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흘러가다가도 다시 그날로 붙들려간다
학생들은 3박 4일의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배에 갇힌 일반인 승객들과 더불어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것은 남겨진 가족들이 가닿을 수 없는 수백개의 금요일에 관한 기록이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대표 김순천, 이하 작가기록단)이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12월까지 단원고 희생학생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하며 그중 부모 열세명을 인터뷰하여 펴낸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에 대한 출판사 서평입니다.
<시간은 흘러가다가도 다시 그날로 붙들려간다>라는 말이 절규로 들리기도 하고, 사명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딱히 <시간은 흘러가다가도 다시 그날로 붙들려간다>는 명제에 사로잡혀 뉴스를 훑은 것이 아니건만 생각은 자꾸 그리로 몰려갑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박종철 사건’ 은폐 검사… 당시 고문치사 수사 축소·은폐> – 오늘자(2/2) 온라인 경향신문 머릿기사 제목입니다.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사건이요,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입니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될만한 사건인 셈입니다. 그 사건의 한가운데서 진실을 은폐하여 자신의 직무를 유기했던 자가 세월이 흘러 대법관 후보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뉴스를 보며 도대체 우리들에게 30여년의 세월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또한 오늘자 오마이뉴스에는 <10월 10일 10시에 태어난 아이가 ‘종북’의 증거라고?>라는 제목의 기사가 머리기사들 가운데 하나로 올라와 있습니다.
“‘통일콘서트’를 열었다는 이유 등으로 구속된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겪은 일과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담은 글을 남편인 윤기진씨에게 편지로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황선 대표가 윤기진씨에게 보내온 편지 내용을 몇 편에 걸쳐 싣는다.”
이 기사를 싣는 까닭을 설명해주는 편집자의 글입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편, 피의자는 2005. 10. 10.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일을 기해 임신 중인 자식을 북한에서 출산할 목적으로 ‘아리랑 축전’ 관람을 빙자, 방북하여 북한 평양산원에서 자녀를 출산 후 소위 통일둥이 ‘윤겨레’라 이름 짓고, 같은 해 10. 25. 판문점을 통해 귀환함으로써 종북인사들로부터 ‘통일전사’란 칭송을 받았다.”
국가보안법으로 황선씨를 구속기소한 검찰측 기록입니다. 사실 제가 이 기사를 클릭했던 까닭은 10월 10일 10시라는 숫자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제 딸아이가 태어난 월 일 시(月日時)이기 때문입니다.
구속된 황선이라는 이는 10월 10일 10시에(시간은 오전인지 오후인지를 명확히 기록치 않아 모르지만 글의 흐름상 저녁시간인 듯) 한반도 북쪽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방문했던 10여년 전 바로 그 시간쯤 바로 그곳 평양에서 딸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엔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 정부가 여행허가를 내주어 약 4천여명 가량이 그 가을에 북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황선씨는 그 중 한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제 아내는 그보다 십오여년 전 10월 10일 오전 10시쯤 이곳 미국 델라웨어에서 딸아이를 낳았답니다.
제 아내가 그 때나 지금이나 10월 10일은 제 딸아이의 생일일 뿐 조선노동당 창건일인 줄은 모르듯이, 아마 황선씨도 10월 10일은 그녀의 딸 생일일 뿐일 것입니다.
저나 제 아내가 그해 10월 10일에 제 딸아이가 이곳 델라웨어에서 세상에 나오도록 한 것이 아니듯이, 황선씨 역시 그 때 그 시간 평양에서 자신의 딸을 낳으려고 계획하고 그렇게 실행했다는 말 자체는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1987년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발표를 진실로 만들려는 검사가 2015년 대한민국의 대법관이 되려는 현실로 본다면, 아마 황선씨도 자신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따라 그 때 거기에서 출산할 수 있는 능력보유자가 될 수있다는 것이 그리 낯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검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가다가도 다시 그날로 붙들려간다>는 사실을 명확히 정리해 주는 글이 있습니다.
오늘자 조선일보에 실린 그 유명한(?) <김대중컬럼>입니다. 제목이 <‘對北’에 올인하는 ‘박근혜 외교’>라는 글입니다.
그는 이글을 통해 미, 중 일 등 강대국들과의 적절한 외교가 우선인데 그를 도외시하고 박근혜정부가 통일에 매달려 대북관계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매우 염려스럽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속내는 바로 <종북장사>를 하는 조선일보를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랍니다.
바로 이 대목들입니다.
<대통령이 철도·도로·특구(特區) 개발 등 대북 사업을 계속 언급하고 남북 대화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면 내각과 장관들은 대통령의 의중을 따라가기 마련이고, 그것이 최근 박 대통령의 외교 현장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민족’이라는 명제에 이끌려 자신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혀 보이려는 감상(感想)이 작용한 ‘통일’이라면 위험하기까지 하다.>
금요일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잊어서는 절대 아니되는 까닭입니다. <시간은 흘러가다가도 다시 그날로 붙들려>가는 경험을 후대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지금 살아있는 자들이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