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연 이틀 비가 쏟아진다는 예보에 많이 망설였었다. 오래 전 예약해 놓은 숙박업소 취소 가능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이번 산행에 맞추어 예정 시간에 집에 도착한 딸아이는 그냥 계획대로 산행에 나서자고 했다. 이른 아침 하늘은 꾸물거리고 있었지만 아직 비를 내리지는 않았다. 아들내외 집에 도착했을 때에도 하늘은 우리 가족이 세운 계획과 함께 하는 듯 했다.

21개의 폭포가 있다는 펜실베니아 Ricketts Glen 주립공원 하이킹 코스 거리는 약 7.2 마일.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걷는 재미와 살을 좀 뺏으면 좋겠다 싶은 아들 며느리를 위해 선택한 곳이다.

공원에 도착하기 한 시간여 전부터 하늘은 우리들의 계획보다 일기예보에 충실했다. 비가 간간히  오락가락 하더니만 이내 폭우를 쏟곤 하였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비라도 살 요량으로 상점들을 찾았으나 Pennsyltucky라더니 우리는 이미 켄터키 같은 펜실베니아 산골에 있었다.

때때로 일기예보가 무의미 할 때도 있다. 산행을 시작할 무렵부터 비는 그쳤고 산행을 마칠 때까지 이따금 오락가락 했지만 하이킹하기엔 최적의 날씨였다.

쏟아진 빗물로 계곡 물은 붉은 색을 띄었다. 아내와 며늘아이는 자꾸 뒤쳐졌고 덩달아 아들녀석도 그 무리에 함께 했다. 나는 줄곧 딸아이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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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보다 더 즐거운 시간은 아무렴 먹는 시간이다. 평소 찾지 않았던 특별한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에 더해 횃불 조명을 받으며 낙조에 물들어 가는 강변에서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로 배부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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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직장생활, 우리 부부 세탁소 이야기, 할아버지들과 할머니 이야기에서 시작해 곧 있을 중간선거 이야기까지 모처럼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는 오래 이어졌다.

이튿날, 딸아이 집에 데려다 주는 길에 사진 찍기 딱 좋은 작은 정원에서 즐긴 나른한 오후 풍경도 이번 산행에 덧붙여진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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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녀석보다 더 한국음식을 즐겨하는 며늘아이를 위해 선택한 식당은 그야말로 우리 가족을 위한 안성맞춤이었다. 며늘아이는 육개장, 아들과 아내는 설렁탕, 딸아이는 순대국, 나는 선지 해장국에 소주 한 잔, 그리고 덤으로 시킨 콩나물 도가니찜은 더할수 없이 풍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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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하이킹에서 내 시선을 빼앗았던 작은 비나리 돌탑들. 사람들은 누구나 비나리가 있고, 그 비나리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뜻으로 정성 들여 탑을 쌓는다. 나나 아내나 아들이나 며느리나 딸이나, 서로 각자의 비나리 돌탑들을 쌓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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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2618A아이들과 헤어지며 함께 쌓은 작은 비나리 돌탑이다. 가을 단풍 들면 다시 산행에 나서자고….

사는 맛

가족을 제외하고 한국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아주 드물다. 가족 이라야 거의 붙어사는 아내와 일주일에 한두차례 찾아 뵙는 노부모님과 장인 어른이 자주 보는 얼굴들이다. 아들 며느리는 많아야 한달에 한번 꼴이나 될까 모르겠는데, 고마운 것은 우리 부부가 원하면 언제든 볼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이 착하다.

딸아이는 좀 다르다. 일년에 몇차례인지 내가 정확히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볼 수 있는데, 그 회수는 전적으로 딸 아이의 뜻에 달려 있다. 그런 딸아이에 대한 못마땅함으로 내가 궁시렁 거리기라도 할라치면 ‘천상 당신인데 뭔 소리냐’는 아내의 핀잔을 듣곤 한다.

가족 이외에 만나는 한국사람들이라야 일년에 한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회수로 나가는 한인교회나 이따금 들리곤 하는 한국 식품점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이 전부가 아닌가 싶다.

이런 저런 연으로 얽힌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한인 이웃들도 제법 있지만, 그들을 만나는 일엔 딱 내 딸아이를 닮아서 그야말로 내 맘대로이다.

그러다보니 한 달 정도는 가족 이외에 한국사람들을 전혀 만나지 않고 지내는 때가 흔하다.

예외적인 일이 있긴 하다. 지난 수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거의 빠지지 않고 얼굴을 마주하는 한국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필라세사모’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이들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 만나기 시작한 모임이다. 그러나 이 모임은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이어서 비록 얼굴을 마주한다 하지만 실제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내 지극히 이기적인 성격 탓이겠는데, 나는 이 모임에서 만나는 이들의 개인사에 대해 참 무지하다. 엊저녁 일만 해도 그랬다. 좀 뒤늦게 이 모임에 함께 하긴 하였지만 벌써 셀 수 없을 만큼 마주했던 얼굴인데 어제서야 그가 하는 일에 대해 물었었다. 아마 다른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그가 학교에 있다는 소리는 얼핏 들어 알곤 있었지만, 역사 그것도 한국사 그 중에 또 현대사 더더구나 해방 이후 한국 전쟁사에 대해 연구한다는 사실을 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살며 이따금 가슴이 쿵쾅거리는 설렘을 만날 때가 있다. 나이 탓인지 이즈음엔 사람을 통해 그런 경험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물지만, 책을 통해서는 종종 그 즐거움을 누린다. 그런 책들의 편저자들이 이젠 많은 경우 나보다 어린 이들이다. 나보다 윗대들의 생각에서 배우는 기쁨보다 후대들의 생각을 통해 깨치는 맛은 또 다르다.

그런데 이번엔 책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것도 매주 만날 수 있는 후배이다. 순간적으로 그를 졸랐다. 가르침을 달라고…

찬바람 기운이 돌면 그 모임에 참석하는 우리는 이제 그에게서 해방 이후 한국사에 대해 듣게 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이다.

이번 주말엔 아들 며느리 그리고 딸아이를 앞세우고 우리 부부는 계곡을 찾아 하이킹을 즐기려 한다.  그날 아이들과 함께 나눌 밥상을 위해 불고기 거리를 장만하여 돌아오는 길목에서 만난 저녁하늘은 아침이었다.

이 사는 맛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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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놀이

업(業)의 성격으로 주중 하루를 쉬는 벗이 낚시 한번 가보자고 제안을 했었다. 주중에 가게를 온종일 비우는 일에 익숙치 않아 머뭇거리는 내게 아내는 흔쾌히 ‘가도 좋다’고 했다. 내심 ‘이 정도의 사치는 누릴 만한 나이가 아닐까?’하는 내 생각이 앞선 탓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 낚시 놀이를 다녀왔다.

애초 낚시놀이를 제안한 C와 나처럼 낚시놀이가 그리 흔치 않은 일인 H와 낚시놀이가 일상이요, 나름 그 방면에 도트인 J와 함께 즐긴 하루였다.

처음 놀이를 제안했던 C는 일행을 위해 모든 준비를 도맡았고, J는 낚시놀이에 필요한 제반도구와 정보와 지식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H와 나는 그 두 사람 덕에 그저 하루를 즐겼다.

올해 일흔 하나가 된  J는 나와 같은 업을 하며 한 동네에서 산지 30년 넘은 오랜 지기이다. 그는 지난 해 현업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홀로 산다. 그렇다 홀로 되어 산다.

사실 내가 J를 가장 최근에 만났던 것은 그가 홀로 되어 살기 전 일이다. 그가 과묵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리 말수가 많은 이는 아니었다. 그랬던 그의 입이 낚시놀이 하루 길에서  온종일 쉬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그 무엇보다도 말이 많이 고픈 듯 보였다.

밤 늦은 시각, 돌아와 헤어지며 그가 내게 남긴 말이다. ‘언제든 불러, 언제든… 낚시 가고 싶을 때 그냥 전화만 해!’

다시 혼잣말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홀로 사는 삶으로 돌아가는 그를 보며 내가 혼잣말로 해 본 소리이다. ‘가을바람 불면 낚시놀이 한 번 더 해 볼까…’

낚시터에서 만났던 돌고래 가족들이 떠오른다. 그래,  J뿐만 아니라 H나 C나 나나, 우리 모두 한땐 고래사냥을 부르며 꿈을 꾸던 때가 있었다.

아니, 꿈을 꾸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젠 조촐한 꿈을 꾸자. 찬바람 불면 내가 먼저 J와 H와, C에게 제안을 하는 꿈을 꾸자. 낚시놀이 한 번 가자고. 그날 다시 J가 온종일 이야기하게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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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이따금 일터와 집 사이에서 만나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 아이스크림처럼 순간일지라도. – 7/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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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네 정원

John네 정원은 John을 쏙 빼닮았다.  이웃 집 염소들 까지.  John이나 아들이나 이젠 함께 늙어 간다.

Jul. 29. 18 – John네 잔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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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위하여

엊그제 밤 평소 들을 수 없는 물 떨어지는 소리에 ‘뭔 비가 이렇게 많이 와!’하며 창문을 내다보니 지붕에서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뿔사! 며칠 푹푹 찌는 더위 속에 비바람이 오락가락하더니 나뭇잎들이 떨어져 지붕 처마끝 물통이 막힌 모양이었다. 물통(gutter)에 낙엽 방지용 가림막을 친다 친다 하면서 미루는 내 게으름 탓에 해마다 한 두차례 겪는 일이다.

오늘 오후 지붕에 올라보니 물통 끝 빗물 내리받이(downspout)로 이어지는 부분에 한 두어 줌 낙엽들이 물 흐름을 막고 있었다. 지붕 위에 오르내리는 어려움에 비해 너무나 하찮은 노동에 피식 웃음이 났다.

문득 지붕 위에 서서 바라본 동네 풍경은 보통 때와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 카메라를 찾아 들고 다시 오르내리며 사진 몇 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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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지내는 후배가 하나 있다. 그는 이 주 초에 세상 뜬 한국 정치인 노회찬 의원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노회찬에 대해 궁금했던 나는 후배에게 물었다. 그가 어렸을 때 모습에 대한 기억에 대해. 후배가 내게 준 대답이었다.

‘한 땐 같은 반 이기도 했다. 나도 놀라 그에 대한 기사들을 다시 찾아 두루 읽어 보게 되더라. 참 잘 살다간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학년 때던가 생활관 학습 시간이었을 것이다. 방학 동안 있었던 경험들을 나누던 시간이었는데 그는 좀 남달랐다. 여름 방학 내내 전국의 산을 찾아 돌아다닌 이야기를 했으니….’

나도 후배의 말에 크게 고개 끄덕이며 동조했다. 참 잘 살다가 간 삶이라는 생각에.

그저 내 삶에 스스로 만족하며 살다가도 옳은 길, 외길 걸으며 사는 이들을 보면 웬지 부끄럽고 부럽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을 맞는 이들을 대할 땐 부끄러움과 부러움 이전에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는 애틋함에 흐르는 눈물을 애써 삼켜야 한다. 특히 내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노회찬에 대한 기사들을 읽으며 내가 그를 정리하는 생각이다. <소외된 이들을 위해 스스로 소외된 삶을 마다치 않은 삶을 살다간 사람>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지하의 삶을 이해하며 지붕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 앞에선 언제나 부끄럽고 부럽다.

그나저나 이젠 사다리 타고 지붕 위에 오르는 일은 멈추어야 하겠다. 다리가 떨려서…

소외의 힘에 대항하는 우리의 싸움에는 지름길이 없다. 이러한 힘에 대해서 정말로 승리를 거두려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기반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도전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사회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에 따르는 온갖 고뇌와 아픔을 감수해야할 까닭이 있다. 오늘의 인간 소외를 극복할 인간 역사의 새로운 단계를 위해 온갖 모험적인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 프리츠 파펜하임이 쓴 현대인의 소외에서

인간 소외를 극복하는 죽음의 모험까지 감수한 노회찬이라는 사람을 위하여.

(그의 죽음을 빙자하여 그의 삶을 내리깍는 허접한 모습의 이웃들에게 그가 날렸을 이른바 촌철살인 그 한마디를 생각하며… )

– 7/ 28/ 18

여름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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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삶에서 뜻을 따지는 일이 결코 사치일 수 없다.

비오는 여름날 오후에.  – 7/25/18

삼가…

마른 체구의 내가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는 으뜸 요인은 잠이다. 하늘 무너지는 걱정이 있어도 누우면 나는 금방 잠에 든다. 그리고 이튿날 정해진 시간이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내 특별한 노력없이 되는 일이므로 내가 누리는 복 중 하나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짧고 깊게 낮잠을 즐기는 일은 덤으로 얻은 복이다.

그런데 어제 밤엔 두 시에 잠에서 깨어 뒤척이며 멀뚱거리다 아침을 맞았다. 그 달고 단 월요일 낮잠도 건너 뛰었다.

한 밤중 두 시라는 시간을 확인하는 일은 매우 낯선 일이 였음으로 ‘이게 뭐야! ‘ 하는 생각이 앞섰는데 이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잠들기 직전에 보았던 ‘노회찬’에 대한 비보였다.

그의 죽음이 내 잠을 앗아갈 만큼 내가 그를 아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를 만나 본 적도 없거니와  평소 내가 그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어떤 아린 것이 내 잠을 자꾸 쫓아 내어 그대로 아침을 맞고 말았다. 그리고 월요일 그 단 낮잠 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달아났다.

나는 모든 삶에 뜻이 있다고 믿는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생각은 그것이 이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여 모든 삶과 죽음에는 깊은 뜻이 있다. 그 뜻은 죽은 자가 새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이 새긴다. 그게 사람이 사람인 까닭이라고 믿는다.

나는 노회찬의 죽음 앞에서 부끄럽다. 매우 부끄럽다. 그와 동시대 같은 공간에서 삶을 나눈 적은 없지만 웬지 그냥 부끄럽다.

그저 그 부끄러운 생각에 딱 하루 내가 잠을 잃었는지 모르겠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그가 남겼다는 유서에 있는 글이란다.

부끄러움을 잃어가는 시대를 향해 그가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 순간, 그 처절한 순간을 던져 그가 꿈꾸었던 진보적 외침을 외친 것은 아닐까?

그의 죽음에 대해 두루 말 많은 이들의 말은 이어질 것이다. 그게 또 사람사는 세상의 한 모습일 터이니.

묘하다. 오래 전 투신으로 시대의 아픔을 안고 떠난 소설 속 주인공 이명준에게 생을 부여했던 최인훈의 부고를 함께 듣다니.

아마 나는 오늘 밤 깊은 잠을 즐길 것이다. 내 부끄러움은 늘상 값싼 것이었으므로. 다만 엇비슷한 내 또래 노회찬이라는 이름은 오래도록 아리게 남을 것 같다.

사람들

오랜만에 John이 가게에 들렸다.  John은 내 오랜 친구이자 선생이다. 지금은 빈 상태로 오래 되었지만 내 가게 옆엔 Radio Shack이 있었다. Malmstrom John은 바로 그  Radio Shack Manager로 오래 일했던 사람이다.

내가 세탁소를 처음 열었던 삼십 여년 전 그 때도  John은  Radio Shack Manager였다. 그는 매우 친절한 사내였다. 당시 막 새 가게를 열어 모든 것이 낯선 내게 그는 아주 자상한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었다. 드라이클리닝 기계와 장비들을 처음 들여오던 날 그가 내게 했던 말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친구야! 새로 마련한 네 장난감으로 돈도 많이 벌고 네 인생을 맘껏 즐길 수 있기를 바래!”

그렇게 오랜 동안  가까운  이웃으로, 친구로 선생으로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그와 어느 날 멀어지게 되었다. 그가 그만 일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었는데,  그가 떠난 Radio Shack은 활기를 잃더니 어느 날 끝내 문을 닫고 말았다.

해마다 7월이면 John은 그의 집에서 가까운 이웃들을 초대해 큰 야외 파티를 연다. 어느 해 부터인가 우리 부부도 그 파티에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러다 최근 몇 해 들어 그 때마다 이런 저런 일들이 겹쳐  함께하지 못했었다.

John은 이 달 말에 있을 그의 잔치에 꼭 참석하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내 가게에 들렸던 것이었다. 이즈음 어떻게 지내느냐는 내 인사에 일흔 다섯 살 John이 웃으며 한 대답이다. “벌어 놓은 돈, 약값으로 쓰면서 잘 지내지!”

활짝 웃는 광대 분장과 옷차림을 즐겨했던 John이 웃으며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을 잠시 되돌아 보았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딱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함과 행복감에 잠시 젖었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쓸쓸함과 누군가 서로를 기억해 주는 이웃이 있다는 행복감이었다.

어제는 하늘의 뭉게구름이 참 아름다웠었다.


이 달초 여행길에서 얼핏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이 사진 속에 남아있다.

점점 더 팍팍해 지기만 하는 삶을 토로하던  내 또래 그 섬의 토박이 관광차 택시운전사 할아버지.

아무리 적게 잡아도 70대 후반의 할머니였던 lyft택시 운전사, 그녀의 차에는 핸디캡 스티커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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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여객선 안 일꾼들 중엔 영어가 되고 몸값이 싼 필리핀계와 인도네시아계들이 많았다. 그들에게서 영어 안되고 몸 값만 쌌던 내 모습이 잠시 어른대기도 했었다. 일본과 벨기에의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선상에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벨기에가 역전승을 거두던 순간 그들과 우리는 까닭없이 한 패가 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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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내 고향 신촌 기차역 앞 서커스 천막을 떠올렸던 공연 속 주인공들과 얼굴색과 나이에 걸맞게 나뉘어 즐기던 사람들 속에서 나와 아내는 그저 구경꾼이었다. 까만 사람들 속에서 까만 가수가 자마이카풍의 노래를 부르던 연회장에 우리 내외가 오래 앉아 즐겼던 까닭은 까만 내 며느리와 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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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관광지 번화한 거리에서 “회개와 예수 천국”을 드높이 들고 있던 할머니는 그 거리에서 가장 가난한 차림이어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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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거리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던 부부는 아동복 코너에서 옷을 찾는 나보다도 작은 이들이었다.  끊임없이 속삭이며 해변을 향해 걷던 그들의 행복한 모습에 그 누구도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았던 그거리의 사람들에게서 나는 아직은 남아있는 이 땅의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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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일상 속 헛것에 취해 비틀 거리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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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행 길에도 하늘엔 푸근한 구름이, 그리고 내 곁엔 우리라는 이름으로 아내와 벗들이 함께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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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아침 빛나는 제 모습을 가린 안개에 한껏 심술이 돋았는지 해가 온종일 뜨거웠다. 이런 날엔 도인(道人) 흉내가 제 격이다. 비단 세탁소 뿐이랴! 더위 속 노동이 일상인 이들을 위하여! (7. 1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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