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멕시코계 이민자인 예세니아는 제 가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소중한 사람이랍니다. 늘 쾌활하게 묵묵히 자기 맡은 일에 온 열정을 다하는 예세니아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딸이 있답니다. 수줍음이 많은 건장한 그녀의 남편은 성실한 목수랍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아주 슬픈 얼굴로 그녀가 말했답니다. “어저께 아주 친한 친구랑 헤어졌네요. 얼굴도 못 보고 그냥 친구의 목소리만 들었답니다. 멕시코로 추방되었어요. 참 열심히 살던 친구인데…. “, “우리 멕시코인들이 가장 많이 당하는 거 같아요…”

이른바 불법 이민자 추방 열풍이 작은 소도시인 우리 마을에도 불기 시작했나 봅니다. 예세니아 가족이나 우리 가족이나 합법 이민자들이지만, 합법과 불법의 경계란 때론 모호한 세상이 되기도 했던 역사적 경험들을 겪어낸 이 땅이고 보면, 그녀 친구의 일이 마냥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거의 비슷한 때에 필라델피아 <우리센터>에서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리센터>에서 받은 전화 내용이랍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자 추방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민자 권리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약화시킬 계획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민자 가족들이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이 시기, 여러 도움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민자 지키기 기금에 기부해, 우리센터와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 네트워크의 단체들이 이민자 커뮤니티를 지원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이민자 커뮤니티를 지원합니다.

한국어 및 영어 상담이 제공되는 24/7 핫라인 운영/ 여러 언어로 제공되는 이민자권리교육 및 앱 배포/ 이민정책 관련 워크샵 진행/ 신뢰할 수 있는 이민 변호사의 법적 방어 서비스 지원/ 커뮤니티 주민들을 위한 정신건강 서비스 연결/ 이민자 커뮤니티 조직 및 이민자 권리옹호 캠페인 등입니다.>

자랑스럽고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필라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제가 감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참 좋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필라민주동포 모임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나라를 기원하며 지난 일월부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빛의 혁명 불을 밝히고 있는 모국의 민초들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푸드트럭을 보내 응원하고 있답니다.

또 다른 친구들입니다. 정말 오랜 연대의 끈을 놓치 않고 이어가는 친구들입니다. ‘결코 잊지 않고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하는 필라델피아 모임’ <필라세사모> 친구들입니다.

저마다, 모임마다 조금씩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주된 관심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두루 떠올려 본 까닭은 책 한권 때문입니다.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피에르 소베트로, 오 게강 공저인 ‘내전, 대중혐오, 법치’라는 조금은 끙끙거리며 읽어 낸 책이랍니다.

저자들이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끌어들인 숱한 낯선 학자들 이름들과 지난 80년간 회자되었거나 현재도 진행 중인 숱한 ‘주의(主義)’들에 대한 일별(一瞥)들 그리고 실제 각 국가 현장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들 및 현재 상황들 – 일테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칠레, 브라질 등등- 을 친절(?)하게 학문적 서술로 이어 가는데, 나는 겨우 본문 350쪽 짜리 책을 일주일에 걸쳐 읽어 일독하였답니다. 일독 후 솔직히 내 이해도의 크기란 고작 50% 정도일겝니다.

그래도 내가 사는 미국과 모국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척도로써는 대만족인 책이었습니다.  내 수준으론 최소 삼독은 필요할 듯하답니다. 책의 몇 구절입니다.

<반동적 우파를 사로잡은 이 포퓰리즘 색채를 뛴 민족주의적 열정은 기독교적 서구, 그것도 백인에 한정된 자유의 이상화와 연관지어 이해해야 한다. -중략- 국민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작업이 모두 함께 진행된다. 이러한 작업은 보통 새롭게 적을 지목하고 낙인찍음으로써 이루어진다. 트럼프에게는 멕시코인이, 이탈이아와 헝가리에서는 이민자가, 그리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무슬림이 적이 된다.>

<국가를 찬양하는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국가 폭력은 국가의 역사 그 자체다.>

<신자유주의의 전략은 ‘통치하려면 분할하라’라는 카트린 드 메디치의 유명한 격언보다 더 멀리까지 나아간다>

<이제 오직 하나의 전략이 있을 뿐이다. 모든 분야에서 평등을 우선으로 하는 모든 요구를 결집하는 것이다. 가령 권리의 평등, 사회경제적 조건의 평등, 평등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 및 공공 사안에 대한 평등한 참여 보장 등을 들 수 있다. 한편에 경제적 투쟁이 있고 다른 한편에 문화적 투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평등을 위한 사회적 투쟁이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크고 작은 공동의 운명을 함께 인지하고 책임지는 평등한 개인들 사이에 맺어지는 정치적 관계의 일반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민주주의 사회는 완벽하게 조화롭지도, ‘합의적’이지도 않다.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은 찌꺼기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 중략 – 만주주의에서 갈등은 그 자체가 공동의 토의 및 결정의 산물인 규칙으로 운영되는 제도적 틀 속에서 해결된다.>

사람다운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쉬지 않고 이어지는 끝없는 연대와 그야말로 긴 싸움을 이어가야만 이루어지는 것일겝니다.

그 긴 시간 속, 어느 짧은 한 순간을 살다 갈지언정 그 대열 언저리에서 서성거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필라델피아

이웃 도시 필라델피아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던 엊저녁이었다. 내가 사는 델라웨어 주민들이 제일 좋아하는 운동팀으로 꼽는 첫 번 째가 미식축구로는 Philadelphia Eagles요, 야구로는 Philadelphia Phillies 농구로는 Philadelphia 76ers이니 여기도 어찌 보면 범 필라델피아 상권에 속한다 할 게다.

필라델피아는 내겐 여전히 낯선 이웃 대도시이다. 이젠 그 이름이 많이 쇠락했다만 한 때 필라델피아의 한인거리로 알려졌던 5가 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나를 1970년대 동두천이나 의정부로 데려가곤 한다.

개인적인 일로 필라를 찾는 일은 이젠 거의 없다. 좋은 벗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들이면 어쩌다 올라가곤 하는데 일년이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엊저녁엔 정말 오랜만에 필라 시내 한 복판 건물 숲속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 참 좋은 벗의 아들이 장가가는 날이었다. 필라 시청에서 가까운 빌딩 숲 속, 분수대 앞에 펼쳐진 예식장은 초가을 맑은 하늘이 그대로 내려 앉아 아늑했다.

필리핀계 카톨릭 의식에 따라 진행된 예식은 부부의 연(緣)에 대한 뜻을 아주 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예식에 이어 건물 50층에 있는 연회장에서 바라본 필라시 전경은 이제껏 내가 그리고 있는 필라시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필라시는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저녁은 함께 식탁에 둘러 앉은 벗들로 하여 풍성하기까지 하였다. 티 없이 맑고 밝은 신부의 쾌활함이 그 아름다운 저녁을 빛냈다.

꼭 있어야 할 몇 몇 벗들이 함께 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엊저녁 비슷한 시간에 펼쳐진 중국인촌 행사에 우리 풍물놀이패로 참석한 탓이었다. 어제 아들 장가를 들인 벗도 아들 결혼식이 아니었다면 그 풍물패와 함께 였을 것이다.

그렇게 멋진 저녁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 입는데 주머니 속 지갑이 잡히지 않았다. 분명 주차장에서 나올 때 지갑을 꺼내 카드로 결제를 하고 나온 기억이 선 하건만 양복 주머니 속에도 차 안에서도 찾을 수 가 없었다. 순간 나는 허둥거렸다. ‘하이고~ 이를 어찌지….’ 하며 쯔쯔 거리고 있는 사이, 아내가 ‘쯔쯔쯔…’ 더 크게 혀를 차며 지르는 소리였다. “여깄고만… 왜 그리 덤벙거리시나!” 지갑은 차 시트 사이에 떨어져 있었단다.

하여 떠올린 지난 주에 읽었던 책 캐스린 슐츠의 <상실과 발견>속 한 대목이다.

<조사기관과 보험사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는 저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대략 아홉 번 물건을 찾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60세가 되면 거의 20만개의 물건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잃어버린 물건들을 전부 다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되찾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물건을 찾느라 허비한 시간이다. 평생 동안 우리는 사라진 물건을 찾느라고 대략 6개월의 시간을 꼬박 소모한다. 이는 미국에서 집단적으로 하루에 5400만 시간을 소모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돈도 지출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한 해 약 300억 달러가 오로지 잃어버린 휴대폰 때문에 사용된다.>

그녀가 이 책을 쓴 게 2022년도이니, 지금은 그녀가 말한 수치들은 더욱 늘어나지 않았을까.

잃어버려 아쉬운 물건들과 결코 되찾을 수 없는 시간에 더해 정말 아쉬워야 하는 것 바로 잃어버린 기억들이 아닐런지.

어제 식장에서 함께했던 벗들과 풍물패로 거리에 나선 벗들과 종종 함께하며 같을 뜻을 찾고자 같은 몸짓을 하는 친구들을 이어 준 끈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일이었다. 나이 차이로 보자면 거의 한 세대 간격이 벌어지는 모임이다. 더러는 민주, 통일, 평화, 이민 등등 저마다 주관심사들에 있어 작은 차이들은 있다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며 서로가 존중되어지는 안전한 사회를 꿈꾸는 일에는 같은 생각을 지닌 벗들이다.

나는 비록 늦은 나이지만 벗들을 통해 많이 깨우치며 산다. 이젠 돌아서면 쉽게 잃어버리는 기억들로 홀로 혀 차는 시간들이 늘어간다.

허나 참 좋은 벗들과의 연대는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아름다운 필라의 저녁을 만끽하게 해준 이종국선생 내외에게 감사를. 이종국선생을 축으로 같은 뜻으로 이어진 참 좋은 벗들에게 고마움을.

<추가 글 – 어제 중국인촌에 풍물패를 앞세워 함께 참가한 필라 우리센터의 호소문 하나>

지난 2년간 우리는 차이나타운이 있는 필라시 중심부에 경기장을 건설하려는 76플레이스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금까지 공사 진행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필라 주민 모두의 목소리를 모아 시의회에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경기장이 아닌 지역 주민 생활에 도움이 될 정책에 집중하라 요구해야 합니다.

필라델피아 차이나타운은 센터시티에 마지막으로 남은 노동계층 유색인종 커뮤니티입니다. 또한, 경기장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이 싸움은 단순히 특정 커뮤니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힘을 합쳐 우리 삶의 터전인 이 도시가 부자들의 탐욕에 짓밟히는 걸 막아야 합니다.

미국에서 스포츠 경기장 건설은 주로 유색인종 커뮤니티의 주거지를 허물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많은 유색인종 주거지가 스포츠 경기장 건설 과정에서 사라졌습니다.

스포츠 경기장 건설은 저임금, 비정규직, 계절노동자들에 의존하며, 그 과정에서 노동계층 유색인종 커뮤니티를 빈곤의 수렁에 가둡니다.

76플레이스 경기장 건설계획 주도자들은 재산세를 면제받을 예정입니다. 이러한 결정은  저소득층 커뮤니티 복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기장 건설은 필라시를 비롯한 펜주 재정에 10억 달러의 세수 손실을 초래합니다. 이는 주변 지역 소상공인, 노동자 및 그 가족들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집니다.

한 동네를 파괴하는 결정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진다는 건, 어떤 동네든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필라시민은 우리 자신과  이웃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결정에 대해 반대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개발사업자의 이익이 아닌, 시민들의 도시임을 기억합시다.

도심 경기장 건설로 도시가 더 좋아진 적은 없습니다. 반면 경기장 건설이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확실합니다. 개발사업자들은 유색인종 커뮤니티를 착취했고, 시민들의 요구는 묵살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반복된 역사에서 얻은 이 교훈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을 할 기로에 서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투쟁에 함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