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의 사제(司祭)

이즈음엔 그리 많이 듣지 못하겠다만 내 스물 나이 시절이었던 1970년대엔 한(恨)에 대한 이야기들이 차고 넘쳤었다.

한을 품고 사는 사람들, 맺힌 한을 부둥켜 안고 죽음의 강을 건넌 사람들, 피를 토하며 쌓인 한들을 외치며 하소연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이른바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되어 떠돌던 시절이었다.

흘러간 시간들을 돌이켜 따져보니 오늘날 가짜 뉴스들이라고 일컫는 당시의 유언비어들은 거의가 진실이었으며, 그 시절 맺힌 한들을 푸는 일은 여러 갈래 방법으로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당시 한에 대한 이야기들은 소설, 시 등의 문학적 방법 뿐만 아니라 사회학의 구조로 또는 철학으로 나아가 신학적 방법으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들로 이어졌었다.

그런 이야기를 풀어 냈던 한 사람 가운데 서남동 목사님이 계셨다. 그는 살아 생전 한 맺힌 사람들의 응어리를 풀어 주는 일에 온 힘을 쏟았던 사람이다. 학문적으로도 그렇고 삶 속 행동으로  그를 온전히 실천하며 떠난 사람이었다.

오늘 밤, 한국 뉴스 한 꼭지를 보다가 <한의 신학>을 설파하셨던 서남동 목사님을 기린다. 그의 목소리와 그의 주창과 그의 신학적 고뇌와 그의 외침이 2023년 오늘,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 땅에 절절하게 유효하기 때문이다.

<한(恨)이란 눌린 자 약한 자가 불의를 당하고 그 권리가 짓밟혀서 참으로 억울하다고 생각할 때, 그 호소를 들어주는 자도, 풀어 주겠다는 자도 없는 경우에 생기는 감정상태이다. 그러기에 한은 하늘에 호소하는 억울함의 소리, 무명(無名)의 무고(無告)의 민중의 소리 바로 그것이다.>

사람 조국(曺國)을 바라보는 시각들은 실로 다양할게다. 나는 그에게서 한 맺혀 오늘을 사는 반도 남쪽 민중들의 모습을 본다.

그를 다루는 숱한 이야기들 속에서 비겁, 야비, 질투, 시기, 모함, 집단 린치 등등 오늘날 반도 남쪽의 어둡고 음습한 가진 자들의  모습과 할 수 있는 한 그 가진 자들과 함께 해보려는 그저 그런 이들의 모습들을 보곤 한다.

서남동 목사님은 지식인(지식인을 자처 하는 한)은 민중이 결코 될 수 없다는 주창을 종종 하셨다.

나는 사람 조국이 뱉아 낸  단말마(斷末魔)를 통해 그에게서 오늘을 살아가는 민중을 만난다.

그와 그의 가족들의 한풀이가 이루어지는 날을 위하여! 함께 나아가는 이들과 작은 몸짓일지라도 이어갈진저.

*** 어쩌다 이리 무지, 무식에 야비함과 비겁함을 더한 사기, 도둑, 강도떼들의 전성시대가 되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는 구석 하나. 이 땅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한을 풀고 이웃의 한을 풀고자 애쓰며 함께 하는 한의(한풀이) 사제들이 늘 함께 한다는 사실 더하여 진실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조국 “차라리 옛날처럼 나를 끌고 가서 고문하라” < 사회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간밤에

어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에 시동을 걸 무렵, 멀쩡하던 하늘이 까맣게 변하더니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후두둑 차창을 두드리던 빗방울이 순식간에 폭우로 변하더니 하늘 꼭대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로 변했다. 거센 바람과 번개와 천둥은 운전대를 잡은 내 손과 가히 한 치 앞이 가물가물한 차창 밖을 바라보는 내 두 눈에 온 힘을 모으게 했다.

평소 20분 정도 걸리면 족한 거리를 두 배 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비와 바람과 번개와 천둥이 이어졌다. 동네 어귀에 다다르자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다. 간신히 돌아서 집에 도착하니 내 집은 물론 이웃 집 모두 불빛이 없다.

번쩍하는 번개 빛과 천둥소리 거센 빗소리가 이어졌지만 전기가 나간 집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로 아내와 나는 저녁 식사도 잊은 채 그 어둡고 고요함을 한동안 즐겼다.

전기가 다시 돌아올 기미는 없고 빗줄기가 잠시 잦아 들어, 저녁을 때울 요량으로 뒷뜰에 나가 그릴에 라면을 끓이던 중  구름 사이 지던 해가 반짝이더니만 무지개가 떳다.

허나 전기는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간만에 촛불 속에서 아내와 내가 나눈 뚱딴지 연가(戀歌).

“혹시 한국 나가면 뭐 먹고 싶어?”라고 묻는 아내. 그리고 이어진 내 대답. “글쎄…. 선지 해장국…. 연탄불에 구운 얇게 저민 돼지 갈비….” 그래, 나는 이젠 가 보았자 만날 수 없는 내 고향 신촌을 그리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까지 전기는 돌아 오지 않았고, 가게로 나가는 길목 곳곳에 엊저녁 빗줄기와 바람과 번개와 천둥과의 싸움에서 산화한 나무들이 길을 막고 누워 있는 까닭에 돌고 돌아 일터에 이르렀다.

만 하루 만에 전기가 돌아왔고, 신문은 하루 사이 변한 이웃들의 소식을 사진으로 전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간밤 사이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난 그걸 미처 모른 체 하며 여기까지 왔고…. 쯔쯔쯔.

죽음에

햇살은 여전히 따갑지만 마른 바람 불고 기온도 뚝 떨어져 바깥 일하기 참 좋은 날이었다. 오전에 그리 땀 흘리지도 않고 잔디 깍고 뜰 일을 하였는데 만 이천보를 넘게 걸었노라고 셀폰 앱이 알려준다. 어찌 보면 참 이상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오후엔 오랜만에 뜰에 나가 앉아 책을 읽었다. 새소리, 바람소리, 요령소리 들으며 책 속에서 노니는 일은 내가 누리는 사치 중 하나이다.

손에 들고 미처 책장을 덮지 못했던 임철규 선생이 쓴 <죽음>이었다. 이 책을 손에 든 계기는 책을 소개하는 글 때문이었다.

<저자 임철규 명예교수가 ‘죽음’이라는 주제로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2009년 5월 23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자살이었다. 2009년 당시에도 이미 칠순의 나이였던 저자는 봉하마을 영전에서 그를 위한 글을 바치겠노라고 약속하고, 방명록에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1939년생인 저자가 지금의 내 나이 즈음에 쓴 글이다.

저자가 책머리에 소개한 <나는 이 책에서도 ‘죽음’이라는 주제를 문학, 역사, 신화, 신학, 철학, 정신분석학 등, 여러 영역에서 넓게 조명했다.>는 말처럼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천착했던 많은 이들의 생각들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읽으며 가장 많이 밑줄을 그으며 음미했던 곳은 제4장 ‘기억, 망각, 그리고 역사 – 아우슈비츠, 그리고…’이다.

밑줄 그었던 한 대목이다.

<역사는 한때 일어난 사건이다. 기억은 한때 일어난 사건이 현재의 개인이나 집단에 하나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현재의 개인이나 집단에 일종의 역사의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 기억의 본질이라면,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기억의 ‘흔적’, 그 ‘트라우마’는 어떤 형식으로든 치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즈음 마주하는 뉴스들을 생각하며 곱씹게 된 대목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이 장(章)을 마감하는 마지막 문장은 내가 수긍할 수 없었다.

<치유되지 못한 역사의 비극과 더불어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기억의 폭력성은 인간의 역사를 계속 비극으로 끌고 갈 수 밖에 없다. 역사의 카타리시스는 없다.>라는 것이었는데, 저자가 ‘기억’과 ‘망각’을 지나치게 대립적 언어로 이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 때문이었다.

이 책 마지막 문단에 나오는 문장들이다.

<지금껏 우리는 ‘죽음’이라는 벅찬 주제를 접근이 가능한 하나의 문제로 다루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죽음은 ‘문제’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중략- 죽음은 ‘문제’가 아닌 ‘신비’의 영역에 속한다.  -중략- 죽음은 산 자가 전혀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신비’ 그 자체다.>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의 대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더 ‘현명한 것’인지 모른다. 삶을 알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찬 일이 아닌가.>

암만! ‘오늘’인 것을.

좋은 날, 잘 쉬었다. 내일은 월요일, 나는 또 손님들 빨래하러 세탁소로 나간다. 감사함으로.

살며,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잊을 것은 잊으면서.

주말에

폭염 속에서 한 주간을 보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나이에 맞게 내 노동 환경이 놀랄만치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해마다 이맘 때이면 온 몸이 소금에 절여진 채로 파죽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바깥 찌는 열기에 더해 보일러 열로 찜통이 되어버린 내 세탁소의 여름은 늘 그랬었다.

한 오년 되었나보다. 이젠 내 세탁소엔 에어컨이 빵빵 돌아간다. 물론 보일러 열기와 스팀 그 끈끈한 더위를 완전히 식혀줄 만큼 쾌적한 노동 환경은 아니다만, 그래도 땀 흘리며 집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한 주간 함께 노동을 끝낸 아내가 물었다. “벌써 한 주가 또 지났네! 뭔 좋은 계획 없으신지?”

“글쎄…필라에 올라가 장(場)도 보고 저녁이나 먹고 옵시다.”하는 내 응답과 함께 나섰던 길이다.

그렇게 장도 보고 우리 동네 음식점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난 한식 한상으로 배 채우고 돌아 오는 길, 하늘이 까매지더니만 폭우가 내려 쏟기 시작했다.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올려 차창을 내려치는 빗물을 거두어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 십 오분 여 운전을 하였을까? 비가 조금 잦아 들더니만 무지개가 눈 앞에 높은 건물에서  저쪽 하늘 끝까지 크게 다리를 놓았다.

그리고 겪은 신기한 경험, 온종일 붉게 달구어진 해가 하루의 마지막 열정으로 쏟아내는 빛으로 내 눈을 가려 선글라스를 끼게 하였는데 비는 여전히 쏟아져 차창 와이퍼는 쉬지 않고 돌아가야만 했던 일이다.

남들 경험이야 모를 일이다만, 내가 운전을 한 이후 처음 겪는 일이었다.  햇살이 부시어 선글라스를 끼었는데   동시에 비가 차창을 가리며 내려 와이퍼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 길게 내게 남았다.

무릇 삶이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삶에서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신께 감사를.

좋은 날

찌는 더위는 여전하지만, 어제 오늘은 제법 상쾌한 여름날이다. 해는 따갑지만 마른 바람으로 맑은 숨을 쉬는 참 좋은 날들이다.

가게 앞 공사판 일꾼들의 손길들도 어제는 제법 재게 움직였다. 날씨 탓인지 아님 바라보는 내 맘 탓인지는 모르겠다만.

연일 이어지던 비와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부쩍 웃자란 뒷뜰 잡풀들을 베며 땀 흘리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이 또한 숨 들이 내쉬기 좋은 날씨 덕이다.

이런 날에 꽃들이 건네는 인사를 받노라면 세상 시름 잠시 놓게 된다.

한 주 사이에 호박 넝쿨들은 커다란 호박덩이들을 맺었다. 봄에 미처 먹지 못한 알감자 여나무개가 싹을 튀어 텃밭 한 구탱이에  심었었는데 오늘 한 스무 곱은 넘게 거두었다. 조물주의 시간은 늘 같은 걸음이건만 조바심은 늘 내 몫인 듯 하다. 감자와 호박의 가르침이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다. 며늘아이를 위해 꼬리곰탕을 끓이고, 아내는 그 국물로 미역국을 끓이다. 며늘아이가 좋아하는 연어구이도 곁들이다. 고기 좋아하는 아들 녀석을 위해 스테이크와 돼지 등갈비를 굽다. 오늘 새로 시도해 본 등갈비 요리 방식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 재미의 맛이라니!

저녁식사 중에 아들 녀석이 건넨 말이다. “아빠! 우리 아이 이름 지어 주세요!”

어쩜 올 안에 나도 진짜 할아버지가 될 모양이다.

호랑이를 위하여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제법 두꺼운 장편소설이었는데, 어제 오후에 첫 장을 넘긴 후 오늘 아침 책장을 덮기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 내린 <작은 땅의 야수들, 영문 원제는 Beasts of a Little Land>이다.

소설의 저자 김주혜(Juhea Kim)는 내 아들 녀석보다 어린 이민 1.5세란다.

책 말미에 남긴 작가의 말이다. <… 아무런 인정이나 대가를 받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오직 조국의 독립에 일조한 나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와 같은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이 책의 시초다.>

소설은 1917년 부터  1964년에 이르는 세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박정희 집권 초기에 이르기 까지 혹독한 시절을 야수처럼 살아낸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을 평양, 경성, 상해, 제주 등을 배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겪어 낸 세월이었고, 1964년이면 내가 신문을 읽을 만큼 머리가 굵어졌던 때이기도 하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히 백 년 넘는 세월을 소설과 함께 하루 밤에 겪어낸 기분이었다.

주인공 옥희의 독백을 통해 만나게 되는 젊은 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은 늙막에 내가 겨우 붙든 것이어서 부끄러웠다.

<어쩌면 사람은, 그가 살아 있다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에야 비로소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 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배경은 바로 호랑이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다.

<우리가 호랑이를 볼 수 있는 건 호랑이가 기꺼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할 때 뿐이고, 그 이전에는 어림도 없는 소리죠.>

<상처입은 호랑이는 건강한 호랑이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요. 호랑이들은 영물이라 복수심을 품을 줄 압니다. 불의와 정의를 기억할 만큼 영리하고, 공격을 받아 다치면 상대를 죽일 기세로 덤빈답니다>

작가가 단 한번도 드러내지 않은 말이다만. 이야기를 읽는 내내 ‘민중’이라는 말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거니와 바로 호랑이야 말로 민중의 모습이 아닐런지.

비록 한반도에서 더는 볼 수 없다는 호랑이이지만, 정의와 불의를 가늠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온순하지만, 불의를 향해서는 누구도 막지 못할 용맹을 자랑하는 민중의 모습으로 온 세계에 퍼져 사는 사람들에게서 작가는 호랑이를 만난 것은 아닐까?

젊은 작가 김주혜를 통해 나는 역사의 진보를 또 다시 굳게 믿는다.

<나는 마침내 바다와 하나였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주인공 옥희의 말이다.

  • 제주 앞 바다 – 한반도의 열린 미래의 문이 되어야 마땅할 물을 2023년 오늘 더럽히고 있는 놈들에게 한 소리 지르고자  오후에 필라델피아 아트 뮤지엄(Philadelphia Museum of Art) 계단에 서서 외치다. “Stop! Fukushima nuclear wastewater”
  • 그 계단에 서서 또 외치다. “윤석열 탄핵! 김건희 구속!” – ‘참 가지 가지 한다.’는 욕도 아까운 백년 묵은 적폐들을 향하여!
  • 필라 하늘을 가로질러, 태평양과 대서양을 거쳐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뜻을 같이 하는 모든 민중들이 포효하는 호랑이 큰 울음으로.

길동무- 그 은총에

생업을 내려놓는 은퇴는 아직 계획에 없다만 사회적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쪽으로만 본다면 일찌감치 은퇴한 셈이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이야기 좋아하고, 이런저런 세상일에 나서기 좋아했던 시절을 마감한 때는 기억이 가물 할 정도로 오래 되었다. 그런 쪽으로 보자면 조기 은퇴한 편이고, 어쩌다 사람들이 제법 모인 곳에 갈라 치면 입 꾹 다물고 있자고 다짐을 놓곤 한다.

이즈음 들어 딱히 한인들을 여럿 만나는 경우라야 필라델피아에 올라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이나 윤석열 무리들을 몰아내자는 마음으로 모이는 ‘필라 민주 동포 모임’ 뿐이다. 이 모임에서도 그저 머리 수 채우고 박수 칠 뿐이지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없다.

아내는 아직 사회적 인간관계가 나보다는 넓은 편이다. 교회 생활도 꾸준하고 한국학교 선생도 열심이고 아직은 활발히 지내는 편이다.

나는 이런 생활이 두루 편하고 좋다. 아니 편하고 좋다기 보다는 내 나이, 내 수준, 내 형편에 여러모로 내게 걸맞은 생활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비록 시늉 짓일지라도 이런 생활에 감사를 곱씹으려 노력하는 쪽이다.

내 값싼 감사의 댓가로 누리는 신의 은총은 늘 지나치게 크다. 짧은 여행길을 돌아보니 그 은총의 크기는 가히 가늠 못할 만큼 크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 여행길을 걷고, 더불어 먹고 마시며, 어제 오늘 내일의 이야기들을 서로 고개 끄덕이며 듣고 나눌 수 있는  길동무가 있다는 사실 – 이 나이에 누릴 수 있는 그 보다 큰 은총이 또 있으랴!

그저  감사 또 감사.

-2023 퀘벡 여행 후.

<자연(自然)에>

짧은 여행 후 맞은 일상은 생각보다 분주했다. 그래도 여행을 즐긴 까닭인지 그 분주함 조차 여유로웠다. 주말에는 아들, 딸 내외까지 찾아와 마치 긴 여행이 이어지는 듯한 마음으로 시간의 흐름을 타고 논 듯하다.

여행 중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다 절로 읊조려지는 감사, 자연(自然)에 대한 감사다.폭포와 깊은 숲 – 계곡과 물이 만들어 내는 소리와 숲과 물과 구름과 안개가 서로를 품어 만들어 내는 자태에 홀렸던 시간들, 그저 감사다.

<이 대지(大地) 자체인 자연만이 유일한 만병통치약(Nature, the earth herself, is the only panacea>이라는 Henry David Thoreau의 노래가 오늘 내 것이 된 듯.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몸과 맘을 위한 만병통치약을 흠뻑 들이키며 즐긴 여행길에 다시 감사!

신앙고백

연휴를 맞아 나섰던 나흘 짧은 여행길, 돌아오니 그저 찰나(刹那)였다. 허나 참 좋은 벗 내외와 우리 내외가 함께 했던 그 짧은 시간들을 내가 기억 하기에 따라 내겐 영원(永遠)이 될 수도 있을 터.

함께 느긋하게 먹고, 천천히 걷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아내들이 쇼핑하는 즐거움을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구름 속에서 만난 신(神)에게 드리는 감사다.

보잘 것 없는 내 삶 뿐만 아니라 내가 함께 하는 가족들과 이웃들 나아가 뉴스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하시는 신을 나는 믿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시고 평등하신 은총을 내리시는 신을 믿는다.

오늘 살아 숨쉬는 모든 삶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 간 이들과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내일의 생명과 함께 하시는 신을 믿는다. 이른바 역사와 함께 하시는 신을 믿는다.

허나 신은 언제나 내가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넘어선 손길로 내 개인적 삶과 오늘이라는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무리들과 어제와 내일을 아우르는 역사 속에서 일하심을 믿는다.

일테면 내가 생각하는 내 자신이 행한 선과 악의 행태를 가름하는 잣대로 상과 벌을 주시는 일은 절대 않는다는 사실, 또는 도둑놈 강도 나아가 타락하여 저열하고 비겁하고 무자비한 권력자들에게 벼락을 내려 일거에 몰살 시켜 버리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는다.

신은 오직 그만의 깊고 독특한 방법으로 일하심을 믿는다.

때론 엇나간 내 삶을 향해 ‘사람되기’를 촉구하시는 그 방법대로 뉴스 속 답답한 세상사를 향해 신은 오늘도 기다리시며 그의 뜻을 헤아리도록 일깨우시는 일을 쉬지 않고 있음을 믿는다.

‘사람되기’를 일깨우시는 신의 소리를 듣고 사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짧은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구름 속에서.

오직 감사함으로.

7. 5. 23

세월

아버지날 아버지를 뵙다. 누워지내신 지 두 해 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신기하기도 하지, 욕창 하나 없이 얼굴은 아직도 맑으시다. 다 내 누이들 공덕이다.

“어 왔구나!”. 짧은 인사를 건네시는 아버지 얼굴이 환하다.  드믄드믄 건네시는 말, “이젠 내가 할 일이라고는 즐겁고 감사하게 마지막 시간 기다리는 일….”

그리고 채 십분이 지나지 않아 불편함을 토로하시는 짜증. 아무렴 내 아버지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 계시다.

아들과 사위, 딸 며느리의 아버지날 전화 인사를 받다. 두어 주 후에 다들 오겠단다.

잔디를 깍다. 나는 아직도 Riding Lawn Mower가 아닌 내가 밀고 다니는 잔디 깍기 기계를 쓴다. ‘운동 삼아…’하는 내 말은 진심이다. 잔디 깍는 날이면 족히 만보는 걷기 때문이다. 물론 이즈음 잔디 깍는 날이면 ‘Riding Lawn Mower를 사야지…’하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하여 나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다.

아내에 대한 첫 기억은 내가 고등학교 이학년 때의 일이다. 아내는 중학교 일학년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다만 남는 기억은 그 때이다. 그렇게 한 동네, 한 교회에서 자랐다.

그리고 세월 흘러 아내가 한 여자로 내게 다가온 것은 그녀가 대학 삼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백수(白手)였다.

몇 년, 짧다 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해 예까지 왔다. 그렇게 결혼 후 쌓인 세월이 또 사십 년이다. 하여 영원할 것 까진 없지만 오늘은 온전한 동지다.

2023년 아버지 날에 내가 누리는 축복이다.

아쉬움을 품지 않고 저무는 삶이 얼마나 되겠느냐만, 이제라도 후회를 되씹어야 하는 시간을 보내지는 말진저.

하여 또 꿈을 꾼다.

그렇게 읊조려보는 정희성의 시 한편.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무릇 부부, 가족, 동지(同志)란 다 그렇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뒤적여보니 40년 전 우리 내외도 푸르렀었다.

*글라디올러스 꽃망울 맺힌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