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은…

“식물도 새도 곤충도 아이들도 모두 즐거웠다. 그렇지만 사람들- 나이먹은 어른들-만은 여전히 자기 자신과 서로서로를 속이고 괴롭히는 일들을 그만두지 않았다.

신성하고 중요한 것은 이 봄날의 아침도 아니며 만물의 행복을 위해 주어진 신(神)이 만들어 준 세상의 아름다움 곧 평화와 일치와 사랑으로 마음을 이끄는 아름다움도 아니고, 단지 서로가 상대방을 지배하기 위해 스스로 꾸며낸 일들만이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16년전인 1899년에 발표된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서로가 상대방을 지배하기 위해 스스로 꾸며낸 일들만이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부터 소설 ‘부활’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로부터 116년 후인 2015년 1월, 뉴스들은 “서로가 상대방을 지배하기 위해 스스로 꾸며낸 일들만이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찹니다.

어제가 된 2015년 1월 7일 프랑스 현재 시각 오전 11시 30분, 파리 19구에 위치한 전문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건물에 두 괴한이 습격해 AK47 자동소총을 난사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 시각 현재 12명이 죽고, 11명이 중상인 상태이며, 그 가운데 4명은 목숨을 잃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사건을 기록한 동영상들이 이미 많이 유포되어 있는데 찾아보니 “저게 과연 사람일까?”하는 의문이 들만큼 그냥 잔인한 영화속 장면같은 일이 벌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살인마들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Allah akbar”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게 “알라는 위대하다”는 뜻이랍니다.

죽은 12명 가운데 <샤를리 엡도>의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Stéphane Charbonner)라는 이도 있습니다. 그가 지난 2012년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뉴스도 있습니다. 그 때도 이 주간지는 이슬람세력에게 살해 협박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가 한 말이랍니다.

“나는 보복이 두렵지 않다. 나는 아이도, 아내도 차도, 신용도 없다. 약간의 허세를 보태자면, 나는 무릎 꿇고 사느니 선 채로 죽겠다.”

그가 선 채로 죽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랍니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그 역시 스스로 “알라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이었는지 역시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자 CNN 온라인판에는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전세계 만평가들이 그림 삽화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이고 더 보시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링크를 걸어드립니다.

Charlie Hebdo

그리고 또다른 뉴스 하나.

대한민국 검찰이 재미동포 신은미씨를 강제출국 조치 해달라고 8일 오후 법무부에 요청했다고 합니다. 또 그녀와 함께 토크쇼를 했던 황선 희망정치포럼 대표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검찰이 발표한 내용이 참 가관입니다.

“북한에서 치밀하게 사전 연출된 사실에 기초하거나 신씨의 지역적 또는 다년간의 경험에 기초한 걸 일방적으로 왜곡해 마치 그것이 북한 전체의 실상인양 오도함으로써 결국 북한 세습정권과 독재체제를 미화 내지 이롭게 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북한에 다섯 번 가서 ‘남한이 참 잘 산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여행사를 따라가 좋은 곳만을 보며 쓰거나 말하는 여행 이야기만으로도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고, 세계 어느나라에 가든 ‘대한민국은 참 잘 산다’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발상은 아마 톨스토이도 짐작치 못한 일일 것 같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2015년, 이리 저리 검색창을 두드리다가 그래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사진 한 장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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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이 죽고 6천6백만 명이 다쳤다.”

프랑스의 희망이요, 사람사는 세상이 희망이 되는 사진이랍니다.

선진화를 외치는 대한민국에도 이런 희망이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temp_1419220667962.2078561173“천국에 다녀온 소년(Heaven Is for Real)”이라는 영화를 함께 모여 보았답니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인 아주 작은 공동체 식구들이 한 해를 마무리 짓는 모임이었답니다.

오늘의 삶에 대한 고민과 내일의 걱정으로 살며 언젠가 만나게 될 구원의 때를 그리며 사는 모든 신앙인들, 또는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지니고 사는 이들에게 권해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특별히 오늘 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하늘나라를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답니다.

Heaven_Is_for_Real_(Burpo_book)_cover빤하게 보이는 서로의 아픔과 모자람 아니 미움까지 모두 껴안을 수 있는 세상이 바로 천국이라는 새로운 세상이며, 저와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생각에 따라 누릴 수가 있다는 이야기랍니다.

영화를 보고난 후 정말로 그렇게 모인 서로들을 마음으로 껴안으며 신나게 놀고 온 밤입니다.

비록 2014년을 마무리하는 생각으로 모여 함께했던 대여섯 시간의 짧은 잔치자리였지만 바로 천국이었답니다.

 

세월호, 차라리 남기지 않았다면…

지난 일요일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 사람들의 모임”이 주최한 걷기대회에 다녀왔답니다. 그리고 그날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답니다. 오늘 그 영상들을 함께 참석했던 이들에게 보내자는 생각으로 조금 편집을 해 보았답니다.

그러노라고 세월호 생수장 사건과 관련한 동영상들을 두루 찾아 보았답니다.

그러다 든 생각입니다.

DSC01844첫째는 과연 “문명(文明)”이란 무엇일까하는 물음이었습니다. 뭐 거창한 질문을 하자는 뜻이 아니고, 보통사람들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배안에서 동영상을 남겨 여러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 보편화된 것은 채 십년도 안된 일입니다. 엄청난 문명의 발전이지요. 그런데 그 문명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아픔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았답니다.

차라리 남기지 않았다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이토록 추스리지 못할 정도로 뒤짚어 놓지는 못하지 않았을까하는 물음이었답니다.

두번째로는 사람이 과연 어디까지 뻔뻔해 질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천개의 사실도 하나의 진리(힘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틀로써의 진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현실에 대한 물음이랍니다.

마지막으로는 그러므로 더욱 해야할 일들이 많은 세상에 대한 감사입니다. 바로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저 제가 살고 있는 이 땅끝에서, 작은 몸짓 하나라도 아픈 이들, 더불어 함께 살려고 애쓰는 이들과 함께 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음에 대한 감사랍니다.

 

 

세월호 – 난 더욱 예수쟁이어야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이 일어난지도 어느새 반년이 지났습니다.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의 일심 재판도 끝났습니다. 끝내 시신조차 거두지 못한 아홉 영혼(추정하는 숫자일지도 모를 일이지만)들의 가족들에게 깊은 한을 남기며, 시신 수색작업도 끝냈다고 합니다.

노란리본실로 어이없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거대한 여객선이 육지가 빤히 바라보이는 연안에서 기울어져 바닷속으로 잠겼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사고 이후 단 한사람도 구조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아직 인생을 꽃피우기도 전인 아이들이었습니다.

육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왜 그 많은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바다속에서 죽어가야 했는지는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오늘 이런 저런 뉴스들을 훑다가 정말 기가 찬 나머지 헛웃음 터트릴 수 밖에 없는 기사를 보았답니다. 달탐사를 위한 엄청난 예산을 쪽지예산으로 들이밀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도대체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라는 물음이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에서 – 그것을 국가라 부르든, 사회라 부르든, 교회라 부르든, 당파라고 부르든 간에 –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람이건만 어디에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오로지 “돈”입니다. “권력”은 돈을 그러 모으기 위한 일차적 수단이고요. 그렇다면 돈과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조차 없습니다. 물론 거기 모습으로만 사람이 있으되 이미 사람이 아닌 악귀들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부끄러움”을 상실한 악귀들만이 공동체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모습이랍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 이래로 정말 조용한 공동체가 한 곳 있습니다. 바로 개신교회입니다. 그렇게 느끼는 까닭은 제가 평생 개신교도인 까닭입니다. 이 나이에 개종(改宗)을 하거나 무종교자가 되는 일은 없겠기에 제겐 그저 아픔입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세월호 생수장 사건으로 인해 불거진 인사파동에서 드러났던 문창극이나 김성주 류의 사람들이 읊어댔던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 뿐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야말로 “사람을 철저히 배제한” 것입니다. 오직 “돈과 연계된 악귀들 만을 위한”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문창극이나 김성주 류가 말하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믿는 사람들이 한국교회와 한인교회에 여전히 차고 넘치는 주류라는 것입니다.

뭐 멀리 가서 찾을 이유가 없답니다. 그저 주변에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개신교도임을 부인하지도 않을 것이고, 예수와 교회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믿기 때문입니다.

긴 역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임을 믿는 까닭이 첫째요, 누구나 짧은 인생을 통해 모든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신을 향해 응답하는 몸부림이야말로 참 신앙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은 죽은 이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신앞에서 묻고 응답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제가 살며 사랑하는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이신 홍길복목사님께서 그의 글 <디아스포라 코리안의 역사와 삶>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기독교신학에서 고난은 제3의 성례전이라 일컬어진다. 고난은 예수그리스도의 정체성이고 그의 구속사역의 방법이다. 십자가의 신학은 고난의 신학이다. 고난이 없이는 구원도, 부활도 없다. 고난은 인간존재의 가장 명확한 존재방식이다. 고난은 디아스포라의 존재방식이다. 고난은 모든 디아스포라의 삶과 이야기의 키 워드(key word) 이다.

고난을 넘어서는 길은 그냥 고난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다.  좌절을 극복하는 것은 절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고난은 미화되서도 않되고 찬양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고난의 한 가운데는 고난의 주인이신 우주와 역사의 창조주가 계시다.

기쁨은 고난의 반대편에 있는것이 아니라 고난의 역사가 진행되는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승리 역시 실패가 끝난 뒤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진행되는 한 가운데 다른 얼굴로 현존하여 있다.

“고난이 지난 후에는 승리가 온다”라고 믿고 기대하는 것은, 자칫 고난 자체가 주는 위대성과 값어치를 모독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고난은 훗날 기쁨으로 바뀌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써 이미 엄청나게 위대한 축복이요, 승리이다.

수학에는 답을 얻는 과정이 있듯이, 인생에도 정답으로 가는 과정이 있다.  그것은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마찬가지이다.

고난이 정답이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을 먼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제가 개신교도이어야 하고, 예수쟁이이어야만 하는 까닭입니다.

필라,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오늘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 사람들이 모여 함께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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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시내 한 복판에 있는 Fairmount 공원 Schuylkill 강변길을 한시간 가량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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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는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뒤에는 “A Memorial Walking For Victims Of The Sewol Ferry Disaster In South Korea”라는 문구를 새겨놓은 노란색 셔츠들을 입고 함께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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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사람들이 가을 길을 걷는다고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지만, 이렇게라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작은 끈이 있다면, 아파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서로가 안고 가야하는 기억을 더욱 굳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걸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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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마치고 작별을 하기 전 우리들 옆에서 한 친구가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한을 푸는 춤사위를 펼쳐 보였답니다. 

그리고 Schuylkill 강에 비친 오후의 햇살을 가르며 가는 오리 한마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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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에…

기도빨(기도의 능력)도 없는 제게 기도부탁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미안하고 송구한 주일 아침입니다. 절실한 사람들에겐 오늘 아침처럼 뜰에 가득한 가을이 아픔으로 다가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게 손님들 가운데 친구들처럼 가깝게 지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저 일상의 소소함들을 나누는 것이지요.

Kathy의 남편 Fred는 작지만 아주 다부진 몸매를 지닌 진짜 사나이였습니다. 사냥이 취미인 그에겐 여러 종류의 총들이 있고, 사격을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얼굴이 영화 007의 주인공이였던 Sean Connery를 닮은 정말 멋진 사내랍니다. 그러던 그가 이즈음 암으로 투병중이랍니다. 지난 주에는 폐렴까지 겹쳐 Kathy를 덜컥하게 만들었답니다.

John은 이제 나이들어 그저 모든 것 넉넉히 바라보며 즐길 수 있을만했는데, 이즈음 눈가에 그렁하게 맺히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답니다. 10살짜리 손녀가 암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기 때문이지요. John의 기도 부탁에는 응답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답니다.

제가 사는 동네 한인교회 목사님 한분에게는 정말 자랑스러운 아들이 있었답니다. 그 분의 맏아들입니다.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도 하며, 주를 대표하는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violinist였고, 대학생활에서는 한번도 우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장차 의사가 꿈이었던 대학 4학년이었답니다. 그런 자랑스런 아들이 지난 달에 교통사고로 목사님 곁을 떠났답니다.

그렇게 떠난 아들을 묻고 온 날 오후에 목사님 댁 하늘 위에는 쌍무지개가 떳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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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사내를 만났습니다. 한국에서 7년 만기형기를 마치고 지난해 미국으로 강제추방 당한 오십대 초반의 사내입니다. 그의 논리적이고 세련된 화법을 담은 소주잔에는 아직도 여전히 요한 모리츠처럼 25시를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의 무수한 얼굴들이 담겨있었습니다.

가을이 가득한 뜰을 바라보며 주일 아침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아프고, 외롭고, 괴롭고, 흔들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갈 길 꿋꿋하게 걸어가는 이들을 생각하며.

살아있기 때문에

–       이정하

 

흔들리고 아프고 외로운 것은

살아 있음의 특권이었네.

살아 있기 때문에 흔들리고,

살아 있기 때문에 아프고,

살아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

오늘 내가 괴로워하는 이 시간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에겐

간절히 소망했던 내일.

 

지금 내가 비록 힘겹고 쓸쓸해도

살아 있음은 무한한 축복.

살아 있으므로 그대를 만날 수 있다는

소망 또한 가질 수 있네.

만약 지금 당신이 흔들리고 아프고 외롭다면,

아아 아직까지 내가 살아 있구나 느껴라.

그 느낌에 감사하라.

걷자 – 잊지 않기 위해

‘록키의 길’ 걸으며 ‘세월호를 기억합니다’

-필라 세사모 주최 ‘세월호 추모 걷기 대회’ -11월 9일 필라 페어마운트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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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기를 바라며 갖은 노력을 하는 박근혜 정부의 노력과는 달리 해외 동포들의 세월호 기억하기는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매주 세월호를 기억하고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일인시위가 벌어지는가하면 런던, 뉴욕 맨해튼, 조지아 아틀란타 등지에서 세월호 참사를 알리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자유와 독립의 도시 필라델피아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걷기대회가 개최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 사람들의 모임’(이하 필라세사모)은 오는 11월 9일(일) 오후 2시 필라델피아 페어마운트 공원에 위치한 켈리드라이브에서 ‘세월호 침몰 참사 희생자 추모 걷기대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필라세사모는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한지 6개월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주변은 세월호 진상규명의 외침조차 식상해하며 잊고 싶은 과거사가 되어가고 있다”며 “침몰 당시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어선 안 되며 ‘잊지말자’는 전 국민적 결의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경기불황의 원인조차 세월호로 돌리는 몰지각하고 비이성적인 상황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현 상황을 통렬하게 비판한 뒤 “이런 몰상식의 흐름을 차단하고 무모하게 희생된 넋들을 추모하는 추모걷기대회를 준비한다”고 추모행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세사모 관계자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는 분, 함께 용기를 내고 싶은 분들의 동참을 호소한다”며 “무고히 희생된 어린학생들의 진혼과 아직도 구조되지 못한 분들의 귀환과 진상규명을 위해 아직도 거리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드리며 우리 조국이 더 안전하고 사람을 중심에 두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는 많은 동포들의 참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해외에서의 추모행사를 주도해온 미시 유에스에이 및 세사모를 종북으로 몰아가려는 시도가 가속화되고 한국의 극우단체들이 미시 유에스에이 관계자들을 고발하는 등 미주 동포들에 대한 탄압이 더해지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행사여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해외동포들의 세월호 진상규명과 추모 의지가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결연해지고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큰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걷기대회가 열리는 장소는 페어마운트 파크 Lloyd Hall 1 Boathouse Row이며 소요시간은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가 걸릴 예정이다.

특히 걷기대회가 열리는 페어마운트 공원 내 켈리드라이브는 강을 끼고 열린 길로 미국 내 10대 아름다운 조깅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며 영화 록키에서 록키가 아침에 로드워크를 하던 장면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또한 주변에 미국 4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필라델피아 아트뮤지엄과 로뎅의 진품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는 로뎅 박물관 등이 위치해 있어 매주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으로 이번 추모 걷기대회가 많은 홍보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모걷기대회 관계자는 “가족들끼리 모처럼 나들이를 나오기에도 좋은 곳”이라며 “ 추모걷기대회에도 참석하고 가족들끼리 박물관 구경이나 나들이를 하는 것도 좋은 기회”라며 많은 참석을 당부하기도 했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전화 484-557-0531, 215-430-3128으로 연락하거나 또는 이메일 [email protected]으로 문의하면 된다.

–       이상 <뉴스프로> 기사에서

*** 잊지 않는다는 몸짓으로 걷기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가을과 부끄러움

화창한 시월 일요일 오후입니다. 동네 한바퀴를 돌았습니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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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을 담은 동네 어귀 개울물도 참 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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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남짓, 이른 가을 오후를 만끽하며 그렇게 걸었습니다.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흐를즈음 다시 들어서는 집뜰에는 가을 햇살이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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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걸으며 제 머리속에 오간 몇 가지 생각들입니다.

오늘 오전에는 모처럼 교회 예배에 참석했었답니다. 오늘 주일 설교 본문이었던 성경 말씀이 머리 속을 오락가락했답니다.

“예수께서 뭍에 내리시니, 그 동네에 사는 귀신 들린 어떤 사람 하나가 예수를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았으며, 집에 머물러 있지 않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누가복음 8: 27)

“그래서 사람들이 일어난 그 일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께로 와서, 귀신들이 나가 버린 그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 두려워하였다.”(누가복음 8: 35)

마태와 마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 군대귀신 들린 자를 예수가 치유하는 기적 이야기입니다.

이 성서 본문을 들어 “옷을 입지 않았”던 귀신 들린 상태에서 “옷을 입”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온 모습을 대비하며 “성령의 새 옷을 입은” 신앙인의 모습을 일깨우는 설교 말씀이 이어졌었습니다.

걷는 동안 구름 한점없는 맑은 하늘아래 가려야하는 모습들을 생각해 보았답니다.

옷은 패션의 상징이기 이전에 부끄러움을 가리는 상징입니다. 가린다는 말은 숨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릴 줄 안다는 것은 깨달음의 시작입니다.

걸음과 함께 제 머리속에는 부끄러움이 드러날수록 오히려 목청이 커지고, 부리는 권세의 칼날을 더욱 번득이는 이즈음 세태들이 이어졌습니다.

모세와 예수와 모하메드. 그 모두의 시작은 “신앞에서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사람”의 모습에서였습니다.

오늘 이 순간 저 푸른 하늘 아래서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이름으로 “남의 부끄러움”만을 탓하는 세상은 모두 가짜입니다.

무릇 모든 참된 신앙의 바탕은 부끄러움을 아는 일이고, 가릴 줄 아는 일입니다.

잊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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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에 일어났던 세월호 집단 생수장사건으로 죽은 이들의 유가족들이 아직도 길거리에서 하루해를 맞고있다고 합니다. 낙엽지는 이 가을에 말입니다.

이제는 세월호의 ‘세’자만 나와도 지겹다는 사람들이 있다기도 하고, ‘가만히 있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는 유가족들 때문에 나라살림이 절단날 것 같다고 목청 높이는 이들도 있답니다.

시체장사라는 말에서부터 매국노, 종북 좌빨까지 유가족들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언사들도 날로 거칠어지기만 합니다.

유가족들과 유가족들을 대하는 권력과의 힘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만큼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유가족들을 포함하여 그들과 뜻을 같이하려는 사람들의 총체적인 힘의 합보다 수천, 수만 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쪽은 이른바 국가의 공권력과 언론 권력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른바 여론 쪽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마치 힘의 균형이 팽팽한 것처럼 거짓 정황들을 만들어 놓고는 차마 사람의 탈을 쓰고는 뱉어내서 안될 언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마치 세월호에 대한 기억의 싹수를 도려내고야 말듯한 기세입니다.

이럴 때, 약한 자들이 힘을 잃지 않고 뜻을 지켜내는 방안은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는” 일입니다. 바로 잊지 않는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연대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서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말입니다.

주일아침, 두편의 시(詩)

뜰에 가을이 밀려든 주일아침입니다.

이 아침도 제 삶이나 세상 소식들은 그저 일상의 연속입니다. 딱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아침에 느끼는 허전함 말입니다.

그렇게 손에 든 옛 시집을 넘기다가 눈에 꽂힌 시 두편입니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제 믿음을 확인하며, 일상에 대한 감사를 되찾습니다.

팽목항

풀잎이 하나님에게

–       허형만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우리의 이파리를 꺾이지 않게 하시며

당신의 이름을 위해 우리를 지키소서

야훼, 우리 하나님

태풍이 몰아쳐도 뿌리 뽑히지 않게 하시고

들불이 번져 와도 타지 않게 하소서

비록 어둠 속에서도 두 눈 크게 뜨게 하시며

나팔을 높이 불어 쓰러진 동족을 일으키소서

우리의 햇살을 전과 같이 함께하게 하시고

우리의 새들도 처음처럼 돌려보내주소서

짓밟는 자에게 생명의 귀함을 일깨워주시고

낫질하는 자의 낫은 녹슬게 하소서

야훼, 우리 하나님

우리의 땅은 더욱 기름지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은 버러지로부터 보호해주시고

우리의 뿌리는 더욱 깊이 뻗게 하시며

우리의 하늘은 더욱 푸르르게 하소서.

 

 

–       이탄

돌멩이처럼 굴러 있는 그런 것들의

틈에서 사는 평범한 하루

아침이 왔다 가고 저녁이 왔다 가고

더러는 왔다 갔는지 모르게 가고

아직 한번도

내가 부른 아침, 내가 부른 저녁은 없었지만, 이제 아침이나 저녁은 가족 같은 걸.

 

연기가 새어나오는 틈으로 새어나가듯

틈에서 사는 하루

그래도 보이는 하늘은 넓다.

늘 푸르다.

 

돌멩이처럼 사라져 간들

깨끗한 귀 깨끗한 눈으로

틈을 메우며 살려는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