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국 6 – 출발

“사람이 소송사건에 있어서 불실한 증언을 하려고 출정하여 그가 한 말을 확증하지 못하면, 그 소송이 생명에 관한 소송일 경우 그를 죽인다.” OLYMPUS DIGITAL CAMERA

지금은 세계 최고(最古)의 자리를 빼앗겼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하여도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법전으로 알려졌던 함무라비 법전 제3조의 내용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800여년 전에 바벨론의 왕 함무라비가 반포했다는 바로 그 법전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십계명에는 “하지 말라”는 계명이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인, 남에 것에 대한 욕심 등입니다.

또한 팔조지교(八條之敎), 팔조법금(八條法禁) 등으로 알려진 한반도 최고(最古)의 법전인 고조선의 여덟가지 법률에는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는다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살인, 도둑질, 간음 및 강간, 각종 상해에서부터 거짓 증언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범죄행위들은 인류 역사와 함께 사람사는 세상이면 어디에건 끊임없이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 어느 사회건 이런 범죄행위들은 공동체를 위해 다스려져야하고 그에 대응하는 벌칙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외없는 법칙이 없다는 말처럼 이 경우에도 예외는 늘 있어왔습니다. 누가 범죄를 저지르는냐에 제재 대상이 되기도 하고 오히려 영웅적 행위로 간주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저지른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이라도 말입니다.

인류사의 발전이란 바로 이런 예외의 적용율이 낮추어지는 쪽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언제 어디서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잣대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역사의 발전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즈음 제재받는 않는 국제적 무법자 행세를 하는 이스라엘의 행태나 집단 생수장(生水葬) 사건인 세월호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을 보노라면 이러한 역사 발전의 거대한 반동이 일어나고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길게 놓고 따져보면 그 또한 발전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문창극류의 신의 은총이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와 정신사가 그렇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 및 이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바로 대한민국, 한반도 나아가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모든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종의 오늘날 솔직한 자기 모습입니다.

함무라비법전과 십계명과 고조선 팔조법금 아래 사는 모습입니다.

특히 사건 이후 정홍원총리 책임 사임에서 도로 정홍원에 이르는 사이에 등장했던 여러 인물들, 일테면 안대희, 문창극, 김명수, 정성근 등등의 이름들과 뉴스들을 보면서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소위 이 시대 한인사회 엘리트들의 모습들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비단 그들만의 모습이겠습니까? 참으로 저렴한 가치관이 사회 엘리트 행세를 하는데 필수 요소가 된 현실을 벌거벗겨 드러내 놓은 격입니다.

삼백년 전 박지원이 쓴 양반전에는 비슷한 가치관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삼백년 전에 양반행세를 하던 이들이 오늘날의 신양반계급으로 변하는 과정을 돌아보는 일은 바로 역사를 바른 방향으로 흐르게 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세계사의 흐름에서 삼백년 전인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오는 싯점은 바로 모든 민족과 국가들이 거의 동일한 선상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던 싯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창극류의 저렴한 사관(史觀)으로는 볼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랍니다.

조선민국 5- 인두겁

덴마크 사람 Allan Sørensen 이라는 이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 한장과 짧은 트윗 글이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올린 트윗글입니다. 

“(여기는)Sderot 극장. 가자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황을 보기 위해 이스라엘인들이 Sderot 언덕에 의자를 깔고 앉아있습니다. (이들은) 폭음이 들리면 박수를 칩니다.”(Sderot cinema. Israelis bringing chairs 2 hilltop in sderot 2 watch latest from Gaza. Clapping when blasts are heard.) 

사진속에는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환하게 웃는 이스라엘 여성의 얼굴이 눈에 띕니다. 

Allan Sorenson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인해 벌써 이백명이 웃도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 이들 중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비무장 민간인들 –  목숨을 잃었습니다. 

역사, 종교, 인종, 문화, 영토 등등 팔레스타인의 모든 문제들을 다 접어 놓고 “사람 – 곧 신 앞에 선 피조물”이라는 눈높이로만 따져보자면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말이 짐승들에게 미안할 정도입니다. 

인두겁을 쓰고는 차마 하지 못할 짓들을 Sderot 언덕에서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인두겁을 쓰고 사람행세하는 년놈들이 팔레스타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生水葬) 사건이 일어난지 어느새 석달이 꽉 찼습니다. 지난 석달 동안 바로 인두겁을 쓰고 사람 행세하는 년놈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비단 한국(남한 또는 대한민국)에 국한되는 일이 아닙니다. 남북한을 비롯한 한글을 사용하는 모든 한인사회에 이미 차고 넘치는 현상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두겁을 쓰고 사람행세하는 년놈들의 으뜸되는 뚜렷한 특징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염치지심(廉恥之心)을 상실한데 있습니다. 

지난 석달동안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린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말과 행태를 일일이 곱씹을 필요도 없이 모든 분야에서  – 정치, 행정, 문화, 언론, 종교, 학문 등등 –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두겁을 쓴 자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제반 분야에서 누리고 사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정말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저와같은 이름도 없이 장삼이사(張三李四)로 사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너무도 흔히 부딪혀 만날 수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약 삼백년 전 박지원이 양반전을 쓸 때만 하여도 조선반도에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그래도 넘쳐났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제 세월호 백일을 앞두고 다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조선민국 –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그리며.

모를 일- 세월호 그리고 슬픔

칼 맑스 또는 카르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라고 불리는 옛날 사람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IE001702167_PHT오늘 낮에 제 가게 손님 한 분께서 하신 말씀때문이랍니다. 

폴란드계 미국인 여성으로 종신교수(Tenured Professor)로 아직 대학에 남아있지만 썩 나이 드신 할머님이시랍니다. 이 양반이 오늘 제게 물었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거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오? 지금 몇 시간이나 지났소? 더 많은 이들이 살아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소?” 

한국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였답니다. 

자동차 사고는 어디에서건 매일 일어나는 일이고, 하늘에서 비행기가 떨어지고, 물에 배가 가라앉고… 있어서는 안되고, 있지 말아야 되는 일들이지만 사람사는 세상인고로 일어날 수는 있는 일들이겠지요. 

이런 일들을 미리 방지하노라고 여러 안전 대책들과 사전 점검들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사고나 사건에 대해서는 준비된 대비책에 따라 신속 정확하게  대응해야 마땅한 것이겠지요. 

사고나 재난이 개인의 영역을 떠나 국가적 차원의 것이라면 당연히 국가는 준비된 매뉴얼에 따라 모든 국가적 역량을 동원하여 자국민의 안전과 구출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정상적인 국가일 터이지요. 

그런데 지난 이틀동안 세월호에 연관된 기사들을 보면서 저는 칼 맑스를 떠올리게 되었답니다. 정말 한물 갔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예견한 국가를 본 듯했기 때문이랍니다. 

“국가는 부르주아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행위원회이고 지배계급의 지배도구에 불과하다.” 

칼 맑스의 이야기인데, 왜 나는 자꾸 그의 말이 어제 오늘 대한민국과 겹쳐지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 순간에도 가슴 쥐어뜯을 가족들을 위로하며.

봄을 기다리며

사순절기독교력으로 사순절 기간입니다. 앞으로 한달 남짓 남은 올 부활주일 이전에 여섯 번의 주일를 뺀 사십일 동안의 기간을 말합니다. 

사실 기독교의 전통적인 사순절 풍습이 남아 있지도 않고, 그게 그리 중요한 세상도 아니고…

제 이런 말에 “몰라서 하는 소리”라거나, “신앙이 없어서…”라는 대꾸가 있다면, 뭐 그대로 받는답니다. 

다만, 사순절에 의미를 ‘예수의 죽음”을 떠나 오직 “부활”에만 촛점을 맞추는 오늘날 교회의 사순절 고백은 참 허망한 것이랍니다. 

그런 뜻으로 이해인님의 시 하나 읊으며 봄을 기다리는 밤입니다. 

사랑과 침묵과 기도의 사순절에

–       이해인 

주님,

제가 좀더 사랑하지 못하였기에

십자가 앞에서 사랑을 새롭히는 사순절이 되면

닦아야 할 유리창이 많은 듯 제 마음도

조금씩 바빠집니다

 

제 삶의 일과표엔 언제나

당신을 첫자리에 두고서도

실제로는 당신을 첫 자리에

모시지 못했음을 용서하소서

 

“올해에도 우선 작은 일부터 사랑으로”

이렇게 적혀 있는 마음의 수첩에

당신의 승인을 받고 싶습니다, 주님.

성당 입구에서 성수를 찍거나

문을 열고 닫거나

화분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은

저의 조그만 행위를 통해서도

당신은 끊임없이 찬미 받으소서

 

식사하거나 이야기하거나

그릇을 닦거나 걸레를 빠는 것과 같은

일상의 행위를 통해서도

당신을 변함없이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좀더 침묵하지 못하였기에

십자가 앞에서 침묵을 배우는 사순절이 되면

많은 말로 저지른 저의 잘못이

산처럼 큰 부끄러움으로 앞을 가립니다

 

매일 잠깐씩이라도 성체 앞에 꿇어앉아

말이 있기 전의 침묵을 묵상하게 하소서

제가 다는 헤아리지 못하는

당신의 고통과 수난

죽음보다 강한 그 극진한 사랑법을

침묵하는 성체 앞에서

침묵으로 알아듣게 하소서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익히는 사순절이 되면

잔뜩 숙제가 밀려 있는 어린이처럼

제 마음도 조금씩 바빠집니다

성서와 성인전을 머리맡에 두고

거룩함에 대한 열망을 새롭히는 계절

 

제가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던

가까운 이웃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세상 곳곳에서 기도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이웃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번도 제대로 기도를 못한 것 같은

절망적인 느낌 속에서도 주님,

기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믿음과 인내를 주소서

제 안에 사제로 살아 계신 당신이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심을 믿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

제가 먼 광야로 떠나지 않고서도

매일의 삶 속에 당신과 하나 되는

즐거운 사순절이 되게 하소서

그림 하나

어제 오늘 블로그를 새로 꾸민다고 시간을 좀 썻답니다. 그러다 눈에 들어 온 그림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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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in Korea, 1951, 109.5 x 209.5 cm)이라는 그림입니다.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을 그린  게르니카(Gernica, 1937, 349 cm × 776 cm)외 함께 전쟁의 아픔과 참혹함을 그린 유명한 작품입니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1950년 10월17일부터 12월7일까지 황해도 신천군에서 벌어진 ‘신천대학살’ 을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피카소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동쪽 아시아의 끝에서 전해진 참상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려낸 것이지요. 

신천대학살이란 당시 신천군 인구의 약 4분의1인 3만5383명이 희생된 끔찍한 사건으로, 미군의 소행으로 알려져 전세계 좌익이나 진보 운동 진영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랍니다. 

피카소는 1944년부터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고 공산당의 평화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헌신적인 노력으로 1950년엔 스탈린 평화훈장까지 받은 사람이고 보면 이즈음 한국적 분위기로 보아서는 종북정도가 아니라 빨개도 아주 새빨간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의 주제 또한 한반도에서의 학살에 미군이 개입되어있다고 믿고 있던 프랑스 공산당이 제안한 것이었으니 이 그림에서 총칼을 겨누는 군인은 당연히 미군을 암시하는 것이었을 겝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1956년 소련이 헝가리를 탱크로 밀고 들어왔을 때,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거리에 이 그림을 들고 나가 소련제 탱크에 숨진 동료 시민들에 대한 지지를 표시했다는 것이지요. 

전쟁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무자비한 폭력일 뿐이라는 피카소의 생각이 담긴 그림이라고 합니다. 실제 그림을 보면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갈리는 것입니다. 

무릇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란 가해자와 피해자가 없는 세상이겠지요. 

1951년부터 따져도 지금 몇 년째 인가요? 

지난 일을 잊지않되 어떻게 간직하느냐가 내일을 설정해 주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지난 일을 돌아보며 증오의 편가름을 이어가는 일들은 지난 전쟁보다 더욱 나쁘다는 생각입니다.

안녕을 묻는 당신에게

오늘은 유다인들이 세운 마지막 왕국 하스몬왕조 이야기와 그 당시에 생긴 유다의 각 종파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그리고 산헤드린과 예수 시대의 젤롯당에 대한 연원과 그들의 특징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것으로 중간사를 마무리하려고 하였답니다. 

글을 쓰려 컴퓨터 앞에 앉아 먼저 열어 본 제  이메일함 에 쌓여 있는 메일 하나가 오늘 저녁 제 시간 계획을 엉크러 놓았답니다.  한동안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오늘 연재 글은 좀 쉬고, 예수 시대 이야기를 짧게 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제 저녁 시간 계획을 흩으려 놓은 이메일은 이제 쉰 중반으로  들어서는 후배가 이즈음 심경을 털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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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한국사회의 화두인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말이 이 친구의 맘을 흔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묻는 의도는 사뭇 다른 것이었습니다. 

후배  아버님의 갑작스런 병원 출입과 2013년 한 해를 돌아보며 힘들었던 시간들을 되뇌어보니 안녕치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모양입니다. 

쉰 중반, 자신이 그려왔던 그 나이의 모습과는 다른 지금의 모습에 대한 회한이 묻어 있는 편지였답니다. 

이쯤, 제가 이즈음 거의 매일 이어가고 있는 “당신의 천국”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바로 그런 회한에 대한 위로의 작업입니다. 물론 그 후배가 아닌 제 자신에 대한 위안으로 시작한 일이랍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그가 온 때에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헤롯대왕, 빌라도 총독,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사두개파, 바리새인, 에세네파, 젤롯당, 예수의 제자들 등등 말입니다. 

이렇게 무리를 지어 사람들을 나누다보면 그 그룹안에 속한 이들은 저마다의 특징들이 있거니와 나름 뜻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집니다. 일테면 왕과 왕족, 총독, 사두개파는 있는 사람들입니다. 돈과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말입니다. 바리새파나 에세네파 하면 종교적 자부심으로 사는 사람들 이라는 특징이 있는 것이지요. 젤롯당하면 자신들의 사명에 목숨조차 아깝지 않은 자부심이 있는 것이고요. 예수의 제자들은 한 때 헛 꿈들을 꾸었지만 그 꿈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살다 간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실제 예수가 함께 했던 사람들은 갈릴리 주변에 살던 쉰 중반, 예순 아니 마흔, 서른, 스무살 나이에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사람들, 자신들이 꿈꾸었던 그 나이의 자신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 그러나 무언지는 모르지만 막연한 기다림을 안고 살던 사람들이었지요. 

그렇다고 예수가 헤롯대왕, 빌라도 총독,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사두개파, 바리새인, 에세네파, 젤롯당, 예수의 제자들 등등 그룹을 이룬 이들을 외면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어떤 모습을 누리고 살던 그가 놓인 처지나 환경이나, 높고 낮음이나, 갖고 못가짐이나, 생각이 좌이거나 우이거나 그런 잣대들을 몽창 허무러뜨린 맨 사람 하나 하나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 뿐입니다. 

다만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누구나 다 가치가 있는 삶을 누릴 권한이 있고, 그 길은 늘 열려 있다는 선포를 한 것입니다. 

“다만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말입니다. 

불공정하고, 불완전하고,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하고 끝내 내가 꿈꾸었던 내 모습이 아닌 세상에서 살더라도 “가라, 거기서 살라”고 명하시는 이가 예수였습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믿음입니다. 그 끝에 기쁨과 희망, 마침내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까닭입니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그 곳에서 “사람임을 아는”일이 우선입니다. 

사람끼리 견줄 일이 아니라 사람임을 깨달았느냐를 견줄 일입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이 우리 모두에게 사람임을 깨닫게 하는 물음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후배를 위하여! 또한 나를 위하여!

결국엔….

거의 한 달 넘게 휴가 중이었습니다.

나선

뭐 가치관의 혼동이라는 말로 어렵게 이야기할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요? 

이제껏 믿고 살아왔던 지난 세월들이 다 헛 것이었다는 생각과 더불어 앞으로 내가 해 나가고 싶은 일들이 끝내 헛짓이고야 말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들이 저를 한 쪽으로 막 밀어 붙였답니다. 

그래 정신없이 마구 남의 생각들을 파헤쳐 보았답니다. 

지난 일에 대해서는 역사를 다시 돌아 보는 것이었고, 앞날에 대해서는 유사한 경험들을 곱씹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유심사관唯心史觀, 유물사관唯物史觀, 민중사관民衆史觀, 기독교사관 등으로 대표되는 서로 다른 사관으로 해석한 한국사 책들을 죽 훑어 보았습니다. 

나의 삶의 자리, 곧 한인 이민자로서 미국의 자영업자들의 미래라는 측면에서 성공한 사례들을 훑어 스크랩했습니다. 

올 여름 휴가였던 셈입니다. 

결론입니다. 

무릇 사람의 역사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두어 주 전에 딸아이가 Haiti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아이의 Haiti행을 반대했었습니다. 

“너와 네가 속한 그룹의 만족을 위한 여행이 될 것이므로”라는 제 반대 의견은 아이에게 묵살 당했고 아이는 잘 다녀왔습니다. 아이는 많이 느꼈다고 했고, 나는 허상만 보았다고 했습니다. 물론 아이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딸아이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네가 아이티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역사를 보아라” 라고… 

모를 일입니다. 아마 딸아이는 저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딸아이의 아이티 선교로 인해 달라진 것은 바로 저 자신입니다. 

한달 간 책으로 얻으려 했던 해답을 얻은 것입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시간을 길게 늘려보니 역사의 시계는 어느 곳에서건 이것이 기독교적으로 천국이던, 헤겔이 말하는 자유확대사건, 완벽한 공산주의 사회이던,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이던… 무어라 말하던 어제보다는 나은 내일로 나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그것이 엄청나게 큰 나선형 그림으로 나아가기에 때론 바닥이라고 느낄 뿐! 

올 여름 휴가 끝.

살아있는 하루의 기쁨

모처럼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로 바쁘기도 하였거니와 무엇보다 마음에 여유를 담을 형편이 아니었답니다.

 

오늘은 제 세탁소의 오래된 단골 손님인 Jim McKelvey 의 글을 소개 드립니다.

 

이제는 은퇴한 치과의사랍니다.

 

jim mckelvey

 제 가게에 들어설 때 마다 “오늘 하루를기쁘게 살고, 웃음을 이웃과 나누는 일이 바로 세상을 밝게 하는 일이다”라는 주제로 그가 매주 만드는 명함 하나를 건넨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진들이 그의 명함이랍니다.

 

그리고 제가 주일 아침이면 보내는 이메일 편지의열렬 독자이기도 하고, 그가 똑같이 그의 “일상에서의 기쁨을 나누는 이야기들”을 보내는 멤버의 한 사람으로 저를 선택해 준 덕분에 그의 이야기들에 늘 귀를 기울이는 기쁨을 누리고 있답니다.

 

다음은 엊그제 그가 칠순 생일을 보내며 느낀일들을 잔잔히 기록한 편지랍니다.

 

그 이의 허락을 얻어 제 블로그에 번역해올려봅니다.

 

“살아있는 하루의 기쁨” – 함께 나눕니다.

 

Jim McKelvey의 글입니다,

 

< 일흔을 맞으며…

 

지난달 일흔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모든 가족과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노래하고, 소원을 빌며, 촛불을 불어끄는 그러한 성대한 생일잔치가 아니었다.

 

하루 저녁에는 저녁식사 후 촛불 하나를 얹은 컵케익이 전부였고, 그리고서는 먼 친지를 방문하여 또 다시 촛불 얹은 컵케익으로 생일을 축하했다. 또 다른 날에는 누이와 함께 점심을 들면서 조용히 생일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나서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촛불과 컵케익 없이 뉴욕에서 이틀을 보냈다. 이렇게 생일 축하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알고 있다면, 생일은 그 날에 대해 감사하는 단지 또 다른 하루, 또 다른 멋지고 경이로운 하루일 뿐이다. 1997년, 나는 과연 55회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한 병을 앓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생의 일흔 한 번째 해에 들어서고 있다.

 

이전에 말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 때 부터 나는 “매일매일이 신의 선물이다”라는 말의 진리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15년 동안을 통하여, 나는 하루하루의 가치와 삶의 소중함을 되풀이해서 배워 오고 있다. 내 병이 위대한 스승이었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것은 그것 뿐이 아니다. 내 병만이 유일한 스승이 아니었다. 지난 11월 이러한 글을 쓰면서, 매일매일 내 삶을 스쳐가는 스승들에게 알렸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이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학생이 되는 것이 얼마나 기뻤던지! 그것이 이 메세지를 받는 사람들, 이 “공유 모임”으로 이끌었다.

 

당신 모두가 이 수많은 해를 거치면서 어느 순간 나의 스승이었다. 어쩌면, 당신은 어렸을 때 “Please”와 “Thank you”라는 말을 하도록 나에게 가르쳐준 나의 누이일 지도 모른다. 혹은 캐롤과 내가 처음 결혼하고 보살펴주었을 때 10대 소녀로서 내게 인내를 가르쳐 준 사랑하는 내 처제일 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중 일부는 내가 수강을 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들은 세상에 나가는 새롭고 더 나은 방법을 내가 알도록 도와주신 카운슬러요, 강사요, 치료사 (therapist) 이었다. 더러는 치과의사로서 내 평생직업에 대한 시야를 넓혀준 동료 전문가였다. 또한 내게 힘을 주는 그리고 너그럽게 보내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저술가였다.

 

아마도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려운 상황에 대처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용기와 불굴의 인내를 배웠을 것이다. 당신의 예를 보면서 관용을 배웠을 지도 모른다. 당신들 중 어떤 이들은 “자, 해봐, 힘내!”라는 말 혹은 행동으로 나를 격려했다. 당신에게서 봄으로써 나는 용서의 힘을 배웠다. 당신 신앙의 힘을 보면서 무언가를 얻게 되었다. 나는 당신의 연민을 경험하고 나 자신의 연민을 강화했다.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 직면하고서도 당신이 의연하고 심지어 영웅적인 것을 보았다.

 

당신 중 상당 수는 내가 치과 의사로 일하면서 내 환자였거나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다. 당신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당신의 삶의 이야기, 힘, 고결함, 이기심없는 심정, 창조력, 좋은 유모어를 배웠다. 그렇다, 우리는 함께 웃었고, 또한 그것으로 부터 배웠다.

 

이 메세지를 받는다면, 당신은 이 경이로운 여정 중 어느 순간, 어떤 식으로든 나의 스승이 되었다. 감사한다. 나의 인생여정은 당신이 있으므로 해서 풍요로워졌다.

 

이렇게 나의 스승목록을 만들면서, “지금 어떻게 지내나?” “잘 지내고 있나?” “당신은 여전히 천부의 재능을 세상에서 발휘하고 있는가?” “가족들은 어떤가?” “당신은 내게 어떻게 스승이 되었는지 아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보다 나은 세상을 기원하며,

 

Jim,

Dr. Jim,

Jimbo,

Poppy

……….우리 서로의 관계에 의존하는

 

한 수 위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나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루 온종일 당신을 부르는 소리 가운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무엇인지요?

 

뭐 일테면, ‘김군아!’라든지 ‘어이’. ‘헤이’ 또는 ‘김사장’, ‘김선생’, 등등 말입니다. 아마 직업과 나이에 따라 저마다 다 제일 많이 듣는 소리들이 다를겝니다.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한울아빠”랍니다. 제 아내가 저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세어 보거나 통계를 내보지 않아서 모를 일이지만 그냥 느낌만으로 말씀드리자면 하루 평균 백번은 족히 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랍니다. 물론  아내가 이 소리를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말입니다.

 

부부가 함께 24시간을 사는 이들은 아마 제 느낌에 동의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글을 쓰기 조금 전의 일입니다. 예의 그 아내의 옥타브 높은 “한울아빠!” 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이게 뭔뜻이야?”하며 책을 내밉니다.  “뭔데?”하며 받아든 책은 혜민 스님이 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습니다.

 

담낭암 수술을 받으시고 지난 주에 chemotherapy를 마치신 장모님께 투병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몇 권 드린 적이 있었는데, 장모님께서 일독하신 후 아내에게 건너 온 모양이었습니다.

 

아내가 손가락으로 짚은 혜민스님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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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자의 최고의 표현은 유머입니다. 평화롭고 거룩하고 아주 선해 보이는 상태는 한 수 아래입니다.”

 

아내뿐만 아니라 왈 경건이 최상인 신자들에겐 낯설 법도 한 표현이지만은 “텍스트text”(교과서)와 “컨텍스트context”(현실)의 차이를 잘 표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 아내에게 한 한마디랍니다. “무릇 깨달음에는 나이가 없나니…”

 

매사 넉넉히 웃으며 살 일입니다.

 

이미 할머니 반열에 오른 아내는 아직도 유치원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유머가 있답니다.

 

하여 말로써는  제가 한 수 위인데, 깨달음은 아내가 한 수 위랍니다.

 

가라(Go)!

참 제 앞가림도 변변히 하지 못하는 주제에 오지랖이 넓어서 이것 저것 생각만 많은 사람입니다만, 이 땅을 이민으로 살면서 고뇌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회”이지요.

참으로 많은 긍정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인 이민들 앞날에 장애물 아니면 애물단지가 바로 이 교회라는 생각에 허풍 조금 보태면 잠 못 이루는 그런 날이 제법 있었다고 말씀 드릴 수도 있겠습니다.

뭐 긴 말씀 드릴 요량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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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자 이야기는 예수의 이런 말씀으로 끝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표준 새번역 개정판)

“Neither do I condemned you; go and sin no more”(New King James Version)

이 구절에 대한 성서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자면 꽤 긴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우선 Go 다음에 나오는 “sin no more”라는 말, 다시는 죄 짓지 말라는  말은 후대 첨가구라는 것이 것이고 예수가 한 원형적 말은 “go” 곧 “가라”라는 말씀으로 끝났다는 것이지요.

근데 어디로 갑니까? 집으로 가는 것이지요. 간음한 여자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 당시에 병든 사람도 다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는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 주셨지요. 죄인의 죄를 씻겼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그 때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가라(go)”입니다.

어디로 가라는 것일까요? 

가족에게로, 일상으로, 평범한 생활 가운데로, 이웃에게로 돌아감입니다. 아니 그 곳으로 가라는 명령입니다. 성서에 다음 구절들이 다 그런 말씀들입니다.(마가복음 1장 44절, 2장 11절, 5장 19절,34절, 8장 26절, 10장 52절 누가복음 7장 15절, 17장 19절 요한복음 5장 9절, 9장 7절, 11장 44절등등)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 당시에 죄인들(병든 자를 비롯한 사회 하부계층 –쯧쯧, 이렇게 표현하면 좌파가 되겠고- 일테면 소외받은 자들 이라고 할까요- 그것도 좌파?)은 일상사에 있어서 “남들처럼 대접받지 못하는”부류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돌아가라”는 이른바 귀환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맹점이랄까 아님 이민교회의 부정적 측면이랄까 그런 것이 드러나는 까닭은 바로 이 “귀환명령”, “돌아가라”, “가라”하는 명령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교회는 거기 얽매여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으로, 이웃으로, 일상으로 돌아가 떳떳하게(신앞에서) 하루하루를 살 수 있도록하는 원천이 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이 얽매는 곳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찰 역시 마찬 가지입니다. 청정도량(淸淨道場)이란 바로 삶, 곧 일상을 위한 곳입니다.

곰곰 생각해 보십시요. 이즈음 교회나 사찰(사찰에 대한 부분은 깊이 천착한 바 없습니다만. 이민의 땅에서 말입니다.) 들이  얼마나 이민들을 얽매고 있는가를 말입니다.

북한의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펴낸 조선통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행여 오해가 있을까보아 말씀드립니다만 이건 대한민국 오월출판사에서 펴낸 책으로 뉴욕의 어느 서점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거기 옛날 삼한시대의 “소도(蘇塗)”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쓰고 있더군요.

“<삼국지> 위지 마한전에는 마한 사람들이 ‘도둑질’하고는 도망쳐 ‘소도’라고 부르는 종교행사를 진행하는 곳으로 들어 갔는데 거기에서는 그들을 돌려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중략- 도망쳐 온 인민들에게 종교를 초계급적인 것으로 미화함으로써 그들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는 한편 저들의 노예로 부리기 위해 돌려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계급의식”이라는 말이 좀 걸리기는 합니다만 어쩌면 예수의 “가라”라는 말은 소도라는 종교적, 사회적 제약을 깨고 어느 곳에서도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라는 명령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지요.

오늘날 “이민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명령 ”가라”하는 말씀을 전혀 귀 담아 듣지 않는 까닭에서 오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라는 말씀이지요.

믿음이란 무릇 일상적 삶의 현장에서 우러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소도”에 머물 일이 아닙니다. “가야”합니다. 몸만이 나니라 생각과 정신과 맘이 “오늘, 내 삶의 현장에 있어야”겠지요.

아 참! 예수는 “나를 따르라”<follow me>”를 주창하기도 하셨지요. 그건 또 나중에 말씀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