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과 중산층

월요일이지만 아침을 느긋하게 맞습니다. 늦잠의 여유도 누려봅니다. 노동절(Labor Day)아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자영업자 주제에 누리는 혜택이야 전혀 없지만, 월요일 아침을 여유롭게 맞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 감사랍니다.

커피 한잔과 함께 훑어본 뉴스에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있답니다. 저희 동네 신문인 The News Journal에 실린 소상인 전문 리포터Scott Goss 의 “델라웨어주 노동조합원 숫자 줄다”라는 기사입니다.

지난해 델라웨어주 고용노동자 10명 가운데 1명 정도가 노동조합 가입자인데, 이 수치는 지난 25년 이래 최저치이고 10% 미만으로 떨어진 첫번째 사례랍니다. 전체 수치로보면 델라웨어주내에는 38,000명에 조금 못미치는 조합원 숫자인데 이 역시 1989년이래 최저수치랍니다.

오늘 오후에 윌밍턴 시내에서 벌어질 노동절기념 퍼레이드를 이끌 노동조합 리더인Samuel E. Lathem이 하는 말입니다.

635771607191429163-A1-MAIN-090114-LaborDay-ERV002

“오늘날 (노동조합이 필요한) 블루칼라의 정의는 새롭게 내려져야한다. 주지사를 비롯한 정치행정관료들은 그들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말하지만, 그 일자리들의 대부분은 아마존이나 월마트 등의 저임금 서비스업에 치중되어있고, 그 일자리들은 불만족스럽고 블안정한 것들이다.”

Samuel E. Lathem의 말은 노동조합을 이끌었던 전통적 개념의 일자리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런 문제들은 비단 델라웨어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 전국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실제 미국 전체 노동조합 가입자 비율은 11.1%로 최고 정점을 찍었던 1950년대의 30%와 그리고 20%대를 유지했던 1980년대에 비하면 크게 위축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한때 건강한 미국의 중추 역할을 했던 중산층들은 바로 노동조합을 이끌었던 생산직 노동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임금을 바탕으로  일일 8시간 노동, 주말휴무, 아동노동법, 최저임금제, 고용 의료보험 등 이루어내며 오늘에 이르렀지만, 지금의 변화는 노동조합이 할 일들이 축소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종사하는 일자리들에서 전통적인 노동조합이 할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록 현재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이즈음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이 오늘날의 노동조건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쟁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젊은이들은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착취, 그들이 공정한 임금을 누리지 못하는 현상, 그들이 만드는 노동의 가치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푸념하지만 이즈음 젊은 세대들에게는 공염불일 뿐라는 점입니다.

실제 델라웨어주내 노동 일자리의 변화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90년 이래 지난 25년 사이에 자동차 생산라인과  Dupont회사의 나이론 제조업체 생산라인의 약 1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델라웨어 주 전체 인구가 100만이 안된다는 점에 미루어 보면 이 수치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노동조합들이 침체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공무원노조, 교원노조 등 공공노조들의 조직력과 확장력은 더욱 커져가고 있답니다.

그 까닭을 설명하는 대학교수의 말이 재밌습니다. “자동차업 같은 노동집약적인 산업들은 보따리 싸서 타주나 다른 국가로 이동하면 되지만, 주정부나 학교 등은 이주 불가능하기 때문에….”

철밥통을 위한 결속력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랍니다.

이 기사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대목은New Castle County Executive(뉴캐슬 군청장) Tom Gordon의 말입니다.

“노동조합이 미국의 중산층을 형성했지만, 더 이상 미국의 중산층은 없다. The union built the middle class in the country, but that middle class doesn’t exist anymore.”

바로 이 지점에서 갖는 질문 하나랍니다.

모든 정치인들은 “중산층을 위하여!”라고 말한다는…

영화 “다이빙 벨”을 권하며

기독교 신학에 있어 미국의 위치는 그리 내세울 정도가 못됩니다. 물론 신학자들의 명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지요. 그런 가운데 몇몇 명함을 내놓을만한 분들 가운데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 1892. 6. 21.- 1971. 6. 1.)가 있습니다.

그는 그가 쓴 책  <인간의 본성과 운명, The nature and destiny of man>에서 “교만(pride)”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답니다.

<사람의 교만(pride)에는 네가지 측면이 있는데 첫째는 권력의 교만, 둘째는 지적인 교만, 셋째는 도덕적 교만, 넷째는 종교적 교만>이라고 한 것이랍니다.

이즈음 제가 느끼는 사회적 현상은 바로 이런 교만들이 극에 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특히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드러내는 교만 가운데 하나이지요. 자신이 알고 있는 또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만 진리라고 생각하는 교만으로 하여 남의 의견이나 남의 생각은 듣지 않으려하는 태도야말로 니버가 말한 교만의 집합체가 아닐까 한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가지 사건을 이해하려고 할 때, 일테면 똑 같은 하나의 사건을 보도하는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 오마이 때로는 일베와 고발뉴스 등을두루 살핀 뒤에 제 생각을 가름한답니다.

이 땅의 뉴스도 마찬가지랍니다. Fox 와 Washington Post와 함께 NewYork Times와 CNN과 동네 뉴스를 보고 나서야  생각을 가름하곤 하는 것이지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직도?”라고 묻는 분들을 위하여, 니버목사가 적시한 교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영상 하나 소개 드립니다.

보시기 전과 후의 생각에 차이가 없어도, 아니 본래 생각하셨던 “그래서 왜 아직도인데?” 하셔도, 저는 절대 그게 교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니버목사가 말한 교만의 가장 큰 문제이자 죄란 듣지 않고 보지 않고 자신에게 갇힌 상태를 말한답니다. 그래 한번 보시라는 뜻으로 권해 드린답니다.

quote-the-first-duty-of-love-is-to-listen-paul-tillich-29-47-88

세월호를 다룬 <다이빙 벨>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다 보시고 난 후, “좌파들이 꾸며 만든 이야기”라고 하셔도 저는 당신의 생각을 존중할 것이랍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어제 필라델피에 있는 작은 교회당 Ambler Mennonite Church에서는 서른여명의 한인들이 둥그렇게 둘러 앉아 약 세시간여에 걸쳐 도란도란 서로의 가슴에 쌓였던 말들을 풀어 내었답니다.

그들 가운데는 필라 인근에서 뿐만 아니라 멀리 뉴욕, 뉴저지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답니다. 그렇게 둘러앉아 이어진 이야기들은 정해진 시간만 아니었다면 밤조차 새울만한 분위기였답니다.

그 가운데 한분께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이번 주초에 버지니아에서 있었던 TV 생방송중에 일어난 총기사건은 이 땅에 사는 모든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방송국이 커버하는 지역의 시청자들은 실시간으로 그 사건의 현장을 지켜보았으며, 모든 미국인들이 그 사건 현장의 영상을 볼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뉴스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실시간으로 300명이 넘는 사람의 생명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것도 여러날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비록 500일이 지났다고 하지만 그 충격적인 모습의 잔상은 제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엊저녁에 필라세사모가 주최한 모임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행사” 자리였습니다.

0829151922

그리고 오늘8월의 마지막  주일 아침입니다. 멀리 500일을 돌아볼 것도 없이 8월 한달 동안의 뉴스 타임라인들을 되돌려 훑어봅니다.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현장들에 대한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서 하루 한시도 건너 뛰지 않고 어김없이 이어진 한달이었습니다.

더더군다나 다른 사람의 인격과 존엄을 “나” 또는 “우리”라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짓밟고 망가트리고, 온갖 수모를 가하는 현장들은 오늘 이 시간에도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내는 2015년 8월 한달 내내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이 있는 세상을 꿈꾸며 애를 끓이고 도전하며 기도하는 무엇보다 작은 것 하나라도 그 일을 위해 실천하며 살고자하는 정말 평범한 사람들은 넘쳐난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런 평범한 모든 이들에게 온몸으로 드리는 박수와 함께 드리는 글입니다.


 

8-30

팔월 마지막 주일 아침입니다. 하루 남은 팔월의 달력을 보면서 이름이 팔월(August)인 소년 이야기를 드립니다.

이미 읽어서 잘 알고 계신 분들도 많겠지만 R.J. Palacio가 쓴  동화소설  Wonder의 주인공 이름입니다. 이미 뉴욕 타임즈 선정 베스트셀러였고 2015년 마크 트웨인 상을 비롯한 여러 수상도 한 이 책은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답니다. 한국에서는 “아름다운 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10살짜리 August는 자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내 이름은August고요, 제 생김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답니다. 제 생김새에 대해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시든 그보다 추한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선천적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August는 열살이 되기까지 스물 일곱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누구나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이면 악몽을 꿀만큼 기이한 얼굴을 지닌 소년이랍니다. 하지만  얼굴 생김새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지극히 평범한 10살짜리 아이랍니다.

이 소설은  열살짜리 August가 보통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처음으로 들어가서 일년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단지 얼굴이 이상하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August를 평가하는 사람들의 편견과 학교아이들의 끈질긴 괴롭힘들을 불굴의 의지와 가족의 사랑, 친절을 베푸는 친구의 우정으로 극복하는 이야기랍니다.

이야기의 끝부분에 이르러 August는 이런 독백을 한답니다. “누구나 다 기립박수를 받을만 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세상을 헤쳐나가며 극복하기 때문에…”

팔월을 보내면서 이 달에도 여전히 듣고 볼 수밖에 없었던 슬프고, 아프고, 안타까운 세상소식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아름답고 희망찬 9월을 맞는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 보내는 기립박수를 보낼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It is the morning of the last Sunday in August. Looking at the calendar of August which has just one more day,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a story about a boy named August.

As many of you may know well, it is the name of the main character in the children’s novel, “Wonder,” written by R. J. Palacio. It was a number one book on the New York Times Best Seller List and it won several awards, including the 2015 Mark Twain Award. It was translated and published with a title, “아름다운 아이 (A Beautiful Child)” in Korea. It was loved by many people in Korea, too.

August, the main character and ten-year-old boy, introduces himself like this:

“My name is August. I won’t describe what I look like. Whatever you’re thinking, it’s probably worse.”

August was born with a rare medical facial deformity. Even after twenty-seven surgical operations, his face still looks strange enough to make those who see his face have a nightmare. However, except for his appearance, he is normal like any other ten-year-old kid in every respect.

This novel describes what August, who had been homeschooled until then, experienced during the first year at a prep school.

It is a story about how August overcomes the prejudice and distress due only to his facial deformity with his own unyielding will, love and support from his family, and warm friendship.

Almost at the end, August said to himself, “Everyone deserves a standing ovation because we all overcometh the world.”

I wish that all of us will give a standing ovation to ourselves as we enter September with a cheerful and bright mind, even though we could not avoid many sad, agonizing and deplorable incidents and news around us and in the world in August.

from Young Kim

아니, 아직도?

‘세살버릇 여든간다.’, ‘천성은 못고친다.’는 말들은 사람의 성품이나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음을 표현한 예들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어릴 때부터 지녔던 못된 습관들과 성품들이 몸에 베어서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허나 예외없는 법칙이 없듯, 나이들면서 변하고 바뀐 것들도 있다. 일테면 ‘옳고 그름을 다투는 일’보다는 ‘같고 다른 것을 구별하는 일’을 우선하는 버릇들은 나이들어 바뀐 아주 좋은 예이다.

젊어서는 사물이나 사건 또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을 ‘옳고, 그름’이라는 잣대에 두었다면(물론 그 판단대로 살지도 못했지만) 인생의 어느 지점을 지나면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그 판단기준을 ‘같고, 다름’에 두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옳다, 그르다’의 기준으로 세상사를 바라보면 삶의 긴장감에서 오는 맛을 느낄 수 있지만, 자칫 삶의 여유를 놓칠 수도 있다. 반면에 ‘같다, 다르다’의 기준으로 세상사를 바라보면 삶이 품을 수있는 여유를 한껏 넓힐 수는 있지만, 자칫 삶의 가치를 잃을 수도 있다.

어느덧 나이들어 ‘세상사 다 좋은 게 좋은거지라며 사니 참 편하더라’는 말이다. 이런 늘늘한 내 삶의 여유를 깨트린 것은 바로 바뀌었다고 생각했던 내 성품이었는데,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행사” 포스터를 보는 순간이었다.

미루어 짐작컨대 필라 인근에 사는 한인들중 이 포스터를 보는 순간 “아니, 아직도 세월호?”하시는 이들이 태반을 넘어 대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까싶다. “그게 언제적 이야긴데… 책임질 사람들 다 책임졌고… 보상금 다 주었고… 그만큼 국가가 애썻고… 더더군다나 놀러가다가 일어났던 사건인데… 그만큼 했으면…”이라는 말끝에 “이래저래 사는 일도 바쁜데… 아니, 아직도 세월호?” 라는 모습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헤드뉴스를 장식하는 기사들이 하루도 아닌 시간에 따라 바뀌는 세상에서 500일이나 지난 사건, 빨리 잊혀지기를 바라는 어둡고 아픈 사건을 구태여 자꾸 꺼집어내는 것은 분명 피곤한 일이므로 그 당연함에는 설득력도 더해진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만일, 만일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하나도 책임을 지지 않았고, 국가가 배보상금을 한푼도 주지 않았고, 국가는 사고원인과 책임을 감추기에 급급했고, 사고의 원인은 물론 책임자를 가리는 일을 방해했고, 향후 유사한 사건사고를 대비하자는 목소리마저 외면했다면…” 그게 언제적 이야기냐고 반문해서는 안되는 바로 오늘의 문제가 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나름 삶을 늘 성서에 묻고사는 예수쟁이라고 내세우며 살고 있는 처지이므로 바로 이 지점에서 던져지는 질문으로하여,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행사”에 한번 기웃거려 보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가족을 잃은 아픔을 안고 사는 이들의 삶은 원상회복되어야 마땅한 일임에도 그들의 신음소리가 외면받고, 그들의 삶이 소외받는 처지로 내몰리는 지경은 바로 성서가 말하는 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무릇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거나 같을 수도 있거니와 처지와 환경에 따라 옳고 그름의 기준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소외되었다고 아픔을 호소하는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일은 옳고 그름이나 같고 다름을 떠나 사람이기에 당연히 흉내라도 내보아야 마땅한 일일 것이다. 나아가 소외되는 현장에 사람이 있는 한 “아니, 아직도?”라는 물음 보다는 “아니 어떻게?”라는 물음이 우선해야 할 일이다.

37c176e6-a543-4ef9-a148-72dc1baafc36

경찰들– 몸부착 카메라 장착

올들어 Ferguson, Missouri, Baltimore 등지에서 일어난 사건들 때문에 전국 각지의 경찰관들이 곤욕을 치루고 있지요. 비무장인 사람들을 향해 경찰관들이 과잉대응을 했다는 비난이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제가 사는 델라웨어주 New Castle County (군,郡) 경찰들이 몸에 부착하는 카메라를 장착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police-camera

New Castle County Police Chief (뉴캐슬 군 경찰청장)인  Elmer M. Setting은 지난 주부터 시험적으로 8명의 경찰관들이 이런 몸에 부착하는 카메라를 달고 임무 수행을 했다고 발표했답니다.

또한 Gordon군청장은 “이 카메라들은 경찰관들이 임무수행하는데 있어 그 임무수행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투명성을 더해 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향후 대당 $1,000이  소요되는 이런 카메라는 전군(郡)은 물론 주(州)내 모든 시(市)와 주(州) 전체 경찰관들에게 확대하여 지급될 것이라고 합니다.

경찰관들에 대한 자기검열성 짙은 이런 카메라 부착 시행에 관한 뉴스에 달린 댓글들은 긍정과 부정적 시각들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어쨋거나 위임받은 권력 행사는 늘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진일보가 아닐까합니다.

세월

“벌써 일년이 지났나?”

오늘 오후 John네 집으로 향하며 아내에게 던진 말이랍니다. 해마다 이 맘때 즈음에 열리는 John네 가든파티에 갔던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일년 전 일이 되고 말았답니다.

거의 스무 해 가까이에 이르는 연례행사인데 해마다 그 모습은 힘이 빠져 간답니다. John 부부도 어느새 칠순을 넘겼고, 참석자들 대부분이 그 또래 연령대이다보니 해마다 숫자도 줄어든답니다.

0726151504햄과 소시지를 굽고 potluck 음식(손님들이 한 접시씩 해온 음식)들과 맥주를 나누며 이야기를 즐기는 파티인데  참석자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다보니 웬지 모르게 해마다 분위기가 쳐져가는 느낌이 드는 것인데, 오늘은 조락한 종가집 잔치처럼 그 느낌이 더했답니다.

0726151615

그래도 호스트 노릇을 하느랴고 분주한 John 내외의 모습을 바라보며 파티가 몇 년은 더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답니다.

그나마 제게 큰 웃음을 안겨준 할아버지(?) 한 분과의 대화는 큰 기쁨(?)이었답니다.

할아버지 : “어디서 왔니?”

나 : Hockessin  Delaware(제가 사는 동네 이름인데 델라웨어주이고, John네 집은 메릴랜드주에 있기에)

할아버지 : 아니, 니 모국?

나 : 한국

할아버지 : 여기(미국에) 언제 왔는데?

나 : 한 삼십년 됐나?

할아버지 : 그럼 한 열살 때?

나 : 나 지금 예순 넘었거든….

할아버지 : Are you kidding me?!

크크거리며 좋아하는 내게 아내가 던진 말이랍니다.

“그 할아버지 사람보는 눈이 진짜 할아버지네!”

0726151616a

도둑질에 대하여

대왕 알렉산더(Alexaner)가 붙잡혀온 해적에게 “너는 어찌하여 바다를 어지럽혔느냐?”고 물었답니다.

대왕의 물음에 해적은 이렇게 답했답니다. “대왕이시여! 어찌하여 당신은 세상을 어지럽혔습니까? 나는 작은 배로써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도적놈’이라고 비난받지만, 당신은 막강한 군대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정복자’라는 칭함을 얻은 것일 뿐입니다.”라고요.

신국론성 어거스틴이 쓴  “신의 도성(신국론), The City of God”에 나오는 이야기랍니다.

작은 좀도둑이나 국가나 자기만을 위한 생각에 빠져 있는한, 똑같이 도둑놈에 불과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작게는 개인에서부터 크고 작은 집단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기주의에 빠져서 자기 개인이나 집단만의 이익을 우선시하다보면 결국 도둑놈이 될 뿐이라는 교훈입니다.

해적이나 도적이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것이나, 국가나 집단(물론 교회도 포함)이 주어진 권력을 신성시하여 개인에게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나, 똑같이 도적질이라는데는 다름이 없다는 이 이야기의 핵심에는 “소유”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비단 물질적 소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욕망들 일테면 식욕, 성욕, 지식욕, 권력욕에 이르는 것들에 대한 소유입니다. 남보다 내가 더 가지려는 욕망, 끝내 내가 모두 차지해야만하는 욕망에 이르기까지 개인이나 국가 또는 교회, 각종 집단들이 지닌 욕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욕망 곧 소유에 대한 개념을 두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사용(use)과 향유(enjoy)라는 개념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떤 것을 ‘향유’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의 목적 또는 이익을 위해 그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쓰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가 원한다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전제로 말이다.”

어거스틴은 이 두 개념이 전도되는 상황을 악이요, 죄라고 말합니다. 향유(enjoy)할 것을 사용(use)하거나, 사용해야 하는 것들을 향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거스틴은 욕망의 향유(enjoy)와 사용(use)을 구분하는 잣대로 “필요(necessary)”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그가 말하는 “필요”란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과 의복입니다. 마찬가지로 집단이나 단체, 국가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을 “필요”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것들은 “여분(superfluous)”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 “여분”의 것들은 이웃과 나누는 것이요,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며, 개인나 단체 또는 국가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이 “여분”의 것들을 “필요”라고 말하면서 자기 것 또는 권력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야말로 바로 도적질이요, 사기질이라고 강조합니다.

어거스틴(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Sanctus Aurelius Augustinus)이 보았던 도둑질과 사기질은 그가 죽은지 1600여년이 지난 오늘도 도처에서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는 그럼에도 사람사는 일은 여전히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희망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분노와 용기다. 현실이 지금 모습대로인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현실을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바꾸려는 용기.”라는 어거스틴의 말처럼 오늘도 “현실에 대한 분노와 용기”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 뉴스를 보며 자꾸 혀차는 습관이 늘어나는 나에게 희망을 주며…

핫도그(Hot Dog)와 복(伏)날

사흘 동안 더위경보(heat warning)속에서 지냈습니다. 체감온도가 화씨 105도(섭씨 약 40도)에서 화씨 115도(섭씨 46도)사이에 이르는 날씨면  내려지는 경보랍니다. 게다가 높은 습도가 함께하는 여름 날씨는 오래 살아도 적응되지 않는 것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똑 같은 조건이지만 직업상 우리 부부에게 더해지는 찜통이 하나 더 있답니다. 바로 보일러입니다.

습도 높은 더위 경보속에서 뜨거운 보일러 스팀이 더해지는 세탁소 풍경 한번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사반세기 넘는 여름을 그렇게 지내고 있답니다.

그래 불만이냐고요?

지난 밤 한 줄기 소나기 지나간 후 맞은 오늘 아침,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보내준 시원한 바람 한 점에 대한 감사를 안다면 감히 불만이라는 말은 불경(不敬)에 이른답니다.

산다는 것은 무릇 감사랍니다. 더위조차 감사랍니다.

hotdog주춤한 더위에 감사하며 훑어보는 신문기사에 내일이 National Hot Dog Day라는 게 있어 달력을 보니 중복(中伏)이랍니다.

Hot Dog과 중복(中伏)과는 전혀 무관한 듯 하면서도 연관이 있습니다. 바로 개입니다.

Hot Dog의 유래를 찾아보니 소시지 모양이 독일산 개와 닮아서 그렇게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복날에 보신탕 곧 개장국을 먹는 우리 풍습은 익히 마는 일이고요. 핫도그나 개장국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 취향에 달린 일이니 제가 논할 바는 아니지요.

다만 저는 핫도그는 맘만 먹으면 배가 터지게 먹을 수 있는 환경과 여건속에 살지만 제가 좋아하지 않으므로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답니다.

개장국 곧 보신탕은  한때 제가 탐했던 음식 가운데 하나랍니다. 토종 서울내기인 제가 보신탕을 입에 댄 것은 다 그 놈의 술 탓입니다. 워낙 “남의 살”로 일컫는 육류(肉類)에는 그리 관심도 없는 제가 개고기만큼은 제법 탐(貪)했던 편입니다.

우선 육질이 기름지지 않아 좋고 속설(俗說)때문인지 술이 좀 과하더라도 개고기 안주라면 이튿날 숙취(宿醉)에 거의 시달리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저의 집안에 술은 물론이거니와 개고기까지 탐(貪)하는 것은 제가 유일하여 “가문(家門)의 영광”이 아니라 “가문의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이지만은 그것도 옛날 일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은 도대체 이 땅에서는 개고기 맛을 볼래야 볼 수 없는 딱한 현실 탓입니다.

개고기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널려 있는 것은 손에 잡기 싫고, 결코 손에 쥘 수 없는 것에 대한 탐욕은 끝이 없고, 이 여름 저는 천상 사람인 것이지요. 비단 이 여름 뿐이겠습니까마는…

천상 사람으로 살더라도 개만큼은 살아야 할 터인데 “개도 지키며 산다는 윤리”에 이르면 그게 또 그리 쉽지만은 아닌 일인 듯 싶습니다.

바로 견오륜(犬五倫)입니다. 개들도 지키며 사는 다섯가지 윤리 도덕이랍니다. 이건 제가 만듣 이야기가 아니라 강원도 양양지방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라고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려있는 이야기랍니다.

견오륜(犬五倫). 이른바 개라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덕입니다.

첫째,   지주불폐(知主不吠)하니, 군신유의(君臣有義)라. – 개는 주인을 알아서 주인을 보고 짖지 않는다.

광견(狂犬)- 곧 미치지 않고서야 제 주인을 보고 어찌 짖겠는가? 개가 지켜야 할 첫째 도리라는 말입니다. 하물며 개도 이럴진데 사람이 제게 은혜를 준 이를 향해 짖는다면 참 개 만도 못한 인생입니다. 사람이 지켜야 할 오륜(五倫)으로 군신유의(君臣有義)에 해당하는 말 쯤 아니 되겠습니까?

둘째, 모색상사(毛色相似)하니,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 – 개의 털은 어미를 닮을지니 자식은 부모를 알아야 한다.

광견(狂犬) -곧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제 부모를 깨물어 상처 내겠는가? 개가 지켜야 할 두 번째 도리라는 말입니다. 하물며 개도 이럴진데 저를 낳아 주신 부모를 깨문다면 참 개 만도 못한 인생입니다. 사람이 지켜야 할 오륜으로 부자유친(父子有親)에 해당하는 말 쯤 아니 되겠습니까?

셋째, 잉후원부(孕後遠夫)하니,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 – 뱃속에 새끼를 배었을 땐 부부관계를 삼간다.

광견(狂犬)- 곧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제 새끼를 배고도 오직 제 배부름만 생각 하겠습니까? 하물며 개도 이럴진데 사람이 제 새끼를 배고도 그걸 생명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참 개만도 못한 인생입니다. 사람이 지켜야 할 오륜으로 부부유별(夫婦有別)에 해당하는 말 쯤 아니 되겠습니까?

넷째, 소부적대(小不敵大)하니, 장유유서(長幼有序)라. – 작은 것이 큰 개를 해치지 않는다.

광견(狂犬) -곧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저 보다 나은 상대를 물겠습니까? 개가 지켜야 할 네 번째 도리라는 말입니다. 하물며 개도 이럴진데 사람이 저 보다 한 발 앞 서 가는 이를 시기 질투한다면 참 개만도 못한 인생입니다. 사람이 지켜야 할 오륜으로 장유유서(長幼有序)에 해당하는 말 쯤 아니 되겠습니까?

다섯째, 일폐중폐(一吠衆吠)하니,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 한 개가 짖으면 다른 모든 개들도 호응해서 짖는다.

요건 좀 문제가 있습니다. 때때로 적합하기도 하고 한 개가 짖는다고 다 짖을 까닭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개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광견(狂犬)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에 이르면 다 짖는데 안 짖는 하나가 역사를 이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쨋거나 사람이 지켜야 할 오륜으로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이쯤 해당 되지 않겠습니까?

 핫도그와 복날,  문득 개에 대한 생각과 이즈음 뉴스로 접하는 세상사들을 생각하며….

혼란스런 아침

주일 아침 뉴스를 훑습니다.

우리 동네 군수(New Castle County Executive) 양반인 Tom Gordon이ISIS의 테러 위협에 대비하는 새로운 감시망을 설치했다고 발표했답니다.

do-7-19

군(郡,county)내에 자그마치 수십만개에 달하는 카메라를 설치해서는 최신 프로그램을 통해 한 곳에서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 눈에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인데, 현재 이 시스템은Washington, D.C와 Atlanta주를 비롯한 아주 소수의 경찰청만이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de-7-19

안전한 곳에 살아서 마음 놓이는 주일 아침이면 좋겠는데 클릭 몇번하니 이어지는 기사랍니다.

safe_image

바로 우리 군내(New Castle County)이자 델라웨어주 행정수도인 Dover에서 11명의 갱단을 체포했답는 소식입니다. 모두 20대 남녀로 구성된 갱단이라는데요. 그들을 체포할 당시 압수한 물품들을 보니 겁이 덜컹합니다. 각종 마약류는 그렇다치더라도 그들이 들고 있었던 무기들을 보니 ISIS보다 더 무서운 무기들이 널린 사회를 안전하다고만 해야할는지…

AP 통신이 서울발로 전하는 뉴스 “죽은 남한의 국가정보원 민간인 감시 없었다는 유서 남겨…”(Dead S. Korean agent left note denying spying on civilians) 기사에 짧은 시간에 많은 댓글들이 달려 있답니다.

capture-20150719-093517

그 중 추천을 많이 받았거나 제 눈에 뜨인 것들 몇 개 소개합니다.

“어떤 국가나 정부이건 단 두가지 뿐 – 바로 돈과 권력”

 “미국을 포함한(모든 곳에서) 누구나 누군가를 감시하며 사는 세상”

 “자살? 그걸 믿으라고?”

 “한국인은 일본인과 같어. 자기 조직을 살리기 위해 사무라이 방법을 택한거야. 한국인은 좀 이상한 민족이야. 일본을 미워한다고 말하면서 일본인들처럼 행동할라고 하거든. 둘은 동족 아닐까?”

참 혼란스런 주일 아침입니다.

박래군을 생각함

오늘 한 사내가 오늘까지 살아온 삶과 그가 오늘 겪고 있는 모습을 읽으며 제 가슴 속에 커다란 돌멩이가 하나 달렸습니다.

사내의 이름 박래군입니다.  그는 지난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한국시간으로 어제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기사들을 훑어본 바에 따르면 이번이 열 두번 째 겪는 일인 듯합니다.

제가 세월호참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뉴스들을 찾아 읽고는 했지만 박래군이라는 이름이 낯설었던 까닭은 이른바 ‘운동’이나 ‘운동가’들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공동위원장이자 4.16 연대 상임 운영위원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현 대한민국 정권이 그들의 예정대로 세월호참사 마무리 작업 수순에 들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박래군이 누굴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답니다. 그래 그와 관련된 뉴스들을 검색해 보았답니다.

우선 눈에 먼저 뜨인 것은 그가 지난 달 어느 야외집회에서 박근혜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늘어놓았다는 기사였습니다.

지난 6월 22일자 TV 조선의 “뉴스특급 730”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세월호 대책위 “박근혜 마약?” 발언 파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월호대책회의 박래군 공동운영위원장이 “청와대를 압수수색해 마약 했는지 안 했는지, 한 번 확인해봤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세월호 당일 ‘피부미용, 성형수술 등을 하느라고 보톡스 맞고 있던 것 아니냐. 보톡스 맞으면 당장 움직이지 못하니까 7시간 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하는 의혹도 있다”,  “청와대 곳곳을 다 뒤져서 마약이 있는지 없는지, 보톡스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등등의 말을 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설혹 그런 의심과 밝히고 싶은  굴뚝 같은 마음이 있다하더라도 그래도 대통령인데 좀 과했다는 생각과 함께 그의 구속 사유에는  “괘씸죄”도 한 몫 했겠다는 생각이 더해졌답니다.

그냥 그쯤해서 “자기 과시형 운동권 사내”쯤으로 치부하고 그에 대한 관심을 끄려고 했었답니다. 그런데 그의 이력이 그에 대한 검색을 더하게 만들었답니다.

참으로 몹쓸 학연이나 지연이 그에 대한 관심의 끈을 잇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이력을 보니 저와 같은 대학 같은 학과가 적혀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졸업하던 그 해에 그는 입학을 했다고 합니다. 저에게 딱 10년 후배인 셈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민 보따리를 꾸리던 그 때 그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제 관심은 급격히 높아졌답니다. 그래 낮일을 제끼고서 그에 대한 본격적인 검색에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하루해를 접는 이 시간, 박래군 생각에 가슴에 돌덩어리 하나 메고 있습니다. 그 묵직한 아픔은 그가 살아온 지난 30년 세월 때문이 아니라 그가 어제 영어(囹圄)의 몸이 되면서 남긴 말에 그의 30년이 오롯이 녹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구속되더라도 416연대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 목표를 향해 변함없이 국민과 함께 행동 할 것”이라는 그의 말속에는 그가 30년 인권운동에 몸바쳐왔던 생각과 꿈과 희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박래군다음은 지난 2012년 11월에 한림 국제대학원 정치경영연구소에서 그와 대담한 내용들 가운데 발췌해 소개드리는 박래군의 생각들입니다. 당시 대담 제목은 “별 11개 단 이 사람, 인생 제2막에서 던진 돌직구”입니다.

그의 생각들을 곱씹으며 동시대를 가슴으로 안고 살아온 한 사내에게 빚진 마음으로 무거운 밤입니다.

“운동권 진영에서 가장 큰 문제가 정파적인 문제다. 이런 것들이 자꾸 운동을 왜곡시키고 대중들의 참여를 막고 그들의 자발성이 분출되는 것을 막는 것 같다. 정파가 종파화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식으로 가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역량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며 대중과 유리된 채 정파 이익 중심의 운동을 전개하는 운동권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나는 지금 인생의 제2막을 살고 있다.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갖고 대학에 들어가서 소설을 썼던 것까지가 제1막이다. 그다음은 원치 않는 운동권이 되어 운동을 사는 게 제2막이다. 2막을 60살까지 살려고 한다. 제3막의 삶은 1막에서 못 이룬 소설가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운동을 하다 보면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거지 운동의 주체는 당사자들이 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의 성과도 그 사람들이 가져가는 게 맞고 패배도 그들의 질 수 있어야 한다.”

“인권운동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 정파에 속해있기도 했는데 그게 참 별 볼일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유가협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NL열사면 내가 NL이 아니라고 해서 안 갈 것인가? 그렇지 않은 거다. 그 죽음 앞에서 내 입장에서 다르다고 하더라도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파적인 것을 내려놓자고 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보적 인권운동론을 주창하는 사람이다. 인권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청춘은 그런 중에서도 되게 더럽다.(웃음)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에 1학년 때는 학생운동 이런 것은 일절 무시하고 소설 쓰고 술만 마셨다.(웃음) 그때가 참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악마의 손길에 의해(웃음) 운동권이 되었고 그 뒤로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한 1년 동안 학생운동을 하다가 이제는 재밌게 운동하나 보다 하다가 강제징집을 당했고, 일주일 동안 서대문경찰서에서 두들겨 맞고 그날로 강원도 양구에 있는 훈련소 가서 또 두들겨 맞았다. 맷집이 약했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웃음)”

“프랑스 철학자 자끄 랑시에르가 ‘이 사회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소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 진짜 정치지 주류가 하는 것은 지배’라고 얘기를 했는데 참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진짜 정치란 누군가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갈등들을 조절하고 자기 권리를 못 찾고 있는 사람들로 주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하는 인권운동은 아주 훌륭한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런 훌륭한 정치를 30년 이상 해온 것이니까 정치에 미련이 있겠는가.(웃음)”

“1998년 ‘양지마을 사건’이라고 큰 이슈가 되었던 일이 있었다. 충남 연기군에 한 부랑인 수용시설이 있었는데 진짜 감옥보다 더한 비참한 곳이었다. 거기에서 탈출했던 어떤 한 사람의 얘기를 듣고 일주일 동안 조사를 해서 당시 국민회의 이성재 의원과 몇몇 단체와 함께 그곳에 쳐들어가 거기에 갇혀 있었던 300여 명이 되는 사람들을 전부 해방시켰다. 그 사건이 터지고 언론에는 ‘노예의 섬’이라고 해서 기사화되었고 우리는 거기서 나온 사람들을 위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대행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상당수가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사회복지시설은 죽어도 가기 싫다고 해서 더 이상 손 쓸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나중에 수소문 해보면 이들 대부분은 노숙인이 되어버리거나 죽어 있었다. 이 일을 겪으면서 ‘과연 무엇이 잘못됐나’ 고민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대행해서 언론에 폭로도 하고 소송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옆에서 돕고 그들이 스스로 이 문제를 풀도록 했으면 그 사람들이 이후 노숙자가 되고 알콜중독자가 되어 거리에서 죽어가는 일이 없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다. 인권센터를 통해 대리하는 운동이 아니라, 피해자가 스스로 주체로 서게 하는 인권운동과 사람들이 차분히 인권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자기의 권리를 찾아가는 길을 밟아갈 수 있는 대중적 기반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싶다.”

“독재 정권 때는 억울하다는 생각조차도 못 했었고, 조금 상황이 나아졌을 때는 억울하지만 어떻게 해볼 수 없으니까 그냥 지나쳤던 것이 지금은 사람들의 의식이 좀 높아져서 자신이 인권을 침해당한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송까지 가는 경우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굉장히 이기적으로 수용되어 있다.

‘이기적으로 수용되어 있다’는 말은…

‘내 인권피해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이 인권침해를 당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그것을 굳이 뛰어들어서 휘말려?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는데?’ 하면서 문제제기를 안 한다는 거다. 이렇듯 인권문제가 철저하게 개인화 되어 있고 이기적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운동진영에도 존재한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욕하는 것이 ‘평소에는 남의 인권에 대해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너네 해고당하면 인권운동 찾느냐?’라는 것이다. 인권운동이라는 것은 일종의 ‘품앗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소에 정말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공감하고 같이 싸울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특히 IMF 이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연대의 가치들이 철저하게 깨져 나갔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진보운동이 엄청난 패배를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1위고 범죄율도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지 않나. 사람들이 옆에서 죽어나가는 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있다. 내 일이 아니기도 하고, 이런 일들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웃음)”

박래군  – 그의 말처럼 이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 목표를 향해 변함없”는 길을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박래군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