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살며 이따금 짜릿한 즐거움을 맛 보는 순간들이 있다. 가족들로 하여 그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때 그 맛은 극에 이른다.

오늘은 델라웨어 한국학교에서 학생들의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린 날이다. 솔직히 내가 어떤 작은 관심도 기울이지 못한 행사이다. 아내가 한국학교 교사이고 며느리가 학생이긴 하지만 내가 관여할 어떤 틈도 없거니와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오늘 낮에 아내가 보낸 카톡을 받기 직전까지는.

아내가 보낸 카톡엔 내 며늘아이가 대회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펼친 녹음파일이 있었다. 듣고나서 아내에게 보낸 내 첫 응답은 아내를 나무라는 말이었다. ‘아니 좀 애 한테 쉬운 말을 쓰게 했어야지, 그렇게 어려운 말들을…’ 늘 그렇듯 내 나무람은 아내에게 닿지 않았다. 언제나 옳은 아내 대답이었다. ‘내가 며늘아이의 선생은 아니지, 그 반 선생님은 따로 계시지. 내가 뭐랄 처지가 아니잖아. 나도 오늘 처음 들었거든.’

저녁 나절에 아들녀석과 며느리가 전한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며느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에게 고맙고, 어눌한 한국말 구사력으로 제 아내를 도운 아들 녀석이 고맙고, 무엇보다 문장 하나 하나에 숫자를 매겨 외우고 또 외었을 며늘아이가 고마웠다.

그 무엇보다도 이젠 모두 떠나신 내 어머니와 장모와 장인까지 추억해 준 며늘아이에 대한 고마움이라니…

내 며늘아이 이름은 ‘론다야 김’.

<가족>- 론다야 김

  1. 가족은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2.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바로 가족입니다.
  3. 제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때마다, 가족들이 영어로 말하면서 저를 배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 가족들은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영어로 말한 것을 알려주십니다.
  5. 제 어머님은 한국어로 특정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주십니다.
  6. 제 아버님은 특정 요리에서 어떤 조미료가 가장 잘 맞는지 설명해 주십니다.
  7. 제 할아버지께서는 군대와 한국사에 대해 알려주시고 할머니들께서는 제가 잘 챙겨 먹었는지 묻곤 하셨습니다.
  8. 저는 그분들의 친절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9. 그러나 저는 그분들에게 특정한 말을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0. 저는 가족과 저의 언어 장벽이 있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이 말하는 모국어를 말하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11.저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 몇 마디 말로 가족들 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2. 미래의 아이들과 언젠가는 한국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3. 저는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웁니다.
  4. 감사합니다.

한국학교

물론 내가 ‘싫다’하면 나서지 않을 수도 있었다만, 구태여 후환을 만들어 가며 살 나이는 아니기에 한주간 노동의 피로에 절은 토요일 오후 아내를 따라 나섰다. 뉴저지 Hamilton은 처음이었다. 해밀톤 한국학교에서 열린 ‘제 4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석한 길이었다.

해밀톤 한국학교가 주최하고 한국의 재외동포 재단이 후원하는 행사로써 입양되었거나 다문화 가정 자녀들 또는 비한국계 현지 시민들이 참가해 한국어 말하기 경연을 펼치는 잔치였다.

지난해 이 행사에 내 며늘아이가 경연에  나섰음에도 함께 하지 않았었는데, 올해 꼼작 없이 함께 한 까닭은 그만큼 무언(無言)의 재촉을 하는 아내의 힘이 강한 탓이었을게다.

거의 끌려 가다시피  했던 자리였는데,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돈내면서 함께 했어야 할 행사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입양 및 다문화 가정 자녀를 비롯해 인디언 아메리칸, 코카시안, 평화봉사단으로 한국 생활을 경험했던 이까지, 모두 현재 미 동중부  저마다의 동네 한국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 잔치마당이었다.   DSC08518 DSC08529 DSC08539 DSC08548 DSC08553 DSC08567 DSC08577

이경애선생의 지도로 모두 함께 한 복주머니 색종이 접기에 열심히 따라 하는 전혀 나 같지 않은 내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아내는 춤을 추었다. 아내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볼 때 드리는 내 기도는 오늘도 통했다. ‘제발 넘어지는 실수만 아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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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톤 한국학교 교장선생님은 강남옥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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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 행사를 밀고 나가는 힘일게다. 그의 시편들은…

일주일에 고작/ 세 시간 하는 우리, 토요일 한국학교/ 빠진 이처럼 몇은 결석/ 띄워쓰기 다 틀린 작문같이 몇은 지각/ – 중략- 화분에 물 주듯 몇 년 같이 뒹굴었더니 / 철자법 다짜고짜 다 틀린 카드도 건네주고/ ‘썽생님, 나 누구게?’/ 일찌감치 방귀 트듯 선생한테 말 트며/ 뒤에서 슬쩍 가린 눈 풀고 지긋이/ 날 안아 주기도 한다 – (강남옥의 시 ‘토요일 한국학교’에서)

내 모국어의 속 깊은 품은 언제나/ 삶 앞에 진술 긴 나를 부끄럽게 하는/ 언어의 진국이다 – (강남옥의 시 ’깊고 넉넉한’에서)

돌아오는 길, 델라웨어 한국학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와 격려를….

*** 아내는 이 자리에서 여고 졸업 후 처음 만난 동창 얼굴을 보다. 사십 이년 만이란다.

홀로 아리랑 – 그 느낌에 대하여

한국학교 교사는 제 아내가 25년 째 계속해 오고 있는 일입니다. 아내는 이 일을 즐기는 동시에 일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대단하답니다. 봉사를 전제한 일이므로 재미와 자부심 없이 즐기기만 하기는 힘들겝니다.

그런 아내를 따라 어제는 필라델피아, 남부 뉴저지, 델라웨어 지역에 있는 한국학교 연합체인 동중부협의회가 주최한 2014년 교사 송년의 밤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아내를 따라 이런 한국학교 연합체 행사에 가본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시는 분들의 애씀과 참석한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느낄 수 있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밤 그 모임에서 제게 특별히 새롭게 다가 온 노래들이 있었습니다. 평시엔 쉽게 듣거나 부를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노래들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불러보거나 듣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애국가와 아리랑입니다.

아리랑애국가를 부르면서는 참으로 뜬금없이도 울컥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아마 세월호 이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모국(母國)과 한인사회에 대한 생각들이 겹쳤기 때문일 겝니다. 새삼스럽게 한물 간 민족주의 감상에 젖었다는 말이 아니라,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그래도 쉽게 연결해 주는 도구로써 애국가라는 노래에 잠시 빠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날, 홀로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몇 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리랑이야말로 애국가를 넘어서는 한국어 사용자들을 이어주는 끈일 것입니다.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국인들을 비롯하여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를 연결해 주는 노래인 동시에 한반도 남과 북을 이어주는 노래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홀로 아리랑은 홀로 외롭게 부르는 아리랑이 아니였습니다. 홀로일 수 밖에 없는 개개인들 뿐만 아니라 생각과 이념과 신앙이 서로 다른 공동체는 물론이고 빈부의 차이, 지식의 차이, 권력이나 권위를 누리거나 못 누림의 차이로 벽을 쌓고 홀로 섬이 되어 사는 모든 세력들이 적어도 손을 서로 맞잡을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함께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입니다.

무릇 노래란 느낌이고 감성입니다.

하나되는 일은 이론이나 이성으로는 힘들지만 느낌과 감성으로는 쉬운 일입니다.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란 바로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감성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이성(理性)이나 이론(理論)이라는 허울을 쓰고 사람들을 편가르고 서로를 증오하도록 부추기는 일이 넘치는 세상에서 홀로 아리랑이 제게 새롭게 다가온 저녁이었습니다.

아리랑을 이민의 땅에서 주인으로 살아 갈 우리 후대들을 위해 가르치는 제 아내를 비롯한 한국학교 교사들에게 제 느낌과 감성으로 치는 박수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