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에

눈발이 끊겼다 싶어 드라이브 웨이 쌓인 눈을 치웠다. 예보는 더 많은 눈이 내린다고 하지만 이미 쌓인 눈을 치우면 나중에 힘이 덜 부칠까 하여 부지런을 떤 일이었다.

깨끗이 치웠다고 한 숨 크게 쉬자 눈발이 다시 이었다. 땀 식히는 사이 ‘네 놈이 언제 눈을 치웠더냐’ 싶게 다시 눈밭이 되었다.

‘헛짓이었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만, 아무렴 내일 아침에 눈 치우는 일은 한결 수월할 터이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히 눈만 쌓여 가는 오후, 이즈음 틈틈이 읽고 있는 선가(禪家)  이야기 중 하나가 머리에 꽂히다.

중국 명나라 말기에 있었던 장헌충의 난(亂) 중에 있었던 일이란다. 잔학한 학살로 유명했던 장헌충의 난에 대한 기록을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니 당시 310만명이었던 사천성(四川省) 인구가 장헌충에 의해 2만 명 이하로 줄었을 만큼, 장헌충은 점령한 도성 사람들을 거의 전멸시켰단다.

그의 부하였던 이정국이라는 이가 어느 성을 함락시킨 후 그 곳 백성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단다. 그 성에 파산선사라는 선승(禪僧)이 죽기를 각오하고 이정국을 찾아가 사람 죽이기를 그치라고 간청했단다. 그 때 이정국이라는 자가 양고기 돼지고기 개고기 등 각종 육류로 거하게 차린 상을 내어 놓고, 파산에게 이르길  ‘중은 고기를 먹지 않는 계율이 있다지? 중들에게 계율은 생명일 터이니… 만일 네 놈이 이 고기들을 먹으면 백성들을 죽이지 않으마!’라고 했단다.

이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파산이 한 마디 하고 그 고기들을 먹어 치웠단다. ‘사람 살리는 일인데 그깟 계율 따위가 뭔 소용이랴!’

나같은 중생이야 고기 앞에 계율이 뭔 소용이 있겠느냐만, 그래도 중인데!

가히 참 중이었던 파산의 이야기를 읽으며 든 생각 하나.

이런 저런 한국 뉴스들 보면서 이즈음 든 생각이지만, 특히나 내 어렸던 시절 추억이 하나하나 배어 있는  신문로 사거리에서 청와대 인근 백악까지 그 정든 거리에서 아직도 눈물 마르지 않는 얼굴들로 한 서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도대체 계율 따위가 무엇인지?

원칙과 절차의 정당성 운운에 얽매인 계율들이 이른바 사람이 먼저인 촛불의 뜻에 앞서는 것인지?

흔히들 촛불혁명 이라고들 한다. 성공이나 완성된 혁명은 어느 때, 어느 곳에도 없었다고들 말한다. 그렇다고 혁명은 늘 헛짓이었나?

아무렴, 혁명은 이미 권력을 누리는 자들과는 닿을 연이 없다.

다만, 그저 사람으로 살고파 오늘을 아파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오늘도 혁명은 계속된다.  역사 이래 언제나 그렇듯. 비록 오늘은 헛짓일지라도.

내일은 분명 수월할 터이므로.

혁명에.

DSC01662 DSC01666 DSC01668 DSC01670 DSC01671 DSC01672 DSC01677 DSC01679 DSC01688 DSC01689 DSC01693

‘와우! 부수는 건 순식간이네!’ 손님 한 분이 가게에 들어서며 내게 던진 말이다. 이즈음 내 가게가 있는 상가의 반을 부수는 공사가 진행 중인데 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원래 내 가게는 지금 부수고 있는 상가 쪽에 있었다. 그 쪽에서 30년을 있다가 올 봄에 맞은 편에 상가가 살아남는 쪽으로 이전하였다. 내가 30년 정(情)을 붙였던 곳도 다음 주면 더는 볼 수 없을 듯 하다.

DSC08081

상가 건물주는 상가의 반을 헐고 그 곳에 아파트를 짓기로 하고 공사에 돌입한 것이다. 건물주의 청사진에 따르면 아파트가 완공되면 내 가게는 그야말로 동네 최고의 명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내가 그의 말에 귀 기울였을 만큼 순진하거나 어리지 않았으므로 그저 그의 청사진이었을 뿐이었다.

당장의 내 고민은 공사로 인한 내 손님들이 불편을 감내할 수 있는 최대치와 건물주의 청사진을 이루는 시간 사이에서 내가 참아내야만 하는 어려움을 가늠하는 일이다. 그 간극은 어쩌면 내가 상상하는 이상일수도 있다. 그래 떨칠 수 없는 불안이 있기는 하지만, 믿는 것은 내 경험과 나이다. ‘내가 여기까지 온 세월이 얼마인데….’

일을 마치고 돌아와 상가 건물이 부숴지는 모습을 담은 모습을 보다 문득 떠 올린 글 하나. 단재 신채호선생이 쓰신 “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이다.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 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 중략-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족통치의> <약탈제도의> <사회적 불평등의> <노예적 문화사상의> 현상을 타파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깃발>이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생각만 있다 하면 5백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내 나이 스물 적에 내 가슴을 마구 뛰게 했던 단재 선생의 외침이었다.

세월 흘러 역사 속 모든 혁명이란 순간적 변혁일 뿐 늘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이 굳어지고 혁명보다는 개혁을, 아니 어려운 개혁보다는 서서히 감히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변화가 좋은 것이라는 노회함이 어느새 익어버린 나이에 단재 선생의 선언이 떠오른 것은 아마도 이즈음 내가 한국 뉴스에 너무 몰입해 있기 때문일게다.

어쩌겠나? 이 땅에서 산 날이 한국에서 산 날보다 많을지라도 여전히 한국어로 사고하는 한 한국인인 것을.

이즈음 한국뉴스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할수록 한국과 한국인들이 자랑스럽다.

역사 이래 어느 공동체도 감히 이루지 못한,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아주 서서히 혁명적 변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단재 선생께서 꿈꾸었던 혁명을 이루되 결코 혁명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변화를 이루어내는 모습이 그려 지기 때문이다.

하여 여의도에 모이는 시민들에게, 나와 같은 세대로 흔치 않게 참 떳떳한 삶을 이어온 듯한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에게,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변화가 끝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응원을 보내며…

오늘 내 가게 손님 한 분께 받은 작은 화분과 분에 넘치는 찬사보다 수 천 수 만 배 큰  박수가 여의도에 모이는 시민들과 문대통령과 그들과 꿈을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들리는 그 날을 꿈꾸며…

DSC08086

가을 밤

가을이 깊어 가는 화창한 토요일 오후, 아내와 함께 숲길을 걷다.

DSC08005 DSC08008 DSC08012 DSC08017 DSC08019 DSC08023 DSC08024 DSC08062 DSC08063 DSC08066 DSC08067 DSC08070

‘으흠… 나무들이 내쉬는 숨이 이 숲을 채우고 있다는 말이렸다!’ 아내는 어디서나 밝다.

1019191401

두어 시간 산책으로 한 주간 노동의 피로를 씻다. 날다 지친 잠자리 한 마리 내 등에 업혀 함께 걷다.

저녁 나절, 육영수가 지은 <혁명의 배반, 저항의 역사>를 훑어 읽다.

DSC08075

‘프랑스 혁명에 대한 주류해석이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재성찰하고….’ 책을 소개하는 저자의 말이다.

그리고 그가 에필로그에 남긴 소명과 소망.

‘일상생활정치에서 자발적으로 왕따 당하려는 용기와 독립심은 나의 특권이며 역사적 소명이다.’

‘공장 바깥에 있는 노동자, 학교 바깥에 있는 학생, 감옥 바깥에서 생산되는 품행방정 남녀들, 국가 바깥에 있는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이들 모두에게 혁명은 실패나 성공으로 마감되는 권력다툼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할 열정 그 자체이다.’

‘너와 나의 또 다른 시작은 일상적으로 가볍지만 정치적으로 진지한 저항의 박자에 실려 비누거품처럼 온 세상에 번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권력의 여의주를 움켜진 악마가 늙을수록 뻔뻔하고 노회해지는 것에 반비례해, 우리의 연대와 투쟁은 뱀처럼 매끄럽고 모꼬지처럼 흥겹고 늠름할 것이다.’

한국 여의도 광장을 비롯해 곳곳에서 실패와 성공을 넘어 열정 그 자체로 전혀 새로운 혁명의 역사를 쓰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민들을 생각하며…

가을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