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에

동지(冬至)란다. 팥죽 생각나서 찾아보니 아이 낳은 산모에게 좋은 음식이란다. 내친 김에 팥죽을 끓인다. 얼굴 까만 내 며늘아이가  가장 확실하고 또렷하게 하는 한국말 – ‘아버님’. 그 이쁜 며늘아이 생각하며 팥죽을 끓인다.

새알심 만들다 연탄 아궁이에서 팥죽 끓이시며 새알심 만드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시간은 직선으로만 흐르지 않고 돌기도 한다.

지난 일요일에 변해가는 세상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사는 동지(同志)들인 희망재단 벗들과 함께 조촐한 시간을 함께 했었다.

헤어질 무렵 이사장을 맡고 있는 벗이 밭에서 산채로(?) 뽑아 온 무 한 꾸러미 씩을 선사했다. 무가 어찌 그리 이쁘던지!

어제 소금에 절여 두었던 무로 동치미도 담구었다.

밤이 긴 동지(冬至 )에는 봄을 꿈꾸고, 뜨거운 여름을 알리는 하지(夏至)에는 넉넉한 가을 바라며 함께 살아가는 동지(同志)들이 있어 내게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다.

비록 팥죽 한 그릇이지만 며늘아이에게 영양식이 되었으면, 아직도 얼떨떨한 모습인 아들녀석에겐 정신 버쩍 들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 이즈음 소식 주고 받으며 감사와 기쁨을 나누고 있는 멀리 사는 옛 벗들에게 팥죽 한 그릇, 동치미 한 사발 보다 더 큰 사랑을 보내며.

2023. 동지에

팥죽

갓 태어난 아이부터 마지막 숨을 내쉬는 이들에 이르기 까지 모든 삶엔 뜻이 있다. 하여 모든 삶은 소중하고 귀하다.

팥죽을 끓여보긴 처음이다. 어머니는 팥밥, 팥떡, 팥죽까지 팥을 참 좋아신다. 내친 김에 좋아 하시는 비린 생선도 굽고 우족과 사골을 푹 고았다. 어머니 덕에 아버지와 장인까지 우족탕과 비린 생선과 팥죽 상을 받으셨다.

어머니 계신 병원에 가면 환자들이 정상이고, 아버지 계신 노인 아파트엔 온통 노인들 뿐이고, 장인 누워 계신 노인 요양원에 가면 기력 쇠한 노인들 세상이다.

모든 삶엔 뜻이 있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 온 것이지만 이즈음에 들어 그 생각을 많이 곱씹는다.

제 삶에 뜻 있음을 알아야 가족과 이웃들 삶에 뜻을 새길 수 있다. 삶에 공감을 이루는 일이다.

아버지를 잠시 뵙고 나오는 길에 노인 아파트에 먼저 온 봄을 만나다. 바람은 아직 찬데 어느새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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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을 맞아 분주한 내 참 좋은 벗들이 전하는 소식에 좋은 세상을 그리며, 그저 생각 뿐인 나는 또 부끄럽고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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