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삶

화복무문 화불단행(禍福無門 禍不單行)이라 했다던가? 좋은 일 나쁜 일이 내 생각대로 일어나는 일도 없거니와, 아니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기는 십상이다. 화(禍)나 복(福)의 크기는 저마다 다 다를 터이니, 무엇이 좋은 일이고 어떤 게 나쁜 일인지를 내 잣대로만 주장함은 마땅치 않다.

그렇다하여도 점점 심상치 않은 형국으로 빠져드는 이즈음 COVID 펜데믹 파동에 이르면 누구에게나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게다.

세탁소 카운터를 아크릴 판으로 가리고 마스크를 쓰고 6피트 거리를 유지한 채 손님들과 몇 번씩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서야 의사소통을 이루곤 하는 불편함일지라도 그런 불편함이 자주 있었으면 하는 바럠이 큰 이즈음이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내 세탁소를 찾은 오랜 단골 K씨, 내 또래인데 올들어 부쩍 허리가 휜 친구다. 그는 늘 내 까만 머리칼을 부러워 한다. 도대체 내 나이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그 점은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일흔을 턱에 건 나이에 난 아직 흰 머리카락은 거의 없는 편이다. 누군가는 머리를 얼마나 안 쓰고 살았으면 그 모양이냐고 우스개 소리를 건네기도 했었다.

모처럼 그와 오랜 시간을 아크릴 판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치 이야기까지 이르도록 이어지기 까지는 한가한 가게 형편의 도움이 있었다.

그는 참정권을 가진 나이에 이르러서 부터 오늘까지 영원한 공화당 지지자라고 하였다. 그는 내 가게가 위치한 동네 수준으로 보자면 경제적으로 중상위층에 속하는 아주 전형적인 백인으로 그 역시 칠십이 코 앞인 친구다.

그가 말하길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찍지 않은 일은 딱 두 번 있었단다.  첫 번 째는 ‘아버지 부시’라고 일컬어지는 George H. W. Bush였고, 두 번 째는 이번에 트럼프였단다. 아버지 부시는 전쟁을 일으켜서 마음에 안 들었었고,  트럼프는 지난 번에 찍어 준 자기 손가락이 미울 정도로 수준 이하란다. 특히나 펜데믹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무슨 게임하듯 제 속만 차리려하는 게 너무 밉단다.

모처럼 신이 난 듯한 그의 일장 연설을 듣고 몇 마디 건넨 내 응답이었다.

‘트럼프나 바이든이나, 공화당 지지자나 민주당 지지자나 뭐 크게 다른 게 있을까? 당신 말대로 전쟁 일으키고,  펜데믹 현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들 소리가 커지면 좋은 거 아닐까?’

이건 이즈음 내가 뉴스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세계 뉴스나 매 한가지로 통하는 프리즘이다.

사람 살이 이어져 온 이야기 속에는 늘 그렇듯 정치도 종교적 신념으로 해석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사람살이 이어져 온 이야기 곧 역사에는, 스스로 홀로 서서 경전을 읽고 해석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종교처럼,  세상 정치적 일들을 그리 읽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징표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사람 살이는 늘 신비한 지경이다. 화불단행(禍不單行)과 점입가경(漸入佳境)은 늘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 살아 있는 한 삶은 늘 살 만한 것이다. 그것이 화불단행(禍不單行)이든 점입가경(漸入佳境)이든, 내 스스로 선택할 일이 남아 있는 순간은 언제든…

그렇게 또 추수감사절이 코 앞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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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에

새해에는 건강보험 프로그램을 좀 바꾸어 보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정보들을 두루 찾아 보았다.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만족한 것을 선택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나는 노인보험인 메디케어 쪽에서 아내는 아직 일반 보험에서 적당한 것을 찾아야 하니 시간도 제법 쓰인다.

우리 내외의 현재 건강상태에서 보험료는 최소화하되 혜택은 최대로 누릴 수 있는 욕심을 채우는 일이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그렇게 하루 해를 보내고 내린 선택, 그저 내 만족일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내일 일은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우리 내외에겐 벅찬 고구마 한 상자를 받아 든 지도 여러 날, 그 동안 찌거나 쪄서 말려 먹기도 했지만 양은 줄진 않는다. 오늘은 고구마 고로케를 만들어 두 누이네와 나누다. 내친 김에 밀가루와 찹쌀가루로 만든 꽈배기가 스스로 대견할 만큼 제 맛을 내었다. 재밌다.

오후에 한인 사회의 내일을 고민하며 행동하는 이들이 함께 하는 온라인 모임에 잠시 얼굴 내밀다. 어느 사회나 변화는 꾸준한 이들에 의해 온다. 그 점에서 나는 언제나 변방이다. 스스로 참 아쉽다.

엊그제 아침 한참 일에 빠져 있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어 습관으로 던진 ‘좋은 아침, 세탁소입니다.’라는 인사에 킬킬거리는 웃음이 답으로 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국말 인사였다. ‘참, 형은 변함없네! 아직도 세탁소 하네! 혹시나 하고 이 전화로 해봤는데… 야… 영원한 해병같은 세탁인이고만…’

두어 해 동안 소식 불통이었던 후배의 안부 전화였다. 어찌 지내느냐는 내 인사에 그가 한 응답이었다.

두 해 전에 신장 수술을 받고 안되겠다 싶어 하던 일들을 접었단다. 그리고 한국엘 나갔었단다. 만만치 않더란다.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와 노년 계획을 세우는 중이란다. 이 때 쯤이면 나도 은퇴했으리란 생각이 들어 자문도 구할 겸 안부 전화를 했단다.

아직 은퇴계획이 전혀 없는 내가 그에게 건낼 조언일랑은 부질없는 그의 기대였을 뿐이다.

긴 대화 속에서 후배와 내가 한 목소리가 된 순간은 ‘백세시대’라는 말이 결코 우리들에게도 이를 만큼 일반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한 때(그와 그의 직장 모두) 유수한 언론사 워싱톤 특파원으로 제 삶에 대한 자긍이 넘쳐나던 후배나 늘 천방지축이었던 나나 이젠 하루살이가 되어 마땅한 때에 이른 것이다.

늘 흉내내기인 내가 그에게 건넨 말이다. ‘ 하늘소리 사람소리 내 속으로 들으며 하루 살면 고맙지 뭐’

‘형, 암튼 내가 조만간 세탁소로 갈께’ 그의 응답이었는데 그게 또 몇 년 뒤일지는 모를 일이다.

무릇 보험이란 하루살이가 망가질 때를 대비하는 일.

만족은 하루살이를 하는 그날그날 내가 찾아 누릴 몫이다.

해는 짧아도 뜨고 지는 아름다움은 한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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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에

가을이 떠나기가 아주 서러운 모양이다. 연 이틀 이어진 빗줄기가 그칠 듯 하더니만 아직 흘릴 눈물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가을과 함께 떠날 채비에 바쁜 나무들은 제 옷 벗어 땅들을 노랑과 빨강으로 물들여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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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한가하여 이른 시간에 보일러를 끄다가 가게 뒷문 사이로 떠나기 서러운 가을을 보았다.

고개 끄덕이며 혼자 소리로 중얼거려 본 말, ‘그래 삶이다’.

처남 아이들 덕에 성경을 펼쳐 곱씹어 보는 저녁이다. 에고 버리지 못하는 내 못된 말본새라니… 아이들이라니… 쯔쯔… 이젠 모두 환갑 줄인 처남들인 것을.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두 처남 모두 독특한 재능들을 타고났다.  막내 처남이 기타 치며 혼자 4중창으로 부르는 찬송을 큰 처남이 자신의 페북에 올려 놓았다. 함께 영상을 보던 아내가 한 말, ‘하여간 얘들은 재밌고 참 이상해!’. 나는 차마 입으로는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셋 다 독특한데…’

그렇게 읽고 또 읽어 본 성서 시편 136편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찬양시는 떠나기 서러운 가을에게도 유효할 게다.

무릇 삶이 하늘과 이웃에 닿아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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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들에게 고마움을.

구호(口號)에

내가 사는 델라웨어 주는 몇 개의 별칭을 갖고 있다. ‘The First State’, ‘Diamond State’ 또는 ‘Small Wonder’ 등이다. 최초 13개 주들이 미국헌법에 서명을 할 때 델라웨어 대표가 제일 먼저 서명을 했다 해서 생긴 것이 ‘The First State’이고, 토마스 제퍼슨이 미국 동해안의 전략적 요충지가 바로 델라웨어라고 했다는 전설에 따라 전해온 말이 ‘Diamond State’이다. ‘Small Wonder’는 한 때 델라웨어 주가 슬러건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미국에서 두 번 째로 작은 주이지만 살 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충청북도 면적과 엇비슷하니 정말 작은 곳이다. 내 집에서 5분 거리면 펜실베니아 주경계를 넘고, 15분이면 뉴저지에 닿는다. 내 가게에서 5분이면 또 메릴랜드로 이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별칭 하나가 ‘Dela Where?’이다.미국인들도 델라웨어라고 하면 어딘지 잘 모르거니와  ‘아니 그런 주가 다 있어?’ 할 정도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일게다. 그게 또 이 곳의 홍보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런 델라웨어주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뉴스의 생산지가 된 며칠 간이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 때문이다.

이 곳 신문은 “첫 번 째 주에서 첫 번 째 대통령이 나오다”라는 제목의 들뜬 기사를 비롯하여 전 세계 유수한 신문들이 일면 머리기사로 장식한 바이든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전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한국신문은 소개하지 되지 않아 좀 아쉬웠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관련뉴스를 종종 비중있게 다룬 것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한국이라는 국가 위상 보다 한국언론은 아직 거기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참 다행이다. 바이든이 당선 되어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빨리 큰 혼란이 없을 정도로 제법 격차를 이루고 드러난 선거 결과 때문에 해보는 말이다.  선거 후 두 후보자들이 내세운 구호들로 하여 자칫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현재로선 판세가 완전히 기울어 조금은 차분히 선거 후유증을 가라앉힐 가능성이 열려 다행이다.

만일 Count Every Vote와 Stop the Count 라는 구호가 엇비슷한 힘으로 맞붙어 오랜 시간을 끌었다면 그 혼란은 가히 만만치 않았으리라는 걱정을 덜어 정말 다행이다.

가만 돌아보니 셀 수 없이 많은 구호의 시대를 살아왔다. 시대의 권력자들이 만든 구호들이거나 때론 군중들이 만든 구호들도 있었다. 멀리는 ‘반공통일’에서 부터  ‘때려잡자 김일성’, 독재 타도’, ‘선진 조국’ 가까이는 ‘United we stand’, ‘Occupy Wall Street’, ‘Yes we can’,  ‘America great again’ 등등.

구호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고 그 구호 아래 사람살이는 때론 진보하고 많은 경우 그 시대의 혹독한 시련이 되기도 한다.

편 갈음, 증오, 혐오의 언어보다 치유, 화해, 공감 등등의 언어를 내세운 바이든의 연설은 때에 맞는 듯하여 듣기 좋았다.

허나 트럼프라는 캐릭터와 그가 내세운 구호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살며 듣기 좋은 구호만 앞세우는 축들에게 등돌렸던 이들이었을게다.

문제는 누가 내세우는 구호이던 그 구호에 담긴 속내를 곱씹어 꿰뚫어 저항하거나 박수치는 시민들이 주인 되는 세상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일 게다.

이명박근혜 시대를 겪으며 한국사회가 진일보 했듯, 트럼프시대를 지낸 미국사회도 여러모로 진일보 하는 시대를 맞기를 바란다. 내 아이들을 위하여.

화창한 가을날, 한껏 부지런 떨며 하루해를 바삐 보내다.

일주일치 아침 양식 빵도 굽고, 내년 봄을 맞이할 준비로 튜립, 수선화, 아이리스, 무스카리, 히아신스 등 구근을 심고, 배추 절여 김치를 담그다.

김장 끝나면 어머니는 맛난 배추찜을 상에 올리곤 하셨다.

살며 이런 저런 흉내는 즐기지만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는 내가 어머니에 이르면 벽이다. 그래도 그 덕에 흉내라도 낼 수 있다는 감사에 배추찜 하나로 아내와 넉넉한 저녁상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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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오늘 아침 일터로 나가던 길에서 본 낯선 모습이었다. 내 세탁소로 진입하는 사거리 한쪽 귀퉁이에 있는 도서관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뭐지?’하는 생각은 잠시였다. 오늘은 선거날 이고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은 투표소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이십 년 동안 내가 투표하러 갈 때면 언제나 투표장 종사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기억밖에  없는 내게 이런 풍경은 정말 생소했다.

내가 사는 곳과 가게 동네가 달라 그렇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침 나절에 집 앞 투표장으로 투표하러 갔던 아내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돌아 왔단다.

우편투표를 할까하는 생각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워낙 한가했던 투표장 모습에 익숙했던 탓에 그냥 선거 당일 바로 집 앞에 있는 투표장으로 가야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상황이 예년과는 좀 다른 모양이었다.

내가 집 앞 투표장을 찾은 것은 오후 두시 쯤, 그냥 여느 때와 전혀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투표장 안내원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너른 투표장 안에 투표하러 온 이는 나 말고 딱 두 사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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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나절 투표장을 다시 찾았던 아내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단다.

이번 선거에 대한 뉴스들과 이런 저런 주장과 견해들은 다 훑어 볼 수 없을 만큼 쏟아지고 있다. 다 저마다 제 시간과 시각에 맞추어 내어 놓는 것들이다.

그저 바라기는 뜻 없는 것들에 애먼 목숨 거는 일들일 랑은 없었으면 …

내년 봄을 준비하며 처음 심어보는 가을구근들에 대해 공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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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모처럼 날이 좋단다.

겨울준비

갑자기 밤이 터무니없이 길어졌다. 시간이 바뀐 탓이다. 달포 전에 주문한 가을구근들을 일요일인 오늘에야 받았다. 시간 바뀌기 전에 심어야겠다고 준비했던 것인데 짧아진 낮시간을 잘 이용해 보라는 깊은 뜻으로 새기며 투덜거림을 멈춘다.

길어진 밤시간을 위해 몇 권의 책들도 주문 하고, 떡을 만들어 보는 시늉도 해 보았다. 오늘은 떡이 물릴 때 먹어 볼 요량으로 식빵을 만들어 보았다.

이즈음은 구글이나 유튜브를 보고 흉내만 내어도 대충 엇비슷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저 놀랍다. 어찌어찌 시키는대로 해 보았더니 호두와 클랜베리 들어 간 훌륭한 식빵이 되었다. 맛도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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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긴 밤 보낼 준비는 대충 끝낸 듯 하다.

기도

11월 초하루 아침, 기도 드리듯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늘 그렇듯 언제나 받는 이는 나일수도….


이즈음엔 제 세탁소를 찾는 일이 아주 드물지만 저희 가게 오랜 단골 중 한 분이 지난 주에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쓰고 있는 마스크가 매우 독특했답니다. 비닐로 만든 마스크였습니다. 제 아내가 물었답니다. ‘면 마스크가 없으신가요? 숨쉬기가 어렵지 않으세요? 답답해 보이네요.’ 그리고 건네 받은 그녀의 대답이랍니다. ‘답답하기야 하지요. 그런데 내 남편이 귀가 어두워 잘 듣지를 못해요. 내가 말하는 입모양을 보아야 서로 의사소통이 쉽답니다. 그래 이 마스크를 쓰고 있답니다.’

30년 전 한참 왕성하게 일하던 오랜 단골들은 이젠 모두 노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세탁소를 시작하던 때가 30대였는데 저 역시 이젠 60대이고 70을 향해 간답니다.

세월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스크가 꼭 필요한 이즈음의 일상이 나이 들어 가는 모든 이들에게 불편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엊그제 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한 분인 황동규 시인이 새 시집을 발간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답니다. 그는 올해 여든 두 살이랍니다.

거의 60여년을 시인으로 살아온 그의 시들도 세월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특히 지난 20여년 동안 그가 줄기차게 쓰고 있는 시편들은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노래들입니다.

그의 시와 시어들은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들이 강해 번역해 그 뜻을 알리기엔 매우 어려운 일이랍니다.

아무튼 그가 새로 낸 새 시집의 이름이 <오늘 하루만이라도>랍니다. 저는 그 시집의 제목만으로도 그의 시에 빠질 수 있었답니다.

그 시집에 실린 그의 <오늘 하루만이라도>이라는 시의 한 연을 옮겨봅니다.

<이층으로 오르는 층계참 창으로
샛노란 은행잎 하나 날아 들어온다.
은행잎! 할 때 누가 검푸른 잎을 떠올리겠는가?
내가 아는 나무들 가운데 떡갈나무 빼고
나뭇잎은 대개 떨어지기 직전이 결사적으로 아름답다.
내 위층에 사는 남자가 인사를 하며 층계를 오른다.
나보다 발을 더 무겁게 끌면서도
만날 때마다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그,
한 발짝 한 발짝 씩 층계를 오른다.
그래, 그나 나나 다 떨어지기 직전의 나뭇잎들!
그의 발걸음이 몇 층 위로 오르길 기다려
오늘 하루만이라도
라벨의 ‘볼레로’가 악기 바꿔가며 반복을 춤추게 하듯
한번은 활기차게 한번은 차근차근
발걸음 바꿔가며 올라가보자.>

11월입니다.

딱히 나이 뿐만이 아니라도 이제 한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에 이르면 너나없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질 때이기도 합니다. 더더군다나 여느 해와 너무나 다른 한 해를 보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즈음 이따금 저녁 노을 물드는 하늘을 보며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지나간 하루보다 다시 맞을 하루에 대한 희망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길 때 그 감사는 더욱 커진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감사가 이어지는 당신의 11월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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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of my old customers, even though she has rarely visited the cleaners recently, came in last week. She was wearing a very unique mask, which was made of plastic. My wife asked her, “Isn’t it difficult to breathe with that mask on? Don’t you have a cloth mask? It looks stifling.” Her response was: “Of course, it gives me some trouble breathing. But, my husband cannot hear well. My communication with him will be better, when he sees and reads my lips. That’s why I wear this mask.”

My old customers, who had been leading active lives thirty years ago, have become old people now. When I started the cleaners, I was in my thirties. Now I’m in my sixties, and getting closer to seventy.

I know that nobody can go against time. But, current everyday life, in which everybody has to wear a mask until a time which nobody knows, may be more uncomfortable to those who are getting old, I think.

The other day, I heard the news that Dong-gyu Hwang, one of my favorite poets, had published a new book of poems. He is eighty-two years old.

He has been writing poems for almost sixty years and his poems have been undergoing changes over time. Especially his poems in the last 20 years have been songs about himself getting old.

The title is “Even for Just One Day, Today.” The title was attractive enough for me to indulge in this book of poems.

As his poems and poetic words have things very Korean, some of them may be lost in translation. Though I’m afraid to do it,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a stanza of the poem, “Even for Just One Day, Today,” in the book.

<Through the window at the landing of the staircase leading to the second floor
A bright yellow gingko leaf is flying in.
A gingko leaf! Who would imagine a dark green leaf?
Among the trees that I know, except oak trees,
Most leaves are desperately beautiful generally just before falling down.
A man who lives on the upper floor is nodding and climbing up the stairs.
Though he drags his feet heavier than me,
He, who never loses his smile whenever he sees me,
Is climbing up the stairs step by step.
Right, he and I, both are like leaves just before falling down!
After waiting for his climbing up a few floors,
Even for just one day, today,
As Ravel’s Boléro makes dancing repetitions by musical instruments one kind by one kind,
Once briskly, the other calm and orderly,
Let me climb up the stairs step by step.>

It is November now.

At the time when a year is drawing to an end, a flood of thoughts may course through everybody’s mind. This year, it may be even more so, because we all are having a year which is so different from other years.

These days, I so often felt grateful, when I was watching the sky aglow with the sunset. When I saw it as the beautiful scenery which was conveying hope for a new day instead of the past day, the gratitude became even greater.

I wish that gratitude “even for just one day, today” in your life will go on continuously in November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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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단풍놀이 길 나서려 했었다. 오늘 지나면 올 가을도 제 길 찾아 떠나려 할 듯 하여서 였다. 나서려던 길 막은 놈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온종일 비가 추적일 것이라고 떠드는  일기예보였다. 때때로 예보는 정확하기도 하다. 먼길 나서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씨였다.

집에 머무는 덕에 모처럼 참 좋은 친구 내외가 방문하여 이 심상찮은 세월에도 감사히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어쩌다 내가 온종일 집에 있을 때면 부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셨다. 고구마를 굽거나 찌기도 하시고, 녹두를 갈아 빈대떡을 부치시기도 하셨고, 쑥 갈아 개떡을 만드시거나 바람 떡을 만드셔 내 입이 심심치 않게 하시곤 했다.

딱하게도 나는 입이 짧았고 성격도 모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머니께 던졌던 말이다. ‘에고, 제발 그만 두세요.’

어머니 생각하며 떡을 빚어 본 하루다. 팥소와 녹두소 넉넉히 만들어 저장도 하고, 콩가루, 녹두가루도 준비해 두었다. 올 겨울엔 옛 생각나면 떡을 빚어 볼 요량이다.

그렇게 콩가루와 녹두가루 입힌 인절미도 만들고, 녹두와 각종 너트 갈아 넣은 소에 단호박 쪄 넣은 찹쌀떡과 계피가루 입힌 옷에 팥소 넣은 찹쌀떡을 만들어 보았다.

아내가 제법 맛있다며 칭찬을 보탰다.

아버지와 두 누이들에게도 배달해 맛을 보였다.

어머니는 돌아가시 전 일년 여 알츠하이머 병세로 시간을 마음대로 넘나드시곤 하셨다. 그 무렵 종종 어머니는 육이오 전쟁통 피난길에서 떡장사 하셨던 때로 돌아가 계시곤 하셨다. 어머니가 절박한 기억에 휩싸이곤 할 때였다.

어머니 흉내 내며 떡을 빚은 하루. 어머니와 내가 다른 것 하나. 어머니는 절박했고 나는 여유롭다는.

그저 고마움으로, 어머니 덕에.

*** 오늘 동네 뉴스 하나. 우리들 실생활에 직접 다가오는 변화는 대통령 선거보다는 지역사회 일꾼들 선택에서 먼저 온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사를 마무리하는 말. ‘유권자들은 어차피 지역사회 일꾼들이 내세우는 정책보다 자신들의 선입견이 우선’한다는…

내 책상 위에서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니는 오늘도 ‘쯔쯔쯔’와  ‘그래 고맙다’를 반복하신다.DSC01266A

선거에

아침 일 나가던 길에 눈에 들어온 선거용 입간판들,  이즈음 사거리 마다 놓여있는 풍경이다.  이른바 선거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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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서 대통령 후보들 홍보 입간판을 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주로 연방 의회 의원 및 주지사를 비롯한 주정부 관리와 의회 등에 입후보한 사람들의 홍보 입간판들이 주를 이룬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기도 하지만 이곳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죠 바이든의 고향이고 보니 이 곳 판세는 워낙 뻔해서 일게다.

죠 바이든의 집과 내 집과의 거리는 10여분 안팎이다. 왈 동네 사람이다. 이 곳에서 오래 산 한인 치고 그와 악수 한번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는 오랜 세월 의원 생활을 하면서 한인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다. 나 역시 몇 번 그를 만난 적이 있다. 함께 식사도 하고 걷기도 하고, 한반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 기억들이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은 그의 보좌관과 행사를 함께 해 본 경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일이 그리 마뜩잖다. 물론 트럼프는 더더욱 아니다.

엊그제 아내에게 들은 말이다. 내 오랜 단골인 윌리암슨 할머니가 세탁소를 들어섰는데 그녀가 쓴 마스크가 기이했단다. 비닐 마스크 였단다. 아내가 물었단다. ‘천 마스크가 없어요? 그 마스크는 숨 쉬기가 매우 힘들거 같아요.’ 오랜 학교 교직을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그녀가 한 대답이란다. ‘에고, 내 남편이 이젠 귀가 어두워 잘 못들어요. 그래 내가 말하는 입 모양을 보고 소통을 한다우. 그래 생각 끝에 이 마스크를 쓴다우.’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사람살이 시작한 이래 손 꼽아도 좋을 만큼 몇 안되는 큰 변화의 시대를 너나없이 겪어내는 이즈음이 아닐까 싶다.

이런 시절에 바이든과 트럼프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선거판은 좀 불편하고,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불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선거란 어차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에 솔깃해 나도 한 표는 던진다마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이즈음 한국 뉴스를 보면 한반도 남북문제를 위해서 트럼트가 낫지 않은가 하는 이들의 소리를 듣고는 한다만 그 역시 난 동의할 수 없다. 누가 되어도 마찬가지거니와 대한민국은 이젠 홀로 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즈음 뒤뜰에서 저녁 노을이 만들어내는 하늘에 홀려 오래 앉아 있곤 한다. 하늘에 빠져 있다보면 사람살이엔 분명 그 살이를 다스리는 힘이 있는 듯 하다. 그 힘을 무어라 부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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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또 사는게다.

2

딱따구리가 내 집 나무에서 노는 걸 보니 나무를 자를 때가 되었나 보다.

막대사탕

내 세탁소 카운터에는 막대사탕을 담은 작은 나무접시가 하나 있다. 나무접시는 족히 30년 넘게 우리 부부와 함께 했다. 나무접시에 담긴 막대사탕을 즐기던 아이들이 이젠 중년이 되어 내 세탁소를 찾기도 한다.

올들어 역병 탓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세탁소를 찾는 이들은 매우 드물다. 그래도 막대사탕을 담은 접시는 금새 비어지곤 한다.  이즈음 막대사탕을 주로 집어가는 이들은 노인들이다. 이따금 나보다 족히 세 배는 됨직한 젊은 친구가 사탕 두세 개를 한 입에 넣어 빠그작 소리를 내며 씹을 때면 그 둔한 몸은 전혀 아니지만 그의 건치(健齒)에 이르면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몇 달 사이 내 눈에 밟힌 노인 손님 한 분이 있다. 평소 내가 카운터를 보는 일은 매우 드물어 오랜 단골 손님들 빼고는 기억하는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다만, 이즈음엔 한가한 탓에 카운터를 차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노인이라고 했지만 내 또래 거나 몇 년 더 산 정도인 사내는 늘 나만큼 허름한 모습으로 두 주에 한 번 꼴로 내 가게를 찾는다. 들고 오는 빨래거리라고는 언제나 달랑 셔츠 두 장이다. 사내가 눈에 띤 것은 막대사탕 때문이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 그를 맞기 위해 카운터로 다가서는데 그는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 땐 잘 몰랐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내 세탁소에 올 때 마다 막대사탕을 한 줌 주머니에 넣곤 하는 것이었다. 한 줌이라고 해 보았자 대 여섯 개 정도일 터이다.

어차피 오는 손님 누구나 원하면 집어 가라고 놓아 둔 것이므로 몇 개를 집어가든 상관할 바 아니데, 문제는 그가 내 눈치를 본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나는 그가 가게로 들어서면 그를 위한 틈을 만들어 주곤 한다.

모를 일이다. 그가 사탕을 좋아하는지, 병든 아내를 위해 챙기는 것인지, 손주 녀석들 생각으로 그리 하는지, 내가 또 알면 뭐하랴. 사탕 몇 개로 그가 잠시 삶에 단 맛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일 터.

누군가 접시채로 막대사탕을 다 집어간들 또 다시 채울 수 있는 부요함은 아직 누리고 사니 그저 고마운 오늘이다.

나이든다는 것은 소소한 고마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일게다.

아내와 함께 가을 길을 걷다. 먼 길 나서지 않아도 우리 내외가 넉넉히 즐길 수 있는 가을 풍경이 놓인 오늘의 삶에 또 고마움이 인다.

곰곰 생각해 보니 늘 허름한 내가 막대사탕 하나를 온전히 다 먹은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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