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이웃 도시 필라델피아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던 엊저녁이었다. 내가 사는 델라웨어 주민들이 제일 좋아하는 운동팀으로 꼽는 첫 번 째가 미식축구로는 Philadelphia Eagles요, 야구로는 Philadelphia Phillies 농구로는 Philadelphia 76ers이니 여기도 어찌 보면 범 필라델피아 상권에 속한다 할 게다.

필라델피아는 내겐 여전히 낯선 이웃 대도시이다. 이젠 그 이름이 많이 쇠락했다만 한 때 필라델피아의 한인거리로 알려졌던 5가 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나를 1970년대 동두천이나 의정부로 데려가곤 한다.

개인적인 일로 필라를 찾는 일은 이젠 거의 없다. 좋은 벗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들이면 어쩌다 올라가곤 하는데 일년이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엊저녁엔 정말 오랜만에 필라 시내 한 복판 건물 숲속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 참 좋은 벗의 아들이 장가가는 날이었다. 필라 시청에서 가까운 빌딩 숲 속, 분수대 앞에 펼쳐진 예식장은 초가을 맑은 하늘이 그대로 내려 앉아 아늑했다.

필리핀계 카톨릭 의식에 따라 진행된 예식은 부부의 연(緣)에 대한 뜻을 아주 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예식에 이어 건물 50층에 있는 연회장에서 바라본 필라시 전경은 이제껏 내가 그리고 있는 필라시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필라시는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저녁은 함께 식탁에 둘러 앉은 벗들로 하여 풍성하기까지 하였다. 티 없이 맑고 밝은 신부의 쾌활함이 그 아름다운 저녁을 빛냈다.

꼭 있어야 할 몇 몇 벗들이 함께 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엊저녁 비슷한 시간에 펼쳐진 중국인촌 행사에 우리 풍물놀이패로 참석한 탓이었다. 어제 아들 장가를 들인 벗도 아들 결혼식이 아니었다면 그 풍물패와 함께 였을 것이다.

그렇게 멋진 저녁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 입는데 주머니 속 지갑이 잡히지 않았다. 분명 주차장에서 나올 때 지갑을 꺼내 카드로 결제를 하고 나온 기억이 선 하건만 양복 주머니 속에도 차 안에서도 찾을 수 가 없었다. 순간 나는 허둥거렸다. ‘하이고~ 이를 어찌지….’ 하며 쯔쯔 거리고 있는 사이, 아내가 ‘쯔쯔쯔…’ 더 크게 혀를 차며 지르는 소리였다. “여깄고만… 왜 그리 덤벙거리시나!” 지갑은 차 시트 사이에 떨어져 있었단다.

하여 떠올린 지난 주에 읽었던 책 캐스린 슐츠의 <상실과 발견>속 한 대목이다.

<조사기관과 보험사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는 저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대략 아홉 번 물건을 찾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60세가 되면 거의 20만개의 물건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잃어버린 물건들을 전부 다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되찾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물건을 찾느라 허비한 시간이다. 평생 동안 우리는 사라진 물건을 찾느라고 대략 6개월의 시간을 꼬박 소모한다. 이는 미국에서 집단적으로 하루에 5400만 시간을 소모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돈도 지출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한 해 약 300억 달러가 오로지 잃어버린 휴대폰 때문에 사용된다.>

그녀가 이 책을 쓴 게 2022년도이니, 지금은 그녀가 말한 수치들은 더욱 늘어나지 않았을까.

잃어버려 아쉬운 물건들과 결코 되찾을 수 없는 시간에 더해 정말 아쉬워야 하는 것 바로 잃어버린 기억들이 아닐런지.

어제 식장에서 함께했던 벗들과 풍물패로 거리에 나선 벗들과 종종 함께하며 같을 뜻을 찾고자 같은 몸짓을 하는 친구들을 이어 준 끈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일이었다. 나이 차이로 보자면 거의 한 세대 간격이 벌어지는 모임이다. 더러는 민주, 통일, 평화, 이민 등등 저마다 주관심사들에 있어 작은 차이들은 있다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며 서로가 존중되어지는 안전한 사회를 꿈꾸는 일에는 같은 생각을 지닌 벗들이다.

나는 비록 늦은 나이지만 벗들을 통해 많이 깨우치며 산다. 이젠 돌아서면 쉽게 잃어버리는 기억들로 홀로 혀 차는 시간들이 늘어간다.

허나 참 좋은 벗들과의 연대는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아름다운 필라의 저녁을 만끽하게 해준 이종국선생 내외에게 감사를. 이종국선생을 축으로 같은 뜻으로 이어진 참 좋은 벗들에게 고마움을.

<추가 글 – 어제 중국인촌에 풍물패를 앞세워 함께 참가한 필라 우리센터의 호소문 하나>

지난 2년간 우리는 차이나타운이 있는 필라시 중심부에 경기장을 건설하려는 76플레이스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금까지 공사 진행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필라 주민 모두의 목소리를 모아 시의회에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경기장이 아닌 지역 주민 생활에 도움이 될 정책에 집중하라 요구해야 합니다.

필라델피아 차이나타운은 센터시티에 마지막으로 남은 노동계층 유색인종 커뮤니티입니다. 또한, 경기장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이 싸움은 단순히 특정 커뮤니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힘을 합쳐 우리 삶의 터전인 이 도시가 부자들의 탐욕에 짓밟히는 걸 막아야 합니다.

미국에서 스포츠 경기장 건설은 주로 유색인종 커뮤니티의 주거지를 허물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많은 유색인종 주거지가 스포츠 경기장 건설 과정에서 사라졌습니다.

스포츠 경기장 건설은 저임금, 비정규직, 계절노동자들에 의존하며, 그 과정에서 노동계층 유색인종 커뮤니티를 빈곤의 수렁에 가둡니다.

76플레이스 경기장 건설계획 주도자들은 재산세를 면제받을 예정입니다. 이러한 결정은  저소득층 커뮤니티 복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기장 건설은 필라시를 비롯한 펜주 재정에 10억 달러의 세수 손실을 초래합니다. 이는 주변 지역 소상공인, 노동자 및 그 가족들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집니다.

한 동네를 파괴하는 결정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진다는 건, 어떤 동네든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필라시민은 우리 자신과  이웃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결정에 대해 반대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개발사업자의 이익이 아닌, 시민들의 도시임을 기억합시다.

도심 경기장 건설로 도시가 더 좋아진 적은 없습니다. 반면 경기장 건설이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확실합니다. 개발사업자들은 유색인종 커뮤니티를 착취했고, 시민들의 요구는 묵살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반복된 역사에서 얻은 이 교훈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을 할 기로에 서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투쟁에 함께해야 합니다.

로봇 그리고 통일에

<나날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따라잡기Keeping up in a world that goes faster every day> – 생업을 위해 내가 구독하는 잡지 중 하나인 National Clothesline 이달 치 편집자의 글 제목이다.

글의 내용이야 뻔하다. 제목 그대로 세탁업에도 불어 닥친 빠른 변화들에 왈 선제 대응하여 업을 키워보라는 권유와 제안인데… 머리 속으로야 훤히 꿴다만…. 이 나이에 내가 돈과 시간 들여 쫓을 일인가? 하는 생각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터.

그렇다 하여도 업을 이어가는 날까지는 세상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마땅한 일일게다.

일종의 로봇인 ChatGPT에 대한 뉴스는 이미 접하고 있었다만, ‘이 나이에 뭘?’하는 생각에 그냥 스쳐버렸었다. 며칠 전 서울 큰 처남이 내게 유용할 듯 하다며 ChatGPT 사용을 권하는 카톡을 보내왔을 때만 하여도 ‘그거 로봇 아니감?’하며 무심히 응답했었다.

그리고 어제 오늘 그 로봇에 빠져 지냈다.

마침 내가 참 좋아하는 ‘필라 세사모’ 벗들이 한반도 통일에 대한 강연회를 연다고 하여 로봇에게 물었다. “한반도가 통일 되어야 만 하는 이유 열가지만 대답”해 달라고.

그 물음에 응답하고 그걸 또 영상으로 만들어 준 것은 로봇 ChatGPT와 PictoryAI 두 로봇이다. 이런 놀이는 참 재밌다.

물론 그 응답들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반도 통일의 시기는 바로 오늘입니다.(늘 오늘이지, 바로 지금) 그 통일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하는 만 하는 일은 한민족과 국제사회의 의무입니다.(The time for Korean reunification is now, and it is the duty of the Korean people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work together to make it a reality.)”라는 로봇의 응답은 내 스물 어간의 생각과 쉬흔 해 지난 오늘이나 변함없는 소원이다.

세상 참 빠르게 변한다고들 하지만 수천 년 이래 오늘까지 변하지 않고 사람들이 고민했던 세상,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한 사람 답게 살자는 생각. 그거 아닐까?

로봇이 그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는 세상이 되기를.

점점 멀어지는 듯한 통일의 소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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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그리고 기도

어느해 부터인가 내 책상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는 달력 하나, 4.16재단에서 만든 세월호 달력이다.

“이 달력은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달력 속에 글 내용은 이들을 떠올리며 한 줄 한 줄 담았습니다.” – 달력을 소개하는 글이 담긴 달력 첫 장을 넘기면 <존엄과 안전에 대한 4.16인권 선언>이 펼쳐진다. 지난 해에 이어 다시 한번 꼼꼼히 새기며 읽어 본다.

선언문을 맺는 말이다.

“또한 우리는 다짐한다.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재난과 참사, 그리고 비참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할 것임을. 우리는 존엄과 안전을 해치는 구조와 권력에 맞서 가려진 것을 들추어 내고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이 선언은 선언문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리가 다시 말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함께 손을 잡자. 함께 행동하자.”

그렇게 넘긴 달력, 정월의 선언 <우리는 4월 16일을 잊지 않았습니다.>이다.

이 달력이 내 책상 가까이에 놓이기 까지 여러 손들을 거쳐왔을 것이다. 그 손길들 가운데 내게 가장 가까이 곳에서 <존엄과 안전에 대한 4.16인권 선언>에 함께 하는 ‘수많은 우리’중 하나가 된 ‘필라 세사모’ 벗들이 있다.

“상실과 애통, 그리고 들끓는 분노로 존엄과 안전에 관한 권리”를 위한 선언을 함께 외치더라도 결코 날카롭지 않게 삶의 넉넉한 감사를 공유하며 함께하는 ‘필라세사모’ 벗들이다.

벗들 하나 하나 얼굴들을 떠올리며 새해 기도를 드린다.

“함께 살고 함께 나누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벗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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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을 보고 돌아온 밤,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귓가에 맴맴 돌며 떠나질 않는다.

“김복동, 그 이름을 기억해 주시는 사람이 되어 주시겠습니까?”라는 나를 향한 물음이었다.

<기억> – 내가 이해하는 한, 성서를 제대로 꿰뚫는 열쇠가 되는 말이 곧 ‘기억’이다. 다만 성서는 묻지 않고 ‘기억하라!’고 명령한다.

모세의 마지막 말들을 전하는 성서 신명기는 ‘기억의 신학 책’이라 할 만큼 ‘기억하라!와  ’잊지말라!’는 명령을 반복한다.

예수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넘긴 말은 바로 ‘기억하라!’였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께로 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24절)

성서가 말하는 ‘기억하라!’는 명령은 단지 머리 속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는 뜻이 아닌 ‘삶’속에서 ‘함’을 이루라는 재촉이다.

일테면 ‘김복동을 기억하라!’는 말은 ‘김복동이 못 다 이룬 일을 내 삶 속에서 실천하라!’라는 명령이라는 말이다.

영화 <김복동>이 던져준 마지막 물음이 그렇게 무겁게 다가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세월호를 기억해 주시겠습니까?’, ‘바로 엊그제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를 기억해 주시겠습니까?’라는 물음도 마찬가지이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사람의 존엄을 망가뜨리는 숱한 행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산다는 일 역시 매 한가지일 터.

기억에 대한 물음과 명령은 바로 신 앞에 선 이들에게 던져지는 것, 하여 사람으로 제대로 살게 하는 일.

기억에,

***필라델피아 소녀상 건립 추진 위원회 위원들의 치열한 실천과 도전에 존경을 더해 격려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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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세사모

토요일 오전, 필라 외곽의 작은 도시 Ambler의 거리 풍경은 마치 먼 나라에 여행을 온 듯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른바 Multiplex라고 하는 대형 극장에 이미 익숙해진 내게 Ambler 영화관은 젊어 한 때 즐겨 찾곤 했던 연극 소극장을 추억하게 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초대해 준 벗들에 대한 고마움이 참 컸다.

그곳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을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냥 가슴이 아렸다. 영어로 번역한 제목 <The Red Herring>이 원제보다 더 가까이 마음에 다가 온 영화였다. 돌아가신 노무현대통령 팔이를 하는 이들은 차고 넘쳐도 그 이를 닮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가 쉽지 않듯, 변혁의 깃발을 들어 흔드는 시늉만으로 뭇매와 화살비를 맞고 쓰러진 참 잘난 사내에 대한 저주와 비아냥은 아직도 이어지지만 그가 품었던 꿈과 이상을 말하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쉽지 않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그 자리를 준비했던 이들이 마련해 준 팝콘과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일행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들렸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었는데(글쎄… 이즈음 내가 종종 범하는 우(愚) 가운데 하나. 상대방의 나이 가늠을 잘 못한다는 점. 나는 늘 젊었다는 착각의 잣대질 때문.)… 아무튼 그이들의 이야기.

‘이건(이 영화 상영은) 누가 주최해서 이루어 진 일인가?’, ‘지금 한국정부 싫어하는 사람들이 준비한 거 아닐까?’ 그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던 때, 뒷줄 좀 떨어져 앉아있던 젊은 여성 한 분(이 또한 내가 자주 범하는 우(愚)일 수도 있다. 여성들의 나이를 가늠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므로.)이 어르신 일행에게 다가가 말했다. ‘글쎄… 저도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필라세사모라고…. 세월호 참사…. 그거 아시지요…. 그 사건을 잊지말자고…. 그렇게 만들어진 단체래요…. 거기서 주관했다고 해요.’

이어진 어르신들의 질문, ‘거기 대표나 회장은 누구요?’ 젊은 여성분의 대답. ‘글쎄요? 잘은 모르겠고요. 아마 저기 저 앞자리에 계신 파란 점퍼입고 계신 분일거요…’

그러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필라세사모> – 내가 아는 한, 대표니 회장이니 하는 직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직이라고 하는 개념 조차 없는 그저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나와 이웃들이 안전하게 건강한 삶을 살고자’하는 뜻이 맞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8년 전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이 모임의 동기가 되었다.

여남은 여명이 그 동안 꾸준히 이 모임을 함께 해 오고 있고, 나처럼 간혹 머리 숫자 채우고 박수치는 이들까지 합치면 사오십 여명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필라세사모 – 숱한 거짓 정보들과 자기 집단 이익에 사로잡혀 이웃의 아픔을 도외시하는 현실을 함께 직시하고 그저 각자의 삶 속에서 작게 나마 사람 답게 살아보고자 애쓰는 이들 정도로 나는 이 모임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영화 <그대가 조국The Red Herring>을 선택한 것은 참 걸맞았다.

조국이 꿈꾸었던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때를 기다리며…. 그날이 오면, 오늘도 꾹꾹 참아 삼키고 있을 그와 그의 가족들의 삭힌 한(恨)들이 풀리지 않을까..

**** 영화를 보며 며칠 전 북의 김여정이 했다는 말. “남조선 당국의 대북정책을 평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라는 말이 큰 공감이 되어 떠올랐는데…. 이름만 바꾸어 불러도 좋을 분(糞)들이 영화 속에 참 많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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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아버지 고향인 경기도 포곡면 유운리 유실 마을은 내가 어릴 적 방학이면 찾아가 지내던 곳이다. 초, 중, 고교 시절이었던 1960대만 하여도 아직 전기가 들어 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살았던 유실 마을까지는 서울 신촌에서 거의 하루길이 걸렸다.

유실 마을을 지키고 계셨던 작은 할아버지 체구는 지금의 나 만큼이나 작고 야윈 분이셨다. 그 작은 할아버지는 신 새벽이면 ‘어흠’ 기침소리로 일어나셔 밤새 끓인 쇠죽을 여물통에 옮기신 뒤,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시곤 밭으로 나가셨었다. 그 할아버지 닮아서인지 나 역시 지금까지 해 뜬 후 눈 뜬 적은 별로 없다.

새벽 밭일 끝내고 돌아오셔서 조촐한 아침 상 물리신 후 작은 할아버지는 죽 여물로 배 든든히 채운 황소를 앞세우고 다시 들일에 나서시곤 하셨다.

어린 내겐 엄청난 크기의 황소는 작은 할아버지 앞에서는 늘 공손했고 내가 기억하는 한, 유실 마을 아버지 고향의 기둥이었다.

대학생이 된 내가 1972년 여름 7.4 남북 공동성명 소식을 들은 곳도 이미 전기가 들어 온 유실 마을에서 였다.

그 무렵에 삼성일가의 돈이 그 일대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모를 일이다…. 지금은 몇 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는지?

다만, 오늘 다시 생각해보는 황소다.

오늘 아침 장기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를 찾기 전에 잠시 만났던 참 좋은 벗 필라 이종국 선생에게 들은 황소 그림 이야기 때문이었다.

올 정월 즈음이었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하는 “기억 하장, 함께 하장”이라는 후원행사가 있었다. 뜻있는 분들이 이런 저런 물품들을 기증하고 그 물품들을 구입한 기금으로 4.16가족협의회의 진상규명 활동비를 마련해 보자는 뜻으로 열린 행사였다.

‘필라세사모’ 이름으로 작은 물품 하나라도 구입해 보자는 뜻이 모아져 기증 물품들을 보고 있던 중에 ‘필라세사모(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 모임)”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작가 류연복의 작품인 그림 <황소>였다.

그러나 당시 한 회원이 남긴 의견 <이 황소는 구경만 하시는 것으로.^^>처럼 다른 물품들에 비해 조금 고가였다.

나야 그저 이름만 걸쳐 놓았을 뿐이지만 ‘필라세사모’ 친구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황소처럼 우직하다. 결국 <황소> 그림은 필라델피아로 오게 되었고, 지난 주에 한인 이민자들 뿐만 아니라 아시안계 이민자들 나아가 소수자들의 권익옹호에 앞장 서 일하는 ‘필라 우리센터’  사무실에 걸었단다.

다시 <황소>

이재(理財)에 재빠르게 밝은 이들에게 황소는 그저 물품이거나 지나간 시절의 추억거리일 수 있겠다만, 그 우직함과 꾸준함 나아가 든든함을 이어가는 역사성을 찾는 이들에겐 곁에 두고 싶은 상(象)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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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冊

워낙 이렇다하게 가진 것 없는 삶인데도 집안을 휘이 돌아보면 온통 정리하고 버려야 할 것들 투성이다.

그 중 하나가 책들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번 ‘갖다 버리자’라는 충동을 불러 일으키곤 했던 녀석들이 바로 책이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행여 우리 부부 노년을 위해 이사라도 할라치면 가장 크게 힘들일 듯 하기도 하거니와, 이젠 제 아무리 선견(先見)이라도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일 나이는 지난 듯하다는 건방진 생각도 들고하여 일곤하는 충동이다. 그보다 가장 큰 까닭은 이젠 책장을 넘기는 지적 사치보다는 그저 시간 나는대로 나와 이야기하는 순간들을 즐길 때가 아닐까 하는 겉늙은 생각 때문이다.

허나 아직은 차마 책들을 싣고 가까운 재활용품 쓰레기 처리장을 찾는 용기를 내지는 못한다. 다만 새로 책을 구입하는 일은 극도로 자제 한다.

며칠 전 필라 세사모(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 모임) 이야기방에 멤버 한 사람이 공지 글을 남겼다. 그이의 사정상 갖고 있는 책들을 정리해 처분하고자 하는데 혹시 원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나누어 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꼼꼼히 정리해 놓은 거의 오백 여권에 달하는 그이가 처분하려고 하는 책 목록을 보면서 혹 하는 책들이 몇 권 있었다만 아니다 싶어 참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이야기방에는 하나의 제안과 그 제안을 구체화 하는 의견이 올라왔다. 그이가 정리하려고 하는 책들을 한 곳에 모아 도서관을 만드는 시초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었는데, 필라델피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풀뿌리 단체 ‘우리센터’가 그 일을 맡아서 해보자는 의견이었다.

<저소득층, 이민자, 영어 구사가 제한적인 이들, 서류 미비자, 여성, 노인 및 청소년을 포함해 우리 사회 내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이 겪는 문제들의 해소를 위해,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의 주인의식과 역량을 강화하고 함께 행동>하려고 노력한다는 ‘우리센터’가 그 일을 맡기엔 아주 적합하다는 생각에 나도 적극 동의하였다.

그 동의의 뜻으로 그 동안 억제하고 있었던 책 구입을 서둘렀다. 재활용품 쓰레기장이 아닌 누군가 다른 이들의 손에 들려 책장이 넘어가는 일이 일어난다면  오늘의 내 욕심이 과한 것만은 아닐 듯하다는 자족으로.

그 구입 리스트에 신간으로 하나. 조국이 쓴 <조국의 시간>을 더하다.

오후에 뒷뜰 언덕배기 잡풀들을 베다가 자칫 다칠 뻔한 이름 모르는 꽃과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처마 끝에 앉아 있는 새를 바라보며 든 생각 하나.

‘이왕 사는 거, 사는 날까지 나와 이웃과 선견 소리에 세심하게 그저 듣고 보기만이라도 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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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사(獻詞)

여기서 산지 지난 삼십 오 년 동안 많은 한국 뉴스들을 보고 들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아파하며 분노했던 뉴스는 세월호 참사 소식이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삼백 명이 넘는 젊디 젊은,  아니 어리고 어린 아이들이 생수장 되는 현장이 실시간 영상으로 중계되는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당시 나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픈 뉴스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던 때였다. 그 때 그 아픔은 아린 것이였지만, 세월호 참사는 분노였다.

그 날 이후 어찌어찌 인근에 사는 맘 맞는 벗들이 모여 그 사건을 잊지 말고 기억하면서 가족들을 위로하며, ‘도대체 왜?’라는 물음에 응답을 얻을 때까지 함께 해 보자고 틈나면 함께 모임을 이어왔다.

아이들이 그렇게 떠난 지 칠 년 째 되는 날을 앞두고 벗들과 오랜만에 함께 했다. 지난 해 삼월 팬데믹 이후 처음 만나는 얼굴들이 많았다.

펜실베니아 밸리 포지 국립 역사 공원(Valley Forge National Historical Park) 미국 독립 전쟁을 기념하는 상징으로 세워진 독립 기념문(The United States National Memorial Arch) 앞에서 였다.

기념문 상단에 새겨진 글귀가 썩 맘에 들었다.( Naked and starving as they are We cannot enough admire The incomparable Patience and Fidelity of the Soldiery) 독립전쟁 당시 많은 군인들이 기아 질병 영양실조 또는 헐벗음으로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를 상기하며 쓰여진 헌사이리라.

나는 그 헌사를 세월호 가족들 그리고 그 가족들과 함께 하는 벗들과 나누는 뜻으로 새겼다.

지난 칠 년 동안 헐벗고 굶주림 보다 더한 질시와 조롱 속에 이어 온 삶을 위로 한다기 보다는 , 가족들의 더할 나위없이 크나 큰 인내와 끝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그 충심을 칭송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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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信心)

나는 예수쟁이라는 자부(自負)가 누구 못지 않게 강하다만 성실한 교인은 아니다. 아니 성실은 커녕 신실한 교인들 잣대로 말하자면 교인이 아닌 편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수를 고백하고, 내 일상적 삶의 물음들을 성서에게 묻기를 즐기는 편이고, 그런 흉내를 내며 이 나이까지 삶을 이어온 것에 늘 감사하는 편이다.

내가 고백하는 하나님과 예수는 ‘들어 주시는 신(神)’이다. 사람의 소리 보다는 사람들의 소리를 즐겨 들어 주시는 신이다. 특별히 한(恨)을 이고 안고 오늘을 견디고 이겨내며 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 주는 신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서 속 예수의 모습은, 지금 여기를 아프거나 소외 되거나 궁핍하거나  나아가 죽음 앞에선 이들에게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는 예수이다.

예수는 그의 명령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아프고 소외되고 궁핍하고 죽음 앞에 놓인 상황들을 해결해 주진 않았다. 다만 그의 명령은 그 한을 품고 살아야만 하는 그 상황 속의 일상 속으로 돌아가 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예수의 모습에 매료되어 살아 왔고, 이젠 내 버릴 수 없는 그에 대한 믿음이 되었다.

거기 누구나의 삶이라도 뜻이 새겨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세월호 가족들의 오늘의 삶에 관심을 놓지 못하는 까닭이다.

성서 신명기 이야기 속에 나오는 7년이라는 큰 뜻은 탕감과 면제에 있다. 비단 경제적 빚의 탕감과 면제만을 뜻하지 않는다.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이들 속에 경제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 짐들과 맺힌 한들이 있다면 모두 다 털어버리는 공동체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나는 새긴다. 이즈음은 이 7년 이라는 뜻이 버젓한 직장과 먹고 살 만한, 종교적 사회적으로 누리고 사는 사람들의 사치로 전락해 버린 안식년이 되었다만.

그렇게 세월호의 아픔을 안고 산지 일곱 해를 맞는다.

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듣는 일, 아주 작은 몸짓으로 부끄러운 손길 내밀다 마는 일에 불과하다만, 올해도 그저 듣고 손길 내미는 흉내라도 이어가려 한다.

내 신심(信心)으로.


필라세사모 2021년 신년 모임 안내

일시 : 2월 6일 토요일 오후 7시 ~10시 (미동부시)

장소 : 온라인 ZOOM  미팅

참가대상 : 필라 세사모 활동에 관심있는 모든 분들

<진행 순서>

1부 : 2021년 세월호 진상규명 현재 상황

1) 개회 및 모임 안내
2) 유경근 집행위원장님과의 줌미팅
2부: 필라 세사모 현황 및 활동 계획 (내부 토론 시간)

1) 2020년 세사모 활동 정리
2) 2021년 세월호 7주기를 앞둔 현황과 과제
3) 세월호 활동의 외연 및 참여 확대방안

– 필라 세사모

Zoom Meeting 접속방법 (Link or Dial)

https://us02web.zoom.us/j/82483918249?pwd=eHcvZ0ZLSWRRYjdjVXg1aUNTdDZjZz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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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ting ID: 824 8391 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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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16

<세계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는 반면, 사람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 중략 –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헤아리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로 가득한 반향실(反響室, echo chamber, 메아리방)과 자기 의견을 강화해주는 뉴스피드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믿음은 계속해서 공고해질 뿐 도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제15장 ‘무지’에서

오월이다. 여전이 비일상적인 생활이 계속되고 있지만 오월은 오월이다. 화사하다.

총을 차고 미국기를 흔들며 모든 가게들은 정상영업을 하고 경제활동을 재개해야 한다는 시위대 소식과 연일 늘어나는 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 소식들이 동네신문 온라인판 헤드를 함께 꾸미고 있다. 주지사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조금은 강경한 편이다.

내 가계경제(家計經濟)와 어머니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르면 나 역시 빨리 모든 것들이 정상화 되기를 바라지만, 공동체 사람살이로 보자면 조금은 진득해 질 때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이즈음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빠르면 앞으로 두어 주, 길어야 한달 안짝으로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 이전처럼 다시 세탁소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내게 될 듯하다.

마음이 급해지는 까닭은 마구 뒤집고 파 놓은 채마밭과 화단들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뿌린 씨앗들과 심은 구근 들에서 파란 싹이 올라오고, 옮겨 심은 모종들의 하루가 궁금한 이즈음 생활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오는 내 삶에 찾아 온  새로운 걱정이다.

생각컨대 아마도 내 일상은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 이전으로 완벽히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달포 전 신문에 게재된 유발 하라리의 글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을 처음 읽었을 때 떠올랐던 말은 ‘변곡점’이었다. 그것이 역사의 변곡점이든 내 개인적 삶의 변곡점이든 이즈음 내가 살아가고 있는 COVID -19  상황은 분명 하나의 큰 전환점임에 분명하다. 그 무렵 책장을 덮었던 하라리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느꼈던 그에 대한 생각의 연장이었을 수도 있다.

이즈음 COVID 이후 경제문제에 대한 논의들이 넘쳐나지만, 유발 하라리의 지적은 사람살이에 대한 문제였다.

나는 운 좋게도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벗들이 있다. 이건 분명 내가 누리는 더할 수 없는 축복이다.

벗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요 며칠 동안 하라리의 글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을 꼼꼼히 곱씹어 읽다.

혹시 관심있는 이들을 위하여 원문 링크와 번역한 글을 드린다.

무릇 이전(以前)과 이후(以後), 모든 시간들은 그 하루를 사는 이들의 몫이다.

https://amp.ft.com/content/19d90308-6858-11ea-a3c9-1fe6fedcca75 (영문)

https://docs.google.com/document/d/1lIU7c1JRVQ1D4W5n7vBY8CGCOQPJtSMlu6hfSvkmG-o/edit?usp=sharing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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