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잡생각

오만 잡생각”

이런 저런 걱정거리나 머리가 복잡할 때 종종 쓰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오만 잡생각”이라는 말엔 아주 과학적인 근거가 있더군요. 아주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하나 말씀드리지요.

 

National Science Foundation(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연구 결과랍니다.

 

사람은 보통 한 시간당 천 개가 넘는 생각을 한답니다. 물론 생각의 편린 곧 생각의 조각들(fragments)의 숫자이지요.  지금 저처럼 어떤 글을 쓰고 있는 상태에서는 시간당 약 2천 5백가지가 넘는 생각들을 한다고 하네요.  보통사람들은 하루에  일만 이천개 정도의 생각을 하며 살고요. 생각을 좀 많이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약 5만개의 생각을 하며 산다고 하지요.

 

참 우리 선조들은 연구하지 않아도  다 아시고  “오만 잡생각”이라고 하셨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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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인 셰드 헴스테더 박사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하지요. 보통 사람들은 하루에 5만에서 6만가지 생각을 하며 산다고요. 그런데 그의 연구에 따르면 그 오만 잡생각 가운데 15% 정도는 긍정적인 생각들이고 나머지 85%가 부정적인 생각들이랍니다. 일테면 걱정, 근심, 불안 등등과 연관된 생각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지요. 

 

이게 저만 그런 게 아니고, 당신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젠가 고 김대중대통령의 마지막 일기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를 죽 읽다가 저를 사로잡은 것은 2월 7일에 쓰신 단 두 문장으로 된 일기였답니다.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제가 감히 거기에 무슨 사족을 달겠습니까? 그냥 가슴이 싸하게 다가 온 말씀이었지요.

 

그 분도,  아니 그 분은 저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많은 생각을 하시며 사신 분이지요. 어쩌면 하루에 5만, 6만이 아니라 10만, 20만 아니 그 이상의 생각들을 하시며 사셨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하루를 보내고 그 날의 일기에 달랑 저렇게 두 문장으로 정리해 놓으신 것을 보면 누리셨던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 것이지요.

 

일기를 다 읽고 제 마음에 든 생각 하나. “참으로 그 분은 긍정의 힘으로 사신 분이구나” 이거였답니다.

 

장사 – 역시 긍정의 힘이 이끌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하루 하루를 15%의 긍정적 생각들이 이끌고 가게해야 합니다. 긍정적 생각들이란 지푸라기라도 잡는 어떤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는 그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생각들을 참 그 방향으로 나가게 하려면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천하는 행위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 분이 살아 온 길이 바로 그렇게 “준비”하고 “실천”하는 삶이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큰  사람만이 그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작은 구멍가게 하나 잘 꾸려 나가는 일도 마찬가지겠지요.

 

장사 안 되어서 걱정”, “이거 진짜 큰일”, “아이고 어쩌지” 그 부정적 생각들을 머리 흔들어 떨쳐 버리고, “이건 내게 좋은 기회야”, “그래, 이거 하나 바꾸어 보자”, “이렇게 다시 시작해 볼까” 긍정적 생각들로 아주 작은 것부터 준비하고 행동으로 옮겨 보는 일.

 

어떠세요?

한 번들 함께 해 보시지 않으시려는지요?

 

 

실행하는 사람

<역사는 나선형으로 진행한다. 한 시대가 그 전 시대로, 또는 그 전의 문제로 되돌아가곤 한다는 뜻이다포도주 병의 코르크 마개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역사도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듯 하지만 사실은 수준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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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또는 비지네스맨의 영원한 멘토라고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의 말입니다. 어떤 하나의 현상을 보면 마치 역사가 뒷걸음치는 것 같아도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발전한다는 것이지요.

인생을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의 개인사나, 조직의 역동성을 굳게 믿는 단체나 크거나 작은 기업사, 민족의 역량에 대한 신뢰를 가진 민족사 나아가 인류 보편의 자유를 신봉하며 나아가는 세계사는 발전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겠지요.

<실행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한다. 물론 자신이 하는 일 전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아주 많은 일상적인 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매일 3시간씩 연습을 한다. 아무도 그가 연습을 좋아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야만 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을지라도 40살 이후에도 실력을 향상 시키려면 그것을 즐겨야 한다나는 몇 년 전 한 피아니스트에게서 “나는 내 손가락에 생명이 있는 한 연습을 한다”는 훌륭한 말을 들었다.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연습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가 그의 책 ‘경영 바이블’에서 한 말입니다.

무릇 직업적인 일이란 대부분 아주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즐길수 있어야합니다. 그 삶이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발전을 위해서 말이지요.

봄엔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봄엔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봄엔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이른 아침

버섯공장 거름냄새

앞뜰

파랗게 물오른 버드나무 아래

차마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진 잔가지들

뒤뜰

흐드러진 개나리 사이

겨우내

숨 져 마른 관목

아래

볼품없이 누워있는

내 머리만한

돌멩이 하나

 

봄엔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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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예수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듯 부활도 끝이 아닙니다. 문제는 부활이후(以後)입니다. 탐스런 목련, 뒷뜰에  흐드러진 서울 개나리, 하얀 배꽃, 날렵한 더그우드 꽃잎들… 봄 꽃으로 꽉찬 세상만이 봄이 아닙니다.

제 딸년이 코끝에 사래질 치는 버섯공장 거름냄새도 주워 내다 버려야 할 떨어진 버드나무 잔가지들도 앙상히 말라 톱질 기다리는 죽은 나무도 일 년 내내 그 자리에 있어도 눈길 한 번 주어 본 적 없는 못생긴 돌덩어리도 봄입니다. 

 

예루살렘 입성할 때 한 자리 꿈꾸었던 제자들…

부활이후에도 여전히 한자리 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첫 증인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여인이었다는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베드로는 바울에게 밀려 났고, 야고보, 요한 역시 한 자리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바울은 뭐 크게 출세했나요. 발품 팔아 돌아 다니며 멍석 짜는 일에서 벗어 나지 못한 삶이었지요. 봄은 그렇게 오는 것이지요. 부활 이후 말입니다.

“위로자로서

화의 축원자로서

삶의 조언자로서…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는 자로서”

아리랑

여러 해 전에 필라에 사시는 지인께서선명회 합창단 공연입장권을 보내 주셔서 가까이 지내는 몇 가정 부부들과 함께 그 저녁 어린 천사들의 화음을 만끽하였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밤 동행들에게오랫만에 누린 문화 생활이라고 말하였었고.

천사들이 마지막으로 청중들에게 선사한 노래는 우리 민요 ‘아리랑’이었는데 그 곳에 모인 모든 동포들이 목청 높여 함께 하였던 것이다. 그 밤 그 곳에 모인 모든 동포들이 한 목소리로 불렀던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구전민요이다. 이 아리랑과 뗄 수 없는 말은 ‘한()’이다. 아리랑은 대개의 다른 민요와 더불어 두레노레 곧 ‘노동요(勞動謠:일하면서 부르는 노래)’이었다. 

 

아리랑

어느 누구든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잊혀지지 않는 한의 응어리는 갖고 살게 마련이다. 일테면 가난에서 오는 한, 까닭없이 빼앗긴 것에서 오는 한, 부모를 일찍 여윈 한, 자식을 앞세워 보낸 한, 성차별애서 오는 한, 고부간의 갈등에서 오는 한, 남녀간의 사랑에서 말미암은 응어리진 감정 등등 이런 것들이 집단화 되어 공동의 노래가 된 것 중 하나가 바로아리랑이다.

 

비록 개인적인 넋두리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집단화 되어 표현될 때 그것은 이미 직업 또는 사회공동체의 공통적 애환을 담아내는 노래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아리랑’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가락이기도 하였다.

 

아리랑이 언제 어느 때부터 불리워졌는지, 아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연구하는 학자마다 다 다른 소리를 하므로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에서 시작되었다는 아리랑(我離娘)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민중들이 괴로운 말만 듣게되어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한 말에서 나왔다는 아이농(我耳聾)설, 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아랑전설(阿娘傳說), 신라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나왔다는 알영설(閼英說), 이밖에도 낙랑설, 아라리설, 아린설, 얄리얄리설등 연구하는 이마다 주장이 다르다.

 

그러나 이즈음은 노래의 조율성과 흥을 돋우기 위한 ‘무의미한 후렴소리’로 뜻이 모아지고 있으며, 노래의 기원은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다가 구한말 이후 전국적으로 파급되었고 특히 1926년 나운규가 만든 영화 ‘아리랑’ 이후 급속도로 번져 민중의 민요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나는 이십여 년 전에 발표한 정호완의 “아리다, 쓰리다”설에 귀를 귀울인다. 밀양아리랑에서 나오는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은 고유한 우리 말 ‘아리다’와 ‘쓰리다’에서 나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해석을 터로 한다면 “아리랑 고개를 넘는 일’이야말로 ‘아리고 쓰린’ 오늘을 이겨내는 일이며, ‘아리고 쓰린’ 한()을 훌훌 털어 냄 아닌가?

 

저마다의 아픔과 시림의 고개, 이민(移民)의 시림과 아픔의 고개 나아가 민족의 아픔과 시림 곧 조국의 분단 – 그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아니 아주 넘어선 후 부르는 <새 아리랑>을 기다린다.

 

새 아리랑은 감상적이고 슬픈 계면조(界面調)가 아니라 평안하고 화평한 평조(平調)에 담아 낼 일이며, 한에 응어리진 소리가 아니라 해원상생(解怨相生:원과 한을 풀고 모두 더불어 함께 사는)의 소리여야 할 일이며, 알량한 주의(主義)나 종파(宗派)가 아니라 ‘시리고 아린’고개를 넘어선 민족의 큰 정신 담아내는 노래라야 할 것이다.

 

그 새 아리랑 소리 높여 부를 날을 꿈꾸며.

 

이즈음 아내는 아리랑을 이용한 생활무용을 통해 한국어와 문화를 알리는 꿈에 젖어 있다.

 

꿈을 꾸는 한 삶은 아름다운 법 아닐까?

 

한과 꿈

얼추 이십년 전에 아버님께서 책을 한 권 펴내신 적이 있다.

일흔 해 이 땅을 살아오시면서 당신께서 겪고 느끼셨던 일들을 담담히 적어 내신 것이었다. 아주 평범하지만 영육간에 건강하게 살아오신 모습대로 책의 내용 역시 지극히 평범하였지만 건강하고 바른 삶을 일깨우게 하는 것이었다. 책 제목이 <한울림>이었는데 나는 내용보다 제목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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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부제로 붙여 논 <하나뿐인 인생을 위하여>가 썩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하나뿐인 인생,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세월 – 동서고금의 철인(哲人)이나 현인들의 말씀에서부터 유행가 가사까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지만 그게 제 삶에 무르녹아 드러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하나 뿐인 인생을 외길로 걸어 온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 나는 한없는 부러움을 느낀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뜻을 세우고 그 길을 서두르지 않고 오직 한걸음으로 또박또박 걸어 온 이웃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천방지축으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엄벙덤벙 살아 온 내 삶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뭐 대단한 것을 이루어 낸 이들을 말함이 아니다. 이민와서 이삼십 년 때로는 사오십 년 가까이 다운 타운 코너 스토아나 세탁소를 꾸리며 웃음 잃지 않고 자식들 훤출하게 키워 내고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손길 선뜻 내어 밀지만 결코 내세우지 않는 모습들이 부럽다는 말이다.

 

꿈많던 어린시절이 어찌 나에게만 있었을까 보냐!

품었던 꿈에 소원과 기도와 비나리를 아니 실었던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한참을 걸어오다 보면 꿈은 그냥 꿈이 되고 꿈조차 꾸지 않았던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는 일이 나만 겪었던 일은 아니리라. 그랬다. 꿈이 많았다. 이것도 해 보고 싶고, 저것도 해 보고 싶었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꿈도 꾸었다. 어쩌랴! 모두 개꿈이었던 것을.

 

이제 환갑줄이지만 철이 아니 든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스무 살 그 언저리쯤이었다. 나는 <한>이라는 말에 깊이 빠져 들었다. 한,  ,   깊이 천착(穿鑿)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마는 떼어 놓을 수 없는 동무처럼 내 삶의 그림자가 되어 쫓아 다녔다.  

 

신분이 미국시민으로 변신하며 <한>은 더욱 나를 따라 다녔다.

내 자식놈들 특별히 아들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놈의 <한> 때문이다. 딸아이의 이름 “한나”는 그런대로 넘어 가겠는데 아들 녀석의 이름 “한울”은 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 준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들녀석의 이름은 이제 <한 Han>이 되어 제 친구들이 다 그렇게 부른다. 감사한 일은 녀석의 맘 씀씀이나 이웃에 대한 배려가 크다.

 

이 나이에 다시 꿈을 꾼다 하였거니와 그 꿈은 다시 <한>에서 시작한다.

더러는 나더러 장사꾼이라고 말하지만 애시당초 장사와는 연()이 먼 사람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민을 가꾸는 우리 한인 동포들을 위하여”라는 내 말은 순수하다. 내 거울에 비추어 그렇다는 말이다. 그 맘으로 새롭게 꾸어 보는 꿈.

 

늘 그 꿈으로 산다.

원컨대 기도해 주시기를……

이따금 슬퍼지는 까닭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며 목청꺽어 노래한 사람은 나훈아요,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떨리는 고음으로 호소한 이는 남궁옥분이었다. 어디 유행가 뿐이겠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래와 무용, 미술과 건축, 문학 나아가 종교까지 ‘사랑’을 뺀다면  아마 인류사는 적막했을 것이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은 이미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거나 아무리 사랑이 이것이다고 가르쳐 주어도 모르는 사람이다’ – 기독교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이다. 사랑에 대해 이보다 뛰어난 해석이 있을까? 사랑이란 말이 머리 속 또는 가슴 속에 있는 바로 그 순간이 사랑일 것이므로. 

그 사랑을 주제로 이 땅을 열심히 살다가 서른 셋의 나이로 육()의 삶을 끝낸 이는 바로 예수다. 그는 ‘나’와 ‘당신’ 그리고 ‘나와 당신’을 묶는 ‘우리’에 대응하는 ‘그들’까지 모두 사랑으로 묶고자 서른 세해를 살다 살다 ‘사는 것’으로 아니되자 자기가 죽음으로 그 본 보이고자 하였다. 

어디 죽음으로 사랑을 이야기한 이들이 예수 뿐이겠나? 서로 사랑하다 하다 미칠 것 같이 사랑하다 끝내 죽은 연인들의 이야기는 부지기수요, 조금 넓게는 제가 사는 마을을 사랑하다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널려 있고. 제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여 목숨을 버린 이들의 이야기도 숱하다.  

그들과 예수의 이야기는 무엇이 다를까? 예수는 스스로 신이었고. 그의 사랑은 신의 사랑임을 확신하고 선포한 것이 다르달까? 그러나 어디 스스로 신()임을 자처한 이가 또 예수뿐이겠나? 오늘 이 순간에도 스스로 신이라 칭하는 미치광이들이 널려있거늘. 

예수는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쉬운 말을 썼다. 비록 깊은 비유로 숨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가 사용한 말들은 당시 하루 먹고 살기 바빳던 사람들의 일상적 언어였다. 소위 갈릴리 말, 아람어였다.  일테면 요새말로 어려운 신학적 용어, 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나와 당신들이 폼 잡지 않고 쓰는 말들을 사용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사랑’을 전했다는 이야기다.    

사랑그가 쉬운 말로 전했던 사랑이야기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하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대한 신의 절대적 사랑과, 서로 사랑하라는 인간 사이의 상대적 사랑을 말했다고 믿는다.  

어려운 말 하지말고 쉽게 쓰자. 사람 사이의 사랑이란 상대적이란 말이다. 모든 사람 사이의 사랑이란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백 퍼센트 전폭적으로 나는 사랑을 베푼 사람이고 너는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오직 신 뿐이란 이야기다. 그것이 예수가 말한 사람 사이의 사랑이야기다. 

행여 “나는 너와 너희를 위해 절대적 사랑을 베풀었건만 너희가 나에게 무엇을 하였는가?”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직업이 어떤 것이든 이미 그는 예수의 사랑과는 동떨어져 있다.  

살며 ‘나는 주기만 했고, 너는 받기만 했다.’며 우기는 얼굴들을 보면 왜 이리 슬퍼지는지.

 

집으로

오늘로 열흘째 어머님께서 지내시는 곳은 노인병동입니다. 2 1실인데 그 사이 어머님 옆 침대는 세 분이 들어왔다가 나가셨습니다.

어제 집으로 돌아가신 백인 할머님은 연세가89이셨는데 참 곱게 늙으셨답니다. 다만 치매기가 좀 있으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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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오후에 병실에 들렸을 때 할머님이 저를 보자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지요. “Hey baby! I’ll go home tomorrow!” 정말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얼굴이셨답니다.

잠시 후, “내가 집으로 가기 전에 이거 다 부셔버리고 갈거다갑자기 화난 얼굴로 할머님께서 소리치셨답니다.(소리라고 해보았자 모기소리지만….) 환자들이 모두 노인들이다보니 행여 의자나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넘어질까보아 환자가 움직여 침대나 의자바닥과 몸이 밀착되지 않으면 요란한 소리를 내는 방석을 가르키며 하신 말씀이었지요.

집에 돌아가셔보았자 특별히 하실 일도 없을 것이고, 간호할 누군가가 옆에 붙어있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이시고, 차라리 병원에계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상태이셨지만 집으로 가시는 것이 그리 소원이셨던 모양입니다.

오늘, 어머님의 옆침대에는 말씀조차 못하는 거구의 백인 할머님이 새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었지요.“얘야, 집에 가고 싶다.”

바로 일상이지요. 일상에 대한 감사오늘 어머님이 제게 주신 가르침이랍니다.

솔직함(frankness)과 진정성(authenticity)으로…

벌써 사년 전 일입니다만 당시 USA TODAY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삶이 날로 힘들어 지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For immigrants, living the dream is getting tougher)

많은 이민자들이 스물비지네스를 통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최근 불어닥친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하며, 이들의 삶이 이민초기의 무일푼의 상태로 되돌아 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스몰비지네스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내 약 150만명의 이민자들이 스몰비지네스를 소유하고 있으며 비이민자에 비해 이민자들의 스몰비지네스 창업율이30%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bout 1.5 million immigrants own U.S. businesses, according to a study for the Small Business Administration by Rob Fairlie, an economics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Santa Cruz. He found that immigrants are 30% more likely to start a business than non-immigrants.).

미국내 스몰비지네스의 12.5%가 이민자들 소유이며 멕시칸 이민자의 스몰비지네스 소유가 2.22%로 가장 많고 다음이 한인으로 전체의 0.7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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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남미,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이민을 와서 옷가게, 식당, 세탁소, 그로서리등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사는 이렇게 끝납니다.

“내 피와 땀과 눈물을 이 땅에 쏟았습니다. (오늘의 고통은) 실로 슬픔입니다.” (I put my blood, sweat and tears in this place. It’s a sad story.)

한인 이민자들인 우리들의 삶은 어떨까 생각을 해 봅니다. 많은 우리 한인 이민자들이 스몰비지네스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도 신문이 전하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합니다. 우리들의 착각과 편견을 벗어 내 버리면 말입니다.

다른 통계를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안계 대다수가 평균적인 중산층 수입 이하의 소득수준을 보이고, 1가구당 수입이 다른 인종(백인, 흑인, 히스패닉)에 비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5가구중 1가구가 빈곤선 이하) 게다가 아시안계 가정의 54%가 영어 미숙자로 언어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80-20 initiative)

저는 착각과 편견을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한국 이민자들은 아시안계에 속하기를 거부합니다. 특히나 남미나 흑인계 이민들과 비교되는 것들도 꺼립니다. “한국인”을 이야기 하고 높은 학력과 아시아의 유태인으로 견주기를 즐겨합니다. 이 땅의 타 민족 이민자들 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는 자부가 매우 강합니다. 그러나 이젠 솔직해 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위에 통계나 USA TODAY의 기사와 우리 한인 이민자들의 실상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자부”는 지녀야 할 덕목이지만 그 보다 먼저 “솔직”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를 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위의 USA TODAY 기사는 1970년대 중반에 그리스에서 이민을 와서 세탁소(Four Seasons Cleaners)를 경영하고 있는Panayiota Koskiniotis 씨의 이야기를 싣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길게 보면 이 땅은 살 만한 곳이다.”라고.

저 역시 그의 말에 동의를 합니다.

비록 경기침체의 끝은 보이지 않고, 갈수록 스몰 비지네스로 생계를 꾸려가지 힘들만큼 현실의 여건은 어렵더라도 “길게 보면 이 땅은 살 만한 곳입니다.”

언어의 장벽, 문화의 이질감, 터무니 없이 적은 자본능력 등등 현실을 헤쳐 나갈 도구들도 충분치 않지만 여전히 “길게 보면 이 땅은 살 만한 곳입니다.”

“솔직”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를 돌아 볼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솔직함(frankness)”과 “진정성(authenticity)”이 “이 땅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도구입니다.

비록 어려운 경제환경과 우리들이 지닌 핸디캡들(언어의 장벽, 문화의 이질감, 터무니 없이 적은 자본능력)에도 불구하고 세탁소를 비롯한 스몰 비지네스로 성공 이민의 꿈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함(frankness)”과 “진정성(authenticity)”으로 내 비지네스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삶의 정치 – 그리고 인생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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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와 좌파의 논쟁이 대중들에게 호소력이 없는 까닭은 그들이 삷의 정치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저명한 사회학자인 Anthony Giddens이 그의 저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Beyond left and right)>에서 갈파한 말이다.

그는 급진과 보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는 정치모델이 필요하고 이는 이미 이행되어 가고 있다고 주창한다.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정치,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모든 부문에 걸쳐 세계 도처에서 좌파와 우파는 대립과 투쟁과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솔직히 좌로 조금 기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적인 틀(일테면 미국과 세계, 한반도의 남북 또는 남쪽의 상황)을 이해하는 방법이 그렇다는 말이다. 특히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좌로 좀 더 기울 것이다. 수년동안 내가 고뇌하고 있는 이민신학(移民神學)은 기실 정치, 해방, 민중신학과 십 수년래 미국에서 풍미한 예수세미나 회원들의 고뇌의 성과물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이른바 거룩한 보수정통의 입장에서 보면 나의 이해란 예수쟁이와는 거리가 꽤 먼 것으로 비췰 수 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일례로 나는 케리그마, 말씀의 선포 곧 설교자들의 설교도 토론이 병행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는 바 이런 생각들은 좌의 끝자리쯤일 것이다. 

이런 내가 아주 꼴통보수우익으로 수성(守城)코자 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찬송가 부르기다. 내 주는 방패되시니’, ‘죄짐맡은 우리구주’, ‘뜻없이 무릎꿇는’같은 고전적인 찬송에는 함께 하다가도 이즈음 유행하는 복음성가에는 도대체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일이다. 특히 이즈음엔 생업(生業)으로 하는 복음성가 가수들도 있어서 어쩌다 그 이들의 노래를 들을라 치면 왠지 노래하는 기교와 가락이 배어 있는 듯하여 내가 좋아하는 노래꾼 김민기보다도 덜 종교적이란 생각이 들곤하는 것이다. 

거의 드문 일이지만 어쩌다 참석한 집회에 찬양과 경배 그런 순서가 있어서 박수치고 율동하고 그러면 참으로 나는 좌불안석이 되곤 한다. 게다가 찬양 인도자가 ‘박수치세요’, ‘율동하세요’, ‘!자 함께 은혜 받아요’ 하기라도 하면 왜 집을 떠났던고, 성경 한 줄 읽고 고민할 걸 가히 후회막급이라! 이 아니 꼴통보수 아니랴! 그러나 교회사에는 피아노도 경망스럽다하여 금기했던 세월도 있었으니 원조보수는 아닌 셈이다. 

그런 나도 이따금 흥얼거리는 복음성가가 하나 있다. 이것 역시 고전이다만,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열고 말하리 예수 인도 하셨네…”하는 노래이다. 산다는 것이 다 그렇지 좌편 끝 길을 걸을 때도 있고 우편 끝 모서리에서 뒤뚱거릴 때도 있으며 높은 언덕 꼭대기에 서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세상 내 손 안에 쥘 때도 있고 시궁창에 빠져 숨조차 내쉬기 힘든 때도 있기 마련이지 어찌 바른 길로만 올곧게 걸을 수 있겠는가? 돌아볼수록 부끄러운 걸음이지, 오직 떳떳함 뿐이로다할 사람 몇이나 있겠는가? 그런데 하늘문 열고 말한다지 않는가? 예수가 여기 인도했노라고 그게 믿음이지, 당당한 믿음이지. 

여기까지 온 것도 예수 인도하신 까닭이요, 피안(彼岸) 저 편에 다달아 예수가 인도하였다는 고백을 하려면 지금 오늘을 예수 안에서 살아야 되는데 거기 무슨 우파와 좌파가 있으랴! 뛰어 넘어야지. 어찌 삶의 정치뿐이겠나? 하여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에서 내 인생 여정 끝내어를 노래하는 한 진정 좌파와 우파의 자리는 없다. 

그래, 봄으로 찾아오는 이 사순절 그렇게 살자. 내 인생 여정 끝내어…

스스로 벗는 허물

꽃이_활짝_핀_봄의_들판을_좋아하는_나비_(9)

바야흐로힐링전성시대라지요. “힐링상품들이 넘쳐나기도 한다지요. 늘 그렇듯 넘쳐나는 곳엔 가짜도 덩달아 판을 치는 법이고요.

 

“나 XX때문에 상처 받았어!”라는 말들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답니다. 상처와 아픔이 있으니 “힐링”이 필요하겠지요.

 

살다보면 육체적으로 병이 들어 아플 때도 있고, 상처가 나서 피를볼 때도 있고, 뼈가 부러지거나 탈골이 생기는 경우도 있거니와 이러저런 각종 크고 작은 몸의 이상이 일어날 수도 있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저절로 낫는 경우가 태반이지요.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의 경우에는 대부분 스스로 낫게 되거나 아주 작은 약물치료나 운동을 통해 평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법이지요.

 

마음의 상처, 삶의 상처와 아픔도 마찬가지일 겝니다. 스스로 저절로 치유되거나 치유 할 수 있는 것들이 태반인 것이지요. 누군가가 꼭 도와주거나 치료해 주어야만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지요.

 

그런데 “힐링”이라는 말과 유행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다보니 마치 “스스로”라는 기능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답니다.

 

육체가 건강한 사람일수록  스스로 치유되거나 치유하는 기능이 잘 이루어지듯이, 영혼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일수록 스스로  자신의 심성을 다스릴 수 있을겝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픔이 있습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을 피해 갈 생명체는  없습니다.

 

힐링이라는 말로 티낼 필요도 없거니와 힐링이라는 말에 의지할 까닭도 없습니다.

특히나 이즈음 호들갑스러운 종교에 이르면 더욱 그렇습니다.

 

스스로의 소리와 움직임을 잘 보고 들을 수 있다면 힐링의 세상은 늘 열려있는 것일 겝니다.

제 스스로의 소리도 듣지 못하는 주제에 남을 힐링한다고 깝칠 일는 더더우기 아닙니다.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은 스스로 하는 일입니다.

 

***뱀발(蛇足) :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기능과 힘을 절대자가 은혜로 주었다고 고백하고 감사한다면 그게 바로 종교 아닐까요? 강요하거나 중간개입자를 상정하는 일 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