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 13

삽과 곡괭이를 들고 땅을 뒤집으며 보내는 하루 해는 참 짧다. 솔직히 내가 하는 삽질로 무엇이 바뀔지는 아직은 전혀 모르겠다. 그저 흙을 손에 묻히고 땀을 흘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즈음 내가 누리고 사는 축복이라는 생각 뿐이다.

내가 엄청 부자라는 것도 이즈음 처음 깨달은 사실이다. 이웃들 눈치 보아야 하는 잔디 밭 빼고도 내 맘대로 뒤집어 엎을 수 있는 땅이 족히 삼백 평이 넘으니 이미 족함을 넘어 사는 삶이다.

유튜브와 구글 신(神)의 도움을 받아 흉내 될 수 있는 일들을 다해 본다만, 모를 일이다. 내가 꽃을 피우게 하고 채소를 거두어 소주 한 잔 할 수 있을런지는.

아무튼 구근들을 심고 모종을 만드는 시늉도 해 보고 씨앗도 뿌려 본다. 언덕받이엔 야생화 씨앗들도 넉넉히 뿌려 두었다.

첫번 째 채마밭은 아직 땅을 고르기도 전에 손님이 먼저 다녀 가셨다. 다람쥐나 토끼는 아닌 듯하고 여우나 사슴일지도 모르겠다. 미처 자주보는 손님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또한 내가 누리는 부요다.

허나 이 낯선 내 부유한 형편보다는 하루 열 두시간 씩 세탁소에서 일하는 날들이 아직 내겐 편한다.

모처럼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다.

<‘이제’는 사는 때, 곧 지금을 말합니다. ‘그제, ‘어제’는 내가 사는 때가 아닙니다. ‘이제’가 내가 사는 때입니다. 사는 때가 이제입니다. 사는 곳이 여기입니다. 이어이어 내려와서 여기가 됩니다. 하느님이 얼 줄로 나를 이어주고, 나는 하느님과 얼 줄로 이어지고 다시 이어져 여기에 온 것입니다.

이제는 어느 때나, 곧 언제나 이제입니다. 다 이제(영원한 현재)가 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도 ‘이제 나왔습니다.’하고, 운명할 때도 ‘이제 숨을 거두었습니다.’합니다. 여기와 이제를 혼돈해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루(오늘)만이 영원히 있는 것이다. 오늘의 ‘오’는 감탄사이고 ‘늘’은 언제나 항상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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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12

오늘 내가 사는 곳의 주지사는 학교 문을 일년 동안 닫을 수도 있다고 했단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그렇게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단다. 지난 달에 5월 15일까지 학교 문을 닫겠다고 발표한 이후 나온 주지사의 말이다.  아무리 빨라도 9월 새학기가 시작되기 까지는 각급 학교가 문을 열지 않을 것 같다.

학교 앞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올 여름이 끝날 때까지 내 가계 형편은 긴 겨울이 될 듯 하다. 살며 걱정 없던 날이 얼마나 되었던가?

뒤돌아 보며 곰곰 생각해 보니 상업고등학교를 나왔건만 난 이재(理財)와는 참 거리가 멀다. 나를 조금만 아는 이들은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일이다.

이제껏 살며 몇차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겠노라고 야심차게 일을 벌려 보았지만 그 때 마다 번번히 거의 만신창이 실패로 끝났었다. 그나마 삼십 년 넘게 붙들고 있는 세탁소 하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붙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아내가 버텨낸 산물이다.

가게 문을 제대로 열지 못한 지 어느새 한달 째이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아직 가늠할 수 없는 시간들의 가계를 재단해 볼 능력이 없는 내가, 그래도 살아 온 나이 값은 하노라고 나름 주판알을 튕겨 보는 이즈음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내는 주판알엔 관심 없고 그렇게 주판알을 튕기는 나를 기특히 여기는 듯 하다.

솔직히 돈이야 이 나이에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는 준비가 이미 끝난 터이라 주판알 엎어 버리면 그만일 터이고, 문제는 느닷없이 남아 도는 시간이다.

남아 도는 시간 사이로 잽싸게 찾아 드는 놈은 게으름이다.

그 게으름 이겨보고자 손에 든 것은 삽, 바로 삽질이다. 집 앞뜰 화단을 뒤엎고, 지난 해 가을 몽땅 베어버린 뒤뜰 대나무 밭을 뒤집는 삽질이다. 꽃 심고, 채마밭 한번 일궈 보자고 작심하며 해 보는 삽질인데, 모를 일이다. 꽃을 보게 될런지 또는 우리 부부 저녁상에 올릴 푸성귀를 거둘 수 있을지도.

그냥 요 며칠  하루 하루 그 꿈으로  삽질하는 즐거움에 그칠지라도, 그 또한 하루의 즐거움이려니.

늦은 저녁, 뉴스들을 훑다 보게 된 동영상 속 장면 하나에 딱히 뭐라할 수 없는 눈물 흘리며 감사하는 마음 하나.

세월호 6주기 추모 행사에 참여한 국회의원 당선자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며 흐른 눈물이었다.

이런 젊고 따듯하고 유능한 이들을 앞세운 시민들이 만들어 나가는 세상을 그려보는 재미라니.

욕심이 아니라 하루를 위하여 드는 모든 삽질엔 뜻이 있을 터이니.

또 하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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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1

은퇴한 이들에게 물으면 종종 듣게 되는 대답이다. ‘당신도 해 봐. 또 바쁜 일들이 생겨요. 그냥 뭔지 모르게 그냥 바쁘다니까…’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시간이 넘쳐난다 했더니 그도 잠시, 계획 이외에 바쁜 하루를 보냈다. 엊그제 마치 지붕이 날라갈 듯 심한 비바람이 일더니 실했던 이웃집 사철나무 허리가 댕강 부러져 내 집 뒷뜰 언덕배미로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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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사내와 오전 내내 쓰러진 나무 정리를 하고 샤워를 끝낼 무렵, 누이의 전화를 받았다.

예약된 hospice 시설에서 어머니를 위한 침대가 지금 온다고 하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며칠 전 어머니의 임종을 맞는 듯 했었다. 응급으로 모시고 갔던 병원에서의 결과는 이제 삶이 아닌 죽음을 준비할 시간 이라는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먼저 보내 드린 장인 장모의 경험으로 인해 조금은 차분하게 준비할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젠 온전히 신이 주관하는 시간이다. 내 어머니의 삶은.

오늘 예정되어 있던 유일한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땀 식힐 시간 없이 컴퓨터 앞에 마주 앉았다. 세월호 6주기를 추모하는 필라 세사모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때가 때인지라 함께 모이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추모 행사를 함께 하기로 한 시간이었다.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않고 쉼 없이 활동해 왔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모르던 사람들이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뿌리내린 이곳 필라델피아에서 6년 동안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고 행동해 왔습니다. 어려움도 부족함도 많지만, 진상규명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의 기억과 연대와 행동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월호와 아이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힘겹게 견뎌온 가족들과 생존 학생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온 모든 분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 건강하시고 안전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행사에서 필라 세사모를 대표해 이선아선생이 드린 추모사의 일부다.

오늘 이태후 목사님께서 선포해 주신 말씀은 가슴을 깊게 울렸다.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버리고 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끝없는 사랑을 외치고 베풀며, 그들이 끝내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를 위해 온 몸을 바쳤던 예수에 대한 선포였다.

그리고 함께 본 영화 한 편, ‘부재의 기억’이다. 보며 절로 흐르는 눈물 감출 수 없었다. 딱히 뭐라 표현 못할 분노의 눈물이었다.

예수가 그의 죽음을 앞두고 가장 도두라지게 했던 행동 하나가 바로 분노이다. 그리고 욕설도 따랐다. 바로 그 지점이랄까? 저절로 나오는 욕에 이어진 눈믈이다.

그렇다. 내가 살아가는 이 동시대에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버리고야 마는 죽음과 삶에 대해 고뇌하고 욕하고 저항하며 함께 하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의 축복이다.

모든 부활은 눈물 끝에 온다.

하루해가 또 저문다.

내일은 부활의 아침이다.

바쁜 하루를 보내며.

내 집 풍경은 이미 온통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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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10

TV에 빠져 있던 아내가 혼자 중얼거리며 숫자를 읊더니 ‘에고 오래 되었네’하며 한마디 던졌다. ‘벌써 사십 일 년 전 이네…’. ‘뭐가?’하는 내 물음에 대한 응답. ‘우리 만나 거…’

코로나 바이러스로 갑자기 차고 넘친 시간에 조금씩 적응되어 간다. 이젠 공원 출입 인원도 제한한다는 주정부의 발표 이후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뒷뜰에 텃밭이라도 만들어 놀아볼까 하며 세운 하루의 계획은 비바람 치는 날씨 탓에 내일로 미루었다.

지하실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오래된 서류 상자들을 꺼내 정리하다. 정리했다기 보다는 오래  묵혀 둔 쓰레기 파기 작업이었다. 종이 파쇄기가 온 종일 일을 참 많이 했다. 오래된 각종 기록들 일테면  내 잡기장이나 은행 및 세무 서류, 비지니스 관련 온갖 문서들 또는 동네 일하면서 쌓아 둔 각종 문서들을 파쇄하며 새삼 떠오르는 지난 기억들 마저 애써 지우다.

그러다 듣게 된 아내의 시간 ‘사십 일 년’이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하루가 천 년(千年)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이라는 성서구절 하나. 그것이 어찌 새 하늘 새 땅을 주관하는 주(主, 神,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그 무어라 부르든)이거나 새 하늘 새 땅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신자들 만이 누릴 몫이랴!

그저 오늘을 ‘하루가 천 년(千年)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삶을 누리는 모든 이들에게 던져진 물음이자 답인 것을.

마치 시간이 정지 되어 있는 듯한 이즈음 이야말로 사람살이가 왈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하는 곳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보니 부활주일이 코 앞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는 곳에서 더욱 가까워진 이웃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날 수 있기를.

사십 일 년이 이미 하루이고, 때론 하루가 사십 일년이 아닌 천년이 되곤 하는 우리 부부 역시. 사랑으로.

(어쩌다 찾아 낸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함께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는 것에 놀라다.)

하루 – 8

‘주(州) 내 노인 요양원에 코로나 바이러스확산으로 가족들 임종 지키지 못해’ – 오늘자 동네 신문 온라인판에 오래 동안 걸려 있는 머리기사 제목이다.

오늘까지 주내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의 절반이 노인 요양원에서 나왔단다. 신문기사는 가족 면회가 차단된 노인 요양원의 현재 모습을 다루고 있다. 임종을 홀로 맞이해야만 하는 노인들의 모습과 빤히 알면서도 가까이 갈 수 없는 가족들의 처지를  꽤나 장문으로 전하고 있다.

노인 요양원에도 여러 등급이 있고, 고급 요양원에서 확진자나 사망자가 발생한 일은 없단다. 비교적 저소득층이 가는 요양원에서 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했단다. 기사는 주내 요양원의 실태도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다.

기사를 읽으며 내 머리속은 여러모로 복잡해졌다. 약 일여 년 넘게 노양원에서 지내시다 지난 정월에 돌아가신 장인 생각과 치매기 날로 깊어지고 쇠해지시는 부모님을 할 수 있는 한 요양원에는 절대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지내는 내 형제들과 가족들 생각 때문이었다.

복잡한 머리 속이 내 맘대로 풀리지는 않을게다. 그저 하루 하루 시간에 감사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미 먼저 가신 장인이나 장모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저 모든 것 감사하므로 기억해야 할 터이다. 오늘 하루 내 삶을 감사할 수 있는 맘 하나, 먼저 가신 이들이 키워 준 것이다.

저녁 나절에 애기처럼 맛나게 드실 어머니 생각하며 우거지 갈비탕 진하게 우려 끓였다. 국을 끓이며 내일을 사는 힘을 얻다.

나는 그저 기억만 할 뿐이지만, 기억함으로 좋은 세상을 바꾸려고 늘 애쓰는 참 좋은 친구들의 삶을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그 정열이 부럽기도 하다. 그래도 고맙다. 그들로 하여 내일을 사는 내 힘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그래, 모든 삶은 죽음에 닿아 있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기억을 통해 영생하는 삶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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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7

제 뜻과 제 맘대로 살지 못하기에 사람일게다. 아무렴, 그래야 사람인데 그걸 종종 잊고 산다. 아무리 백세시대라 하여도 나와는 그리 상관 없는 듯 하고, 이쯤 살았으면 많이 걸어 온 듯도 하고, 살며 더는 남에겐 아쉬운 소리는 않고 살겠지 했는데, 그 맘 먹고 산지 겨우 몇 해이건만 그예 깨지고 말았다.

내 가게 건물주에게 새 달 렌트비를 보내며 향후 두 서너달 렌트비를 감면해 주십사하는 편지를 동봉하다. 구걸이 아니라 싸움일 수도 있겠다만, 이 나이에 아니할 수 있었다면 훨 나을게다. 그러나 어쩌겠나, 사람살이인 것을.

채 한 달 만에 주(州)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삼백이 넘고 사망자가 열명에 이르렀단다. 어제 주지사는 앞으로 두 세주 안에 감염자가 삼천에 이르고 입원 환자는 오 백에 이르러 병실이 없을 것이란다. 동네 농구장과 대학 운동장 등 몇 곳을 정해 임시 병실을 만들 예정이란다.

이게 결코 만만치 않은 숫자다. 한국 감염자 수가 만여명이라지만 오천만 중 만명이다. 여기 삼천 명은 백 만명 중 삼천이다. 0.02% 대 0.3% 곧 한국보다  15배가 넘는 수치다.

여러모로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사람사는 세상. 나의 세상 끝. 바로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 곧 내 가게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아내는 온종일 손님들에게 나누어 줄 수제 마스크를 만들다.

매 주 일요일 아침, 내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운 지 어느새 십 오륙 년이다. 편지에 대한 손님들의 응답이 지난 두 세주 만큼 열성적인 때는 없었다. 서로의 안녕을 묻고, 함께 이겨 나가자는 격려의 인사들이었다.

어디나 다 사람사는 세상은 엇비슷하다.

이 어려움이 끝나면 세상은 틀림없이 많이 바뀔 것이다.

사람이 더욱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세상으로.

지난 일요일 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한국 봉화에서 도인(道人)의 자태로 농사짓는 벗이 찍은 봄 사진 몇 장 얹었더니 그걸 또 그리 좋아들 했다.

아무렴, 사람 마음 다 엇비슷하다.

누구에게나 하루가 24시간 인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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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6

내 가게가 있는 샤핑센터 입주 업소들 중 지난 화요일 주정부가 내린 명령에 따라 현 상황에서 영업을 지속할 수 업소는 딱 세 군데 뿐이다. 큰 식품 체인점인 ACME 와 주류 판매업소 곧  liquor stores와 세탁업인 내 가게가 그것들이다.

나는 아직 여러모로 헷갈려하며 다음 주부터  당분간 주 사흘간만 하루에 여덟 시간 씩 영업을 하려한다.

오늘은 비록 가게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아내와 함께 가게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다음  주부터 원하는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줄 수제 마스크를 만들었고, 나는 손님들과 우리 부부 사이의 거리를 서로간 모든 가능한 동선에서 일정 간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카운터 언저리를 재배치 하였다.

주차장에 차량은 평소보다 1/5 수준도 채 안되는 듯 했다. 좀처럼 보기 힘들던 마스크 쓴 샤핑객들을 이젠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내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식품점이야 꼭 필요한 것이고, 세탁소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치자고…. 근데 술 파는 집이 왜 꼭 필요한 업종이 되어야 하지?’… 내 대답, ‘글쎄???’

아내의 물음에 대해 해답을 준 이는 우리 동네 주지사이다. 오늘 동네 신문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주지사와 일문일답을 하는 질문자가 물었단다. ‘주지사님, 술 판매 업소들은 여전히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왜 그 업종이 지금의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필수적인 것인지요?’

주지사의 대답이란다. ‘불행하게도 우리 델라웨어 사람들 중에는 약물 중독자들(여기에 많은 알콜 중독자들이 포함 되는 듯) 이 많답니다. 만일 술 판매 업소를 닫아 버린다면, 중독자들이 갈 곳은 딱 한 곳이랍니다. 바로 병원이지요.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이 병실을 차지하기 시작한다면, 지금 이 상황을 제대로 관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이 사회의 바닥 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답이 아닐까? 그러고보니 술 판매업 영업을 정지시킨 이웃 펜실베니아 거주민들이 아침 일찍 우리 동네 liquor stores 앞에서 길게 줄을 선 뉴스를 본 게 며칠 전이었다.

그래, 모든 일엔 다 까닭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 저런 하루의 고민과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고 아내와 함께 오늘의 공원 길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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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5

오늘도 낯선 시간 앞에서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다. 손님들에게 이미 고지한대로 가게 문은 닫았다. 다음 주부터 주 사흘 동안 짧게 라도 영업을 지속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시간은 남아 돈다. 그렇게 빨리 달리던 시간들이었는데 한적한 거리 풍경만큼 더디다.

오후 속보는 주(州)내에서 첫 바이러스 감염 사망자 소식을 전한다. 오늘로 첫 확진자 소식 이후 보름이 지났다. 현재  확진자 수는 143명이란다. 주내 인구라야 아직 백만명에 이르지 못하므로 인구 대비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신문은 coronavirus pandemic 상황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이웃들을 위해 서로 위로하는 모습들을 담은 사진들과 글로 오늘을 이겨내는 사람들 소식도 전한다.cec82e34-d943-4d01-a697-73a61516d18f-Jen_5 d8471453-ec20-493d-86dd-9a99da7e063d-Jen._3

그리고 재미있는 기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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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가 늘어가면서 집안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하게 된 부부 사이의 갈등 현상과 그 해결 방안들을 제시하는 기사였다.

삼십 년 넘는 세월 동안 거의 24시간을 아내와 함께 하며 살아 온 내 눈을 반짝이게 한 기사였지만,하루에도 열 두 번(아주 최소한으로 잡더라도) 싸우며 무사하게 살아 온 우리 부부에겐 별무 소득이었다.

그러다 손에 든 송기득 선생님 책 ‘인간(그리스도교 인간관에 대한 인간학적 해석)’을 읽다가 내 온 몸과 맘으로 웃는 웃음을 짓다.

“그런데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모든 <남>에게 <너>가 되려고 애쓴 예수의 삶은 결국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의 <나>의 참된 실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끝내 자신의 <참 나>를 살아냈던 것 뿐이다.  ………..

우리는 이따금 우리 둘레에서 자신의 온 삶을 한 이성異性을 위하여 살고 있는 사람을 본다. ….이러한 삶의 자리를 우리는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너를 삶으로서 <나>를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너를 사는 나, 그것이 곧 나이며 그 밖에 나는 따로 없는 것이다. 나 없는 <너와 나>라고 할까……….

우리는 이러한 자리를 비난하거나 낮게 평가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한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한 가지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그것은 <너>에게  <나를 드림>  이라는 미명으로 하여 자신의 순수한 새 가능성을 억누른다든지, 그와 못지 않은 <나>의 성실을 저버린다든지, 심지어 그것으로 하여 반反너스러운 것의 발현을 위장한다든지, 자기 속임수를 감추려든다든지. 또한 그것이 저만의 희생이라고 하여 자만하거나, 과장한다던지 한다면, 그것은 드디어 <나>도 못살고 <너>도 못살고 마는 자기파멸을 가져 올 것이 뻔하다. 더구나 그러한 <나>로 하여 자신을 쳐다보고 구원을 바라는 그 밖의 사람들을 못 본 채 해서는 더욱 안될 것이다.

그러나 <너>에의 고귀한 삶도 깊이 따지고 보면 결국 <나>를 사는 삶 그것을 넘지 못하리라.”

그래, 무릇 너를 위한 나를 살기 위해 누구 또는 무엇과 싸우더라도 웃으며 살 일이다. 하루를.

하루 – 4

일하지 않는 하루는 여전히 길다. 이른 아침 가게로 나갔다. 당분간 영업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주정부가 내 업인 세탁업은 영업 가능한 업종으로 분류해 놓은 터라 만일을 대비해 놓자는 심산으로 가게에 나가 앉아 여러 궁리를 해 보았다. 우선 며칠 동안 손님들과 최소 9피트 정도를 유지하면서 영업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향후 며칠 간 그렇게 가게를 꾸며 볼 요량이다.

오후엔 목욕재계하고는 마스크에 장갑을 끼는 중무장 차림으로 노인들을 뵙다. 누군가 말했다지, ‘신은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드셨다,’고. 이젠 애기가 되신 어머니는 돌아서는 내 등 뒤에서 읊조리셨다. ‘얘야, 얘야, 그저 조심하거라!’

저녁 나절 읽던 책들을 손에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신문들을 훑다. 그러다 눈 번쩍 뜨이게 한 컬럼 하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을 찾자는 글이다.

<올 가을에 투표할 때, 오늘을 함께 사는 공동체로서 우리는 누구인지 또한 사람들을 서로 돌보고 연결 시키는 이들은 누구인지를 기억합시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분열을 거부하고, 모두를 위한 굳건한 내일을 만들어 나가는 정치적 해결책을 찾아 나갑시다.

델라웨어인들은  이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내고 우리 공동체가 다시 번영할 수 있도록 내부적 결속과 창조적인 방안을 찾아 함께 나아갑시다.

우리가 올바르게 함께 한다면, 우리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서로 의지하고 그 연결의 고리를 단단히 한다면, 우리 모두는 오늘의 상황을 이기고 더 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

가을 선거를 앞 둔 여기나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한국 선거나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렴, 이 상황이 끝나면 사람살이는 또 한 발자국 성큼 진보적인 사회로 나아갈 터이니.

이렇게 또 하루에 대한 감사다.

 

하루 – 3

습관이랄까? 냉장고를 채워 놓고 살지 않는다. 그저 그날 그날 먹을거리를 사다 조리해 먹는 편이다. 노인네들 식사를 해 나르는 형편이 되면서 더욱 냉장고 신세를 지지 않으려 애쓰는 쪽이다. 신선한 게 좋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게 바로 코 앞에 큰 그로서리 체인이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이도 저도 하기 싫을 땐 우리 두 내외가 외식을 하는 게 더욱 실리적일 수도 있다.

허나 세월이 하수상하여 간만에 냉장고를 그득 채웠다. 아내와 내가 당분간 장을 안 보아도 몇 주간은 너끈히 지낼 수 있을게다.

오후에 주지사 명령이 떨어졌다는 전화 알람 신호가 왔다. 모레 24일 아침 8시를 기해 전 주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집안에 머무르라는 명령이었다. 기간은 5월 15일 또는 지금처럼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끝날 때 까지란다. 앞으로 최소 두 달 여, 장기간으로 보자면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이다.

첨부된 화일에는 이 기간 동안 영업을 할 수 있는 업종과 반드시 영업을 중지하는 업종들을 상세히 분류해 놓았다.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내 업종인 세탁업은 삶에 필수적인 업종으로 분류되어 이 기간에도 영업이 가능 하다고 되어 있다.

오늘 아침에 손님들에게  ‘아주 짧은 시간에 우리들의 주변 상황과 일상들이 많이 바뀌었습니다.’라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한 편지를 보냈었다. 솔직히 내 평생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내 주변의 상황들이 바뀐 경험은 처음이다.

한국전쟁 후 모습에 대한 기억들은 어렴풋하지만 엄연히 전후 세대이고, 내가 군에 간 바로 그 시기에 월남전도 끝나서 전쟁에 대한 경험은 전혀 없다. 한국에 살던 젊은 시절엔 누구나 겪었던 만들어진 전쟁 위협 속엔 살았지만 그게 현실적 위협으로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저 몇 차례 당시 숱한 젊은이들이 겪었던 것처럼 체포 구금 고문 등의 아픈 기억을 채 지우지 못하고는 있지만, 내 주변이 모두 그 아픔을 함께 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 이민 온 이후로는 내가 스스로 만든 어려웠던 상황들이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개인적 경험에 한한 것이고, 이번처럼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게 주변 상황이 빠르게 변한 일은 그야말로 처음이다.

아무튼 아침에 손님들에게 보낸 이메일 편지에 의외로 많은 손님들의 답장을 받았다.

우리 부부의 안녕과 무엇보다 내 세탁소가 동네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들을 전해 온 답장이었다. 우리 내외가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힘들어 세탁소를 접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Landlord에게 한 동안 가게 월세를 면제해야만 한다는 편지를 보내겠다는 열혈 손님도 있었다.

손님들에게 받은 답장들을 읽으며, 오늘 하루 어수선했던 내 마음의 주름이 쫙 펴졌다.

냉장고를 채운 것은 헛 일이었나 보다.

하루의 감사가 이리 큰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