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나이 육십에 ‘평생 운운’ 한다면 욕먹기 딱 십상일 터. 허나 어찌하리, 그에겐 평생 처음인 것을… 아직 환갑에 이르지 못한 나이에.
내가 후배인 그에게 존경이라는 말을 마다치 않는 까닭은 그의 담백함 때문이다. 그는 매사 참 담백하다.
화려한 수사를 즐기는 내게 ‘시민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로 시작하여 어지간히 기름칠 할 일이 많겠다만, 내 후배 이종국은 그냥 담담하게 그의 삶이 시민운동인 사람이다.
그가 오늘 평생 처음인 일을 해 내던 날, 그의 맏딸 혼인날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내 아들 며느리가 함께 해 잠시 놀랐었는데, 우리 아이들과 후배의 딸 아이가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깜박 했었던, 모두 다 내 나이 탓이다.
후배 이종국에게 ‘시민 운동’은 뭐 거창한 일이 아니다. 아니 ‘운동’도 아니다. 그냥 숨쉬는 삶이다. 지금 여기에서 소외된 삶들을 향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들을 실천해 나가는, 마치 숨쉬는 것처럼 그냥 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람이다.
내가 그를 안지 십 수년 동안 그의 한결 같은 모습이다.
오늘도 한결같았다. 딸아이 시집 보내는 날, 그는 오늘도 덤덤하였다. 나는 그런 그가 참 좋다.
그의 덤덤함으로 삶에 불을 지피는 일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던 오후였다.
그리고 모처럼 얼굴 인사를 나눈 선후배들, 오늘 자신들이 이고 있는 아픈 먹구름들을 이야기하면서 웃을 수 있는 이들, 모두 얼마만큼씩은 후배 이종국에게 빚을 지었을 터.
아직 환갑에 이르지도 못한 내 후배 이종국, 오늘 하루만은 ‘평생 운운’은 온전히 그의 것!
몇 잔 와인으로 취기 오른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