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라웨어 사람들을 위한 에모지(이모티콘)

제가 사는 델라웨어 지방 소식지인 News Journal에 재미있는 기사가 있어 소개드립니다.
B9317996251Z.1_20150709151305_000_GM0BA7K6M.1-0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나 이메일에 ‘이모티콘(emoticon)’ 대신 얼굴 표정이나 사물을 단순화한 아이콘인 ‘에모지'(emoji)라는 것이 있지요.

델라웨어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에모지를 만든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하는 물음과 함께 글쓴이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들을 소개하는 기사랍니다.

델라웨어라는 지역 특성 및 지역 사람들의 특질을 잘 나타내는 상징을 꼽아보자는 것이지요.

글쓴이가 델라웨어 사람들에게 필요한 에모지로 꼽은 내용들이랍니다.

  1. old bayOld Bay – 빨강 파랑 노랑색을 주조로 한 양념통에 담긴 양념 이름입니다. Delmarva(델라웨어, 매릴랜드, 버지니아)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는 것이지요. 주로 해산물(게, 새우 등등) 요리에 사용한답니다. 제 여름 보양식인 게찜에 많이 들어가는 양념입니다.

biden2. Joe Biden – 델라웨어가 낳은 인물이지요. 현 미국 부통령입니다.

 

lifeguard3. Lifeguard – 바다가 감싸고 있는 지역 특성과 여름철을 감안해 꼽은 듯. 물놀이에 필수적인 안전요원과 안전을 강조한 것이지요.

shopping bag4. Sopping bag – 델라웨어주는 판매세가 없는 곳이랍니다. 그래 tax-free shopping을 강조한 것이지요.

seagal5. Seagull – 역시 바다로 쌓인 특성상 흔히 볼 수 있는 꼽은 갈매기입니다. 제 가게가 있는 쇼핑센터도 종종 갈매기 떼들이 몰려와 주차지역을 덮곤 한답니다.

scrapple-header-ll6. Scrapple – 델라웨어 사람들의 흔한 아침메뉴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크래플은 잘게 썬 돼지고기, 야채, 옥수수 가루로 만든 튀김 요리랍니다. 냉동 식품으로 판답니다. 물론 저는 안 먹지요. 차라리 콩나물 넣은 라면을 먹지요.

imagesC7SXMPX87. Marijuana leaf – 델라웨어가 마리화나 애용자들에게는 천국이 될 듯합니다. 약용으로  쓰는 것은 물론이고, 오는 12월부터는 개인당 1온스의 마리화나를 소지하거나 사용하는 게 합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귀 솔깃 하신 분 있으려나?

bluehen8. Blue Hen – 델라웨어주의 상징 동물이자  University of Delaware 스포츠 팀들의 상징이랍니다.  Go! Blue Hen! 아주 흔한 스티커랍니다

capture-20150709-1739209. States – 워낙 주의 크기가 작다보니 조금만 달리면 이웃한 펜실바니아, 뉴저지, 메릴랜드가 된답니다.  때론 미국인들도 모르는 주이기도 하답니다 델라웨어를 크게해서 알리는 에모지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horsecrabs10. Horseshoe crabs – 이거 되게 징그러운데 델라웨어 해변가에 널려있답니다. 자그마치  기원이450 million years ago(4억 5천만 년 전)으로 올라가는 바다생물이랍니다.

부질없음에…

“부질없게도 인간들은 지상의 현상보다 천체의 현상을더 중요하게 여긴다. 마치 자신의 일에 신경쓰는 것보다 이웃의 일에 신경쓰는 것이 더 존경할 만하고 고귀한 일이라는 듯이.

그러나 우리들이 풀어야 할 매듭은 별들의 저 교차점이 아니다.

Men attach a false importance to celestial phenomena as compared with terrestrial, as if it were more respectable and elevating to watch your neighbors than to mind own affairs.

The nodes of the stars are not the knots we have to untie.”

civil지금으로부터 156년 전 매사츄세스 콩코드 강변 숲속에서 당시 마흔 두살이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가 써서 남긴 일기 중(Journal 1859. 10. 16.) 한 대목입니다.

오늘 제 고민은 별들의 교차점도 아니고 천체 현상에 대한 것도 아니며 딱히 이웃의 일만도 아닙니다.

제가 살아가는 오늘 현재의 고민일 뿐입니다.

분명 제가 발딛고 서있는 이 땅, 사람사는 일에 대한 문제임에도 많은 경우에 안드로메타의 일을 갖고 헛꿈 꾸고 있다는 소리를 듣곤한답니다.

따지고보면 쏘로우의 글들 대부분이 사실 별들의 교차점에 대한 이야기들이랍니다.

때론 “부질없음”이야말로  진리에 닿는 지름길 일수도.

우린 여전히 미국인일까?

연휴로 맞는 주일 아침, 느긋한 마음으로 신문을 훑다가 눈에 들어 온 기사 하나입니다.

7-4-15제가 사는 동네 신문인The News Journal의 고정 기고가인John Sweeney라는 이가 쓴 “우린 여전히 미국인일까?(Are we still Americans?)라는 글입니다.

글쓴이는 해마다 맞는 독립기념일이면 동네마다 퍼레이드를 벌리고 불꽃놀이를 즐기고, 더러는 해변가를 찾아가 여름을 만끽하는 연휴를 보내곤 하는 모습은 올해도 여전하다며 이 글을 시작한답니다.

그런데 매해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고 있는 것들이 있답니다. 이 날이 되면 펄럭이던 성조기의 빨강, 하양, 파랑 색깔은 거리마다 자동차나 침대 등의 광고판에서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었고, 성조기는 더 이상 애국을 상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단 그 뿐 만이 아니라 정치체제도 흔들리고 있고, 어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은 농담거리가 되었고, 미국의 역사를 아는 이들도 드물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정치참여도도 점점 낮아지고 있고, 정치적 견해들 역시 자기 쪽에만 유리한 방향으로 주장되고 있거니와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려는 모습은 찾을 수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정치적 좌, 우파 세력들은(미국에 좌, 우파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각기 자신들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조건들이나 법안들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고치려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글쓴 이는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나라에서 미국인으로 살려고 하는 것일까?( Do we still make Americans in this country?)”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이런 해법을 제시합니다.

미국이 독립을 이루었던 세대로부터 10세대가 흐른 이 싯점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1987년 교육학자Eric Donald Hirsch가 주장한 “문화 이해 능력을 고양하는 일 또는 문화 문맹 퇴치(Cultural Literacy)”라고 말합니다.

지나간 미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 땅 미국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미국인들 끼리의 서로 다른 문화, 관습, 언어 등을 서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미국이 여전히 미국이 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주일 아침 John Sweeney의 주장을 읽으며 “어디 미국 뿐이랴”라는 생각과 함께 어느 누가 먼저가 아니라 제 자신이 자신됨을 돌아보는 일에서부터 이웃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7-4-15a

어제 저희 동네에서 있었던 퍼레이드 사진이랍니다. 이 길은 매일 제 출퇴근 길이기도 하답니다. 사진 속 아이들은 제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 학생들인데, 저런 대열 속에 있었던 제 아이를 찍으려고 사진기 들고 기웃거렸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참 빠름니다. 세월이.

 

게으른 연휴

연휴를 맞아 하루 푹 쉽니다.

쉰다는 게 별거인가요? 그저 천천히 시간을 맞는 것이지요.

0704152113d저녁상을 물리고 앉아있노라니 밖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작했네!”하는 아내의 소리에 창밖을 내다 봅니다. 동네 4th July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답니다.

집 바로 뒤에 있는 공원에서 해마다 오늘이면 하는 연례행사이랍니다.

미국 어디서건 낮에는 퍼레이드, 밤에는 불꽃놀이로 독립기념일을 기리는 동네 행사지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함께 나가 퍼레이드도 보고, 불꽃놀이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구경하곤 했답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커서 그 퍼레이드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보러 달려 나가곤 했었는데….

이젠 다들 컷다고…

아내와 둘이 밥먹고 앉았다가 폭죽소리에 놀라, “아~ 오늘이구나!”한 것입니다.

창문밖을 바라보다가 앞뜰로 나가 사진 몇 장 찍고는 “아이고, 모기 달려드네…”하며 들어왔답니다.

쉬는 방법도 이젠 게을러집니다.

좋게 표현하여 느긋함이랄지…

뉴스를 보니 Lewis Beach라고 델라웨어에서 제법 유명한 해변 도시에서 있었던 오늘 행사 영상이 있어 여기에 덧붙인답니다.

바보였던 한주간

바보였던 한주간이었습니다. 정말 바보였답니다.

photo_2015-06-30_22-18-39딱 일주일 전 낮에 일어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이 블로그의 모든 한글들이 “??????????” 이렇게 물음표로 다 바뀌어 있었답니다.

처음에는 뭔가 잘못되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저절로”로 다시 원상복귀될 수도 있겠지 했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이거 어쩌지?”하는 걱정과 함께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해보았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한편으로으로는 아쉬운 맘이 넘쳐났지만 그래도 나이 값 하노라고 “뭐 산다는 게 다 그렇지…. 잊을 건 잊고, 새로 시작하지 뭐…”하는 다짐을 놓았답니다.

그런데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 붙들고 씨름을 해 본 것이지요.  분명 “????????????”라는 표시들이 남아 있는 한 이걸 다시 한글로 돌려 놓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일주일 동안 다른 일들을 하면서도 머리 속에는 내내 한가지 생각 뿐이었답니다. 바로 “망가진 블로그 원상 복구 시키기”였습니다.

그러다 오늘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블로그 호스팅을 해주는 회사에게 상세한 문의 이메일을 보냈답니다.

막바로 24 이내에 질문에 대한 응답을 해 주겠노라는 회신과 함께 세군데 사이트 링크들을  소개하면서 스스로 찾아서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 주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낮에 틈틈이 호스팅 회사가 소개한 링크들 특히 포럼에 등록된 유사한 경험들을 읽다가 드디어 해결책을 찾았답니다.

알고보니 일주일 전 한글이 다 깨지는 사고가 나자마자 제가 생각했던 바로 그 곳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데… “설마 그렇게 쉽게?”라는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곳에 해결책이 숨어 있었답니다.

참 바보 같은 한 주간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바보 같은 일 때문에 얻은 것이 엄청 많답니다.

헤매느냐고 여기 저기 묻고 찾아다니다 보니 배운 게 엄청 많다는 것이 첫째고요, 둘째는 반드시 기록을 보관해 두어야만 한다는 깨달음이고요, 셋째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길은 있다는 믿음이고요 – 36계 줄행랑도 비책 가운데 하나이므로 – 그리고 무엇보다 해결한 뒤에 느끼는 이 만족과 기쁨은 아흔 아홉마리 양을 (야수들이 덤빌 수도 있는 무방비 상태에) 내버려두고 한마리 양을 찾아 나섰다가 얻은 기쁨을 이야기한 예수의 비유만큼이나 큰 것이랍니다.

바보짓 끝에 얻은 기쁨이랍니다.

또 다른 시작

<항상 침착하고 차분하게만 대처한다면,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속에서도 그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If we will be quiet and ready enough, we shall find compensation in every disappointment.” >  –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이렇게 또 다른 시작을 맞게 될 줄은 전혀 예기치 못했답니다.

며칠 전 일터에서 급작스럽게 처리해야할 일들이 있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머리 좀 식힌답시고 제 개인 블로그(http://www.for1950s.com/)에 들어갔답니다.

지난 삼년 오개월여 제가 일기처럼 글을 남기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글들이 – “???????” – 바로 이런 물음표시로 바뀌여져 있었답니다. 당시에는 뭔가 일시적으로 잘못되었거니 했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원상복귀 되려니 하며 덮어 두었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다시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여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아차 싶어서 이런저런 복구작업을 해 보았답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다가, 제 능력 범위를 벗어난 일인 듯하여 도움의 손길을 구했답니다.

손길을 청했던 이에게 돌아 온 대답은 “저 역시 능력 밖입니다.”였습니다. 그래도 이 양반이 크게 도움을 주었답니다. 두어가지 택할 수 있는 방법 제시와 함께 글들을 건져 낼 방안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랍니다.

처음에는 정말 안타깝고 아쉰 생각 뿐이었답니다. 거의 삼년 반 동안 썻던 일기가 몽창 날라가 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그걸 따로 저장해 놓치 않은 자책이 아주 심했답니다.

어제 오늘, 그 양반이 가르쳐 준 방법으로 400개가 넘는 글들 가운데 거의 95% 이상을 건져냈답니다.

블로그 복구작업은 계속될 것이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새 일기장을 하나 만들었답니다. 바로 이 블로그입니다.

복구작업과 함께 새 일기를 여기에 이어 쓰려고 합니다. 만일 옛 일기장 복구가 된다면 두 개를 합치려 합니다.

이 일기장 주소인  http://www.delhanin.com/ 의 delhanin은 제가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던 지난 1999년 이래 오늘까지 저의 다른 이름입니다. 델라웨어에 사는 한인을 줄여 본 말이랍니다.

이제 새 일기장을 꾸밉니다.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단풍나무 숲이나 길게 뻗은 소나무 가지 밑으로 비를 피하게 되었을 때도, 그 후미진 곳을 세밀하게 관찰한다면 그 잎사귀나 나무껍질 속, 혹은 그 발 아래의 버섯에서 새로운 경이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리라.>  – 역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입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을 찾아준 분들께 드리는 인사치고는 너무 밋밋한 것 같아 사진 한장 덧붙입니다. 엊그제 받은 사진이랍니다. 일년 전쯤 어느 예식에 참석했다가 누군가가 찍은 것을 엊그제 저희 부부에게 보내주신 것이랍니다.

2015-06-26

일기란 이렇게 까맣게 잊어버렸던 순간을 되뇌이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오늘, 지난 글들을 건져내며 느껴보았답니다.

**** 사족 : 그렇게 헤매기를 딱 일주일. 오늘은 6월 30일입니다. 일주일만에 망가졌던 블로그를 다시 복구시켰답니다.  이 큰 기쁨이라니!

delhanin.com 이라는 주소 하나는 덤으로 얻었고요.

맑은 바람 한 점

21950_15985_3323성서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무언가에 도전하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힘이 있지만, 내 삶의 실체를 파악하고 깊게 침잠하여 나를 찾고자 할 때는 불경(佛經)이 때론 그 도구가 되곤 합니다.

특히 선가(禪家)에서 애지중지하며 선의 진수라 일컫는 벽암록에 기록된 위대한 선사(禪師)들의 법어(法語)들과 게송들을 읽노라면 삶의 자질구레한 걱정들을 건듯 부는 바람에 실려 훅 날려보내는 지경까지도 이르는 것이지요.

성서와 함께 벽암록(碧巖錄)이 제 집 해우소(解憂所)에 놓여 있는 까닭입니다.

거기에 있는 가르침이랍니다.

풍혈(風穴) 연소화상(延沼和尙:896-973)의 화두(話頭)에 설두선사(雪頭禪師)가 달아 낸 노래입니다.

<시골노인 이맛살 찌푸린 것은 그대로 내어 두고/ 삶에 찌든 중생을 위해 나라나 튼튼히 하시게/ 나라를 위해 꾀를 내고 싸우던 장수들은 다 어디 갔는고/ 만리를 떠도는 맑은 바람은 알고 있으리>

수만년 이래 맑은 바람 한 점은 늘 불고 있었답니다.

어떤 하루

스무해 가까이 사는 동네인데도 낯선 곳들이 많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니는 습관 때문이지요.

0618152019집에서 채 3분도 안걸리는 곳에 seafood restaurant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답니다. 평소 거의 드나들지 않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거니와, 이따금 오가며 간판을 보면서 fish market인줄만 알았지 음식점을 겸하고 있는 줄은 몰랐었답니다.

오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함께 들려 보았답니다.

생굴을 비롯한 각종 찐 해산물이 주종인 선술집 같은 분위기였답니다.

손바닥처럼 환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네에서 전혀 생각치 못했던 분위기를 만났답니다.

0618151918-tile

그리고 서른 두해를 함께하며 속속들이 환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아내와 모처럼 낯선 분위기에서 맥주 한잔으로 조촐하게 하루의 기억을 쌓았답니다.

위대한 침묵

두주 전 일요일이었습니다. 아내는 교회를 가고 혼자 책상물림을 하다가 바깥바람 좀 쐴 요량으로 집안 창문들을 모두 열었었답니다.

bird sound시원한 바람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 온 것은 새소리들과 뒷뜰에 걸어놓은 풍경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취해 한참을 정물(靜物)이 되었었답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을 짧게 편지로 써서 오늘 제 가게 손님들에게 띄워 보냈답니다. 그리고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당신에게도 전합니다.

여름을 맞아 멋진 휴가계획을 세우셨는지요? 아니면 지금 생각중이신지요? 혹시 휴가를 즐길 여유가 없어 전혀 그럴 계획이 없으신지요?

얼핏 생각하면 여름에 모든 사람들이 산이나 바다나 강을 찾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마다 다 생긴 모습이 다르듯이 여름을 즐기는 방법들도 다를 것입니다.

어떤 계획이 있으시든지, 아니면 아무 계획이 없더라도 올 여름엔 이런 거 한번 해 보시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말씀드린답니다. 물론 저도 한번 해 볼 생각이랍니다.

날짜를 딱 하루만 정해서 모든 문명의 이기를 끊고 침묵속에서 하루를 보내보자는 것이지요. 저는 일요일 하루를 정해서 해 볼 생각이랍니다.

이 날은 전기, 전화, 셀폰, 컴퓨터를 비롯한 모든 소리나는 기기들을 끊고 조용히 침묵속에서 지내보자는 것이지요.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요? 멀리 어딘가로 휴가를 떠나보는 것 못지않게 어떤 휴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랍니다.

혹시 2005년도에 개봉했던 영화 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알프스 높은 계곡 속에 위치한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Le Grande Chartreuse)의 카튜시안(Carthusian) 수도사들의 삶을 그린 영화랍니다.

거의 세시간에 가까운 168분 짜리 영화랍니다. 마침 유튜브에 이 영화가 있어 소개드립니다.

영화 전체를 다 보시라고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졸릴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영화의 어떤 장면이든지 약 5분 또는10분 정도만이라도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후반부 거의 끝부분인 1시간 5분 경에 나오는 수도사들이 알프스 겨울산에서 아무 도구없이 눈썰매와 눈스키를 타는 모습과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웃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답니다.

멋진 여름이 되시길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Did you make a nice vacation plan for this summer? Or are you thinking about that now? Do you have no such plan at all because you cannot afford?

Even though we may easily assume that everybody goes to mountains, oceans or riversides or travels in summer, in reality, everybody enjoys summer in their own way, just as their appearances are not the same, but unique.

Whether you have vacation plans or not, how about trying to do this? Of course, I’ll try to do it at least once this summer.

It is to spend a whole day in silence, cutting off all the gadgets of modern civilization, such as electricity, telephones, cell-phones, computers and so on. I plan to do it one Sunday.

Why do I think about this idea? That’s because I think that it will give me rest as good as any get-away vacations.

Did you happen to watch the documentary film, “Into Great Silence,” which was released in 2005?

It is an intimate portrayal of the everyday lives of Carthusian monks of the Grande Chartreuse, a monastery high in the French Alps. Its running time is 162 minutes, almost three hours.

Fortunately, it is available at YouTube.

I won’t suggest you to watch a whole movie, as it may make you sleepy. But I want you to watch any scene for five to ten minutes. Especially, watch the scene of almost the end of Part II, around 1 hour 6 minutes. Try to watch monks sleighing without any equipment in the snow-covered Alps and to hear their laughter.

I could feel all the more keenly that we can find laughter in whatever conditions we may be.

I wish that you will have wonderful summer.

From your cleaners.

여기가 광화문일수도…

한국 또는 한국인들을 특정지어 표현하는 말들을 꼽자면 긍정적인 말에서부터 부정적인 것까지 꽤 많을 것입니다.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계획이 취소되었다는 짧막한 보도와 함께  전세계에  퍼진 것은 메르스와 한국을 동시에 연상케 하는 뉴스들입니다.

급기야 오늘에 이르러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현장조사 중이지만 메르스와 다른 한국판 메르스(Korean MERS)라는 뜻의 코르스(KORS)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또는 한국인과 연관지어지는 신종어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좋고 나쁜 면들이 모두 있게 마련이지만 아무렴 좋은 면들이 많이 드러날수록 정말 좋은 일이겠지요. 저처럼 한반도에 돌아가 누울 한 뼘의 땅조차 없이 완전히 떠나와 이민의 삶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라도 모국인 대한민국과 한국인들과 연상되어지는 말들이 나쁜 것이라면 정말 쓰리답니다. 좋으면 그냥 좋은 것이고요.

옛날 중국의 노자(老子)선생은 “이웃나라와 가까와서 닭이나 개의 소리가 들릴지라도, 자기네의 음식과 의복에 만족하고 스스로의 고유한 관습과 각자 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 나머지,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이웃나라에는 가고싶지 의욕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정부 또는 정치가 최상이라고 끔 같은 말씀를 남기신 바 있지만, 거기 발뒤꿈치에 이르지 못할지언정 이즈음 듣는 모국 소식들은 참담하기 이를데 없어 정말 아프답니다.

그저 아리고 쓰릴 뿐이지 딱히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거니와  “떠난 놈이 뭔 신경?”이라는 물음에도 그럴듯히 내세울만한 답변조차 없답니다.

애들 다 키우고, 부부가 덤덤하게 노년을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터에 좋은게 다 좋은 거라고 안보고 안듣고, 생각 아니하고 살면 노자선생이 말한 세상이랍니다.

그런데 어디 살아있다는게 그런가요? 아리랑 쓰리랑을 흥얼거리거나 듣노라면 그냥 눈물이 흐르는  천상 조선놈인것을요.

숱한 뉴스들 가운데 제 가슴을 후비며 정말 아리고 쓰리게 다가오는 소식이 있답니다.

11233785_388505358007802_5697080186953584015_n

한국시간으로  어제 날짜인 6월 11일 109일 째 일보삼배 행진을 하고 있는 이호진, 이아름 부녀의 소식이랍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아들이자 동생을 잃은 부녀입니다.

메르스를 위시한 블랙홀 같은 뉴스들에 묻히거나 의도적으로 언론들이 다루어주지 않아 그들의 몸짓이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한 것인지, 그들의 몸짓에 조금만이라도 눈길을 주었다면 오늘 메르스가 코르스가 되는 국면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참 아프답니다.

삼십만 번의 절을 하며 걸어온 길, 이들 부녀가 이제 사흘 후면 광화문광장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제 이아름양은 자신의 페북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광화문에서 저를 기다리는 게 무엇이든 감사할 것이고 기억할 것 입니다.”

그 아이에게 감사함과 기억할 꺼리를 안겨주어야겠습니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그들 부녀를 맞지 못하더라도 손편지 한 장, 작은 감사의 표시, 그도 아니면 페북에 “참 장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함께 나누실 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단 한 분 만이라도.

한국 또한 한국인을 특정지어 표현하는 말은 바로 저 하나,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 한 사람이 만들 수도 있기에….

이호진 부녀의 페북 링크입니다.

https://www.facebook.com/padre1909

다음은 이아름양의 글입니다.

2015년 6월 11일 목요일 109일차.

용산구청에서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기자언니가 물어 봅니다. 다 끝나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냐고.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언니에게 자신있게 시원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속소로 가는 차 안에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시원한지.

아빠와 제가 팽목항에서 첫 절을 올리고 이 곳 용산까지 오는 데 109일이 걸렸습니다.

아빠와 제가 이렇게 바닥을 기어 오는 걸 얼마나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지, 알고 계신다면 그 분들은 아빠와 저를 어떻게 보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빠와 저는 이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게 살아있는 아빠와 저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하늘에 있는 승현이와 아이들만 믿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빠와 저의 마음을 아이들이 알아준다면 잘 될 것만 같았습니다. 어떻게 끝나야 잘 끝나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일기에 제가 썼던 말이 기억납니다.

광화문에서 아빠와 저를 기다리는 사람이 우리 승현이 였으면 좋겠다고.

이틀.

제가 이렇게 길바닥에서 금쪽같은 우리 승현이에게 속죄할 수 있는 시간 입니다.

저에게 109일 이라는 시간은 우리 승현이를 만나기 위해 팽목으로 달려가는 그 순간만큼 길었습니다.

광화문에서 저를 기다리는 게 무엇이든 감사할 것이고 기억할 것 입니다.

저는 승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누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