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속이면…

오늘 아침에 눈을 떠 서성이다가 책장 속 평소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던 곳에 꽂혀있는 책 하나 눈에 뜨였다. 오래 전 도서출판 청사(靑史)에서 펴낸 ‘칠십년대 한국일지’라는 책이다. 1970년부터 1979년까지 10년 동안 남한(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실록을 엮듯 날자 별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때로부터 대학생활, 군생활, 실업자생활, 사회생활, 다소 엉뚱했던 신학생생활을 이어갔던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남한(대한민국) 실록이다.

후루룩 넘기는 책갈피에 숨겨진 세월의 거짓들을 읽는다.

2017년 이 봄에 내가 까닭없이 슬퍼지는 이유가 짚을 듯 하다.

이어 시집을 꺼내든다.

그것하고 와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 날 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槪觀(개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다/ 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 난 뒤에도 보통 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 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남에게 犧牲(희생)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殺人(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오는 거리에는/ 四十(사십)명가량의 醉客(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이 캄캄한 犯行(범행)의 現場(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現場(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 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내 아버지 세대의 사람 시인 김수영의 시편들, 곧 “성(性), 罪(죄)와 罰(벌), 김일성 만세”이다.

아마 2017년을 사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미친 놈>일 뿐. 김수영의 삶에 대한 솔직함은 끼어들 틈 조차 없이.

허나, 나는 2017년 4월에 김수영이 노래하는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에 꽂힌다.

세상이 온통 제 스스로에게 지독하게 속고 있는 듯한 2017년 서울이 아직도 이루지 못한 1960대 김수영의 솔직함이 통하는 세상으로 바뀌기를 꿈꾸며.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

‘리디아의 왕을 섬기던 목동 기게스(Gyges)는 어느 날 지진으로 갈라진 땅 틈에서 발견한 반지를 끼고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평소에는 남의 눈을 의식해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 그는 왕궁에 들어가 왕비를 유혹해 간통하고, 왕을 죽인 뒤 자신이 왕에 올랐다.’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 나오는 가공의 마법 반지, 바로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이야기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글라우콘은 이 이야기를 하며 스승에게 물었다. “이런 반지가 두 개 있어서 하나는 도덕적인 사람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스승에게 이 질문을 던졌던 글라우콘은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제 욕심만으로 가득찬 삶을 살 것이라는 예단이 있었다.

2017년 내가 뉴스로 접하는 세상들은 마치  기게스의 반지를 끼고 자기 욕망으로만 사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듯 하다. 글라우콘의 의심이 결코 예단이 아니라 이른바 진실이 아닐까하는 믿음이 들 정도이다.

신에 대한 나의 믿음조차 흔들리는 순간, ‘그게 아니다’라고 소리치며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뱃사람들을 위해  예수선교를 하는 Philadelphia 에 있는 Seamen’s Church의 David Reid 목사도 그 중 하나이다.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가 이끄는 유혹에 눈길조차 건네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 바로 신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이다. 어쩜 그것은 진실로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는 세상일게다.

David Reid목사가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함께 기억하자며 세상을 향해 던지는 초대 글이다.


David Reid가 초대합니다.

4월 16일 일요일에, 필라델피아 소재 Seamen 교회 예배당(Seamen’s Church Institute Chapel)에서, 3년전 대한민국 페리 “세월호”가 연안에 침몰하여 목숨을 잃은 304명을 위한 추도 예배를 제가 주도할 예정입니다. 그날 아침 270명의 고등학생이 목숨을 잃었고, 그들은 수학여행길이었습니다. 저는 한인회와  ‘세월호 유가족과 연대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 (Philadelphia SESAMO)’과 협력하여, Seamen 교회 예배당에서 부활주일 오후에 개최될 예배 절차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뉴저지주 포트리에서 오는 세 명의 한국인 고등학생들이 한국의 전통적인 북을 연주하는 특별 음악 공연 순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음 유튜브에 링크하시면, 그들의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m-utvfhZEg&feature=youtu.be.

우리는 또한 다음 유튜브 링크를 사용하여, 한국어로 주기도문을 암송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EX9x5VUqQ4

예배 마지막에는,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로 구성된 ‘416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 영상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RAjZsVNh2U

다음은 그 노래의 감동적인 가사입니다:

약속해

우리가 너희의 엄마다/ 우리가 너희의 아빠다/ 너희를 이 가슴에 묻은/ 우리 모두가 엄마 아빠다/ 너희가 우리 아들이다/ 너희가 우리의 딸이다/ 우리들 가슴에 새겨진/ 너희 모두가 아들 딸이다

그 누가 덮으려 하는가/ 416 그 날의 진실을/ 그 누가 막으려 하는가/v애끓는 분노의 외침을/가만히 있지 않을거야/ 우리 모두 행동할거야/ 이 마저 또 침묵한다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어/ 끝까지 다 밝혀낼거야/ 끝까지 다 처벌할거야/ 세상을 바꾸어 낼거야/ 약속해 반드시 약속해

*** 이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해양재난이었으며, 대한민국 전국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으며, 완전한 조사 요구에 대해 전세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MIT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국학생 권이석이 행한 독립적 분석에 따르면, 2000년 James Reason이 발표한 “스위스 치즈 파라다임(Swiss Cheese paradigm)”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안전장벽이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 David Reid는 Seamen 교회의 자원 사제이며, Claremont Lincoln University에서 범종교 활동 전공 석사 과정을 밟고 있고, 펜실베니아주 사제사회 회원입니다.


Invitation From:  David Reid

On Sunday April 16th, at the Seamen’s Church Institute Chapel in Philadelphia, I will be leading a service of remembrance for the 304 people who lost their lives three years ago when the Korean ferry “Sewol-Ho ” sank off the coast of Korea. 270 high school students died that morning, they were on a school field trip. I am working with the Korean-American community and the Philadelphia People in Solidarity with the Families of Sewol Ferry (Philadelphia SESAMO) group on the order of service that will be held on Easter Sunday afternoon at the Seamen’s church chapel. We will have a special music presentation by three Korean high school students from Fort Lee, New Jersey, who play traditional Korean drums. You can listen to their music on the following YouTube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tm-utvfhZEg&feature=youtu.be .  We will also be saying the Lord’s Prayer in Korean using the following YouTube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OEX9x5VUqQ4

At the end of the service we will show the following video of the song sung by the 416 Choir, whose members are the parents of the victims: https://www.youtube.com/watch?v=PRAjZsVNh2U

 

Here are the inspiring words of that song in English:

We are your mothers, we are your fathers,/ we all are your mother and fathers who buried you in our hearts./ You are my sons, you are my daughters,/  you all are our sons and daughters who will live in our hearts. / Who are those trying to cover up the truth of the April 16, / Who are those trying to block up these desperate, furious cries

We won’t stay put/ We all will stand up/ If we still keep silent, there will be no more future/ We will search for the truth to the end,/ We will bring those accountable to justice/ We will change this world/       We promise you, promise you on our conscience.

*** This was the worst maritime disaster that South Korea has ever experienced and it sent shock waves through the nation, there is now a worldwide community of support calling for a full inquiry. Independent analysis done by a Korean graduate student Yisug Kwon at MIT has already shown that there was a systemic failure of safety barriers, the classic “Swiss Cheese paradigm”  that James Reason wrote about in 2000.

**** David Reid : Volunteer Chaplain – Seamen’s Church Institute, Graduate Student – M.A. In Interfaith Action, Claremont Lincoln University, Member – PA Society of Chaplains


 

눈(雪)과 봄(春)

시간이 바뀌며 낮시간이 제법 길어졌다. 주중 일터에서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일요일 한낮의 길이가  생각보다 많이 길다. 교회를 다녀온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선다. 화창한 봄날인 줄 알고 노란 꽃잎 내민 개나리가 서 있는 곳은 눈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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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밭을 뚫고 잔디들은 이미 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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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가게 일을 도와주는 미얀마 출신  Lou가 알래스카에 사는 동생이 보내주었다며 선사한 양념된 훈제 연어를 들고 부모님을 찾았다. 가려움증으로 오래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새로 처방받은 약이 잘 듣는다며 모처럼 화사하게 웃으신다. 아버지는 ‘마침 잘 왔다’며 나를 컴퓨터 앞으로 끄신다. 컴퓨터에 이상이 있다는 말씀이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단지 아버지가 다룰 줄 몰랐을 뿐.

이 겨울이 시작할 무렵에  병원에 들어가셨던 장모가 세상 뜨신 지도 벌써 백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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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 계신 곳에서 가까이 눈에 닿는 거리에  부모님과 우리 부부가 누울 곳이  마련되어 있다. 이 곳은 이미 완연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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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내외 먹을 거리 장을 보고 돌와왔건만 아직도 한낮이다.

오늘 아침에 손님들에게 보낸 장자 이야기에 대한 응답들을 보며 저녁을 맞는다.


오늘은 동양의 고전 가운데 하나인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어느 날 장자와 혜시가 호(濠)라는 강의 다리 위에서 물고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물에서 자연스럽게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데, 저것이 피라미의 즐거움이라네” 그러자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자네 또한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지 안단 말인가?” 혜자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아니니까, 물론 자네의 마음을 모르지.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네도 물고기는 아니니까,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확실하지 않은가”

당신은 두 사람의 생각 중 어느 쪽이 맞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이야기를 들은 옛날 시인 한사람은 이런 시귀를 남겼답니다. “내가 청산을 보며 매우 아름답다고 여기니 청산도 나를 보면 똑같이 느끼겠지!”

이제 봄이 다가옵니다.

보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재미있고 즐거운 한 주간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Today, I would like to share a story from “Zhuangzi,” one of the old Oriental classics:

Zhuangzi and Huizi were strolling along the bridge over the Hao River. Zhuangzi said, “The minnows swim about so freely, following the openings wherever they take them. Such is the happiness of fish.”

Huizi said, “You are not a fish, so whence do you know the happiness of fish?”

Zhuangzi said, “You are not I, so whence do you know I don’t know the happiness of fish?”

Huizi said, “I am not you, to be sure, so I don’t know what it is to be you. But by the same token, since you are certainly not a fish, my point about your inability to know the happiness of fish stands intact.”

Which one do you think is right?

Having heard this story, an old poet left the following line of a poem: “As I regard nature very beautiful when I see it, nature must feel the same about me when it sees me!”

Now, spring is just around the corner.

I wish that all that you see and feel will be beautiful, joyful and amusing this week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의 역사추리소설 <장미의 이름> 끝부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나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 중략 –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들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소설속에서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호르헤)이 드러나자, 범인  호르세는 모든 살인 사건들의  비밀이 담겨 있는 도서관에 불을 지르고 도서관과 함께 재로 변한다. 이 광경을 바라보면서 윌리엄 수사가 그의 제자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아드소에게 건네는 말이다.

중세 교회시대에 신학적 교리와 교회의 권위라는 권력은 진리 또는 진실이라는 이름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당시 진리와 진실을 가리는 단순한 잣대는 선과 악이었다. 그리고 권력은 늘 선의 자리에 놓여 있었다.

소설 <장미의 이름>의 무대는 1327년 11월, 이탈리아에 있는 수도원이다.

2017년 3월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했다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는 말에 떠올린 소설 <장미의 이름>이다.

20세기 이래, 일본 식민 지배를 근대화로 위장하고, 남북 분단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는 무리들이 내세운 진리 또는 진실이라는 깃발 아래서 그 무리들 대신에 먼저 간 이들을 생각해본다.

‘진실’ 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헛된 꿈을 이어가는 이가 어찌 박근혜  하나 뿐일가? 이제 ‘진실 또는 진리’라는 이름으로 한반도를 지배해 왔던 거짓 권력들을 불태워 재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장미의 이름으로.

세월호 1000일 – 어떤 설법

이 나이들어 특별한 종교에 혹 할 까닭은 없다만, 종종 귀에 들어오는 설교나 설법을 들을 때면 그 종교의 경전을 찾아 읽곤 한다. 일테면 말씀을 전하는 이들에 대한 예의 때문이다.

내 주위엔 다양한 종파의 기독교인들부터 몰몬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조계종에서 원불교까지, 천도교에서 무종교까지 다양한 지인들이 있다.

이따금 그 사람이 믿는 종교와 그 사람의 이미지가 일치할 때 느끼는 깊은 울림이 있다. 내가 그 종교를 믿고 안 믿고 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이 말이다.

딱 한 주 전의 일이다. 세월호 1,000일을 되새기고자 모인 필라 세사모 행사에서 말씀을 전한 원불교 강신오 교무님의 소리(이런 걸 ‘소리’라 해야 마땅할 터)를 들으며 누린 울림은 아주 컷다.

하여 그 울림을 함께 나눈다.

1000

반갑습니다. 원불교 강신오 교무입니다.

심해(深海)는 얼마나 추울까요.. 세월호 1000일인 오늘, 마치 아직 9명이 남아있는 깊은 바다와 같이 추운 것 같습니다.

매서운 추위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월호 참사 1000일 범종교 추모식’을 준비해주신 필라 세사모 여러분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그 아픔을 함께 느끼고 나눌줄 아시기에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과 혹 사정이 있어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셨지만 마음으로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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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원불교 경산 종법사님께서는 ‘성자가 되는 길’이라는 신년법문으로 세 가지 지침을 주셨습니다. 먼저 짧게 나누는 시간 갖겠습니다.

하나, 마음에 공을 들입시다.

모든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전쟁과 평화가 결국은 한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그 때 그 곳에 알맞게 마음을 낼 수 있도록, 마음 사용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둘, 일에 공을 들입시다.

우리의 삶은 소소한 일에서부터 국가와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까지 끊임없는 일의 연속입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도덕적으로 조화롭게 성공시켜

내 마음과 내가 속한 곳에서부터 멀리까지 일이 잘 되도록 공을 들여 성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 만나는 사람마다 공을 들입시다.

우리는 무수한 인연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인연들이 인연을 따라 나를 부처로, 성인으로 만들어주고, 일을 성공시켜주고, 목적을 이루게 해주는 동지이며 협력자 입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은혜가 되고 발전이 되도록 공을 들여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과 세상의 모든 분들께서, 자기 마음을 알아 마음에 공을 들여 마음의 자유를 얻으시고,일마다 조화롭게 성공시켜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성공하시고,만나는 인연마다 서로 은혜가 되고 발전이 되어모두 함께 성인이 되시고 함께 평화하시기를 염원드립니다.

제가 출가를 하고 나서 얼마 안지났을 때, 그 때는 나는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이라고누가 물어도 그렇게 대답하던 아주 오만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그 때, 물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허리도 안되는 그 얕은 물에 머리부터 빠져서, 오직 살겠다고 허우적 거리며 난리를 치던 기억은,그동안의 오만함에 대한 수치감과 함께, 살아있는 생명이 준비없이 강제로 죽음을 맞이할 때, 숨쉬고 싶을 때 입과 콧속으로 물밖에 들어오지 않을 때, 그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를,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생명 그 자체로 참으로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뼛속 깊이 각인시켜주었습니다.

천 일 전에 세월호에 있던 아이들과 승객들은, 어땠을까요…

지금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그 두려움과 고통이 가슴에 밀려오는 듯 합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 자기 한 몸 만을 자기 인줄 알고 살다가 자연과 부모와 세상의 모든 생명들과 그 생명을 지켜주는 바른 법을 알고 함께 성장하는 것을 우리는 삶이라고 하고, 그러한 ‘존재 자체의 은혜’를 아는 삶, ‘그 삶을 사는 생명’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삶을 사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이 참으로 귀한 줄 알아서, 나 아닌 생명도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압니다. 자기가 육신과 마음의 고통을 알기에, 나 아닌 생명이 아파할 때 참으로 함께 아파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고, 우리는 자기가 주인이 되는 삶, 참된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고, 권력의 노예가 되고, 원망의 노예가 되고, 성의 노예가 되어, 도무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자기가 집착한 것에 아귀같이 달라붙어서 인간으로서의 양심마저 버리고,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삶을 사는 것은 마음으로는 참으로 불쌍하다고 여기되, 그 행위에 대한 것들은 분명 단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참으로 미운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을 가진, 나와 한 생명인 그 삶을 함께 ‘사람의 삶을 살자’고 인도하기 위한 것이며, 그리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어제 보다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 달, 치료 차 한국에 갔었습니다.  처음 참가한 4차 집회에서 한 고등학생의 자유발언이 있었습니다. 친일청산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이승만으로 부터 시작하는 뿌리깊은 민간인 학살의 한을, 그 아이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옮겨 붙는다고,  횃불이 되고 들불이 되고, 산불이 된다는 웅변에 모두가 뜨거운 가슴으로 환호하고 박수하였습니다.

세상의 어느 나라가 이런 평화로운 집회를 하고,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루어내겠는가 하는 자부심과 긍지가 마음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것을 마치 시험이라도 하듯이, 친일 세력들은 가진 것을 놓지 않기 위해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여, 폭력과 폭언으로 더러운 시위를 만들고자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10차가 넘고, 세월호 1000일 집회를 한 지금까지도 한 마음으로 그 평화로운 촛불혁명 이어가고 있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배를 일부러 걸려 넘어뜨리기위해 바다에 내렸던 닻 마저 몰래 잘려 아직까지도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있는 세월호는, 그러나 우리들을 하나로 이어 우리 안에 있던 참으로 아름다운 홍익인간의 정신과 양심을 끌어올렸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정치인의 도덕성을 보지 않고 만들어낸, 마치 우리 안의 탐욕을 거울같이 보여주었던 이명박근혜를 만들었던 그 욕심과 이기심이 아니라,  지금 이 마음과 이 정신으로 다시 시작하도록 우리들을 하나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이 결정된 이후, 사람들은 ‘이제 시작이라는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온 국민과 국토가 만신창이가 된 오늘, 그들이 돈으로 던지는 미끼에 우리가 주인이 되는 기회를 또다시 잃을 수는 없습니다.

어둠은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빛이 있는 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우리가 함께 하고, 연대하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한, 생명과 민주주의를 향한 촛불은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져 결코 꺼지지 않는 빛으로 어둠을 밝힐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동포님들과 한국에서 촛불을 드시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들께 진리의 크신 은혜와 호렴이 늘 함께 하시어,

모두 마음마다 일마다 만나는 인연마다 공을 들이셔서, 대한민국과 이땅에 진리와 양심과 정의가 촛불같이 빛나고, 그 불이 번져 들불이 되고 산불이 되어 온세상에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늘, 매 순간이 다시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매화를 생각함

어제 내린 눈이 뜰을 하얗게 덮었다. 주일아침의 적막함은 내가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뒷뜰 눈밭에 소리없이 내려앉은  아침햇살은 적막함에 푸근함을 더한다.

시집 하나 손에 든다. “내 가슴에 매화 한그루 심어놓고”

얼핏 춥고 시리게만 보이는 세상을 향해 은은한 매화 향기 전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편지 한 장 쓴다.

1-8

새해가 되면 이따금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손님들이 계시답니다. 올해 음력설은 언제냐?라는 물음입니다. 올해는 1월 28일이 Chinese New Year로 잘 알려진 음력설이랍니다.

잘 아시다시피 중국을 비롯한 인근 동양국가들은 오래 전부터 음력 달력을 사용했답니다. 그런데 이 음력달력은 태양의 움직임에 깊게 영향을 받는 농사꾼들에게 불편한 점이 많았답니다. 그래서 사용한 것이 24절기라는 것입니다. 일년을 24절기로 나눈 것인데 이 절기는 우리들이 사용하는 태양력에 맞춘 것이랍니다.

24절기 가운데 태양력으로 제일 첫번 째 절기는 소한(小寒)입니다. 지난 1월 5일(목)이 소한이었답니다. 소한이라는 말은 ‘조금 추운 날’이라는 뜻이지만, 실제 한국에서는 일년 중 가장 추운 날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답니다. 실제 아주 춥기도 하고요.

일년 중 가장 추운 날이라는 소한 무렵에 피는 꽃이 있답니다. 매화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에는 이 매화에 대한 시들이 넘쳐나게 많답니다. (이즈음 사람들에겐 잊혀진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말입니다. 이즈음엔 사계절이나 24절기와는 아무 상관없이 꽃들이 피고 지는 세상이 되었으니 옛사람들이 매화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르는게 당연할 수도 있겠지요.)

옛 한국인들이 매화를 노래한 시만 모아서 펴낸 시집이 제게 있답니다. 시집의 제목은 “내 가슴에 매화 한그루 심어놓고”인데, 시집에 실린 시들을 읽다보면 왜 옛사람들이 매화를 좋아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답니다.

혹시라도 지금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처지에 있다면, 삭막하고 어둡고 추운 한겨울에 피는 매화를 보며 힘을 내고, 이제 곧 모든 세상이 활짝 필 봄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매화를 바라본 것이랍니다.

2017년 1월의 두번 째 일요일 아침에 제가 읽은 매화 시 한편을 당신과 함께 나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온갖 꽃 중 매화만  눈 속에서 피어나서

그윽한 향기 마치 내 마음을 안다는 듯

달빛 아래 홀로 있어도 네(매화)가 있으니 행복하여라


 

capture-20170108-093440Around this time of year, some customers occasionally ask me a question. It is “when is the lunar New Year’s day this year?” This year, January 28 is the day, which is well known as Chinese New Year’s day.

As you know well, the lunar calendar has been used since a long time ago in China and other countries in the Orient. But, it gave many inconveniences to farmers who had to farm according to the motion of the sun. So, the twenty-four seasonal divisions (or solar terms) were devised. As the term indicates, they divided a year into twenty-four terms, reflecting the motion of the sun. In a sense, they were the way to adjust the lunar calendar to the solar calendar.

The first of the 24 divisions is ‘Sohan (소한, 小寒).’ January 5 (Thursday) was that day this year. Though the word ‘Sohan’ means ‘somewhat cold day,’ in reality, it is regarded ‘the coldest day of year’ in Korea. It is usually very cold on the day.

There is a flower which blooms around ‘Sohan,’ the coldest day of year. It is a Plum blossom. There are numerous poems about a Plum blossom in China and Korea. (Unfortunately, it has become just one of so many things that people in these days have forgotten. As flowers bloom and fall regardless of seasonal divisions, nowadays, it may be no wonder that people don’t know how much people in the old days loved a Plum blossom.)

I have a collection of poems which Koreans in the old days wrote about a Plum blossom. Its title is “After I plant a plum tree in my heart (내 가슴에 매화 한그루 심어놓고).” If you read the poems in the book, you will understand why people in the old days loved a Plum blossom.

They looked at a Plum blossom and heard the message: if you are in difficult and adverse circumstances, get strength by looking at Plum blossoms which bloom in desolate, dark, and cold winter, and prepare for the not-too-distant spring in which all the world will burst into bloom.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a few lines of a poem on a Plum bloom this second Sunday morning of January 2017.

From your cleaners.

Only a Plum bloom of all flowers blossoms in the snow,

As if its sweet scent knew my mind,

I am happy, though I am alone under the moonlight, because you (a Plum bloom) are here.

삶과 시간

새해 첫날을 맞기 전, 집안에 달력들을 바꾸어 건다. 이제 내일이면 2017년이란다.

신혼, 새살림에 바쁠 아들 내외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았단다. 그게 또 예쁘고 고마웠다는 노인들이 손주와 손주 며느리를 위해 준비한 것이 없다며 외식을 제안했단다. 우리 내외가 외식을 권하면 손사래를 치며 미동도 하지 않던 분들이었다. 이즈음엔 아버님 걸음걸이가 신통치 않아  집밖 출입은 아예 삼가던 노인들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내와 나는 부랴부랴 식당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모처럼 삼대가 모여 앉아 한해를 보내는 저녁을 함께 했다.

필라에 사는 아들 내외에게 늦기 전에 부지런히 올라가라고 했는데, 가는 길에 홀로 계신 제 외할아버지에게 들려 시간을 보내고 갔단다. 나보다 나은 아이들이 고맙다.

이렇게 2016년 한 해가 저문다.

낮에는 필라에 올라가, 생각이 같아 만나면 반가운 이들과 잠시 시간을 함께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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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돌아보며 손에 든 책은 장자(莊子)다.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 奚以知其然也? 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 此小年也.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동안 사는 자는 오래 사는 자에 미치지 못한다. 어떻게 그 것을 알 수 있는가? 하루살이 버섯은 아침과 저녁을 알지 못한다. 한철만 사는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이것들은 짧은 동안 사는 것들이다.

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 而彭祖乃今以久特聞. 衆人匹之, 不亦悲乎?

초나라의 남쪽에 명령(冥靈)이란 나무가 있는데, 5백년을 한 봄으로 삼고 5백년을 한 가을로 삼는다고 한다. 태고 적에 대춘(大椿)이란 나무가 있었는데, 8천년을 한 봄으로 삼고, 8천년을 한 가을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팽조는 지금까지도 오래 산 사람으로 특히 유명하다. 보통 사람들이 그에게 자기 목숨을 견주려한다면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삶과 앎과 기쁨과 행복이 어찌 시간의 길이에 달려 있으랴!

천년을 하루로 살기도 하고, 하루를 천년으로 살기도 하는 것이 사람사는 모습이거늘.

2016.12.31.

2016년 마지막 날엔…

오늘 제 이메일 함에 놓여있는 편지 한장의 내용입니다.

12-31-16“가령 말일세, 쇠로 된 방이 있다고 하세. 창문은 하나도 없고 절대로 부술수도 없는 거야. 안에는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이 많아. 오래잖아 숨이 막혀 죽고 말 거야.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그대로 죽음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빈사(瀕死)의 괴로움 따위는 느끼지 않아.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 다소 의식이 또렷한 몇 사람을 깨운다면, 이 불행한 몇 사람에게 결국 살아날 가망도 없이 임종의 괴로움만 주게 되지. 그래도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몇 사람이 깬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지 않는가?”

위 대화는 루쉰이 글쓰기를 주저하자 계몽잡지 편집자인 그의 친구가 그를 설득하며 나눈 대화입니다. 20세기 초 식민지 열강의 혼란 속에서 루쉰은 이렇게 그의 글을 통해서 잠든채로 서서히 죽어가는 국민들을 깨우는데 자신의 몫을 다하였습니다.

제가 촛불을 드는 이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304명의 아이가 죽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 희생자 가족을 국가가 폭력적으로 억압해도 침묵하는 사회…저는 이런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기에 촛불을 듭니다.

제가 촛불을 든다고 루쉰 같은 영웅이 될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작은 촛불이 그 누군가에게 공동체를 생각하는 미세한 희망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촛불로 불타오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공동체에 무관심한 이 단단한 쇠로 된 마음을 깨뜨릴 수만 있다면 저의 몫은 차고 넘치리라 생각합니다.

2016년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필라에서도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근 마을 필라델피아에서 벌써 다섯 번 째 촛불을 든다고 하는데,  저는 한번도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리라는 생각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촛불을 들게 할 부추김도, 누군가의 단단한 마음을 녹이거나 깨뜨리려는 의도도 없답니다. 그렇다하여도 이 편지를 보낸 누군가의 소망에는 함께 하고 싶습니다.

언제 어느 때나 항상 새롭게 말을 건네시는 성서 속의 하나님께서 2016년 12월 31일 단지 짧은 시간일지언정 필라델피아 챌튼햄 한아름 앞에서 그들과 함께 외치라는 명령으로 받는답니다.

끝내 철들지 못하는 제가 이따금 사랑스럽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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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옷(Wings of Clothes)

( 이 시를 지난 35년여 내 삶의 일부였던 사랑하는 장모에게 드립니다)
 
날개

이민 삼십년에 이골이 난 내 다림질
그 솜씨로 장모 수의를 다린다.

먼저 버선을 다린다

땅과 하늘 사이 때론
어제와 오늘 사이를 헤매이던 마지막 시간에
장모는 엄마를 부르곤 했다
“엄마가 엄마를 찾으니까 내가 아파”
아내는 엄마를 부르는 장모를 말하며 눈가를 훔쳤다
분단은 남북만 가른 것이 아니었다
북쪽 가족들과 갈라져 남쪽에 홀로남은 장모 나이 고작 열 두살
애초 홀로는 아니었다
고향으로 가겠다며 국군에 입대한 스무살 오빠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을 뿐
그날 이후 장모는 엄마를 찾지 않았단다
마지막 시간속을 헤매던 장모는 버선발로 다가오는 엄마를 보았을 터

치마를 다린다.

치마는 장모의 자존이었다
열두살 이후 홀로된 외로움을 감싸는 갑옷이었다
열 여덟에 하나되어 육십갑자 세월을 함께 한 장인은 외아들
거기에 호랑이 같은 홀시어머니와 시누이 셋
엄마를 찾지 않았던 장모는 어느새 엄마가 되어갔다
딸 하나 아들 둘
누구랄 것 없이 모두 한수에 더해 끼 넘치는 가족이었지만
문제 없었다
장모의 치마는 모든 것을 감쌀만큼 폭이 넉넉했으므로
허나, 못내 치마 속에 감쌀 수 없는 외로움은 가슴에 숨겼을 터

이제 저고리를 다린다

언젠간 꼭 만나고 말리라
옷고름 매주고 옷깃 여며주던 엄마
장모의 꿈은 끝내 이루지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장모는 꿈을 바꾸었다
내가 엄마가 되리라고
일흔 여덟해의 마지막 한 달
장모는 그저 엄마였다
장인과 두 아들과 며느리들 딸과 사위에게
엄마를 가슴에 아프게 품지 말라고
행여
살아있는 너희들은
외로움과 그리움
그 암덩어리 안고 살지 말라고
장모는 저고리 섶에 우리들의 몫을 그렇게 저미고 갔을 터

마지막 두루마기를 다린다

평안북도 정주 아낙 최용옥
아무렴 한반도 믿음의 성지 정주 땅인데
장모는 평생 믿음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살았다

믿음 아니면 그 외로움 어찌 삭혔으랴
기도 아니면 그 긴 기다림 어찌 이어 왔으랴
찬송 아니면 그 먼 길 어찌 걸어 왔으랴

이제 내가 꿈을 꾼다
꿈이 기도가 된다
무릇 모든 기도는 이미 이루어진 것들 뿐

내가 다린 옷들은 장모의 날개가 된다
날아 날아 날아 훨훨
기다리던 엄마의 손을 잡았다

아! 이제
모녀는 하늘문을 들어섰다

이민 삼십년 도 닦듯 익힌 내 다림질
용 한번 썼다

Casket of D's dad. My lapel flower.

(I dedicate this poem to my beloved Mother-in-law who was a part of my life for 35 years.)
 
Wings of Clothes

My press, a tired routine of daily life as an immigrant for thirty years,
With the skill, I’m pressing Mother-in-law’s shroud.

First, I press beoseon1.

Between earth and heaven, sometimes
At the last moment, wandering between yesterday and today,
Mother-in-law called for mom.
“As Mom’s looking for her mom, it breaks my heart,”
Wife says, as she wipes tears from her face.
Division did not cut just the country into the South and the North.
Only twelve years old was Mother-in-law, when she became alone in the South, separated from her family in the North.
She was not alone from the start.
It’s because her twenty-year-old brother never returned after joining the army with the hope to go to their hometown.
Mother-in-law had not looked for her mom since then.
I believe that while wandering at the last moment, she must have seen her mom running to her with stockings on her feet.

I press a skirt.

Skirts were Mother-in-law’s pride.
They were the armor to cover her loneliness since she became alone at twelve.
The only son in the family was Father-in-law, with whom she was with for the sexagenary cycle from the age of eighteen.
Her tigerish mother-in-law and three sisters-in-law added to her life.
Mother-in-law, who had not looked for her mom, became a mom herself:
One daughter and two sons.
Though all of them were full of talents and fun,
There was no problem,
Because Mother-in-law’s skirts were wide enough to envelop everything and everyone.
However, her loneliness, which could not be enfolded under them, was hidden in her heart.

Now, I press a jeogori2.

Mother-in-law felt that she would never fail to see her mom again someday,
Who had tied her jeogori string and adjusted her clothes.
Mother-in-law’s lifelong dream was never realized.
At the last moment, she changed her dream,
For herself to become a mother.
In the last month of her seventy-eighth year,
Mother-in-law was simply a mother.
For Father-in-law, two sons and daughters-in-law, a daughter and a son-in-law,
Not to hold her in their hearts painfully,
By any chance,
For all of you, who are alive,
Not to live with that cancer of
Tormenting loneliness and yearning,
Mother-in-law must have left us with taking our shares in the gusset of her jeogori.

Last, I press a durumagi3.

Yong-ok Choi, a village woman of Jeongju, North Pyeongan Province,
Jeongju, certainly a shrine of faith in the Korean peninsula,
Mother-in-law had lived in the durumagi3 of faith all her life.

How could she have appeased such loneliness without faith?
How could she have kept enduring such an agonizingly long wait without prayers?
How could she have walked such a long way without hymns?
Now I’m dreaming.
Dreams become prayers.
In general, all prayers are for what has already been realized.

Clothes I have pressed become Mother-in-law’s wings.
Fly, fly, and fly freely.
She holds the hands of her mother who has been waiting for her.

Ah! Now,
Mother and Daughter enter through the gate of heaven.

My pressing skill which I have practiced as if cultivating myself spiritually during the thirty years of my immigrant life

1. beoseon: Korean traditional socks 

    2. jeogori: The upper garment of Korean traditional clothes for women

   3. durumagi: a traditional Korean outer c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