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뉴스들을 훑다보니 북의 김정은에 대한 이런 저런 소문들이 눈에 뜨이는군요. 그가 거의 지난 한달동안(29일) 세상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은 중국발과 이슬람지역발로 무성하게 퍼져 나간다고 합니다. 소문인즉은 북에 쿠테타가 일어나 그가 감금되었다든가 아주 죽었다든가에서부터 심장질환으로 쓰러져 살아도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등등의 내용이랍니다.
이런 소문에 남과 북은 함구이고, 중국은 유언비어라며 강력한 부인을 했고, 미국은 아는바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뉴스입니다.
뉴스라인에서 모습을 감춘 김정은에 대한 궁금증이 만들어낸 뉴스들입니다. 허기사 젊은 친구가 그 땅에 사는 제 또래들과는 걸맞지 않게 비대한 모습으로 우스꽝스럽게 뒤뚱거리며 걷는 뉴스를 볼 때면 “저 친구 곧 쓰러질 것 같네”라는 생각이 들곤 하였습니다만, 모를 일이거니와 워낙 숨기는 것을 좋아하는 곳이니 그 진실을 누가 알겠습니까?
북의 그(권력자)들이 만들어낸 유언비어성 뉴스들이라는 생각입니다.
남쪽이라고 별로 크게 다른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진실”입니다. 각종 유언비어가 꼬리를 물었고 역시 국제적 뉴스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늘 선진화를 부르짖으며 세계 열 몇 번째를 꼽기 좋아하는 자칭 민주주의 국가 수장인 대통령의 시뻘건 대낮 근무시간 7시간 행방이 오리무중이라는 뉴스였지요. 그러다보니 각가지 차마 입에 담기 부끄러운 유언비어들이 난무한 것입니다.
이 역시 남쪽의 그(권력자)들이 만들어낸 유언비어성 뉴스들일겝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김정은은 29일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일까? 박근혜는 그날 7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럴 때 우리는 “소문과 뉴스의 행간(行間)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쓰고는 합니다.
행간을 읽어야 하는 세상은 불행한 곳입니다. 떳떳하지 못한 세상이지요. 이른바 자유하는 세상이 아닌 것이지요.
제가 청년이었던 1970년대야말로 “행간을 읽어야만 하는 시대”였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답니다. 그렇게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지요. 여전히 행간을 읽어야만 하는 세월인 것을 잊고 산 것 뿐이지요.
신라 48대 임금인 경문왕 때 이야기라니 약 1100년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왕위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됐다. 왕후와 궁전의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를 알지 못했지만 오직 복두(幞頭-관리가 쓰는 모자)만드는 사람만이 그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평생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죽을 때가 돼서야 도림사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소리치기를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고 했다.
그 후에 바람이 불면 대나무가 소리를 내어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 하였다. 왕이 이것을 싫어하여 곧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더니 바람이 불면 ´임금 귀가 길다네´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알고있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옛날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왕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되다´는 당나귀는 미련한 짐승을, 귀는 쇠귀에 경 읽기처럼 무능한 경문왕에게 진실이 들리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하지요. 재해와 반란으로 곤궁한 백성들을 헤아리지 않고 대규모 부역동원과 같은 미련한 정책을 강행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한 ´복두´는 왕의 무능과 미련함을 감추는 허위의 상징이요 ´대나무 숲을 베었다´ 함은 여론의 탄압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권력은 늘 힘으로 민심을 통제하려 한다는 옛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 일이기도 하고요.
문제는 최소한 “행간을 읽을 수 있도록”이라도 판을 깔아 주어야 할 이른바 언론들이, 북에는 군사적 힘에 남에는 돈의 힘에 묶여 그저 제 잇속 차리기에 바쁘다보니 그나마도 어려워진 세상입니다.
1,100여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북은 인민이 남은 시민들이 행간이라도 찾아 읽어야 하는 한반도입니다만 여전히 사랑해야만 할 모국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