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와 개나리

“꽃샘추위” – 추위까지 사람인양 새암을 부려 꽃피는 것을 시샘한다는 생각에서 만든 이 말이야말로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이에 대응하는 영어라야 “March Wind”(삼월바람, 삼월에 부는 찬 바람) 정도랄까? 자연을 관리 대상으로 삼았던 서구사상 또는 기독교 사상과 자연과 사람이 하나인 동양사상 또는 도교사상을 깨놓고 비교할 수 있는 듯하다.

‘겨울 다 갔지!’하였더니 눈이 제법 내려 이틀 장사 망치고 말았다. 그리고 옷 배달 길, 그 잔설(殘雪)입은 나무가지에 봄눈 튀운 것 보았다. ‘꽃샘추위였군’ 혼잣말하며 이미 봄이 왔음을 느낀다. 이 눈 녹으면 우리집 앞뜰 관상수(?) 개나리 노오랗게 활짝 피고 뒷뜰 진달래 붉게 물들리라. 더하여 빨래감 잔뜩 쌓이는 세탁소 제 철 만나리라 꿈이라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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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묏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 70년대 이후 한국 대학가에서 소위 데모노래로 유행했던 ‘진달래’의 가사이다.

‘가시는 걸음 걸음’ 뿌렸던 소월의 님에 대한 한이 젊음의 한, 민족의 한으로 나아가는 소재로 쓰인 진달래꽃이다.

70년대 한 때는 진달래를 노래하는 것조차 불온시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이 얼마나 될까? 내 고향 서울 신촌 안산에 조차 흐드러지던 그 진달래를…

산철쭉, 참꽃나무, 두견화(杜鵑花), 영산홍(迎山紅) 등으로 불리는 진달래는 한반도 및 만주지방 산간 양지 바른 곳에 잘 자라 이른 봄 정취를 한껏 드러내는 꽃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진달래 꽃으로 기름을 짜기도 하고 탕을 만들어 먹거나 화전(花煎)을 부치거나 나물을 무쳐 먹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삼월 삼짓날 음식은 이 진달래꽃 음식이 주를 이루었다. 진달래로 만든 음식 가운데 특히 유명한 것으로는 진달래꽃과 뿌리를 섞어 빚은 두견주(杜鵑酒)를 들 수 있겠는데 이 술은 약주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진달래는 약용으로도 쓰여 민간 및 한방에서 강장, 이뇨, 건위 등에 다른 약재들과 함께 처방하여 쓰기도 한단다.

그러나 무엇보다 진달래는 봄이면 온 산하를 붉게 물들이는 ‘더불어 정신’ 곧 함께 뽐내는 자태에서 제 맛을 느낄 수 있으며 모진 추위와 가뭄에도 거뜬히 이겨내는 강인한 생명력이 그 멋을 더해 준다 하겠다.

‘나리 나리 개나리’- 여기서 나리는 홀로 피는 서양꽃이요, 개나리는 무리지어 피는 우리 꽃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서인지 개나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지만 이 개나리야말로 한국이 원산(김태정이 쓴 책 ‘우리꽃 백가지’에서)인 식물로 한민족이 자랑할 수 있는 한국 고유의 특산물이다.

봄이면 어디서건 노오란 꽃잎 내밀어 제 있음을 자랑하는 개나리는 생명력이 대단히 강해 가지가 땅에 닿기만 하여도 곧 뿌리가 내리고 가지를 잘라 놓으면 그 마디에서 뿌리가 나온다. 개나리 또한 한방이나 민간에서 약재로 써 종창, 임질, 이뇨, 치질, 부스럼, 해독 등에 다른 약재와 함께 처방하여 쓴다. 이 또한 내 고향 신촌에 흐드러졌었다.

우리집 앞뜰 관상수라 했다.

이 땅에도 어디서건 볼 수 있지만 내 뜰 개나리는 신촌 안산의 개나리다. 뒷뜰 흐드러질 진달래는 소월의 진달래요, 그 묏등마다 스러져갔던 내 젊음의 이야기들이다.  더하여  그 끈질긴 생면과 이웃에게 베풀 약용, ‘더불어 함께 해야만’ 아름다움은 우리 다음세대에게 넘길 꽃의 아름다움이다.

아직 오지 않은 봄, 우리 세대 아니면 다음 세대 아니 그 다음 세대라도 무리지어 필 진달래, 개나리꽃을 기다리며.

(2001. 3. 1.)

*** 오늘의 사족

이 땅, 이 이민의 땅을 살아가는 모오든 내 피붙이들이 힘들고 어려워도 개나리, 진달래처럼 생명력 강한 삶들을 이어 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