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꽃비와 새소리에 홀려 아침 한 때를 보내다.
이젠 곡기 끊으신 어머니는 내내 주무시다가도 내가 찾아 가면 가는 눈 뜨시고 똑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하시곤 다시 눈을 감으신다. ‘아이고 어디 갔다 이제 오니? 왜 이리 오랜만에…’
덩달아 급속히 오락가락이 심해지시는 아버지는 며칠 전 당신이 꼭 움켜쥐고 계셨던 몇 가지 기록들과 물건들을 내게 건네시며 말씀 하셨다. ‘나도 이젠 다 놓아야겠다.’
오후 들어 비바람이 거세다.
딱히 손에 잡히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다 알베르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꺼내 들었다. 문득 생각난 ‘아버지를 찾아서’라는 소제목 탓이었다. 언제 읽었더라? 가물하다. 옛날식 번역은 이제 내게도 낯설다.
<광장에서 들려오는 한줄기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야외 음악당 주위 아랍인들의 단단하면서도 무표정한 얼굴, 베이야르의 웃음과 고집 센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리고 또 폭발의 소리가 들리자 파랗게 질리던 어머니의 얼굴을 가슴을 쥐어 뜯는 듯한 정다움과 슬픔과 함께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가 오랜 세월의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그 망각의 땅에서는 저마다가 다 최초의 인간이었다. 또 그 땅에서는 그 역시 아버지 없이 혼자서 자랐을 뿐, 이야기를 해도 좋을 만한 나이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서 집안의 비밀을, 혹은 오랜 옛날의 고통을, 혹은 자신이 겪은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그런 순간들,….>
<자기 자신 삶의 관객으로 살 필요가 있다. 거기에다가 그 삶을 완성해 주는 꿈을 보태기 위하여.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꿈으로 꾼다. – 최초의 인간 ‘노트와 구상’에서>
누구에게나 하루는 최초의 인간이 되는 순간이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간들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