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천국 – 열 다섯 번 째 이야기)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백 십 세에 죽었다. –중략- 그의 세대에 속한 사람으로는 그가 죽어 조상에게로 돌아 간 마지막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야훼를 모르는 새 세대,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일을 해 주셨는지 모르는 새 세대가 비록되었다. (판관기(사사기) 2 : 8, 10, 공동번역)
모세의 후계자로 가나안 정복의 임무를 잘 수행한 여호수아도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출애굽의 경험과 가나안 정복의 첫 경험들을 쌓은 세대들이 모두 죽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겪었던 탈애굽과 가나안 정복 과정의 일들과 그 일들 위에 함께 하셨던 야훼에 대해 겨우 이야기로만 전해들은 세대들이 가나안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일제의 경험들과 해방, 6.25 등의 경험이 없이 이야기로만 전해들은 세대들이 주인이 된 한국을 생각하신다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다만 보는 이에 따라 생각들이 다 다를 일이지만, 제 생각으로는 지금의 대한민국의 경우는 지난 역사의 경험이 없는 새 세대의문제가 아니라, 마지막 옛 세대들과 그들이 남긴 부(정치, 경제, 언론, 문화, 교육, 군사 등등 모든 면에서 가진 富)를 이어 받고자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특정 그룹의 후예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비단 성서의 잣대가 아니더라도 염치(廉恥)없는 짓을 너무 대놓고 하니 참 볼성 사납기만 할 뿐입니다.
적어도 오,육, 칠십년대 이승만, 박정희 정권 아래서도 친일이 부끄러운 짓이었다는 양심은 통했었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본인 자신들의 친일 행각이나 부모 세대의 친일에 대해 숨기거나 우린 그런 일과는 무관한 척 행동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문명의 21세기에 이르러 일제 통치의 부끄러운 역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저 뻔뻔스러움이 활개치는 것을 보면서, 제가 믿는 신앙의 눈으로 보면 “때가 꽉 차 오르고 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랍니다.
“때가 이르렀다.” – 이즈음 한반도 남북을 바라보는 제 심정이랍니다. 어쩌면 기도일 수도 있겠고요.
자! 이쯤, 우리들의 이야기인 천국 곧 하나님 나라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약 60년에서 백년 정도가 흐르니 세대가 싹 바뀌게 된 것이지요. 세겜에서의 새로운 계약으로야훼 하나님을 유일한 신으로 믿고 의지하고 칭송할 것을 선언하며 새 출발한 이스라엘 부족 동맹은 세대가 바뀌자마자 야훼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맙니다.
세 새대들이 들어서면서 일어난 제일 큰 문제는 바로 십계명의 제 일계명을 범한 것입니다. 성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들을 섬겨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못할 짓들을 하였다.”
판관(사사)시대(왜 판관 또는 사사로 불리었는지는 다음 글에서 하기로 하고요) 약 200년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새 세대들이 야훼 하나님을 버리고 택한 바알신들은 어떤 신이었을까요?
혹시 만신전(萬神殿)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오만 잡신들이 다 모인 신들의 전당을 일컫지요. 대단히 미안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나, 이 글을 읽고 읽는 당신에게나 우리 조상들이 섬겨 왔던 오만 잡신들에 대한 믿음과 생각들의 어떤 인자들을 조금씩은 다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랍니다. 한국인이라는 사고체계, 한글을 쓰는 사고 체계에서만 느끼는 신에 대한 관념이 있다는 말씀인데, 이런 문제들은 나중에 바울을 이야기하면서 좀 상세히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아무튼 가나안에는 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지역은 농사를 짓는 지역이었고, 농사는 계절에 영향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농사란 반복되는 일입니다. 씨뿌리고 거두는 일이 반복딘다는 말입니다. 올해는 이런 결과를보았지만 내년에는 다른 결과를 볼 수 있는 일이지요. 또한 농사는 땅과 하늘이 잘 도와 주어야 되는 일입니다. 토질도 좋아야 하고 물의 관리도 쉬어야 하지요. 그러러면 또 하늘이 도와 주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족을 이룬 첫 세대들 곧 광야세대와 가나안 정복세대들의 꿈과 목적은 노예에서의 해방과 내 땅을 가진 자유인이었습니다. 시작이 있었고 끝이 있는 일이었습니다. 야훼신은 그 시작과 끝을 만드신 신이었습니다.
가나안에 있었던 신들은 야훼 하나님과는 다른 신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들에게 유혹이 가는 신들이었던 것입니다.
원래 농사를 짓는 가나안인들이 믿는 많은 신들 가운데 으뜸되는 신의 이름은 엘(EL)이었고 그의 아내되는 신의 이름은 아세라입니다.(열왕기상 18:19) 그 둘 사이에서 나은 아들 신이 바로 바알인데 이 바알신이 주관하는 일은 비와 식물들이었답니다. 곡식들을 자라게 하는 신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알신의 부인은 아나스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사랑과 전쟁을 주관하는 신이었답니다.
자!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스라엘족들이 범한 야훼에 대한 배신 행위들이 시작된답니다.
크게 두가지입니다. 부(富)에 대한 욕심과 성욕(性慾)으로 지배된 사회로 변모되어간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공평과 평등으로 자유하는족속들을 위한 신이었는데 말입니다. 서로 크게 부딛힌 것이지요.
가나안인들이 믿었던 바알신앙의 핵심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농사가 잘 되어서 부를 쌓는 것이 최고의 복인데, 그 농사가 잘 되는 일은 바알신과 아나스가 성적관계를 즐겁게 잘 맺어서 하늘과 땅의 조건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믿은 것입니다. 바로 성의 자유화를 맘껏 구가하는 사회였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지요. 또한 가나안 사람들은 해마다 죽음의 신(Mot 신)이 바알을 죽이고, 바로 그 바알의 죽음 때문에 각종 자연 재해들이 생겨 농사를 망치는데, 아나스가 모트를 죽임으로 바알이 다시 살아나고 바알과 아나스의 성관계를 통해 다시 풍년이 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족의 선조들이 가졌던 야훼라는 드높은 이상(理想)에 비해 참으로 감각적인 현실 만족을 추구하는 바알신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바알이 훨씬 가까운 신이었던 셈입니다.
기원전 약 1200여년 전, 지금으로부터 3300여년 전,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 족의 모습이 그럤다는 것인데요. 뭐 오늘날과 그리 다를 게 있나요?
그렇게 시작한 판관(사사) 시대 이야기는 또 내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