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투쟁과 쟁취를 위한 행동을 늘 앞세웠던 선배는 나를 가르쳤다. ‘희망이란 약자들과 패자들의 언어’라고. 나는 그 가르침을 거절했었다. ‘투쟁과 쟁취를 위한 행동은 희망에서 시작된다’며.

아침과 저녁을 자주 헷갈리시는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한 시간은 마치 하루처럼 길지만, 새해 첫 날 아버지에게 드린 선물로 그만한 것은 없었다.

뉴스나 내일에 대한 전망들이 내 맘에 든 적은….. 거의 없지? 아마.

그래도 나는 새해 아침 희망을 품는다. 그 생각으로 손님들에게 새해 첫 편지를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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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New Year!

2021이라는 숫자가 우리들과 함께 머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루 하루가 똑같은 날들이지만,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뀜으로 오늘 누리고 있는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한해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팬데믹으로 하여 어려움들이 많았습니다. Time지가  2020년은 “역대 최악의 해”라고 선언할 만큼 어렵고 힘든 한 해였습니다. 저 역시 한 해를 보내며 2020년을 정리하면서 한숨을 그칠 수가 없었답니다. 30년 넘게 세탁소를 해오지만 지난 해처럼 어려웠던 것은 처음이었답니다. 한 해 동안 들어오고 나간 돈들을 계산해보니 그저 한숨이 절로 나왔답니다.

제 말을 믿거나 말거나 그 한숨 속에서도 제가 놓치지 않으려고 꼭 붙잡고 있는 생각과 말은 바로 감사입니다.

비록 가게 매상이 팬데믹 이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지금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고, 이런 현상은 새해에도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감사를 놓치지 않는 까닭은 아직은 우리 부부가 건강히 일 할 수 있음이 첫 째고, 비록 지난 해나 오늘이나 걱정들이 넘쳐나지만 우리 부부가 여전히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산다는 것이 둘째입니다.

건강은 스스로 늘 조심하고 잘 보살피는 일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일이지만, 세상 일이 어디 다 자기 생각대로 되는 일이 아니므로 건강한 하루 하루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고 산답니다.

희망이야말로 어제와 오늘의 걱정들과 아픔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으로 희망을 품고 사는 오늘에 감사를 이어간답니다. 희망이란 저절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제가 걸어 나가 잡을 수 있는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 감사의 크기가 커진답니다.

2021년, 우리 모두가 처음 맞는 시간들을 맞습니다.

태양과 희망을 홀로 차지할 주인은 없지만, 태양과 희망은 그것을 품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당신과 함께 나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무엇보다 희망을 품어 웃음과 기쁨이 끊이지 않는 한 해가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https://conta.cc/2JFn7Rr

주일 아침, 시 한 편

매 주일 아침에 가게 손님들에게 이 편지를 띄운 지도 제법 오래 되었습니다. 한 주간 세탁소 일을 마치고 하루 쉬는 일요일 아침에 제가 느끼는 짧은 생각들을 손님들께 보내왔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고르는 것이 편지 말미에 첨부하는 시입니다.

제가 워낙 시를 좋아하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제가 쓰는 편지 보다는 누군가의 시 한편으로 이 편지를 읽는 분들께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편안함과 삶에 대한 감사를 나누자는 생각으로 시를 고르곤 한답니다.

편지를 쓰고 시를 고를 때마다 제가 소원하는 마음이 있답니다. ‘단 한 사람만 이라도’ 제 편지와 제가 고른 시를 읽고 그 순간만이라도 평온한 마음으로 서로의 삶을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램이랍니다.

오늘도 그 마음으로 시 한편을 소개 드립니다. 해마다 이 맘 때 가을의 문턱에 이르면 제가 즐겨 읽는 시인의 시랍니다. 한국어로 쓰여진 이 시의 참 맛을 그대로 전해 드릴 수가 없어 안타깝지만 시의 느낌만이라도 전해 드리고 싶답니다.

가을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꼭 일요일이 아니더라도 짧은 쉼을 누리는 시간들에 감사할 수 있는 우리들의 삶이 늘 이어지기를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일요일의 미학(日曜日의 美學)

–       김현승

노동은 휴식을 위하여
싸움은 자유를 위하여 있었듯이,
그렇게 일요일은 우리에게 온다.
아침 빵은 따뜻한 국을 위하여
구워졌듯이.

어머니는 아들을 위하여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즐겁듯이,
일요일은 그렇게 우리들의 집에 온다.
오월은 푸른 수풀 속에
빨간 들장미를 떨어뜨리고 갔듯이.

나는 넥타이를 조금 왼쪽으로 비스듬히 매면서,
나는 음부(音符)에다 불협화음을 간혹 섞으면서,
나는 오늘 아침 상사에게도 미안치 않은
늦잠을 조을면서,
나는 사는 것에 조금씩 너그러워진다.
나는 바쁜 일손을 멈추고
이레 만에 편히 쉬던 神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의 남이던 내가,
채찍을 들고 명령하고
날카로운 호르라기를 불고
까다로운 일직선을 긋는 남이던 내가,
오늘은 아침부터 내가 되어 나를 갖는다.

내가 남이 될 수도 있고
또 내가 될 수도 있는
일요일을 가진 내 나라 — 이 나라에
태어났음을 나는 언제나 아름다와 한다.


I’ve been sending this letter to my customers every Sunday for quite a long while. In the letters, I have told you my small thoughts which came to my mind in Sunday morning, resting after a long week of work at the cleaners. In fact, I usually spend more time on selecting the poem attached at the end of the letter than writing the letter itself.

It’s not just because I like poetry so much, but because I wish that the poem, more than the letter, will give the readers comfort and gratitude for life, however short or long it may last. With this wish in my mind, I try to select a poem each week.

While I’m writing this letter and selecting a poem, I also have in mind a wish that the readers share gratitude for life with someone else in a feeling of peace and serenity, whether just one person, and whether just for a moment.

Today, I would like to share a poem with you with my wishful mind. It is one written by the poet whose poems I like to read around this time of year, at the threshold of autumn, every year. I know that I cannot help you really appreciate the poem in translation, as it was written in Korean. But, still I want to impart its feeling to you.

I wish that at the beginning of fall, we can feel gratitude for a time of rest, whether it is Sunday or just some moments, and that it will always continue.

From your cleaners.

Aesthetics of Sunday

–       Hyun-seung Kim

As work for rest, and
Fights were for freedom,
Like that, Sundays come to us.
As morning bread was baked
For a hot soup.

As mother for son,
Husband is happy for wife,
Like that, Sundays come to our house.
As May left,
Dropping off red wild roses in the green woods.

While I’m wearing a necktie somewhat tilting leftward,
While I’m occasionally mixing discordant notes in the music,
While I’m oversleeping this morning
Without feeling sorry to superiors at work,
I become lenient in living a life gradually.
The God’s will, who stopped His busy work and rested on the seventh day,
Now I think I know.

I, who used to be my other,
Give commands with a lash in hand,
Blow the shrill whistle,
I, who used to be others drawing a fastidious straight line,
Have become myself and have myself since the morning today.

On which I can become others,
Or become myself
Sundays has my country – born in this country
I always cherish it as beautiful.

나는 오로지….

가게 손님들과 정치 이야기나 종교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일겝니다. 세상 어디서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걸 잘 아는 제가 손님들에게 이제껏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정치 이야기(?… 딱 정치 이야기랄 수는 없지만, 이즈음 내가 살고 있는 트럼프 치하의 미국이  한국과 유사한지라 )로 오늘 아침에 편지를 띄워 보았답니다.

행여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손님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랍니다. 현재 이메일 응답만으로는 긍정적 느낌의 답이 대세랍니다. 새로 맞는 한 주, 제 가게 손님들과 나눌 한국상황에 대한 응답들이 자못 궁금하답니다.

3-12

지난 주 한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이야기는  한국대통령 탄핵에 대한 것이었답니다.

저는 한국을 떠나 미국에 이민온지도 벌써 30년이 넘어가니 사실 오늘날 한국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답니다.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세탁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제게  한국의 정치상황은 아무런 상관이 없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탄핵되었다는 뉴스에 관심을 안가질 수가 없었답니다.

저는 이번에 탄핵된 한국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한국에서 살았답니다. 그 이름이 박정희였는데 그가 대통령으로 있었을  때, 저는 초, 중, 고등학교를 비롯해 대학교를 다녔고 군대도 다녀왔답니다. 그가 자그마치 18년 동안이나 통치자였기 때문이랍니다.

제가 이십대 나이였던 그 때에 겪었던  정말 웃지못할 일들이 많았답니다. 일테면 남자는 머리를 길게 기르지를 못하고, 여자는 짧은 치마를 입으면 안되는 것들이었답니다. 제가 스무살 무렵의 일이었는데 거리에서 머리를 길게 기른  젊은이들을 경찰들이 잡아 머리를 가위로 짧게 짤라버리고, 짧은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자들을  경찰들이 붙잡아 치마를 가위로 자르는 일도 있었답니다. 이번에 탄핵된 한국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었지요.

그 무렵에 제가 읽었던 책 가운데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 있었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어 있었답니다. 그 책에 있는 말 들 가운데  하나이지요.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의무는, 어는 때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 중략- 나는 오로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라 좋건 나쁘건 여기서 살려고 온 것이다.>

한국뉴스를 보면서 떠올린 오래 전에 읽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이랍니다.

좋고 나쁘건 여기 살려고 온 내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아주 작은 일 하나라도 할 수만 있다면 삶에 큰 뜻이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귀하여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당신의 세탁소에서


It was the impeachment of the Korean president that became a much-talked-about issue among Korean people last week.

As I came to America over 30 years ago, I cannot say that I know well about the situation in Korea at the present day. And, as you may know, I’ve been busy at the cleaners so that the political situation in Korea has not attracted my attention particularly. However, I cannot but pay attention to the news about the impeachment of the president of Korea.

I lived in Korea during the reign of the impeached Korean president’s father. He is President Park Chung-hee. While he was the president of Korea, I went through the elementary, middle, high school and the university. I even completed my military duties, while he was the president of Korea. All these were possible because his reign lasted for no less than 18 years.

When I was in my twenties, many things about which I could not laugh happened in Korea. For example, they restricted men from having long hair and women from wearing a short skirt. Around the time when I was about twenty years old, the policemen caught young men with long hair and cut their hair short with scissors. They also caught young women with a short skirt and cut the skirt. This kind of unthinkable things had happened when the father of the president who was impeached the other day had been the president of Korea.

One of the books which I read in those days was “Civil Disobedience” by Henry David Thoreau, which was banned in Korea at that time. The following is from the book:

We should be men first, and subjects afterward. It is not desirable to cultivate a respect for the law, so much as for the right. The only obligation which I have a right to assume is to do at any time what I think right… I came into this world, not chiefly to make this a good place to live in, but to live in it, be it good or bad.

Those words came to my mind, while I was watching news about Korea.

If we can do something, however small it may be, “to make this world a good place to live in, be it good or bad,” wouldn’t it be meaningful in life?

I hope that this world will become one in which every single individual as oneself, instead of the mass, is valued and respected.

From your clea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