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초침은 분침이 되고, 분침은 시침이 된 듯한 한주간이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온전히 내 마음에 달렸다.

조금은 더 버틸 듯 하시던 장인 어른이 맥을 완전히 놓아 버린 것은 지난 화요일 밤이었다. 아내와 나는 준비했던 대로 조촐히 그를 떠나 보내는 순서를 진행했다.

생각할수록 죽음은 삶과 닿아 있다.

나는 어제 모처럼 추운 겨울 밤, 함께 했던 이들 앞에서 내 장인 어른을 기렸다.


제가 장인어른에게 받았던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으로 제 장인 어른의 약력 소개와 추억을 대신 하렵니다.

장인과 사위 사이로 산지 거의 사십년이 다 되어 갑니다. 서로 알만큼 알만한 시간이 흐른 셈입니다. 장인 어른과 제가 닮은 게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즈음 세상과 달리 아들을 딸보다 귀하게 생각했던 시절에 딸 셋, 아들 하나로 태어나 자랐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아들 바라기가 심한 부모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이쯤 말씀드리면 장인과 제 성격이 닮은 거 빤하게 드러나게 마련이지요. 고집 세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서로 마주하면  자기 모습이 빤히 보이는데… 뭐 애틋한 정을 쌓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거 이해들 하실겝니다.

물론 장인 어른이 저하고 다르거나 뛰어나신 것들이 많으셨습니다. 우선 제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잘 생기셨고, 하나님께 받은 재능들이 참 많으셨던 분이십니다. 특히 예술적인 감각이랄까 이런데 아주 뛰어나신 분이셨습니다. 주색잡기 중에 주색은 모르겠지만 잡기에는 여러모로 뛰어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가 Diana 노래를 부를 땐 영락없이  Paul Anka 였고,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부를 땐  Tom Jones 인 듯 할 정도로 노래도 잘 했답니다.

그러다 어르신 떠나 가신 후 어른의 약력을 정리하다가 제 장인에 대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또한 제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삶의 모형이었습니다. 바로 이타심, 이웃에 대한 배려, 약자에 대한 삶의 자세 그런 것들이었지요.

제 장인은 유머에 매우 능했고 이야기 거리가 참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유머가 때론 너무 과해 이른바 블랙 코미디를 즐겨하셔서 함께 있던 이들이 미처 그 웃음 코드를 이해 못해서 종종 난감해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지만, 그 바탕엔 그저 아이같은 순진함이 깔려 있었답니다. 제 아내가 딱 이런 점을 닮아서 제가 잘 이해를 한답니다. 제 아내가 참 순진하고 착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무튼 장인이 즐겨 하셨던 이야기거리의 두 중심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18살에 이른바 카투사라는 미군 배속부대 제 1기 로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지낸 6년여 동안의 군생활 이야기가 하나였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공로로 한미 양국에서 무공훈장을 받았으니 그 시절 이야기를 그가 질리도록 하여도 들을만 했답니다.

둘째는 제대 후에 거의 그의 전 생애 황금기를 이룬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소방대장이었습니다. 주한 미군병연내 소방대와 주베트남 미군병영내 소방대장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공항소방대장을 보낸 세월 이야기였습니다. 제 장인 어른의 별칭은 이대장이었답니다. 그 호칭을 자랑스러워 하셨고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제 장인의 이력으로 그의 삶을 다시 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이전에 그가 공부한 사회사업과 전쟁이후 맹아학교 선생님 이력이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삶의 한 단면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은퇴이후 이곳 윌밍톤시에 사시면서 한 이십여년 동안 영어로 언어 소통이 어려운 이웃들의 일상적인 삶에 작은 도움을 베풀며 사신 삶도 다시 새기는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장모 먼저 보내고 홀로 사셨던 3년간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제게 다가왔었습니다. 특히나 노인시설에서 그저 누어 지내셨어야만 했던 마지막 1년 동안, 그가 그의 삶의 마지막 시간들을 덤덤히 준비하고 맞았던 모습들은 제게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자! 이제 제게 주신 장인의 큰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입니다.

몇 주 전이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모처럼 정신이 말짱하셨던 날이었습니다. 아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가지고 간 셔츠를 입혀드리려고 하니 싫다며 짜증을 부리셨고, 아내는 굳이 입혀 드리려고 애를 썼답니다. 그 때 장인이 제게 하신 말씀. “김서방! 재랑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어?’

그리고 잠시 후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장인 어른 웃음 가득한 얼굴로 제게 말씀 하셨답니다. “김서방, 정말 고마워.”

장인과 제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나눈 이야기랍니다.

바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지요.

이제 내 장인 어른 영혼의 얼굴에 웃음 꽃이 끊이지 않을 것임을 믿고 기원하며…

일상(日常)에

겨울도 없이 봄이 오는 듯한 날씨에 들판 길을 걸었다. 집에서 반 시간 정도 달려 다다른 펜주 West Chester County의 Stroud Preserve 산책길은 일요일 아침 내 일상을 매우 풍요롭게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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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에 철학자 강영안 선생이 쓴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생각하기 ;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를 훑어 읽다.

<일상은 무엇인가? 일상(日常)은 문자 그대로 따라 하자면 “늘 같은 하루”이다. ‘하루하루가 늘 같다”는 말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타인을 만나고, 읽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일, 이렇게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는 삶. 때로는 파안대소할 정도로 즐거운 일이 있는가 하면, 절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슬픈 일이 있기도 한 삶. 그러나 대부분은 크게 즐거워할 일도 , 크게 슬퍼할 일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는 삶. 이것이 일상이다.

사람이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고(필연성), 진행되는 일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비슷하고(유사성), 반복되고(반복성), 특별히 두드러진 것이 없으면서(평범성), 어느 하나도 영원히 남아 있지 않고 덧없이 지나가는(일시성) 삶. 이것이 일상이요, 일상의 삶이다.

-중략-

눈이 있고 귀가 있고 받아들일 가슴이 있다면 일상은 단순한 반복도, 단순한 필연도, 단순히 평범하기만 한 현실이 아니라 자유를 경험하고 깊은 의미를 체험하는 삶의 장소이다.>

아침 산책길에서 오간 생각들과 강영안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일상으로 이어지는 내 새로운 한해의 꿈을 품다.

저녁길에

매사 그저 덤덤해 지는 일이 많은 것으로 보아 영락없는 노인이다. 성탄, 연말, 연시,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주말 등등 시간을 나누는 일에 그저 덤덤하기에 해 보는 소리다.

아내와 함께 해가 지는 공원길을 걷다.

우리 부부는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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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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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풀들은 지는 햇빛을 온 몸으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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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모두가 일상적인 매 순간 순간들이 엄숙한 시간들인 동시에 덤덤한 시간으로 새길 수 있다면 나이 드는 일이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아니다.

또 한 해를 보내는 저녁길에서 곱씹어 보는 감사가 크다.

성탄에

오랜만에 전화 안부 인사를 나눈 캘리포니아 조선생님은 여전히 왕성한 현역이었다. 올해 일흔 고개를 넘어선 그의 새해 포부는 가히 다부지다. 그런 그가 내게 말했다. ‘김선생도 늙어가나 보오.’ 칠십 고개를 향해 올라가는 내 언행에 대한 격려였을 게다.

성탄 이브에 막내 동생이 대가족을 위한 저녁 상을 거하게 차렸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귀여운 나이들인 조카 손주들 재롱에 내 어머니 총기가 되살아난 저녁이었다. 이즈음 가끔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시간이란 참 별거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조카 손주들을 번갈아 보고 있노라면 이백년 세월을 능히 가늠케 한다.

하여 오늘 아침 내가 하늘을 담았었나 보다.

먼동 트는 하늘이 그리 멋지게 다가온 까닭은 금새라도 꺼질 듯한 가는 빛으로 떠 있는 그믐달 때문이었기에.

먼동에서 그믐달까지 연이 닿아 함께 세월을 이어가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기를.

내 안에  그 맘 하나 들어와 성탄이다.

  1. 2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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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의 집

부부가 모두 은퇴한 이후 내 가게 출입이 아주 뜸해진 Gaskin씨가 자기 집에서 여는 성탄 파티에 초대한 것은 몇 주 전 일이었다. 그리고 어제 오후 그는 일부러 내 가게를 찾아와 저녁에 있을 파티 참여를 확인했다. 사실 그 몇 주 사이에 같은 시간에 열리는 다른 송년모임이 생겨 망설이고 있던 터였다.

예전에 비해 거의 발길 끊긴 손님이 파티 준비로 여러모로 바쁠 시간에 구태여 찾아와 함께 하자는 말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겹쳐 우리 부부의 발길은  Gaskin씨네로 향했다.

해마다 이맘 때 벌어지는 Gaskin씨네 파티는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두 부부의 직장 동료 및 동호회 모임 식구들에 이르기 까지 많은 이들이 함께 하는 제법 큰 성탄 잔치이다. 우리 부부는 Gaskin씨 부부가 애용하는 세탁소 주인이로서 이 잔치에 여러 해 동안 함께 했었는데, 지난 해는 건너 뛰었다.

부부 모두 이미 은퇴한 후 시간이 흘렀건만 많은 전 직장 동료들을 비롯해 동네 사람들 까지 족히 백여명이 넘는 이들이 엊저녁에도 함께 했다.DSC09270 DSC09289

부부는 현관에서 일일이 손님들을 맞았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맘껏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며 흥겨운 저녁 시간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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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주자이자 싱어인 산타의 추임새에 따라 신나게 두드리는 드럼 주자, 이어지는 색스폰 주자의 소리와 기타를 이빨로 튕기는 신공을 보여준 기타리스트까지 잔치자리 흥의 중심은 단연코 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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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멤버들 가운데 가장 분주한 이는 이 밴드의 트럼펫 주자인Gaskin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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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흥겨운 잔치자리에서 내가 찾아낸 파티의 주인공은 산타들이었다.

남녀노소와 인종을 불문한 수많은 산타들이 어제 잔치 자리에 주인공이 되어 함께 했다.  산타들을 초대한  Mrs. Gaskin에 따르면 그 산타들 역시 하나하나 일일이 초대했다고 한다. 그녀는 알라스카, 플로리다 등지에서  부부가 여행 중에 만난 산타들을 하나하나 모셔 왔다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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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는 가히 산타들의 집’이라고.

그리고 오늘, 이즈음 읽고 있던 책 한 권 마무리하며 덮기 직전에 만난 글에서 Gaskin씨 성탄 잔치의 뜻을 곱씹어 보다.

<성서가 말하는 영원한 생명은 죽지 않고 끝없이 연장되는 삶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시간의 끝없는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이웃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세우는 삶의 깊이 내지 ‘삶의 질’을 말한다. …. 이 세상의 연약한 피조물에 대한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현재적으로 경험된다.>

Gaskin씨 부부와 그들과 늘 함께 사는 산타들이 머무는 집에서 맛 본 사랑을 생각하며.

2019년 성탄의 계절에.

124

욕심에

내가 잘하는 것 딱 한 가지, 잠을 참 잘 자는 습관 아님 버릇이다. 통상 밤잠 여섯 시간, 낮잠 삼십 분 , 정말 꿀잠을 잔다. 낮잠이든 밤잠이든 누우면 그만 깊은 잠에 빠져들고 딱 정해진 시간이면 눈을 뜬다. 세상 무너지는 걱정이 코 앞에 있어도 누우면 그냥 잠에 빠져든다.

그런 내가 간밤에 잠을 설쳤다. 깊게 잠들을 시간인 새벽 세시에 눈을 떠 그대로 아침을 맞았다. 그렇게 깨진 리듬으로 하여 뒤숭숭하게 하루 해를 보냈다. 가만히 따져보니 모두 내 욕심 탓이다.

지난 토요일에 찾아 뵌 아버지는 좁은 아파트 방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당신의 삶에 답답함을 토로하셨다. 이젠 그 답답함조차 다 그대로 받아 들이실 나이에 대해 말하는 내 이야기는 아버지에게 뿐만 아니라 내게도 그냥 공허할 뿐이었다.

이튿날, 아내와 함께 Longwood Garden 정원 길을 걸으며 더 늦기 전에 부모님 모시고 화사한 장식으로 꾸며진 이 정원을 함께 즐겨야 하겠다는  생각을 굳혔었다.

그리고 어제 정원이 비교적 한가한 아침 시간에 부모님을 모시고 정원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아이처럼 마냥 좋아하셨고, 어머니는 세상 꽃구경 다했노라시며 즐거워 하셨다. 한식당이 좋겠다는 어머니 생각에 따라 나눈 점심 밥상에서 두 분은 평소보다 많은 양의 식사를 하셨고, 그냥 좋다는 말씀을 이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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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거기까지였다. 어머니의 기억의 방은 그 즐거움을 담긴엔 이미 꽉 채워져 있었고, 아버지의 삶은 지난 토요일 좁은 아파트 방안으로 돌아가 있었다.

어제 늦은 저녁까지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에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어제 밤 내가 잠을 설친 까닭은 그래 모두 내 욕심 탓인게다.

그래도 그저 고마운 것 하나, 어머니가 아직은 아들 며느리 얼굴과 목소리 익히 알고 그저 고맙다는 말씀 이어가는 일.

어제 아내가 어머니를 웃게 했던 한 마디, ‘어머니, 봄에 꽃 필 때 다시 와요!’

늦은 밤,정호승의 시 하나 눈으로 읽다.

<어머니 장독대 위에/ 정한수 한 그룻 떠 놓고 달님에게 빌으시다.>

오늘 밤은 깊게 잠을 잘 수 있을게다.

 

장식에

타고난 내 성격 탓일게다. 매사 극단적 사고나 선택은 피하는 편이거니와, 때론 그런 생각이나 주장에 대해 강하게 거부나 반대의 목청을 높이곤 하는 성정은 나이 들어도 바뀌질 않는다. 믿음도 예외는 아니다.

모처럼 참석한 예배 설교 시간, 그저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믿음 안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미화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갸웃했던 것이다.

어쩌면 계절 탓인지도 모르겠다.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이즈음,  믿음 안에서 맞는 죽음까지 아름다워야 할 까닭들도 있을게다.

아무리 그래도 누군가의 죽음이 살아있는 자들의 장식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오후에 아내와 함께 성탄 장식으로 화사하게 꾸며진 Longwood Garden 정원을 걸었다. 아내와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DSC09058DSC09072 DSC09085 DSC09095 DSC09111 DSC09119DSC09167 DSC09168 DSC09169 DSC09175 DSC09177 DSC09200 DSC09204 DSC09211

인형같은 어린아이들이 장식에 홀려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며 내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내 아이들이 저렇게 인형 같았을 어린 시절에 왜 이런 장식을 함께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떠오른 최근에 읽은 책 속 한 대목.

<자기를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세상과 작별하고자 한다고 말하면서, 병에서 치료되어 계속 살기를 희망하는 것은 얼마나 감격적인 모순인가! 그러나 비록 신자(信者)라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 아닌가?>

정원을 나서며 사무실에 들려 wheelchair 사용에 대해 묻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 모시고 이 정원을 함께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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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기쁨

한 해 마무리를 재촉하는 주일 아침에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 한 통 띄우다. 어쩌면 내게 보낸 편지일지도.


어느새 12월 중순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새로운 꿈들을 꾸어 보는 때입니다.

연 이틀 비가 내리던 어제 오후, 가게가 한가해진 시간에 잠시 저의 한 해를 돌아보았답니다. 그렇게 시간을 돌아보며 스스로 되여 본 말은 그저 감사랍니다.

올 한 해 가게 자리를 옮겼고 그 과정에서 여러 걱정들이 있었지만 그 걱정들이 부질없었음을 깨닫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가 첫째였습니다.

저희 부부가 이제껏 살아오며 제일 많이 병원을 드나든   였지만저희들을 그렇게 병원을 찾게 했던 노부모님들이 오늘도 살아 계심에 대한 감사가 둘째입니다.

카운터에 놓인 장미 화분을 보며 든 아내와 제 아이들에 대한 감사가 세번 째입니다. 며칠 전 생일을 맞은 아내에게 제 딸아이가 보낸 장미 화분이랍니다.

그 감사에 대한 생각 끝에 이어진 것은 아쉬움입니다. 올 한 해 이루지 못한 것들, 계획과 엇나간 일들, 여전히 이어지는 이런 저런 불안과 아픔들입니다.

그리고 어제 늦은 밤, 새로 산 시집 시들을 읽다가 번쩍 눈이 뜨이는 즐거움을 맛보았답니다.

<내비게이터를 꺼버려/ 대충 방향 잡고 돌아 오는 길/ 도로가 한갓지다. / …  / 하늘에는 멎은 듯 흐르는 넓은 구름 강물/ 있다가 없다가 다시 있는 것들의 모습

이왕 길을 벗어난 김에/ 물새들과 알 듯 모를 듯 같이 걷는 해변, 번지는 황혼/ 금빛 우려낸 빛이 사방에 어른댄다./ …  / 하늘에 희한하게 하얀 반달 하나/ 찾으면 있고. 않으면 없고.>

황동규라는 시인이 쓴 ‘내이비게터를 끈 여행’이라는 시의 일부랍니다. 시인의 나이 올해 여든 한 살인데 아직도 왕성히 시를 쓰고 있답니다.

그가 시집을 내며 하는 이야기랍니다.

<시를 좇아가다 보니 바야흐로 삶의 가을이다. 주위에 자신의 때깔로 단풍 들거나 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가득 찬 잔만큼 아직 남은 잔이 마음을 황홀케 한다. 벌레 문 자국같이 조그맣고 가려운 이 ‘사는 기쁨’ 용서하시게.>

이제 올 해도 겨우 보름 남짓 남았습니다. 뭐 크게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올 한 해 ‘남은 잔이 마음을 황홀케’하는 시간들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Mid-December came so soon. It is a time to wrap up a year and to dream a new dream for a new year.

Yesterday afternoon when the store was quiet and while the rain continued for two consecutive days, I tried to look back over the year. It was just gratitude which I reiterated and listened to myself, while I was looking back on the year 2019.

This year, I moved the store and had many worries in the process of moving. But, it was like I cried before I was hurt. To get to realize it was the first gratitude.

Though my wife and I had to go to the hospital this year more often than any other year because of my father-in-law and my parents, the gratitude for their being alive today was the second.

The third was the gratitude for my wife and children, which came across when I looked at the pot of roses on the cleaners’ counter. It was what my daughter had sent to my wife as a birthday gift the other day.

What followed after the gratitude was a sense of regrets and frustration, because of the thoughts about things to be done but unfinished, things that went awry, and this and that anxiety and suffering.

Then, last night, while I was reading a new book of poetry which I had gotten recently, I enjoyed an eye-opening happiness.

<Turning off the navigator/I took the course roughly, returning/the road was deserted./… /A wide river of clouds which looks to halt but flows in the sky/the look of things which appear, disappear and appear again.

Once straying from the right path/the beach on which I walked with waterfowl as if we both knew or not, spreading twilight/the lights brewing golden light glimmered everywhere./ … /The strangely white half-moon in the sky/was there when I looked for it and was not there when I didn’t>

It is a part of a poem, “A Trip with the Turned-off Navigator,” which Dong-gyu Hwang wrote. Though he is eighty-one years old, he is still very active in writing poetry.

He wrote in the preface of the book:

<As I have followed the poetry, I now stand at the autumn of my life. Those who have turned or are turning into their own colors around me are beautiful. A still-some-left glass makes my mind thrilled as much as a full glass. Please forgive me for this ‘joy of living’ which is small and itchy like a bug bite.>

Now only about half a month is left before the end of this year.

I wish that you will have time in which a still-some-left glass makes your mind thrilled for the remaining days of this year, if not life itself.

From your cleaners.

장미에

‘결혼 기념일?’ 아님 ‘누구 생일?’. 카운터에 새롭게 놓인 장미 화병을 보며 손님 몇이 아내에게 던진 물음이란다.

어제 딸아이가 각기 12송이씩 묶은 장미 두 다발을 보내왔다. 나름 생각 깊은 아이가 숫자 놀음을 했겠다 싶지만 툭 튀어 나온 내 혼자 소리, ‘쯔쯔쯔, 돈 아까운지 모르고…. 뭘 …한다발이어도 족한데…”. 아내는 싫지 않은 듯 내 괜한 트집에 토를 달지 않았다.

내 젊은 시절 고약한 기억 가운데 하나인 12.12 사태 이전부터 아내의 생일을 함께 했으니 우리 부부가 함께 한 세월도 만만치 않다.

나는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우기지만 아내는 큰 연(緣)이라고 믿는 우리 가족 생일력이  그 세월과 늘 함께 한다. 생일력이란  2땡, 9땡, 10땡, 12땡으로 월과 일이 함께 하는 우리 네 식구 생일에 대한 이야기다.

딸아이 덕에 집과 가게가 장미 화병으로 화사하다.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라 아내의 십대 초반 어린 시절이 환하게 보이는데… 쯔쯔… 어느새 아내도 은퇴연금 수령이 가능한 나이가 되었다. 그게 웬지 또 공연히 미안하다.

이젠 제법 시간이 흘렀다만, 이민 후 살 만 하다 싶었을 무렵 내 엉뚱한 욕심으로 하여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치루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나는 거의 삶에 대해 체념(諦念) 상태였다. 허나 아내는 늘 웃었고 우스개 소리를 끊이지 않았었다.

나의 체諦가 깨달음의 제諦가 되는 세상을 맛보게 한 것은 아내였다.

하여 살며 내가 맛보는 즐거움의 반은 온전히 아내에게서 온다.

장미를 안겨 나를 깨운 딸아이에게도 아낌없는 한 몫.

고마움을.

성탄 또는 성서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성서 베드로전서 1장 24절(새번역에서)

설교자는 말씀하셨다. ‘어느 날 떨어지는 꽃잎처럼 삶은 유한할지언정 우리네 삶을 꽃이라 비유하신 사도들의 신앙고백은 얼마나 감사한가! 또 그런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신 신의 은총은 얼마나 큰가! 우리 모두 언젠가 확실히 떨어지고 말 꽃들이다, 다만 그 언젠가를 우리는 가늠할 수 없기에 불확실한 존재들이다. 모든 생각들을 접고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 모두는 꽃이다. 오늘을 꽃처럼 살자!’

그리고 설교자는  ‘아름다운 꽃처럼 설다 간 사람’이라고 내 장모를 기렸다.

장모가 세상 뜬지 오늘로 딱 만 삼년, 델라웨어 한인 침례교회 이홍목사님을 비롯해 교회 공동체들이 장모 삼주기 추모 예배 자리를 마련해 주어 함께 했다. 그저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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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후 아내와 아들 내외와 함께 장모 쉬시는 공원을 찾다. 장모 계시는 곳, 바로 앞 묘지 터엔 오래 전 예약해 놓은 내 부모와 우리 부부가 누울 자리가 있다. 장인은 장모와 합장이 예약되어 있고… 묘지 공원엔 성탄이 이미 함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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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시간을 쪼개어 준 아들 내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해 보낸 후, 일흔 세 해  함께 사시며 이젠 오락가락하는 정신 줄 같이 붙들고 씨름하시는 어머니, 아버지를 뵙다. ‘이젠 진짜 갈 때가 됬는데… 왜 이리 안 데려 가신다니…’ 어머니 푸념에 그저 웃으며 답하다. ‘아이고 오늘 얼굴 좋으시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장인 누워 계신 양로시설에 들리다. 대낮에도 한밤 중이시던 양반이 잠시 깨어 묻는다. ‘김서방 나이가 몇 이야? 김서방도 나이 많지?’ 나는 또 웃으며 말했다. ‘에이 장인보단 한참 젊지요!’

양로시설 성탄 장식은 정물화(靜物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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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휴일 낮잠을 즐기려던 계획은 수포가 되었다.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으므로. 낮잠 대신 동네 한바퀴를 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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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도 늦은 걸음으로 성탄이 오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해를 보내고 마주 한 컴퓨터 모니터가 전해 준 세상 소식 가운데 하나.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엇비슷한 생각으로 이즈음 삶의 결을 같이 하고 있는 벗의 모친상 소식.

하여 다시 손에 들어 보는 성서. 그리고 떠오른 안병무선생님의 말씀 하나.

<성서는 묻지 않으면 침묵한다. 그런데 어떻게 묻느냐 하는 것이 대답을 유도한다. 우리는 성서를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이에 대답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성서 대신 아집에 정좌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려면 계속 성서를 향해 물어야 한다. 그런데 물을 때에는 언제나 어떤 관심이나 전제를 갖고 묻는다. 관심이나 전제 없는 성서해석은 없다. 까닭은 성서를 읽을 마음이 나는 것은 그것에 관심이 갈 때 가능하며 그 관심은 성서가 이런 대답을 줄 수 있으리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관심이나 전제가 묻는 자의 삶과 최단 거리에 있으면 있는 만큼 그 물음이 진실하며 그것에서 얻는 대답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 된다.>

오늘, 삶 또는 죽음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