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

필라를 다녀왔다. 좋은 사람들 만나려고 오가는 길은 즐겁다. 필라세사모 새해 맞이 모임이었다. 비록 서른 남짓 조촐한 저녁 모임이었지만, 올 한 해를 맞는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자리였다. 자리를 마련한 이들에게 드리는 감사가 크다.

지난 한 해 참 좋은 친구들이 해 온 일들을 정리해 보여주는 동영상 자료를 보며 괜스레 눈가가 붉어졌다.

어느새 입 다물어 소리내지 않는 쪽이 내게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모처럼 이런 저런 우리들이 아직은 함께 이어가야만 하는 이야기들에 빠져들어 수다스런 저녁 시간을 즐겼다.

내려오는 길, 아내와 나는 우리시대의 노래꾼 김민기의 노래를 들으며 왔다.

옛 노래는 옛 회상으로 즐겨야 하는 법인데, 여전히 오늘을 노래하는 것으로 들리는 세상은 조금은 슬프다.

그렇다 하여도 더운 가슴으로 아프고 모진 세월을 안고 이겨내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서로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찾아내고 알려주며 함께 나아가며 부르는 노래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게 흥얼거려보는 노래.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이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 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 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 하얀 눈 내려 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참 좋고 아름다운 벗들에게 감사를.

a b c

인증 샷

사는 곳은 떨어져 있고 먹고 사는 방법도 서로 다르지만, 생각이 서로 맞닿아 소식을 나누고 사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저녁 한 끼 쏘겠노라고 번개 모임을 제안하여 넉넉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늦은 밤, 인성(人性)에 대한 생각에 빠진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왔고, 이제껏 변화해 온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사람들의 숙제 – 바로 인성(人性)에 대한 물음 아닐까?

오늘 밤 나는 맹자(孟子)에게 한 표 꾹 누른다.

돌이켜 나를 관찰하자면 옛날 양주(楊朱)가  ‘공동체 보다 내가 우선’이라는 주장보다 더욱 이기적이며,  순자(荀子)가 말한 혐오스럽고 가증한 인성보다 더하게 부끄러운 성품임에 틀림없다만, 오늘 저녁 번개 모임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일 땐 맹자가 옳았다.

하여 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게 좋다. 더하여 이런 공동체가 더욱 커졌으면 좋겠다.

그 맘으로 피켓을 들고 사진 한 장.

10-6-18

영화 “나쁜 나라”-그 제목이 주는 불편함

이즈음 어린 아이들도 이 노래를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세대들이 초등학교에(당시는 국민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입에 달고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1.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나라/ 2. 새나라의 어린이는 서로서로 돕습니다/ 욕심쟁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나라/ 3. 새나라의 어린이는 몸이 튼튼합니다/ 무럭무럭 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나라>

윤석중 작사, 박태준 작곡의 ‘새 나라의 어린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1945년 해방된 이후 처음 발간된 <어린이 신문> 첫면에 발표된 것입니다. 해방된 새 나라에 대한 소망은 바로 좋은 나라였습니다.

이 노래를 처음 불렀을 어린아이들은 이제 여든 나이에 접어 들었고, 60년대 초반 이 노래를 불렀던 제 또래들도 어느새 육십대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 세대들에게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이어야만 했습니다. 저라고 별반 다르지 않아서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늘 앞서 있습니다.

제게 ‘우리나라’는 두개입니다. 하나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제 인생의 절반을 보낸 나라 ‘대한민국’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뼈를 묻을 곳이자 인생의 또 다른 절반을 보내고 있는 ‘미국’입니다.

저는 이 두개의 ‘우리나라’가 모두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거니와, 비록 부족한 부분들이 많더라도 ‘더 좋은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며 삽니다.

윤석중선생은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는 덕목들로 <나라의 구성원들이 ‘자기 일에 충실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자기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 이익에만 눈멀지 않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하는 것들>을 꼽고 있습니다. 보통 시민들이 지키며 살고자하는 평범한 덕목들입니다.

제가 보고 느끼기로는 대한민국이나 미국이나 이러한 평범한 덕목들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시민들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나라’가 될 개연은 매우 높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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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으로 사는 제게 제목이 <나쁜 나라>인 영화 포스터는 매우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뭔가 잘못된 제목 같아서 입니다.

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보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사건 이후 지내온 1년 6개월의 세월을 다큐멘타리 형식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저는 세월호 유가족 육성 기록집인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가슴에 묻은 열 세명의 유가족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입니다. <자식을 잃은 충격으로 몸과 정신에 새겨진 깊은 상처들, 자식을 잃은 깊은 상처들, 자식을 잃은 슬픔을 넘은 지독한 그리움, 배신과 분노, 절망, 모욕, 또 다른 한편 도움을 준 사람들 그리고 깊은 깨달음> 등을 토해낸 기록입니다.

문제는 그들 대부분 유가족들이 저처럼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건 이후 그들은 <더 이상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 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외면했던,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실은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진실을 통렬히 깨달>았고, <평범한 자신들의 삶을 성찰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읽으며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은 여전히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자식을 가슴에 묻고 <평범한 자신들의 삶을 성찰 할 수>있는 유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다만 ‘좋은 나라’이고, ‘더 좋은 나라’이어야만 하는 대한민국이나 미국에 차고 넘쳐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쁜 권력’, ‘나쁜 정권’, ‘나쁜 언론’, ‘나쁜 종교’, ‘나쁜 자본’들입니다.

영화 <나쁜 나라>는 분명 ‘좋은 나라’이어야만하는 대한민국을 지칭한다기 보다 바로 이런 ‘나쁜 권력’, ‘나쁜 정권’, ‘나쁜 언론’, ‘나쁜 종교’, ‘나쁜 자본’에 대한 기록일 것입니다.

‘나쁜 권력’, ‘나쁜 정권’, ‘나쁜 언론’, ‘나쁜 종교’, ‘나쁜 자본’이 지속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지배하는 사회는 아무리 <좋은 나라>를 지향한다하여도 종국에는 <나쁜 나라>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경고도 있을 터입니다.

그리고 ‘나쁜 권력’, ‘나쁜 정권’, ‘나쁜 언론’, ‘나쁜 종교’, ‘나쁜 자본’을 선택하며 사는 사람들은  결국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외면하는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실은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지 못하는,  <평범한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지 못하는 국민들일 것입니다.

진정 대한민국과 미국이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뉴저지와 필라델피아에서 상영되는 영화 <나쁜 나라> 관람 안내를 드립니다.


 

1) 뉴저지 체리힐 지역

  • 일시 : 2016년 3월 19일(토),  오후 7시 ~ 9시 30분
  • 장소 : 열방교회(All Nation’s Church, 61 Cooper Rd, Voorhees, NJ 08043)

2) 필라델피아 지역

  • 일시 : 2016년 3월 20일(일),  오후 5시 ~ 8시
  • 장소 : PMCA (Phil-Mont Christian Academy, 35 Hillcrest Ave, Glenside 19038)

*** 입장료는 무료랍니다.

기도

성 프란치스코(Saint Francis of Assisi : 1181- 1226. 10. 3.)의 이름을 자신의 교황명으로 삼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방문중입니다.

그의 방미 일정이 워싱톤, 뉴욕, 필라델피아로 이어지는 까닭에 제가 사는 곳 델라웨어에도 교황에 대한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있답니다.

성 프란치스코(Saint Francis of Assisi)가 정말 인간적인 성인이었듯, 그 이름을 딴 프란치스코 교황도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들을 그가 내딛는 곳, 어디서나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이가 제가 사는 곳에서 인근에 있는 필라델피아에 오십니다. 이미 오래 전에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아주 적은 수의 필라델피아 인근에 사는 한인들이 그이의 필라 방문을 맞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답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된 관심인 “가난한 자들”, “소외된 자들”을 함께 기억한다는 외침으로 그 이를 맞이하자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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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이 손을 내밀어 맞잡아 주었던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인 세월호 유가족, 실종자 가족들의 신음이 2015년 9월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외쳐보자는 것이랍니다. 이들의 외침에는 다른 아무 까닭이 없답니다. 

단지 약 천년전 사람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aint Francis of Assisi)가 썻다는 기도문을 이루고자하는 바램뿐이랍니다.

오, 주님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오, 거룩하신 주님.

제가 위로받으려 애쓰기보다는 위로할 수 있도록

사랑받으려 애쓰기보다는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 – 그 씁쓸함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고, 여전히 아파하는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며, 오늘 여기에서 세월호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빌어 보자는 마음으로 함께 모여 꾸준히 의견을 나누는 작은 모임이 있습니다.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인근에 사는 뜻맞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그 모임의 이름을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약칭, 필라 세사모)이라고 부른답니다.

그 중 몇 사람들이 매주 한차례 온라인에서 만나 “인권”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기 시작한 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인권문제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까닭을 찾아보고자 시작한 토론모임입니다.

매주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대한 발제가 있은 후 자유토론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한시간 남짓으로 시작한 모임이  이젠 2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 모임으로 뜨거워졌답니다.

지난 시간 동안 ‘인권이란 무엇인가?’, ‘왜 인권을 말하는가?’, ‘유럽 인권사’, ‘동양 인권사’, ‘미국 인권사’ 등을 두루 훑어 보았고 이제 ‘한국 인권사’로 넘어가고 있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발제자들이 열성적으로 준비하고 있어서 새로 배우고 느끼는 것들이 참 많답니다.

지난 주에는 미국인권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상당 시간을 미국내 인권보호 증진에 크게 기여한 미 연방대법원의 중요한 인권판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그리고 이민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재미 한인동포들의 인권문제에 대한 이야기들도 제법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미연방대법원이 때론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의도와 어긋나는 판결도 하고 (아이젠하위 대통령과 워렌 대법원장), 국민감정에 반대되는 판결도 소신 있게 내놓기(아히만 판결-성조기보호법 위헌 판결) 도 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소수자 보호라는 큰 논리가 있었고, 그 논리를 지탱해 주는 기반에는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다는 사실도 이야기했답니다.

최근에 있었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은 바로 이런  소수자 보호라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판결을 내린 미 연방대법원 법관 가운데 한 사람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82)대법관이  이 주 초에 한국을 방문했었습니다.

그녀의 방한 일정 중에는 한국내 1호 동성 부부인 김조광수(영화감독)·김승환(영화사 대표) 부부와 트렌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씨 그리고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 국내 대표적인 성 소수자들과 만찬 간담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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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성소수자들과 미국 연방대법관의 만남 방한중인 미국 연방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운데)가 4일 저녁 서울 용산미군기지에서 성소수자인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와 하리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만나 만찬을 했다. 만찬을 마친 김조광수 감독과 임태훈 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진과 만찬 내용을 공개했다. – 출처 오마이뉴스

이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82)대법관의  방한 행보에 발끈한 곳은 한국 기독교계였다고 합니다.

<38개 교단 협의체인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양병희 목사)은 지난  5일 <미국 긴즈버그 대법관의 방한 행보에 우려한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그가 한국에 와서까지 동성결혼 합법화를 주장하며 소송 중인 김조광수-김승환씨를 만나고 트랜스젠더를 초청해 격려하는 등의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법질서와 윤리가치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이므로 삼가야 한다”고 비판했다.>고 오마이뉴스는 전하고 있었답니다.

또한 이 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 역시 이날 <미국은 한국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방종과 타락의 성문화를 강요하는가?>라는 논평을 통해, ‘긴즈버그 미 대법관은 동성애 전도사인가?’라며 “노골적인 성소수자 지지활동과 법조인들에 대한 소수자 보호 인권운동 강연은 법관들의 성윤리 의식마저 왜곡시키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언론회는 “미국이 우리의 우방국가요, 혈맹이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와 문화가 있고, 공유할 수 없는 문화와 가치도 있다”며, “긴즈버그 대법관에게 충고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이유로도 동성애 조장 확산과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강연을 중지해주기 바란다. 미국의 타락한 가치를 대한민국에 강요하지 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고도 합니다.

요약하자면 이들의 주장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한국의 성소수자를 만난 것은 “한국의 법질서와 윤리가치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이요 “방종과 타락의 성문화를 강요”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딱히 그들의 언사가 조목조목 따질 가치는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오늘날 한(인)국사회의 ‘ 법질서와 윤리’는 무엇인지?”, “’방종과 타락의 성문화’가 만연한 곳은 과연 어디인지?”를 따져 묻는 일과, 한국교회가 과연 그러한 질문을 던질만한 수준에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은 “법이 있기 전에 삶이 있었고, 그 삶에는 하나님의 뜻이 먼저 있었다”는 성서적 가르침과는 너무나 먼 곳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구약성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저 유명한 예수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마가 2: 27)”라는 선언은 바로 사람살이의 삶을 보호하는 가치가 최우선이라는외침입니다.

이때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삶이란 약한 자, 가난한 자, 소수자의 몫이라고 성서는 단언하고 있습니다.

과연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런 자명한 성서의 선언에 얼마나 부합된 모습으로 신앞에 서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할 것입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방한 행보에 발끈했다는 한국 기독교계의 대응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비성서적 모습을 또 다시 확인한 듯하여  씁쓸하답니다.

세월호 – 역사와 성서에게 묻다

신구약 성서에는 각기 전체 이야기에 큰 기둥이 되는 사건들이 하나씩있습니다.구약에서는 출애굽사건이요, 신약에서는 십자가 사건입니다. 출애굽사건은 해방에 대한 이야기이고, 십자가사건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신앙고백이라고 말합니다. 성서는 바로 신앙고백서이고 그 고백서의 핵심은 바로 해방과 구원 이야기다라는 전제를 바탕으로하면서 제 발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출애굽 또는 탈애굽이라는 해방사건이 노예들이었던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있었던 역사적, 신앙적 경험이었던 것처럼, 우리 한민족에게는 70년 전에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해방의 역사적 경험이 있습니다. 피지배민족이라는 사슬에서 벗어난지 올해로 70년이 되었지만, 그 역사적 경험을 민족 공동체가 깊게 되새기는 시도는 아직도 여전히 부족하거나 오히려 되새기는 일이 금기시되는 지경에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1945년 해방이후 한반도에서는 무수한 사건 사고들이 이어져왔습니다. 이런 사건 사고들은 비단 한반도 남북에 국한되어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역사이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공동체 겪어 온 경험들입니다.

다만 각 민족 또는 국가 공동체들이 자신들이 당한 사건이나 사고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넘어가느냐는 것은 각기 다릅니다.

오늘 저는 우리들의 경험들 곧 1945년 이래 한반도 남쪽에서 일어났던 사건 사고들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여러 사건 사고들 가운데 자연재해 등의 천재 이런 것들은 제외하고 국가권력을 비롯한 공권력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들을 몇가지 꺼내어 짚어보고자 합니다. 사건이나 사고는 연도순으로 짚어봅니다.

우선 제주 4.3사건을 들수 있겠습니다. 미군정 치하였던1948년 4월 3일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정부 치하인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이렇게 약 6년 동안 이어져온 제주 4.3사건 또는 제주항쟁에서 약 3만에서 8만명으로 추정되는 제주도민이 학살당한 사건입니다. 당시 제주도민 7-8명당 1명 꼴로 죽임을 당한 사건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이 사건 개시일로부터  약 55년이 지난 2003년 10월에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처음으로 사과를 하고, 2005년에는 국가 차원에서 최초로 4.3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총리후보였던 문창극이 4.3폭동이라고 규정하는 등 현 집권세력 및 동조세력들은 이 사건을 좌익 빨갱이들을 토벌한 사건으로 만들려고 여전히 애쓰고 있습니다.

다음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어났던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들수 있겠습니다. 국민보도연맹(정식 명칭은 국민보호선도연맹)은 남한 내 공산주의 세력 약화를 위해 과거 좌익에 몸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가입시켜 만든 단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1949년에 이 단체를 만들면서 관료들이 실적을 높이기 위해 마구잡이 또는 강제로 양민들을 이 단체에 가입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국가는 이 단체에 속한 사람들은 과거 전력 때문에 북에 동조할 염려가 있다면서 산골작이로 이들을 끌고가 무차별 학살을 자행합니다. 이 사건으로 학살당한 사람 수는 적게는 6만에서 많게는 60만에 이른다는 설들이 있는데, 대략 20만 추정설이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 역시 노무현대통령이 2008년 1월 24일 울산 국민 보도연맹 사건을 비롯한 과거 국가권력의 불법 행위에 대해 포괄적으로 사과하였지만, “보도연맹”이라는 말 자체가 여전히 금기시되는 사회라는 것이 오늘의 솔직한 모습일 것입니다.

다음은 역시 전쟁 중에 일어났던 국민방위군 사건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한때 압록강까지 진출했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합니다. 이른바 1.4후퇴입니다. 이때 국가는 다시 적의 지배지역이 될 곳에 사는 장정들을 적들에게 뺏기지 않을 목적으로 만 17살 이상 40살 이하의 장정을 제2국민병에 편입한 뒤 제2국민병 중 학생이 아닌 자는 지원에 의해 국민방위군에 편입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국민방위군 설치법안’을 만듭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해당 연령층에 있는 사내들을 징집합니다. 문제는 이들을 수용할 시설도 식량도 의복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원된 장정들은 2인당 한명꼴로 가마니 한장을 지급받은 채 무조건 각자 알아서 부산에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한겨울 추위, 전쟁통에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이들 국민방위군 총수 50만명 가운데 약 20%의 10만명이 굶어죽거나 얼어죽은 사건입니다.

훗날 이 사건이 세상에 들어나면서 국회조사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방위군을 위한 국가 예산 대부분인 당시돈 50-60억이 국민방위군 재정을 실질적으로 총괄한 부사령관 윤익헌 등 당시 국가 권력자들의 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죽어 간 사람들 가운데 정부가 인정한 사망자수는 꼴랑 331명입니다.

그리고1970년 4월 8일에 일어났던 와우아파트 붕괴사건과 이듬해인 1971년 8월 10일 전라도 광주가 아닌 경기도 광주에서 일어났던 광주대단지 대봉기사건입니다.

이 사건들은 개발독재 시절 국가권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들입니다.

1960대 서울은 경제성장으로 인해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로 인해 짧은 시간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던 시절이었습니다.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그들이 살 집들 곧 주택은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그러다보니 서울에는 하꼬방이라고 불렀던 무허가 판자집들이 넘쳐났습니다. 청계천 일대를 비롯하여 정동을 중심으로 한 신문로 일대 등 서울 곳곳에 하꼬방들이 즐비했습니다.

그즈음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판자집 좀 정리해 보라”는 명령을 내리고, 블도저시장이라는 닉네임이 갖고 있던 그의 충복 김현옥 서울시장 은 이른바 시민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공간과 신도시 건설에 앞장서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시민 또는 국민이라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건설사업이 아니라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사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마구잡이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세워진 시민 아파트들 대부분이 서울에 있는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는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의 말은 이 사건들을 압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높은데 있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니냐?”라는 말입니다.

6개월만에 세워진 5층 아파트가 완공된지 5개월만에 주저 앉았는데 나중에 조사해보니 철근 70개를 써야하는 기둥에 철근 5개를 썻다는 것이 밝혀졌답니다. 아무튼 이 사고로 33명이 죽고 40여명이 크게 다쳤답니다. 제 고향이 신촌이라 이 사건에 대해 할말이 많지만 일던 여기서 접고요.

광주대단지 봉기사건으로 넘어갑니다.

무허가 판자촌 해결에 봉착한 당시 박정희 정부는 일부 무허가 주택은 개량해서 허가 주택으로 양성화하고 나머지는 새로운 주택단지를 세워 무허가 주민들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경기도 광주에 대단지 주거 공간을 만든다고 공표를 합니다.

주로 청계천과 서울역 부근에 거주하던 빈민층 10만여명에게 “다시는 서울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각서에 서명하면 광주에서 살 집을 마련해 준다”는 약속을 하고 이들을 경기도 광주로 이주시킵니다.

문제는 10만명이 이사를 한 광주에는 도로, 교통, 시장 등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좀 더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떵 몇 평을 주고 여기서 살되 각자 알아서 살아라는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휘발유를 부어 불을 붙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주를 권유하면서 평당 당시 돈 200원에 주기로 한 땅을 8000원에서 16000원씩을 내라고 국가 공권력이 강제한 것입니다. 국가의 사기질에 불이 붙었습니다. 자그마치 약속보다 40배에서 80배를 요구한 것입니다.

대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약 6만여명이 시위를 하면서 경찰 차량을 포함한 약 22대의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대규모 항거가 일어납니다. 이들이 “서울로…”라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당시 서울시장 양택식이 사과하고  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 주기로 하고 사흘만에  이 봉기는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주동자 22명은 “폭동을 일으킨 주범들”로 낙인 찍히고 맙니다.

이 사건은 이후에 일어난 부마항쟁, 광주항쟁 등 민중항쟁의 한 표본이 되기도 하는데 현재 많은 진보인사들 가운데도 이 사건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1980년 5월 18일 광주항쟁이 일어납니다. 아니 일어난 게 아니라 일으킵니다, 누가 국가권력이. 이 부븐은 제가 건너 뜁니다.

자, 다음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과 삼풍백화점 사건입니다. 이게 어떻게 국가 권력과 상관이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1994년 10월 21일 서울시간 아침 7시 48분경에 일어났던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전세계사에서 보기드문  안전불감증에 걸린  국가권력을 대변하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듬해인 1995년 6월 29일에 일어난 단군 이래 최대의 참사라고 일컬어지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역시 이에 맞닿아 있습니다.

이 두 사건 이후 실시된 정부의 안전 평가 실시 결과를 보겠습니다. 정부의 발표입니다.

  1. 전체 고층 건물의 1/7(약 15%)은 개축이 필요한 사태이다.
  2. 전체 건물의 80%는 크게 수리할 부분이 있다
  3. 한국내 전체 건물의 2%만이 안전한 상태이다.

1995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있었던  진단입니다.

그리고 이제 세월호입니다.

세월호 사건은 해방후 겪었던 모든 사건들을 축약해서 드러낸 사건입니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진도 서해앞바다 에 배가 가라 앉았고 이내 탑승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구출되었다는 뉴스에서부터, 건국이래 최대의 구조 작업이 펼쳐지고 있다는 뉴스가 이어졌지만 단 하나의 생명체가 구출되었다는 보도는 없었습니다.

이제껏 되돌아보았던 사건들의 공통점입니다. 국가권력과 공권력이 주도했거나 책임과 의무를 방기했기 때문에 일어났던 사건들입니다. 그리고 결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왜 그랬지?”라고 묻는 사람들은 불순분자, 좌빨, 종북 등등으로 불온의 낙인을 찍어 버립니다. 그리고 국민, 시민들에게 그 사건을 빨리 잊어버리라고 종용합니다.

2015년 오늘까지 자그마치 70년을 이어져온 것입니다. 역사를 되새겨 곱씹을 줄 모르는 공동체의 아픔입니다.

이제 다시 성서로 돌아갑니다.

저는 해방과 구원이라고 말씀드렸고, 그것은 신앙적 고백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해방과 구원의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신이라고요? 아닙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 지금 노예인 상태, 억눌린 상태, 억압받은 상태 바로 우리말로 이야기하자면 한을 품은 상태에 놓인 사람이 바로 주인공입니다.

바로 성서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이 가난한 사람들에 정의는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집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강단에서 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황당한 정의들이 난무하는 뉴스들을 보곤합니다. 실제로 가난한 자들이란 바로 부자들이라는 논리입니다. 부자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 때문에 사람들에게 까닭없이 지탄받고 소외되고 미움을 받기 때문에 그들이야말로 진짜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황당하다고요?

저는 어제 한국의 경향신문에서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역사의 피해자가 되게 하고 있다.”라고 시작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 말은 새누리당 한 중진의원이 한 말이랍니다. 바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이다라고 우기는 한 전형입니다.

해방은 노예, 피압박, 억압, 굴종 등의 상태에서 풀려나오는 것입니다. 구원은 죄의 상태 곧 죄인에서 자유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는 이렇게 해방과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을 일컬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가 말한 가난한 사람들이란 바로 그들이 처한 물질적, 도덕적, 정신적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정치적 상황에서 가진자, 권력자와 그에 기생하는 사람들로부터 경멸받고, 손가락질 받고, 불온시 당하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드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교육자이자, 철학자이며 사회운동가였던 파울로 프레이리는 이렇게 억눌리고, 불온시 당하며 그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드리며 사는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내세 곧 죽음 이후의 세상에다 촛점을 맞우는 종교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해방되고 구원받는 바로 한풀이하는 세상을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1960, 70년대 브라질과 남미 민중들이 스스로 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다수가 문맹자였던 농민과 빈민들에게 문해교육 곧 글을 깨우치는 교육에 전념했습니다.

혹자는 2015년 문맹률 0%에 가까운 한민족에게 파울로 프레이리가 무슨 뚱딴지냐고 하실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들의 문맹율은 0%에 수렴하고있지만 문해력, 곧 어떤 글을 이해하는 능력은 현재 OECD 국가들 중에 꼴지라는 것입니다.

자신, 또는 자기가 속한 집단이나 지역에게 유리하고, 편리한 것들만 이해하는 것입니다. 보고 듣기에 불편한 것들은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하고 간편하게 불온으로 찍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분단 상황은 이들에게 아주 유용하고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권력자들은 이런 상황을 아주 적절히 이용합니다. 남북대화록을 마구 까댈 수 있었던 까닭이나, 앞뒤 논리가 맞지않고 심지어 허위사실까지 적시했던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판결문을 다 까서 공개하는게 거림낌이 없는 만용들은 바로 읽지 않고, 듣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고, 아니 이해하지 않으려하는 민, 곧 국민, 시민, 민중의 속성을 잘 이용하는 권력자들의 횡포입니다.

이제 제 발제를 마치려합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희망을 보아야합니다. 해방 이후 숱한 사건과 사고들을 겪어오면서, 피해자 가족들이 이렇게 끈질기게 자발적으로 가난의 상태에서 해방되고 구원 받고자 했던 전례가 없습니다. 바로 세월호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이 지난 일년 동안 줄기차게 목청높게 외쳐온 진실규명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희망을 보아야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투쟁과 외침에 귀기울이고, 이해하려는 해외동포들의 연계작업 바로 우리들에게서 희망을 보아야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땅끝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증인 되리라” – 성서 사도행전(사도행전1:8)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성서 말씀을 되뇌이며 “땅끝까지, 땅끝까지” 이른바 선교여행을 떠나는 것이 한인교회의 유행이 된 일도 제법 오래 되었습니다.

조금 지나친 비유라고 나무라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이즈음 지구촌 골치거리인 이슬람 국가(IS)의 망상과 한인교회들이 땅끝까지 선교라며 불교, 이슬람 지역을 비롯한 전세계를 향한 자기식 믿음을 내세우는 일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있답니다.

내가 가서 닿을 수 있는 땅끝에 놓여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언제 어떻게 어느 땅끝에 가 닿더라도 내 코 앞에 언제나 놓여 있는 것은 바로 내 발끝입니다.

바로 내 발끝이 지금 나에겐 땅끝인 셈입니다.

그렇게 지금 내 발끝이 놓인 땅끝에서 오늘 공동체의 문제를 가지고 증인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이야기 두개를 전해 드립니다.

<세월호 이야기>

오늘자 한국신문 인터넷판 첫머리를 복사한 사진입니다. 조중동이야 애초 기대조차 없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한번 보시지요.

헤드

늘 있어왔던 노란 리본과 “잊지 않겠습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싹 사라져 버렸답니다.

그나마 한겨레만 오른쪽 아래 작은 사각형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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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잊혀져 가는 세월호를 여기 땅끝에서 붙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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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8일 일요일 오후 5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김동혁군과 임경빈군의 어머니 김성실님과 전인숙님이 필라에 오십니다.

참사 직후부터 지난 300여일 동안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유가족들과 국민, 그리고 해외 동포들의 외침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주류 언론의 외면 속에서도 이러한 노력들이 있었기에 지난 해 11월 세월호 특별법(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진상규명을 위한 어떠한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조사위 설립 준비를 지원하는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조사위원에 대한 대통령 임명장 수여 실무를 손놓고 있고 파견 공무원을 철수 시키는 등, 오히려 조사위 설립과 활동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으며,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조사위를 ‘세금도둑’이라 규정하기도 하였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체 인양조차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 속에서, 언론의 외면과 왜곡이라는 현실 속에서, 엄마들이 다시 한 번 길 위에 나섰습니다. 세월호 참사 피해 당사자로서, 현재까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피해 가족이 처한 입장과 앞으로의 방향을, 동포들에게 정확히 전달코자 먼 길을 찾아 오십니다.

유가족 만남3월 8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글렌사이드에 위치한 필-몬트 크리스천 아카데미(Phil-Mont Christian Academy, PMCA)에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참사 사흘부터 20여일 동안 실종자 구조 과정을 취재한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의 현장기록 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다이빙벨>도 함께 관람할 예정입니다.  특히 이번 자리에서는 한국말을 모르는 분들께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릴 수 있도록, 영문 자막이 들어간 <다이빙벨>을 상영하며, 유가족 간담회도 원활한 소통을 위해 사전번역과 현장 통역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또한 간단한 다과가 준비하고, 아이들과 함께 오실 분들을 위해 탁아실도 운영합니다. 널리 알려주시고, 함께 참여해 주십시오.

덧붙여, 이번 주 수요일(2월 18일) 저녁을 시작해 25일, 3월 4일까지 매주 수요일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행사경비 마련을 위한 ‘일일식당’ 행사가 있습니다. 간담회 준비팀의 회의장소이기도 한 <토담골>(블루벨 위치)에 오셔서 저녁 식사를 하시면, 식사비용의 25%가 간담회 행사경비를 위한 후원금으로 사용됩니다. 오셔서 맛있는 저녁식사도 드시고, 간담회 준비현황도 살펴보세요. 장소와 일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시 : 2015년 2월 18일 저녁 6시 이후

장소 : 토담골 (1341 Township Line Rd. Blue Bell, PA 19422 (610) 239- 9260)

관심과 참여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필라 세사모 드림

<강정마을 이야기>

또 하나는 강정마을 이야기입니다. 땅끝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땅끝에서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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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소식: 남한내 해군기지 반대 운동  –

미국 전역 영어 순회 강연회: 2015년 3월 17일 – 4월 16

운동가 박희은과 Paco Michelson 특별 강연

포기하지 않으면, 패할 없다”

2007년 이래, 강정 마을 주민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남한내 유일한 특별 자치도인 제주도에 대한민국 해군 기지의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 분투해왔다.

해군 기지는 미국과 남한의 이지스  전투 시스템(Aegis Combat Systems)의 본거지가 될 것이며, 이 전투 시스템은 록히드 마틴이 무기를 추적, 유도하기 위하여 생산하였다. 남한 해군 관리에 따르면  이 기지는 20척의 전함과 15만 톤급 크루즈 선박 두 척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제주도의 한국민들은 남한과 미국 정부의 이해를 위해 문화적 명소와 자신의 땅을 도둑맞는 것을 억지로 받아들이도록 폭력적으로 강요받고 있다. 이 충돌은 미국 신식민주의의 명백한 실례이다.

미국 전역 영어 순회 강연회: 2015년 3월 17일 – 4월 16

운동가 박희은과 Paco Michelson 특별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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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은
: 30년 동안, 박희은은 대한민국에서 창설된 소규모 공동체 네트웍, “개척자들”과 함께 아시아 전역에 있는 분쟁지역에서 평화를 건설해왔습니다. 가장 최근에 그녀는 대한민국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정의를 위해  투쟁하며 때론 울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면서 투쟁했습니다.

Paco Michelson: 대한민국에서 창설된 소규모 공동체 네트웍, “개척자들”과 함께, Paco Michelson은 아시아 전역 많은 분쟁 지역에서, 가장 최근에는 주민들의 소망과는 반대로 전쟁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거주하며 일해왔다. 그는 군사중심정책과 억압에 직면하고 있는 제주도의 주민들과 함께 강한 저항을 구축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순회 강연회 스케쥴 (상세 행사 내용은 조만간 발표될 것임!):

Boston: March 16 (Mon) – March 19 (Thursday)

Maine: March 19 (Thursday) – March 21 (Saturday)

NYC: March 21 (Saturday) – March 26 (Thursday)

Phila: March 26 (Thursday) pm – March 28 (Saturday)

DC: March 28 (Saturday) – March 30 (Monday)

LA: March 30 (Monday) – April 4 (Saturday)

SF & Santa Cruz: April 4 (Saturday) – April 9 (Thursday)

Seattle: April 9 (Thursday) – April 12 (Sunday)

Portland: April 12 (Sunday) – April 16 (Thursday)

순회 강연회에 대한 정보 문의 연락처:

Juyeon JC Rhee <[email protected]>

www.SaveJejuNow.org

@SaveJejuNow

Facebook.com/Groups/NoNavalBase

호소문

2007년 이래, 강정 마을 주민과 그들의 지지자들은 국가 폭력, 기업 세력, 전쟁을 통한 부당 이득 취득, 환경 파괴와 맞서서 매일매일 분투하고 있다. 그들의 투쟁은 열정적이고  비폭력적이었다.

그들의 평화를 위한 노력의 결과, 아주 작은 강정 마을은 이제 남한 전역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의 하나가 되었다. (2012년 현재) 22만 명 이상의 경찰병력이 강정 마을에 상주하고 있다.

지금까지 700명 이상이 체포되어서, 650명 이상을 대상으로 약 200번에 이르는 법정 소송이 행해져서, 대략 27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었고, 46명이 구속되었다.

외국인 30명 이상이 입국이 거부되거나, 추방, 입국이 불허되었다. 이 모두가 마을주민의 생계, 지역 생태계, 북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해군 기지 건설을 평화적으로 저항한다는 “범죄”를 이유로 행해진 일들이다.

강정마을 주민 다수는 농부이며, 정의를 위한 그들의 투쟁은 작물 생산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강정마을 지지자들 다수는 풀타임으로 투쟁에 임하고 있으며, 생계수단으로 임시 고용 잡일과 임시 농업 근로에 의존한다. 벌금은 더 높아져 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은 납부할 여유가 없는 수천 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정의를 위한 이 투쟁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이들 용감한 평화건설자들(peacemakers)을 생각하시고, 법률 비용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기부를 해주십시요. 기부하려면, 다음 주소에 접속하고  “http://savejejunow.org/donate/”그리고  “Donate Now” 링크에 클릭하십시요. 당신의 기부가 “Jeju legal”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반드시 명시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