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에

아내의 비명과 함께 차는 빙 돌아 우리가 달려오던 쪽 갓길에 처박혔다. 순간 세상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엊그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 였다. 그 찰나의 순간은 지금 느린 영상으로 기억속에서 되풀이 되곤 한다.

생각할수록 천만다행이었다. 십 수대의 경찰차와 구급차 소방차들이 난리 법석을 부리고, 망가져 견인된 차의 형태에 비하면 우리 부부는 다친데 거의 없이 말짱한 편이기 때문이다. 이십 대 젊은 아이가 운전을 하고 제 또래 친구들이 함께 탄 차가 느닷없이 아내가 앉아 있는 내 차 passenger side를 들이 받았던 것인데, 그야말로 찰나의 행운으로 아내가 앉아있던 좌석 뒤편을 치는 덕에 크게 다치지 않았던 것이다.

놀라 잠 못 이룬 밤이 지나고  X-ray를 찍고 의사의 검진을 받고 처방전을 받고 무언지 모르게 어수선했던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오늘 일요일 아침, 편안하고 긴 잠을 누린 아내와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다시 느린 화면으로 되돌려 이야기하며 감사를 되풀이 한다.

내일부터 내 일상이 아닌 일들로 조금은 번잡할 것이다. 보험회사 claim 조정관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이고, 의사를 찾는 번거로움과 만나기 싫은 변호사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보험회사의 발 빠른 처리 덕에 임시 렌트카는 마련 하였다만 새 차를 구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일로 잡힌 가게 건물주와의 마지막 협상과 메뚜기 한 철로 바쁜 가게 일들도 머리속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감사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대하여. 아내와 나는 일상을 벗어난 번거로운 일들을 누군가의 도움없이 치루어 낼 수 있는 건강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정말 아쉬운 일이 하나 있다. 아들 며느리와 한 엊저녁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까만 얼굴 아프리칸 아메리칸인 내 며늘 아이가 한국학교에 등록한 것은 올 9월이었다. 템플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고등학교 선생으로 일하고 있는 며늘아이는 ‘아버님’, ‘어머님’, ‘감사합니다’ 등 몇 마디 한국말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와의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다. 그 아이가 엊저녁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대회에 참가했다.

뉴저지 해밀턴에서 열린 한국 재외동포재단이 후원하고 해밀톤 한국학교가 주관하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였다.

해밀톤 한국학교 교장인 시인 강남옥선생님도 모처럼 만날 겸해서 꼭 가겠노라고 약속을 했던 터였는데, 오고가는 길 세 시간 여 밤운전이 영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며늘아이가 한국말로 자신을 표현할 정도는 전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적은 영어  글을 한국 말로 옮겨 발음부호대로 외어서 대회에 나간 것이니, 솔직히 그 대회의 본래 뜻과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만 내겐 아이가 참 대견한 것이었다.

그 아이의 생각 가운데 하나이다.

저는 가족들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남편과 가족들을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한국말을 배우려고 합니다. 저는 남편과 가족들을 통해서 한국인들이 어렵고 힘든 일들을 잘 이기고 견디어 왔는지를  배웠습니다. 제가 낳고 자란 문화와 환경도 비슷합니다. 제 부모님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잘 이겨 내어, 제가 오늘 여기에서 이야기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저는 남편의 나라 한국에서 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잘 이겨낸 이야기들과 같은 것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많은 아픔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제일 큰 힘은 가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렌트카를 빌려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보았다.아들과 며느리, 모처럼 집을 찾는 딸, 부모님과 장인과 내 누이네들이 함께 할 Thanksgiving Day 저녁상을 위한 장보기였다.

사고 위로를 겸해 서울 처남이 보내 준 한국영화를 즐기면서 오늘은 그날 저녁상을 위해 느긋하게 만두를 빚을 것이다.

찰나에 대한 감사를 위해. 어쩌면 모든 것들이 찰나일 터이니.