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딱 닷새 사이에 내가 사는 세상이 바뀌었다. 동네에 첫번 째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생겼다는 뉴스가 뜬 것은 닷새 전인 지난 수요일, 그리고 오늘까지 일곱 명이란다. 모두 내 가게가 있는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뉴스들은 도시가 곧 숨이 넘어 갈 듯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참 평온하다. 사재기로 모든 물품들이 동이 난 듯한 뉴스에 비해 몇 가지 품목들을 제외하고는 일상용품들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주정부나 시정부의 대책들도 전례없이 발 빠르다. 이틀 전인 금요일부터 실시된 drive-through  검사를 비롯한 검사기관들의 결과가 내일 모레쯤 부터 나오면 확진자 수는 급증할 수도 있겠다만, 대체로 정부 기관들과 의료기관들이 전하는 뉴스들에 의하면, 사회 안전 시스템은 대체로 잘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딴 거 없다, 그저 나부터 잘하고 볼 일인데…. 이 지점에서 이는 염려와 걱정이 크다.

당장 내 생업인 세탁소 문을 닫아야 하나? 아니면?… 적어도 하루 걸러 한 번은 찾아 뵈야 하는 치매기 깊어가는 구순 노인들에게 가는 길은 어떻해야 할까?

이런 저런 염려들이 바이러스보다 먼저 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하여 오늘 아침 내 가게 손님들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털어 놓고 설문 조사를 해 보았다. 손님들은 여러 조언들을 보내 왔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 곧 돈에 대한 염려도 함께 보내 왔다. 그저 감사다.

늦은 저녁, 손님들의 의견을 기반으로 하여 내일부터 시작하는 한 주간 영업 시간을 결정해 알림을 띄웠다,

우선 한 주간은 월, 수, 금 사흘간 하루 8시간만 문을 열기로 하고, 상황을 보아가며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안내였다.

재택근무 중인 아들 딸과 직장인 학교가 문을 닫아 쉬는 며느리, 아이들에게 ‘이 또한 곧 지나 가리니…’ 목소리 안부 전하며 하루를 맺다.

하루에

오래 된 친구와 밥 한끼 나누며 그저 그렇게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즐겁다. 엊저녁 모처럼 그런 시간을 누렸다.꽉 찬 나이의 아이들 이야기, 어느 날 문득 낯선 모습으로 다가와 어느새 익숙한 모습이 되어버린 노인들 이야기, 그리고 우리들의 은퇴와 노후 문제… 친구부부와 우리 내외는 그저 그렇게 사는 이야기들로 배불렀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한국 뉴스와 이야기들 – 사실 내 기억 속 한국은 이미 외국이다. 그것이 이승만 또는 박정희 시대든 박근혜 또는 문재인 시대든 어쩌면 모두 외국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내가 살던 때 보다 엄청나게 좋아 진(진보된) 한국이 자랑스럽다.

물론 무엇이라 일컫든 한반도에서 사는 공동체에 대한 인식도 없고 더불어 함께 사는 뜻은 말할 것도 없이 그저 돈에 의해서만 성공이 정의되는 사회로 다가오는 뉴스들도 넘쳐 나지만… 어디 그게 거기 뿐이랴! 그 또한 옛시절 보단 나아진 것이려니. 다만 때론 무도하고 뻔뻔스런 모습들이 도가 지나친 정도가 극에 달했을 지언정. 그 또한 더 큰 진보가 눈 앞에 다가선 징조이려니!

친구가 은퇴 후 남쪽이 어떨까 한다는 말에 나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 ‘이 사람아, 너무 멀리 가진 말게나. 그래도 종종 하룻길에 만날 수 있는 거리에서 살자구!’

파란 하늘에 구름들 제 흥에 겨워 노는 일요일,  나는 Pocono 산 속을 거니며 놀았다. 옛날과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생각들이 뒤섞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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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한국에서 방문한 조교수 내외와 와인 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다. 삼십 여 년 전 이 곳에서 그가 공부하던 시절 함께 했던 이야기들과 서로의 이즈음 이야기, 여기서 박사 과정에 들어 선 그의 자식 이야기 등 그렇게 우리들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나누며…

하루를 보내며 문득 든 생각 하나.

어느새 내가 뭔가 이뤄야 할 나이가 아니라 그저 음미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는…

어느 하루

‘오늘 교회하고 예배 어땠어?’ 엊그제 딸아이가 던진 물음이다.

어제 낮에 내 일터로 전화를 한 장인은 말했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뭔가 좀 이상해. 여기 반란이 일어난 거 같아!.’ 장인이 장기 요양원에서 꼼작 않고 누워 계신지는 이미 몇 달이 지났다.

엊저녁엔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귀가 전화 인사를 드리는 내게 어머니가 물었다. ‘너 오늘 일 안나갔었니? 아까 너희 집에 들렸더니 네 차가 집 앞에 있더라.’ 어머니 역시 누군가의 도움없이 집을 나서지 못하신지 여러 달 째이다.

장인이나 어머니나 이즈음 정신이 많이 오락가락 하신다. 때 되어 겪는 수순이다. 아직 정신이 맑으신 아버지도 기분이 크게 오락가락 하시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연유로 딸 아이에게 한 번 간다 간다 하면서 미루다 큰 맘 먹고 길을 나선 게 엊그제였다. 모처럼 나선 길에 아들 내외가 함께 했다. ‘올라 가마!’라는 내 말에 딸아이가 ‘어디 가고 싶은데 있느냐?’고 물었었다. 나는 아이가 다니는 교회엘 한번 가보고 싶었다.

아들 내외가 다니는 교회엔 가본 적이 있지만 딸아이가 다니는 교회에 대핸 그저 아이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멋진 brunch에 이어진 교회 안내, 예배 후 Brooklyn Bridge 걷기와  인근 상가와 강변 안내 그리고 풍성한 저녁 식탁, 오가는 교통편 까지 딸아이의 준비와 배려는  매우 세심하고 고왔다.

서울내기인 내게 도시는 어느새 낯선 곳이 되었다. 높고 복잡하고 소란스러움 속에서 졸음이 자꾸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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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곳엔 어디나 사람들의 일상이 있고, 그 일상에 녹아 있는 아름다움도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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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잡한 도시에서 우리 가족이 저녁상을 함께 나눈 곳은 ‘초당골’이었다. 딸아이는 그 ‘초당골’에서 내게 물었었다. ‘오늘 교회하고 예배 어땠어?’

소주 한 잔에 풀어진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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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내외가 다니는 교회나 네가 다니는 교회 예배 형식과 분위기는 솔직히 아빠 취향은 아니란다. 그런데 그게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해.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엔 정말 여러가지 많은 것들이 있겠지. 그 여러가지들을 인정하면서 자유로워지는게 진짜 믿음이라고 아빠는 생각해. 주일 하루 예배가 일주일 동안 너희들이 사는 일에 기쁨이 된다면 좋겠어. 그런 뜻에서 오늘 참 좋았어.’

흔쾌히 하루를 함께 한 아들과 며느리, 딸아이가 고개를 끄덕여 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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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웃음은 아내로 부터 이루어졌던 하루를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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