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에

대구에서 목회하는 후배가 있다. 그가 기특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와 대구의 이미지 – 모두 내 머리속에 남아있는 허상일 터이지만- 가 영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그가 기특하고 존경스럽다. 비록 내 머리 속 허상일지라도, 그의 이미지와 대구의 이미지가 하나가 된다면 썩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이다.

오늘 아침, 그가 페북에 “심플하게 산다”라는 책 내용 일부를 소개한 글을 읽고 일터로 나갔다.

“걸을 때든 요리할 때든 활력이 넘치게 하자. 요컨대 ‘힘차게’ 살자. 그러기 위해선 스트레스, 불안, 걱정, 분노, 슬픔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 것들은 당신의 적이다. 활력은 비싼 화장품보다 피부에 더 좋다.”

단순하게 살자거나 힘차게 살자거나 피부건강을 지키자거나 내심 작심이나 결심해 본 적은 없지만, 최근 수 년 들어 몇 가지 새로운 일들을 하며 산다.

일테면 집안에 물건들을 줄이는 일도 그 중 하나이다. 정들었던 물건들일지라도 딱히 필요 없는 물건들은 버리거나 때 되면 찾아오는 이들에게 기부하고,  우리 두 내외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니한 사지 않는 일이다. 이 일로 종종 아내와 다투곤 한다.

가게 일을 줄인 것은 올해 들어서 시작한 일이다.  주 중 이틀은 오전 12시면 아내와 함께 가게를 나선다. 처음엔 이래도 될까 싶었는데, 아무 일 없이 가게는 잘 돌아갔다.

공짜 시간을 마련한 처음 얼마간은 아내나 나나 하고 싶은 것들은 많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이 그저 게을러지기만 했다.

반 년 쯤 지나자, 나름 그 시간들이 아주 귀하게 우리들의 시간이 되어간다. 아내와 함께 걷는 일도 그 중 하나이다. 오늘은 참 걷기 좋은 오후였다.

그러고보니 대구에서 목회하는 후배는 아내의 친구이기도 하다.  텃밭 농사짓는 그의 교인 하나가 고추 서른 근 거두어 열 근을 가져다 주었다 하여, 내가 ‘그건 착취가 아니냐?’ 농을 했다만, 그도 머리 허연 연륜 깊은 목사님이시거늘….

아무렴, 대구에서 목회하는 내 후배인데, 서른 근도 심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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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설

오늘 유엔 연설에서 자화자찬으로 웃음거리가 된 트럼프에 대한 ABC의 트윗에 달린 댓글들이 크게 웃음을 준다. 한 아낙의 뿜는 모습에 담긴 조롱이 가관이다.

트럼프는 정말이지 독특한 캐릭터이다.

한 두어 달 전에 플로리다에서 낯선 풍경에 놀랐던 경험이 있다. 트럼프를 찬양하는 거리의 대형 입간판과 트럼프를 응원하는 스티커를 부착하고 달리는 도로의 자동차들이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쿠바를 비롯해 하와이 버진 아일랜드, 푸에르토리코를 위시하여, 베트남 등의 인도차이나, 한반도, 아프카니스탄,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한 일들을 미국민들은 애초부터 이제까지 진실을 모른다고 일갈했었다.

역사의 역설이랄까?

평생 치열하게 싸웠던 하워드 진이 결코 이루지 못했던 워싱톤의 가면을 들추어 내는 일을 트럼프가 해 내는 것은 아닐까?

이 참에 정말이지 한반도 문제만이라도….

편지 – 사는 맛

이민 와서 어쩌다 시작하게 된 세탁소 주인 노릇이 어언 30여년이다. 한 땐 네 곳의 세탁소와 픽업 루트까지 이 업으로 남 못지 않게 바빳었다. 세탁소를 하기 싫어 한 눈을 팔다 폭삭한 적도 있었다. 나름 미 전역 이 업계에서 내 이름 석자를 기억해 주는 이들도 몇몇은 된다.

누구에게나 그 때가 찾아오듯 일이 좀 버겁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이르러 일을 줄였다. 한참 때에 비하면 이즈음 세탁소 일은 그저 놀고 쉬는 셈이다.

바램이 있다면 아내 덕에 30여년 지켜온 이 세탁소에서 일할 수 있는 날까지 하루 해를 보내는 것이다.

그 바램에 금이 가기 시작한 일이 생긴 것은 올 초였다. 내 세탁소가 있는 샤핑센터의 건물주는 삼대 세습을 받은 젊은 친구다. 그의 할아버지와 계약을 맺고 들어 가 그의 아버지를 거쳐 젊은 새 주인에 이르기까지 이어온 가게란 많은 입주자들 가운데 Acme나 Kmart 등 큰 체인점들을 제외하면 내 세탁소가 유일하다.

젊다는 것은 꿈이 있다는 뜻. 젊은 주인이 몇 년 동안  꿈꾸어 온 샤핑센터 리모델링 계획안이 시市 의 승인을 받은 게 올 초였다. 그 사이 젊은 주인과 두 차례 만나 그의 계획을 듣고 내 세탁소 임대 연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문제는 그의 계획안에 따르면 내 세탁소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아직 잔여 임대 기간이 넉넉하고 계획안이 실행 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들이 남아있기에 좀 느긋했었다. 그런데 아직 계약기간이 몇 년 남아 있다던 Kmart가 다음 달인 10월에 폐업한다는 발표가 몇 주 전에 있자 젊은 주인의 리모델링 실행이 급물살을 탓다.

젊은 주인은 올 11월 까지 새로 꾸미는 건물로 이전할 것을 권유해 왔다. 말이 좋아 권유이지 통보였다. 하여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은 이즈음이다. ‘십 년 만 젊었으면 일 한번 벌려 볼텐데…’ 와 ‘나이가 십 년 만 더 들었다면 그냥 손 털고 말텐데… ‘그 사이에서 어중간한 생각들이 수없이 오고간다.

하여 우선 내 가게 손님들에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는 편지를 띄운 것은 지난 일요일이었다. 지난 한 주간 내 세탁소를 드나든 많은  손님들이 ‘걱정 말라’며 해 준 말에 몇 년은 젊어졌다. 그들이 해 준 말이다. ‘너희 부부가 어디로 가던 나는 쫓아 간다.’

짧은 메세지를 보낸 이들도 많았다. 일테면…

I wish you luck in whatever your decision will be. Your letters are so heartwarming! – Sara Carley

I’ve enjoyed your weekly messages for years. No matter where you move you will have my business. Thank You, – Francis Poole

Thank you so much for this information. I greatly appreciate your service to so many. I have prayed for you and God’s very best plan for you and your future. Thanks again, – Cami Seward, your grateful customer

No matter where you move…..my wife and I will still be loyal customers. Thanks for you service… – Rick and Valerie Stephens

just let us know, we will follow you – EDWARD WALKER

As a business owner I completely understand your challenge! I learned of your store when I was in high school, and have been coming every since (over so 25 yrs) and thus if you move near Acme I will follow! Leave the decision in prayer, but know that you have support! Thank-you, – Shannon Marchman Clark

등등.

사는 맛이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보냈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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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저희 세탁소에 오셨던 분들은 Kmart에 내 건 “Store Closing”라는 커다란 사인판을 보셨을 것입니다.

Kmart가 문닫다는 소식에 여러 손님들이 저희 부부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는 어떻게 되는거니?” 하는 물음입니다. 사실 Kmart가 갑자기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저희 부부도 조금 놀랐었답니다. 한 두어 달 전에 샤핑센터 건물주를 만났을 때만 하여도 Kmart 임대계약이 2년 넘게 남아 있음으로 그 때까진 영업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기 때문이랍니다.  Kmart의 갑작스런 폐업은 그 본사의 결정인 듯 합니다.

이제 제 세탁소가 있는 쪽 건물에는 Pep Boys와 저희 K&L Cleaners만 남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손님들의 물음은 아주 당연한 일인 듯합니다.

30여년 영업을 해 온 이 자리에서 제가 일을 그만 둘 때까지 이 세탁소를 계속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제 소망은 이루어 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올 들어 두차례 landlord를 만났었답니다. 그가 최근에 하고 있는 샤핑센터 리모델링에 대한 계획을 듣고 향후 제 세탁소 리스 연장에 대한 일을 논의하고자 한 일입니다.

그는 샤핑센터 리모델링에 대한 그의 꿈을 담은 청사진을 저희들에게 보여 주며 이렇게 권유했답니다. “지금 너희 세탁소가 있는 자리는 녹지로 변경될 것이다. 그러니 현재 ACME가 있는 쪽 건물로 이전했으면 한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리스 기간인 내년 8월 말 까지 현재 장소에서 영업을 할 수 있지만 가급적 올 11월 까지는 결정을 내려 주길 바란다.” 물론 새로운 계약조건 등 몇 가지 부대 조항들에 대한 설명도 있었지요.

솔직히 우리 부부는 이즈음 어떤 결정이 최선의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답니다.  Acme 쪽으로 옮길지? 가까운 인근에 다른 장소로 이전을 해야 할지? 이전 시기는 언제가 가장 좋을지? 등등의 고민이지요.

그런 고민들 가운데서 아주 확실하게 결정하고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답니다. 무엇보다 우선은 걱정스런 고민은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가 최종에 어떤 선택을 하던 그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보자는 다짐이랍니다. 두 번 째는 현재 제 가게 손님들이 가장 편안하고 만족할 선택을 해 보자는 것이고, 그럼으로 현재에 충실하자는 생각이랍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 부부가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다시 옮기지 않을 곳이었으면 하는 바램인데 이건 소망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어날 수도 있겠기에 기도의 영역으로 넘기는 것이랍니다.

바램이 있고 기도할 것이 있는 한, 삶은 살만한 것이기도 하고 행복을 느낄만한 여지가 있는 것 아닐까요?

당신의 기도와 바램들도 하나 하나 이루어지는 계절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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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 of you who came to the cleaners recently might have seen the big sign, “Store Closing,” at K-mart.

Because of the news of K-mart closing, many customers asked the same question to my wife and me: “How about you? What will happen to you?” In fact, my wife and I were somewhat surprised at the news, too. That’s because the landlord of the shopping center told us that K-mart would continue business until the end of the lease which would end over two years later, when we met him about a couple of months ago. It seems to me that the sudden closure of the K-mart was the headquarters’ decision.

Soon, on my side, just Pep Boys and K&L Cleaners will be left. So my customers’ question is only natural.

I don’t think that my hope, which is to run the cleaners until I retire at the same spot as the past almost 30 years, will be realized.

This year, I met the landlord twice to hear about the remodeling plan of the shopping center and to discuss the extension of my lease.

The landlord showed us the blueprint which reflects his dream of remodeling and told us: “The area where your cleaners is located will become a green area. So I want to suggest that you move to a space on the Acme side. Though you can continue your business at the current place until the end of the lease term, August, 2019, I ask you to make a decision by November, if possible.” Of course, he also told us new lease conditions and some other strings attached.

Frankly, my wife and I have been scratching our heads over what will be the best decision. Should we move to the Acme side? How about finding a new place nearby and moving there? If we move, when will be the best time?

While we are worrying about the near future, my wife and I set up three basic principles. First of all, instead of falling into worrying itself, we made a resolution that we’ll do our best, whatever the environment will be after our final decision. Second, the decision should be the one which will make our current customers feel most comfortable and satisfied. The third one is our wish that we will not move again until my wife and I cannot work anymore. But, unfortunately, it will be beyond our control, so we will move it to the prayer territory.

If we have dreams and wishes and something to pray for, life may be worthy of living and have room for feeling happy. Don’t you think so?

I wish that your prayers and dreams will be realized one by one in this season.

From your cleaners.

사정(事情)

장인과 사위 사이를 이룬 지 서른 다섯 해가 지난 오늘 처음 깨달은 사실 하나.

물론 알곤 있었지만 깨달은 것은 처음.

장인과 나는 똑같이 일남 삼녀

쯧,

철없을 조건은 똑같이 갖추었다는.

나는 장인이 있고, 비록 먼저 떠나셨지만 장모도 있었고

남북 이산가족이자 외톨이였던 내 장모 덕에 평생 장인 장모를 모셔보지 못한

내 장인은 사위였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

딱히 추석이랄 것도 없이 오늘은 장인, 내일은 내 부모와 함께 할 요량이다만

우리 모두 그저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살 터.

뉴스에

뉴스들이 넘쳐나는 빠르기를 미처 쫓아가질 못한다. 주말로 들어서며 일을 마치고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뉴스들을 쫓다가 돋보기를 흐리게 하는 눈물 한 점, 또 그 놈의 나이 탓이다.

경기도 포곡면 유운리 유실 마을은 내 할머니의 고향이자 아버지의 고향이다. 당시 할머니의 동생들 곧 내 아버지의 외삼촌들이 살고 계셨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여름이나 겨울방학이면 그 곳에서 몇 주간을 지내곤 했었다.

내가 어릴 적에 서울 신촌에서 용인 유실 마을까지는 족히 하룻길 거리였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전기가 이어졌을 만큼 촌이었다. 내가 이제껏 호롱불과 반딧불의 추억을 안고 있는 곳이다.

1972년 내가 대학교에서 첫 여름방학을 맞아 유실 마을을 찾았던 그 때 유실 마을은 이미 예전에 유실 마을이 아니었다.

유실 마을 산 너머 땅들은 이즈음 에버랜드로 유명해 진 삼성가의 자연농원이 막 들어섰다. 자연농원이 들어 선 이후 유실마을은 변해갔다. 이웃한 궤밀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유실마을 일대의 농토에 물을 대주는 저수지 위쪽에 대단위 돼지농장이 들어선 것이 그 때 쯤이었다.

그즈음 돼지 똥들로 저수지와 마을의 시내와 개천들은 썩어가고 있었다.

내 아버지가, 아니 내가 어린 시절 멱을 감고 피래미를 잡던 그 맑던 물들이 코를 감싸쥐고 얼굴을 돌려야 하는 폐수가 되어 갔다.

1972년, 그해 여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이라는 당시엔 경천동지라고 할 만한 뉴스를 유실마을에서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유실마을과 궤밀마을에  흩어져 살았던 내 일가 친척들은 그 후 모두 용인 땅을 떳다. 그 땅들은 삼성가의 땅이 되었다.

그 해 가을 이른바 시월 유신으로 대학문이 닫히고 긴 방학에 들어 간 이후, 내가 대학을 마치기까지 십 여년 동안 학기를 제대로 마친 기억이 없다.

짧은 세월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능라도 5.1 경기장 행사가 담긴 동영상이 눈물로 흐릿해지며 떠오른 옛일들이다.

참 고맙다.

그 세월 속에서 반듯하게 정권을 잡고 행사하는 권력자 하나 나온 남쪽이나, 삼대 세습이라는 미개한 터에서 반듯한 정신으로 민民 앞에선 권력자 하나 있는 북이.

정말 고맙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7.4 공동성명이라는 이름으로 회칠했던 권력자들의 명제들을 민民의 힘으로 이끌고 나아가는 이즈음의 세월들이.

바라기는

15만 능라도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단 한사람 만이라도 ‘아니오’하는 사람 나오는 북이 되길…

70년 분단의 이름 팔아 배 채어 온 단 한 놈 만이라도 과감히 이른바 혁명적으로 정리하는 남이 되길….

사람 이종국

이즈음 나이 육십에  ‘평생 운운’ 한다면 욕먹기 딱 십상일 터. 허나 어찌하리, 그에겐 평생 처음인 것을… 아직 환갑에 이르지 못한 나이에.

내가 후배인 그에게  존경이라는 말을 마다치 않는 까닭은 그의 담백함 때문이다. 그는 매사 참 담백하다.

화려한 수사를 즐기는 내게 ‘시민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로 시작하여 어지간히 기름칠 할 일이 많겠다만, 내 후배 이종국은 그냥 담담하게 그의 삶이 시민운동인 사람이다.

그가 오늘 평생 처음인 일을 해 내던 날, 그의 맏딸 혼인날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내 아들 며느리가 함께 해 잠시 놀랐었는데, 우리 아이들과 후배의 딸 아이가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깜박 했었던, 모두 다 내 나이 탓이다.

후배 이종국에게 ‘시민 운동’은 뭐 거창한 일이 아니다. 아니 ‘운동’도 아니다. 그냥 숨쉬는 삶이다. 지금 여기에서 소외된 삶들을 향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들을 실천해 나가는, 마치 숨쉬는 것처럼 그냥 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람이다.

내가 그를 안지 십 수년 동안 그의 한결 같은 모습이다.

오늘도 한결같았다. 딸아이 시집 보내는 날, 그는 오늘도 덤덤하였다. 나는 그런 그가 참 좋다.

그의 덤덤함으로 삶에 불을 지피는 일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던 오후였다.

그리고 모처럼 얼굴 인사를 나눈 선후배들, 오늘 자신들이 이고 있는 아픈 먹구름들을 이야기하면서 웃을 수 있는 이들, 모두 얼마만큼씩은  후배 이종국에게 빚을 지었을 터.

아직 환갑에 이르지도 못한 내 후배 이종국, 오늘 하루만은 ‘평생 운운’은 온전히 그의 것!

몇 잔 와인으로 취기 오른 날에.

 

 

배움에

올 초에 프랑스 혁명에 대한 책 몇 권을 읽었다. 알베르 소불의 ‘프랑스 혁명사’, 마르크스의  ‘프랑스 혁명사 3부작’, 노명식이 쓴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육영수가 쓴 ‘혁명의 배반 – 프랑스 혁명의 문화사’와 앙드레 모로아의 ‘프랑스사’ 들이었다.

딱히 이 나이에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 지적 허영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주일 여 짧은 일정으로 돌아 보았던 파리 여행에 들였던 내 시간과 발품에 대한 예의랄까? 아무튼 여행 시간보다 몇 배 많은 시간을 들여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까지 약 백 여년의 프랑스 혁명사를 읽었던 적이 있다.

책을 덮고 여행을 돌아보며 서너 가지 정리했던 생각들이 있었다.

우선은 나이 들면 고집 뿐이라는 말이 정말 옳다는 생각이었는데, 내가 살아 오면서 쌓인 내  생각에 대한 신뢰였다. 이른바 신앙이다. 내가 믿고 고백하곤 하는 성서적 역사관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뜻인데, 역사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곧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라는 내 믿음에 확신을 주었다는 말이다.

백 여년에 걸친 혁명과 반혁명 또는 역사의 진보와 반동은 나선형을 그리며 나아가는 역사 발전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여성, 인권, 노동, 복지, 동성애, 난민 등등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갈등과 고민들 역시 당연한 논쟁과 투쟁의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 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프랑스 혁명이나 파리 코뮌은 이 백 여년 전에 끝난 일들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내가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사람 사는 모습에 대한 근래의 역사들을 돌아 봄에 있어 십년 단위로 끊어서 역사를 정리해 읽고 그 시간들을 다시 연결해 보는 생각을 익혀 보는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오늘, 사람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이 새로운 깨달음이 파리 여행과 프랑스 혁명사를 읽으며 내가 얻었던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

이즈음 나는 몇 권의 책들을 틈틈히 시간을 내어 읽고 있는 중이다. 19세기 말 부터  20세기 중반 까지 한반도에 대한 생각들을 기록한 책들이다. 내가 겪어 보지 못했지만 오늘의 내 생각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간들에 대한 기록들이다.

나는 십 년 단위로 이 시대의 이야기를 끊어 읽고 다시 연결해 보기도 할 것이다.

살며 때때로 ‘내가 이런 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믿는 신께 감사를 드리곤 한다. 이즈음이 그렇다.

이 나이에 가르쳐주는 선생을 만나고 함께 배우는 뜻 맞는 좋은 벗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일 편지 – 9/9

계절이 바뀌어가는 주일 아침에 편지를 띄우다. –  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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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앞에서 – 9. 8. 18 아침에)

엄마와 함께 세탁소에 오곤 하던 아주 작은 꼬마 아이 하나가 어느 날인가 거인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물론 제가 작고 야윈 탓이기도 하지만 그의 체구는 제 두 배가 족히 넘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작고 귀여운 계집아이를 이끌고 제 세탁소를 찾아와 말했답니다. ‘ 제 딸입니다.’

또 다른 중년의 사내가 있었답니다. 그는 비지니스 여행이 매우 잦았답니다. 미 전국은 물론이고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다닌다고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그가 말했습니다. ‘나 이제 은퇴 한단다.’ 이즈음 이따금 세탁소를 찾는 그의 허리는 굽었고 걸음걸이는 느리답니다.

미스 델라웨어였던 예쁘고 쾌활한 처녀도 있었습니다. 그녀에겐 이미 자기보다 커진 큰 아이를 비롯해 아들이 셋이랍니다.

지난 삼십 여년 동안 제 세탁소에서 일어났던 변화들이랍니다.

지난 주 제 편지에 응답을 주신 노신사도 한 때는 회사의 중역으로 매우 바빳던 중년이었습니다. 이제는 은퇴 이후 그와 동행이 된 관절염과 함께 지내는 이즈음의 모습을 이렇게 전해 주었답니다.

“내가 앓고 있는 관절염을 달랠 최상의 해독제는 꾸준히 움직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단다. 일테면 내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다면 매 네 시간 마다 통증을 가라앉히는 약을 먹어야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일에 몰두해 있을 땐 일곱시간 정도는 약 없이 거뜬히 견딜 수 있단다.”

지난 주 일요일이나 휴일들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제 물음에 대한 노신사의 답은 이렇게 끝난답니다.

“어쨌든 바빳을 때 늘 행복했었단다. 아직도 바쁘게 지낼 수 있는 약간의 인센티브는 남아 있단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노신사와 함께 하는 관절염은 아니더라도 우리들 모두에겐 몸과 마음에 원치 않는 동행자들이 하나 둘 씩은 함께 하지 않을까요? 남녀노소 누구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라도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인센티브가 주어진 것을 아닐까요? 그것이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어느새 아침 공기가 시원해졌습니다.

하루 하루 쾌적한 잠을 즐기는 날들이 이어지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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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열방교회 뜰에서 – 9. 8. 18 오후에)

One day, a little boy who used to come to the cleaners with his mother became a giant and visited the cleaners. Though I am small and slender, he looked more than twice as big as me. Not much later since then, he came to the cleaners with an adorable little girl and said, “She is my daughter.”

And there was a middle aged gentleman. He went on business travels frequently. He told me that he’s traveling not just all over America, but also to many countries in Europe and Asia. Then, one day, he said, “I’m going to retire.” He, who still comes to the cleaners once in a while, is somewhat bent with age and walks with a slow gait.

There was a beautiful and cheerful young lady who had been Miss Delaware. Now she is a mother of three sons, one of whom is already taller than her.

These are some of the changes which have happened in my cleaners for the past 30 years.

The old gentleman who gave me a response to last week’s letter had been a busy middle-aged man as an executive of a company. After retirement, he has been living suffering from arthritis which has become a companion. He told me about his life these days:

“I have found that the best antidote for my arthritis is steady movement or work on a project that absorbs my attention.  If I’m just sitting, I have to take my prescription medication for arthritic pain relief every four hours.  If I’m busy on a physically active project, I can and have gone as much as seven hours without it.”

Regarding my question last week, “How do you spend Sundays or holidays?” his answer ended like this:

“I’ve always been happier when I am busy anyway, now I just have a little extra incentive to keep busy.”

When we think about it, all of us, whether man or woman, young or old, may have at least one or two unwanted companions in our bodies and minds, though it may not be degenerative arthritis like the old gentleman. Don’t you think so?

And, an incentive to become happier may be given to us all, though we may not have figured out what it is yet. What do you think?

The air in the morning has become cool and pleasant already.

I wish that you’ll enjoy comfortable rest day after day.

From your cleaners.

참 좋은 세상인데

저녁상 물리고 느긋하게 세상 뉴스들을 훑다가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나이  헛먹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처음부터 터져 나온 이금희의 눈물 “이럴 것 같았다. 노회찬은 진짜였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으면서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눈물을 훔치며 기사를 읽고 있는데 셀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놀라 확인해 보니 밤 12시 30분 경부터 홍수주위보를 발령한다는 메세지와 함께 홍수 피해 예상 지역 주민들은 대비하라는 경보였다.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 내 기억 속에 1980대 후반 부터  2000년 초,중반 까지 한국에 대한 것은 빠져 있다. 그만큼 한국은 내게서 멀었다. 딱히 이렇다할 정보를 얻을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여기서 오늘을 사는 내 관심의 우선순위에 있어 앞자리에 있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홍수주위보를 알려주는 셀폰의 기능은 지금 여기서 사는 내가 겪고 있는 세상의 변화이다. 이 땅에 적응하기도 바쁜 내게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의 변화는 쫓아가기엔 좀 벅차다. 나름 세상 변화에 적응하노라고 애쓰며 살지만 아무래도 늦되다.

이른바 social media를 사용하는데는 더욱 그렇다. 말 그대로 상호 오가는 media 사용이라야 먹고 살기 위해 내 가게 손님들과 오고가는 이메일과 텍스트 메세지가 거의 전부이다.

그저 일기처럼 사용하는 블로그질은 오래 되었지만 그저 골방 샌님 놀이일 뿐이고, 트위터, 페북,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등등은 사용법에 대해 익히 알고는 있지만 그리 즐겨 하지는 않는다. 더더군다나 빤히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댓글을 다는 일도 거의 없고 좋아요를 누르는 일도 남사스런 생각에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니 social media의 social 하고는 거리가 멀다.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카카오톡은 가족들 끼리만 사용할 뿐이고, 텔레그램은 한군데 모임과 연관되어 있어 사용하지만 그 역시 특별한 일 아니고서는 하루 한 두차례 pc로 사용할 뿐이다. 사실 내가 셀폰을 사용한지는 아직 이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내 아내의 표현대로 한다면 나는 그저 골동품이다.

카카오톡을 즐겨 사용하는 아내가 오늘 오후 짜증스런 목소리로 혼자 쭝얼거렸다. ‘아니, 이 아줌마는 자꾸 이런 걸 보내고 그러지, 딱하기도 하고….’

왜 그러냐고 묻는 내게 던지 아내의 답이다. ‘아이구  그 지긋지긋한 가짜 뉴스지 뭐, 박근혜 이명박 찬양하고 문재인 빨갱이 노래하는 거…. 오늘은 김정은이 한테 트럼프 문재인이 놀아나고 있다나 뭐나…’

참 좋은 아주머니신데  뉴스 선택에 있어서는 아내와는 상극인 셈이다.

아마 그 아주머니는 내가 오마이뉴스에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 가짜뉴스에 홀렸다고 혀 차지 않을까 싶다.

참 좋은 세상인데…. 참 좋아진 세상인데….

이즈음 나는 하늘을 보면 하늘을 사진에 담고 싶다. 오늘 오후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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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뉴스들 보다 셀폰 보다 더 많은 세상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