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유권자

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 투표로 선택하는 자리는 대통령 뿐만이 아니라 많습니다. 연방정부로는 대통령, 부통령과 연방 하원의원이 있고, 주정부 자리로는 주지사와 부지사 그리고 주하원의원과 주 Insurance Commissioner가 있습니다. 그리고 구청장(County Executive) 및 구의원들을 선택해야 합니다.

제가 미국 선거를 처음 본 것은 1988년부터이고, 선거에 참여한 것은 2000년부터입니다. 1988년 선거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듀카키스(Michael Stanley Dukakis)가 부시1세(George Herbert Walker Bush)에게 만방으로 깨진 선거였습니다. 그 때 선거도 이번 선거만큼이나 인종으로는 백인, 종교로는 기독교 근본주의, 지역으로는 남부가 기세를 떨쳤었습니다.

2000년 선거는 생각할수록 아쉬웠던 고어(Albert Arnold “Al” Gore, Jr.)의 패배가 있었지요. 부시 2세(George Walker Bush)의 당선은 미국사회를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부시 부자가 미국역사를 일정부분 바꾸었다고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겝니다.  아무튼 이 때는 제가 처음 참여했던 선거이기도하고, 당시만 하여도 사회활동을 조금 할때인지라 고어 선거운동도 했었지요. 아시안 아메리칸을 상대로 한 라디오, TV 선전광고에 함께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 그만큼 아쉬움이 컷었지요.

그리고 올해 선거는 참 특이한 점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답니다. 선거 때마다 너나없이 붙이고 다니는 차량 스티커를 일체 볼수 없다는 점입니다. 힐러리나 트럼프 어느 쪽을 막론하고 지지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차를 거의 볼 수 없답니다. 이게 제가 사는 곳에만 국한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신기한 현상이랍니다.

이 현상을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유권자들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선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책은 사라지고 민주, 공화 양당 대통령후보의 사생활만이 회자된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민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사회는 이번 선거결과로 많은 어려움들을 겪어 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 감내는 모두 유권자들의 몫이겠지요.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James Gilligan) 은 그의 책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Why Some Politicians Are More Dangerous Than Others >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사실 선거 운동의 틀을 두 후보의 순전히 개인적인 대결로 몰아가려는 목적 중 하나는 두 당의 실제 정책 차이가 무엇인지에 유권자가 주목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데 있다. 그래야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성취했고 어떤 추문과 결부되었는지를 놓고 개인들에게 논쟁이 집중되고, 두 정당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두 정당이 정치와 경제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었는지에는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단 코앞으로 다가온 미국선거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 모든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깨어 있어야 하는 까닭일겝니다.

정책조차 없거나 거짓인 정당들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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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대하여

계절이 깊어가는 늦저녁, 소리에 귀가 열리다.

내 업종 탓인지 더는 듣고 볼 수 없는 소리를 종종 떠올린곤 한다. 어머님이 두드리던 다듬이 소리다. 기억컨대 어머니의 젊은 시절은 노동의 연속이었다. 청석 다듬잇돌을 두드리는 박달나무 두 방망이 소리에 내가 아련하게 잠에 빠져들던 그 순간도 어머니에겐 노동이었다. 직업상 매일 돌아가는 세탁기를 보며 때로 떠올려보는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인데, 솔직히 어머니의 노동보다는 내가 즐겼던 아련한 잠이 먼저 잡히곤한다.

그리고 엊저녁, 모처럼 나선 필라델피아 나들이에서 들었던 소리들이 오래 잊고 있었던 생각들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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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잊고 있었지만 들을 귀를 열어 담아드린 우리 가락, 우리 소리에는 한(恨)을 풀어내는 영험함이 있었다. 비단 노동이나 일에 지쳐 윤기없고 무력하고 재미없는 삶 뿐만 아니라, 맺힌 한에 억눌려 망가져 피폐해진 삶까지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흥과 신명의 소리, 바로 우리 소리요 우리 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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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찌든 순간만 이어지는 삶이 있으랴! 반짝반짝 빛나는 플릇, 클라리넷이 빚어낸 소리와 떠받치는 피아노 소리에는 일상과 축제, 위로와 감사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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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황(苼簧)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들숨과 날숨으로 뽑아내는 소리는 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 사람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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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소리를 들으며 이즈음 들리는 흉흉한 소리들과 한맺힌 모든 소리들을 잠재우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었으면 바램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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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기억저장소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보내온 영상을 통해 나의 소리, 너의 소리, 우리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판은 마땅히 난장(亂場)이어야 했고 태평소와 사물놀이패들은 그렇게 판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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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운영하는 416기억저장소 후원을 위해 필라세사모가 펼쳤던 소리마당은 잊고 살았던 것들을 그렇게 깨우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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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을 아침에 우리세대의 시인 김정환이 노래했던 사랑을 읊조리며.

(행사를 위해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다시 큰 박수를 보내며)

가을에

– 김정환

우리가 고향의 목마른 황토길을 그리워 하듯이/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내게 오래오래 간직해준/ 그대의 어떤 순결스러움 때문 아니라/ 다만 그대 삶의 전체를 이루는,/ 아주 작은 그대의 몸짓 때문일 뿐/ 이제 초라히 부서져 내리는 늦가을 뜨락에서/ 나무들의 헐벗은 자세와 낙엽 구르는 소리와/ 내 앞에서 다시 한번 세계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내가 버리지 못하듯이/ 내 또한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하찮게 여겼던 그대의 먼지, 상처, 그리고 그대의 생활 때문일 뿐/ 그대의 절망과 그대의 피와/ 어느날 갑자기 그대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어져 버리고/ 그대가 세상에서 빼앗긴 것이 또 그만큼 많음을 알아차린다해도/ 그대는 내 앞에서 행여/ 몸둘바 몰라 하지 말라/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치유될수 없는 어떤 생애때문일 뿐/ 그대의 진귀함 때문은 아닐지니/ 우리가 다만 업수임 받고 갈가리 찢겨진/ 우리의 조국을 사랑하듯이/ 조국의 사지를 사랑하듯이/ 내가 그대의 몸한 부분, 사랑받을 수 없는 곳까지/ 사랑하는 것은

주일아침, 맹자이제(孟子二題)

인(仁)에 대하여

孟子曰:三代之得天下也以仁, 其失天下也以不仁. 國之所以廢興存亡者亦然. 天子不仁, 不保四海; 諸侯不仁, 不保社稷; 卿大夫不仁, 不保宗廟; 士庶人不仁, 不保四體. 今惡死亡而樂不仁, 是猶惡醉而強酒.

<맹자왈 : 삼대지득천하야이인, 기실천하야이불인, 국지소이폐흥존망자역연, 천자불인, 불보사해; 제후불인, 불보사직; 경대부불인, 불보종묘; 사서인불인, 불보사체. 금악사망이락불인, 시유악취이강주. >

맹자가 말했다. :  3대(옛날에 있었던 하夏 은殷 주周 세나라)가 천하를 얻은 것은 인(仁 : 어짐)이 있었기  때문이요,  삼대가 천하를 잃은 것은 인(仁)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나라가 폐하고 흉하고 지탱하고 망하는 것도 다 그와 마찬가지 이치이다.

임금이 어질지 못하면  사람사는 세상을 이룰 수 없고, 권력을 쥔 자들이 어질지 아니하면 나라를 보존할 수가 없고, 관리들이 어질지 아니하면 정부를 보존할 수 없으며, 지식인들과 서민들이 어질지 아니하면 몸(사람)을 보존할 수 없는 법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죽기를 싫어하면서도 인하지 않음을 즐기는(이리 독하게 사는 까닭은)것은 마치 취하기를 싫어하면서 독주를 입에 붓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앙<얼(孼)>에 대하여

有孺子歌曰:”滄浪之水清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孔子曰:”小子聽之! 清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 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家必自毀,而後人毀之; 國必自伐, 而後人伐之. <太甲>曰:”天作孽, 猶可違; 自作孽,不可活.”此之謂也.

유유자가왈 :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아영: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아족.” 공자왈 : “소자청지! 청사탁영, 탁사탁족의, 자취지야.” 부인필자모, 연후인모지; 가필자훼, 이후인훼지; 국필자벌, 이후인벌지, <태갑>왈 : “천작얼, 유가위: 자작얼, 불가활.”차지위야.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노래가 있다.

공자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고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휴에 다른 나라를 짓밟는 것이다.

[서경] <태갑>편에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 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신영복선생님 번역에서)

백남기선생과 배신자

고 백남기(白南基, 1947. 10. 8  – 2016. 9. 25)선생에 대한 소식들을 듣고 보는 심정은 매우 아리고 쓰리고 아픕니다.

크고 거창할 것도 없이 자신이 사는 삶의 자리에  ‘생명과 평화’를 심고 가꾸는 일에 충실했던 사람, 일컬어 농민이었던 백남기선생은 여기 이민(移民)의 땅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 이웃의 모습이었습니다.

쌀값 몇 만원에 대한 공약이 누군가에게는 호객행위에 불과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탱해주는 꿈이었을겝니다.

공약이 헛되지만 않았더라면 백남기선생이 오래전에 등진 서울행에 나서지 않았을 일입니다.

그날 이후, 선생께서 결코 만만치않게 버텨왔을 일년 가까운 시간들 그리고 선생의 죽음 뒤에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모진 고통들을 나눌 아무런 방안도 없습니다. 그저 아플 뿐입니다.

십여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이선관시인(1942-2005)은 백남기선생을 죽음으로 내몰고, 주검조차 다시 죽이려는 자들을 배신자라고 이름지어 불렀습니다.

배신자

가요방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자라도/ 이인섭 작사 김광빈 작곡 배호가 불렀던/ 배신자를 모르는 분은 아마 우리나라 사람치고/드물 겁니다

이 신파조의 노래 가사를 쉽게 이야기하자면 / 어떤 순진무구한 더벅머리 총각이 사랑하는 이에게 / 청춘과 순정을 다 바쳤는데 지울 수 없는/ 아픈 상처만 주고는 야멸차게 떠나버렸다고/ 한마디로 배신자라고 노래한 겁니다

각설하고

해방 되고 오늘날까지 반세기 동안 / 우리나라에 대통령이 된 분이 / 몇 명인 줄 알고 계시기나 한 겁니까 / 그 분들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그 많은 약속 / 그 많은 다짐 / 그 많은 공약 공약 공약을 했습니다

만약 그분들의 그 많은 약속 그 많은 다짐 /그 많은 공약 공약 공약이 지켜졌다면 지켜졌다면

지켜졌다면……

배신자, 이 땅에 사는 전 국민의 배신자

고 백남기선생께서 즐겨 부르셨다는 ‘동지를 위하여’라는 노래는 그가 할 수 있었던 배신자에 대한 끝없는 항거의 몸짓이었을 겝니다.

그저 아픔으로.

가을, 주일아침 그리고 생명

<안식일이 되어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 가셨는데 마침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기만 하면 고발하려고 지켜 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는 “일어나서 이 앞으로 나오너라” 하시고  사람들을 향하여는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말문이 막혔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탄식하시며 노기 띤 얼굴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펴자 그 손은 이전처럼 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나가서 즉시 헤로데 당원들과 만나 예수를 없애 버릴 방도를 모의하였다.> – 성서 마가복음 3장 1 – 6절, 공동번역

지난 20일 노스 캐롤라이나 샬롯(Charlotte)에서 일어났던 경찰관에 의한 용의자 피살사건 현장 녹화영상이 공개되었다. 경찰관들이 착용하고 있었던 몸부착 카메라(officer’s body camera)에 찍힌 영상이다. 영상으로 흑인 용의자가 총을 손에 들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경찰관들이 쏜 총소리임에 분명한 네발의 총성과 마치 토끼몰이하듯  포위하는 경찰관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측은 용의자의 차량에서 용의자의 지문과 DNA를 확인할 수 있는 권총과 마리화나를 증거로 용의자가 공공 안전을 위협하는 인물이었음을 주장하고 있지만,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가 경찰관에 의해 피살 되었다고 주장하는 시위대들을 무마시키기에는 어림없어 보인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후 317일 동안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선생이 끝내 숨졌다는 소식이다.

%eb%b0%b1%eb%82%a8%ea%b8%b0%ec%84%a0%ec%83%9d백선생을 치료해온 서울대병원은 돌아가신 백선생의 사인은 신장 기능이 갑자기 떨어지는 증세인 급성신부전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경찰측은 오래전부터 백선생이 쓰러져 누우신 일과 물대포 살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지난 9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이른바 ‘백남기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사고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강신명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서 해야 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명백한 것은 두 사건 모두 법질서를 내세운 측이 힘(총과 물대포)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간 사건이다. 마흔 세살의 흑인 Keith Lamont Scott은 법질서를 집행하는 권력인 경찰이 판단하기에 공공 안전을 위협하는 인물로 여겨져 목숨을 잃은 경우이고, 일흔살 농민 백남기선생은 “대통령의 공약인 쌀값 21만원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공공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권력의 최첨병인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숨진 것이다.

오래전에 이유를 막론하고 사람을 상하게 하고 죽이는 법질서를 파괴했던 이가 있었다. 바로 예수이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법질서를 앞세운 이들에게 던졌던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는 예수의 물음은 ‘법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무릇 법이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법을 위해 있지 않다는 것이며, 법이 사람들의 삶을 보호할 때 그 존재 의미가 있는 일일 뿐 그것에 반하여 사람들을 상하게하고 죽게하는 법은 언제든지 폐기할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외형적이고 형식주의를 우선시할 수 밖에 없는 사회통념과는 별개로, 적어도 예수쟁이라면 성서를 삶의 지표로 삼는 신앙인이라면 “법은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이 명제를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최근 대한민국 국회에서 있었던 대정부질문 답변에 나선 황교안총리가 교언영색의 화술로 법질서를 앞세워 세월호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을 후비고 파며 또 다른 죽음을 안기는 장면이 떠오른다.

황총리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포장되어 소개되는 오늘의 종교는 예수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뚝 떨어진 수은주 따라 성큼 다가선 가을날 주일 아침, 떨어진 낙엽에서 다시 솟아날 생명을 보았던 예수와 숱한 예수쟁이들을 그리고 생각하며…

당신의 작은 관심을…

살며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면 제가 누리는 복이 크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장광선선생님은 그 중 한분이십니다.

그이는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이입니다. 그리고 고향을 사랑하는 분입니다.

거의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필라델피아 한인사회를 터삼아 모국의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전념해 오신 모습들, 동포사회 이민자들이 건강하게 이 땅에 뿌리내렸으면 하는 바램으로 살아오신 모습들 보다 제가 장선생님께 고개 숙이는 까닭은 바로 사람과 고향을 사랑하는 그의 삶의 모습 때문입니다.

그런 장선생님은 지금 투병중이십니다. 만만찮은 투병생활 중에 제법 긴 글로 인사와 함께 지금 제가 작은 관심이라도 보내야만 될 일을 짚어주셨습니다.

장선생님의 건강을 빌면서 그이의 뜻을 단 한사람만에게라도 전하고 싶어 여기 그이가 보낸 글을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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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장광선입니다. 제 건강상의 핑계로 오랜동안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모든 분들이 평안하시고 각박한 경제현실을 지혜롭게 헤쳐오셨으리라 믿습니다.

유엔식량구호기구 ( World Food Program)의 보도에 의하면 8월말과 9월초 사이 큰 비바람으로 두만강유역이 수몰되어 백여명의 사망자와  4백여 실종자가 나왔고 십사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여 긴급구호가 요청된다고 합니다.

이에 유엔식량구호기구는 즉각적인 구호팀을 꾸려 식량 및 필요한 의료품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활동에 들어섰습니다.

1995년에 한반도 북쪽에 큰 홍수가 나서, 미국동포사회에서는 ‘수재민돕기 쌀 한 포대 보내기 운동 본부’를 꾸려 모금에 나섰던 일이 있습니다.

당시는 핵문제로 하여 미국과 북한이 극한 대결을 하던 때여서  우리는 과연 수재원호에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런지 몹시 마음조리며 어렵게 발을 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한 달 동안했던 일차 모금액이 십만달러를 훌쩍 넘어 끈끈한 동포애를 실감했던 일이 새롭습니다.

당시 유엔식량구호기구를 통해 성금을 전달했었는데 유엔식량구호기구 출범이래 정부출연이 아닌 민간모금으로서는 최단기일에 최대액의 성금이 접수된 기록이라며 담당자들이 크게 감동하던 일이 생생합니다.

이번에 북녁 동포들이 겪은 재해에 대해서도 우리가 동포애와 상부상조하는 아름다운 민족전통의식을 발휘하여 안타까운  우리들의 마음을 담아 수해복구지원금을 보냈으면 하는 심정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유엔식량구호기구의 보도를 직접 확인하시고 (WFP 사이트 링크 ) wfp에 직접 성금을 보내실 수 있으며

소액의 정성을 보내실 경우 편의를 위해 필라지역에서는 제가 모아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햄버거하나, 커피 한 잔 거르시고 그 돈을 동포애로 써 주십시오.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거기 묻은 동포애는 측량할 길 없이 크고 따뜻한 것일 것입니다.

제게 보내실 때는 수표나 머니오더일 경우지불인을 K Jang 으로 쓰시고 메모란에  <수재성금>이라 써서

K Jang

204 Griffith St. Salem, NJ 08079  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익명을 원하실 경우에는 <익명처리>라 써 주십시오.

모금된 모든 액수는 모금기관에 전액 전달할 것이며 모금에 참여해주신 개개인에게 그 결과를 통지해드릴 것입니다.

주변 친지분들께도 널리 알려주셔서 함께 동포애를 발휘하도록 도와주시기 앙망합니다.

장광선 삼가 드림

단 한분만에게라도 장선생님께서 품고계신 민족사랑, 사람사랑하는 마음이 전달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기차여행 –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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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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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주택가 상점들 가운데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은 미용실이었다. 도시는 치장이 필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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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에서도 노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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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에서 여러 다른 모습의 홈리스들을 보았다. 잠시 제 자리를 비운 다른 노숙자의 짐을 터는 모습, 남녀 노숙인들이 서로 마주보며 스마트폰을 들고 전화놀이에 빠져 있는 모습, 신문 경제면을 샅샅히 훑고있는 모습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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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의 문제는 비단 캘리포니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해 전, 우리 동네에서 만났던 힘깨나 쓰던 한인 노숙자 사내는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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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가늠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아주 넉넉하다싶게 떠난 공항행이었지만 길위에서 꼼짝을 못하고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경험이 비단 우리 일행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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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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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가 청과상에서 닭한마리 값으로 사먹은 Saturn Peach(도넛 복숭아) 는 새롭고 신기하면서도 익숙한 맛이었다. 무릇 여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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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과 초를 다투며 공항 렌트카 반환지에 도착한 우리는 비행기 시간에 맞추었다는 안도에 조금전 겪었던 일들을 추억거리로 새기며 웃을 수 있었다. 주행거리 겨우 만 마일 정도였던 렌트카가 공항으로 오는 하이웨이 진입로에 들어서자 엑셀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좀처럼 놀란 티를 내지 않고 여행 내내 느긋했던 하나아빠가 당황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말 베테랑이었다.

그렇게 시간에 쫓겨 탑승게이트에 도착한 우리들을 맞은 것은 비행기 연착 안내였다. 샌프란시코에서 1시간 40분 늦게 출발한 비행기 탓에 우리는 환승지 샤롯(노스 캐롤라니아)에서 4시간을 맥없이 앉아 있어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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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행 환승 비행기를 기다리던 노스 캐롤라이나 Charlotte 공항 대합실에서 나는 어느 노부부의 모습을 한동안 넋놓고 바라보았다. 노마나님은 연신 먹을거리를 남편에게 건네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무표정하게 그를 받고 있었는데, 마치 오래전 시골 버스 정거장 대합실에서 마주쳤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하였다. 짐이라야 달랑 작은 백팩 두개 뿐인 것으로 보아, 떨어져 사는 자식들 얼굴 한번 보고 돌아가는 길이 아니였을까?

나는 노부부를 보면서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Toni Morrison이 쓴 소설 “고향”을 떠올렸다.

소설속 주인공 Frank Money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이다. Frank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이유는 이  미국땅에서 흑인들이 겪어냈던 아픔 때문이었다. 남부 조지아주 로터스 출신의 흑인 Frank는 아주 어릴 적에 겪었던 일로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의 경험이란 한 흑인 남자가 백인들에 의해 생매장 당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훗날, 그렇게 생매장당한 흑인은 백인들의 놀이도구로 죽게 된 사실을 알게된다.

백인들은 흑인 아버지와 아들을 싸우게 해놓고는 내기를 벌인다.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그때 흑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네가 나를 죽이라고.” 흑인 아버지는 결국 생매장을 당하고 만다.

작가 Toni Morrison는 1940년대에만 해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었던 미국의 원시적이고 병적인 인종차별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소설속 주인공 Frank Money는 이런 병적인 사회로부터 탈출하고자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것이다.

평범한 삶의 현장에서 단지 피부색이라는 판단 기준에 따라 누군가에는 심심풀이 놀이가 되고, 또 다른 누구가는 목숨을 걸어야하는 노리개가 되어도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던 세상을 겪어왔을 대합실의 노부부를 보며, 그들이 헤쳐왔을 세월들에 잠시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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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고향의 길목이 되어버린 필라의 스카이라인은 반가움이었다.

그랬다. 여행 끝에서 만나는 일상은 반가움이어야만 했다.

후기 – 하나네와 우리 부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처 맛보지 못했던 중국인촌 만두를 아쉬어하며, 여행 후 두어 주 지나 필라델피아 중국인촌에서 만두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부부는 사랑하는 아들이 사랑하는 아이의 부모 Washington씨 부부와 저녁을 함께 하였다.

 

가을 – 일요일 아침

맨하탄에서 일어난 폭발사고 소식에 가슴이 철컹 내려앉는다. 우선 사고 지역과 딸아이 거주지역과의 거리를 따져보고, 아이에게 연락해 본다. 딸아이는 사고조차 모르고 있었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찬찬히 뉴스들을 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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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마음을 다스릴 겸 이른아침 동네 한바퀴를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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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체육공원 어귀 밤나무엔 밤들이 한가득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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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색으로 변해가는 풀밭에 핀 들꽃이 아침인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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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공원 앞에 “Nip”이라고 불렸던 야구선수 James Henry Winters를 기리는 팻말이 서 있다. 오래전엔 야구도 흑인리그와 백인리그가 따로 있었단다. 흑인리그에서 명성을 떨치던 Nip은 은퇴후 결혼한 그의 아내  Sarah Smith 고향인 이 마을에서 정착해 평범한 일꾼이 되어 살다가 갔다고 한다.

사람사는 곳에 여전한 것은 흑백 갈등 뿐만이 아닐게다.

이 좋은 가을날 아침에 누군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아픔으로 가슴을 저미기도 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곳에서 평범한 일꾼으로 살며 계절을 한껏 느끼며 누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