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시간의 향기> – 삶에 있어서 머무름, 기다림, 느긋함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철학자 한병철의 생각이 담긴 책이름이다.

‘사색적인 삶이 풍요롭다.’라는 명제는 멋있다. 그러나  ‘사색적인 삶’이 시간에 늘 쫓겨 살수 밖에 없는 평범한 속물인 내겐 애초 가당치 않는 전제이므로 ‘풍요’ 역시 내가 누릴 몫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사색적인 삶’이란 진짜 가당치 않은 지적 사치일 뿐이다.

딸아이가 모처럼 주말을 함께 보내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일요일 오후, 기다리는 버스가 한시간 반여 늦게 도착하였다. 계획에 없이 딸아이와 함께 했던 한 시간 반 동안의 시간은 내게 자유를 일깨워 주었다. 아이의 직장생활과 향후 계획, 남자친구와의 이야기들을 묻고 들으며 버스가 늦어지는 시간에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딸아이와 아내는 때론 아주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르기도 하다. 둘 사이에 도대체 닮은 게 무엇이 있을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거니와 너무 똑같아 깜짝 놀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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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다는 것은 단순히 구속되어 있지 않거나 의무에 묶여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를 주는 것은 해방이나 이탈이 아니라 편입과 소속이다. 그 무엇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는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자유롭다- frei, 평화- Friede, 친구- Freund와 같은 표현의 인도게르만어 어원인 ‘fri’는 ‘사랑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자유롭다는 것은 본래 ‘친구나 연인에게 속해 있는’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바로 사랑과 우정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묶여 있지 않음으로 해서가 아니라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진다. 자유는 가장 전형적인 관계적 어휘다. >

한병철이 <시간의 향기>에서 하는 말이다.

내가 딸아이가 타고 갈 버스가 늦게 도착한 것을 감사하며 자유를 생각한 까닭이다.

아직도 성실하고 깨끗하기를…

며칠 전 모처럼 만난 지인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최근 한국에서 새로 임명된 장관 한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새로 임명된 그 장관과 지인은 동향이었으며, 장관이 한때 미국에서 지낼 때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지인이 내게 했던 말이다.

“나는 그 친구를 아주 성실하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어요. 공직자으로써 자기 일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기도 했고요. 내가 뭐 한국 떠나온지 40여년인데 그쪽 뉴스 어디 그렇게 잘 보나요? 낯익은 이름이 뉴스에 나오길래 좀 눈여겨 보았지요. 처음엔 참 잘됬다 싶었어요. 그만한 사람이면 장관 한번 할만하지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허 근데…. 그거 아니더구먼요. 내가 사람을 잘못 봤었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니면 사람이 많이 바뀐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였고요. 아무튼 그 친구에 대한 뉴스들을 주욱 보면서 한국사회 이른바 엘리트계층이 참 많이 상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사는 동네 한인들을 만나 한국에 대한 이야기, 특히 한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화제가 그쪽으로 달려가면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경험상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남이나 호남 출신들이 주를 이루는 모임에서 한국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그날 하루 기분을 잡치는 일이 되고 만다. 출신지역 뿐만 아니라, 언제쯤 이민을 왔는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따라 들어보나마나 그들이 하려는 말은 이미 들은 것이나 다름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여 가깝게 지낼수록 한국 정치 이야기는 금물이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다 좋고 착하며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들이다.

여기 살다보면 한국에서 연수나 연구차 또는 파견근무 등등으로 일이년 정도 단기 거주를 하거나 수년 동안 장기거주를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들과 연을 맺을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 가운데 회사원들도 있지만 주로 공무원들이나 교수들이 많다.

내 기억 속에도 손으로 꼽을 수 없을만큼 많은 얼굴들이 있다. 생각해 떠올릴수록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착하고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종종 한국 뉴스에 오르내리던 인물들도 있었다. 대개의 경우 며칠전 지인이 이야기했던 신임장관과 같은 인물의 모습으로 뉴스에 오르내리던 것이었다. 그 때마다 나 역시 지인처럼 혀를 차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지인이나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대변한다고는 결코 생각치 않는다. 그들보다 많은 이들이, 아니 그들 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착하고 성실하며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공직이나 교직에서 땀흘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휴일 그리고 좌파

노동절 휴일도 저물었다.

어제 농사짓는 벗이 땡볕에서 땀 흘려 키운 열무 몇 단을 보내왔다. 그의 노동을 생각하며 열무김치를 담갔다. 실히 병 하나를 채우고도 남았다. 농사짓는 친구 덕에 이젠 김치도 곧잘 담게 되었다.

얼마전에 만두 먹으러 중국인촌에 갔다가 사서, 다듬어 얼려놓은 오리고기를 꺼내어 주물럭구이를 만들었다. 기름기가 노인들에게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아 고기만 저며 했더니 양이 참 적었다.

이즈음 다리가 불편해 거동이 힘드신 아버지는 “이게 다 6,25 때 박힌 수류탄 파편 탓”이라며 혀를 차신다. 내일 MRI 찍기 위해 병원 나들이를 하신다.

암기운이 다 가신  듯  가신 듯 하면서도, 잊힐만 하면 문제가 있다는 의사 소견에 움찔하시는 장모도 내일 병원 나들이를 하신다.

양쪽 노인들 몫으로 조금씩 떼어 놓고보니 우리 부부 양념에 비벼 한끼 식사로 딱 적합하였다.

이런 저런 뉴스들을 훑어 보다가 저녁나절 묵자(墨子)를 읽는다. 묵자를 읽는다기 보다는 문익환과 신영복을 읽는다가 맞겠다. 그 분들이 읽은 묵자를 내가 읽고 있기 때문이다.

묵자나 예수나 그들이 살았던 그 시대의 눈으로 비추어 보면, 아니 어쩌면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극단에 서 있는 좌파 일수도 있을 것이다.

“강자는 약자를 억누르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능멸하고, 귀한 사람은 천한 사람에게 오만하며 간사한 자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며, 천하의 화와 찬탈과 원한이 생겨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愛人若愛其身)”는 묵자의 가르침은 예수에 닿아 있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愛人若愛其身)”는 선언은 이미 혁명일 것이다. 입으로 말고 몸으로 서로가 실천하는 세상은 혁명 이후에나 가능할 것 아닐까? 극좌에 있는.

휴일 뉴스들은 나를 좌파로 몬다. 일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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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Common Sense)이 혁명으로

한 두어 주 전에 Jury duty(배심 의무) 로 법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날 배심원으로 소집된 사람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면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이 다섯 가지를 명심하십시요. 첫째 공정해야 합니다. 둘째 주의깊게 들어야 합니다. 셋째 배심 사건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언론과 접촉 해서는 안됩니다. 다섯째 상식적으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날 교육자는 마지막 항목인 상식적으로 판단하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법정은 배심원 여러분들에게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요구되는 판단 기준은 바로 상식입니다.”

상식이란 것이 어느 곳, 어느 때나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또한 시대와 상황에 따라 상식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상식적 판단이란 비단 법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모든 일상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식이란 자기 자신 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함께 생각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걸어다니는 혁명가”로도 불리우는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 – 1809)은 그의 별명과는 다르게 “상식(Common Sense)”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만일 그의 저서 “상식”이 없었다면 역사상 미국독립은 없었거나 늦어졌거나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임으로 세계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이 말했던 상식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다. 바로 민주공화국이 옳다는 것이다. 그 시대 그가 말한 민주공화국의 주인이 백인 남성으로 국한된 지극히 편협한 상식일지라도 그것은 혁명이었다. 민(民)이 주인되는 세상이 상식이라고 선언한 까닭이다.

그가 “상식”에서 말하는 말하는 사회(society)와 정부(government)를 곱씹다보면 민이 해야할 일들이 저절로 들어난다. 하여 상식이 혁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회를 만든 것은 우리의 필요이고, 정부를 만든 것은 우리의 악함이다. 사회는 우리의 관심을 통합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키고, 정부는 우리의 악함을 억제함으로써 소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킨다. 전자는 소통을 촉진하고, 후자는 구분을 만들어낸다. 전자는 후원하고, 후자는 징벌한다.

사회는 어떤 것이라도 축복이지만, 정부는 최고의 것이라도 필요악일 따름이다. 최악은 참을 수 없는 정부다. 정부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거나 고통을 겪을 경우 우리는 차라리 정부가 없는 나라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수단을 우리 자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불행은 더욱 커진다.

Society is produced by our wants, and government by our wickedness; the former promotes our happiness positively by uniting our affections, the latter negatively by restraining our vices. The one encourages intercourse, the other creates distinctions. The first a patron, the last a punisher.

Society in every state is a blessing, but government even in its best state is but a necessary evil; in its worst state an intolerable one; for when we suffer, or are exposed to the same miseries by a government, which we might expect in a country without government, our calamity is heightened by reflecting that we furnish the means by which we suffer.>

그리고 2016년,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정부를 향해 제발 “상식을 지켜 달라”며 단식으로 곡기를 끊은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할 수 있는 건 정말로 다 해봤어요. 이제 진짜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남지 않아 단식을 합니다. 오늘도 피가 마르고, 빼가 녹는 유가족들이 더는 거리에 나서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아들 재욱 군을 잃은 홍영미씨가 단식농성을 시작하며 한 말이라고 한다. 이날 홍영미씨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특검 도입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17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유경근 집행위원장과 장훈 진상규명분과장과 함께 동조 릴레이 단식농성에 나선 것이었다.

“아직도 제대로 울어보지 못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유가족들을 응원하며 함께 합니다.”

단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필라델피아에서 동조 릴레이 단식을 시작하며 누군가 던진 말이다. 그렇게 하루씩 이어가며 필라델피아에서도 단식이 이어지고 있다.

김태형“살아생전 처음으로 단식을 해 보았습니다. 밥 먹는걸 지상 최대의 행복으로 알고 지금도 모든 소득을 먹는 것에 투자하는 저에게 단식은 가장 힘겨운 과제였는지도 모릅니다. – 중략 – 2년이 넘게 이런 고통에 힘겨워 하시는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가족과의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도 모자라 여전히 진실보다는 온갖 말도 안되는 비난과 거짓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부디 하루라도 빨리 진실규명이 이루어져 세월호 유가족 모두가 이 고통에서 자유롭게 되길 희망합니다. 그 날이 올때까지 응원과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권오달

“지금의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은 세상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힘을 솟아나게 하고 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은 달라져야 하고 바꿔져야 한다. 유가족들의 사생결단의 의지가 있고, 지지, 동조, 연대하는시민과 사회 단체들과 해외동포들도 적지 않다. 비록 하루이며 작은 힘이지만 동조, 지지, 연대하면서 커다란 물결로 변화 발전해 나간다면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상은 어디서나 만들어 갈 것이다.”

이종국

상식이 혁명이 되어, 언제 어디서건 얼굴색깔 구분없이 빈부귀천 남녀노소 차별없이 모든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와 정부를 선택해 만들고 세우는 세상을 꿈꾸며.

그래, 몸짓으로 박수를 치자.

나는 체구가 작고 몹시 마른편이다. 내 또래들은 나이살이니 뱃살이니 하며 고민들을 하더라만,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종종 듣는 “아니 왜 그렇게 못 먹었어?”라는 말은 철든 이후 줄곧 나를 쫓아 다닌 것이어서 이젠 웃음으로 대신한다.

그런 나는 배에 기름기가 없어서인지 끼니를 거르는 상황을 상상조차 아니한다. 하루 삼시 세끼 매일 얼추 같은 시간에 거의 같은 양의 식사를 하는 내게 한끼를 거른 때의 기억은 거의 없다. 한끼라도 제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으면 견디지를 못한다고 할 정도로 그 점에 대해서는 예민하다. 그렇다고 먹는 양이 많은 것은 아니다. 지나친 포만감은 매우 불편해 하는 편이라 늘 조금 덜찬듯하게 먹는다.

이런 내게 금식이나 단식이니 하는 말들은 애초 아무 연관이 없다. 내 스스로 예수쟁이라고 떠들고는 다니지만 ‘금식기도’니 ‘단식기도’니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안식일에 밀이삭을 훑어 먹는 제자를 넉넉한 눈으로 바라보는 예수의 모습이 내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식기도를 하는 사람들이나 단식을 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못하는 나는 그들이 대단하다고 여길 때가 많다.

물론 아주 어릴 적엔 금식도 해 보고 단식도 해 본 경험이 있다만 모두 스물살 즈음의 일들이었고, 생활인이 되고난 후엔 단연코 단 한번도 없다.

그런 내가 오늘, 한끼도 아니고 만하루 세끼 식사를 거르려고 결심을 한 까닭은 모두 사람들을 잘못 만난 탓이다. 지금 내가 먹고 사는 일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일로 맺어진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은 바로 세월호 사건과 유가족들을 잊지말자고 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가운데 미시건에 사는 사람들이 먼저 릴레이 단식을 제안했다는 것이고, 뉴욕 뉴저지를 돌아 인근 필라델피아 사람들이 연이어 동조했다는 것이다.

지난 16일부터 한국 광화문광장에서  ‘사생결단을 내기 위한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힘을 보태자고 그리 하였다고 한다.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유경근씨는 17일 단식에 임하는 글을 그의 페북에 올렸다.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저는 어제(17일)부터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사생결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사생결단을 내기 위한 단식’이라는 뜻입니다. – 중략 – 호기있게 “사생결단식”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사실 많이 두렵습니다. 2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건강 때문이기도 하고, 장기간 단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도 저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은 결국 두 야당이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침몰시키는 데 정부여당 못지않은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가 20대 국회의 야당에게 바라는 것은 ‘개돼지’ 취급당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정치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동안 수많은 유무명 인사들의 단식행위에 대한 소식들을 들어왔지만 거기에 동조를 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이번 일이라고 별다르지 않았다. 비록 주위에 아는 이들이 하루씩 릴레이 단식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이고, 어려운 일들 하네, 수고가 많네.” 정도의 치사를 던지는 것으로 내 몫은 끝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늦은 저녁 한 사내의 이름이 떠올랐고, 그 사내가 죽던 세상보다는 그래도 지금이 많이 나아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내가 하루 세끼 거르는 일도 좀더 나은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위해 박수정도 쳐주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더해졌던 것이다.

내 또래 사내의 이름은 광주사람 박관현(朴寬賢)이다. 그는 만 29살이던 지난 1982년에 50일 동안 이어진 옥중단식 끝에 짧은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당시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시인 김남주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읊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박관현 동지에게
– 김남주

혼자서 당신이 단식을 시작하자  / 물 한모금 소금 몇 알로 / 사흘을 굶고 열흘을 버티자 / 어떤 이들은 당신을 웃었습니다 / 배고픈 저만 서럽제 그러며

밤으로 끌려가 어딘가로 끌려가 / 만신창이 상처로 당신이 돌아오자 / 돌아와 앓는 소리 끙끙으로 사동을 채우자 / 어떤 이들은 당신을 웃었습니다 / 맞은 저만 아프제 그러며

물 한모금 소금 몇 알로 / 끼니를 때우고 스무 날 마흔 날을 참다가 / 심근경색으로 당신이 숨을 거두자 /어떤 이들은 당신을 웃었습니다 / 죽은 저만 불쌍하제 그러며

그러나 나는 보았습니다 / 그들이 냉수 한 사발로 타는 목 축이고 /남은 물 그 물 손가락으로 찍어 세수하고 / 세수한 물 그 물로 양치질하고

여름이면 철창 밖으로 고무신을 내밀어 빗물을 받아 / 갈증을 풀던 그들이 / 당신의 죽음 그 덕으로 철철 넘치는 대야물에 세수하고 / 따뜻한 물로 십 년 묵은 때까지 벗기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 낮이고 밤이고 일 년 삼백예순 날 / 햇살 한 줄기 제대로 못 구경하던 그들이 / 푸르고 푸른 오월의 하늘 아래서 / 입이 째지도록 하품을 하고 /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돋친 듯 기지개를 켜는 것을

나는 또한 보았습니다 / 주면 주는 대로 먹는 게 제 분수라 여기고 / 때리면 때린 대로 맞는 게 제 분수라 여기고 /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었던 그들이 / 간수한테 대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 반말을 한다고 항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식이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 야단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루아침에 / 썩은 배추가 싱싱한 상추로 둔갑하여 / 그들의 식단에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박관현 동지여 / 우스운 당신 한 사람의 죽음으로 / 만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 /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싸우는 인간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2016년 이 문명의 세월에 중년의 한 사내가 ‘사생결단을 내기 위해’ 곡기를 끊고 싸우는 까닭은 허망하게 죽어 간 자식의 한(恨)과 그 한으로 응어리진 살아있는 애비의 원(怨)을 풀고자 함이 아니다. 다시는 그런 한과 원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 시절 박관현에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할만큼 외로웠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유경근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를 위해 비록 하루 세끼지만 끼니를 거르며 힘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어찌 손뼉박수만으로  족하랴.

하여 나도 몸짓으로 박수를 보내려 한다. 더는 단식 같은 일이 반복되는 세상이 끝났으면 하는 바램으로.

필라 세사모 소식지 – 4

연일 100도 가까이에 이르는 찜통더위가 이어진다.

이 무더운 날, 세월호를  기억하자며 필라델피아 인근 마켓에서 전단지를 돌리거나, 워싱톤 백악관 앞에 서 있거나 하는 벗들이 있다. 누군가는 모처럼 한국 나들이한 시간들을 광화문과 안산에서 보내고 왔다.

그들이 네번째 만든 ‘필라 세사모 소식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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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일 일기(日記)

오늘 아침에 루이지애나(Louisiana)에서 세명의 경찰관이 피살되었다는 보도이다. 잇단 미국내 총기 사건 소식들 뿐만 아니라 며칠전 프랑스의 대혁명 기념일에 일어났던 프랑스 니스테러 사건을 비롯한 지구촌 사건 사고들은 끊이지를 않는다.

보고 듣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보이고 들리는 한국내 뉴스들에 이르면 이즈음 찜통 열기에 이는 짜증이 더해진다. 개 돼지에서부터 종놈, 상놈에 이르게까지, 2016년 이 문명의 세월을 조선시대가 아닌 고대로 되돌려 살아가려가는 무뢰배들을 향해 치미는 화 때문이다.

오늘은 모처럼 필라델피아 나들이에 나서 다민족, 다문화 일치를 내세우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한국마켓 장을 보고 돌와왔다.

다민족, 다문화를 내세운 교회에서도 한인교회 또는 전통적인 미국인들 교회들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에 크게 실망하였다.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라는 이는 사람들의 신앙 깊이를 여섯 단계로 나누어 신앙발달 단계를 설명한바 있지만 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 수준도 그곳에 맞출 수 있을 듯하다.

파울러가 말한 겨우 두번 째 단계인 신화적이고 문자적인 단계(mythic-literal faith)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교회들의 모습에 이젠 조금 지치기도 한다.

한국마켓 장을 보러 갔다가 찜통 더위 속에서 세월호 소식지를 배포하고 있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반가움도 잠시 이내 답답함으로 변했다. 무지하고 뻔뻔하게 자기밖에 모르는 내 나이 또래 사내의 목청 높은 소리 때문이었다.

그 자리를 급히 떠난 까닭은 내게 일행이 있었다기 보다는 “이 나이에 내가 뭘…”하는 주눅이 앞섰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돌아와 습관으로 성서에게 묻는다.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신을 향해.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를 주문하다.

주일아침, 세월호 그리고 시

사람들이 내세웠던 일반적인 예상과는 사뭇 다른 한국 총선 결과를 두고 입달린 이들의 말들이 차고 넘칩니다. 그 며칠 사이에 전해오는 뉴스들의 논조도 많이 바뀌어졌습니다.

이대로 사그러질 것만 같았던 세월호 이야기가 마침 2주기에 맞물려 상당 지면을 차지하고 있음도 그 바뀐 정황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남쪽의 조선을 자임하는 조선일보 등의 철저한 외면은 여전하지만 말입니다.

뉴스를 훑던 눈으로 성서를 들고 성서에게 묻습니다. 마침 주일 아침인 까닭입니다.

성서 구약에 있는 시편 22편입니다.(알기쉽게 번역한 공동번역 개정판으로 읽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살려달라 울부짖는 소리 들리지도 않사옵니까?  나의 하느님, 온종일 불러봐도 대답 하나 없으시고, 밤새도록 외쳐도 모르는 체하십니까?> – 22편 1-2절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 세상에서 천더기, 사람들의 조롱거리,  사람마다 나를 보고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댑니다. “야훼를 믿었으니 구해 주겠지. 마음에 들었으니, 건져주시겠지.” 당신은 나를 모태에서 나게 하시고, 어머니 젖가슴에 안겨주신 분, 날 때부터 이 몸은 당신께 맡겨진 몸, 당신은 모태에서부터 나의 하느님이시오니 멀리하지 마옵소서. 어려움이 닥쳤는데 도와줄 자 없사옵니다.> -6-11절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주시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 개 입에서 빼내 주소서. 가련한 이 몸을 사자 입에서 살려주시고, 들소 뿔에 받히지 않게 보호하소서. > – 20-21절

시편 22편은 까닭도 모른채 덮쳐온 고통과 고난속에서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이들이, 이웃들의 멸시와 조롱에 시달리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구원의 손길을 부르짖는 소리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 가운데서 지난 두해동안 세월호 유가족들과 그들과 함께 하려고 애썻던 이들이 부르짖던 소리를 듣습니다. 또한 그 세월 동안 부르짖는 소리들을 의도적으로 묵살하고 외면했던 이들의 모습들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아무런 상관없이 무심히 자신들의 일상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거의 제 모습입니다.

시편 22편은 울부짖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끝내 이루어질 희망과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나아가 확신에 찬 믿음으로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시는 야훼 하나님을 고백하는 소리를 전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옥좌에 앉으신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이 찬양하는 분, 우리 선조들은 당신을 믿었고 믿었기에 그들은 구하심을 받았습니다. 당신께 부르짖어 죽음을 면하고 당신을 믿고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 3-4절

<내가 괴로워 울부짖을 때 ‘귀찮다, 성가시다.’ 외면하지 않으시고 탄원하는 소리 들어주셨다.> – 24절

울부짖음과 구원 사이에 어떤 이야기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주고 받는 값이 없습니다. 울부짖음이 있는 현장에 야훼 하나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이른바 무상성(無償性)이요, 조건없음입니다.

그러나 시편 22편은 때론 공허하기만 합니다.

현실은 여전히 울부짖는 소리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광화문 광장에 일만이 아닌 백만이 넘쳐나도 여전히 “세상에서 천더기, 사람들의 조롱거리,  사람마다 그들을 보고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거리는 세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고한 자들이 당하는 고통과 고난이 여전히 이어지는 세상을 향해 시편 22편이 던지는 맺음말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겨레에게 알리고 예배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리니,  “야훼를 경외하는 사람들아, 찬미하여라. 야곱의 후손들아, 주께 영광 돌려라. 이스라엘의 후손들아, 모두 다 조아려라.> 22-23절

<온 세상이 야훼를 생각하여 돌아오고 만백성 모든 가문이 그 앞에 경배하리니, 만방을 다스리시는 이 왕권이 야훼께 있으리라. 땅 속의 기름진 자들도 그 앞에 엎드리고 먼지 속에 내려간 자들도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리라. 이 몸은 주님 덕분에 살고, 오고오는 후손들이 그를 섬기며 그 이름을 세세대대로 전하리라. 주께서 건져주신 이 모든 일들을 오고오는 세대에 일러주리라.>

바로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지금 울부짖는 소리(사람)들과 함께 구원의 소망이 이루어질 것임을 믿고, 그들과 함께 손잡고 확신에 찬 구원의 기쁨을 외치라는 맺음구입니다.

다시한번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여전히 진실을 향한 애타는 소리들과 고통을 벗어나고자하는 애달픈 소리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한낱 어리석은 소리로 들릴수도 있는 맺음구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신앙이요, 믿음이라고 성서는 다시 다잡아 일러줍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 – 고린도전서 1장 18절>라고 말입니다.

주일 아침, 신경림 시인의 시를 성서의 눈으로 다시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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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 신경림

아무도 우리는 너희 맑고 밝은 영혼들이
춥고 어두운 물속에 갇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밤마다 별들이 우릴 찾아와 속삭이지 않느냐
몰랐더냐고 진실로 몰랐더냐고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이토록 허술했다는 걸
우리가 만들어온 세상이 이렇게 바르지 못했다는 걸
우리가 꿈꾸어온 세상이 이토록 거짓으로 차 있었다는 걸
밤마다 바람이 창문을 찾아와 말하지 않더냐
슬퍼만 하지 말라고
눈물과 통곡도 힘이 되게 하라고
올해도 사월은 다시 오고
아름다운 너희 눈물로 꽃이 핀다
너희 재잘거림을 흉내내어 새들도 지저귄다
아무도 우리는 너희가 우리 곁을 떠나
아주 먼 나라로 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바로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뜨거운 열망으로 비는 것을 어찌 모르랴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보다 알차게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을 보다 바르게
우리가 꿈꾸어갈 세상을 보다 참되게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아름다운 영혼들아
별처럼 우리를 이끌어 줄 참된 친구들아
추위와 통곡을 이겨내고 다시 꽃이 피게 한
진정으로 이 땅의 큰 사랑아

4월을 준비하는 사람들

부활주일 아침입니다.

먼동이 트기전 동네 한바퀴를 돌며 들었던 새들의 노래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소리들은 늘 그렇게 지저귀고 있겠지만, 제 듣는 귀는 오늘처럼 아주 특별한 날에만 열리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영영 듣지 못하고 한해를 보내기도 했겠지요.

뒤뜰 개나리 흐드러진 이 아침에  부지런히 4월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소식 하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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