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달라진 풍경 가운데 하나는 온라인 모임인 zoom meeting의 일대 유행이다.

나는 온라인 모임 프로그램을 십 수년 전부터 사용해 왔다. 이즈음 유행인 zoom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한 프로그램을 이용했었는데 사용료는 월 120불 정도의 고액이었다.  미주 전역의 세탁인들과 정보를 나누고 대화를 잇는 목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사용했었다. 내가 세탁업으로 거부가 된 사람도 아니거니와 지식도 일천하지만, 그저 세탁업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조금씩이라도 어제보다는 나은 세탁소를 운영해 가는 방법들을 함께 나누던 지난 세월 이야기다.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는 생각에 하나 둘 일을 정리하면서 그 일도 접었다.

그래도 온라인 미팅은 이어와 이즈음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젠 나도 zoom을 사용하고 있고, 매주 한 번 모이는 모임에는 세탁인들이 아니라 필라 인근에 살며 세월호 가족들과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모인다. 나는 이들에게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우며 산다.

팬데믹 이후 아내가 나보다 zoom meeting을 더 많이 사용한다. 한국학교 수업 및 교사회의, 이사회, 한인회 등등 이즈음 아내는 가히 유행 따라 산다.

아내가 참석하는 온라인 모임 가운데 옛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이 있다. 일주일에 한 차례 모이는 이 모임이 시작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어린 시절에 교회생활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족히 사십 년 넘는 세월이 흐른 후 화상으로 얼굴 맞대고 만나는 모임이다.

카톡 등으로 간간히 서로 간의 소식을 주고 받던 친구들 가운데 한 친구가  중한 병을 얻었단다. 그 친구를 위해 서로 기도해 주자고 시작한 온라인 모임이란다. 그렇게 한 주간 한 차례 씩 모여  함께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며 사십 여년 만나지 못하고 살아 온 지난 세월들의 이야기도 나누곤 한단다.

그 친구들 몇몇은 나도 익히 기억하고 있다. 아내와 나는 한 교회를 다녔고 내게는 사 년 후배가 되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그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또래 친구들을 생각했다.

한 해 후배인 종석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난 말이유,  어릴 때 주일학교라도 다녔기에 요만큼이라도 살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우.’ 그를 본 지도 어느새 십년이 흘렀다. 그가 은퇴를 코 앞에 두고 있던 때였다.

최근 몇 년 사이 노부모들이 연이어 병상 생활을 하시다 한 분 두 분 떠나시며, 먼 여행길은 한 해 두 해 미루어져 왔다. 이즈음엔 한 분 홀로 남으신 아버지 얼굴 한 번 들여다 보는 일이 일과이다. 더더우기 지루하게 이어지는 팬데믹 까지 한국 여행은 이젠 계획에서 멀어졌다.

나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옛 벗들을 생각한다.

어찌 보냈건 흘러간 세월들에 감사를, 어떤 연으로 잇던 오늘의 소식들에서 서로 간에 위로를, 지나간 세월에 비해 턱없이 짧을 내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나누는 만남들이 되기를 빌며.

믿음이란 딱히 극적일 까닭도 없고 절벽 끝에 서야만 만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므로.

우리 부부가 다니던 교회 이름은 대현大峴교회. 큰고개(大峴)에서 함께 뛰놀던 옛 벗들을 생각하며.

(십년 전, 딸아이와 함께 찾았던  옛 시간은 지금도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