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외식

아내와 주말 저녁 조촐한 외식을 즐긴다. 식사를 하며 내가 말했다. “혹시 우리 이거… 박근혜  탄핵 기념 외식?” 아내의 응답. “그것도 괜찮네!”

이어지는 아내의 물음. “어머니 아버지꺼 하고, 울 아버지꺼랑 시켜서 배달해 드리고 가자!” 시간을 확인한 후 내 대답. ”시간상 아버지 어머니는 늦었고, 장인 것만 하나 시켜가자구. 아버지 어머니는 내일 따로 들리자구.” 그렇게 아내는 장인 몫으로 따로 주문을 해 놓는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아내가 놀라며 하는 말. “아니, 얘네들이….. 아버지꺼로 주문한게 이게 아닌데… “  이미 가져갈 음식은 테이블에 놓여 있었으므로, 아내의 화는 조금 도가 높아 있있다.

서빙하는 친구를 불러 뭔가 잘못되었다고 항의하는 사이, 매니저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젊은 동양처자였는데 그녀의 가슴에는 눈에 익은 뱃지가 달려 있었다. 노란 세월호 뱃지였다.

주말 저녁 꽉찬 테이블에 한국인(동양인)이라고는 우리 부부 밖에 없었으므로, 노란 세월호 뱃지로 연결되는 그 매니저와 우리 부부 사이의 연은 정말 남다른 것이었다.

내가 대답했다. “문제는 무슨…. 그냥 당신 가슴에 달린 노란 뱃지가 고마워서….”

그 거리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한다. 피청구인의 법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 중대함으로 피청구인을 파면 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주문 선고한다.> – 헌재 박근혜 탄핵심판 판결문에서

1979년 10월 27일 아침,  거리에는 호외신문들이 뒹굴고 있었다. <박정희대통령 피격서거被擊逝去>라는  대문짝 같은 제목이 달린 호외였다. 그 무렵 나는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게 말이 출판사이지 생업이라고 할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어서 실제로는 준실업자 상태였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아무튼 그날 아침 출근길에서 그 호외를 마주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내 출판사 사무실로 담당형사가 찾아왔고 당분간  함께 지내게 되었노라는 통보와 함께 내 동선에 늘 함께 하는 그림자가 되었다. 당시 내 집과 사무실이 모두 마포구에 있었으므로 마포서 정보과에 속한 형사들이었는데 그 중 한 명과는 호형호제를 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종종 다니던 학교가 있던 구역인 서대문서 정보과 형사들도 손님으로 오곤했었지만, 늘 붙어다니던 양반들은 주로 마포서 직원들이었다.

지금와서 돌이켜볼수록 웃음이 나온다. 도대체 이십대 중반 어린 나이, 게다가  준실업자에 다름없는 나를 감시하는 담당형사가 있었다는 사실에  나오는 웃음이다. 아무튼 그땐 그랬었다.

그리고 며칠 후  11월 3일 아침, 집을 나서려는데 일찍감치 내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던 담당형사 둘이  “오늘은 집에 있어야겠다”며 나를 막아섰다. 그들과 꽤 긴 흥정 끝에 나는 그들과 함께 광화문 비각쪽 거리에 설 수 있었다.

그날은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 날이었다. 집을 나서지 못하게 막는 담당형사들에게 “이건 참 역사적인 날이다. 당신들이나 나나 그 역사적 현장에 함께 서 있다는 것만 하여도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냐? 내가 도망칠 일도 아니고 당신들과 함께 서서 그 현장을 보고  다른 일 안하고 누구도 만나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될 일 아니냐?”

그렇게 우리들은 광화문 사거리 비각쪽에 서서 박정희 장례행렬과 그곳에 인산인해로 모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날 광화문 거리와 그곳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몇해전이던가 김정일이 죽어  장례행렬을 이루던 평양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았던 일이…. 적어도 내 기억엔 김정일 장례행렬이 이어지던 평양거리와 1979년 박정희 장례행렬이 있었던 서울 광화문 거리 모습은  거의 똑같았다.

바로 며칠 전 자기 딸 나이 또래 젊은 처자들을 앉히고 술마시다 부하의 총에 정말 말같지도 않은 죽음을 맞은 박정희는 그날 그 거리에서는 왕을 넘어 신이었다. 그렇다. 이제 내 이 나이 60대 중반, 이 세월에 이르기까지 그는 신이었다.

광화문 거리는 박정희 만큼이나 내겐 추억이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던 해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 그리고 그의 치하에서 초, 중, 고, 대학을 마치거나 다니고 군생활을 했다. 내 어리고 젊은 시절 추억은 모두 그 시절의 일들이다. 광화문 비각에서부터 내자동, 청운동, 효자동에 이르는 거리는 골목골목들을 기억할 만큼 내겐 숱한 추억들이 묻어있다.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나는 그 거리를 등하교길로 오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6년, 해가 저물 무렵부터 광화문 그 거리를 매운 사람들은 2017년 3월 마침내 신의 형상을 부수기 시작하였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한다. 피청구인의 법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 중대함으로 피청구인을 파면 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2017년 헌재의 판결문이 1979년 10월 김재규가 쏜 총알 대신 그때 박정희를 향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어떤 세상이 되었을까?

오래 전에 떠나 온 그 거리에서  전해지는 소식에 꿈이라도 꾸어보는 것이지만, 이제라도 신의 형상을 한 우상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너, 나, 우리라는 사람이 설 수 있는 광장, 나라, 공동체로 나가는 걸음을 내딛는 소식에 그저 들뜬 마음으로.

 

이민(移民)과 시민(市民)

초기 미국의 정신 가운데 한 사람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가 그의 글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에 남긴 말입니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의무는, 어는 때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군인들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이 저주받을 짓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원래는 모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존재인가? 도대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권력을 가진 어떤 사악한 자가 부리는 움직이는 작은 요새나 탄약고인가?

이 나라 국민은 노예 소유와 멕시코에 대한 전쟁을 멈추어야 한다. 설령 그렇게 하여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아마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에 표를 던지겠지만, 옳은 쪽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목숨을 걸지나 하지는 않는다. 옳은 쪽에 투표하는 것도 그것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사람들에게 희미하게 표명하는 것일 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의를 운수에 내맡기려 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다수의 힘을 통해 승리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오로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라 좋건 나쁘건 여기서 살려고 온 것이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으며 그 중 어떤 일만 하면 된다.>

우리들은 이 땅의 이민자이자 이 땅의 시민입니다. 물론 서로 다른 다양한 처지와 모습으로 삽니다. 어떤 모습으로 살든 마땅히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삶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위해 따르는 의무 또한 다하며 삽니다.

우리 시대의 자유인 작가 유시민이 최근 개정판을 낸 <국가란 무엇인가>에 쓴 맺음말 가운데 남긴 말입니다.

<어떤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정의를 실현할 능력 있는 국가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혼자 힘으로 훌륭한 국가를 만들지는 못한다.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다. 어떤 시민인가? 자신이 민주공화국 주권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대통령이 된 것과 같은 똑 같은 무게의 자부심을 느끼는 시민이다. 주권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이며 어떤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잘 아는 시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면서 공동체의 선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행동할 줄 아는 시민이다. 그런 시민이라야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 시대를 고민하며 사는 필라델피아 친구들이 뜻있는 자리를 마련하였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 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잘 알려진 정학량변호사가  이 땅을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늘 우리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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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와 ‘이 순간’

노부모님과 장인 어른, 누님 내외와 동생 내외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 딸과 예비 사위, 조카들과 함께 한 거한 생일상을 물린 후, 서울에 있는 큰처남에게서 축하 문자를 받았다.

내게 형제가 없어서인지, 처남 매형 사이라기보다는 동생 같은 큰처남은 늘 밝아서 좋다. 이따금 던지는 그의 농담은 유쾌하다. 오늘 그가 보낸 문자 역시 그렇다.

‘다시 한번 생신 축하드리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정말 세상에 잘 오셨어요. ㅋ’

마지막 ‘ㅋ’가 없었다면 정말 딱딱하고 뜬금없을 수도 있는 문자였다. 마지막 그 ‘ㅋ’ 하나가 재미와 흥을 돋운다.

‘세상에 잘 왔다’는 말은 듣기에 썩 좋기도 한 말이지만, 동시에 듣기에 참 부끄러운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ㅋ’ 하나로 그저 내가 사는 재미를 일깨워준다.

‘ㅋ’를 읽는 내 관점이다.

큰처남이 문자 ‘ㅋ’로 떠올린 피천득의 시 ‘이 순간’이다.


이 순간

  •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한 사실이다.

원추(鵷鶵)와 올빼미

장자(莊子) 외편(外編)인 추수편(秋水篇) 열 네번 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혜자(혜시惠施)가 양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장자가 그를 만나고자 했다. 그 때에 어떤 자가 혜자에게 말했다.

“장자가 지금 오는 것은, 당신을 대신해서 재상이 되고자 함입니다”

이 말에 혜자는 두려워서, 장자를 찾으려고 나라 안을 사흘 밤낮으로 수색했다. 그러자 장자가 이를 알고 스스로 나타나서, 혜자에게 말했다.

“남쪽에 사는 원추(鵷鶵)라는 새가 있는데, 자네는 알고 있는가? 그 원추라는 새는, 남해를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 가지만,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무르지 않고, 귀한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단맛이 나는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네.   그런데 썩은 쥐를 얻은 올빼미가 원추가 지나가자 제가 물고 있는 썩은 쥐를 빼앗으려는 줄 알고, 올려다 보면서 꽥 하고 호통을 쳤다네. 지금 자네는 양나라의 재상자리 때문에 나에게 꽥 하고 소리를 치겠다는 건가!”

혜시와 장자, 두 사람의 됨됨이와 크기 나아가 두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의 차이를 잘 드러내고 있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아마 장자는 그 자리를 뜨면서 호탕한 웃음 한자락 날렸을 것입니다.

또한 장자(莊子) 내편(內編)인 제물론편(齊物論篇) 아홉번 째 이야기에서 장자는 “方生方死(방생방사) 方死方生(방사방생)”이라는 말로 모든 삶과 사물에는 서로 상대성을 지닌다고 설파합니다.

“方生方死(방생방사) 方死方生(방사방생)” – 곧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삶이 있다는 말입니다.

삶의 참 뜻을 먼저 깨우친 옛 선생이 후대에게 남겨 놓은 말씀들입니다.

여러 해 전에 마지막 길을 떠나시기 전에 이런 말을 남기고 간 이가 있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삶의 참 뜻을 고뇌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아주 낯선 말 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 이가 비록 원추는 아닐지라도 썩은 쥐로 배를 채우는 삶은 결코 살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엊저녁에 정말 깜도 안되는 놈, 그야말로 제 배때기 하나 채울 욕심만으로 썩은 쥐새끼 입에 물고 정치 사기꾼질에 여념없는 천하의 못된 박쥐같은 잡놈이 원추를 보고 짖었다는 뉴스를 보다가 떠올린 장자 이야기 한편입니다.

갈등(葛藤) 또는 포등(葡藤)

한때 뒷뜰 등나무와 포도나무는 내 집 자랑거리였다. 등나무는 deck의 지붕이었고 포도나무는 울타리였다. 특히 아버님이 좋아하셔서 내 집에 오실 때면 늘 뒷뜰 등나무 그늘에 나가 계시곤했다.

Mr

등나무 아래 내 아버님의 한 때 

봄이면 등나무 꽃과 이어피는 라이락 꽃에 취했었고, 여름이면 등나무 그늘 아래서 잔치를 벌리곤 했었다. 포도가 영글 즈음 등나무 그늘 아래서  쏘로우나 휘트먼을 읽는 호사는 분에 넘치는 것이었다. 겨울이면 deck 위에 쌓인 눈을 치우며 마치 죽은듯이 앙상히 마른 등나무를 걱정하곤 했었다. 어느 해 봄이던가 등꽃이 주렁주렁 달린 뒷뜰 deck에 현판을 걸었었다.

“은혜원(恩惠園)” – 뒷뜰을 바라보거나 그 곳에 나가 앉아있을라치면 내가 느꼈던 감정을 드러낸 작명이었다. 현판 글씨는 아버님께서 써 주셨다. 그 등나무 그늘 아래서 초, 중, 고, 대학을 마친 내 아이들이, 이젠 아버님처럼 이따금 들르는 곳이 되었다.

몇 해전이던가? 거동이 불편해지신 아버님께서 내 집을 찾으시는 일도 아주 드물어지고, 아이들도 더는 자기 집이 아니게 될 무렵부터 나 역시 뒤뜰에 나갈 일이 부쩍 줄기 시작하였다.

등나무 줄기와 포도나무 줄기가 엉겨 라일락 나무를 휘감기 시작한 것 조차 모르고 한 해를 넘긴  후에야 등나무와 포도나무가 더는 은혜원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었다.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그 무렵 등나무와 포도나무는 내 은혜원을 파괴하는 무법자였을 뿐이었다.

등나무와 포도나무의 만행으로 라이락을 잃고 나서야 나는 분노하였고, 두 해 전 봄에 등나무와 포도나무 밑둥과 deck 기둥들에 전기톱을 대어 잘라내었다. 물론 “은혜원(恩惠園)” 현판을 떼어낸 일이 먼저였다.

갈등(葛藤)이 아닌 포등(葡藤)이 빚어낸 참사였다. 아니 내 게으름이 만들어낸 아픔이었다. 그렇게 휑하게 변해버린 뒷뜰을 이젠 다시 가꾸려 한다.

Deck을 다시 꾸미고 꽃나무를 심으려 한다. 글쎄… 언제 그 세월을 맞을런가는 알 수 없지만…. 이따금 찾아올 지도 모를 내 손주들을 위하여….

**** 이즈음 한국 소식을 들으며 밑둥까지 잘라낸 내 뒷뜰  등나무가 자꾸 생각나는지. 갈등의 밑둥이 아니라 갈등의 원인을 송두리째 뽑아버릴 기회는 어느 민족 어느 개인에게나 주어지기 마련아닐까?

비 맞으며 필라 친구들과 함께 하고 온 날 밤에.

2-25-17

 

단상(斷想) – 미국과 한반도

지난 주에 가게 손님 몇 분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19세기도 아니고 이해를 못하겠어. 넌 (그들과 같은) 한국인으로 어떻게 생각해?”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지난 주초에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과 북한 정권에 대해 묻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친절하게도 관련 기사가 실린 신문을 건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난감해진답니다. 비단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어제 AP통신은 지난 주에 특유의 격정적 언어로 쏟아낸 트럼프의 연설에 대한 팩트 체크를 확인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마약중독의 대담성(뻔뻔함?)<The audacity of hype> 제목의 그 기사 가운데 하나랍니다.

TRUMP: “To be honest I inherited a mess. It’s a mess. At home and abroad, a mess.”

THE FACTS: A mess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But by almost every economic measure, Obama inherited a far worse situation when he became president in 2009 than he left for Trump. He had to deal with the worst downturn since the Depression.

트럼프는 전임 오바마대통령으로 부터 모든 것이 엉망인 채로 혼란 투성이인 정부를 물려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을 따지고 보면 오바마가 8년 전에 공화당 정권으로부터 물려 받았던 정부의 모습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처참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엉망으로 보는 것은 그렇게 보는 사람의 시각이라는 것이지요.( A mess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거니와 그 모든 것을 옳고 그름으로만 편갈라 나누는 일은 마뜩지 않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히 ‘아니오’라고 할 만한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무엇인가를 우상화하는 상황이나 일을 마주할 때입니다. 그것이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될 수도 있겠지만, 역사 이래 사람들이 살아오며 깨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김정남에 대한 기사들을 훑어 보다가 눈에 뜨인 단어가 ‘백두혈통(白頭血統)’입니다. 구차한 설명이 필요없는 전근대적인 우상화로 유지되고 있는 북한체제의 실상을 전해주는 말입니다.

이에 반하여 질서와 법규를 앞세워 상징조작으로 대중의 눈을 속이는 지금의 트럼프 정권의 행태 역시 우상화의 한 범주입니다.

어떤 이념이나 질서를 앞세워 극단적으로 나(또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부정하는 구조악(構造惡)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지금의 미국이나 남북한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믿음이 팽배해진 사회는 이미 우상을 이고사는 사람들의 집합체일 뿐일겝니다.

이즈음 미국사회가 겪고있는 극심한 계층 또는 집단간의 대립이나 한반도 남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모습들을 보면서 옳고 그름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의 싸움으로 제가 치부하는 까닭입니다. 그 싸움조차 허락치 않는 한반도 북쪽은 논외로 치고 말입니다.

미국은 현재 제가 이고 사는 세상이고, 내 인생의 전반부 30여년을 살았던 한반도 남쪽 사람들에게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믿음을 심어주어 우상이 된 이는 박정희라는 제 오래된 생각인데, 이즈음 그쪽 소식들을 보면 그 생각이 더욱 굳어진답니다.

지금, 우리는…

피해자는 너무나 많이 기억하는 반면에, 가해자는 너무나 적게 기억한다. –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오늘 동네에서 저와 같은 업종인 세탁업을 하는 이에게 들은 말입니다. 자기 가게에서 일하는 멕시칸들이 이번 주 목요일에 모두 일을 못하겠다고 했답니다. 7명의 멕시칸 종업원들이 모두 그 날 하루는 쉬겠다고 통보를 했다는 것이지요. 사연인즉 Wilmington시내에 있는 St Paul’s Church에서 이번 목요일에 열리는 트럼프의 이민자들에 대한 행정명령을 규탄하는 모임에 참석해야하기 때문이랍니다.

한인 커뮤니티에도 이런저런 걱정과 우려들이 떠도는 이즈음이지만, 사실 저처럼 촌에 살고 있거나 이 땅의 시민이 된지도 제법 시간이 흐른 사람들에겐 솔직히 무관한 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정황이었답니다. 그런데 트럼프의 광기가 이렇게 우리들의 생업에 가까이 다가온 것이지요. 실제 히스패닉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한인들은 걱정이 많다고들 합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 동네 신문인 News Journal은 어제  Newark시에서 있었던 행사 하나를 제법 크게 소개했답니다. Newark시는 제 가게가 있는 곳이고, 행사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시위였답니다.

newark march

신문은 시위에 참석한 이들의 목소리를 이렇게 전하고 있답니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다양성이다. Diversity is what makes America great.”, “우리는 낯선 이들을 환영한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건, 우리는 그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We welcome that stranger. We fight for that stranger, no matter where that stranger is from.”, “우리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We are going to win this battle.”

트럼프 치하의 미국이 앓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한국계 시민으로서 멕시칸들을 비롯한 이민자들과 이 땅의 건강한 시민들과 손잡고  승리하는 대열에 함께 해야 할 때입니다.

봄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뜻맞는 이들이 모여, 작으나마 기금을 모아 밝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쓰자는 뜻으로 재단을 세운지도 제법 되었답니다. 비록 작지만 꾸준했기에 이제 거의 재단의 틀이 짜여져 간답니다. ‘희망재단(Hope Network Foundation)’이라는 이름으로 등록을 마친 일도 꽤 오래 전입니다.

그렇다고 이제껏 내세울만한 대단한 일을 해 본적은 없답니다.

그래도 명색이 재단이므로 이사회를 연답니다. 올들어 첫 이사회를 준비하면서 지난 분기에 했던 일들을 정리해 보는 것이지요.

그 중 하나랍니다. 지난 해 북한에 큰 홍수가 나서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 고통을 이고 사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 무렵에 ‘희망재단(Hope Network Foundation)’의 이름으로 적으나마 그들을 돕는 일에 함께 한 적이 있었답니다.

작은 금액의 돈을 유엔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 WFP) 미국본부에 보냈던 것인데, 뒤늦게 WFP에서 감사의 편지를 받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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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를 준비하면서 잊고 있었던 함경북도 수재민들을 생각해 본답니다. 비단 북의 수재민들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고통과 아픔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자연의 시계로 오는 봄은 때가 되면 오는 법이지만, 사람들이 기다리는 봄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는 것일까요?

일찍이 법정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을 주셨답니다.

<그것은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련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비극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새날을 비상(飛翔)하는 의지의 날개가 꺽이지 않는 한 좌절이란 있을 수 없다. 어제를 딛고 오늘은 일어서야 한다. >

‘희망재단(Hope Network Foundation)’이 봄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혼돈의 시대

가치(value, 價値)의 혼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말입니다. 어느 아주머님(할머님?)께서 던졌다는 외침 ‘염병하네’라는 말이 가슴에 닿는 이즈음입니다.

‘염병하네’보다는 ‘옘뱅하네’로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말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 흔히 듣고 사용했던 말인데, 통상은 ‘옘뱅하네’만 따로 쓰진 않았고 그 앞에 ‘지랄’이라는 말을 얹었던 것 같습니다. ‘지랄 옘병하네’라고 말이지요. 때론 그 앞에 한마디 덧붙이곤 하였지요. ‘미친 년(놈) 지랄 옘뱅하네’라고 말이지요.

길을 걸으며 담배 꽁초를 버리고 침을 뱉고 하는 일이야 지극히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말이 익숙했던 때 말입니다. 실제 동네마다 ‘미친 놈(년)’들이 하나 둘 씩은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랄 옘병’을 하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던 진짜 환자들을 거리에서 보는 일이 그닥 신기한 일이 아닐 때였습니다.

1960대의 일입니다.

그렇다고 ‘미친 년(놈) 지랄 옘병하네’라는 말을 정신 줄 놓고 앓는 환자들에게 쓰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멀쩡하게 제 정신으로 사는 놈년들이 비정상적,비상식적인 말이나 행동을 할 때 그 욕을 퍼부었지 않았나 하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그런데 2017년 오늘 듣는 ‘염병하네’라는 말이 트럼프 치하의 미국이나 탄핵정국의 한국을 설명하는 말로 이리도 적합할 수 있는지 놀란 마음이랍니다.

‘미친 놈(년) 지랄 옘병’하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2017년에 말입니다.

그래 가치(value, 價値)의 혼돈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가치(value, 價値)’를 둘러싼 투쟁의 역사>일 수도 있겠습니다.

내 삶에 중요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