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이야기 셋

  • 하나.

“어제 어떻게 지냈니?” 가게 손님 한 분이 내게 던진 물음이다. “아내와 딸과 함께 아주 조용히… 당신은?”. 내 응답에 그녀의 이어진 질문, “나도 남편과 단 둘이 조용히… 우리 가족들 하고는 Zoom으로 함께 두루 안부를 묻는 시간을 가졌는데… 넌 그렇게 하진 않았니?” 유태계 은퇴 변호사 마나님의 연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 그리고 내 응답, “그랬구나, 우리 가족들도 그렇게 Zoom으로 함께 했단다.”

어제 추수감사절 오후 한 때, 필라델피아에 아들 내외와 아틀란타에 있는 동생 내외와 조카 조카손주들 그리고  사촌 동생네,  시카고와 워싱톤에 사는 조카들 조카 손주들, 우리 동네에서 함께 사는 누이네들과 조카들 모두 Zoom으로 추수감사절을 함께 했다. 함께 하지 못한 아버지는 늦은 저녁 아이들 전화 인사로 흡족해 하셨다.

지난 일요일 거의 아홉 달 만에 집으로 모셔온 내 딸아이는 거의 상전이다. 뉴욕 맨하턴에서 차를 태운 순간부터 마스크를 써라 창문을 열어라 쉬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갔음 좋겠다 등등. 집으로 돌아와서도 따로 밥상 받기, 거리 유지 하기, 마스크 쓰기 등등 까탈스럽기 그지 없다. 재택근무 중인 아이는 연말까지 내 집에 머무를 요량인데 아내와 내게 내리는 명령들이 단호하다. 나는 그런 딸애가 참 좋다.

어제 추수감사절 밥상은 딸아이 혼자  다 차렸다. 고모들네 저녁까지 넉넉히. 아이의 손 솜씨가 제법이었다.

이젠 시집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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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

추수감사절 앞에 받은 옆서 한 장. 우리 부부에겐 영원한 우체부인 Johnson씨가 보낸 은퇴 인사였다.

내 세탁소 바로 뒤편에 있는 Newark 우체국에서만 만 36년동안 일했던 그가 은퇴한다는 인사 엽서를 보며 한 동안 찡한 생각들이 오고 갔다.

이즈음은 검은 얼굴에 허연 머리털과 풍성하고 흰 수염으로 마치 산타가 다 된 노인이 되었다만 참으로 억척스런 사내다. 나보다 몇 살 아래이긴 하지만 아이들 나이가 서로 비슷해 친구 같은 이다. 한참 아이들 키울 땐 우체국 일이 끝나면 그로서리 생선 가게에서 생선을 다듬는 등 억척스레 애비 노릇을 다했던 사람이다. 보답이랄까? 아이들 모두 정말 잘 컷다.

그가 일을 하며 많은 이들에게 좋은 소식 나쁜 소식들을 전하는 일에 충실했다 했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 그는 좋은 소식보다는 귀찮고 듣기 싫은 소식들을 더 많이 전했었다. 내가 가게에서 주로 받는 편지들이란 거의 대부분 각종 공과금 고지서나 공공 기관들에 서 보내온 서류들이 대부분이었다. 허나 따지고 보면 그런 소식들에게 응답했기에 내게 오늘이 있었으므로 그에게 감사로 응답하는 일은 당연할 터.

그의 은퇴에 박수를, 그가 만들어 나갈 새로운 삶을 위해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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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아침에 읽은 블룸버그 발 뉴스 하나.  <정말 힘든 시간들- 재택근무 시대가 세탁업을 조이고 있다. ‘Ugly, Ugly Time’: Work-From-Home Era Crushes U.S. Dry Cleaners>라는 제목의 기사다.

팬데믹 이후 자영업들이 겪어 오는 어려움들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백신이 개발되어 공급되고 치료제가 일반화 되면 식당업이나 호텔 여행업 등등은 다시 호황을 맞을 가능성이 있지만, 세탁업은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상당 부분 나는 그 기사 내용에 동의한다. 지난 구 개월 사이 6개 중 한개의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거나 도산하는 업체들이 줄을 이을것이라거나, 여전히 평상시의 반도 못 미치는 매출을 기록하는 업소들이 대부분 이라는 상황 인식에도 동의한다.

오랜 재택근무의 경험들로 사람들의 의복 습관이 달라져 세탁업이 예전으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한가지.

추수와 절기는 때가 있듯, 모든 업종 역시 부침의 때가 있겠다만, 감사란 늘 나에게 달린 일.

뉴스가 내 추수감사절을 범하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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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살며 이따금 짜릿한 즐거움을 맛 보는 순간들이 있다. 가족들로 하여 그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때 그 맛은 극에 이른다.

오늘은 델라웨어 한국학교에서 학생들의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린 날이다. 솔직히 내가 어떤 작은 관심도 기울이지 못한 행사이다. 아내가 한국학교 교사이고 며느리가 학생이긴 하지만 내가 관여할 어떤 틈도 없거니와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오늘 낮에 아내가 보낸 카톡을 받기 직전까지는.

아내가 보낸 카톡엔 내 며늘아이가 대회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펼친 녹음파일이 있었다. 듣고나서 아내에게 보낸 내 첫 응답은 아내를 나무라는 말이었다. ‘아니 좀 애 한테 쉬운 말을 쓰게 했어야지, 그렇게 어려운 말들을…’ 늘 그렇듯 내 나무람은 아내에게 닿지 않았다. 언제나 옳은 아내 대답이었다. ‘내가 며늘아이의 선생은 아니지, 그 반 선생님은 따로 계시지. 내가 뭐랄 처지가 아니잖아. 나도 오늘 처음 들었거든.’

저녁 나절에 아들녀석과 며느리가 전한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며느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에게 고맙고, 어눌한 한국말 구사력으로 제 아내를 도운 아들 녀석이 고맙고, 무엇보다 문장 하나 하나에 숫자를 매겨 외우고 또 외었을 며늘아이가 고마웠다.

그 무엇보다도 이젠 모두 떠나신 내 어머니와 장모와 장인까지 추억해 준 며늘아이에 대한 고마움이라니…

내 며늘아이 이름은 ‘론다야 김’.

<가족>- 론다야 김

  1. 가족은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2.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바로 가족입니다.
  3. 제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때마다, 가족들이 영어로 말하면서 저를 배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 가족들은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영어로 말한 것을 알려주십니다.
  5. 제 어머님은 한국어로 특정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주십니다.
  6. 제 아버님은 특정 요리에서 어떤 조미료가 가장 잘 맞는지 설명해 주십니다.
  7. 제 할아버지께서는 군대와 한국사에 대해 알려주시고 할머니들께서는 제가 잘 챙겨 먹었는지 묻곤 하셨습니다.
  8. 저는 그분들의 친절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9. 그러나 저는 그분들에게 특정한 말을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0. 저는 가족과 저의 언어 장벽이 있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이 말하는 모국어를 말하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11.저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 몇 마디 말로 가족들 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2. 미래의 아이들과 언젠가는 한국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3. 저는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웁니다.
  4. 감사합니다.

뉴스와 삶

화복무문 화불단행(禍福無門 禍不單行)이라 했다던가? 좋은 일 나쁜 일이 내 생각대로 일어나는 일도 없거니와, 아니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기는 십상이다. 화(禍)나 복(福)의 크기는 저마다 다 다를 터이니, 무엇이 좋은 일이고 어떤 게 나쁜 일인지를 내 잣대로만 주장함은 마땅치 않다.

그렇다하여도 점점 심상치 않은 형국으로 빠져드는 이즈음 COVID 펜데믹 파동에 이르면 누구에게나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게다.

세탁소 카운터를 아크릴 판으로 가리고 마스크를 쓰고 6피트 거리를 유지한 채 손님들과 몇 번씩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서야 의사소통을 이루곤 하는 불편함일지라도 그런 불편함이 자주 있었으면 하는 바럠이 큰 이즈음이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내 세탁소를 찾은 오랜 단골 K씨, 내 또래인데 올들어 부쩍 허리가 휜 친구다. 그는 늘 내 까만 머리칼을 부러워 한다. 도대체 내 나이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그 점은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일흔을 턱에 건 나이에 난 아직 흰 머리카락은 거의 없는 편이다. 누군가는 머리를 얼마나 안 쓰고 살았으면 그 모양이냐고 우스개 소리를 건네기도 했었다.

모처럼 그와 오랜 시간을 아크릴 판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치 이야기까지 이르도록 이어지기 까지는 한가한 가게 형편의 도움이 있었다.

그는 참정권을 가진 나이에 이르러서 부터 오늘까지 영원한 공화당 지지자라고 하였다. 그는 내 가게가 위치한 동네 수준으로 보자면 경제적으로 중상위층에 속하는 아주 전형적인 백인으로 그 역시 칠십이 코 앞인 친구다.

그가 말하길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찍지 않은 일은 딱 두 번 있었단다.  첫 번 째는 ‘아버지 부시’라고 일컬어지는 George H. W. Bush였고, 두 번 째는 이번에 트럼프였단다. 아버지 부시는 전쟁을 일으켜서 마음에 안 들었었고,  트럼프는 지난 번에 찍어 준 자기 손가락이 미울 정도로 수준 이하란다. 특히나 펜데믹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무슨 게임하듯 제 속만 차리려하는 게 너무 밉단다.

모처럼 신이 난 듯한 그의 일장 연설을 듣고 몇 마디 건넨 내 응답이었다.

‘트럼프나 바이든이나, 공화당 지지자나 민주당 지지자나 뭐 크게 다른 게 있을까? 당신 말대로 전쟁 일으키고,  펜데믹 현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들 소리가 커지면 좋은 거 아닐까?’

이건 이즈음 내가 뉴스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세계 뉴스나 매 한가지로 통하는 프리즘이다.

사람 살이 이어져 온 이야기 속에는 늘 그렇듯 정치도 종교적 신념으로 해석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사람살이 이어져 온 이야기 곧 역사에는, 스스로 홀로 서서 경전을 읽고 해석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종교처럼,  세상 정치적 일들을 그리 읽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징표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사람 살이는 늘 신비한 지경이다. 화불단행(禍不單行)과 점입가경(漸入佳境)은 늘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 살아 있는 한 삶은 늘 살 만한 것이다. 그것이 화불단행(禍不單行)이든 점입가경(漸入佳境)이든, 내 스스로 선택할 일이 남아 있는 순간은 언제든…

그렇게 또 추수감사절이 코 앞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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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에

새해에는 건강보험 프로그램을 좀 바꾸어 보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정보들을 두루 찾아 보았다.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만족한 것을 선택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나는 노인보험인 메디케어 쪽에서 아내는 아직 일반 보험에서 적당한 것을 찾아야 하니 시간도 제법 쓰인다.

우리 내외의 현재 건강상태에서 보험료는 최소화하되 혜택은 최대로 누릴 수 있는 욕심을 채우는 일이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그렇게 하루 해를 보내고 내린 선택, 그저 내 만족일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내일 일은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우리 내외에겐 벅찬 고구마 한 상자를 받아 든 지도 여러 날, 그 동안 찌거나 쪄서 말려 먹기도 했지만 양은 줄진 않는다. 오늘은 고구마 고로케를 만들어 두 누이네와 나누다. 내친 김에 밀가루와 찹쌀가루로 만든 꽈배기가 스스로 대견할 만큼 제 맛을 내었다. 재밌다.

오후에 한인 사회의 내일을 고민하며 행동하는 이들이 함께 하는 온라인 모임에 잠시 얼굴 내밀다. 어느 사회나 변화는 꾸준한 이들에 의해 온다. 그 점에서 나는 언제나 변방이다. 스스로 참 아쉽다.

엊그제 아침 한참 일에 빠져 있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어 습관으로 던진 ‘좋은 아침, 세탁소입니다.’라는 인사에 킬킬거리는 웃음이 답으로 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국말 인사였다. ‘참, 형은 변함없네! 아직도 세탁소 하네! 혹시나 하고 이 전화로 해봤는데… 야… 영원한 해병같은 세탁인이고만…’

두어 해 동안 소식 불통이었던 후배의 안부 전화였다. 어찌 지내느냐는 내 인사에 그가 한 응답이었다.

두 해 전에 신장 수술을 받고 안되겠다 싶어 하던 일들을 접었단다. 그리고 한국엘 나갔었단다. 만만치 않더란다.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와 노년 계획을 세우는 중이란다. 이 때 쯤이면 나도 은퇴했으리란 생각이 들어 자문도 구할 겸 안부 전화를 했단다.

아직 은퇴계획이 전혀 없는 내가 그에게 건낼 조언일랑은 부질없는 그의 기대였을 뿐이다.

긴 대화 속에서 후배와 내가 한 목소리가 된 순간은 ‘백세시대’라는 말이 결코 우리들에게도 이를 만큼 일반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한 때(그와 그의 직장 모두) 유수한 언론사 워싱톤 특파원으로 제 삶에 대한 자긍이 넘쳐나던 후배나 늘 천방지축이었던 나나 이젠 하루살이가 되어 마땅한 때에 이른 것이다.

늘 흉내내기인 내가 그에게 건넨 말이다. ‘ 하늘소리 사람소리 내 속으로 들으며 하루 살면 고맙지 뭐’

‘형, 암튼 내가 조만간 세탁소로 갈께’ 그의 응답이었는데 그게 또 몇 년 뒤일지는 모를 일이다.

무릇 보험이란 하루살이가 망가질 때를 대비하는 일.

만족은 하루살이를 하는 그날그날 내가 찾아 누릴 몫이다.

해는 짧아도 뜨고 지는 아름다움은 한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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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에

가을이 떠나기가 아주 서러운 모양이다. 연 이틀 이어진 빗줄기가 그칠 듯 하더니만 아직 흘릴 눈물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가을과 함께 떠날 채비에 바쁜 나무들은 제 옷 벗어 땅들을 노랑과 빨강으로 물들여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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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한가하여 이른 시간에 보일러를 끄다가 가게 뒷문 사이로 떠나기 서러운 가을을 보았다.

고개 끄덕이며 혼자 소리로 중얼거려 본 말, ‘그래 삶이다’.

처남 아이들 덕에 성경을 펼쳐 곱씹어 보는 저녁이다. 에고 버리지 못하는 내 못된 말본새라니… 아이들이라니… 쯔쯔… 이젠 모두 환갑 줄인 처남들인 것을.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두 처남 모두 독특한 재능들을 타고났다.  막내 처남이 기타 치며 혼자 4중창으로 부르는 찬송을 큰 처남이 자신의 페북에 올려 놓았다. 함께 영상을 보던 아내가 한 말, ‘하여간 얘들은 재밌고 참 이상해!’. 나는 차마 입으로는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셋 다 독특한데…’

그렇게 읽고 또 읽어 본 성서 시편 136편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찬양시는 떠나기 서러운 가을에게도 유효할 게다.

무릇 삶이 하늘과 이웃에 닿아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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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들에게 고마움을.

구호(口號)에

내가 사는 델라웨어 주는 몇 개의 별칭을 갖고 있다. ‘The First State’, ‘Diamond State’ 또는 ‘Small Wonder’ 등이다. 최초 13개 주들이 미국헌법에 서명을 할 때 델라웨어 대표가 제일 먼저 서명을 했다 해서 생긴 것이 ‘The First State’이고, 토마스 제퍼슨이 미국 동해안의 전략적 요충지가 바로 델라웨어라고 했다는 전설에 따라 전해온 말이 ‘Diamond State’이다. ‘Small Wonder’는 한 때 델라웨어 주가 슬러건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미국에서 두 번 째로 작은 주이지만 살 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충청북도 면적과 엇비슷하니 정말 작은 곳이다. 내 집에서 5분 거리면 펜실베니아 주경계를 넘고, 15분이면 뉴저지에 닿는다. 내 가게에서 5분이면 또 메릴랜드로 이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별칭 하나가 ‘Dela Where?’이다.미국인들도 델라웨어라고 하면 어딘지 잘 모르거니와  ‘아니 그런 주가 다 있어?’ 할 정도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일게다. 그게 또 이 곳의 홍보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런 델라웨어주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뉴스의 생산지가 된 며칠 간이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 때문이다.

이 곳 신문은 “첫 번 째 주에서 첫 번 째 대통령이 나오다”라는 제목의 들뜬 기사를 비롯하여 전 세계 유수한 신문들이 일면 머리기사로 장식한 바이든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전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한국신문은 소개하지 되지 않아 좀 아쉬웠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관련뉴스를 종종 비중있게 다룬 것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한국이라는 국가 위상 보다 한국언론은 아직 거기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참 다행이다. 바이든이 당선 되어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빨리 큰 혼란이 없을 정도로 제법 격차를 이루고 드러난 선거 결과 때문에 해보는 말이다.  선거 후 두 후보자들이 내세운 구호들로 하여 자칫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현재로선 판세가 완전히 기울어 조금은 차분히 선거 후유증을 가라앉힐 가능성이 열려 다행이다.

만일 Count Every Vote와 Stop the Count 라는 구호가 엇비슷한 힘으로 맞붙어 오랜 시간을 끌었다면 그 혼란은 가히 만만치 않았으리라는 걱정을 덜어 정말 다행이다.

가만 돌아보니 셀 수 없이 많은 구호의 시대를 살아왔다. 시대의 권력자들이 만든 구호들이거나 때론 군중들이 만든 구호들도 있었다. 멀리는 ‘반공통일’에서 부터  ‘때려잡자 김일성’, 독재 타도’, ‘선진 조국’ 가까이는 ‘United we stand’, ‘Occupy Wall Street’, ‘Yes we can’,  ‘America great again’ 등등.

구호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고 그 구호 아래 사람살이는 때론 진보하고 많은 경우 그 시대의 혹독한 시련이 되기도 한다.

편 갈음, 증오, 혐오의 언어보다 치유, 화해, 공감 등등의 언어를 내세운 바이든의 연설은 때에 맞는 듯하여 듣기 좋았다.

허나 트럼프라는 캐릭터와 그가 내세운 구호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살며 듣기 좋은 구호만 앞세우는 축들에게 등돌렸던 이들이었을게다.

문제는 누가 내세우는 구호이던 그 구호에 담긴 속내를 곱씹어 꿰뚫어 저항하거나 박수치는 시민들이 주인 되는 세상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일 게다.

이명박근혜 시대를 겪으며 한국사회가 진일보 했듯, 트럼프시대를 지낸 미국사회도 여러모로 진일보 하는 시대를 맞기를 바란다. 내 아이들을 위하여.

화창한 가을날, 한껏 부지런 떨며 하루해를 바삐 보내다.

일주일치 아침 양식 빵도 굽고, 내년 봄을 맞이할 준비로 튜립, 수선화, 아이리스, 무스카리, 히아신스 등 구근을 심고, 배추 절여 김치를 담그다.

김장 끝나면 어머니는 맛난 배추찜을 상에 올리곤 하셨다.

살며 이런 저런 흉내는 즐기지만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는 내가 어머니에 이르면 벽이다. 그래도 그 덕에 흉내라도 낼 수 있다는 감사에 배추찜 하나로 아내와 넉넉한 저녁상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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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오늘 아침 일터로 나가던 길에서 본 낯선 모습이었다. 내 세탁소로 진입하는 사거리 한쪽 귀퉁이에 있는 도서관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뭐지?’하는 생각은 잠시였다. 오늘은 선거날 이고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은 투표소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이십 년 동안 내가 투표하러 갈 때면 언제나 투표장 종사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기억밖에  없는 내게 이런 풍경은 정말 생소했다.

내가 사는 곳과 가게 동네가 달라 그렇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침 나절에 집 앞 투표장으로 투표하러 갔던 아내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돌아 왔단다.

우편투표를 할까하는 생각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워낙 한가했던 투표장 모습에 익숙했던 탓에 그냥 선거 당일 바로 집 앞에 있는 투표장으로 가야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상황이 예년과는 좀 다른 모양이었다.

내가 집 앞 투표장을 찾은 것은 오후 두시 쯤, 그냥 여느 때와 전혀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투표장 안내원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너른 투표장 안에 투표하러 온 이는 나 말고 딱 두 사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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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나절 투표장을 다시 찾았던 아내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단다.

이번 선거에 대한 뉴스들과 이런 저런 주장과 견해들은 다 훑어 볼 수 없을 만큼 쏟아지고 있다. 다 저마다 제 시간과 시각에 맞추어 내어 놓는 것들이다.

그저 바라기는 뜻 없는 것들에 애먼 목숨 거는 일들일 랑은 없었으면 …

내년 봄을 준비하며 처음 심어보는 가을구근들에 대해 공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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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모처럼 날이 좋단다.

겨울준비

갑자기 밤이 터무니없이 길어졌다. 시간이 바뀐 탓이다. 달포 전에 주문한 가을구근들을 일요일인 오늘에야 받았다. 시간 바뀌기 전에 심어야겠다고 준비했던 것인데 짧아진 낮시간을 잘 이용해 보라는 깊은 뜻으로 새기며 투덜거림을 멈춘다.

길어진 밤시간을 위해 몇 권의 책들도 주문 하고, 떡을 만들어 보는 시늉도 해 보았다. 오늘은 떡이 물릴 때 먹어 볼 요량으로 식빵을 만들어 보았다.

이즈음은 구글이나 유튜브를 보고 흉내만 내어도 대충 엇비슷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저 놀랍다. 어찌어찌 시키는대로 해 보았더니 호두와 클랜베리 들어 간 훌륭한 식빵이 되었다. 맛도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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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긴 밤 보낼 준비는 대충 끝낸 듯 하다.

기도

11월 초하루 아침, 기도 드리듯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늘 그렇듯 언제나 받는 이는 나일수도….


이즈음엔 제 세탁소를 찾는 일이 아주 드물지만 저희 가게 오랜 단골 중 한 분이 지난 주에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쓰고 있는 마스크가 매우 독특했답니다. 비닐로 만든 마스크였습니다. 제 아내가 물었답니다. ‘면 마스크가 없으신가요? 숨쉬기가 어렵지 않으세요? 답답해 보이네요.’ 그리고 건네 받은 그녀의 대답이랍니다. ‘답답하기야 하지요. 그런데 내 남편이 귀가 어두워 잘 듣지를 못해요. 내가 말하는 입모양을 보아야 서로 의사소통이 쉽답니다. 그래 이 마스크를 쓰고 있답니다.’

30년 전 한참 왕성하게 일하던 오랜 단골들은 이젠 모두 노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세탁소를 시작하던 때가 30대였는데 저 역시 이젠 60대이고 70을 향해 간답니다.

세월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스크가 꼭 필요한 이즈음의 일상이 나이 들어 가는 모든 이들에게 불편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엊그제 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한 분인 황동규 시인이 새 시집을 발간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답니다. 그는 올해 여든 두 살이랍니다.

거의 60여년을 시인으로 살아온 그의 시들도 세월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특히 지난 20여년 동안 그가 줄기차게 쓰고 있는 시편들은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노래들입니다.

그의 시와 시어들은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들이 강해 번역해 그 뜻을 알리기엔 매우 어려운 일이랍니다.

아무튼 그가 새로 낸 새 시집의 이름이 <오늘 하루만이라도>랍니다. 저는 그 시집의 제목만으로도 그의 시에 빠질 수 있었답니다.

그 시집에 실린 그의 <오늘 하루만이라도>이라는 시의 한 연을 옮겨봅니다.

<이층으로 오르는 층계참 창으로
샛노란 은행잎 하나 날아 들어온다.
은행잎! 할 때 누가 검푸른 잎을 떠올리겠는가?
내가 아는 나무들 가운데 떡갈나무 빼고
나뭇잎은 대개 떨어지기 직전이 결사적으로 아름답다.
내 위층에 사는 남자가 인사를 하며 층계를 오른다.
나보다 발을 더 무겁게 끌면서도
만날 때마다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그,
한 발짝 한 발짝 씩 층계를 오른다.
그래, 그나 나나 다 떨어지기 직전의 나뭇잎들!
그의 발걸음이 몇 층 위로 오르길 기다려
오늘 하루만이라도
라벨의 ‘볼레로’가 악기 바꿔가며 반복을 춤추게 하듯
한번은 활기차게 한번은 차근차근
발걸음 바꿔가며 올라가보자.>

11월입니다.

딱히 나이 뿐만이 아니라도 이제 한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에 이르면 너나없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질 때이기도 합니다. 더더군다나 여느 해와 너무나 다른 한 해를 보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즈음 이따금 저녁 노을 물드는 하늘을 보며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지나간 하루보다 다시 맞을 하루에 대한 희망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길 때 그 감사는 더욱 커진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감사가 이어지는 당신의 11월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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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of my old customers, even though she has rarely visited the cleaners recently, came in last week. She was wearing a very unique mask, which was made of plastic. My wife asked her, “Isn’t it difficult to breathe with that mask on? Don’t you have a cloth mask? It looks stifling.” Her response was: “Of course, it gives me some trouble breathing. But, my husband cannot hear well. My communication with him will be better, when he sees and reads my lips. That’s why I wear this mask.”

My old customers, who had been leading active lives thirty years ago, have become old people now. When I started the cleaners, I was in my thirties. Now I’m in my sixties, and getting closer to seventy.

I know that nobody can go against time. But, current everyday life, in which everybody has to wear a mask until a time which nobody knows, may be more uncomfortable to those who are getting old, I think.

The other day, I heard the news that Dong-gyu Hwang, one of my favorite poets, had published a new book of poems. He is eighty-two years old.

He has been writing poems for almost sixty years and his poems have been undergoing changes over time. Especially his poems in the last 20 years have been songs about himself getting old.

The title is “Even for Just One Day, Today.” The title was attractive enough for me to indulge in this book of poems.

As his poems and poetic words have things very Korean, some of them may be lost in translation. Though I’m afraid to do it,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a stanza of the poem, “Even for Just One Day, Today,” in the book.

<Through the window at the landing of the staircase leading to the second floor
A bright yellow gingko leaf is flying in.
A gingko leaf! Who would imagine a dark green leaf?
Among the trees that I know, except oak trees,
Most leaves are desperately beautiful generally just before falling down.
A man who lives on the upper floor is nodding and climbing up the stairs.
Though he drags his feet heavier than me,
He, who never loses his smile whenever he sees me,
Is climbing up the stairs step by step.
Right, he and I, both are like leaves just before falling down!
After waiting for his climbing up a few floors,
Even for just one day, today,
As Ravel’s Boléro makes dancing repetitions by musical instruments one kind by one kind,
Once briskly, the other calm and orderly,
Let me climb up the stairs step by step.>

It is November now.

At the time when a year is drawing to an end, a flood of thoughts may course through everybody’s mind. This year, it may be even more so, because we all are having a year which is so different from other years.

These days, I so often felt grateful, when I was watching the sky aglow with the sunset. When I saw it as the beautiful scenery which was conveying hope for a new day instead of the past day, the gratitude became even greater.

I wish that gratitude “even for just one day, today” in your life will go on continuously in November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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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단풍놀이 길 나서려 했었다. 오늘 지나면 올 가을도 제 길 찾아 떠나려 할 듯 하여서 였다. 나서려던 길 막은 놈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온종일 비가 추적일 것이라고 떠드는  일기예보였다. 때때로 예보는 정확하기도 하다. 먼길 나서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씨였다.

집에 머무는 덕에 모처럼 참 좋은 친구 내외가 방문하여 이 심상찮은 세월에도 감사히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어쩌다 내가 온종일 집에 있을 때면 부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셨다. 고구마를 굽거나 찌기도 하시고, 녹두를 갈아 빈대떡을 부치시기도 하셨고, 쑥 갈아 개떡을 만드시거나 바람 떡을 만드셔 내 입이 심심치 않게 하시곤 했다.

딱하게도 나는 입이 짧았고 성격도 모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머니께 던졌던 말이다. ‘에고, 제발 그만 두세요.’

어머니 생각하며 떡을 빚어 본 하루다. 팥소와 녹두소 넉넉히 만들어 저장도 하고, 콩가루, 녹두가루도 준비해 두었다. 올 겨울엔 옛 생각나면 떡을 빚어 볼 요량이다.

그렇게 콩가루와 녹두가루 입힌 인절미도 만들고, 녹두와 각종 너트 갈아 넣은 소에 단호박 쪄 넣은 찹쌀떡과 계피가루 입힌 옷에 팥소 넣은 찹쌀떡을 만들어 보았다.

아내가 제법 맛있다며 칭찬을 보탰다.

아버지와 두 누이들에게도 배달해 맛을 보였다.

어머니는 돌아가시 전 일년 여 알츠하이머 병세로 시간을 마음대로 넘나드시곤 하셨다. 그 무렵 종종 어머니는 육이오 전쟁통 피난길에서 떡장사 하셨던 때로 돌아가 계시곤 하셨다. 어머니가 절박한 기억에 휩싸이곤 할 때였다.

어머니 흉내 내며 떡을 빚은 하루. 어머니와 내가 다른 것 하나. 어머니는 절박했고 나는 여유롭다는.

그저 고마움으로, 어머니 덕에.

*** 오늘 동네 뉴스 하나. 우리들 실생활에 직접 다가오는 변화는 대통령 선거보다는 지역사회 일꾼들 선택에서 먼저 온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사를 마무리하는 말. ‘유권자들은 어차피 지역사회 일꾼들이 내세우는 정책보다 자신들의 선입견이 우선’한다는…

내 책상 위에서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니는 오늘도 ‘쯔쯔쯔’와  ‘그래 고맙다’를 반복하신다.DSC01266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