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에

아버지가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어조로 내 이름을 부르셨다. 우선 나를 부르는 호칭이 평소와 달랐다. 통상 즐겨 쓰시는 ‘아범’, ‘애비’도 아니고, 기분 좋으실 때 부르는 ‘어이 김영근!’도 아니었다. 오늘 아버지는 ‘영근아!’라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렇게 이어진 아버지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나는 웃고 말았다. 세상 둘도 없는 말씀을 하실 듯이 나를 부르신 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미안하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게 또 미안해서 웃고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보다 여운이 가시지 않은 것은 ‘영근아!’라는 호칭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를 부를 때 ‘영근아!’라고 하는 이들이란 지금은 아버지 어머니 딱 두 분 뿐이다. 물론 가게 손님들이나 여기서 살며 알게 된 이들이 ‘Young’이라고 나를 부르지만  ‘영근아!’와는 사뭇 다르다.

나를 ‘영근아!’라고 부르는 친구들과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어쩌면 내가 그들을 찾아가지 않는 한, 더는 나를 ‘영근아!’라고 부를 이를 만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아무리 백세 시대라 하여도 내가 보낸 시간들도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다.

그런 마음을 다 지우지 못한 채 난민과 이민에 대한 책장을 넘기다  눈에 밟힌 글귀 하나.

<사람은 나면서부터 어디든 옮겨 다닐 수 있고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다. 누구든 살던 곳에서 자유롭게 ‘떠날’ 권리, 살던 곳에서 강제로 ‘쫓겨나지 않을’ 권리, 새 삶터에서 ‘정착할’ 권리, 그리고 살던 곳으로 안전하게 ‘돌아 올’ 권리가 있다. 또 이주와 정착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여러 협약으로 인정하는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도 있다. 오늘날 이런 권리가 어떤 이유에서든 원칙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나라는 폐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사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글쓴 이의 주장에 시간을 하나 덧붙인다면 우리는 영원히 폐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사회를 살다 가는 것은 아닐까?

‘영근아! 이 짜샤!…’ 그 흘러간 저쪽 세월에 잠시 빠져버린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