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에 가을이 밀려든 주일아침입니다.
이 아침도 제 삶이나 세상 소식들은 그저 일상의 연속입니다. 딱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아침에 느끼는 허전함 말입니다.
그렇게 손에 든 옛 시집을 넘기다가 눈에 꽂힌 시 두편입니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제 믿음을 확인하며, 일상에 대한 감사를 되찾습니다.
풀잎이 하나님에게
– 허형만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우리의 이파리를 꺾이지 않게 하시며
당신의 이름을 위해 우리를 지키소서
야훼, 우리 하나님
태풍이 몰아쳐도 뿌리 뽑히지 않게 하시고
들불이 번져 와도 타지 않게 하소서
비록 어둠 속에서도 두 눈 크게 뜨게 하시며
나팔을 높이 불어 쓰러진 동족을 일으키소서
우리의 햇살을 전과 같이 함께하게 하시고
우리의 새들도 처음처럼 돌려보내주소서
짓밟는 자에게 생명의 귀함을 일깨워주시고
낫질하는 자의 낫은 녹슬게 하소서
야훼, 우리 하나님
우리의 땅은 더욱 기름지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은 버러지로부터 보호해주시고
우리의 뿌리는 더욱 깊이 뻗게 하시며
우리의 하늘은 더욱 푸르르게 하소서.
틈
– 이탄
돌멩이처럼 굴러 있는 그런 것들의
틈에서 사는 평범한 하루
아침이 왔다 가고 저녁이 왔다 가고
더러는 왔다 갔는지 모르게 가고
아직 한번도
내가 부른 아침, 내가 부른 저녁은 없었지만, 이제 아침이나 저녁은 가족 같은 걸.
연기가 새어나오는 틈으로 새어나가듯
틈에서 사는 하루
그래도 보이는 하늘은 넓다.
늘 푸르다.
돌멩이처럼 사라져 간들
깨끗한 귀 깨끗한 눈으로
틈을 메우며 살려는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