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를 생각함

어제 내린 눈이 뜰을 하얗게 덮었다. 주일아침의 적막함은 내가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뒷뜰 눈밭에 소리없이 내려앉은  아침햇살은 적막함에 푸근함을 더한다.

시집 하나 손에 든다. “내 가슴에 매화 한그루 심어놓고”

얼핏 춥고 시리게만 보이는 세상을 향해 은은한 매화 향기 전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편지 한 장 쓴다.

1-8

새해가 되면 이따금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손님들이 계시답니다. 올해 음력설은 언제냐?라는 물음입니다. 올해는 1월 28일이 Chinese New Year로 잘 알려진 음력설이랍니다.

잘 아시다시피 중국을 비롯한 인근 동양국가들은 오래 전부터 음력 달력을 사용했답니다. 그런데 이 음력달력은 태양의 움직임에 깊게 영향을 받는 농사꾼들에게 불편한 점이 많았답니다. 그래서 사용한 것이 24절기라는 것입니다. 일년을 24절기로 나눈 것인데 이 절기는 우리들이 사용하는 태양력에 맞춘 것이랍니다.

24절기 가운데 태양력으로 제일 첫번 째 절기는 소한(小寒)입니다. 지난 1월 5일(목)이 소한이었답니다. 소한이라는 말은 ‘조금 추운 날’이라는 뜻이지만, 실제 한국에서는 일년 중 가장 추운 날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답니다. 실제 아주 춥기도 하고요.

일년 중 가장 추운 날이라는 소한 무렵에 피는 꽃이 있답니다. 매화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에는 이 매화에 대한 시들이 넘쳐나게 많답니다. (이즈음 사람들에겐 잊혀진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말입니다. 이즈음엔 사계절이나 24절기와는 아무 상관없이 꽃들이 피고 지는 세상이 되었으니 옛사람들이 매화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르는게 당연할 수도 있겠지요.)

옛 한국인들이 매화를 노래한 시만 모아서 펴낸 시집이 제게 있답니다. 시집의 제목은 “내 가슴에 매화 한그루 심어놓고”인데, 시집에 실린 시들을 읽다보면 왜 옛사람들이 매화를 좋아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답니다.

혹시라도 지금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처지에 있다면, 삭막하고 어둡고 추운 한겨울에 피는 매화를 보며 힘을 내고, 이제 곧 모든 세상이 활짝 필 봄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매화를 바라본 것이랍니다.

2017년 1월의 두번 째 일요일 아침에 제가 읽은 매화 시 한편을 당신과 함께 나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온갖 꽃 중 매화만  눈 속에서 피어나서

그윽한 향기 마치 내 마음을 안다는 듯

달빛 아래 홀로 있어도 네(매화)가 있으니 행복하여라


 

capture-20170108-093440Around this time of year, some customers occasionally ask me a question. It is “when is the lunar New Year’s day this year?” This year, January 28 is the day, which is well known as Chinese New Year’s day.

As you know well, the lunar calendar has been used since a long time ago in China and other countries in the Orient. But, it gave many inconveniences to farmers who had to farm according to the motion of the sun. So, the twenty-four seasonal divisions (or solar terms) were devised. As the term indicates, they divided a year into twenty-four terms, reflecting the motion of the sun. In a sense, they were the way to adjust the lunar calendar to the solar calendar.

The first of the 24 divisions is ‘Sohan (소한, 小寒).’ January 5 (Thursday) was that day this year. Though the word ‘Sohan’ means ‘somewhat cold day,’ in reality, it is regarded ‘the coldest day of year’ in Korea. It is usually very cold on the day.

There is a flower which blooms around ‘Sohan,’ the coldest day of year. It is a Plum blossom. There are numerous poems about a Plum blossom in China and Korea. (Unfortunately, it has become just one of so many things that people in these days have forgotten. As flowers bloom and fall regardless of seasonal divisions, nowadays, it may be no wonder that people don’t know how much people in the old days loved a Plum blossom.)

I have a collection of poems which Koreans in the old days wrote about a Plum blossom. Its title is “After I plant a plum tree in my heart (내 가슴에 매화 한그루 심어놓고).” If you read the poems in the book, you will understand why people in the old days loved a Plum blossom.

They looked at a Plum blossom and heard the message: if you are in difficult and adverse circumstances, get strength by looking at Plum blossoms which bloom in desolate, dark, and cold winter, and prepare for the not-too-distant spring in which all the world will burst into bloom.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a few lines of a poem on a Plum bloom this second Sunday morning of January 2017.

From your cleaners.

Only a Plum bloom of all flowers blossoms in the snow,

As if its sweet scent knew my mind,

I am happy, though I am alone under the moonlight, because you (a Plum bloom) are here.

삶과 시간

새해 첫날을 맞기 전, 집안에 달력들을 바꾸어 건다. 이제 내일이면 2017년이란다.

신혼, 새살림에 바쁠 아들 내외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았단다. 그게 또 예쁘고 고마웠다는 노인들이 손주와 손주 며느리를 위해 준비한 것이 없다며 외식을 제안했단다. 우리 내외가 외식을 권하면 손사래를 치며 미동도 하지 않던 분들이었다. 이즈음엔 아버님 걸음걸이가 신통치 않아  집밖 출입은 아예 삼가던 노인들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내와 나는 부랴부랴 식당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모처럼 삼대가 모여 앉아 한해를 보내는 저녁을 함께 했다.

필라에 사는 아들 내외에게 늦기 전에 부지런히 올라가라고 했는데, 가는 길에 홀로 계신 제 외할아버지에게 들려 시간을 보내고 갔단다. 나보다 나은 아이들이 고맙다.

이렇게 2016년 한 해가 저문다.

낮에는 필라에 올라가, 생각이 같아 만나면 반가운 이들과 잠시 시간을 함께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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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돌아보며 손에 든 책은 장자(莊子)다.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 奚以知其然也? 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 此小年也.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동안 사는 자는 오래 사는 자에 미치지 못한다. 어떻게 그 것을 알 수 있는가? 하루살이 버섯은 아침과 저녁을 알지 못한다. 한철만 사는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이것들은 짧은 동안 사는 것들이다.

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 而彭祖乃今以久特聞. 衆人匹之, 不亦悲乎?

초나라의 남쪽에 명령(冥靈)이란 나무가 있는데, 5백년을 한 봄으로 삼고 5백년을 한 가을로 삼는다고 한다. 태고 적에 대춘(大椿)이란 나무가 있었는데, 8천년을 한 봄으로 삼고, 8천년을 한 가을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팽조는 지금까지도 오래 산 사람으로 특히 유명하다. 보통 사람들이 그에게 자기 목숨을 견주려한다면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삶과 앎과 기쁨과 행복이 어찌 시간의 길이에 달려 있으랴!

천년을 하루로 살기도 하고, 하루를 천년으로 살기도 하는 것이 사람사는 모습이거늘.

2016.12.31.

2016년 마지막 날엔…

오늘 제 이메일 함에 놓여있는 편지 한장의 내용입니다.

12-31-16“가령 말일세, 쇠로 된 방이 있다고 하세. 창문은 하나도 없고 절대로 부술수도 없는 거야. 안에는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이 많아. 오래잖아 숨이 막혀 죽고 말 거야.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그대로 죽음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빈사(瀕死)의 괴로움 따위는 느끼지 않아.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 다소 의식이 또렷한 몇 사람을 깨운다면, 이 불행한 몇 사람에게 결국 살아날 가망도 없이 임종의 괴로움만 주게 되지. 그래도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몇 사람이 깬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지 않는가?”

위 대화는 루쉰이 글쓰기를 주저하자 계몽잡지 편집자인 그의 친구가 그를 설득하며 나눈 대화입니다. 20세기 초 식민지 열강의 혼란 속에서 루쉰은 이렇게 그의 글을 통해서 잠든채로 서서히 죽어가는 국민들을 깨우는데 자신의 몫을 다하였습니다.

제가 촛불을 드는 이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304명의 아이가 죽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 희생자 가족을 국가가 폭력적으로 억압해도 침묵하는 사회…저는 이런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기에 촛불을 듭니다.

제가 촛불을 든다고 루쉰 같은 영웅이 될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작은 촛불이 그 누군가에게 공동체를 생각하는 미세한 희망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촛불로 불타오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공동체에 무관심한 이 단단한 쇠로 된 마음을 깨뜨릴 수만 있다면 저의 몫은 차고 넘치리라 생각합니다.

2016년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필라에서도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근 마을 필라델피아에서 벌써 다섯 번 째 촛불을 든다고 하는데,  저는 한번도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리라는 생각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촛불을 들게 할 부추김도, 누군가의 단단한 마음을 녹이거나 깨뜨리려는 의도도 없답니다. 그렇다하여도 이 편지를 보낸 누군가의 소망에는 함께 하고 싶습니다.

언제 어느 때나 항상 새롭게 말을 건네시는 성서 속의 하나님께서 2016년 12월 31일 단지 짧은 시간일지언정 필라델피아 챌튼햄 한아름 앞에서 그들과 함께 외치라는 명령으로 받는답니다.

끝내 철들지 못하는 제가 이따금 사랑스럽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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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옷(Wings of Clothes)

( 이 시를 지난 35년여 내 삶의 일부였던 사랑하는 장모에게 드립니다)
 
날개

이민 삼십년에 이골이 난 내 다림질
그 솜씨로 장모 수의를 다린다.

먼저 버선을 다린다

땅과 하늘 사이 때론
어제와 오늘 사이를 헤매이던 마지막 시간에
장모는 엄마를 부르곤 했다
“엄마가 엄마를 찾으니까 내가 아파”
아내는 엄마를 부르는 장모를 말하며 눈가를 훔쳤다
분단은 남북만 가른 것이 아니었다
북쪽 가족들과 갈라져 남쪽에 홀로남은 장모 나이 고작 열 두살
애초 홀로는 아니었다
고향으로 가겠다며 국군에 입대한 스무살 오빠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을 뿐
그날 이후 장모는 엄마를 찾지 않았단다
마지막 시간속을 헤매던 장모는 버선발로 다가오는 엄마를 보았을 터

치마를 다린다.

치마는 장모의 자존이었다
열두살 이후 홀로된 외로움을 감싸는 갑옷이었다
열 여덟에 하나되어 육십갑자 세월을 함께 한 장인은 외아들
거기에 호랑이 같은 홀시어머니와 시누이 셋
엄마를 찾지 않았던 장모는 어느새 엄마가 되어갔다
딸 하나 아들 둘
누구랄 것 없이 모두 한수에 더해 끼 넘치는 가족이었지만
문제 없었다
장모의 치마는 모든 것을 감쌀만큼 폭이 넉넉했으므로
허나, 못내 치마 속에 감쌀 수 없는 외로움은 가슴에 숨겼을 터

이제 저고리를 다린다

언젠간 꼭 만나고 말리라
옷고름 매주고 옷깃 여며주던 엄마
장모의 꿈은 끝내 이루지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장모는 꿈을 바꾸었다
내가 엄마가 되리라고
일흔 여덟해의 마지막 한 달
장모는 그저 엄마였다
장인과 두 아들과 며느리들 딸과 사위에게
엄마를 가슴에 아프게 품지 말라고
행여
살아있는 너희들은
외로움과 그리움
그 암덩어리 안고 살지 말라고
장모는 저고리 섶에 우리들의 몫을 그렇게 저미고 갔을 터

마지막 두루마기를 다린다

평안북도 정주 아낙 최용옥
아무렴 한반도 믿음의 성지 정주 땅인데
장모는 평생 믿음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살았다

믿음 아니면 그 외로움 어찌 삭혔으랴
기도 아니면 그 긴 기다림 어찌 이어 왔으랴
찬송 아니면 그 먼 길 어찌 걸어 왔으랴

이제 내가 꿈을 꾼다
꿈이 기도가 된다
무릇 모든 기도는 이미 이루어진 것들 뿐

내가 다린 옷들은 장모의 날개가 된다
날아 날아 날아 훨훨
기다리던 엄마의 손을 잡았다

아! 이제
모녀는 하늘문을 들어섰다

이민 삼십년 도 닦듯 익힌 내 다림질
용 한번 썼다

Casket of D's dad. My lapel flower.

(I dedicate this poem to my beloved Mother-in-law who was a part of my life for 35 years.)
 
Wings of Clothes

My press, a tired routine of daily life as an immigrant for thirty years,
With the skill, I’m pressing Mother-in-law’s shroud.

First, I press beoseon1.

Between earth and heaven, sometimes
At the last moment, wandering between yesterday and today,
Mother-in-law called for mom.
“As Mom’s looking for her mom, it breaks my heart,”
Wife says, as she wipes tears from her face.
Division did not cut just the country into the South and the North.
Only twelve years old was Mother-in-law, when she became alone in the South, separated from her family in the North.
She was not alone from the start.
It’s because her twenty-year-old brother never returned after joining the army with the hope to go to their hometown.
Mother-in-law had not looked for her mom since then.
I believe that while wandering at the last moment, she must have seen her mom running to her with stockings on her feet.

I press a skirt.

Skirts were Mother-in-law’s pride.
They were the armor to cover her loneliness since she became alone at twelve.
The only son in the family was Father-in-law, with whom she was with for the sexagenary cycle from the age of eighteen.
Her tigerish mother-in-law and three sisters-in-law added to her life.
Mother-in-law, who had not looked for her mom, became a mom herself:
One daughter and two sons.
Though all of them were full of talents and fun,
There was no problem,
Because Mother-in-law’s skirts were wide enough to envelop everything and everyone.
However, her loneliness, which could not be enfolded under them, was hidden in her heart.

Now, I press a jeogori2.

Mother-in-law felt that she would never fail to see her mom again someday,
Who had tied her jeogori string and adjusted her clothes.
Mother-in-law’s lifelong dream was never realized.
At the last moment, she changed her dream,
For herself to become a mother.
In the last month of her seventy-eighth year,
Mother-in-law was simply a mother.
For Father-in-law, two sons and daughters-in-law, a daughter and a son-in-law,
Not to hold her in their hearts painfully,
By any chance,
For all of you, who are alive,
Not to live with that cancer of
Tormenting loneliness and yearning,
Mother-in-law must have left us with taking our shares in the gusset of her jeogori.

Last, I press a durumagi3.

Yong-ok Choi, a village woman of Jeongju, North Pyeongan Province,
Jeongju, certainly a shrine of faith in the Korean peninsula,
Mother-in-law had lived in the durumagi3 of faith all her life.

How could she have appeased such loneliness without faith?
How could she have kept enduring such an agonizingly long wait without prayers?
How could she have walked such a long way without hymns?
Now I’m dreaming.
Dreams become prayers.
In general, all prayers are for what has already been realized.

Clothes I have pressed become Mother-in-law’s wings.
Fly, fly, and fly freely.
She holds the hands of her mother who has been waiting for her.

Ah! Now,
Mother and Daughter enter through the gate of heaven.

My pressing skill which I have practiced as if cultivating myself spiritually during the thirty years of my immigrant life

1. beoseon: Korean traditional socks 

    2. jeogori: The upper garment of Korean traditional clothes for women

   3. durumagi: a traditional Korean outer coat

아들이라는 이름에게

Daylight saving time 해제로 시간이 바뀐 뒤, 밤이 제법 길어졌다. 잠시 눈을 붙였다 떳더니 어느새 밤이다. 바깥 날씨가 쌀쌀한지 이따금 돌아가는 히터소리 외엔 조용하니 집안이 적막하다.

서울서 온 큰처남과 함께 장모를 모시고 병원에 간 아내에게선 아직 전화가 없다. 신혼여행 떠난 아들내외나 오라비 결혼식에 함께하고 제 일터로 다시 돌아간 딸이나 내게 전화 줄 일은 만무할 터, 적막함 속에서 기다리는 것은 장모의 입원소식이다.

어제 일이다. 결혼 피로연을 마치고 밤늦게 들어와 전화를 드렸을 때만 하여도 목소리만은 또랑하셨다. “많이 섭섭하고, 많이 미안하고… 내가 결혼식엘 못가리라곤 정말 생각 못했는데….”

아들녀석은 태어나 걸을 때까지 거의 장모 손에서 컸고, 큰 외삼촌의 사랑을 많이 받았었다. 어제 오늘, 큰 처남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 암과 씨름하며 잘 버텨오시던 장모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요 며칠 사이의 일이다.

그리고 어제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장은 지은지 오래된 교회 건물이었다. 식장에 들어선 장인과 어머니, 아버지는 거의 동시에 화장실을 찾으셨었다. 정말 오래된 건물이었다. 화장실은 가파른 계단을 두번 꺽고 올라가야만 하는 이층에 놓여 있었다. 나는 순서대로 한분씩 부축하여 그 계단을 올랐다. 어머니, 장인, 아버지 순서였다. 그 순서대로 다시 부축하여 계단을 내려왔다.

지팡이에 의지하시는 장인과 아버지를 부축하여 오르내릴 때보다 어머니는 한결 수월하였다. 내 염려는 어머니가 가장 컸었는데 의외로 어머니는 아무 말씀없이 내 팔과 손을 잡고 꼿꼿하게 그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셨다.

어제 밤 모든 잔치를 끝내고 나는 아내에게 말했었다. “세 분을 부축하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나니, 그래도 어머니가 아직 제일 나으신 것 같아.” 아내가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며 내게 해 준 말이다.

“아니, 내 생각은 달라. 어머님는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걱정을 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난 아직 이만큼 건강하니까 나에 대한 염려랑은 조금도 하지 말아라. 그러셨던거야. 어머님이 화장실 다녀오셔서 내게 뭐라셨는지 알아? ‘아이고 얘야, 두 다리와 두 팔이 다  떨리는구나!’ 하셨다니까.”

그 아내의 말을 생각하며, 다시 큰 처남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무렴 아들이 곁에 있는데…

또 다시 어제의 결혼식장 이야기 하나.

분명 엊그제 있었던 결혼식 예행연습 때는 없었던 순서였다. 결혼 예식 거의 마지막에 있었던 목사님의 기도 순서였다. 분명 예행연습 때는 목사님의 기도 순서 였을 뿐이였다.

그 순서에서 Manuel Ortiz목사님은 신랑 신부인 두 아이들을, 아이들이 켜놓은 촛불 제단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는, 예식에 함께했던 네 분 목사님들과 함께 손들을 두 아이들에게 얹어 기도를 시작하라고 하셨다.

나는 당연히 아이들에게 손을 얹은 목사님들께서 돌아가며 기도를 하시려니 생각했었지만 Ortiz목사님은 신랑 신부에게 기도를 하라고 명하셨다.  아들녀석과 이젠 내 며늘아이가 된 Rondaya가 드린 기도는 내 가슴을 촉촉히 적셨다.  그리고 이어진 배성호목사님의 기도 “아이들이 드린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예식이 끝난 후, 나는 아내와 내기를 하였다. ‘아이들의 기도는 우리가 몰랐을 뿐 짜여진 것이였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고, ‘Ortiz목사님의 생각으로 즉석에서 하나님께 드린 아이들의 기도였다’는 것이 아내의 주장이었다.

결과는 나의 완패였다.

무릇 아들은 허당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기도를 시킨 Ortiz목사님도, 아이들의 기도를 하늘과 이어 준 배성호 목사님도 모두 아들들인 것을…

나와 내 아들 역시.

무릇 아들이라는 이름은 어머니들을 위해 있는 것일 수도.

사랑한다

집안 잔치로 두루 번잡한 아침입니다. 늘 그렇듯 집안 일의 분주함은 대개 아내 몫입니다.

이른 아침에 이메일함에 들어온 메일 하나를 다시 읽습니다.

필라 연대집회 시간 : 11월 12일 4:00 pm 챌튼햄 H-Mart 앞 사거리 (인원 집중을 위해 집회를 오후 4시로 통일했습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늦은 공지와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25명이 넘는 필라인들이 모여 동포간담회를 빛내주었습니다.

무당에 의해 헌법이 유린되고 온갖 부정과 탐욕으로 점철된 현 박근혜 정권을 타도하고자 굳은 결의를 다졌습니다.

지금 현재 광화문 광장에는 100만의 인파가 모여 외치고 있습니다.

부패와 무능으로 얼룩진 박근혜 정권의 타도를 넘어서 약자가 억압받고 더욱 열악한 경쟁 속으로 내몰리는 이 부조리한 현실을 성토하고 깨부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 중략 –

우리는 현재 반드시 해야할 하나의 과업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권력에 맞서 당당하게 정의와 진리를 쟁취해가는 그 영광스런 역사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 민중총궐기 연대집회는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기본적인 피켓은 준비되어 있으나 개인적으로 피켓을 만들어오셔도 됩니다.

필라 세사모는 시국성명 및 11월 12일 민중총궐대회와 함께 하겠습니다.

엊저녁에 있었던 필라동포 간담회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새겨봅니다.

그리고 나는 왜 오늘 아침 광화문 소식에만 꽂혀있는지? 떠나온지 30년, 아이들은 이미 미국인이 되어 트럼프만 어이없어 하는데…

그러다 손에 쥔 시 한 편. 정호승님의 <사랑한다>입니다.

그래, 끝내 잊지 못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해야만 하는  내 부모와 아이들처럼…

<사랑한다>

  • 정호승

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 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물 위에/ 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 몇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 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 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 비가 그친 뒤/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강물을 내려다본다/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사랑한다/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

주일아침, 맹자이제(孟子二題)

인(仁)에 대하여

孟子曰:三代之得天下也以仁, 其失天下也以不仁. 國之所以廢興存亡者亦然. 天子不仁, 不保四海; 諸侯不仁, 不保社稷; 卿大夫不仁, 不保宗廟; 士庶人不仁, 不保四體. 今惡死亡而樂不仁, 是猶惡醉而強酒.

<맹자왈 : 삼대지득천하야이인, 기실천하야이불인, 국지소이폐흥존망자역연, 천자불인, 불보사해; 제후불인, 불보사직; 경대부불인, 불보종묘; 사서인불인, 불보사체. 금악사망이락불인, 시유악취이강주. >

맹자가 말했다. :  3대(옛날에 있었던 하夏 은殷 주周 세나라)가 천하를 얻은 것은 인(仁 : 어짐)이 있었기  때문이요,  삼대가 천하를 잃은 것은 인(仁)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나라가 폐하고 흉하고 지탱하고 망하는 것도 다 그와 마찬가지 이치이다.

임금이 어질지 못하면  사람사는 세상을 이룰 수 없고, 권력을 쥔 자들이 어질지 아니하면 나라를 보존할 수가 없고, 관리들이 어질지 아니하면 정부를 보존할 수 없으며, 지식인들과 서민들이 어질지 아니하면 몸(사람)을 보존할 수 없는 법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죽기를 싫어하면서도 인하지 않음을 즐기는(이리 독하게 사는 까닭은)것은 마치 취하기를 싫어하면서 독주를 입에 붓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앙<얼(孼)>에 대하여

有孺子歌曰:”滄浪之水清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孔子曰:”小子聽之! 清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 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家必自毀,而後人毀之; 國必自伐, 而後人伐之. <太甲>曰:”天作孽, 猶可違; 自作孽,不可活.”此之謂也.

유유자가왈 :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아영: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아족.” 공자왈 : “소자청지! 청사탁영, 탁사탁족의, 자취지야.” 부인필자모, 연후인모지; 가필자훼, 이후인훼지; 국필자벌, 이후인벌지, <태갑>왈 : “천작얼, 유가위: 자작얼, 불가활.”차지위야.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노래가 있다.

공자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고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휴에 다른 나라를 짓밟는 것이다.

[서경] <태갑>편에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 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신영복선생님 번역에서)

가을, 주일아침 그리고 생명

<안식일이 되어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 가셨는데 마침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기만 하면 고발하려고 지켜 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는 “일어나서 이 앞으로 나오너라” 하시고  사람들을 향하여는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말문이 막혔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탄식하시며 노기 띤 얼굴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펴자 그 손은 이전처럼 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나가서 즉시 헤로데 당원들과 만나 예수를 없애 버릴 방도를 모의하였다.> – 성서 마가복음 3장 1 – 6절, 공동번역

지난 20일 노스 캐롤라이나 샬롯(Charlotte)에서 일어났던 경찰관에 의한 용의자 피살사건 현장 녹화영상이 공개되었다. 경찰관들이 착용하고 있었던 몸부착 카메라(officer’s body camera)에 찍힌 영상이다. 영상으로 흑인 용의자가 총을 손에 들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경찰관들이 쏜 총소리임에 분명한 네발의 총성과 마치 토끼몰이하듯  포위하는 경찰관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측은 용의자의 차량에서 용의자의 지문과 DNA를 확인할 수 있는 권총과 마리화나를 증거로 용의자가 공공 안전을 위협하는 인물이었음을 주장하고 있지만,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가 경찰관에 의해 피살 되었다고 주장하는 시위대들을 무마시키기에는 어림없어 보인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후 317일 동안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선생이 끝내 숨졌다는 소식이다.

%eb%b0%b1%eb%82%a8%ea%b8%b0%ec%84%a0%ec%83%9d백선생을 치료해온 서울대병원은 돌아가신 백선생의 사인은 신장 기능이 갑자기 떨어지는 증세인 급성신부전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경찰측은 오래전부터 백선생이 쓰러져 누우신 일과 물대포 살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지난 9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이른바 ‘백남기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사고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강신명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서 해야 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명백한 것은 두 사건 모두 법질서를 내세운 측이 힘(총과 물대포)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간 사건이다. 마흔 세살의 흑인 Keith Lamont Scott은 법질서를 집행하는 권력인 경찰이 판단하기에 공공 안전을 위협하는 인물로 여겨져 목숨을 잃은 경우이고, 일흔살 농민 백남기선생은 “대통령의 공약인 쌀값 21만원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공공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권력의 최첨병인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숨진 것이다.

오래전에 이유를 막론하고 사람을 상하게 하고 죽이는 법질서를 파괴했던 이가 있었다. 바로 예수이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법질서를 앞세운 이들에게 던졌던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는 예수의 물음은 ‘법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무릇 법이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법을 위해 있지 않다는 것이며, 법이 사람들의 삶을 보호할 때 그 존재 의미가 있는 일일 뿐 그것에 반하여 사람들을 상하게하고 죽게하는 법은 언제든지 폐기할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외형적이고 형식주의를 우선시할 수 밖에 없는 사회통념과는 별개로, 적어도 예수쟁이라면 성서를 삶의 지표로 삼는 신앙인이라면 “법은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이 명제를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최근 대한민국 국회에서 있었던 대정부질문 답변에 나선 황교안총리가 교언영색의 화술로 법질서를 앞세워 세월호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을 후비고 파며 또 다른 죽음을 안기는 장면이 떠오른다.

황총리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포장되어 소개되는 오늘의 종교는 예수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뚝 떨어진 수은주 따라 성큼 다가선 가을날 주일 아침, 떨어진 낙엽에서 다시 솟아날 생명을 보았던 예수와 숱한 예수쟁이들을 그리고 생각하며…

다섯번째 필라 세사모 소식지

여름 휴가차 모국 방문을 했던 필라 세사모 회원들이 유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와 전하는 소식 등을 실은 다섯번째 필라 세사모 소식지.

[gview file=”http://www.for1950s.com/wp-content/uploads/2016/09/philasewol-vol.5.pdf”]

세월호 참사로 딸 예은이를 잃은 유경근씨의 노모 이세자씨는 감리교단의 장로를 맡고 있는데 세월호참사 직전에 교단을 대표해서 한국여장로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 이세자씨 부부는 모두 장로를 맡아 온 독실한 기독교인이지만, 세월호참사 이후 교인들과 소통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예은이 할머니 이세자씨가 교인들과 소통에서 겪는 어려움과 새롭게 열린 신앙의 눈을 이야기한 내용이다.

<유가족들 중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70~80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교회를 못 갑니다. 그 이유가 대개 목사님 때문이라고 합니다. 목사님들이 유가족들에게 “아이들이 천국에 갔으니 정신 차리고 제 자리에 돌아와야 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유가족들의 마음에는 비수가 꽂힙니다. 교인들은 또 “손주가 이제 천국 갔으니 좋게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나도 아이들이 천국 가 있는 거 알아”라고 말은 합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결코 그들이 치유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교회를 더 못 갔습니다. 교회에 나가면 더 아파야 하니까요. 그래서 따로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렇게 소경이 된 것은 누구의 죄냐고?”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부모의 죄도 아니고 소경의 죄도 아니라고 하시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쉽게 하는데, 그 말은 정말 잘 사용해야 합니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이 죽은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들은 손주 얘기도 듣고, 남편 얘기도 듣고, 지나가는 학생들 말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솔로몬도 백성의 소리를 듣고자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똑똑하게 말하는 게 지혜가 아닙니다. 나이 먹을수록 더 들어야 합니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생각을 한 다음, 말은 한참 있다가 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게 해 준 예은이에게 고맙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꼴통 같았던 이 할머니의 눈을 열어준 걸 생각하면 그 아이에게 고맙기만 합니다. 이 일이 아니었다면 저는 끝까지 제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