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 3, 희망에>

겨울시간은 해가 너무 짧다. 오랜만에 늦잠을 즐기며 느긋하게 시작한 탓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하루 해가 너무 짧다. 여행 전, 미처 다 심지 못했던 히야신스, 무스카리, 알리움 등 구근들을 묻고,  뜰을 가득 덮은 낙엽들을 거두고 난 뒤, 아버지와 함께 잠시 시간을 보내고 온 것 뿐인데 벌써 어두워졌다. 그 짧은 하루, 봄을 기다리며 가꿀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하며.

신촌 대현교회 고등부 3학년 때 일이다. 따져보니 52년 전 일이다. 그 때 우리들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 가운데 박대위, 이열모 선생님이 계셨다. 두 분 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이열모 선생님은 우리 고3  남학생들을 위해 이런 기도를 하셨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아이들이 장차 이 나라의 꿈입니다. 헌데 지금은 고3입니다. 열심히 공부할 때 입니다. 이 녀석들이 공부하다가 쓸데없이 바지 속으로 손 넣고 장난치는 유혹을 이기게 해주시고….”

박대위선생님은 제2한강교와 절두산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양옥에 살고 계셨는데, 당시 우리에게 지나치듯 이런 말씀을 던져 주셨었다. “집에 앉아 멋진 한강 풍경을 내려다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단다. 과연 내가 지금 여기에서 이런 사치를 누리며 사는 일이 옳은 것인가?하는 물음 때문이지!”

그 시절 참 좋은 선생님들 덕에 크게 엇나가지 않고 이 나이에 여기서 요만큼 이나마 살고 있는 것에 그저 감사다.

박대위 선생님은 내 대학시설 총장이셨던 박대선총장의 동생이셨다.

그리고 내 친구이자 동지인 김규복목사. 대학시절, 박대선총장 사퇴운동부터 박정희 유신 철폐, 전두환 타도 투쟁에 이르기까지 나보다 늘 한발 앞서서 나아갔던 벗, 김규복 목사를 독수리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민 보따리를 꾸리고 있을 때 그는 대전 대화동에서 빈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교회를 세웠었다.

독수리다방은 이름만 이어져 올 뿐, 옛 모습이라곤 다방안 사진 속에만 남아 있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불편한 걸음으로 다방 안으로 들어섰다. 만 36년 만에 만난 내 오랜 벗 김규복목사였다. 그는 오래전에 겪은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다.

우린 짧은 시간 손을 꼭 맞잡았고, 부둥켜 안았을 뿐 긴 말은 나누지 못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오늘도 옛 모습 그대로, 비록 많이 변한 세상일지라도 여전히 바닥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하시는 신과 함께 일 하고 있다.

살며 이런 벗 하나 사귀고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누린 은총은 족하다.

목사님 다음에 장로님 이야기.

어느 날 우리 내외는 ‘이것 한 번 먹고 가자!’라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 저녁에  박성규 장로내외가 초대해 준 저녁식사 자리는 바로 우리가 먹고 싶어했던 그 요리 전문점이었다. 아무렴! 장로님 기도발은 나 같은 얼치기 예수쟁이 보다 세긴 센 모양이었다.

교회 후배이자 대학 후배인 박장로- 일년 터울 후배라긴 보단 그저 친구일 뿐- 그와 함께 공유했던 사람들과 시간들을 되새기며 삶의 아쉬움과 감사함을 조근조근 나눈 참 좋은 시간이었다. 두 내외에게 감사를.

옛날 동쪽 끝인 워커힐 언덕에서  옛날 서쪽 끝 신촌까지 오가며 아직도 한결 같은 모습으로 교회를 지키고 있는 그의 모습에 경외를.

이번 여행에서 꼭 가 보고, 아니 꼭 가 보아야 할 곳이 있었다. 세 곳이었는데 모두 서울 시청 부근 이었다.

그렇게 시청앞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다 보게 된 시 한 편이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 함께 삶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이 서울 나들이를 하면 반드시 찾게 되는 세 곳이다. 바로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추모와 기억 공간 그리고 윤석열로 대변되는 사람을 계층화 시키는 세력 타도를 외치는 현장이었다.

그렇게 찾아 나선 시청앞 광장에서 나는 절망했었다. 옛 시청 건물인 서울도서관 옥상과 아내와의 추억이 쌓여 있는 정동 세실극장 옥상에서 바라본 토요일 오후 시청앞 광장 풍경은 대한민국 정치 뉴스처럼 절망적이었다.

광장 북쪽 광화문 방면을 점령한 내 또래 이른바 태극기 부대와 남쪽 남대문을 향해 모인 무리들 모두 확성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소음은 내겐 너무 낯설었다.

확성기로는 절대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 웅웅거리는 거대한 침묵의 함성 소리, 바로 지축을 흔드는 민중의 함성이라야 새 세상 열리는 법이다.

멀리 갈 것 없다. 80년 서울역 광장, 87년 시청앞 광장, 2016년 청계광장. 내가 아는 한 모두 확성기가 아니었다. 아직 갈 길 먼 듯 하다만….

허나 나는 그저 희망적이다.

내 친구 김규복과 박성규 같은 굳건한 바닥 단단히 다져 하나하나 반듯하게 세워 이어가려는 이제 칠십 노인들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하여 희망으로.

바라건대 더불어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희망으로.

이 희망! 내가 내 고향 대현교회에서 배운 믿음이다.

희망에

투쟁과 쟁취를 위한 행동을 늘 앞세웠던 선배는 나를 가르쳤다. ‘희망이란 약자들과 패자들의 언어’라고. 나는 그 가르침을 거절했었다. ‘투쟁과 쟁취를 위한 행동은 희망에서 시작된다’며.

아침과 저녁을 자주 헷갈리시는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한 시간은 마치 하루처럼 길지만, 새해 첫 날 아버지에게 드린 선물로 그만한 것은 없었다.

뉴스나 내일에 대한 전망들이 내 맘에 든 적은….. 거의 없지? 아마.

그래도 나는 새해 아침 희망을 품는다. 그 생각으로 손님들에게 새해 첫 편지를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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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New Year!

2021이라는 숫자가 우리들과 함께 머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루 하루가 똑같은 날들이지만,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뀜으로 오늘 누리고 있는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한해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팬데믹으로 하여 어려움들이 많았습니다. Time지가  2020년은 “역대 최악의 해”라고 선언할 만큼 어렵고 힘든 한 해였습니다. 저 역시 한 해를 보내며 2020년을 정리하면서 한숨을 그칠 수가 없었답니다. 30년 넘게 세탁소를 해오지만 지난 해처럼 어려웠던 것은 처음이었답니다. 한 해 동안 들어오고 나간 돈들을 계산해보니 그저 한숨이 절로 나왔답니다.

제 말을 믿거나 말거나 그 한숨 속에서도 제가 놓치지 않으려고 꼭 붙잡고 있는 생각과 말은 바로 감사입니다.

비록 가게 매상이 팬데믹 이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지금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고, 이런 현상은 새해에도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감사를 놓치지 않는 까닭은 아직은 우리 부부가 건강히 일 할 수 있음이 첫 째고, 비록 지난 해나 오늘이나 걱정들이 넘쳐나지만 우리 부부가 여전히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산다는 것이 둘째입니다.

건강은 스스로 늘 조심하고 잘 보살피는 일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일이지만, 세상 일이 어디 다 자기 생각대로 되는 일이 아니므로 건강한 하루 하루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고 산답니다.

희망이야말로 어제와 오늘의 걱정들과 아픔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으로 희망을 품고 사는 오늘에 감사를 이어간답니다. 희망이란 저절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제가 걸어 나가 잡을 수 있는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 감사의 크기가 커진답니다.

2021년, 우리 모두가 처음 맞는 시간들을 맞습니다.

태양과 희망을 홀로 차지할 주인은 없지만, 태양과 희망은 그것을 품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당신과 함께 나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무엇보다 희망을 품어 웃음과 기쁨이 끊이지 않는 한 해가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https://conta.cc/2JFn7Rr

모처럼 문화생활 – 신에게 가까이

<4월 16일 이전에도 세상은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지옥이었고, 우리는 세월호 탑승객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비로소 끔찍하게도 잔인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떴다. 생명과 안전보다 돈과 이윤이 우선하는 세상을 보았다. 부패한 정치권력의 무능과 무책임을 보았다. 왜곡과 오보를 남발하는 언론의 현실을 보았다. 그리고 총체적으로 국가가 실종되었음을 보았다. 우리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철저히 묻어버리고 은폐하며 억압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우리는 끔찍하고 잔인한 세상의 목격자이고 증언자이다.>

‘4.16연대’라는 단체가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고자 선포한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 규약>에 있는 글의 일부이다. 자신들을 <끔찍하고 잔인한 세상의 목격자이고 증언자>라고 규정한 이들이 6편의 독립영화들을 제작했단다. 이름하여 <망각과 기억2 : 돌아 봄>이라는 주제로 만든 영화들이란다.

나는 어제 필라델피아에 올라가 그 여섯 편 가운데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첫번 째 상영된 영화 <승선>은 세월호에 승선했다가 ‘생존자’라고 분류되어진 한 사내의 이야기였다. 그랬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후, 그는 분류되어 버린 인간이 되었다. ‘일반인’ 그리고 ‘생존자’라는 딱지가 그것이었다. 물론 세상 사람 누구도 그에게 그런 딱지를 붙었다는 이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어찌하리! 그는 분명 그 딱지를 붙이고 살았던 것을. 영화는 그가 그 딱지들을 떼어내는 과정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공감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이들을.

두번 째 영화 <잠수사>는 세월호를 만나 스스로 짧은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잠수사 김관홍과 그 주변 인물들을 기록한 영화였다. ‘김관홍’ – 그는 참 사내였고 참 사람이었다. 영화는 이 간단한 명제를 증명한다. 그는 타고난 그의 재능과 일에 충실하였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그의 재능이자 일이었다. 그런 그가 아파했다. 어느 순간 그가 하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 대신 ‘죽은 자를 건져내는 일’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는 끝내 절망에 이르렀다. 그나마 ‘죽은 자를 기다리는 얼굴들을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린’ 자신을 바라본 까닭이다. 영화는 잠수사 김관홍의 잃은 아내와 아이들을 쫓아간다. “공감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이들을.

세번 째 영화 <세월 오적(五賊)>은 세월호 참사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던 다섯 권력 기관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바로 박근혜, 김기춘, 우병우 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청와대, 해수부, 해경으로 대변되는 행정부권력, 남재준이라는 이름으로 우스개가 된 정보기관 국정원, 조중동, 한경오, KBS, MBC 등등의 언론, 그리고 국해가 되어버린 국회, 이 다섯 권력의 축들의 그 때 그 모습들을 기록한 영화이다. 그들을 고발하는 카메라의 눈 역시 “공감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이들의 것이었다.

나는 <끔찍하고 잔인한 세상의 목격자이고 증언자>들이 만든 세 편의 다큐멘타리 영화를 보면서 안도와 희망과 섭리를 보았다.

안도(安堵) – 지난 달 한국의 정권이 바뀐데서 온 안도였다. 영화를 보며 지난 달 정권이 바뀌고 난 후에 세월호 유가족들과 잠수사 김관홍 가족들이 느꼈을 안도가 내가 다가오던 것이었는데, 나는 그 순간 이 안도의 시간들이 오래 이어지기를 기도하였다.

희망 – 희망보다는 소망이 낫겠다. <세월 오적(五賊)>으로 명시된 이른바 권력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 지경을 넘어, 권력의 이름으로 무참히 짓밟혔으나 하소연은 커녕 숨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스러져 간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이제야 마련되었다는 생각에서이다. 세월호 참사를 보며 <끔찍하고 잔인한 세상의 목격자이고 증언자>들이 만들어낸 세상이다. 멀리는 제주 4.3 항쟁에서 가까이는 광주 항쟁까지. 이제는 목격자들과 증언자들이 큰 숨으로 제 소리를 낼 세상이 되어야한다.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더는 오적(五賊)으로 불리우는 권력들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소망과 희망으로.

그리고 섭리 – 예수쟁이인 나는 결국 성서로 돌아간다. 지금 여기에서 아프고 한맺힌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한 법전인 신명기법전을 이야기하는 성서로 돌아간다. 모세에서 예수까지, 아니 지금 우리들의 삶에 이르기까지. 성서는 모든 법이 있기 전에 삶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하나님 앞에서 이웃과 더불어’사는 삶을.

그렇다. <끔찍하고 잔인한 세상의 목격자이고 증언자>인 그들로 하여 세상은 조금은 더 성서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을게다.

도둑질에 대하여

대왕 알렉산더(Alexaner)가 붙잡혀온 해적에게 “너는 어찌하여 바다를 어지럽혔느냐?”고 물었답니다.

대왕의 물음에 해적은 이렇게 답했답니다. “대왕이시여! 어찌하여 당신은 세상을 어지럽혔습니까? 나는 작은 배로써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도적놈’이라고 비난받지만, 당신은 막강한 군대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정복자’라는 칭함을 얻은 것일 뿐입니다.”라고요.

신국론성 어거스틴이 쓴  “신의 도성(신국론), The City of God”에 나오는 이야기랍니다.

작은 좀도둑이나 국가나 자기만을 위한 생각에 빠져 있는한, 똑같이 도둑놈에 불과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작게는 개인에서부터 크고 작은 집단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기주의에 빠져서 자기 개인이나 집단만의 이익을 우선시하다보면 결국 도둑놈이 될 뿐이라는 교훈입니다.

해적이나 도적이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것이나, 국가나 집단(물론 교회도 포함)이 주어진 권력을 신성시하여 개인에게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나, 똑같이 도적질이라는데는 다름이 없다는 이 이야기의 핵심에는 “소유”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비단 물질적 소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욕망들 일테면 식욕, 성욕, 지식욕, 권력욕에 이르는 것들에 대한 소유입니다. 남보다 내가 더 가지려는 욕망, 끝내 내가 모두 차지해야만하는 욕망에 이르기까지 개인이나 국가 또는 교회, 각종 집단들이 지닌 욕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욕망 곧 소유에 대한 개념을 두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사용(use)과 향유(enjoy)라는 개념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떤 것을 ‘향유’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의 목적 또는 이익을 위해 그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쓰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가 원한다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전제로 말이다.”

어거스틴은 이 두 개념이 전도되는 상황을 악이요, 죄라고 말합니다. 향유(enjoy)할 것을 사용(use)하거나, 사용해야 하는 것들을 향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거스틴은 욕망의 향유(enjoy)와 사용(use)을 구분하는 잣대로 “필요(necessary)”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그가 말하는 “필요”란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과 의복입니다. 마찬가지로 집단이나 단체, 국가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을 “필요”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것들은 “여분(superfluous)”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 “여분”의 것들은 이웃과 나누는 것이요,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며, 개인나 단체 또는 국가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이 “여분”의 것들을 “필요”라고 말하면서 자기 것 또는 권력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야말로 바로 도적질이요, 사기질이라고 강조합니다.

어거스틴(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Sanctus Aurelius Augustinus)이 보았던 도둑질과 사기질은 그가 죽은지 1600여년이 지난 오늘도 도처에서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는 그럼에도 사람사는 일은 여전히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희망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분노와 용기다. 현실이 지금 모습대로인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현실을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바꾸려는 용기.”라는 어거스틴의 말처럼 오늘도 “현실에 대한 분노와 용기”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 뉴스를 보며 자꾸 혀차는 습관이 늘어나는 나에게 희망을 주며…

미쳐가는 나라, 미쳐가는 세상?

손님 – “그 뉴스 봤니?”

아내 – “무슨 뉴스?”

손님 –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일어난 거 말야.”

아내 – “음, 봤지요.”

손님 – “나라가 미쳐가고 있는 거 같아”

아내 – “……”

손님 – “차라리 한국으로 갔으면 좋겠어.”

아내 – “거제도로? 거기도 예전에 한국이 아닌데…”

손님 – “암튼,  미국은 미쳐가고 있어”

오늘 제 가게에서 한 손님과 제 아내가 나눈 대화랍니다.

Morris씨는 이제 제 가게 손님 가운데 유일한 한국전쟁 참전 용사입니다. 미군으로 복무하면서 한국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손님들은 많지만 한국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분들은 최근 수년 이래 모두 이 세상을 떠났고 Morris씨만 남았답니다.

그는 여든 여섯 나이에 비해 아직 정정한 편입니다. 손수운전은 물론이거니와 지팡이 없이도 걸음걸이가 그리 무겁지 않답니다.

저희 부부가 아무리 바빠도 노인들 이야기는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열심히 하는 까닭은 그 나이때에 부모님들이 계시기 때문일겝니다.

Morris씨는 한국전쟁 중에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답니다. 그이가 겪었던 당시 포로수용소의 이야기들은 저희 부부가 듣는 그의 단골 레파토리이기도 합니다. Morris씨가 이름 석자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거제도 여인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메뉴입니다.

그 Morris씨가 오늘 미국이 미쳐가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린 까닭은South Carolina주 North Charleston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었습니다. 경찰의 단속을 거부하고 도망가던 Walter Scott이라는 흑인의 등을 향해 8발의 총알을 쏘아 그를 죽인 백인 경찰 Michael Thomas Slager에 행위를 대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분노한 것입니다.

사건 발생 초기 정당방위라는경찰과 경찰당국의 주장은 한 시민이 찍어놓은 동영상으로 하여 거짓으로 판명이 났고, 도망가는 피해자를 등뒤에서 정조준하여 살해한 것임이 드러난 일입니다.

아내로부터  Morris씨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듣고는  백인인  Morris씨가 아닌 흑인인  Morrison 씨가 떠올랐답니다.

home-by-toni-morrison1Toni Morrison은  1993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에 한사람입니다. 그녀는 지난 2012년에  “Home”이라는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 소설에서 24살 청년으로 등장하는 주인공Frank Money는 제 가게 손님 Morris씨와 동년배인 흑인입니다.

Frank Money 역시 한국전쟁에 참전합니다.

그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이유는 이  미국땅에서 흑인들이 겪어냈던 아픔 때문이었다고 작가  Toni Morrison은 이야기합니다.

소설속 주인공 Frank Money는 남부 조지아주 로터스 출신의 흑인 청년입니다. 그는 아주 어릴 적에 겪었던 일로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의 경험이란 한 흑인 남자가 백인들에 의해 생매장 당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훗날, 그렇게 생매장당한 흑인은 백인들의 놀이도구로 그렇게 죽게 된 사실을 알게됩니다.

백인들은 흑인 아버지와 아들을 싸우게 해놓고는 내기를 벌입니다.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말입니다. 그때 흑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죽이라고.” 흑인 아버지는 결국 생매장을 당합니다.

작가 Toni Morrison는 1940년대에만 해도 여전히 일고나고 있었던 미국의 원시적이고 병적인 인종차별 현장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속 주인공 Frank Money는 이런 병적인 사회로부터 탈출하고자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삶의 현장에서 단지 피부색이라는 판단 기준에 따라 누군가에는 심심풀이 놀이가 되고, 또 다른 누구가는 목숨을 걸어야하는 노리개가 되어도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던 세상을 “미쳐가는 세상”이라는 생각없이 살아왔을 Morris씨가, 오늘날 공권력이란 힘을 빌어 도망가는 흑인 용의자의 등뒤를 향해 정조준하여 총알을 8발이나 발사한 백인 경찰을 보며 “미쳐가는 세상”이라고 한탄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미쳐가는 것일까?” 아님 “그래도 나아지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 사이에서 하루를 보냈답니다.

Morris씨와 Morrison의 주인공 Frank가 겪여냈을 1950여년 그 전쟁통에서 일어났던  “국민방위군 사건”과  2015년 오늘  일주기를 맞이하는 “세월호참사 사건” 사이의 연계 역시 그선상에서 일어난 발상이랍니다.

두가지 사건 모두 무지, 무능, 탐욕이라는 공통점들이 있지만 사건을 겪어낸 가족들의 행태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 다름에서 희망을 보게된답니다.

무지, 무능, 탐욕의 바탕, 바탈까지 부끄럼없이 뻔뻔스럽게 드러내는 권력을 보면 “미쳐가는 것”이 틀림없어 보이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켜낸 꿋꿋한 지난 일년의 행태를 보노라면 “그래도 나아지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도 희망은…

“식물도 새도 곤충도 아이들도 모두 즐거웠다. 그렇지만 사람들- 나이먹은 어른들-만은 여전히 자기 자신과 서로서로를 속이고 괴롭히는 일들을 그만두지 않았다.

신성하고 중요한 것은 이 봄날의 아침도 아니며 만물의 행복을 위해 주어진 신(神)이 만들어 준 세상의 아름다움 곧 평화와 일치와 사랑으로 마음을 이끄는 아름다움도 아니고, 단지 서로가 상대방을 지배하기 위해 스스로 꾸며낸 일들만이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16년전인 1899년에 발표된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서로가 상대방을 지배하기 위해 스스로 꾸며낸 일들만이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부터 소설 ‘부활’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로부터 116년 후인 2015년 1월, 뉴스들은 “서로가 상대방을 지배하기 위해 스스로 꾸며낸 일들만이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찹니다.

어제가 된 2015년 1월 7일 프랑스 현재 시각 오전 11시 30분, 파리 19구에 위치한 전문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건물에 두 괴한이 습격해 AK47 자동소총을 난사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 시각 현재 12명이 죽고, 11명이 중상인 상태이며, 그 가운데 4명은 목숨을 잃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사건을 기록한 동영상들이 이미 많이 유포되어 있는데 찾아보니 “저게 과연 사람일까?”하는 의문이 들만큼 그냥 잔인한 영화속 장면같은 일이 벌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살인마들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Allah akbar”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게 “알라는 위대하다”는 뜻이랍니다.

죽은 12명 가운데 <샤를리 엡도>의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Stéphane Charbonner)라는 이도 있습니다. 그가 지난 2012년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뉴스도 있습니다. 그 때도 이 주간지는 이슬람세력에게 살해 협박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가 한 말이랍니다.

“나는 보복이 두렵지 않다. 나는 아이도, 아내도 차도, 신용도 없다. 약간의 허세를 보태자면, 나는 무릎 꿇고 사느니 선 채로 죽겠다.”

그가 선 채로 죽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랍니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그 역시 스스로 “알라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이었는지 역시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자 CNN 온라인판에는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전세계 만평가들이 그림 삽화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이고 더 보시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링크를 걸어드립니다.

Charlie Hebdo

그리고 또다른 뉴스 하나.

대한민국 검찰이 재미동포 신은미씨를 강제출국 조치 해달라고 8일 오후 법무부에 요청했다고 합니다. 또 그녀와 함께 토크쇼를 했던 황선 희망정치포럼 대표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검찰이 발표한 내용이 참 가관입니다.

“북한에서 치밀하게 사전 연출된 사실에 기초하거나 신씨의 지역적 또는 다년간의 경험에 기초한 걸 일방적으로 왜곡해 마치 그것이 북한 전체의 실상인양 오도함으로써 결국 북한 세습정권과 독재체제를 미화 내지 이롭게 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북한에 다섯 번 가서 ‘남한이 참 잘 산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여행사를 따라가 좋은 곳만을 보며 쓰거나 말하는 여행 이야기만으로도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고, 세계 어느나라에 가든 ‘대한민국은 참 잘 산다’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발상은 아마 톨스토이도 짐작치 못한 일일 것 같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2015년, 이리 저리 검색창을 두드리다가 그래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사진 한 장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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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이 죽고 6천6백만 명이 다쳤다.”

프랑스의 희망이요, 사람사는 세상이 희망이 되는 사진이랍니다.

선진화를 외치는 대한민국에도 이런 희망이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