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들, 목사 김홍도 그리고 구원

제가 사는 곳은 한국인들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라 마음만 먹으면 일년 내내 가족이외의 한국인들과는 말섞지 않고도 살 수 있답니다. 그런데  어디 사는게 두부모 자르듯 할 수 있나요. 그래 주일이면 교회도 다니게 되고, 이런 저런 한인들 모임에도 참석하게 되면서 한국인들과 섞여 사는 것이지요.

그렇다하더라도  많아야 한달에 한 두번 정도이지 그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답니다.

어쩌다 이웃한 대도시인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국마켓에 나가게 되는 일이 있답니다. 이즈음은 동네 마켓(미국인들을 위한)에만 가도 제 입맛에 맛는 찬거리들이 널려 있는지라 굳이 한국마켓을 찾을 일도 그리 많지 않답니다.

아무튼 한국마켓 앞에 가면 만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일요일 오후에 장을 보러 나선 길이면 거의 만나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른바 “거리 선교(전도)단”입니다. 그들이 호객행위하듯 묻는 물음이지요. “예수 믿으세요?”, “교회 나가세요?”, “구원 받으셨나요?” 등등 말입니다.

자! 이쯤에서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합니다.

기독교(개신교이든 천주교이든)에서 ‘구원’은 신앙 곧 믿음에 있어서 가장 핵심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곧 사람을 ‘죄인’으로  간주하고(여기고, 판단하고, 또는 믿고) 시작하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창조 이래 오늘날까지 이 땅에서 살아 숨쉬는 경험을 한 모든 이들은 죄인이라는 전제아래 믿음이 시작되는 종교라는 말씀입니다. 단  한사람만을 빼고 말입니다. 바로 예수지요.

죄인이므로 그에 대응하는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믿으면 ‘구원’을 받고 형벌을 면할 수 있다는  전제로 믿음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구원’을 받는 대상은 지구상에 모든 인간들입니다. 예로부터 세상 끝날까지 잠시 숨쉬고 살다가는 모든 인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형벌을 면하게 해주고 ‘구원’을 주는 “구원자”는 오직 한 분 야훼(여호와)라고 부르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해가 생긴 이래 해가 없어지는 순간까지 숨 붙어 있던 모든 목숨 가운데 단 한 사람 예수는 야훼와 동급인 구원자입니다.

자!  이제 “단 하나”로 묶인 “둘”입니다. ‘야훼’와 ‘예수’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세상 모든 사람 그 누구도 이 야훼와 예수를 실제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서 ‘성령’이 등장합니다.

‘성령’으로 인해 ‘야훼’와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른바 “삼위일체”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령’은 만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입니다. 바로 믿음의 시작이자 종교의 시작입니다.

저는 이 교리를 믿는 신앙인이자 예수쟁이라고 스스로 고백하며 살아왔고, 그 믿음으로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이쯤, 아주 중요한 고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단 하나의 신 ‘야훼’, 단 사람 예외인 ‘예수’, 그들과 나를 연결해 주는 단 하나의 고리 ‘성령’ – 사람이 끼어 들데가 없는 이름들입니다. 여기 그 누구라도 사람 이름이 끼여든다면 그것은 이미 사기이고, 삼위일체인 신과 예수와 성령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자! 이쯤 정리를 하고 넘어 가야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리고 싶습니다. 믿으면 됩니다. 신을 믿으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때, 구원의 주체는 신입니다. 인간은 그저 그에게 맡기면 됩니다. 죽음 이후의 문제입니다. 그럼 이제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어디 여기서 끝나나요?

오래 살고 싶다.  더 갖고 살고 싶다. 남보다는 더 멋지고 낫게 살고 싶다. 걱정없이 살고 싶다. 남들 위에서 살고 싶다. – 등등의 욕망들이 살아있기에 꿈틀거리기 마련이지요.

이 지점에서 ‘구원’과 ‘믿음’은 엉뚱한 곳으로 빠져들어 사기꾼들을 양산하게 되고, 제 스스로 그 사기에 빠져 삶과 죽음의 모습까지 망치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의 영역, 곧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는 곳에 대해 사람이 말하고 한정짓는 모든 일은 모두 “사기(詐欺)”입니다. 그것은 다만 신의 영역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 신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모든 파괴, 살인, 살상, 전쟁을 비롯하여 개인적 부귀영화와 죽음 이후의 천당을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사기입니다.

다만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이 사는 이 현실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들, 곧 손에 잡을 수도 있고, 실현시킬 수도 있는 길이 있습니다.

저는 이게 바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구원’은 ‘말’이 아니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구원은 ‘사람의 말’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한국 마켓 앞에서 전단지를 나누어 주며 “믿으면 구원 받아요!”하는 그런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일요일 아침이면 숱한 목사들이 뱉어내는 그런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바로 오늘 나와 당신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고서야 믿음입니다. 사람들의 영역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이것을 깔아 뭉개는 그 어떤 신앙과 종교행위는 모두 사기입니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케 하셨다.”  – 누가복음 4 : 18

오늘 뉴스를 훑어 보가다 머리 속을 스처지나간 생각들입니다.

자신이 전혀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상황이 닥쳐오고, 분명 그 상황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외치려는 목소리를 누르고 억압하고, 끝내 한을 안고 주저않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이 때 그들에게 “구원”이라는 소리는 어떻게 다가갈까?

그 ‘구원’의 소리가 오늘 여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고발, 항거, 개혁, 투쟁으로 나아간다면 믿음이요, 그 누군가인 사람에게 의지하여 자기만족에 족한다하면 사기당하는 일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땅에 널린 김홍도목사 아류들과 세월호 유가족들 그리고 구원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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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아닌 그들

자신들은  나라라고 하지만  나라 대접 못받는 두 곳. 그나마 Isis 보다는 DPRK가 낫다할까?

영국 수상  Cameron의 정치적  언사에 다 동의하지는 못하더라도 “They are not Muslims, they are monsters.”라는 소리는 옳을 듯.

무릇 모든 근본주의, 교조주의는 이미 종교가 아니므로.

그걸 닮지 못해 안달난 내가 속해 있는 그들 역시.

40 그리고 믿음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40일 동안 낮과 밤을 연속해 비를 내렸다. – 노아의 홍수

하나님은 히브리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신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랑케 했다. – 출애굽 이야기

모세는 야훼 하나님에게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 동안 시내산에서 지냈다.  – 십계명 이야기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 위해 천사가 주는 음식(아마도 물과 소금이었을 듯)만 먹고 40일을 보냈다. – 엘리야 이야기

에스겔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받을 벌을 상징하는 뜻으로 40일 동안 옆으로 누워 지냈다. – 에스겔 이야기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 하였다. – 예수 이야기

예수는 부활 후 40일 만에 하늘로 올라가셨다. – 예수 승천 이야기

그리고 오늘날 개신교와 천주교를 막론하고  일년 교회력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순절(四旬節) – 바로 40일입니다.

유대교, 유대인들의 전통과 오늘날 천주교와 개신교에 이르기까지 40이라는 숫자는 매우 그 뜻이 깊습니다.

성서를 중심으로한 사고 체게에 있어 상징적인 숫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를테면 유일신의 1이라는 숫자, 삼위 일체의 3이라는 숫자, 십계명의 10, 이스라엘 부족과 신약의 예수 제자들의 숫자인 12,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숫자 40, 하나 더 첨부하자면 예수의 나이 33  등등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숫자들의 개념을 오늘날 우리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개념과 똑같이 이해하는 것은 바로 “믿음”의 영역입니다.

일테면 40일 동안 누가 무엇을 했고, 40년 동안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하는 이야기들에서 실제로 오늘날 우리들이  지내는 시간과 동일한 기간을 뜻한다고 믿는 것, 바로 믿음입니다.

뭐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믿음이기에 말입니다. 그래 “믿음”이란 소중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상징입니다. 숫자가 어떤 상징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징을 엉뚱하게 해석하다 보면 이른바 삼천포로 빠져 사교(邪敎)에 귀의(歸依)하기 십상이지만>

그런데 성서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나 민족 고유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숫자들이란 대부분 어떤 상징을 내포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고대의 시간관념이라는 것이 오늘날 처럼 정교한 것이 아니어서 실제 흐르는 시간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느낌이라는 관념의 숫자일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이야기한다고 하여도 믿음에 크게 방해가 되는 일은  아닙니다.

일테면 성서에서 말하는 숫자와 시간의 개념들 가운데  40이라는 숫자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개념 안에서 아주 긴 시간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참고 기다리기 힘든 정도로 오랜 시간의 개념으로 40이라는 숫자가 쓰여졌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숫자가 상징하는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는 뜻으로  쓰여진 숫자가 바로 40이라는 숫자입니다. 옛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온다, 아니 왔다라는 뜻을 지닌 숫자가 40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세월호 집단 생수장사건의 한 피해자인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40일을 견디어 내다 끝내 쓰러졌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원컨데 무엇보다 김영오라는 한 생명이 꺼져가서는 안된다는 소망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믿음은 곧 “고백”입니다.

일천번 아니 일만번의 기적을 보여 준다한들 고백이 이어지지 않으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단 한순간 찰라적인 현상을 단 한 사람이 느꼇다 하더라도 그 고백을 세월따라 자자손손 이어지는 것을 통해 참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의 전통, 유대교의 전통 그리고 기독교의 경전에 나오는 40의 의미도 그렇게 형성된 것입니다.

40이제 김영오의 40일은 믿음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김영오의 40일이 한국인들의 역사를 가름하는 일대 상징이 되느냐 마느냐는 오늘을 사는 한인들의 선택입니다.

그의 안녕을 빌며.

잔치 그리고 숙제 – 평화

마치 잔치가 끝난 듯한 분위기입니다. 약  100시간에 달했다는 프란치스코  천주교황  방한 이후의 한국언론들 모습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교황이 남긴 말씀들의 의미를 꼽는 기사들도 차고 넘치거니와 말씀들이 누구를 향한 것이라는  나름의 해석들도 넘쳐납니다.

짧은 한국방문 기간동안 보여주었던 교황의 언행을 보고 들으며 저마다 자기 생각 한자락쯤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전혀 관심 밖이었던 사람들도 많았을 터이고, 애써 무시하려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교황의 방한과 그의 언행들이 행여 자기 밥그릇에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를 저울질하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며, 자신들의 맺힌 한과 숨통을 풀어줄 수 있는 능력자로 기대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터입니다.

날라리 기독교인(개신교)인 저는 어제 주일을 맞아 모처럼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두어 달만의 일인 듯 싶습니다.

예배순서가 거의 마칠무렵에 찬송을 부르다가 문득 프란치스코교황이 방한 중에 하셨다는 말씀 하나가 머리 속에 뱅뱅 돌았답니다. 그 연유로 잔치가 끝난 마당을 돌아보며 제 생각 한 자락 풀어 놓습니다.

먼저 어제 제가 교회에서 불렀던 찬송가의 내용이랍니다. 교회생활 조금 하신 분들이면 익히 잘 아는 찬송입니다.

<내 마음속에 참된 평화있어 주 예수가 주신평화/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 과연 귀하다 나의 평화/ 주 항상 계시네 내 맘속에 주 가 항상 계셔 아 기뻐라/ 주 내 맘속에 계셔 위로 하신다 /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이런 내용의 찬송입니다.

사람 일반이 종교에 귀의하여 의지하고자하는 일차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가사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당연히 귀의한 사람들에게 평안과 안식과 평화를 보장합니다. 적어도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종교들 일반의 모습입니다. 원시종교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비록 날라리일지언정 기독교인인 저는 예수가 유일한 구세주로서 제게 평안과 평화를 주시는 분임을 정말 자랑스럽게 어느 자리, 누구에게라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다른 사람들이 저와 같아야 한다고 말하거나 주장하지도 않거니와 그런 일에 시간과 정열을 허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답니다.

아무튼 “주 예수가 내 마음에 평화를 주신다”는 찬송을 부르는 일은 신자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 믿음에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어제 저는 그 찬송을 읊조리며 영 편편치 못한 제 마음 한구석을 다스릴 수가 없었답니다. 바로 교황이 던진 평화에 대한 뜻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  <평화란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

교황이 남긴 말씀들입니다.

교황과 김용오그가 말한 평화는 신과 나와의 관계가 아닌 나와 이웃간의 관계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신과 나와의 관계란  믿음의단계에 있어 아주 깊은 곳에 이를 수도 있는 관계설정일 수가 있는 동시에 가장 저급하고 천박한 신앙의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신을 쫓아가면 신앙의 깊이는 깊어질수 있지만 신이 나를 쫓게 만들면 천박하기 그지없는 장사속  종교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나와 이웃간의 관계 설정에서 신의 존재를 묻는 물음은 자못 경건해 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싸움과 다툼의 시작이고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바로 그 지점에서의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바로 정의가 세워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너와 나 사이,  우리와 너희 사이에 정의가 이루어 진 결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를 세우는 일을 민주적으로 풀어나가라는 조언을 덧붙인 것입니다.

대다수의 언론들이나 글쟁이들이 이런 언행을 풀고 간 프란치스코교황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들을 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잔치가 끝났습니다.

이제 교황이 말씀하신 평화에 대한 참된 뜻을 제대로 알려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서 있는 자리를 바로 보아야만 합니다. 그가 어느 순간 하늘에서 툭 떨어져 2014년 8월 한반도 남쪽에 현현했던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프란치스코교황이 2014년 8월 세월호 집단 생수장 이라는 사건을 통해 그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반도를 향해 평화라는 화두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천주교 반세기사(50여년)의 고뇌와 교황 개인이 걸어 온  77년사라는  고뇌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여년 전(1962년 10월 –  1965년 9월)에 있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있었던  천주교의 일대 회개운동이 없었다면,  그의 신앙을 키워낸 아르헨티나라는 척박한 환경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은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정의의 결과물로 얻을 수 있는 평화”란 잔치 끝마당에 저절로 떨어지는 열매가 아니라 앞으로 50년이 더 걸릴지라도 한국민들이 노력해 얻어야만하는 숙제라는 것입니다.

조선민국9 – 민란2

프랑스혁명은 인류사에 있어 분명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습니다.  혁명이 일어나게 된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거니와 그 과정을 통해 사회 질서의 커다란 변화도 겪었고, 혁명의 결과에 따라 세계사의 물결이 커다랗게 출렁이었습니다.

프랑스대혁명(1789.7.14 – 1794.7.27)을 전후로 한 한 세기 동안의 유럽과 프랑스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전에 혁명의 주요 원인과 결과 가운데 한가지를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고 넘어 가려고 합니다.

혁명의 큰 원동력 가운데 한 축은 “배고파 이대로는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문맹자들이었고, 좋게 말해서 평민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프랑스를 떠바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숫자로는 당시 전체 인구의약  90%를 넘어서는 그야말로 주류였습니다. 그들의 노동과 세금으로 국가가 지탱해 나가고 있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프랑스혁명

이들은 프랑스 혁명의 시발과 과정에서 아주 주요한 한 축이였거니와 민란의 주인공이었지만, 프랑스 혁명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그늘에 가려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왕실, 제1 계급(카톨릭 고위성직자), 제2계급(귀족), 제3계급(평민 귀족, 브르조아 신흥 귀족) 등이 주인공인 듯 그려집니다. 그들의 숫자라야 다 합해도 인구의 10분의 일을 넘지 않았으며, 특히 왕실 및 제 1, 2급 귀족들의 숫자는 2% 미만이었습니다.( 이숫자는 후에 이야기할 한반도 조선 말기 양반 숫자와 비교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혁명 과정을 통해 약 17만명이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대부분이 “배고파 못살겠다고” 외치던 좋게 말해 평민이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혁명이 끝난 후 채택된 이른바 프랑스 인권선언문에 나오는 “자유와 소유권, 안전과 억압에 대한 저항권” 곧 자유, 평등, 박애(권리)라는 위대한 선언에는 사실 90%에 이르는 평민들을 제외된 선언이었습니다. 왕실과 제1, 2, 3 계급의 귀족들 곧 10% 미만의 사람들만의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인간 곧 사람에 대한 존엄과 생명의 고귀함을 부르짖는 천부인권사상이 전제 되어 있다고들 평가하지만 분명 거기에는 차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영향으로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론들과 신봉자들이 기세를 드는 형국으로 변화는 이어집니다.

오늘 뉴스에  세월호 집단 생수장 학살사건에 대한 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프랑스 대혁명 시절 이야기가 연상되어 몇 자 적어 봅니다.

조선민국 8 – 민란1

19세기는 농민항쟁의 시기였다. 농민항쟁은 19세기 이전부터 봉건적 사회모순이 첨예화되는 과정에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항쟁과정이 잘 들어나지 않은 소극적 경제투쟁에서부터 폭력적 봉기에 이르기까지 농민들은 끊임없이 봉건지배체제에 반대하여 투쟁하였다. – 한국역사연구회 편 <한국사강의> 208쪽 

천명(天明, 1781-1788)의 대기근에 이은 대판과 강호의 식량폭동(1787), 천보(天保, 1830-1843)의 대기근에 이어 1837년 대판에서 일어난 오오시오의 반란은 식량의 절대적 부족에서 나온 산물이었다. 백성의  반란이든 기근이든 도시의 파괴소동이든 결국은 막번체제(幕藩體制)가 사회경제상황의 발전에 뒤져 낡은 전례나 자연경제에 매달리는 이외에 아무런 방책도 가지지 못한 탓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 한길사편 <일본 현대사의 구조> 162 쪽 

중국의 토양개조, 사회구조의 변혁을 말하면 누구나 농민전쟁을 연상할 것이다. 특히 소작료 인하를 목표로 한 항조운동(抗租運動: 조세 거부 운동)이 농민의 밑바닥으로부터 일어났던 세상을 바로잡자는 행동임은 분명하다. 물론 농민들에게 변혁의 이상(理想)이 있었을 리는 없고 그 운동은 지주나 관료들에 의해 곧 진압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이것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것은 남송(南宋), 명대(明代) 중기 이후, 청대의 건륭(乾隆, 1736 – 1795) 말년 이후였다. – 한길사편 <중국현대사> 10쪽 

세계사의 흐름을 보면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오는 시점은 이른바 민란(民亂) 전성시대였습니다. 유럽에서 아시아를 관통하는 일대 유행이었습니다.

이즈음 유행은 서울, 동경, 북경, 파리, 뉴욕을 비롯한 내노라하는 도시는 거의 동시에 퍼지고 누리는 세상입니다.

지리적으로 멀고 가까움이 유행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뉴욕에서 150마일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제가 사는 촌동네는 유행에서 벗겨나 있는 곳입니다. 서울과 뉴욕이 동시패션을 구가하지만 제가 사는 촌동네는 90년대 쯤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느 쪽이 좋은지(유행에 민감한 대도시 쪽 또는 유행에는 별반 관심없이 사는 촌동네 쪽)는 개개인들의 선호에 달린 일이기도 하겠거니와 때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뉴욕이나 서울에 가면 빨리 이 촌동네로 돌아오고 싶답니다.

아무튼 그건 이즈음 세상이야기이지만, 어찌보면 약 이백 여년 전 민란전성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역시 선택의 여지없이 자신들이 살았던 땅에서 역사의 일원이 되어 살았을 것입니다.

이즈음이야 중동 가자지구에서 밤에 일어난 일들도 실시간으로 전세계로 퍼져나가거니와, 부산 해운대 앞바다 실시간 영상을 보고자한다면 이곳 미국 촌동네에서도 손바닥 들여다 보듯 볼 수 있는 세상이어서 동시간에 유행을 탄다는 게 전혀 신기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신기한 점은 지금으로 200-300여년 전 아직 동양과 서양이 서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던 시절인데 이 민란만큼은 거의 동시대에 일대 유행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민란이 유행하게 된 원인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았다는 사실인데요, 바로 먹고 살겠다고 일어난 반란이었다는 것입니다.

Les_Miserables7

그렇다면 먹고 살겠다고 난리를 일으킨 사람들이 있겠고, 그 난리를 유발한 난리 이전에 “자기들 끼리 배불렸던”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그 무렵 프랑스 혁명을 통해 잘 알려진 말인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인 바로 “배불렸던” 한 쪽 축입니다. 구체제(舊體制)입니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오는 싯점은 바로 이런 구체제와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무리들의 일대 충돌이 일어났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느냐 하는 역사적 경험들이 20세기 이후에 보는 각나라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외면한 채 한반도 내에서 일어난 일들만 들여다보면 그 시절 양반의 뒤를 잇는 소수의 앙시앙 레짐들이 오늘날에도 사회 엘리트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민족성이 게으르고…”운운하는 사기꾼들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게되는 것입니다.

자! 프랑스 혁명부터 이야기하지요. 뭐 거창하게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가 처음부터 등장한 것이 아니랍니다. 그저 배고파서 일어난 난리였답니다. 언놈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언놈들은 세금 한푼 안내고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이 더러워서 일어난 난리였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배고파 손가락 하나 까닥거리기조차 힘든 지경에 빠져있는 사람들 뿐이었다면 난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배부르고 가진 게 있지만 구체제는 싫고,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배고픈 이들과 손을 잡고 난리를 일을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 소식과 쓰러질 듯한 사내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잊지말아야

이즈음 국제 무법자 행세를 하는 이스라엘민족의 조상신 야훼는 자기 민족 곧 히브리족과 계약을 맺습니다. 이른바 십계명조약입니다.

십계명조약에 근거가 된 조건은 히브리족은 노예에서 풀려난 자유민족이고 그렇게 된 것은 바로   해방자인 야훼 하나님 때문이었다는 상호 이해였습니다.

히브리가 이스라엘로, 유대로 바뀌였다가 다시 이스라엘로 바뀌는 수천년의 과정을 통해 그 민족이 걸어온 수난과 영욕의 세월들은 많은 이들이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월동안 그들이 결코 잊지 않고 자자손손 이어온 것은 “그들의 조상이 노예였다는 것과 해방자 야훼신이 그때 함께하여 자유민이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런 자기들만의 정체성를 근거로  오늘날 국제 무법자 행세를 정당화하는 발상을 세우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종족출신으로 똑같은 고백을 하면서도 전혀 다른 야훼 하나님을 선포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입니다.

노예였던 아픔을 결코 잊지 않되 자유민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특정한 민족, 특정한 족속,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언제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사는 누구라도 똑같이 누릴 수 있다는 선포를 한 사람입니다.

예수가 선포한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사람’은 ‘사랑’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랑인 세상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제는 이스라엘족과 똑같이 “잊지 말아야 할 것” – 곧 노예(죄인)였던 사실을 잊지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랑이 되는 세상으로 가려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간직하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2014년 오늘을 한국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랑으로 바뀌는 세상으로 가려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힘있는 모든 분야의 권력자들, 돈 꽤나 거머쥔 부유한 이들, 지식 꽤나 머리에 이고 산다는 이들, 글줄 말질 꽤나 한다는 이들, 하나님 예수 부처 마호멧 공맹자 하다못해 자기 주먹 꽤나 내세우는 이들이 모두 잊는다해도 진정 사람이 사랑으로 바뀌는 세상을 믿는 이들이라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세월호 입니다.

사람을 돈과 권력의 노예로 만든 사건이고, 끝내 죽음으로 몰고 간 죄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예수쟁이라면 잊지 말아야합니다. 잊지 않아야 새 세상이 열립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가수 김장훈씨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에 함께 한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가 참 예수쟁이입니다.

잊지 말아야 새 세상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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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의 꿈

엊그제 페북에 올라온 유튜브 영상 하나가 머리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머물고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인 고(故) 이보미양과 가수 김장훈씨가 부른 듀엣곡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입니다.

생전에 이보미양이 학교 행사를 준비하면서 녹음했던 노래에 가수 김장훈씨가 자신의 목소리를 입혀 만든 작품이랍니다. 보고 들으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냥 쓰리고 아팠습니다.

어제 오늘은 증인으로 법정에 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의 증언들이 “거위의 꿈”으로 인한 아픔을 더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연관져서 떠오른 그림이 제 블로그 대문을 꾸미고 있는 피카소 그림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입니다. (연관 글 그림하나)

CCA≪¼O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0년 10월부터 12월 7일 사이 황해도 신천군에서 벌어진 주민 대학살 사건을 주제로 한 그림입니다. 당시 신천군민의  4분의 1인, 약 3만 5천 여명이 희생된 끔직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숱한 사람들을 죽인 주체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확실치가 않답니다.

한반도 북쪽 정권은 그 학살자의 주범은 미군이라고 하고, 한반도 남쪽 정권은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북의 노동당과 인민군에 대항한 우파 지하조직 및 신천군민의 저항이며 반공투쟁 사건이라는 당시 월남민(越南民)의 소리만을 부각시킨 채 그저 침묵일변입니다.

현재까지 드러난 여러 정황에 비추어 보면 미군은 아닌 것 같고, 당시 극심한 좌우 대립과 신천군의 특징상 토지개혁으로 첨예화된 지주와 소작인들 사이의 갈등이 주요 원인이 아닐까하는 설이 우세하다고 합니다.

아무튼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한쪽은 무방비 상태이고  다른 한쪽은 완벽한 무장 상태입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生水葬) 학살 사건을 단순 교통사건로 치부하는 잡놈(들)도 있다는 뉴스도 보았답니다. 천걸음, 만걸음을 양보해 교통사고쯤으로 치부한다하여도 완전히 무방비 상태인 보행자가 파란 불에 길을 건너다 완벽한 무장 상태로 질주하는 차량에 치어 죽었는데  정상적인 국가(기관)권력이라면 그 사고의 원인을 따져 묻는 게 지극히 정상입니다.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질주하던 차량의 운전사(이것조차 분명하지 않지만)가 죽었으니 이 사건은 없던 일과 똑같다는 투입니다.

약 65년 전에 수만 명이 누군가에 의해 죽었는데도 누가 죽였는지를 모르는 우리들의 역사랍니다.

25년 전, 광주 학살을 보고 당한 눈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학살자들은 시침 뚝 떼고 살아가고, 엄한 곳으로 핑계를 돌리는 역사가 연속인 오늘입니다.

거위의 꿈을 부르던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아픔을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은 여전히 그저 무방비 상태입니다.

무릇 국가란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삶을 편안히 누릴 수 있는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소총과 포와 미사일로 완전 무장하여 무방비 상태인 사람들을 죽여야만 학살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편안히 누려야 할 삶을 보장하지 못하고 죽음을 방치한 권력 역시 학살의 주범입니다.

아픔 가운데, 오늘 법정에서 검찰측 물음에 증언한 단원고 어느 학생의 말에서 희망을 봅니다.

문 : 먼저 탈출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을 탈출시키면서 남아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답 : 내가 안하면 (아이들이) 그냥 그대로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움직였다.

(거위의 꿈이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게하는 해답일 겝니다.)

조선민국 6 – 출발

“사람이 소송사건에 있어서 불실한 증언을 하려고 출정하여 그가 한 말을 확증하지 못하면, 그 소송이 생명에 관한 소송일 경우 그를 죽인다.”

지금은 세계 최고(最古)의 자리를 빼앗겼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하여도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법전으로 알려졌던 함무라비 법전 제3조의 내용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800여년 전에 바벨론의 왕 함무라비가 반포했다는 바로 그 법전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십계명에는 “하지 말라”는 계명이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인, 남에 것에 대한 욕심 등입니다.

또한 팔조지교(八條之敎), 팔조법금(八條法禁) 등으로 알려진 한반도 최고(最古)의 법전인 고조선의 여덟가지 법률에는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는다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살인, 도둑질, 간음 및 강간, 각종 상해에서부터 거짓 증언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범죄행위들은 인류 역사와 함께 사람사는 세상이면 어디에건 끊임없이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 어느 사회건 이런 범죄행위들은 공동체를 위해 다스려져야하고 그에 대응하는 벌칙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외없는 법칙이 없다는 말처럼 이 경우에도 예외는 늘 있어왔습니다. 누가 범죄를 저지르는냐에 제재 대상이 되기도 하고 오히려 영웅적 행위로 간주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저지른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이라도 말입니다.

인류사의 발전이란 바로 이런 예외의 적용율이 낮추어지는 쪽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언제 어디서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잣대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역사의 발전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즈음 제재받는 않는 국제적 무법자 행세를 하는 이스라엘의 행태나 집단 생수장(生水葬) 사건인 세월호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을 보노라면 이러한 역사 발전의 거대한 반동이 일어나고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길게 놓고 따져보면 그 또한 발전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문창극류의 신의 은총이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와 정신사가 그렇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 및 이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바로 대한민국, 한반도 나아가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모든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종의 오늘날 솔직한 자기 모습입니다.

함무라비법전과 십계명과 고조선 팔조법금 아래 사는 모습입니다.

특히 사건 이후 정홍원총리 책임 사임에서 도로 정홍원에 이르는 사이에 등장했던 여러 인물들, 일테면 안대희, 문창극, 김명수, 정성근 등등의 이름들과 뉴스들을 보면서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소위 이 시대 한인사회 엘리트들의 모습들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비단 그들만의 모습이겠습니까?

참으로 저렴한 가치관이 사회 엘리트 행세를 하는데 필수 요소가 된 현실을 벌거벗겨 드러내 놓은 격입니다.

삼백년 전 박지원이 쓴 양반전에는 비슷한 가치관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삼백년 전에 양반행세를 하던 이들이 오늘날의 신양반계급으로 변하는 과정을 돌아보는 일은 바로 역사를 바른 방향으로 흐르게 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세계사의 흐름에서 삼백년 전인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오는 싯점은 바로 모든 민족과 국가들이 거의 동일한 선상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던 싯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창극류의 저렴한 사관(史觀)으로는 볼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