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 이들에게 길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하게 마련이다. (Those who do 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 미국의철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가 한 말입니다.

또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씀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나아가 선생은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정신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라는 교훈으로 늘 역사에게 오늘을 묻고 내일을 설계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E. H. Carr(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가 과거의 어떠한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선택할 때 존재할 수 있다.”라고 명징한 대답을 내민 바 있습니다.

저는 이즈음 뜻이 맞는 몇몇 사람들과 역사공부를 함께 하려고 시간을 좀 내고 있습니다. 조금 뜬금없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다.

4-16a세월호참사 일주기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결성된  4.16연대가 ‘이젠 인권을 이야기 할 때’라며 제안한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뉴스에서 이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바로 “뜬금없이 이게 뭐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사람 살아가는 모든 모습들을 다 담아낼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그릇에 “세월호”를 주어담는다는 게 적절한 것인가?라는 스스로의 물음 때문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라는 말조차 피로감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즈음에 이런 접근이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습관처럼 이런 물음을 들고 성서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성서가 제가 준 응답은 에스겔(에제키엘) 34장에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야훼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너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목자들에게 그들을 쳐서 이르는 내 말을 전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망하리라. 양을 돌보아야 할 몸으로 제 몸만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아! 너희가 젖이나 짜 먹고 양털을 깎아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 먹으면서 양을 돌볼 생각은 않는구나. 약한 것은 잘 먹여 힘을 돋구워 주어야 하고 아픈 것은 고쳐 주어야 하며 상처입은 것은 싸매 주어야 하고 길 잃고 헤매는 것은 찾아 데려 와야 할 터인데, 그러지 아니하고 그들을 다만 못살게 굴었을 뿐이다.

양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 온갖 야수에게 잡아 먹히며 뿔뿔이 흩어졌구나. 내 양떼는 산과 높은 언덕들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내 양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 다니는 목자 하나 없다.

그러니 목자들아, 이 야훼의 말을 들어라. 내가 맹세한다. 나의 양떼는 마구 잡혀 갔고, 나의 양떼는 목자가 없어서 들짐승에게 찢겼다. 그런데도 내가 세운 목자들은 나의 양떼를 찾아 다니지 않았다. 제 배만 불리고 양떼는 먹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목자들아, 이 야훼의 말을 들어라.

주 야훼가 말한다. 목자라는 것들은 나의 눈밖에 났다. 나는 목자라는 것들을 해고시키고 내 양떼를 그 손에서 찾아 내리라. 그들이 다시는 목자로서 내 양떼를 기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양떼를 그들의 입에서 빼내어 잡아 먹히지 않게 하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보아라. 나의 양떼는 내가 찾아 보고 내가 돌보리라.’> – 에스겔 34 : 1 – 11, 공동번역

바로 “존엄과 안전 지대에서 내 팽개쳐져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위로이자, 그렇게 “사람들을 내 팽개친 권력자들”에 대한 응징의 소리였습니다. 나아가 신의 직접통치를 선언하는 대목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본 응답이었답니다.

그리고 이제  사람 살아온 모습 곧 역사에 묻기로 한 것입니다.

혼자 역사 앞에 서서 묻기보다는 여럿이 함께하는 일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평소 뜻이 엇비슷한 이들과 함께 나선 일입니다.

어디까지가서 어떤 응답을 얻을런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행여 헛수고가 되도라도 뜻을 새길 수는 잇겠다는 생각입니다.

‘인권’이라는 큰 그릇 속에서 지금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세월호에 얽힌 피맺히고 한맺힌 소리들이지만 언젠가 그 그릇을 꽉 채워 세상을 향한 큰 울림이 되는 날을 그리며 역사에 묻고자하는 것입니다.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함이요, 미래를 열기 위함이요, 세월호를 역사적 사실로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초복(初伏)과 감사

내일이 초복이랍니다. 여름 한철 복더위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제가 사는 델라웨어 날씨는 얼추 서울과 비슷하답니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고 봄, 가을은 짧고, 바다가 가까워서 여름철 습도도 높은 편이랍니다.

이즈음은 찌는 날씨의 연속이랍니다.

cats그래도 복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가을이 이미 오기 시작했다는 전주이기도 합니다. 초복은 하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미 낮은 밤에게 쫓기기 시작했다는 말이고요, 말복이 지나면 입추이니 여름의 기승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몸보신용 음식들을 챙기는 오랜 관습들이 있지요. 삼계탕에서 시작해서 보신탕에 이르기까지 사람에 따라 기호에 맞는 여름 보양식들을 찾기 마련인 때입니다.

제가 사는 곳에도 사람들이 이맘때면 즐겨찾는 음식이 있답니다. 바로Maryland Crabs 또는Blue Crabs이라고 부르는 게찜요리랍니다.

요리방법이라야 별게 없답니다. 살아 꿈틀거리는 게들을 찜판에 올리고 그 위에old bay seasoning이라는 양념을 듬북 뿌려 찜통에 쪄낸 것입니다.

마침 모처럼 아들 딸과 함께 식사를 나눌 시간이 있어(이젠 아이들이 큰 맘 먹고 동시에 이렇게 시간을 내어 주는 일은 매우 드물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게찜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답니다.

또 한해의 복날들을 건강하게 보내시는 아버님과 어머니께서 저희 부부와 아이들에게 주신 말씀이랍니다.

“그저 감사하며 살아라.”

델라웨어 사람들을 위한 에모지(이모티콘)

제가 사는 델라웨어 지방 소식지인 News Journal에 재미있는 기사가 있어 소개드립니다.
B9317996251Z.1_20150709151305_000_GM0BA7K6M.1-0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나 이메일에 ‘이모티콘(emoticon)’ 대신 얼굴 표정이나 사물을 단순화한 아이콘인 ‘에모지'(emoji)라는 것이 있지요.

델라웨어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에모지를 만든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하는 물음과 함께 글쓴이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들을 소개하는 기사랍니다.

델라웨어라는 지역 특성 및 지역 사람들의 특질을 잘 나타내는 상징을 꼽아보자는 것이지요.

글쓴이가 델라웨어 사람들에게 필요한 에모지로 꼽은 내용들이랍니다.

  1. old bayOld Bay – 빨강 파랑 노랑색을 주조로 한 양념통에 담긴 양념 이름입니다. Delmarva(델라웨어, 매릴랜드, 버지니아)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는 것이지요. 주로 해산물(게, 새우 등등) 요리에 사용한답니다. 제 여름 보양식인 게찜에 많이 들어가는 양념입니다.

biden2. Joe Biden – 델라웨어가 낳은 인물이지요. 현 미국 부통령입니다.

 

lifeguard3. Lifeguard – 바다가 감싸고 있는 지역 특성과 여름철을 감안해 꼽은 듯. 물놀이에 필수적인 안전요원과 안전을 강조한 것이지요.

shopping bag4. Sopping bag – 델라웨어주는 판매세가 없는 곳이랍니다. 그래 tax-free shopping을 강조한 것이지요.

seagal5. Seagull – 역시 바다로 쌓인 특성상 흔히 볼 수 있는 꼽은 갈매기입니다. 제 가게가 있는 쇼핑센터도 종종 갈매기 떼들이 몰려와 주차지역을 덮곤 한답니다.

scrapple-header-ll6. Scrapple – 델라웨어 사람들의 흔한 아침메뉴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크래플은 잘게 썬 돼지고기, 야채, 옥수수 가루로 만든 튀김 요리랍니다. 냉동 식품으로 판답니다. 물론 저는 안 먹지요. 차라리 콩나물 넣은 라면을 먹지요.

imagesC7SXMPX87. Marijuana leaf – 델라웨어가 마리화나 애용자들에게는 천국이 될 듯합니다. 약용으로  쓰는 것은 물론이고, 오는 12월부터는 개인당 1온스의 마리화나를 소지하거나 사용하는 게 합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귀 솔깃 하신 분 있으려나?

bluehen8. Blue Hen – 델라웨어주의 상징 동물이자  University of Delaware 스포츠 팀들의 상징이랍니다.  Go! Blue Hen! 아주 흔한 스티커랍니다

capture-20150709-1739209. States – 워낙 주의 크기가 작다보니 조금만 달리면 이웃한 펜실바니아, 뉴저지, 메릴랜드가 된답니다.  때론 미국인들도 모르는 주이기도 하답니다 델라웨어를 크게해서 알리는 에모지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horsecrabs10. Horseshoe crabs – 이거 되게 징그러운데 델라웨어 해변가에 널려있답니다. 자그마치  기원이450 million years ago(4억 5천만 년 전)으로 올라가는 바다생물이랍니다.

부질없음에…

“부질없게도 인간들은 지상의 현상보다 천체의 현상을더 중요하게 여긴다. 마치 자신의 일에 신경쓰는 것보다 이웃의 일에 신경쓰는 것이 더 존경할 만하고 고귀한 일이라는 듯이.

그러나 우리들이 풀어야 할 매듭은 별들의 저 교차점이 아니다.

Men attach a false importance to celestial phenomena as compared with terrestrial, as if it were more respectable and elevating to watch your neighbors than to mind own affairs.

The nodes of the stars are not the knots we have to untie.”

civil지금으로부터 156년 전 매사츄세스 콩코드 강변 숲속에서 당시 마흔 두살이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가 써서 남긴 일기 중(Journal 1859. 10. 16.) 한 대목입니다.

오늘 제 고민은 별들의 교차점도 아니고 천체 현상에 대한 것도 아니며 딱히 이웃의 일만도 아닙니다.

제가 살아가는 오늘 현재의 고민일 뿐입니다.

분명 제가 발딛고 서있는 이 땅, 사람사는 일에 대한 문제임에도 많은 경우에 안드로메타의 일을 갖고 헛꿈 꾸고 있다는 소리를 듣곤한답니다.

따지고보면 쏘로우의 글들 대부분이 사실 별들의 교차점에 대한 이야기들이랍니다.

때론 “부질없음”이야말로  진리에 닿는 지름길 일수도.

우린 여전히 미국인일까?

연휴로 맞는 주일 아침, 느긋한 마음으로 신문을 훑다가 눈에 들어 온 기사 하나입니다.

7-4-15제가 사는 동네 신문인The News Journal의 고정 기고가인John Sweeney라는 이가 쓴 “우린 여전히 미국인일까?(Are we still Americans?)라는 글입니다.

글쓴이는 해마다 맞는 독립기념일이면 동네마다 퍼레이드를 벌리고 불꽃놀이를 즐기고, 더러는 해변가를 찾아가 여름을 만끽하는 연휴를 보내곤 하는 모습은 올해도 여전하다며 이 글을 시작한답니다.

그런데 매해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고 있는 것들이 있답니다. 이 날이 되면 펄럭이던 성조기의 빨강, 하양, 파랑 색깔은 거리마다 자동차나 침대 등의 광고판에서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었고, 성조기는 더 이상 애국을 상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단 그 뿐 만이 아니라 정치체제도 흔들리고 있고, 어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은 농담거리가 되었고, 미국의 역사를 아는 이들도 드물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정치참여도도 점점 낮아지고 있고, 정치적 견해들 역시 자기 쪽에만 유리한 방향으로 주장되고 있거니와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려는 모습은 찾을 수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정치적 좌, 우파 세력들은(미국에 좌, 우파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각기 자신들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조건들이나 법안들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고치려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글쓴 이는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나라에서 미국인으로 살려고 하는 것일까?( Do we still make Americans in this country?)”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이런 해법을 제시합니다.

미국이 독립을 이루었던 세대로부터 10세대가 흐른 이 싯점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1987년 교육학자Eric Donald Hirsch가 주장한 “문화 이해 능력을 고양하는 일 또는 문화 문맹 퇴치(Cultural Literacy)”라고 말합니다.

지나간 미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 땅 미국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미국인들 끼리의 서로 다른 문화, 관습, 언어 등을 서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미국이 여전히 미국이 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주일 아침 John Sweeney의 주장을 읽으며 “어디 미국 뿐이랴”라는 생각과 함께 어느 누가 먼저가 아니라 제 자신이 자신됨을 돌아보는 일에서부터 이웃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7-4-15a

어제 저희 동네에서 있었던 퍼레이드 사진이랍니다. 이 길은 매일 제 출퇴근 길이기도 하답니다. 사진 속 아이들은 제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 학생들인데, 저런 대열 속에 있었던 제 아이를 찍으려고 사진기 들고 기웃거렸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참 빠름니다. 세월이.

 

게으른 연휴

연휴를 맞아 하루 푹 쉽니다.

쉰다는 게 별거인가요? 그저 천천히 시간을 맞는 것이지요.

0704152113d저녁상을 물리고 앉아있노라니 밖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작했네!”하는 아내의 소리에 창밖을 내다 봅니다. 동네 4th July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답니다.

집 바로 뒤에 있는 공원에서 해마다 오늘이면 하는 연례행사이랍니다.

미국 어디서건 낮에는 퍼레이드, 밤에는 불꽃놀이로 독립기념일을 기리는 동네 행사지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함께 나가 퍼레이드도 보고, 불꽃놀이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구경하곤 했답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커서 그 퍼레이드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보러 달려 나가곤 했었는데….

이젠 다들 컷다고…

아내와 둘이 밥먹고 앉았다가 폭죽소리에 놀라, “아~ 오늘이구나!”한 것입니다.

창문밖을 바라보다가 앞뜰로 나가 사진 몇 장 찍고는 “아이고, 모기 달려드네…”하며 들어왔답니다.

쉬는 방법도 이젠 게을러집니다.

좋게 표현하여 느긋함이랄지…

뉴스를 보니 Lewis Beach라고 델라웨어에서 제법 유명한 해변 도시에서 있었던 오늘 행사 영상이 있어 여기에 덧붙인답니다.

바보였던 한주간

바보였던 한주간이었습니다. 정말 바보였답니다.

photo_2015-06-30_22-18-39딱 일주일 전 낮에 일어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이 블로그의 모든 한글들이 “??????????” 이렇게 물음표로 다 바뀌어 있었답니다.

처음에는 뭔가 잘못되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저절로”로 다시 원상복귀될 수도 있겠지 했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이거 어쩌지?”하는 걱정과 함께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해보았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한편으로으로는 아쉬운 맘이 넘쳐났지만 그래도 나이 값 하노라고 “뭐 산다는 게 다 그렇지…. 잊을 건 잊고, 새로 시작하지 뭐…”하는 다짐을 놓았답니다.

그런데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 붙들고 씨름을 해 본 것이지요.  분명 “????????????”라는 표시들이 남아 있는 한 이걸 다시 한글로 돌려 놓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일주일 동안 다른 일들을 하면서도 머리 속에는 내내 한가지 생각 뿐이었답니다. 바로 “망가진 블로그 원상 복구 시키기”였습니다.

그러다 오늘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블로그 호스팅을 해주는 회사에게 상세한 문의 이메일을 보냈답니다.

막바로 24 이내에 질문에 대한 응답을 해 주겠노라는 회신과 함께 세군데 사이트 링크들을  소개하면서 스스로 찾아서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 주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낮에 틈틈이 호스팅 회사가 소개한 링크들 특히 포럼에 등록된 유사한 경험들을 읽다가 드디어 해결책을 찾았답니다.

알고보니 일주일 전 한글이 다 깨지는 사고가 나자마자 제가 생각했던 바로 그 곳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데… “설마 그렇게 쉽게?”라는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곳에 해결책이 숨어 있었답니다.

참 바보 같은 한 주간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바보 같은 일 때문에 얻은 것이 엄청 많답니다.

헤매느냐고 여기 저기 묻고 찾아다니다 보니 배운 게 엄청 많다는 것이 첫째고요, 둘째는 반드시 기록을 보관해 두어야만 한다는 깨달음이고요, 셋째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길은 있다는 믿음이고요 – 36계 줄행랑도 비책 가운데 하나이므로 – 그리고 무엇보다 해결한 뒤에 느끼는 이 만족과 기쁨은 아흔 아홉마리 양을 (야수들이 덤빌 수도 있는 무방비 상태에) 내버려두고 한마리 양을 찾아 나섰다가 얻은 기쁨을 이야기한 예수의 비유만큼이나 큰 것이랍니다.

바보짓 끝에 얻은 기쁨이랍니다.

또 다른 시작

<항상 침착하고 차분하게만 대처한다면,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속에서도 그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If we will be quiet and ready enough, we shall find compensation in every disappointment.” >  –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이렇게 또 다른 시작을 맞게 될 줄은 전혀 예기치 못했답니다.

며칠 전 일터에서 급작스럽게 처리해야할 일들이 있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머리 좀 식힌답시고 제 개인 블로그(http://www.for1950s.com/)에 들어갔답니다.

지난 삼년 오개월여 제가 일기처럼 글을 남기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글들이 – “???????” – 바로 이런 물음표시로 바뀌여져 있었답니다. 당시에는 뭔가 일시적으로 잘못되었거니 했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원상복귀 되려니 하며 덮어 두었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다시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여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아차 싶어서 이런저런 복구작업을 해 보았답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다가, 제 능력 범위를 벗어난 일인 듯하여 도움의 손길을 구했답니다.

손길을 청했던 이에게 돌아 온 대답은 “저 역시 능력 밖입니다.”였습니다. 그래도 이 양반이 크게 도움을 주었답니다. 두어가지 택할 수 있는 방법 제시와 함께 글들을 건져 낼 방안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랍니다.

처음에는 정말 안타깝고 아쉰 생각 뿐이었답니다. 거의 삼년 반 동안 썻던 일기가 몽창 날라가 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그걸 따로 저장해 놓치 않은 자책이 아주 심했답니다.

어제 오늘, 그 양반이 가르쳐 준 방법으로 400개가 넘는 글들 가운데 거의 95% 이상을 건져냈답니다.

블로그 복구작업은 계속될 것이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새 일기장을 하나 만들었답니다. 바로 이 블로그입니다.

복구작업과 함께 새 일기를 여기에 이어 쓰려고 합니다. 만일 옛 일기장 복구가 된다면 두 개를 합치려 합니다.

이 일기장 주소인  http://www.delhanin.com/ 의 delhanin은 제가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던 지난 1999년 이래 오늘까지 저의 다른 이름입니다. 델라웨어에 사는 한인을 줄여 본 말이랍니다.

이제 새 일기장을 꾸밉니다.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단풍나무 숲이나 길게 뻗은 소나무 가지 밑으로 비를 피하게 되었을 때도, 그 후미진 곳을 세밀하게 관찰한다면 그 잎사귀나 나무껍질 속, 혹은 그 발 아래의 버섯에서 새로운 경이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리라.>  – 역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입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을 찾아준 분들께 드리는 인사치고는 너무 밋밋한 것 같아 사진 한장 덧붙입니다. 엊그제 받은 사진이랍니다. 일년 전쯤 어느 예식에 참석했다가 누군가가 찍은 것을 엊그제 저희 부부에게 보내주신 것이랍니다.

2015-06-26

일기란 이렇게 까맣게 잊어버렸던 순간을 되뇌이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오늘, 지난 글들을 건져내며 느껴보았답니다.

**** 사족 : 그렇게 헤매기를 딱 일주일. 오늘은 6월 30일입니다. 일주일만에 망가졌던 블로그를 다시 복구시켰답니다.  이 큰 기쁨이라니!

delhanin.com 이라는 주소 하나는 덤으로 얻었고요.

맑은 바람 한 점

21950_15985_3323성서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무언가에 도전하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힘이 있지만, 내 삶의 실체를 파악하고 깊게 침잠하여 나를 찾고자 할 때는 불경(佛經)이 때론 그 도구가 되곤 합니다.

특히 선가(禪家)에서 애지중지하며 선의 진수라 일컫는 벽암록에 기록된 위대한 선사(禪師)들의 법어(法語)들과 게송들을 읽노라면 삶의 자질구레한 걱정들을 건듯 부는 바람에 실려 훅 날려보내는 지경까지도 이르는 것이지요.

성서와 함께 벽암록(碧巖錄)이 제 집 해우소(解憂所)에 놓여 있는 까닭입니다.

거기에 있는 가르침이랍니다.

풍혈(風穴) 연소화상(延沼和尙:896-973)의 화두(話頭)에 설두선사(雪頭禪師)가 달아 낸 노래입니다.

<시골노인 이맛살 찌푸린 것은 그대로 내어 두고/ 삶에 찌든 중생을 위해 나라나 튼튼히 하시게/ 나라를 위해 꾀를 내고 싸우던 장수들은 다 어디 갔는고/ 만리를 떠도는 맑은 바람은 알고 있으리>

수만년 이래 맑은 바람 한 점은 늘 불고 있었답니다.

어떤 하루

스무해 가까이 사는 동네인데도 낯선 곳들이 많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니는 습관 때문이지요.

0618152019집에서 채 3분도 안걸리는 곳에 seafood restaurant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답니다. 평소 거의 드나들지 않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거니와, 이따금 오가며 간판을 보면서 fish market인줄만 알았지 음식점을 겸하고 있는 줄은 몰랐었답니다.

오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함께 들려 보았답니다.

생굴을 비롯한 각종 찐 해산물이 주종인 선술집 같은 분위기였답니다.

손바닥처럼 환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네에서 전혀 생각치 못했던 분위기를 만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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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른 두해를 함께하며 속속들이 환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아내와 모처럼 낯선 분위기에서 맥주 한잔으로 조촐하게 하루의 기억을 쌓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