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화덕 – 말씀 3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8 

어느 날 예수께서는 레위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세리와 죄인들도 많았는데 그 중 여럿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바리사이파의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죄인이며 세리들과 한 자리에서 음식을 나누시는 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저 사람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같이 음식을 나누고 있으니 어찌된 노릇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고 대답하셨다. – 마가복음 2 : 15 -17 

페이스북 친구 한분이 올린 사진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댓글을 달았었답니다. 제가 단 댓글에 그 분은 사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선운산으로 유명한 전북 고창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 몇 장이었습니다. 내 눈길이 꽂혔던 사진은 고창 여행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장어구이였습니다. 

사실 그 장어구이보다는 장어를 굽는 연탄불에 제 눈길이 꽂혔었답니다. 제 눈에는 영락없는 연탄불이었답니다.

연탄화덕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연탄화덕에 둘러앉아 돼지갈비와 동태찌게에 막소주나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던 시절과 그 때에 함께 했던 얼굴들을 추억했었답니다. 돼지갈비나 삼겹살, 매운탕 등은 그나마 주머니 사정들이 넉넉할 때 그 화덕 위에 올려졌을 터이고, 많은 경우에 동태찌게 한 뚝배기를 연탄화덕 위에 올려놓고 물 붓고 고추장 풀고를 거듭하며 막걸리동이나 제법 비우던 시절이었답니다. 

이젠 추억이 된 연탄화덕과 함께 했던 시절들을 떠올리게 했던 사진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올린 페친의 설명을 듣고서는 세월의 간격이 제 추억속의 시간보다 더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그 페친의 사진 설명이랍니다. “야자수로 만든 불이랍니다. 킬로에 65,000원이고요. 셀프로 구워 먹는 곳입니다.”

연탄화덕1

이런 친절한 사진 설명에도 불구하고 저는 장어를 굽고 있는 사진 속의 화덕은 연탄화덕이라고 믿기로 했답니다.

 자! 사진을 찍고 사진을 소개하는 사람이 야자수로 만든 불이라고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연탄불로 생각하고 믿기로 했다는 말입니다. 

연탄화덕에 동태찌게를 올려놓고 물붓고 고추장 풀고를 거듭해가며 막소주를 들이키던 시절은 가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가난이라고 하지만 절대 빈곤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술집 연탄화덕에 둘러 앉을 수 있었다는 말은 절대 빈곤과는 거리가 먼 그저 그 시절 소시민들의 일반적인 모습에 비교적 가까운 것입니다. 

아마 그 시절 함께 했던 많은 친구들에게  2014년 오늘에  “야자수로 만든 불에 킬로에 65,000원하는 장어를 셀프로 구워먹는”  일들은 그리 고민하지 않아도 선택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2014년 한국사회 소시민들이 맘 한번 먹으면 즐길 수 있는 일일겝니다. 

그런데 연탁화덕에 동태찌게를 끓여먹던 1960, 70년대나 야자수로 만든 불에 장어를 구어먹는 2014년 오늘이나 절대 빈곤 상태에 놓인 이웃들은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여기서 말하는 “절대 빈곤”이라는 말은 경제적인 문제만 국한해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 노동, 정치, 종교 등의 모든 사람들이 살며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모든 분야에서의 절대빈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의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는 절대빈곤층들(예수 시대에 죄인으로 불리우던 사람들)을 향해 치유와 용서의  기적을 배푼 후에는 “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른바 귀환명령입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라는 명을 내린 것입니다. “네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물론 돌아갈 수 있는 상태로 기적을 베푼 후에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제가 이야기했듯 그들이 돌아갈 곳, 곧 가족들이 있는 세상을 바꾸는 일의 몫은 돌아간 사람(치유받은 죄인들)들이 풀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가 “가족을 떠나라.”, “가족을 잊어라.”, “가족을 버려라.”라고 명하는 사람들은 예수 시대에 소시민계층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연탄화덕에 동태찌게를 우려 먹던 사람들, 야자수로 만든 불에 장어구이를 구어 먹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서를 읽다보면 예수는 바리새인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드는 구절들을 읽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의 소시민 계층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찌보면 선한 구석이 있는 소시민들이었습니다. 성경(구약 특히 오경)을 열심히 연구하고 묵상하며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애쓴 이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절대빈곤층(소외된 자들, 죄인들)과 자신들을 구별하고 더불어 함께 살려 하지 않고, 당시의 사회 종교 지배층들을 떠바치는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 제가 추억했던 소정(小丁) 이문영(李文永)선생님께서는 이런 소시민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절대로 절대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고, 소수의 가진 그룹 곧 사회 상류층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가 이른바 이탈명령, 곧 가족을 버리라고하는 명령하시는 지점입니다. 

얼핏 전혀 다른 명령인 것 같은 “가족에게로 돌아가라”는 명령과 “가족을 버려라”고 하는 명령 사이에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똑같은 내용의 명령이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가 내린  이 두가지 다른 명령으로 하여 예수는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바른 중간 – 말씀 2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7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또는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마련이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 누가복음 16 : 13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을 진 사람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이 두 사람이 다 빚을 갚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돈놀이꾼은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느냐?”   – 누가복음 7 : 41- 42 

집이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뜰에 앉아서 하느님을 명상하는 신성한 곳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세계를 다니며 아름답게 본 곳이 두 곳인데, 하나는 미국에 있는 내 동생 인영의 집 뜰이다. 집집의 뜰이 연이어진 넓은 공간을 나는 아름답게 보았다. 집집마다 명상하는 정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내 정치적 입장이기에, 나는 좌우 정책 스펙트럼 중심부에서 약간 우 쪽에 기운 보수주의자이다. 만인의 명상을 믿는 나는 좌단이 아니며, 약자를 편드니 우단은 아니다. – 이문영의 ‘겁많은 자의 용기’에서 

“나는 의당 해야 할 최소한의 발언을 했을 뿐인데  그 시절에  모두 17번 붙잡혀 갔고 3번 해직돼 총 9년 8개월 동안 봉급을 받지 못했으며 3번 구속돼 5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올해 초인 지난 1월 16일 향년 87세로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소정(小丁) 이문영(李文永)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이문영

1960년 4.19 혁명 때 서울시내 대학교수 가두시위 때 플랭카드를 들고 맨 앞에 섰던 양반이십니다. 1973년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장으로 있을 때 데리고 있던 연구소 직원들이 반정부 지하신문을 만들었다고 봉급을 주지말라는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의 압력을 뿌리쳤다가 교수직을 잃었던 양반이십니다. 

이후 1976년에 있었던 ‘3·1민주구국선언’으로 구속된 이후 3번 구속되었고  오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시기도 했던 양반이십니다. 

그 분은 스스로 호를 ”소정(小丁)”으로 지은 까닭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내 호를 소정(小丁)이라고 정한 일이다. 작은 일꾼이 되겠다는 뜻을 보여주는 호였다. 여기서 정(丁) 자는, 어렸을 때 공부를 못한 나의 성적표에 적힌 갑을병정(甲乙丙丁) 중 정이었고 남들이 천히 여기는 백정의 정이었다. 나는 무서운 유신 정부 아래서 꼭 필요한 저항을 하는 최소의 한 일꾼, 바닷고기로 치면 고래는 당연히 아니고 삼치나 갈치나 조기도 아니고 이런 것들이 먹는 멸치도 아니고 멸치들이 먹는 부유 생물 플랑크톤이 되자고 나는 다짐했다.  그러나 회상컨대 내가 최소이기를 바랐던 이 무렵이 바로 나의 최고의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덩치도 크셨고 눈도 크셨고, 말씀은 어눌하며 더디셨던 양반이셨습니다. 자상하기엔 이를데 없으셨던 분이셨습니다. 

이즈음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이자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만  한반도의 가능성이 열리는 문제이기도 한  “빈부의 문제, 교육, 노동, 세금, 행정” 등을 아주 간단히 요약해서 그 분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유럽은 노동조합이 많고 또 힘도 세다. 대신에 운동을 평화적으로 최소화한다. 물론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운동을 최소화하게 하려면 정부가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 노동자의 자녀들이 대학을 거저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부자들한테서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한다.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는 대신 그들에 대한 저항은 약화된다. 말하자면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 우리도 노동 쪽이 강해져야 하지만 실력행사는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요약의 말씀에 강조하는 부분이 있답니다. “최소화한 실력행사는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말고 사수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이 어르신의 행정학 강의를 한 학기 들을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답니다. 

삼십년이 훌쩍 넘은 저 쪽 세월의 일이지만, 당시의 수업노트를 지금도 제가 간직하고 있답니다. 그 중 아직도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이문영선생님의 강의 내용입니다. 

“어느 사회건 철저히 소외된 그룹과 많은 것을 누리는 그룹이 있다. 문제는 적당히 누리면서 조금은 소외된 느낌으로 살아가는 이른바 그 사회의 중간 그룹이다. 이 중간 그룹의 일반적 특성은 소수의 누리는 그룹속에 들어가려는  신분상승을 늘 꿈꾼다는 것이다. 

바로 이 중간그룹들의 선택이 그 사회를 규정한다. 여러분들은 이미 우리사회에서 중간그룹 이상의 삶을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여러분들이 사는 세상을 건강한 세상으로 만들려면 중간그룹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소수의 누리는 그룹으로 나아가는 욕망과 비례한 만큼 아래 그룹 곧 소외된 그룹에 대해 관심을 가져햐만 한다.” 

그 어르신께서 하신 정확한 말씀 그대로는 아니지만 대충 뜻은 이러했답니다. 

자! 지금 저는 약 삼십 오년 전에 (제가 이문영선생님께 배웠던 시절은 1978 – 1979년 이었습니다.) 배웠던 “이문영”선생님네 대한 이야기와 그가 하셨던 이아기들을 글로 써서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문영 선생님은 거의 60년 가까운 세월동안 가르치시고 글을 남기신 분입니다. 그 분의 대한 기억이나 생각이 누구나 다 저와 똑같을 수가 있을까요? 

100%  아니지요. 

일테면 당시 중앙정보부나 후에 안전기획부에서 일하셨던 이들이나 오늘날의 박근혜대통령을 비롯한 일단의 세력들의 눈으로 본 이문영선생님의 모습에 대한 그림은 제가 그린 것과 전혀 딴판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잣대을 돌아가신 이문영선생님을 빗대 말씀드립니다. 

이제 “가족에게 돌아가라!”가 아니라 “가족으로부터 떠나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이들에게 예수는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가라(GO) –기적 8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35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네가 깨끗해진 것을 그들에게 증명하여라. (마가  1 : 44)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마가 2 : 11) 

주께서 자비를 베풀어 너에게 얼마나 큰 일을 해 주셨는지 집에 가서 가족에게 알려라.(마가 5 : 19)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 (마가 5 : 34) 

예수께서는 “저 마을로는 돌아 가지 말아라” 하시며 그를 집으로 보내셨다. (마가 8 : 26)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마가 10 : 52) 

죽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셨다. (누가  7 : 15)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누가 17 : 19) 

일어나 요를 걷어 들고 걸어 가거라.(요한 5 : 9)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요한 9 : 7)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7 : 44)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언어 학습에 있어 이런 차이점들을 인정하고 그 차이들을 그대로 받아드리는(외우는) 방법이 학습효과를 높이기도 합니다. 

우리말 “오다”와 “가다”인 영어의 “come”과 “go”의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come

제 직업은 세탁업이지요.  세탁소에 손님이 들어옵니다. 그 순간 카운터는 가게 뒤에서 일을 보고 있습니다. 그 때 카운터는 손님을 향해 “I’m coming.”하면서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카운터로 움직입니다. 

이 때 “I’m coming.”을 “내가 옵니다.”라고 하지 않지요. “제가 갑니다.”가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나고 자란 제 두 아이들은 비교적 한국말을 잘 하는 축에 속합니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의 두나라 말을 구사하는데 불편이 없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 모두 종종 헷갈리게 말하는 것 가운데 하나 역시 바로  이 “오다”와 “가다”입니다. 

집에 오기로 한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묻습니다. “어디냐?, 언제오냐?” 그러면 아이들의 대답이지요. “지금 올께” 또는 “지금 오고 있어.” 바로 “I’m coming”을 한국식으로 표현한 말이랍니다. 

뭐 이 정도야 서로 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예수를 믿는 신앙에 있어서 이 come과 go, 곧 오다와 가다를 헷갈리면 정말 잘못된 신앙에 빠질 수가 있답니다. 

예수는 치유기적을 행한 이후  치료받은 이들을 향해 “가라”로 명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라고 했습니까? 바로 가족에게로 돌아가라. 네가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네 병을 고쳐 주었으니 나를 따르라”라고 하거나, “내가 네 병을 고쳐 주었으니 세상 끝까지 돌아 다니면서 이를 알려라.”라고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병을 고치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를 찾아갔던 사람들이나, 예수가 찾아갔던 사람들의 본래 소망은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 남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에서 떳떳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시대 당시의 나병환자를 비롯하여 병자나 신체불구자들은 사회로 부터 차단되어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는 “가라”, “네가 그렇게 원했던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깊게 살펴볼 지점이 하나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실로암못에서 눈 먼 사람을  고쳐주는 예수의 기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눈이 뜨여 세상을 다시 보게된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을 향해 예수는 “가라”고 명하십니다. 집으로 돌아간 이 눈이 다시 뜨인 사람에 대한 후기가 이어집니다.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요한 9 : 34) – 눈을 뜬 전에 소경었던 사람을 맞이한 고향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를 다시 내 쫓아 냈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병을 고쳐주고 “가라”고 명했습니다만, 그가 “가는” 곳의 환경을 바꾸는 기적을 행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길게 보면 “환경이 바뀐 기적들”을 확인할 수가 있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만든 이들은 “병을 고침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예수의 기적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이해한답니다. 

이에 관련된 글 하나 함께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몇 해전에 쓴 것인데  제 이해를 함께 하시는데 도움이 좀 될 것입니다.

가라(GO)! – go and sin no more (링크)

죄인 – 기적 7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4 

“최근 일주일 사이 네 가정이 생활고와 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버렸다. 이들은 행복했던 서민층 가정이었으나 병마와 실직으로 졸지에 ‘틈새 빈곤층’이 됐다. 그중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니어서 일반적인 정부 지원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 신설된 복지제도에 따라 긴급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도 이를 배제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 2014년 3월 5일자 동아일보 인터넷판 사회면 

“추정소득 180만원 ‘송파 세 모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없었다.” 

“정부는 국민들의 복지 체감을 높이겠다며 오는 10월부터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최저생계비를 없애고 별도의 소득 기준으로 생계·주거·교육급여를 따로 지급하는 맞춤형 급여제도를 설계했다. 서울 송파구의 세 모녀가 살아있었다면 새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 제도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까다로운 조건들 탓에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 2014년 3월 5일자 국민일보 인터넷판 사회면 

“그 때 어떤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들고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께 가까이 데려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가 계신 바로 위의 지붕을 벗겨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요에 눕힌 채 예수 앞에 달아 내려 보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가? 하느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중얼거렸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 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는 것과 ‘일어나 네 요를 걷어 가지고 걸어 가거라’ 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느냐?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그리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중풍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곧 요를 걷어 가지고 나갔다. 그러자 모두들 몹시 놀라서 “이런 일은 정말 처음 보는 일이다”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 마가복음 2 : 3 – 12 

“예수 당시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그들이 처한 물질적, 도덕적, 사회정치적 상황에서 상류층의 사람들에 의해 경멸받고 벌받고 경원시 당하면서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사람들 모두를 말한다. 가령 하급 재정관리, 즉 강제로 로마 수비군에 협력했던 세리를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수준으로인해 양심적으로 율법을 준수할 수 없는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 불리웠던 사람들 모두를 말한다. ‘죄인’이라는 말은 종교적으로 세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결과 공동의 도덕을 수립했던 자들이 그러한 사람들에게 붙여준 상표임이 분명하다.” – Georges Casalis의 가난한 자들의 복음에서 

1970년대 까지만해도 동아일보 이름값 좀 했었답니다. 한겨레신문 초대사장이신 청암(靑巖) 송건호(宋建鎬)선생도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이시지요. 

송선생님께서 동아일보를 그만 두시고 한국 현대사에 대한 연구에 정열을 쏟으시던 무렵에 하셨던 말씀이랍니다. 

“일제시대에 자란 나는 경성제국대학이 꿈이었다. 해방이 되서 서울대학으로 바뀐 경성제국대학 법대에 입학하였다. 언론에 관심이 있어 그 길로 들어섰고, 조선 동아 등의 기자생활을 하면서 사회 엘리트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누리며 큰 고민없이 편집국장 자리까지 갔었다. 1975년 동아투위 사태이후 신문사를 그만 두고 한국 현대사를 다시 돌아보면서 내가 누려온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서울대를 다니고 사회 엘리트로써 승승장구 하며 살아오는 동안 내 동족들이 앓고 있던 터무니 없는 아픔을 외면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아니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그 동족의 아픔을 거름 삼아 내가 살아 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송건호선생님이 일한던 곳, 동아일보의 오늘자 신문 기사를 보면서 “참 망가져도 더럽게 망가졌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책임을 죽은 이에게 돌리는 뻔뻔스런 모습은 비단 동아일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겝니다. 

삶의 모든 궁극의 목표나 가치 판단의 사회적 기준이 “돈”이 된 일은 박정희시대의 “잘 살아 보세” 깃발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 다만 “더불어 함께 잘살아 보는” 고민과  과정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잠시 그런 과정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이 바로 그런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옳고 그름도 문제도 아닙니다. 역사의 발전과정은 분명 “사회 공동체가 더불어 함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해 전진해 왔고 앞으로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어떤 공동체에서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핏값을 치루기도 합니다. 또 어떤 민족은 이미 조상들이 치룬 피값과 오랜 경험을 토대로 토론과 흥정을 통해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솔직히 우리 민족은  이런 “더불어 함께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고민의 역사가 짧습니다. 이런 문제로 피흘려 본 경험도 일천합니다. (사실 이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깁니다. 그래 이런 이야기를 제 나이에 맞게 옛날 화롯가에서 이야기해 주시던 할아버지 흉내내며 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예수쟁이, 예수로 세상보기”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는데… 이런 저런 일들로 이즈음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답니다.) 

아무튼 “돈” 뿐만 아니라 “실리”, “권력” 등을 손에 쥐는 것만이 “승리”하는 것이라는 이즈음 잘 쓰는 “공학적” 사고들을 성서적 관점, 예수의 기적행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지탄받아 마땅한 것들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이즈음 한국의 정치세력이나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 또는 사회의 아젠다를 만들고 이끄는 언론과 경제주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일겝니다. 

그래 아파야합니다. 이 세대를 한글을 사용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이 말입니다. 특히 성서를 읽고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아파해야만 합니다. 그게 기독교인의 바른 길입니다. 

신문기사

 

이제 성서로 돌아갑니다. 

예수가 기적을 통해 고쳐준 사람들이 앓고 있던 병이란 당시 사람들에게는 병일 뿐만 아니라 죄였습니다. 

뭐 멀리 갈 것 없습니다. 이즈음은 그런대로 많이 좋아져서 장애우니 장애인이니 하는 말을 쓰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하여도 “병신”이라는 말로 아픈 사람들을 욕보이게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수시대에는 병(문둥병, 맹인, 농아, 앉은뱅이, 광인 등등)은 곧 사회에서 격리되어야먄 하는 죄인이었습니다. 문제는 누가 이런 병에 걸렸느냐는 것입니다. 과중한 세금, 불공평한 나눔은 가난한 이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며 영양실조에서부터 각종 질병 나아가 불구자가 되는 곳으로 밀고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정치적 또는 종교적 지배계층들은 과중한 세금이나 불공평한 나눔 같은 사회적 문제를 고민하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아픈 이들을 향해 죄인이라는  팻말을  걸게하고는 그들을 희생삼아 자기 뱃속을 채웠던 것입니다. 

마치 2014년 오늘날 동아일보와 그 세력처럼 말입니다. 

예수의 치유기적은 바로 “아니다! 지금 아픈 너희는 단연코  죄인이 아니다!”라는 선언이었습니다.“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이웃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사회는 반성서적인 사회입니다. 그 사회에서 입다물고 있는 교회는 예수와는 아무 상관없는 헛것입니다. 

물음 – 기적 6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3 

“생활고 때문에 세 모녀가 사망한 데 이어 30대 주부가 또 극심한 빈곤에 4살배기 아들을 안고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경기 동두천경찰서는 지난 2일 오후 7시 45분쯤 동두천시 상패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윤모(37·여)씨와 아들(4)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3일 밝혔다. 윤씨의 옷에서는 ‘미안하다’는 등의 글씨가 적힌 세금 고지서가 발견됐다.”  – 2014. 3. 3. 서울신문 인터넷판 사회면 기사 

“서울에 살던 세 모녀가 지난 2월 26일 저녁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대로 12년 전 아버지가 떠난 뒤 이들 모녀는 어머니의 식당 노동과 작은 딸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왔다. 35세, 32세였던 두 딸은 어려운 생활과 지병으로 신용 불량자가 되어 있었고, 병원비 부담 때문에 치료조차 포기하고 지내왔다고 한다. 60세 어머니는 지난 1월 팔을 다친 뒤 식당 일조차 하지 못해왔다. 이런 상황에 빠져 있었지만 그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최후의 안전망,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략 -고인이 된 세 모녀가 남기고 간 짧은 글에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두 번이나 등장했다. 가난 때문에 생명을 포기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 이토록 강한 염치였다는 것이 우리 사회를 여러 번 울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죄송해야 할 것은 세 모녀를 방치한 이 나라의 복지와 사회일 것이다.”  –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2014년 3월 3일자 김윤영컬럼 중 

“기적신앙은 무엇보다도 낮은 계층에 널리 퍼져 있었고, 주후 3세기 동안에 비로소 상류층에 까지 비교적 널리 침투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주는 몇가지 간접적인 증거들이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 도혈루증 앓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그 여인은 열 두해동안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 모든 소유를 헛되이 없앤 후에 예수에게로 왔다. 이전의 사회경제적인 신분(status)을 잃은 후에야 비로소 그녀는 비합리적인 기적신앙에 매달린다. 돈이 있을 때 의사에게 갈 수 있었고, 돈이 없을 때 생명을 다루는 다른 방책에 의존했다.” – 게르트 타이센(Gerd Theisen)의 공관복음서의 기적이야기에서 

“ 예루살렘 양의 문 곁에는 히브리말로 베짜타라는 못이 있었고 그 둘레에는 행각 다섯이 서 있었다.  이 행각에는 소경과 절름발이와 중풍병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는데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 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먼저 못에 들어 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던 것이다. 

그들 중에는 삼십 팔 년이나 앓고 있는 병자도 있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이 거기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아주 오래된 병자라는 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병자는 “선생님, 그렇지만 저에겐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읍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는 동안에 딴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 갑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일어나 요를 걷어 들고 걸어 가거라” 하시자 그 사람은 어느새 병이 나아서 요를 걷어 들고 걸어 갔다.” – 요한복음 5 : 2 – 9 

세모녀

그들은 왜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을까요? 살아있는 자들 가운데 그들이 남긴 그 미안함과 죄송함을 받을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염치없는 사회에게 던진 이들의 염치있는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요?  성서의 눈높이로 고민해야 마땅한 신앙인들은 이런 사회적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그런 질문들을 안고 예수가 행한 기적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을 찾아가 보도록 합니다. 

예수가  행한 기적으로 치유를 받은 사람들이 앓았던 병명들을 보면 이들의 당시 삶을 알 수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들린자, 혈루증 환자, 눈 멀고, 귀가 들리지 않는 병들은 당시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생긴 병이기 때문에 이런 환자들은 일반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없었습니다. 반사회적인 병인 동시에 종교적으로 보호를 받기는 커녕 종교의 이름으로 철저히 버려질 수 밖에 없는 병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병이 아니라 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철저히 버림받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는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과 환경을 박탈당한 사람들이므로 경제적은 측면으로 보자면 사회의 가장 밑바닥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더우기 문둥병자에 이르면 주검 곧 시체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는 환자들이었습니다. 문둥병을 고쳤다는 말은 거의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말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예수가 치유 기적을 행해 고쳐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가 치유기적을 행한 사람들 가운데 그 사람의 직업이나 신분을 밟힌 기록은 한번 뿐입니다. 바로 회당장 야이로입니다.(마가복음 5 : 22 – 23,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회당장 야이로를 제외한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의 면면들을 보면, 여인들, 아이들, 거지, 종 등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 뿐입니다. 

예수 기적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곳이 없는 사람들, 희망을 잃은 사람들, 정상적인 보통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조차 막힌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기 직전의 사람들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는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오늘날 “염치있는” 마지막 인사말을 가슴에 품고 희망을 잃고 사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에게  스스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북돋아주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나 단체들을 향해 반사회적(때로는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몰아세우는 “염치없는” 이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오늘도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제 예수가 무엇때문에 왜 치유 기적을 행했었는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아바타 – 기적 4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1 

제자들은 마침 역풍을 만나 배를 젖느라고 몹시 애를 쓰고 있었다.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 쪽으로 오시다가 그들 곁을 지나쳐 가시려고 하였다. 그것은 새벽 네시쯤이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비명을 질렀다. 그를 보고 모두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곧 제자들을 향하여 “나다. 겁내지 말고 안심하여라” 하시며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 마가복음 6 : 48 -51 

어떤 보도를 실제로 일어난 일로 믿는다고 해서 역사적인 진실이 될 수도 없다.예를 들어 죠지 워싱톤이 실제로 은화 1달러를 포토맥 강 너머로 던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이 이야기를 믿는 쪽을 택하겠다.  하지만 이런 나의 믿음은 실제로 그가 그랬는가,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없었는가의 묹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예수가 실제로 이런 일들을 했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질문도 그와 같다. 그가 그렇게 했다고 믿는 것은 실제로 그가 그렇게 했는가의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역사적인 질문을 신념이나 믿음으로 풀 수는 없다. 간단히 말해 예수의 귀신축출행위나 치유행위를 제외한 권세있는 다른 행동들은 “역사적 미결 보도”로 남을 수 밖에 없다. 

비록 예수전기의 일부분인 이 이야기들이 불확실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예수에 대한 교회의 이야기 일부분으로서 이런 이야기들이 지닌 의미는 명확하다. 그 시대의 연관성을 가지고 비유적 표현들을 풍부하게 사용한 이야기들은 초대교회가 경험한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여전히 –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성도들을 위험과 악에서 구하시며 광야에서 먹여 주시고 죽움에서 생명을 가져다 주시는 분임을 확실하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의 ‘예수 새로보기(Jesus! A New Vision)’에서(김기석 번역)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낳은 예수 이야기,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마태 3:16)” 내려 앉으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 :17)”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이야기, 물 위를 걸었다는 이야기, 갑자기 모습이 변하여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마침내 예수가 부활해서 엠마오로 가는 두제자와 함께 길을 걷는 이야기 등을 읽거나 듣는 당신의 느낌은 어떤 것인지요? 

예수를 중심으로 일어났거나 행해졌던 기적 이야기들은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답니다. 첫째는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는 기적들입니다. 곧 치유의 기적 유형입니다. 두번 째는 풍랑이 일어 사나운 바다를 잔잔케 한다거나 베테랑 어부들도 빈 손일 정도로 조황이 안좋은 환경에서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낚게 했다는 이야기, 오천명을 먹인 이야기 등 초자연적인 기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제가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든 여러 예들처럼 하나님 곧 신이 나타나는 기적입니다. 신의 현현(顯現) 기적 유형입니다. 영어로는Epiphany라고 하는 신의 현현은 신이 직접 나타나 사람들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나타나는 현상을 발합니다. Incarnation(화신化身)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예수 그 자체가 신의 현현이라는 말할 때 이 말을 사용하곤 하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꼭 알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incarnation

아바타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었지요. 흥행기록을 세운 3D 영화로 유명한 영화 말입니다. 바로 그 아바타(Avatar)라는 말이 힌두교에서 쓰는 아바타라(Avatāra)의 영어식 표현인데요, 그 뜻이 신의 화신(神의 化身, incarnation of God)이랍니다. 신이 사람세계에 드러난 모습을 아바타라고 한다는 말이지요. 

힌두교에서는  사람들이  진리를 잊고  악과 부정(不正)에 빠져있을 때,  진리를 가르쳐 악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신(브라만)의 대리자로서 아바타가 나타난다고 한답니다. 

그런데 이런 신의 화신은 불교에서도 나타난답니다. 이른바 불교의 삼신설(三身說)이 그것입니다. 삼신이란 첫째  법신(法身)  둘째 보신(報身)  셋째가 바로 화신(化身)인데, 화신이란  진리를  이미 깨달은 붓다가  일반 사람(중생) 모습으로 나타나서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펴는 일을 하는 모습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현현 곧 신이 나타나는 기적은 딱히 예수에게만 나타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비단 예를 든 고등종교 뿐만이 아니라 원시종교에서도 신의 현현 기적 이야기들은 넘쳐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신이 나타나는 기적을 인정하고 믿되, 거기 매몰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적 이야기를 하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랍니다. 

이런 신 현현 기적에 대한 믿음을 신앙의 전제로 삼는 믿음만으로는 참다운 예수의 모습, 그리스도의 모습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만나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이런 기적에 대한 믿음은 신앙의 전제가 아니라 신앙의 깊은 곳에 이르렀을 때 저절로 거저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런 뜻에서 제가 기적이야기를 하면서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것은 바로 첫번 째 기적 유형인 치유기적에 대한 것이랍니다. 

자! 예수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세 가지 기적의 유형들 가운데 두번째,  세번째인 초자연적인 기적과 신의 현현 기적이야기는 이 정도로 접고 치유 기적으로 넘어갑니다.

신앙고백 – 광야 3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11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로마서 1 : 15 – 16, 개역개정에서 

그러므로 로마에 계신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나는 그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 로마서 1 : 15 – 16, 공동번역에서 

신약성서는 그에게서 옛 세계를 마감하는 종말론적 사건 곧 하나님이 하신 행동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이 메세지에서 종말론적 사건은 항상 현재가 되는 것이며, 믿음에서 그것은 항상 사건으로 되는 것이다. 믿는 자에게서 옛 세계는 끝났다.  –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이 쓴 “역사와 종말론(History and Eschatology)”에서 

지난 주일에 모처럼 뉴욕 맨하턴에서 딸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었답니다. 제 일정 가운데 하나였던 한인거리에 있는 책방 방문도 딸아이와 함께 였답니다. 이즈음 책을 사는 일은 인터넷 서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그래도 책방 나들이가 주는 감흥에는 또 다른 맛이 있는 것이기에 간만에 있는 도시 구경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었답니다. 

서대에 꽂힌 책들을 훑다가 눈에 들어 온 책이 “사진으로 본 1954년 한국”(제가 이 책은 사오지 않아서 정확한 제목이 아닐 수도 있답니다.)인가하는 사진첩이었습니다. 딱  60년 전 한국의 모습들을 담은 사진첩이었습니다. 

그 사진첩의 책장들을 넘기다가 아내와 딸아이를 불렀답니다. 그리곤 우리 세 식구는 제가 태어났던 해, 한국의 모습들이 담긴 사진들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옛날 우리시대와 아버지 시대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딸아이는 연신 고개를 잘레잘레 흔들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고, 아내는 “맞아, 맞아”하거나 “정말 이랬나?”하며 그로부터 십수년 뒤였을 자신의 기억과 짝을 맞추던 것이었습니다. 

지난간 육십 년의 경험들은 비단 저에게만 일어난 일들이 아닙니다. 그 시대를 함께한 우리 아버지의 경험과 할아버지의 경험 나아가 증조 할아버지의 경험과 아들과 손주와 증손주들이 함께 이어져 경험한 세월입니다. 

무릇 모든 기록이란 그렇게 세월의 경험들을 담는 것입니다. 그 기록에 자신이나 공동체의 믿음을 담아내는 일이 신앙고백서이고, 그 고백들을 모아 경전화한 것이 바로 성서라는 게 제가 이해하는 역사 가운데 이루어진 성서입니다.

“성서형성사”를 담아 낸 책들만해도 수도 없거니와, 제가  새롭게 쓴다하여도 제법 길게 쓸 수 있을만큼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성서가 이루어지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아니면 나중에 교회사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성서형성사에 대한  것들은 보충하기로 하고요, 오늘은 아주 간략하게 광야의 세례요한을 만나러 가기 위해 놓여진 이야기만 해보려고 합니다. 

도마복음

혹시 성서의 사도행전말고  도마행전, 안드레행전, 빌립행전, 베드로행전, 요한행전, 바울행전, 데 클라 행전이라는 책들이 있다는 말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아니면 애굽인의 복음, 도마 복음, 마띠아 복음, 바돌로메 복음,  12사도의 복음, 바실리데스 복음, 아벨레스 복음 이라는 이름들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계시록이 요한계시록 뿐만 아니라 베드로계시록, 바울계시록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다 있었다고 전해지거나 실제 오늘날 발견되어진 책들도 많고요, 도마복음서 등은 한국어 번역으로도 이미 많이 알려진 것 가운데 하나랍니다. 

예수의 부활승천 이후 약 20-30년 후에 쓰여진 바울서신들을 비롯하여 마태,마가,누가,요한을 비롯한 복음서들 말고도 이렇게 이름만으로도 많은 기록들이 쓰여진 것은 기원 후 50년에서 150년 사이의 일입니다. 

예수이후 처음 기록들이 생기기까지는 구약성서가 초기 기독교인들의 성서였고, 바울서신들이 쓰여지고, 예수와 함께 했던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자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들이 마구 문서화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무렵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답니다. 유대라는 나라는 멸망을 했고, 유대의 종교적 경험을 일부 이어받은 신흥종교인 기독교는 로마가 닦아 놓은 길을 타고 헬라(그리스)정신과 함께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무렵 쏟아져 나온 많은 책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오늘날 우리들이보는 신약성서 27권 안에 들어갔고 어떤 것들은 잊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서신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중에 바울서신들을 이야기할 때 드리기로 하고요, 우선 4복음서만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사백년전인  17세기까지 사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순으로 쓰여졌다고 믿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성서는 하나님이 주신 영감에 따라 기록된 것이라고들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역사비판이라는 새로운 연구 잣대를 들이대고 성서를 연구하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복음서가 오늘날처럼 만들어진 이유들을 학문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답니다. 

처음 나온 이론은 원복음가설(1794년 아이히홀른의 주장)로 지금 우리들이 보고 있는 복음서의 원 자료가 되는 책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는 주장이었는데 이건 이미 오래전에 무너진 이론이고요. 

그 후에 구전설, 단편설, 마가복음 원전설, 두 자료설(마가복음과 Q자료), 네 자료설(마가복음과 Q자료, M자료, L자료) 등의 이론들이 있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복음서에 대한 학문적인 결과들이므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오면 또 새로운 학설이 생기게 마련인 것이지요. 

다만 확실한 사실 하나는 지금 우리들이 읽고 보고 있는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는 역사물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읽어야 하는 신앙고백서라는 점입니다. 이게 바로 진실인 것이지요. 

그리고 누가 어떤 환경에서 이런 믿음의 고백서들을 만들어 놓았느냐를 아는 것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내 삶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바른 판단의 근거를 세우는 일일 것입니다. 

이쯤 변죽 울리는 일을 마치고 이천년 전 세례요한이 서 있었던 광야로 나아갑니다.

섞임 – 새 부족(部族) 2

(당신의 천국 – 열 세번 째 이야기) 

이것이 온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속에 들어 와 몸붙여 사는 사람이 누구든지 실수로 살인을 했을 경우에 피신하도록 지정된 성읍들이다. 그들은 회중 앞에 출두하기까지 피살자의 앙갚음을 할 근친의 손에 죽어서는 안 된다. (여호수아 20: 9, 공동번역)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50년 전의 일입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로자 팍스라는 흑인 여성이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버스를 타고 좌석에 앉았다가 체포되는 일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흑인 해방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흑인들은 백인들이 타는 버스를 탈 수 없다는 당시의 몽고메리시 법안에 대해 항거하는 일에서 시작된 운동이었습니다. 

지금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있는 시대에서 보자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처럼 느껴지지만 고작 오십년 전의 일이랍니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 

함흥냉면

제가 냉면이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 본 것은 대학을 막 입학하고 나서의 일입니다. 학교 앞 식당에서였습니다. 

그 때까지 저희 집에서는 어머니께서 냉면이라는 국수를 만들어 주신 적이 없었답니다. 한남동 토박이 경기도 사람이었던 어머니에겐 냉면은 타지의 음식이었을 뿐입니다. 어쩜 그 당시까지 어머니는 냉면을 전혀 모르시고 계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냉면은 이북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을 뿐이었을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토속 지방 음식의 벽이 허물어진 역사적인 사건은 바로  6.25 전쟁입니다. 전쟁의 전 과정을 통해 마구 섞이게 되면서 지방 토속 음식 문화 역시 한정된 지역을 넘어서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어찌보면 지역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사건이 발단이 되어 역사의 흐름이 바뀌거나 전쟁이나 천재지변이라는 사건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경험은 인류 역사 가운데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흑인 해방 운동이나 제가 처음 먹었던 냉면의 경험처럼 말입니다. 

히브리족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처음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바로 이러한 바뀌는 경험들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섞임입니다. 

히브리족이 들어간 가나안에는 이미 그 땅을 차지하며 살았던 원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야훼라는 신의 깃발 아래 뭉쳐져 침략(? – 원주민의 관점으로 보자면)한 히브리족 보다 먼저 그 땅을 차지하며 살았던 그 땅의 본래 주인인 셈입니다. 가나안족, 모압족, 미디안족, 블레셋 등등 숱한 그 땅의 먼저 주인들이 도시국가나 부족국가 또는 왕권국가로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히브리족을 기다리며 “어서오십쇼”하고 반기는 아무도 없는 땅이 아니라 이미 살던 주인이 있는 땅이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족이 그 땅에 있던 원주인들을 밀어내고 새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그들이 내세우는 정의는 “야훼 하나님과의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의 이름으로 여호수아를 대장으로 하는 히브리족은 가나안 도시와 성을 하나 하나 점령해 나갔던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 히브리족에서 이스라엘족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답니다.  바로 도피성을 기록한 저 위에 인용한 여호수아서 기록에서 그 단면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속에 들어 와 몸붙여 사는 사람이…” 

야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을 점령해 나가는 무리들과 원래 그 땅 가나안에 살았거나 다른 지방에서 유입된 무리들이 섞인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여호수아와 판관(사사기)의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공동체가 바로 이스라엘 부족 동맹이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이들은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됩니다. 그 계약의 중심엔 역시 야훼 하나님이 있는 것이고요. 애굽으로 부터 온 노예 무리인 히브리족과 본래 가나안 땅에 살았던 종족, 그리고 타지에서 흘러 들러 온 종족들이 야훼 이름으로 새로운 계약을 맺으며 이스라엘의 원형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새 계약에 대한 이야기는 내일로…

뿌리– 약속 6

 (당신의 천국 – 열 한번 째 이야기)

위서(魏書)에 이런 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계서셔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고 불렀는데 요(堯)나라와 같은 때였다고 한다. – 중략 – 단군은 이에 장당경으로 옮겨갔다가 후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었는데, 당시 나이가 1908살이었다고 한다. – 삼국유사에서

오늘은 역사 이야기 좀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제 이야기의 방향을 좀 알고 계시는 것이 이 연재 글을 계속 읽기가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연재를 시작한 까닭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두 가지의 확실한 믿음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첫째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처지에 있든지 오늘이라는 ‘시간’과 각자가 발딛고 있는 현장인 ‘여기’에서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를 누려야 한다는 믿음이요, 두번째는 죽어 하나님의 나라에 반드시 꼭 들어가기 때문에 죽음이란 단지  삶의 한 과정이다라는 믿음을 드리고자 함입니다.

물론 이런 제 글쓰기는 제 자신이 누가  뭐라하던 예수쟁이라는 확실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하는 작업입니다. 나아가 하나님나라에 대한 제 신앙적 고백이기도 한 것입니다.

자! 오늘의 글로 돌아가지요. 역사이야기입니다.

먼저 한국 역사 조금 둘러 볼까요.

단군1

단군신화가 있지요. 기원전 2333년의 일이라고 이야기하지요. 학교에서 배웠던 인류역사에서 석기시대가 끝나고 청동기 시대의 일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기록에 처음 나오는 것은 중국의 ‘관자’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 기록을 근거로 하여 실제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진 것은 기원전 700 – 800년이 아닐까 하는 추정들을 한답니다.

그리고 부여라는 나라가 세워진 시기는 대략 기원전 5세기경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전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그리고 한반도 남쪽에 자리 잡았던 삼한이 있습니다. 세개의 한나라 곧 마한, 진한, 변한이 세워진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인 기원전 4세기 정도로 본답니다.

그러면 실제 역사 기록에 나와있는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백제는 기원전 18년, 신라는 서라벌, 계림 등의 이름으로 불려지다가 신라라는 나라 이름을 쓴게 기원 후 307년이랍니다.

자! 이쯤 생각해 봅니다. 기원이라는 말은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했다는 것 아시지요.

예수가 이 땅에서 살았던 시기는 우리나라 삼국시대가 막 시작하던 무렵의 일이었답니다.

그런데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모습들이 좀 다르잖아요? 어떻게 다른가요? 머리 속에 다른 상상을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당신의 출생지에 따라 그 모습들이 달리 그려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일테면 경상도 출신인 당신이 그리는 백제나 신라의 모습, 또는 전라도 출신인 당신이 그리는 신라나 백제의 모습, 그도 아님 서울(신촌이지만 엄밀하게 경기도) 출신인 제가 그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모습 – 아마 조금씩들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통일신라가 되고 다시 후삼국 시대로 이어지다가 불교의 전성시대였던 고려시대가 약 500년, 이조시대가 뒤를 이어 약 600년입니다.  그리고 일제를 거쳐 해방,  남의 역사, 북의 역사가 따로 있지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거의 남일터이니, 6.25, 4.19, 5.16, 유신, 5.18, 3당 합당,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의 대통령 시대로 이어져 온 것이지요.

또 이즈음엔 다문화 가족이 많아서 배우자가 자란 환경이 또 다를 것이고요.

한민족이라고 불리우는 한반도 출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또 만일 내가 삼국시대나 이조시대에 살았다면 어떤 모습  어떤 생각으로 살았을까요?

이쯤 중동으로 넘어가서 이스라엘 역사를 한번 쭉 훑어 보지요.

창조설화가 있고 아브라함 등의 족장 설화에 이어져서 모세가 나옵니다. 기원전 1500- 1300년 사이에 일어난 일로 알려져 있답니다. 출애굽 사건이 일어난 때입니다.

히브리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이스라엘이라는 12부족 중심의 신정체제 공동체가 사사시대라는 이름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첫 임금 사울 시대는 기원전 1000년쯤의 일입니다. 그리고 사울, 다윗, 솔로몬 단지 세 왕의 시대를 지나자마자 남북으로 갈라집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에게, 남쪽 유대는 568년 바벨론에게 침공을 받고 무너집니다. (우리나라 고조선 시대랍니다.)

약 30년간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고 다시 그 땅으로 돌아오는데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시기가 아주 중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돌아와봤자 그 유명한 알렉산더대왕에게 다시 망하고 뒤이어 로마의 속국이 되었지요.

그리고 예수가 그 땅에 임하고, 기원후 66년 로마에 의해 멸망한 후 세계 각처로 떠도는 민족이 됩니다. 그렇게 나라없이 살다가 1948년 지금의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이 건국합니다.

이제 지루한 역사 이야기를 거두고 오늘의 이야기 핵심을 말씀드립니다.

이스라엘이든 한국이든 역사적 경험에 따라 그 시대의 생각들이 달랐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똑같은 “하나님 나라”라는 말이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드리는 모습이 달랐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싯점인 모세의 광야시대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지금 그들을 인도하는 오늘이라는 시점과 가나안이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살아 숨쉬며 사는 하루 하루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의 연장을 맞는 것은 자신들의 아들 딸이었습니다. 삼대, 사대에 걸친 축복의 약속이었습니다. 자신의 죽음 후의 천당의 모습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일컬어 히브리적 사고라고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이해입니다.

구약의 상당부분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만 나중에 이어지는 예수가 말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를 설명하는 바울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쉽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모세시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나아가 모세 이야기가 주된 신앙의 조건인 유태교와 오늘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한국계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며 한가지 아주 중요한 모세와 그 시대 히브리족의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는 인류 역사상 그 누구와 비교해도 모자랄게 없는 뛰어난 지도자였습니다.

바로왕과는 뛰어난 협상가였고, 지팡이 하나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었으며, 백만 명이 넘는 무리를 사십년 동안 광야를 인도한 지도자였으며, 하나님과 사람과의 계약 중재자였고, 율법을 제정한 법률가였으며, 전투에서는 최고의 지휘관이었고, 제사장을 임명하는 절대 종교 권위자였고, 백성들 사이에 분쟁을 해결하는 재판관인 동시에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는 예언자였습니다.

실로 거의 신의 반열에 이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당시 주변의 대다수 나라들이 왕을 세우고 있었지만 모세는 결코 왕이 아니었습니다. 왕은 야훼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족의 이러한 하나님 이해는 가나안에 들어가 다윗왕권이 세워질 떄까지 이어진답니다.

하나님의 직접 통치시대인 셈입니다.

저는 이 시대를 우리들이 누리고 가야할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의 첫번째 모형의 시대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절대 복지가 이루어지는 사회,  공평이 정의가 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가 이해되고 거두어지는 사회 바로 그런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나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믿음입니다.

이제 가나안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제 이야기는 앞으로 가나안의 이스라엘 부족동맹, 왕국시대 또는 예언자시대, 포로시대, 귀환시대, 신구약 중간시대, 예수시대, 성령시대 – 바울, 초기 교회, 교회시대, 한국교회, 우리들 그리고 나와 천국의 순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악몽 – 약속-1

(당신의 천국 – 여섯번 째 이야기) 

야훼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출애굽기 3:7-8. 공동번역) 

아직도 징병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으로 자란 사내들이라면 누구나 군복무를 마치게 마련입니다. 군복무에 적응할 수 없을 정도의 심신허약자이거나 사회부적응 경험이나 판단으로 징역형을 받았거나  국가가 면제하는 조치에 해당되는 자가 아닌 정상적인 젊은이라면 누구나 일정기간의 군복무를 해야만 하지요. 물론 군복무를 직업으로 선택할 수도 있지요. 

근데 내노라하고 이름이 알려진 이들 가운데  제법 많은 이들이 군복무 경험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는답니다. 왈 특권층이지요. 아마 그런 사람들은 이런 꿈을 꾸어 본 경험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꿈이냐고요? 

10-7

징병제도 아래서 군대를 다녀 온 이들이 꾸는 아주 전형적인 나쁜 꿈 바로 악몽은 군대 다시 끌려가는 꿈이랍다. 분명히 제대를 했는데 어떤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하여 다시 새롭게 군복무를 해야만하는 꿈을 꾸는 것이지요. 이런 꿈을 꾸다가 깨고나면 정말 기분 더럽답니다. 

이런 기분을 꾸어 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입니다. 

뭐 요즘에야 군 복무 기간이 짧으니, 우리 때와 비하면 두 번 갔다와도 된다고 한다면 아마 지금 군대 복무하는 젊은이들에게 매맞기 십상일 것입니다.

 아무튼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의 만기는 약 34개월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군대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죄송합니다만은 당시 제대를 손꼽아 기다리며 군생활을 하는 말딴 졸병들이 즐겨 쓰던 말 가운데 “뭣으로 뭉개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라는 말이 있답니다.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가 살아서 분명히 그 끝을 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끝이란 제대라고하는 군복무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게 종말의 역사관에 대한 아주 쉬운 이야기입니다. 

그런 제대를 했는데 또 다시 군에 끌려가는 꿈을 꾸다니!  개뿔! 무슨 종말! 

악몽에 시달려 본 사람들은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서가 이야기하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자! 다시 3500여년전 이집트로 돌아가 봅니다. 

출애굽기 3장 첫 부분을 보면 야훼신이 모세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가 야훼신을 찾은 것이 아니고 야훼신이 모세를 먼저 부른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바로 출애굽기 3장 7, 8절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야훼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너희들이 지금 겪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슬픔, 두려움 등등 사람으로서 피하고 싶은 모든 일들을 겪고 있는 모습을 내가 보고 듣고 알고 충분히 이해했다. 이제 내가 너희들을 구원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내주마라는 말이지요. 

약속입니다. 

다시 군대이야기. 

징병제도 아래서 징집기간이 정해지지 않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일테면 일단 징집이 되면 죽기 전엔 나올 수 없다면 말입니다.  아마 징병제가  제대로 실시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징병제는 끝이 보이는 약속이 가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3500여년 전 모세에게 야훼가 한 약속은 분명 징집기간을 정해 놓은 약속이었답니다.  바로 가나안이라고 하는 확정된 땅을 약속했다는 말입니다. 넉넉잡아 한 달이나 달 포 반 정도면 끝낼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약속이었다는 말씀이지요. 

그 약속을 믿고 애굽의 노예상태보다는 훨씬 나은 삶이 보장될 것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모세와 히브리족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나섰지요. 

그리고 배가 고팠고, 맛난 것도 먹고 싶었고, 목도 말랐었던 가운데  약속의 신이 이런 아픔과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는 경험을 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비록 달 포를 넘어 삼개월이 되었을 무렵 “이제부터 시작하는 계약서를 쓰자”라는 야훼신의 요구(십계명 사건)를 무리(민족)들이 이것만이  오직 살 길이라고 고백하는 것도 이제 바로 도달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달 포를 넘어 일년이 지나 사십년이 흐른 후 다달은 땅, 가나안은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답니다. 

다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고대하며 걸어 온 사십년의 세월과 그 시간 속에서 맺었던 약속들만이 남아있었을 뿐이지요. 

이번 한 주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