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딸아이 혼인 덕에 이박 삼일 도시 여행을 즐겼다.

도시의 해는 건물 사이를 비집으며 떠오르고, 달도 건물  뒤로 숨는다.

DSC02820 DSC02830

그래도 뉴욕은 아름답다. 하늘이 도시를 감싸고 있고 물이 도시를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DSC02877DSC02875DSC02889

어느새 서른 여덟 해 전 일이 되었다. 아내와 내가 부부의 연을 맺을 즈음, 내 선배이자 우리 부부의 선생 그리고 이젠 삶의 동행자이며 길동무 더하여 신앙의 스승인 홍목사님이 던져 주셨던 말씀. “누군가의 말이라네. 결혼이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하더군.”

DSC02945

나는 사 년 전 아들과 며늘 아이에게 그 말을 전했고,  어제 밤엔 딸아이과 사위에게 우리 부부가 서른 여덟 해 전에 들은 이야기라는 말을 덧붙여 전했다.

모처럼 일상을 벗어났던 이박 삼일. 아들과 며느리와는 가족 사랑을 깊이 새기는 참 뜻깊은 경험을 함께 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딸과 사위, 그들을 위한 내 기도의 시간이었다.

DSC03118

억겁으로 쌓인 인연으로 하여 서로 간 노년의 초입에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만난 캘리포니아 사돈 내외와 함께 바라본 허드슨 강의 아름다움이라니.

IMG_20210924_184657770_MP IMG_20210924_184713427

그저 감사, 감사, 감사.

———————————————————————————–

<Family>

Thanks to my daughter’s wedding, I enjoyed a city trip of two nights and three days.

The sun in the city rises pushing aside buildings, and the moon hides behind them. Nevertheless, New York City is still beautiful. That’s because the sky enwraps the city and the water curves around it.

Before I knew it, it was something that happened thirty-eight years ago. Around the time when my wife and I were about to tie the knot, Rev. Hong, who was my senior and a teacher of my wife and me at that time, and now a fellow traveler of my life journey and my teacher of faith, spoke the words: “Someone said this. People should marry not just because they love each other, but because they want to love each other.”

Four years ago, I passed it to my son and daughter-in-law. And again, I did so to my daughter and son-in-law last night, adding that it was what my wife and I were told thirty-eight years ago.

Two nights and three days out of my daily repetitive life after a long time! It was very meaningful, as I could think over about family love with my son and daughter-in-law. At the same time, it was a precious time of my prayers for my daughter and son-in-law.

The Hudson River was so beautiful, when I looked at it with my son-in-law’s parents with whom I made a relationship at the beginning of old age through mysterious fate.

Just gratitude, gratitude, gratitude.

 

꼰대

최씨氏였던 어머니와 장모가 김가家되고 이가가 되던 날이나,

이씨였던 아내가 김가가 되던 날에도

참 스마아트한 사내였다 나는.

‘암만, 여기 문화인것을.’

 

딸네미가 보내 준 결혼식날 일정표

예식 주례자가 하는 성혼 선포에

내 딸아이가 김씨 아닌 권가로 박혀있다.

 

참 순간이었다.

눈물 한 방울 뚝 그리고

치미는 화.

‘아니 이런 몹쓸…. 내 아이 성은 왜 바꿔?’

 

숨 한번 크게 다스린다.

‘후유, 아직 꼰대일 순 없지? 아무렴!’

하는 일 없이 분주하기만 하다더니 이즈음 내 모습이 딱 그 짝이다. 가게 일은 가게 일대로 집안 일들은 또 그것 대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마음만 어수선하게 분주할 뿐 딱히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리 많지 않다.

추석이라더니 딱 그 옛날 내 어릴 적 추석 날씨다. 종종 일곤 하는 생각인데 지금 내가 사는 곳의 날씨는 오늘 날 서울 날씨보다 내 어릴 적 신촌에 훨씬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랬다. 바람산 넘어 안산 꼭대기 바위 위까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펼쳐진 날, 추석 빔으로 차려 입었던 헐렁한 잠바는 아침 마른 바람에 안성맞춤이었다만 이내 뜨거워진 가을 햇살에 한나절 설레임에 그치곤 했다.

오늘이 딱 오래 전 내 고향 신촌 그 날의 날씨였다.

아버지의 식사량은 찻숟갈로  하나 둘이 고작일 정도로 줄어 들었지만 정신은 말짱하신 편이다. 어머니는 많이 다르셨다. 어머니는 시간을 많이 넘나 드시다 떠나셨었다. 그렇게 시간을 넘나 드셨던 어머니가 종종 내 손을 잡으시며 하셨던 하셨던 말씀이다. “얘! 이거 니 딸 줘라! 이 눔아! 행여 니 놈이 쓰지 말고!’

그렇게 어머니에게 건네 받았던 것들은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접어 두셨던 일 불, 오 불 지폐부터 동전 주머니 그리고 어머니가 간직하셨던 패물에 이르기 까지 하였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 참말로 진지하셨다. 나는 내 딸아이에게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 ‘이 눔아! 행여 니 놈이 쓰지 말고!’라는 말 까지 다 전해 주었다.

그리고 장모. 딸을 낳을 즈음 나는 이민이 아직 낯설어 몹시 헤매고 있었다. 내 딸아이의 어린 시절엔 장모의 사랑이 함께 했다.

몇 해 전만 해도 어머니 아버지, 장모 장인 모시고 추석상 차리곤 했었다만 이젠 더는 그럴 일도 없다.

추석을 맞아 하늘 높은 날, 어머니와 장인 장모께 인사 드리다. “우리 딸 결혼해요.” 어머니와 장모의 낯익은 목소리를 듣다. “감사하다!”, “고맙네!”

이 나이 먹도록 춤이라곤 추워 본 적 없는 내가 아내에게 춤을 배운다. 딸과 함께 출 춤을.

DSC02776 DSC02780 DSC02788 DSC02791

소박(素朴)함에

삶의 여정 마지막 길목, 그 초입에 이르신 아버지가 어제 더듬더듬 내게 건네신 말씀. “사람 산다는 게 참 별게 아닌 듯도 싶고….”

오늘 일요일 하루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리라 맘 먹고 아주 오랜만에 늦잠을 즐겼다.

어제 아버지가 던지신 말씀이 지워지지 않아 이런저런 책장을 넘기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살이 본바탕 생각이란 그리 변한 것 없다.

<사람들이 진정 돌아가야 할 곳은 밖으로는 천진함을 드러내고 안으로는 순박함을 간직하는 것이며, 사심(私心)을 줄이고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다. – 노자 도덕경 19장>

<발의 존재를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며, 허리의 존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며, 옳고 그름을 잊을 줄 아는 것은 마음이 자연 그대로에 맞기 때문이며, 마음이 내적으로는 변함이 없고 외적으로는 대상에 끌리지 않는 것은 자기 처지에 안주하여 항상 편안하기 때문이다. 이 자적에서 시작하여 항상 자적(自適)의 경지에서 머무는 것이야말로 ‘자적조차 잊은 자적’의 경지이다. – 장자 외편 제 19장>

그리고 예수가 가르쳐 준 기도, 곧 주기도문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가르며 강조한 가르침이자 간절한 기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사람살이- 그 모든 거창하고 거룩하거나 세계적 국가적 민족적 거대한 담론들 다 제(除)하고 그저 일상적이고 분명하고 평범한 것, 바로 신과 그리고 함께 부딪히고 사는 사람들 앞에 서 있는 오늘, 지금 나를 위한 기도.

바로 소박(素朴)함을 위하여.

더하여 얻은 깨우침 하나. ‘퀘이커 지혜의 책(A Quaker Book of Wisdom)’에서 로버트 스미스(Robert Lawrence Smith)가 처음과 끝에서 크게 강조하며 깨우쳐 알려 주는 말. –  “당신의 삶으로 말하라!(Let your life speak!)”

자유, 자적 나아가 삶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든든한 밑천일 듯. 참 별게 아닌 듯 싶은 내 사람살이를 위하여. 아버지가 그러하셨듯이.

오후에 아내와 함께 가까운 펜실베니아 Ridley Creek 공원 숲길을 걷다.

DSC02720 DSC02724 DSC02731 DSC02747 DSC02751 DSC02753 DSC02767

물난리

허리케인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지고 강풍이 불었던 지난 밤에 며늘아이가 우리 내외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내왔다. 고마운 마음 뒤끝에 아주 낯선 느낌이 이어졌다. 어느새 내가 아이들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걱정하는 나이로 접어 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바람자고 비 그친 아침 공기는 상큼했다. 내 일터에서 마주 한 아침햇살은 아름다웠고, 그 햇살 아래서 아침 수다에 빠져든 공사판 사내들은 건강했다.

DSC02668 DSC02670

허리케인이 지나간 하늘은 온 종일 높고 맑았다.

하루 노동을 마치고 저녁 밥상을 물린 후 마주 한 동네 뉴스. 곳곳에 물난리와 토네이도 피해를 입은 이웃들 소식이었다. 내 집과 가게에서 10분이나 반 시간 거리면 닿는 이웃들이 지난 밤사이 겪은 일들이란다.

1ca5a597-7dab-43a0-b90e-9cab789a7d2a-090221-ida_aftermath_-wb_341958

때론 아니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나만의 작고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

귀뚜라미 우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