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동몽(異床同夢)

<홍길복 목사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에 수강 신청을 하며….

해마다 이월은 내 생각을 좀 넓히는 때이다. 뭐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만큼 좀 한가하다는 말이다. 이맘 때면 춥고 눈도 많이 오곤 해서 내 가게가 좀 한가하다. 일요일 말고도 하루 이틀은 눈 때문에 가게 문을 닫고 쉬기도 하거니와 가게 영업시간을 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돈은 좀 덜 들어온다. 허나 시간은 좀 풍부해진다. 그러다보니 평소에 생각지 아니했거나 못했던 것들이 보이게 되어 생각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지는 나름 내가 좋아하는 이월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삼월 초이면 언제나 내 지갑은 가난하다. 삼월 초 내 생일을 해마다 늘 그렇게 맞는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르다. 눈도 전혀 오지 않았고 날씨도 추워 본 적이 없다. 가게는 내가 많은 짬낼 틈없이 바빳다.

이 달초에 호주에 계시는 홍길복목사님께서 이메일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그 편지를 소화해 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생각의 용량을 초과하는 것이어서 생각과 돈 모두 풍족하게 삼월 내 생일을 맞게 되었다.

이달 초에 홍목사님께서 보내주신 편지 내용이다.

참 오랜만 입니다. 그동안 어찌 지내셨습니까? 안부를 묻는 일조차 쉽지 않은 세상에서 그래도 벌써 해가 바뀐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한가닥 작은 희망에 대한 희망 조차도 사라져 가는 땅 입니다. – 중략 – 시드니에서 작은 ‘인문학 교실’을 열었습니다. 한 달에 두번 모입니다. 첫번 모임에 그래도 마음을 함께하는 친구들 한 30여명이 모였습니다. – 중략 –  옷은 새 것이 좋지만 사람은 옛 사람이 좋네요.

그랬다. 홍목사님과 헤어져 그는 호주로 나는 미국으로,  함께 했던 한국이라는 삶의 자리를 바꾸었던 시절에 그는 30대였고 나는 20대였다.

이제 그이는 70대 중반의 은퇴목사이고, 나는 은퇴를 바라보는 60대 중반이 되었다. 그래, 우린 서로 옛사람이었다. 다만  거기에 수식어 하나를 얹는다. <변하지 않은…>이라고.

‘각자 삶의 자리는 다르지만 이 교실을 통하여 이상동몽(異床同夢)하는 <인문학 친구들> 입니다. <異床同夢>! 이 얼마나 멋진 말 입니까? 잠은 각기 다른 데서 자지만 꿈 만은 같이 꾸기를 소망합니다.’

그 이가 첨부파일로 덧붙인 <시드니 인문학 교실> 강의록에 적어놓은 말이다.

나는 홍목사님의 허락을 받고, 그 이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강의록을 이 곳에 올린다. 더하여 내가 참 사랑하고 존경하는 필라 인근의 친구들과 함께 한 달에 두번씩 이 강의록을 참조하면서 인문학 공부를 쫓아가려 한다.

자!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로  ‘들어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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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살며 딱 두 교회에 적을 올렸다. 한국의 신촌 대현교회 – 그 곳에서 만났던 많은 친구들은 내 삶을 지배했다. 홍목사님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내 아내 역시. 수 년전에 아내와 딸과 함께 그 곳을 찾았었다. 그리고 이민와서 한 곳…. 나 역시 옛이 그립다.>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1

 교실문을 여는 글 1 – 왜 인문학인가? 

일찌기 다산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기 전 한양에 있을 때 몇몇 친구들과 계(契) 모임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죽란시사’(竹欄詩社)라 했습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며 세상을 걱정하며 자아를 성찰하는 선비들이 모여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일종의 풍류계(風流係)였습니다.

우리도 지금 ‘시드니 인문학 계’를 통하여 인생의 시름과 아픔은 서로 위로하고 시대와 인간을 피차 보듬어 주면서 이 절망의 땅에서도 함께 희망의 무지개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같이 먹고 자면서도 꿈과 생각은 서로 다른 동상이몽(同床異夢)가들이 아니라, 각자 삶의 자리는 다르지만 이 교실을 통하여 이상동몽(異床同夢)하는 <인문학 친구들> 입니다. <異床同夢>! 이 얼마나 멋진 말 입니까? 잠은 각기 다른 데서 자지만 꿈 만은 같이 꾸기를 소망 합니다.

지난 12월 이 모임을 준비하던 이들은 ‘시드니 인문학 교실’의 목적과 기대를 다음과 같은 말로 다듬어서 표현했습니다.

(1) 동양과 서양에서 이어온 인문학의 전통과 역사, 목적과 내용, 방법론과 한계를 함께 공부해보자. – 클라스의 진행은 주로 준비된 강연, 토의, 책읽기와 나눔 등이 될 것이다.

(2) 이를 통하여 인문학적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개인적 사고의 깊이를 심화 시키고 또 그 틀을 좀 더 넓혀 나가자. – 우리는 종교단체들 처럼 무엇을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하고 의심하고 고민하고 진솔하게 마주침으로’ 더 바른 삶이란 무엇인지를 추구해 나가려고 한다.

(3) 이런 사유의 깊이는 인문학 교실에 참여하는 친구들 개개인의 삶에 의미와 보람을 갖게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4) 더 나아가 우리는 이 교실을 통하여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으로 하여금 보다 정의롭고 사랑과 평화가 넘실거리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약간은 논리적으로 서술된 이런 <시드니 인문학 교실의 목적>을 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야기들을 통하여 좀 유연하게 풀어보겠습니다.

 

갈등(葛藤) 또는 포등(葡藤)

한때 뒷뜰 등나무와 포도나무는 내 집 자랑거리였다. 등나무는 deck의 지붕이었고 포도나무는 울타리였다. 특히 아버님이 좋아하셔서 내 집에 오실 때면 늘 뒷뜰 등나무 그늘에 나가 계시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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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 아래 내 아버님의 한 때 

봄이면 등나무 꽃과 이어피는 라이락 꽃에 취했었고, 여름이면 등나무 그늘 아래서 잔치를 벌리곤 했었다. 포도가 영글 즈음 등나무 그늘 아래서  쏘로우나 휘트먼을 읽는 호사는 분에 넘치는 것이었다. 겨울이면 deck 위에 쌓인 눈을 치우며 마치 죽은듯이 앙상히 마른 등나무를 걱정하곤 했었다. 어느 해 봄이던가 등꽃이 주렁주렁 달린 뒷뜰 deck에 현판을 걸었었다.

“은혜원(恩惠園)” – 뒷뜰을 바라보거나 그 곳에 나가 앉아있을라치면 내가 느꼈던 감정을 드러낸 작명이었다. 현판 글씨는 아버님께서 써 주셨다. 그 등나무 그늘 아래서 초, 중, 고, 대학을 마친 내 아이들이, 이젠 아버님처럼 이따금 들르는 곳이 되었다.

몇 해전이던가? 거동이 불편해지신 아버님께서 내 집을 찾으시는 일도 아주 드물어지고, 아이들도 더는 자기 집이 아니게 될 무렵부터 나 역시 뒤뜰에 나갈 일이 부쩍 줄기 시작하였다.

등나무 줄기와 포도나무 줄기가 엉겨 라일락 나무를 휘감기 시작한 것 조차 모르고 한 해를 넘긴  후에야 등나무와 포도나무가 더는 은혜원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었다.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그 무렵 등나무와 포도나무는 내 은혜원을 파괴하는 무법자였을 뿐이었다.

등나무와 포도나무의 만행으로 라이락을 잃고 나서야 나는 분노하였고, 두 해 전 봄에 등나무와 포도나무 밑둥과 deck 기둥들에 전기톱을 대어 잘라내었다. 물론 “은혜원(恩惠園)” 현판을 떼어낸 일이 먼저였다.

갈등(葛藤)이 아닌 포등(葡藤)이 빚어낸 참사였다. 아니 내 게으름이 만들어낸 아픔이었다. 그렇게 휑하게 변해버린 뒷뜰을 이젠 다시 가꾸려 한다.

Deck을 다시 꾸미고 꽃나무를 심으려 한다. 글쎄… 언제 그 세월을 맞을런가는 알 수 없지만…. 이따금 찾아올 지도 모를 내 손주들을 위하여….

**** 이즈음 한국 소식을 들으며 밑둥까지 잘라낸 내 뒷뜰  등나무가 자꾸 생각나는지. 갈등의 밑둥이 아니라 갈등의 원인을 송두리째 뽑아버릴 기회는 어느 민족 어느 개인에게나 주어지기 마련아닐까?

비 맞으며 필라 친구들과 함께 하고 온 날 밤에.

2-25-17

 

단상(斷想) – 미국과 한반도

지난 주에 가게 손님 몇 분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19세기도 아니고 이해를 못하겠어. 넌 (그들과 같은) 한국인으로 어떻게 생각해?”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지난 주초에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과 북한 정권에 대해 묻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친절하게도 관련 기사가 실린 신문을 건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난감해진답니다. 비단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어제 AP통신은 지난 주에 특유의 격정적 언어로 쏟아낸 트럼프의 연설에 대한 팩트 체크를 확인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마약중독의 대담성(뻔뻔함?)<The audacity of hype> 제목의 그 기사 가운데 하나랍니다.

TRUMP: “To be honest I inherited a mess. It’s a mess. At home and abroad, a mess.”

THE FACTS: A mess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But by almost every economic measure, Obama inherited a far worse situation when he became president in 2009 than he left for Trump. He had to deal with the worst downturn since the Depression.

트럼프는 전임 오바마대통령으로 부터 모든 것이 엉망인 채로 혼란 투성이인 정부를 물려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을 따지고 보면 오바마가 8년 전에 공화당 정권으로부터 물려 받았던 정부의 모습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처참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엉망으로 보는 것은 그렇게 보는 사람의 시각이라는 것이지요.( A mess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거니와 그 모든 것을 옳고 그름으로만 편갈라 나누는 일은 마뜩지 않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히 ‘아니오’라고 할 만한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무엇인가를 우상화하는 상황이나 일을 마주할 때입니다. 그것이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될 수도 있겠지만, 역사 이래 사람들이 살아오며 깨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김정남에 대한 기사들을 훑어 보다가 눈에 뜨인 단어가 ‘백두혈통(白頭血統)’입니다. 구차한 설명이 필요없는 전근대적인 우상화로 유지되고 있는 북한체제의 실상을 전해주는 말입니다.

이에 반하여 질서와 법규를 앞세워 상징조작으로 대중의 눈을 속이는 지금의 트럼프 정권의 행태 역시 우상화의 한 범주입니다.

어떤 이념이나 질서를 앞세워 극단적으로 나(또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부정하는 구조악(構造惡)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지금의 미국이나 남북한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믿음이 팽배해진 사회는 이미 우상을 이고사는 사람들의 집합체일 뿐일겝니다.

이즈음 미국사회가 겪고있는 극심한 계층 또는 집단간의 대립이나 한반도 남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모습들을 보면서 옳고 그름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의 싸움으로 제가 치부하는 까닭입니다. 그 싸움조차 허락치 않는 한반도 북쪽은 논외로 치고 말입니다.

미국은 현재 제가 이고 사는 세상이고, 내 인생의 전반부 30여년을 살았던 한반도 남쪽 사람들에게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믿음을 심어주어 우상이 된 이는 박정희라는 제 오래된 생각인데, 이즈음 그쪽 소식들을 보면 그 생각이 더욱 굳어진답니다.

지금, 우리는…

피해자는 너무나 많이 기억하는 반면에, 가해자는 너무나 적게 기억한다. –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오늘 동네에서 저와 같은 업종인 세탁업을 하는 이에게 들은 말입니다. 자기 가게에서 일하는 멕시칸들이 이번 주 목요일에 모두 일을 못하겠다고 했답니다. 7명의 멕시칸 종업원들이 모두 그 날 하루는 쉬겠다고 통보를 했다는 것이지요. 사연인즉 Wilmington시내에 있는 St Paul’s Church에서 이번 목요일에 열리는 트럼프의 이민자들에 대한 행정명령을 규탄하는 모임에 참석해야하기 때문이랍니다.

한인 커뮤니티에도 이런저런 걱정과 우려들이 떠도는 이즈음이지만, 사실 저처럼 촌에 살고 있거나 이 땅의 시민이 된지도 제법 시간이 흐른 사람들에겐 솔직히 무관한 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정황이었답니다. 그런데 트럼프의 광기가 이렇게 우리들의 생업에 가까이 다가온 것이지요. 실제 히스패닉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한인들은 걱정이 많다고들 합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 동네 신문인 News Journal은 어제  Newark시에서 있었던 행사 하나를 제법 크게 소개했답니다. Newark시는 제 가게가 있는 곳이고, 행사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시위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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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시위에 참석한 이들의 목소리를 이렇게 전하고 있답니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다양성이다. Diversity is what makes America great.”, “우리는 낯선 이들을 환영한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건, 우리는 그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We welcome that stranger. We fight for that stranger, no matter where that stranger is from.”, “우리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We are going to win this battle.”

트럼프 치하의 미국이 앓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한국계 시민으로서 멕시칸들을 비롯한 이민자들과 이 땅의 건강한 시민들과 손잡고  승리하는 대열에 함께 해야 할 때입니다.

봄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뜻맞는 이들이 모여, 작으나마 기금을 모아 밝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쓰자는 뜻으로 재단을 세운지도 제법 되었답니다. 비록 작지만 꾸준했기에 이제 거의 재단의 틀이 짜여져 간답니다. ‘희망재단(Hope Network Foundation)’이라는 이름으로 등록을 마친 일도 꽤 오래 전입니다.

그렇다고 이제껏 내세울만한 대단한 일을 해 본적은 없답니다.

그래도 명색이 재단이므로 이사회를 연답니다. 올들어 첫 이사회를 준비하면서 지난 분기에 했던 일들을 정리해 보는 것이지요.

그 중 하나랍니다. 지난 해 북한에 큰 홍수가 나서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 고통을 이고 사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 무렵에 ‘희망재단(Hope Network Foundation)’의 이름으로 적으나마 그들을 돕는 일에 함께 한 적이 있었답니다.

작은 금액의 돈을 유엔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 WFP) 미국본부에 보냈던 것인데, 뒤늦게 WFP에서 감사의 편지를 받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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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를 준비하면서 잊고 있었던 함경북도 수재민들을 생각해 본답니다. 비단 북의 수재민들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고통과 아픔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자연의 시계로 오는 봄은 때가 되면 오는 법이지만, 사람들이 기다리는 봄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는 것일까요?

일찍이 법정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을 주셨답니다.

<그것은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련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비극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새날을 비상(飛翔)하는 의지의 날개가 꺽이지 않는 한 좌절이란 있을 수 없다. 어제를 딛고 오늘은 일어서야 한다. >

‘희망재단(Hope Network Foundation)’이 봄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혼돈의 시대

가치(value, 價値)의 혼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말입니다. 어느 아주머님(할머님?)께서 던졌다는 외침 ‘염병하네’라는 말이 가슴에 닿는 이즈음입니다.

‘염병하네’보다는 ‘옘뱅하네’로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말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 흔히 듣고 사용했던 말인데, 통상은 ‘옘뱅하네’만 따로 쓰진 않았고 그 앞에 ‘지랄’이라는 말을 얹었던 것 같습니다. ‘지랄 옘병하네’라고 말이지요. 때론 그 앞에 한마디 덧붙이곤 하였지요. ‘미친 년(놈) 지랄 옘뱅하네’라고 말이지요.

길을 걸으며 담배 꽁초를 버리고 침을 뱉고 하는 일이야 지극히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말이 익숙했던 때 말입니다. 실제 동네마다 ‘미친 놈(년)’들이 하나 둘 씩은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랄 옘병’을 하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던 진짜 환자들을 거리에서 보는 일이 그닥 신기한 일이 아닐 때였습니다.

1960대의 일입니다.

그렇다고 ‘미친 년(놈) 지랄 옘병하네’라는 말을 정신 줄 놓고 앓는 환자들에게 쓰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멀쩡하게 제 정신으로 사는 놈년들이 비정상적,비상식적인 말이나 행동을 할 때 그 욕을 퍼부었지 않았나 하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그런데 2017년 오늘 듣는 ‘염병하네’라는 말이 트럼프 치하의 미국이나 탄핵정국의 한국을 설명하는 말로 이리도 적합할 수 있는지 놀란 마음이랍니다.

‘미친 놈(년) 지랄 옘병’하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2017년에 말입니다.

그래 가치(value, 價値)의 혼돈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가치(value, 價値)’를 둘러싼 투쟁의 역사>일 수도 있겠습니다.

내 삶에 중요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밤입니다.

새 장난감, 손전화에 대해

‘쓸데없이 고집만 쎄서….’ 내가 종종 아내에게 듣는 잔소리 가운데 하나이다. 아내가 그 말을 던지는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절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으므로 아내의 잔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내가 지적하는  ‘쓸데없는 고집’ 가운데 하나는 손전화(스마트폰 또는 핸드폰)없이 사는 내 삶이다. 이런 나를 골동품 취급하는 이들은 아내말고도 종종 만날 수 있다.  골동품으로 여기든 촌놈으로 여기든 ‘쓸데없는 고집’으로 치부하든, 아내를 비롯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몫일 뿐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손전화를 전혀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십 수년 전 아직 스마트폰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 모두들 투박한 모양의 핸드폰들을 사용하던 시절에 한 일년여 손전화기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그만 전화기를 없앤 이후엔 손전화기와는 상관없이 살았다. 뭐 큰 이유나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단지 편했기 때문이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내 나이 또래 이상의 노인들 조차 스마트폰을 사용하는게 어색하기는커녕 당연한 세상이 되었어도 나는 그 물건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딴 이유없다. 그저 없이 지내는 편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믿을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모르겠지만,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앱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기술적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지언정 스마트폰은 없이 살았다. 다시 말하지만 내 편한 삶을 위해서였다.

아내에게 ‘고집세다’는 잔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없이 살았던 내가 마침내 손전화(스마트폰)를 사서 손에 넣었다.

내가 개인컴퓨터(pc)로 사용하는 텔레그램 말고, 스마트폰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카카오톡을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카톡도 pc버전이 있지만 아내의 스마트폰 전화번호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에이 할 수 없다’하고 하나 장만한 것이다.

이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고 지금 열공중이다. 나는 이 장난감을 가지고 전화를 주고 받는 일에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내가 밥 먹고 사는 업종인 세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해 카톡 또는 sns등을 이용해 정보를 손쉽고 빠르게 전달해 주는 일이나, 언어문제로 순간을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해 보고자하는 내 늙으막 꿈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해 보고자 함이다.

내 새 장난감으로 하여 아내의 잔소리 가운데 하나는 사라질런지… 아님?

설날, 애국가를 부르며

잊고 살다가 일년에 한 두차례라도 애국가와 미국가를 부를 수 있음은 모두 한인회 덕이다. 목청 높여 온 힘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사를 읊조리며 따라 부를지언정 그런 때이면 한인회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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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저쪽 세월을 돌이켜보니 손에 잡힐 듯 한건만 강 건너 아스라히 저 편에 있다. 그 때만 하여도 한인회는 없었고, 다운타운에서 장사하는 한인들 중심으로 실업인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한인들을 조직해 나가는 때였다. 몇 해 후 각종 직능단체들이 생기고, 그를 터삼아 델라웨어 한인회가 발족하였다.

매해 한인들의 수도 늘어갔거니와 아직 인터넷 등이 출현하기 전이라 이민사회의 각종 정보 유통이 원활하지 않던 때여서 한인회 행사에는 제법 많은 한인들이 모이곤 하였다.

그 중 5월 메모리얼데이 한인 축제와 설날 전후로 열리는 새해맞이 잔치에는 삼 백여명이 넘는 한인들이 모여  함께하곤 했다. 매 행사마다 빠지지 않고 초대하는 단골손님들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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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점점 나이 들어 사라져 가면서 줄어드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행사에 참석하는 한인들의 수는 줄어갔다. 까닭을 찾자면 여러가지가 있겠다.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들의 수가 이젠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는 사실에서부터 스마트폰 안에 차고 넘치는 정보들이 사람들이 마주할 기회를 앗아갔다는데에 이르기까지….

그럼에도 한인회를 붙들고 이어가고자 씨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꿈은 결코 큰 것이 아니다. 다만 ‘나’와 ‘우리’를 잊지 않고자 함이다.

오늘 저녁 그네들이 마련한 설날맞이 잔치에 가서 애국가와 미국가를 부르고 왔다. 아직은 정정한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함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인들의 권익신장과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이웃에게 알리고자 애쓰는 델라웨어 한인회 김광실회장을 비롯한 임원들 모두에게 속깊은 박수를 보낸다.

참 좋은 일

어제 제 이메일함에 들어온 편지 한통의 내용입니다.

“델라웨어 대학교 은퇴교수인 내가 이즈음 하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뉴왁시에 있는 헬렌 그라함 암센터에서 환자와 간병인들에게 글쓰기 교실을 여는 일이다. 물론 자원봉사이고 이 교실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공짜이다. 오늘 네가 보낸 이메일 편지 내용은 내가 오는 2월 13일에 열리는 글쓰기 교실의 주제와 딱 맞는 것이다. 그래서 네 편지를 그날 참석하는 사람들과 네 편지를 함께 나누려고 하는데 괜찮겠니? …….”라는 것이었습니다.

I’m a retired professor from the University of Delaware, and I offer a writing program for patients and caregivers at the Helen Graham Cancer Center in Newark. I do it as a volunteer, and it’s free of charge and open to all. The post you sent out today fits perfectly with the topic of our next writing workshop, on February 13. Would it be all right with you if I print out copies to give to the patients and caregivers who attend that session? We usually have 12-18 people present. Of course I’ll include the contact information so that they can sign up for your weekly posts if they wish.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weekly reflections, which I enjoy very much, and for considering this request.

Joan DelFattore

이 편지를 받은 저는 당연히 제 세탁소 손님인 Joan DelFattore님께 답을 드렸답니다.

“저로서는 그저 영광일 뿐”이라고요.

제가 보냈던 편지 내용이란 사실 별거 아니었답니다. 내 마음으로 다스릴 줄 아는 하루를 보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한 것이었지요. 그런 잠시의 제 생각 하나가 누군가에게 정말 순간일지라도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제게 참 좋은 일이지요.

제가 보냈던 편지 내용이랍니다.

1-22

며칠 전에 휴대전화 가게에 들릴 일이 있었답니다. 그날 대기 의자에 앉아  “참 세상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십 수년 전만해도 지금과 같은 휴대전화 가게 같은 매장은 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런 비즈니스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이어가다보니 십 수년 동안 새로 생겨 호황인 업종들과 잘 나가다가 없어지거나 쇠퇴한 업종들을 꼽아보게 되었답니다. 그 생각의 끝은 역시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이었답니다.

제 업인 세탁업도 마찬가지랍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참 많이 바뀌었답니다.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및 정보 통신 기술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이른바 제3차 산업혁명의 결과들일 것입니다. 어려운 것은 제가 잘 모르고요, 사람사는 모습들이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들 한답니다. 솔직히 저는 그런 변화에 대해 잘 모른답니다. 다만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더 빠르게 바뀌어 갈 것이고, 사람들이 먹고 사는 직업의 유형들도 빠른 주기로 바뀌어 갈 것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답니다.

그런 생각을 이어가다보면 제 아이들 세대들은 우리 세대보다 더 어려운 세상을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한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데 제가 할 수 일은 아무 것도 없답니다.

다만 그날 휴대전화 가게에서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한가지를 생각해 낸 것이 있답니다.

조금은 느리게 살자는 것이랍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일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내 삶을 느리게 천천히 여유있게 사는 것이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자! 새로 시작하는 한 주간 여유롭고 넉넉한 시간들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A few days ago, I had to go to a cell phone store. On that day, while I was sitting on the chair and waiting, I got it into my head that the world had really changed a lot. Just a decade or so ago, I did not see businesses such as cell phone stores. I don’t think that anybody would have thought about that kind of business. Following such a train of thoughts, I started to think about newly-born and booming businesses and those once booming, but now declining businesses during the past decade or so. Expectedly, the thoughts ended in the conclusion: the world has really changed a lot.

So has the dry-cleaning business, which I have been doing. It has changed a lot in many respects.

Those changes may be the outcome of 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 which can be characterized by personal computers, the internet and information/communication technologies. Though I don’t have expert knowledge about it, I think what it tells us is that the way of our lives has been changing rapidly.

Then, it is said that now we are living in the era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Frankly, I don’t have any idea about that. But, I think that in the future, the world will change at an even faster pace and the rise and fall of businesses will change at a shorter cycle.

Following the train of this kind of thoughts, I started to wonder whether our children’s generation might confront a world which might be even harder to cope with than the one that we do.

Though the world is changing rapidly, I cannot do anything about that.

However, at the cell phone store the other day, I got an idea of one thing which I could do in the rapidly changing world.

It was to live in a little bit slower way.

Though I cannot do anything about rapid changes in the world, I can have my own way to decide how to live. To live my life in a slower and more leisurely way is totally up to me.

Well! I wish that you’ll have an easy and comfortable week.

From your cleaners.

세월호 1000일 – 어떤 설법

이 나이들어 특별한 종교에 혹 할 까닭은 없다만, 종종 귀에 들어오는 설교나 설법을 들을 때면 그 종교의 경전을 찾아 읽곤 한다. 일테면 말씀을 전하는 이들에 대한 예의 때문이다.

내 주위엔 다양한 종파의 기독교인들부터 몰몬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조계종에서 원불교까지, 천도교에서 무종교까지 다양한 지인들이 있다.

이따금 그 사람이 믿는 종교와 그 사람의 이미지가 일치할 때 느끼는 깊은 울림이 있다. 내가 그 종교를 믿고 안 믿고 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이 말이다.

딱 한 주 전의 일이다. 세월호 1,000일을 되새기고자 모인 필라 세사모 행사에서 말씀을 전한 원불교 강신오 교무님의 소리(이런 걸 ‘소리’라 해야 마땅할 터)를 들으며 누린 울림은 아주 컷다.

하여 그 울림을 함께 나눈다.

1000

반갑습니다. 원불교 강신오 교무입니다.

심해(深海)는 얼마나 추울까요.. 세월호 1000일인 오늘, 마치 아직 9명이 남아있는 깊은 바다와 같이 추운 것 같습니다.

매서운 추위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월호 참사 1000일 범종교 추모식’을 준비해주신 필라 세사모 여러분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그 아픔을 함께 느끼고 나눌줄 아시기에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과 혹 사정이 있어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셨지만 마음으로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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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원불교 경산 종법사님께서는 ‘성자가 되는 길’이라는 신년법문으로 세 가지 지침을 주셨습니다. 먼저 짧게 나누는 시간 갖겠습니다.

하나, 마음에 공을 들입시다.

모든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전쟁과 평화가 결국은 한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그 때 그 곳에 알맞게 마음을 낼 수 있도록, 마음 사용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둘, 일에 공을 들입시다.

우리의 삶은 소소한 일에서부터 국가와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까지 끊임없는 일의 연속입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도덕적으로 조화롭게 성공시켜

내 마음과 내가 속한 곳에서부터 멀리까지 일이 잘 되도록 공을 들여 성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 만나는 사람마다 공을 들입시다.

우리는 무수한 인연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인연들이 인연을 따라 나를 부처로, 성인으로 만들어주고, 일을 성공시켜주고, 목적을 이루게 해주는 동지이며 협력자 입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은혜가 되고 발전이 되도록 공을 들여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과 세상의 모든 분들께서, 자기 마음을 알아 마음에 공을 들여 마음의 자유를 얻으시고,일마다 조화롭게 성공시켜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성공하시고,만나는 인연마다 서로 은혜가 되고 발전이 되어모두 함께 성인이 되시고 함께 평화하시기를 염원드립니다.

제가 출가를 하고 나서 얼마 안지났을 때, 그 때는 나는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이라고누가 물어도 그렇게 대답하던 아주 오만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그 때, 물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허리도 안되는 그 얕은 물에 머리부터 빠져서, 오직 살겠다고 허우적 거리며 난리를 치던 기억은,그동안의 오만함에 대한 수치감과 함께, 살아있는 생명이 준비없이 강제로 죽음을 맞이할 때, 숨쉬고 싶을 때 입과 콧속으로 물밖에 들어오지 않을 때, 그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를,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생명 그 자체로 참으로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뼛속 깊이 각인시켜주었습니다.

천 일 전에 세월호에 있던 아이들과 승객들은, 어땠을까요…

지금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그 두려움과 고통이 가슴에 밀려오는 듯 합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 자기 한 몸 만을 자기 인줄 알고 살다가 자연과 부모와 세상의 모든 생명들과 그 생명을 지켜주는 바른 법을 알고 함께 성장하는 것을 우리는 삶이라고 하고, 그러한 ‘존재 자체의 은혜’를 아는 삶, ‘그 삶을 사는 생명’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삶을 사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이 참으로 귀한 줄 알아서, 나 아닌 생명도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압니다. 자기가 육신과 마음의 고통을 알기에, 나 아닌 생명이 아파할 때 참으로 함께 아파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고, 우리는 자기가 주인이 되는 삶, 참된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고, 권력의 노예가 되고, 원망의 노예가 되고, 성의 노예가 되어, 도무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자기가 집착한 것에 아귀같이 달라붙어서 인간으로서의 양심마저 버리고,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삶을 사는 것은 마음으로는 참으로 불쌍하다고 여기되, 그 행위에 대한 것들은 분명 단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참으로 미운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을 가진, 나와 한 생명인 그 삶을 함께 ‘사람의 삶을 살자’고 인도하기 위한 것이며, 그리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어제 보다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 달, 치료 차 한국에 갔었습니다.  처음 참가한 4차 집회에서 한 고등학생의 자유발언이 있었습니다. 친일청산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이승만으로 부터 시작하는 뿌리깊은 민간인 학살의 한을, 그 아이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옮겨 붙는다고,  횃불이 되고 들불이 되고, 산불이 된다는 웅변에 모두가 뜨거운 가슴으로 환호하고 박수하였습니다.

세상의 어느 나라가 이런 평화로운 집회를 하고,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루어내겠는가 하는 자부심과 긍지가 마음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것을 마치 시험이라도 하듯이, 친일 세력들은 가진 것을 놓지 않기 위해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여, 폭력과 폭언으로 더러운 시위를 만들고자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10차가 넘고, 세월호 1000일 집회를 한 지금까지도 한 마음으로 그 평화로운 촛불혁명 이어가고 있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배를 일부러 걸려 넘어뜨리기위해 바다에 내렸던 닻 마저 몰래 잘려 아직까지도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있는 세월호는, 그러나 우리들을 하나로 이어 우리 안에 있던 참으로 아름다운 홍익인간의 정신과 양심을 끌어올렸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정치인의 도덕성을 보지 않고 만들어낸, 마치 우리 안의 탐욕을 거울같이 보여주었던 이명박근혜를 만들었던 그 욕심과 이기심이 아니라,  지금 이 마음과 이 정신으로 다시 시작하도록 우리들을 하나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이 결정된 이후, 사람들은 ‘이제 시작이라는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온 국민과 국토가 만신창이가 된 오늘, 그들이 돈으로 던지는 미끼에 우리가 주인이 되는 기회를 또다시 잃을 수는 없습니다.

어둠은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빛이 있는 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우리가 함께 하고, 연대하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한, 생명과 민주주의를 향한 촛불은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져 결코 꺼지지 않는 빛으로 어둠을 밝힐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동포님들과 한국에서 촛불을 드시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들께 진리의 크신 은혜와 호렴이 늘 함께 하시어,

모두 마음마다 일마다 만나는 인연마다 공을 들이셔서, 대한민국과 이땅에 진리와 양심과 정의가 촛불같이 빛나고, 그 불이 번져 들불이 되고 산불이 되어 온세상에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늘, 매 순간이 다시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