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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필라 세사모 소식지
여름 휴가차 모국 방문을 했던 필라 세사모 회원들이 유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와 전하는 소식 등을 실은 다섯번째 필라 세사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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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딸 예은이를 잃은 유경근씨의 노모 이세자씨는 감리교단의 장로를 맡고 있는데 세월호참사 직전에 교단을 대표해서 한국여장로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 이세자씨 부부는 모두 장로를 맡아 온 독실한 기독교인이지만, 세월호참사 이후 교인들과 소통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예은이 할머니 이세자씨가 교인들과 소통에서 겪는 어려움과 새롭게 열린 신앙의 눈을 이야기한 내용이다.
<유가족들 중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70~80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교회를 못 갑니다. 그 이유가 대개 목사님 때문이라고 합니다. 목사님들이 유가족들에게 “아이들이 천국에 갔으니 정신 차리고 제 자리에 돌아와야 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유가족들의 마음에는 비수가 꽂힙니다. 교인들은 또 “손주가 이제 천국 갔으니 좋게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나도 아이들이 천국 가 있는 거 알아”라고 말은 합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결코 그들이 치유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교회를 더 못 갔습니다. 교회에 나가면 더 아파야 하니까요. 그래서 따로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렇게 소경이 된 것은 누구의 죄냐고?”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부모의 죄도 아니고 소경의 죄도 아니라고 하시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쉽게 하는데, 그 말은 정말 잘 사용해야 합니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이 죽은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들은 손주 얘기도 듣고, 남편 얘기도 듣고, 지나가는 학생들 말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솔로몬도 백성의 소리를 듣고자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똑똑하게 말하는 게 지혜가 아닙니다. 나이 먹을수록 더 들어야 합니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생각을 한 다음, 말은 한참 있다가 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게 해 준 예은이에게 고맙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꼴통 같았던 이 할머니의 눈을 열어준 걸 생각하면 그 아이에게 고맙기만 합니다. 이 일이 아니었다면 저는 끝까지 제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상식(Common Sense)이 혁명으로
한 두어 주 전에 Jury duty(배심 의무) 로 법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날 배심원으로 소집된 사람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면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이 다섯 가지를 명심하십시요. 첫째 공정해야 합니다. 둘째 주의깊게 들어야 합니다. 셋째 배심 사건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언론과 접촉 해서는 안됩니다. 다섯째 상식적으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날 교육자는 마지막 항목인 상식적으로 판단하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법정은 배심원 여러분들에게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요구되는 판단 기준은 바로 상식입니다.”
상식이란 것이 어느 곳, 어느 때나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또한 시대와 상황에 따라 상식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상식적 판단이란 비단 법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모든 일상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식이란 자기 자신 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함께 생각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걸어다니는 혁명가”로도 불리우는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 – 1809)은 그의 별명과는 다르게 “상식(Common Sense)”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만일 그의 저서 “상식”이 없었다면 역사상 미국독립은 없었거나 늦어졌거나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임으로 세계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이 말했던 상식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다. 바로 민주공화국이 옳다는 것이다. 그 시대 그가 말한 민주공화국의 주인이 백인 남성으로 국한된 지극히 편협한 상식일지라도 그것은 혁명이었다. 민(民)이 주인되는 세상이 상식이라고 선언한 까닭이다.
그가 “상식”에서 말하는 말하는 사회(society)와 정부(government)를 곱씹다보면 민이 해야할 일들이 저절로 들어난다. 하여 상식이 혁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회를 만든 것은 우리의 필요이고, 정부를 만든 것은 우리의 악함이다. 사회는 우리의 관심을 통합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키고, 정부는 우리의 악함을 억제함으로써 소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킨다. 전자는 소통을 촉진하고, 후자는 구분을 만들어낸다. 전자는 후원하고, 후자는 징벌한다.
사회는 어떤 것이라도 축복이지만, 정부는 최고의 것이라도 필요악일 따름이다. 최악은 참을 수 없는 정부다. 정부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거나 고통을 겪을 경우 우리는 차라리 정부가 없는 나라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수단을 우리 자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불행은 더욱 커진다.
Society is produced by our wants, and government by our wickedness; the former promotes our happiness positively by uniting our affections, the latter negatively by restraining our vices. The one encourages intercourse, the other creates distinctions. The first a patron, the last a punisher.
Society in every state is a blessing, but government even in its best state is but a necessary evil; in its worst state an intolerable one; for when we suffer, or are exposed to the same miseries by a government, which we might expect in a country without government, our calamity is heightened by reflecting that we furnish the means by which we suffer.>
그리고 2016년,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정부를 향해 제발 “상식을 지켜 달라”며 단식으로 곡기를 끊은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할 수 있는 건 정말로 다 해봤어요. 이제 진짜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남지 않아 단식을 합니다. 오늘도 피가 마르고, 빼가 녹는 유가족들이 더는 거리에 나서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아들 재욱 군을 잃은 홍영미씨가 단식농성을 시작하며 한 말이라고 한다. 이날 홍영미씨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특검 도입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17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유경근 집행위원장과 장훈 진상규명분과장과 함께 동조 릴레이 단식농성에 나선 것이었다.
“아직도 제대로 울어보지 못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유가족들을 응원하며 함께 합니다.”
단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필라델피아에서 동조 릴레이 단식을 시작하며 누군가 던진 말이다. 그렇게 하루씩 이어가며 필라델피아에서도 단식이 이어지고 있다.
“살아생전 처음으로 단식을 해 보았습니다. 밥 먹는걸 지상 최대의 행복으로 알고 지금도 모든 소득을 먹는 것에 투자하는 저에게 단식은 가장 힘겨운 과제였는지도 모릅니다. – 중략 – 2년이 넘게 이런 고통에 힘겨워 하시는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가족과의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도 모자라 여전히 진실보다는 온갖 말도 안되는 비난과 거짓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부디 하루라도 빨리 진실규명이 이루어져 세월호 유가족 모두가 이 고통에서 자유롭게 되길 희망합니다. 그 날이 올때까지 응원과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금의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은 세상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힘을 솟아나게 하고 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은 달라져야 하고 바꿔져야 한다. 유가족들의 사생결단의 의지가 있고, 지지, 동조, 연대하는시민과 사회 단체들과 해외동포들도 적지 않다. 비록 하루이며 작은 힘이지만 동조, 지지, 연대하면서 커다란 물결로 변화 발전해 나간다면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상은 어디서나 만들어 갈 것이다.”
상식이 혁명이 되어, 언제 어디서건 얼굴색깔 구분없이 빈부귀천 남녀노소 차별없이 모든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와 정부를 선택해 만들고 세우는 세상을 꿈꾸며.
그래, 몸짓으로 박수를 치자.
나는 체구가 작고 몹시 마른편이다. 내 또래들은 나이살이니 뱃살이니 하며 고민들을 하더라만,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종종 듣는 “아니 왜 그렇게 못 먹었어?”라는 말은 철든 이후 줄곧 나를 쫓아 다닌 것이어서 이젠 웃음으로 대신한다.
그런 나는 배에 기름기가 없어서인지 끼니를 거르는 상황을 상상조차 아니한다. 하루 삼시 세끼 매일 얼추 같은 시간에 거의 같은 양의 식사를 하는 내게 한끼를 거른 때의 기억은 거의 없다. 한끼라도 제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으면 견디지를 못한다고 할 정도로 그 점에 대해서는 예민하다. 그렇다고 먹는 양이 많은 것은 아니다. 지나친 포만감은 매우 불편해 하는 편이라 늘 조금 덜찬듯하게 먹는다.
이런 내게 금식이나 단식이니 하는 말들은 애초 아무 연관이 없다. 내 스스로 예수쟁이라고 떠들고는 다니지만 ‘금식기도’니 ‘단식기도’니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안식일에 밀이삭을 훑어 먹는 제자를 넉넉한 눈으로 바라보는 예수의 모습이 내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식기도를 하는 사람들이나 단식을 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못하는 나는 그들이 대단하다고 여길 때가 많다.
물론 아주 어릴 적엔 금식도 해 보고 단식도 해 본 경험이 있다만 모두 스물살 즈음의 일들이었고, 생활인이 되고난 후엔 단연코 단 한번도 없다.
그런 내가 오늘, 한끼도 아니고 만하루 세끼 식사를 거르려고 결심을 한 까닭은 모두 사람들을 잘못 만난 탓이다. 지금 내가 먹고 사는 일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일로 맺어진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은 바로 세월호 사건과 유가족들을 잊지말자고 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가운데 미시건에 사는 사람들이 먼저 릴레이 단식을 제안했다는 것이고, 뉴욕 뉴저지를 돌아 인근 필라델피아 사람들이 연이어 동조했다는 것이다.
지난 16일부터 한국 광화문광장에서 ‘사생결단을 내기 위한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힘을 보태자고 그리 하였다고 한다.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유경근씨는 17일 단식에 임하는 글을 그의 페북에 올렸다.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저는 어제(17일)부터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사생결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사생결단을 내기 위한 단식’이라는 뜻입니다. – 중략 – 호기있게 “사생결단식”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사실 많이 두렵습니다. 2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건강 때문이기도 하고, 장기간 단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도 저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은 결국 두 야당이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침몰시키는 데 정부여당 못지않은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가 20대 국회의 야당에게 바라는 것은 ‘개돼지’ 취급당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정치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동안 수많은 유무명 인사들의 단식행위에 대한 소식들을 들어왔지만 거기에 동조를 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이번 일이라고 별다르지 않았다. 비록 주위에 아는 이들이 하루씩 릴레이 단식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이고, 어려운 일들 하네, 수고가 많네.” 정도의 치사를 던지는 것으로 내 몫은 끝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늦은 저녁 한 사내의 이름이 떠올랐고, 그 사내가 죽던 세상보다는 그래도 지금이 많이 나아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내가 하루 세끼 거르는 일도 좀더 나은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위해 박수정도 쳐주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더해졌던 것이다.
내 또래 사내의 이름은 광주사람 박관현(朴寬賢)이다. 그는 만 29살이던 지난 1982년에 50일 동안 이어진 옥중단식 끝에 짧은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당시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시인 김남주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읊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박관현 동지에게
– 김남주
혼자서 당신이 단식을 시작하자 / 물 한모금 소금 몇 알로 / 사흘을 굶고 열흘을 버티자 / 어떤 이들은 당신을 웃었습니다 / 배고픈 저만 서럽제 그러며
밤으로 끌려가 어딘가로 끌려가 / 만신창이 상처로 당신이 돌아오자 / 돌아와 앓는 소리 끙끙으로 사동을 채우자 / 어떤 이들은 당신을 웃었습니다 / 맞은 저만 아프제 그러며
물 한모금 소금 몇 알로 / 끼니를 때우고 스무 날 마흔 날을 참다가 / 심근경색으로 당신이 숨을 거두자 /어떤 이들은 당신을 웃었습니다 / 죽은 저만 불쌍하제 그러며
그러나 나는 보았습니다 / 그들이 냉수 한 사발로 타는 목 축이고 /남은 물 그 물 손가락으로 찍어 세수하고 / 세수한 물 그 물로 양치질하고
여름이면 철창 밖으로 고무신을 내밀어 빗물을 받아 / 갈증을 풀던 그들이 / 당신의 죽음 그 덕으로 철철 넘치는 대야물에 세수하고 / 따뜻한 물로 십 년 묵은 때까지 벗기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 낮이고 밤이고 일 년 삼백예순 날 / 햇살 한 줄기 제대로 못 구경하던 그들이 / 푸르고 푸른 오월의 하늘 아래서 / 입이 째지도록 하품을 하고 /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돋친 듯 기지개를 켜는 것을
나는 또한 보았습니다 / 주면 주는 대로 먹는 게 제 분수라 여기고 / 때리면 때린 대로 맞는 게 제 분수라 여기고 /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었던 그들이 / 간수한테 대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 반말을 한다고 항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식이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 야단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루아침에 / 썩은 배추가 싱싱한 상추로 둔갑하여 / 그들의 식단에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박관현 동지여 / 우스운 당신 한 사람의 죽음으로 / 만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 /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싸우는 인간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2016년 이 문명의 세월에 중년의 한 사내가 ‘사생결단을 내기 위해’ 곡기를 끊고 싸우는 까닭은 허망하게 죽어 간 자식의 한(恨)과 그 한으로 응어리진 살아있는 애비의 원(怨)을 풀고자 함이 아니다. 다시는 그런 한과 원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 시절 박관현에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할만큼 외로웠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유경근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를 위해 비록 하루 세끼지만 끼니를 거르며 힘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어찌 손뼉박수만으로 족하랴.
하여 나도 몸짓으로 박수를 보내려 한다. 더는 단식 같은 일이 반복되는 세상이 끝났으면 하는 바램으로.
필라 세사모 소식지 – 4
연일 100도 가까이에 이르는 찜통더위가 이어진다.
이 무더운 날, 세월호를 기억하자며 필라델피아 인근 마켓에서 전단지를 돌리거나, 워싱톤 백악관 앞에 서 있거나 하는 벗들이 있다. 누군가는 모처럼 한국 나들이한 시간들을 광화문과 안산에서 보내고 왔다.
그들이 네번째 만든 ‘필라 세사모 소식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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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 세월호 소식 나눔 – 세번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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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
보는 이에 따라 제 주제 모르고 오지랖 넓게 나선 짓일지도 모릅니다. 어제 있었던 일이랍니다.
제가 이 곳에 산지도 서른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곳 이름을 아는 한국인들이 많지만, 미국인들 가운데서도 낯설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작은 주(州)입니다. 크기로 따져 The State of Rhode Island and Providence Plantations이라는 긴 정식 이름과 달리 가장 작은 주인 로드 아일랜드주에 이어 미국에서 두번 째로 작은 주입니다. 델라웨어 주(State of Delaware)입니다. “첫 번째 주(First State)”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까닭은 미국 독립 당시 13개 주 가운데 미국 헌법을 가장 먼저 승인하고 서명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 전체 면적이 6,452 km² 이니 한국의 충청북도(7,431.50 km²)보다도 작답니다. 주 전체 인구라야 백만명에 채 미치지 못하고요. 이 곳에 사는 한인 인구수도 정부 인구조사 통계를 기준으로 하면 겨우 이천을 넘는 숫자랍니다.
다 저마다 살기 나름이겠지만 큰 욕심없이 살려는 사람들에겐 한적하니 살기 좋은 동네랍니다.뭐 숨넘어 갈 듯 바쁜 일도 별로 없거니와 이웃들과 부딛히며 살 일도 딱히 없는 곳이랍니다. 주일에 한인교회를 나간다거나 동네 유일한 한인 마켓에 들른다거나하는 일이 없다면 한인들끼리 마주칠 일도 거의 없는 동네이지요.
이런 동네에서 어제 서른 명 가량의 한인들이 모여 세월호 다큐멘타리 영화인 <업사이드 다운>을 함께 보고, 세월호 참사와 지난 2년 동안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답니다.
물론 모인 동네 분들에겐 낯선 주제였답니다. 평소 관심이 없었거나, 오랜 옛일로 기억하거나, 이미 다 정리된 먼 나라 이야기 쯤으로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참석한 이들 가운데 또 다른 한 축은 필라세사모(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 활동을 함께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한 쪽은 묻고 한 쪽은 답하는 그런 분위기의 모임이었지요.
한국내에서 일어난 일과 관련된 행사라고는 좀체 없었던 시골 동네에서 가진 모임이라 참석하셨던 동네분들에게 그저 감사함을 드린답니다. 황금같은 주일 오후시간에 먼 나들이 해주셨던 필라세사모 식구들에게도 넘치는 감사를 드리고요.
비록 보는 이에 따라 제 주제 모르고 오지랖 넓게 나선 짓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는 때론 주제 모르고 오지랖 넓게 나서는 놈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그 젊은이를 위하여
이즈음엔 여러가지 이유들로 하여 한국인들이 미국 이민을 오는 경우가 줄었습니다만, 여타 다른 나라로 향하는 이민 또는 이주자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이민이나 해외이주를 택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들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겠습니다만, ‘자녀교육’, 또는 ‘자녀들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 듯합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딱히 이민이나 이주가 아니라 기러기아빠, 기러기엄마가 되는 일도 마다치 않는 경우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민생활 30년 째로 접어드는 저는 그런 면에서 제 아이들에게 아주 미안하기 그지없답니다. 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이민을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제 생각만 하다가 어찌어찌하여 오게된 이민이었으니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답니다.
이번 주초에 한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묻지 않아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얼추 제 아들녀석 또래 같았습니다. 젊은이도 제 아들녀석 처럼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이 미국땅에서 낳고 자란 모양입니다. 젊은이 부모님들이 저처럼 자식 생각없이 이 땅에 온 이들인지, 아니면 그 젊은이를 위해 이민을 온 것인지도 묻지 않아 모를 일입니다.
다만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 잘 자랐다’는 생각이 이어졌답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김동빈이랍니다. 그와 약 한시간여에 걸쳐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짧게 담아 이 곳에 올려봅니다.
내 아이들도 이웃을 생각하며 자기 일을 즐겁게 해 나가기를 비는 마음으로…
오월 아침- 동네 거위들의 꿈
오늘 아침 동네 공원에는 거위들이 갓 태어난 새끼들을 앞세워 화창한 오월 아침을 즐기고 있었답니다.
이 좋은 주일 오후에 전단지를 들고 한인마켓 앞에서 시간을 보낼 계획을 하고있는 얼굴들을 생각하며, 그네들이 만든 전단지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 필라 세사모)에서 만든 첫 번째 소식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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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주일 오후에 제가 사는 곳에서 함께 보게 될 영화 <업사이드 다운> 상영안내입니다.
“한국 사회는 피해를 당한 사람을 거리로 내몰고 나쁜 사람으로 만듭니다. 모든 것이 뒤바뀐 것 같아요.”
“한국 언론은 세월호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지 않고 제대로 된 뉴스를 다루지 않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덮어버리기에 급급한 것 같습니다. 슬픔을 덮어놓으면 보이지 않아 아프지 않은 것 같겠지만 상처 부위는 더 썩고 곪을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업사이드 다운>을 보면서 돌이켜봤으면 합니다.”
영화 <업사이드 다운> 감독인 김동빈의 말입니다.
재미교포 2세인 김 감독은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저희들처럼 미국에서 접했다고 합니다. 미군 전사자 유족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버몬트 폴른(Vermont Fallen)>을 제작해 2013년 북미전문저널리즘학회 심층취재 부문에서 상을 받기도 한 그는 세월호 참사 3일 뒤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다큐멘터리를 함께 만들자’는 글을 올렸고 곧이어 시민 80여명이 참여하겠다고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 <업사이드 다운> 상영 행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곳 : 델라웨어 한인 감리교회당Delaware Korean United Methodist
주소 : 717 Loveville Rd, Hockessin, DE 19707
- 영화상영후 한국체류중인 김동빈 감독과 실시간 화상 대담이 있습니다.
- 간단한 식사 제공합니다.
- English subtitles이 있어 영어권 이웃들에게도 권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