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 짓

이런저런 흉내들을 많이 내며 살아왔다. 더러는 꿈으로 비나리로 그리 하기도 하였고, 때론 욕심이 동하여 내 본 흉내들도 많았다. 이제와 따져보니 대개가 흉내 짓으로 그치고 말았을 뿐, 온전히 내 몸짓 맘짓 이었다할 만한 것은 없다. 이젠 솔직한 그런 내 모습에 족할 만도 하건만 내 흉내 짓은 지금도 여전하다.

텃밭을 일구고 푸성귀를 거두어 밥상 한 번 차려 내는 일 따위는 꿈 속에서 조차 그려 보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런 일들을 이 나이에 흉내를 낸다.

모처럼 연휴를 맞아 찾아 온 아이들에게 차려 낸 밥상을 달게 즐기는 모습을 보며 모처럼  흉내 짓이 온전히 내 것인 양 좋아라 했다. 그저 속으로 만이지만.

감자 캐어 돼지갈비와 함께 감자탕도 끓이고, 알감자로 감자조림도 켵들였다. 상추와 오이 따다 묵 한 사발 무쳐 놓고 완두콩 따서 콩밥 한 사발 씩, 그렇게 모처럼 나눈 밥상.

아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도 내 일터인 세탁소에서 하루를 보낸다.

때론 흉내 짓만으로도 족한 순간들이 있는 법이다.

*** 한적한 공원 길을 함께 걷고, 동네 사람들과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함께 즐긴 일은 아이들이 내 흉내 짓에 건넨 연휴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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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

아무런 계획없이 하루를 보내고자 했다. 공연히 내 감정에 기복을 일으키는 뉴스들도 보지 말고 아무 생각없이 아무 일도 않고 일요일 하루를 보내자 했다.

늦잠을 즐기는 맛도 보자고 간밤에 늦은 시간까지 앉아 있었다만 눈 뜨는 시간은 매양 같은 시간이었다. 뜰로 나가니 나보다 훨씬 부지런한 새들의 아침 수다가 한창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덕에 평생 처음 뿌려 본 씨앗들이 꽃이 되어 아침인사를 건넨다. 괜히 겸연쩍어 카메라를 찾아 들고서 꽃들의 인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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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맑고 아침이라지만 여름바람 치곤 기분 좋게 마르다. 모처럼 근처 공원이라도 찾아 걸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내를 재촉하다.

공원길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들이 서로 간 십여 걸음 가까워지면 마스크를 쓰곤 하는 모습들을 보면 뉴스들은 사뭇 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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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고 여유로운 공원에서의 아침 시간들을 즐기고 돌아와 아내가 준비한 냉면 한 그릇으로 더운 몸 식히고 달고 단 낮잠의 여유까지 누리다.

일요일 오후 뒷뜰엔 여름의 열기가 가득하다. 부지런히 고추와 깻잎을 따다가 두부와 간돼지고기, 당면, 양파, 당근 등속을 다져 넣은 고추튀김과 깻잎 튀김을 만들다.

어머니 떠나신 후 감정 기복이 심하시다가 이즈음 조금 평정심을 찾으신 아버지가 몇 번이나 ‘맛있다’를 이으셨다. 누나와 막내동생도 ‘덕분에’라는 인사를 건넸다.  별다른 재주 없는 내가 늙막에 이런 어머니 흉내라도 낼 수 있어 참 좋다.

늦은 저녁, 임어당(林語堂) 선생이 전해주는 장자(莊子)의 글을 읽다.

<사람의 마음은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근심하거나 탄식하고, 때로는 변덕을 부리거나 고집을 부리고, 때로는 경망스럽거나 방종하고, 때로는 터놓거나 꾸며댄다. 이런 것들은 마치 텅 빈 악기의 구멍에서 나오는 음율처럼, 또는 습기처럼 돋아나는 버섯처럼 밤낮 교대로 눈 앞에 나타나지만 어디서 싹트는 지는 모른다.

아! 어디서 생기는지는 모르지만, 아침 저녁으로 이러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그 연유한 바가 있으리라. 감정의 변화가 없다면 ‘나’도 없는 것이며, ‘나’가 없다면 이러한 감정을 취할 수 없다.>

아무 계획 없던 하루해가 저문다. 계획을 세우고 보내는 하루는 늘 허전한 구석이 있게 마련인데, 어쩌다 계획없이 보낸 하루는 알찬 듯하다.

오늘 내가 만든 허상(虛像) 하나일 수도. 비록 그렇다 하여도 오늘 하루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