜원이 이 책에서 끝까지 놓지 않고 있는 화두((話頭) 둘은 사람과 민주주의였다. 책에 상당 부분이 성(性)에 대한 이야기를 풀고 있었는데 그 근본은 바로 사람에 대한 통찰이었다. 그리고 민주주의. 그는 몇 번에 걸쳐 이렇게 강조헀다. “귀찮아야 민주주의고 꼼꼼해야 속지 않는다.”

튜립 구근들을 거둔 자리에 다알리아 구근들을 심고, 진혜원의 책장을 덮은 후 바라 본 하늘, 내 눈이 닿는 끝에서 끝 까지가 모두 내 땅인 양 부자가 된 듯한 쉬는 날에.

5.29.23.

아내

모처럼 사람 붐비는 모습을 보았다.

‘좀 걸읍시다!’ 하며 나선 길이었다. 우리 내외가 종종 걷기 위해 찾아 가는 곳, Longwood Garden 은 비록 관광지라고 하지만 통상은 한적하니 꽃 구경하며 걷기 좋은 곳이다. 내 집과 가깝기도 하고 20분 정도 걸리는 숲길 드라이브 경관도 사철 즐길만 하여 몇 년 째 회원이 되어 틈나는 대로 찾곤 한다.

겨울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치장할 무렵도 아니고, 봄도 여름도 아닌 어정쩡한 계절에 사람들이 붐비는 것에 잠시 놀랐었다. 아마도 연휴 탓이었을게다.

하여 가급적 사람 드문 한적한 곳을 찾아 걸었다. 걷다가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한 동안의 통화를 끝낸 아내가 전하는 말이었다.

“한국학교 지역 연합회 회장 전화였는데… 내가 이렇게 저렇게 오랜 동안 한국학교 선생했다고 이번에 한국 대통령 표창 수여 대상자로 선정해 올리려고 한다며 내 생각을 묻는 전화야…… 근데 회장님을 비롯해서 임원들께 참 고맙긴 한데….. 어떻게 윤석열 이름이 박힌 표창장을 받겠어… 그 이름조차 창피한데… 그래 뜻은 참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했어. 대한민국 표창장은 받으면 참 좋겠는데 하필 윤석열이라니,,,, 암튼 나 잘했지?”

걷다가 쉬며 조촐히 맥주도 한 잔하고.

돌아와 내 자랑스런 아내를 위해 김치도 담고, 저녁상도 차리고, 설거지도 하고.

이젠 사람 붐비는 모습이 참 낯설다.

마음의 진보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것도 건성건성 책장을 훑은 것이 아니라 500쪽이 넘는 이야기들에 홀리듯 빠져 본 일은 아마 거의 수십 년 만의 일일게다. 누군가의 자서전으로 말이다.

<축의 시대>를 쓴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의 자서전 <마음의 진보>이다.  <(The Spiral Staircase(나선형 계단)>이라는 원제를 <마음의 진보>로 소개하는 역자 이희재 선생의  번역은 원저자의 생각에 내가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여 참 좋았다. 역자의 우리말(한글)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이즈음 한국뉴스들을 보며 느끼곤 하는 절망감을 상쇄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한참 꿈 많았을 십대 나이에 신을 만나려는 꿈으로 수녀가 되어  칠 년을 보내다가 훌훌 털고 세상으로 나와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선생을 하다가 다시 종교를 찾아 돌아간 그의 삶을 이야기한 책이다.

다만 그녀가 찾은 종교는 카톨릭도 아니고 개신교는 더더욱 아니고 이슬람을 품었으되 그도 아니었으며 탈무드에서 석가, 공 맹자 우파니샤드 등등 두루 다 만났으되 그 역시 아니었다.

이야기 거의 마무리 부분에서 그녀가 하는 말이다.

<공감은 물론 동정이나 연민과는 다르다. 공감은 같이 느끼는 것이다.>

<공감은 이스라엘의 예언자에게도, 탈무드의 랍비에게도, 예수에게도, 바울로에게도, 마호메트에게도, 또 당연히 공자, 노자, 붓다, 우파니샤드의 현자들에게도 리트머스지였다.>

그녀가 찾은 종교의 가장 깊은 원천이자 궁극의 자리는 ‘아픔’을 깨닫는 일이요, 그 아픔을 ‘공감’하는 일과 행위야말로 참 종교에 빠지는 일이요, 사람답게 사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저자의  시각으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영국사회를 돌아보는 이야기들은 덤으로 얻는 수확이다. 내가 살아왔던 그 시대 경험들과 그 시대에 내가 느꼈던 영국에 대한 환상의 거리를 느껴 본 재미 또한 크다.

  • 누군가는 역사의 진보란 나선형으로 발전해 나간다 하였다지. <마음의 진보> 역시 <나선형 계단>을 밟고 오르는 일일수도.
  • 이즈음 뉴스 속 종교는 누군가의 아픔을 이용해 가르고, 억압하고, 멸시하고 나아가 지배하려는 이야기들로 다가오곤 한다만.
  • 뜰을 가꾸며 깨달은 작은 생각 하나. 애지중지 보살펴 키운 꽃 한 송이 보다 손길 닿지 않은 곳에서 잡초 가운데 얼굴 내민 들꽃의 가늠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니!

다시 오월에

저마다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날들이 있을게다. 자신과 가족들의 기념일부터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잊지 못하는 날들, 아니면 이런저런 공휴일들까지 평범한 여느 날과는 다른 날들 말이다.

내 경우엔 나와 가족들의 기념일들을 제외하고 남는 특별한 날들로는 오래된 햇수로 따져 , 7월 4일, 10월 17일, 10월 26일, 5월 18일, 4월 16일 그리고 10월 29일 등이다.

1972년 7월 4일, 대학 일학년 첫 방학을 맞은 나는 아버지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유운리 작은 할아버지 댁에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통해 이른바 7.4 남북 공동선언 소식을 들었었다. 그 무렵부터 내 아버지의 고향에서 전통은 사라지고, 돈(돈錢과 돈豚)이 모두를 삼켜 버렸다.

그해 10월 17일은 박정희 유신이 선포된 날로 당시 대학 일학년 이었던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날이었다. 학교 앞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기관단총을 앞세운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렇게 내 대학 일년이 끝나던 날이었다.

몇 해가 지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밀실에서 죽고 내 스무 시절 젊은 인생은 또 한번 바뀌었다.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나 다소 엉뚱하게 신학 공부를 하며 작은 출판사를 하고 있던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대학 마지막 학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80년 5월 18일,  다시 학교로 부터 도망하는 세월이 시작되었고, 그 잊지 못할 오월항쟁과 참사를 건너 건너 그 당시 이른바 유언비어를 통해 들으며 몸을 떨었고, 이내 잊지 못할 치도곤을 당했었다.

한참 후 환갑 지난 나이가 된 2014년 4월 16일, 삼백명이 넘는 시퍼렇게 젊은 아이들이 산 채로 바다에 수장되는 모습을 멀리 이 미국 땅에서 생중계로 바라보는 충격을 겪었다.

지난해 10월 29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다. 이태원은 내 어릴 적 추억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한남동 외가와 막내 이모의 신혼방 이태원은 외사촌들과 뛰며 놀던 곳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의 면적과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숫자는 내가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여 내가 잊지 못하는 날들이 되었다.

따져보니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날들보다 여기서 산 날들이 훨씬 많다만, 내가 잊지 못하는 날들은 모두 한국에서 있었던 날들이다. 어쩌랴! 점점 더 그리 되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점점 더 이해 불가능한 사회로 빠져드는 듯한 이즈음의 한국사회를 바로 알아보고자 몇 권 읽고 있는 책들 중 하나, 검사 진혜원이 쓴 책 <진실과 정의에 대한 성찰>에서 건진 한마디.

진혜원 역시 인용한 말이다만,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반영하는 방법이고, 신은 인간의 자기의식일 뿐”이라는 사회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마흐의 깨달음.

원컨대 조금씩 조금씩, 한걸음 한걸음씩 만이라도 사람다운 본성을 찾는 믿음과 이념과 시대정신을 갈구하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이왕에 만드는 신이라면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신상을 만드는 사회가 되어지기를 비는 마음으로.

다시 맞는 5월 18일에.

선입견(先入見)에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선입견(先入見)은 있게 마련이고, 강도의 차이일 뿐 고집 역시 너나 없이 품고 살기 마련이다.

그 선입견과 고집이 내게 이르면 좀 센 편이다. 그 세기가 점점 강하지는 것을 느낄 때면  이젠 확실히 늙어가는 나를 마주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가게 손님 가운데 이따금 내 가게와 가까운 경쟁업소의 흉을 보며 들어서는 이들이 있다. “저 쪽 세탁소에 다녔는데 이런 저런 문제들이 많아서 너희 가게를 찾아왔다”는 등의 수다를 떨며 들어오는 손님들인데, 난 이런 손님들이 참 마뜩잖다.

경험상 이런 류의 손님들은 쉽게 다른 경쟁 업소가 가서 똑같이 내 가게 흉을 볼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내 선입견 탓이다.

오늘 이른 아침에 밀린 한국 뉴스를 보며 떠올려 본 생각이었는데, 일반적으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유로 누군가가 이른바 언론의 뭇매를 맞을 때면 그 뉴스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내 잣대는 바로 이런 내 선입견이다.

그런 뉴스들을 판단하는 내 잣대는 그 뭇매를 드는 사람들이 지난 세월에 던졌던 말들과 쌓아 온 행적들을 돌아보는 일이다. 하면, 답은 아주 명쾌 해진다. 내 고집과 선입견이 주는 명쾌함이다.

내가 노무현, 노회찬, 조국 이라는 이름에 애틋함과 함께 그들의 꿈을 이해하는 까닭은 그들에게 뭇매를 가하거나 때론 이용하는 이들의 행적이나 말들이 너무나 비상식적 모습이었음을 느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 본 김남국이라는 젊은 정치인의 뉴스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를 잘 모르지만 그에게 뭇매를 가하는 이들과 언론들의 지난 행태를 따져보니 그를 응원해야 마땅할 듯 하다.

물론 내 고집과 선입견 탓이겠지만, 내겐 그게 옳다.

* 어머니 주일, 돌아가신 두 어머니 찾아가 잠시 인사 드리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인사를 받다. 우리 내외 오늘의 삶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저 행복하다.

**뜰일을 하다가 땀을 식히며 바라보는 뜰 풍경에 느끼는 만족과 행복함이라니!

*** 내 어릴 때 선생님 한 분이 말씀하셨었다. “난 내 집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누리는 행복이 참 미안할 때가 많다네….”

  • 삶은 늘 미안함과 아쉬움의 연속이지만 내 선입견과 고집은 날이 갈수록 굳어진다. 하여 내 뜰에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